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7:13:22

카카우


독일의 前 축구선수
파일:Cacau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카카우
Cacau
본명 클라우데미르 제로니무 바헤투
Claudemir Jerônimo Barretto
출생 1981년 3월 27일 ([age(1981-03-27)]세)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안드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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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 체중 74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SE 파우메이라스 (1994~1997)
프로 나시오날(SP) (1997~1999)
튀르크귀쥐 뮌헨 (1999~2000)
1. FC 뉘른베르크 II (2001~2002)
1. FC 뉘른베르크 (2001~2003)
VfB 슈투트가르트 (2003~2014)
세레소 오사카 (2014~2015)
VfB 슈투트가르트 II (2016)
국가대표 23경기 6골 (독일 / 200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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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Cacau_Stuttgart_1.jpg

독일의 前 축구선수. 브라질 출신이나, 오랜기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덕에 독일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스트라이커였다. 현재 VfB 슈투트가르트의 유일한 엠버서더를 역임하고있다.

2. 클럽 경력

브라질 출생의 카카우는 SE 파우메이라스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나시오날을 거쳐 1999년에 당시 5부리그였던 튀르크귀쥐 뮌헨로 이적하게 되면서 독일 무대에 입성한다. 그리고 같은 해 뉘른베르크 B팀으로 이적하였고, 그 해 11월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분데스리가에서의 두 번째 출전이었던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면서 주목 받게 된다. 이 경기를 계기로 출전 기회를 보장 받게 되고, 그 시즌에 17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다음 시즌에는 클럽의 새로운 영입 선수인 사샤 치리치와 공격수로 호흡을 맞추었으나, 시즌 내내 겨우 2골만을 기록하였고, 동시에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2.1. VfB 슈투트가르트

2003년 1월, 카카우는 VfB 슈투트가르트와 사전 계약을 채결했고, 2003-04 시즌을 앞두고 정식으로 팀에 합류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첫 시즌은 주로 교체 멤버로 나섰으나, 다음 시즌부터 주전으로 낙점받으며 리그에서 12골을 넣으며 팀에서 두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UEFA 컵에서도 3경기 연속 득점을 해내며 유럽대항전 무대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5-06 시즌에는 처참한 골결정력으로 총 5골에 그치며 한동안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이후 부진을 뒤로하고 심기일전하여 새롭게 시즌을 맞이한 카카우는 완벽하게 폼을 회복하며 이전보다 나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기록한 두 골을 포함하여 리그에서 13골을 기록, 마리오 고메스와 함께 팀의 주포로 활약하며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리그 뿐만 아니라 DFB 포칼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5라운드 보훔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8강행을 이끌었고, 친정팀 뉘른베르크와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을 기록하며 1:0으로 앞서게 된다. 그러나 11분 뒤에 무리한 반칙으로 퇴장을 당하면서 팀은 수적열세에 시달렸고, 결국 연장접전끝에 2:3으로 패하며 더블 달성에 실패하고 만다. 본인은 볼프스부르크 4강전을 제외한 모든 포칼컵 경기에서 득점을 신고하며 결승 진출에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한순간 아쉬운 판단으로 우승을 놓치게 한 장본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7-08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라운드 레인저스전을 통해 처음으로 챔스에서 골맛을 경험하는데 성공했으며, 리그는 6위로 마쳤다. 2008-09 시즌은 리그 25경기 7골을 기록했고, 팀은 리그 3위로 호성적을 거두었다.

2010년 2월 10일, 카카우는 쾰른을 상대로 포트트릭을 작렬하며 5:1 대승을 이끌었다. 4월 30일에는 호펜하임 원정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2:1 승리에 공헌했다. 다음 날 그는 소속팀과 2013년까지 새로운 계약을 채결했고, 리그 13골 포함 총 16골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승선한건 덤.

월드컵을 마친 뒤에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2시즌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2012-13 시즌에는 시즌 초 무릎인대 부상으로 반년 넘게 전력을 이탈했고, 기나긴 재활을 거쳐 2013년 6월 1일 뮌헨과의 포칼컵 결승전을 통해 필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와중에 2013년 3월 22일에는 소속팀과 2014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다음 시즌에는 또 다시 부상으로 2달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복귀 이후에는 부상 여파로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27경기동안 1골에 그쳤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 카카우는 11년만에 소속팀과 작별했다.

2.2. 세레소 오사카

2014년 8월 11일, 정든 팀을 떠난 카카우는 일본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했다. 많은 기대시끄러 멍청아를 안고 합류했으나,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1년만에 방출되었다.

2.3. VfB 슈투트가르트 II

반년 가까이 무직 상태로 지내다가 2016년 2월 1일에 친정팀 슈투트가르트로 복귀했다. 다만 퍼스트 팀이 아닌 B팀이다.

B팀에서 8경기동안 3골을 기록한 뒤 그 해 10월 1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Cacau_National_1.jpg

브라질 출생이지만, 뛰어난 공격진들이 포진된 브라질 대표팀에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독일에서 오랜기간 커리어를 보내게 됐고, 중간에는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거듭나며 분데스리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독일 귀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2월, 9년간 독일에 거주한 그는 귀화조건을 충족하는데 충분했기에 독일 여권을 발급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5월 19일, 마침내 독일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고, 열흘 뒤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전차군단의 일원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2010년 5월, 2010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6월 14일에 열린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었다. 결과는 4:0 승리. 세르비아와의 2차전, 가나와의 3차전 그리고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 나서며 본선 무대 총 4경기를 출전했다.

UEFA 유로 2012 지역예선 기간동안에도 대표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었고, 30인 예비엔트리에 무난히 승선했으나,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데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