독일의 前 축구 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한스외르크 부트 Hans-Jörg Butt | |
출생 | 1974년 3월 28일 ([age(1974-03-28)]세) | |
독일 니더작센 주 올덴부르크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1cm | |
직업 |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TSV 그로센크니튼 (1965~1978 / 유스) VfB 올덴부르크(1991~1994 / 유스) VfB 올덴부르크 (1994~1997) 함부르크 SV (1997~2001)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1~2007) SL 벤피카 (2007~2008) FC 바이에른 뮌헨 (2008~2012) FC 바이에른 뮌헨 II (2009) |
기타 | FC 바이에른 캄푸스 (2012 / 단장) | |
국가대표 | 4경기 (독일 / 2000~2010) |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클럽 경력이 말해주듯 선방능력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올리버 칸, 옌스 레만 등과 동시대를 살아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골 넣는 골키퍼로도 유명한데, 페널티킥 전담 키커로 많이 활약했으며 아래 득점 기록도 골키퍼 답지 않게 꽤 많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올덴부르크에서 태어나 1994년 당시 3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소속팀 VfB 올덴부르크에서 동생 헤닝 부트와 함께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3시즌 동안 주전으로 뛰며 87경기에 출장하였고, 팀을 2.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마지막 시즌에 2. 분데스리가에서 최하위로 강등되자 팀을 떠났다.
1997년 여름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로 이적했다. 당시 주전이었던 리하르트 골츠를 밀어내고 주전자리를 차지했으며, 4시즌 동안 133경기에 출장하였다. 1999-00 시즌 9골을 득점하며 로이 프레거와 토니 예보아와 함께 팀내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
2.2.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1년 여름 자유계약으로 바이어 레버쿠젠에 합류하였다. 당시 레버쿠젠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 전성기의 주전 골리로 6시즌 동안 레버쿠젠의 골문을 지켰다. 6시즌간 결장한 리그 경기가 4경기밖에 없을 정도.
레버쿠젠 시절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 03/04시즌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팀이 페널티킥을 얻자 키커로 직접 나서 득점에 성공시켰다. 여기까진 좋은데, 세리머니 이후 골문으로 완전히 복귀하기 전에 샬케가 킥오프를 해서 마이크 항케가 하프라인 슛으로 바로 골을 넣어버렸다.
2006-07시즌 22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 28분 퇴장당하며 베네딕트 페르난데스와 교체되었다. 이후 레드카드 징계로 23라운드에 나오지 못했는데, 이때 대신해서 출전한 신성이 바로 레네 아들러. 그 후로 아들러가 주전으로 뛰게 되며 세컨골리로 밀려났다.
2.3. FC 바이에른 뮌헨
2007년 잠시 SL 벤피카로 이적했다가 2008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당시 뮌헨의 상황은 올리버 칸 은퇴 후 미하엘 렌징이 칸의 후계자로 올라서고 있었는데, 시즌이 시작하고 렌징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자 주전골리로 낙점되었고, 2009-10시즌 더블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하며 노련미와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0-11 시즌엔 렌징이 팀을 떠나고 루이 판할 감독이 유망주 골키퍼 토마스 크라프트를 주전골리라고 선언해 시즌 중반 잠시 주전자리를 잃기도 했지만 크라프트도 렌징처럼 부진했고, 이후 반할이 경질되자 안드리스 용커르 감독대행 체제하에서 주전자리를 되찾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1-12 시즌을 앞두고 마누엘 노이어가 이적해오자 다시 세컨드 골키퍼로 뛰었고, 시즌 종료 후 트리플 러너업과 함께 은퇴했다.[1]
3. 국가대표 경력
2000년 6월 7일 리히텐슈타인과의 경기에서 독일 대표 선수로 데뷔하였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3/4위전 우루과이전을 끝으로 국대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 은퇴는 독일 월드컵 당시 옌스 레만이 3,4위전때 칸에게 은퇴경기를 배려해 주었던 것처럼 노이어가 남아공 월드컵 3,4위전을 부트에게 양보했고 어찌되었던 월드컵 무대에서 은퇴경기를 가지는 유종의 미는 거두었다. 이 경기가 부트의 유일한 월드컵 출전이었고 독일은 3대2로 승리해 3위를 차지했다.
4. 은퇴 이후
2012년 7월,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팀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한달 뒤, 부담을 느껴 한달 만에 사직하였다.이후, 바이에른 뮌헨이 레전드 매치 행사를 할 때 마다 클럽의 부름을 받고 골키퍼로 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과의 레전드 매치에서도 출전했다.
5. 기록
5.1. 출전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 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7/98 | 함부르크 SV | 분데스리가 | 33 | 0 | 2 | 0 | - | - |
1998/99 | 함부르크 SV | 분데스리가 | 34 | 7 | 3 | 0 | - | - |
1999/00 | 함부르크 SV | 분데스리가 | 34 | 9 | 1 | 0 | - | - |
2000/01 | 함부르크 SV | 분데스리가 | 32 | 3 | 2 | 0 | 6 | 1 |
2001/02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34 | 2 | 6 | 0 | 17 | 1 |
2002/03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33 | 1 | 4 | 0 | 10 | 0 |
2003/04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34 | 1 | 3 | 0 | - | - |
2004/05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34 | 2 | 2 | 0 | 8 | 0 |
2005/06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34 | 1 | 2 | 0 | 2 | 0 |
2006/07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22 | 0 | 2 | 0 | 8 | 0 |
2007/08 | SL 벤피카 | 프리메이라 리가 | 1 | 0 | 4 | 0 | 0 | 0 |
2008/09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8 | 0 | 2 | 0 | 3 | 0 |
2009/10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31 | 0 | 2 | 0 | 12 | 1 |
2010/11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23 | 0 | 2 | 0 | 4 | 0 |
2011/12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 1 | 0 | 1 | 0 | 1 | 0 |
5.2. 대회 기록
- FC 바이에른 뮌헨 (2008~2012)
5.3. 개인 수상
- 키커 올해의 골키퍼: 2009-10
- 키커 올해의 팀: 1999-00, 2009-10
- 은월계수잎 훈장: 2010
6. 같이 보기
1 칸 ⓒ · 2 링케 · 3 레머 · 4 바우만 · 5 라멜로프 · 6 치게 · 7 뇌빌 · 8 하만 · 9 얀커 10 리켄 · 11 클로제 · 12 레만 · 13 발락 · 14 아자모아 · 15 켈 · 16 예레미스 · 17 보데 18 뵈메 · 19 슈나이더 · 20 비어호프 · 21 메첼더 · 22 프링스 · 23 부트 |
루디 푈러 |
1 노이어 · 2 얀센 · 3 프리드리히 · 4 아오고 · 5 타스치 · 6 케디라 · 7 슈바인슈타이거 · 8 외질 · 9 키슬링 10 포돌스키 · 11 클로제 · 12 비제 · 13 뮐러 · 14 바트슈투버 · 15 트로호프스키 · 16 람 ⓒ · 17 메르테사커 18 크로스 · 19 카카우 · 20 보아텡 · 21 마린 · 22 부트 · 23 고메스 |
요아힘 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