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4 23:02:37

이정후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820024> 파일:Kiwoom_heroes_BI_1.png 키움 히어로즈
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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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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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5p4rcEr.png KBO 포스트시즌
2019 플레이오프 MVP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17 KBO 리그 신인왕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2017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

보유 기록
신인 시즌 최다 안타 179개[1]
신인 시즌 최다 득점 111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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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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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1번
정회찬(2014~2016) 이정후(2017) 안우진(2018~ )
넥센 / 키움히어로즈 등번호 51번
양훈(2017) 이정후(2018~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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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히어로즈이정후.jpg
키움 히어로즈 No.51
이정후 (李政厚 / Jeong-Hoo Lee)[3]
생년월일 1998년 8월 20일 ([age(1998-08-20)]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4][5][6]
신체 185cm, 80kg
본관 함평 이씨[7]
학력 광주서석초 - 휘문중[8] - 휘문고
포지션 외야수[9]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17년 1차지명 (넥센 히어로즈)
소속팀 넥센-키움 히어로즈 (2017~)
가족관계 아버지 이종범(1970년생), 어머니 정연희(1971년생),
여동생 이가현(1999년생)[10] , 고종사촌형 윤대영(1994년생)[11]
등장곡 Meghan Trainor - Me too[12]
응원가 크라잉 넛 - 취생몽사[13][14]
병역 병역특례[15]
연봉 2억 3000만원[16] (109.1%↑, 2019년)
에이전트 좋은스포츠[17]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기록5. 기타
5.1.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5.2. 과거 논란 및 구설수


1. 개요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c9uogoI1K1sqk8veo3_r1_540.jpg 파일:0000401026_001_20170725184109516.jpg
고교시절 2017년

키움 히어로즈외야수.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으로 아버지가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종범이다. 아버지의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정후의 별명은 바람의 손자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18] 세상의 무수한 야구 선수들 중, 야구공 잡기 전부터 별명이 결정되어 있던 유일한 선수일 것이다.[19] 2017년 신인왕을 수상하게 되며 10년만의 순수 신인왕 및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면서 어느덧 이제는 고척 시대 히어로즈의 상징이 된 선수이기도 하다.

특이한 사실이지만, 출생지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사실 특이하다고 볼 수 없는 게, 아버지인 이종범일본프로야구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 중인 1998년에 태어났고 이 때 어머니[20]주니치 드래곤즈의 연고지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원래 이름은 광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1][22]

아버지와 달리 우투좌타의 선수다.[23] 바람의 손자 이정후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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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5262245773955_1.jpg
중학교 시절. 아버지 이종범의 은퇴식에서.[24]
바지에 번호가?
서재응김원섭의 표정이 신경 쓰이면 지는거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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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잘 컸네 잘 컸어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c9uogoI1K1sqk8veo2_1280.jpg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이종범이 은퇴한 후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가면서 중학교 2학년 말 무등중학교에서 휘문중학교로 전학했다. 휘문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줄곧 주전으로 뛰었으나[25] 유격수 자리에는 1년 선배인 김주성이 있었기에 여러 포지션을 돌았으며 김주성이 졸업한 2016년에야 비로소 주전 유격수가 되었다. 1학년때는 외야수1루수로 뛰었으며 2학년 2학기 부터는 유격수3루수로써 활약하기 시작했다.

공격력 부분에서는 매우 뛰어난 재목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무등중학교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타격상을 휩쓸었으며 보통 야구선수들은 고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으나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1학년때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3할 3푼을 기록하는등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다. 이것도 사실 전반기까지 5할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신입생이다보니 체력문제로 3할 3푼까지 떨어졌다. 2학년이던 2015년에는 더욱더 발전해 유신고 홍현빈과 함께 고교야구에서 최고의 1번 타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유신고 홍현빈이 동년배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유급생 출신이었고 서울권에 비해 약체로 평가받던 경기권에서 낸 성적, 게다가 그 성적도 이정후에게 뒤쳐졌던 점, 마지막으로 신체조건이 작았던 것을 포함하면 사실상 고교 포텐셜 포함 최고의 컨택터이자 1번타자로는 이정후가 뽑혔다. 단순히 아버지빨(?)이 아니라 실제로 스카우터들이나 각 구단관계자들도 장타력이 부족할 뿐이지 실질적인 고교 넘버1 타자로 이정후를 뽑았을 정도로 이정후의 타격 실력을 매우 높게 봤다. 이정후의 문제는 다름 아닌 수비. 실력이 쟁쟁한 서울권에서 2학년때 11경기 24안타 14득점 12타점 7도루 타-출장 .500 /.528 /.667을 기록. 2학년 때부터 서울권 1차지명 후보로 쭉 언급이 됐으며 넥센 히어로즈에서 1차지명으로 뽑는다,넥센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썰이 계속 나돌았다. 기대를 모았던 3학년때는 정작 부진. 이정후 이름값에 맞지 않게 타율 3할6푼을 기록(?)했지만 무등중때부터 쭉 지켜봤다는 넥센 히어로즈 관계자 및 고형욱 스카우터 팀장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정후 인터뷰를 보면 황금사자기 대회경남고전에서 슬라이딩을 잘못해 손가락이 골절이 되어서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손가락 골절 부상으로 전반기 부진하다가 후반기 4할5푼을 치면서 휘문고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으며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6할을 기록했다.

그런데 뛰어난 타격실력에도 불구하고 수비부분에서는 안정성이 가장 필요한 유격수 포지션임에도 풋워크 등 기본적인 스킬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심지어 아버지인 이종범도 이에 대해서 "공격은 좋은데 수비는 한참 멀었다."라고 언급할 정도.## 본인의 마지막 고교대회였던 2016 봉황대기 결승전에서도 에러를 2개나 기록하면서 수비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어깨는 매우 강해서 프로 입단 후 외야전향도 고려됐다. 넥센 외야수 중에 강견 외야수가 별로 없는 것도 이정후의 경쟁력에 힘을 실어 줄 수가 있다.[26]

KIA 팬들은 아버지가 활동했던 KIA 타이거즈에서 뛰길 바랐으나 서울에 위치한 휘문고에 다니는터라 서울팀 지명이 예상 되었다. 2학년때부터 계속 넥센 1차지명썰이 나왔었으며 역시 썰대로 2016년 6월 27일 진행된 연고지 출신 신인 1차 지명회의에서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 되었다. 이날 선택받은 1차 지명자 중 유일한 타자 지명자다. 원래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전학한 선수는 1차지명 대상이 아니지만 이정후는 전면 드래프트 시행 시기에 전학했기에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1차 지명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로써 KBO 리그 최초의 부자 1차지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7월 5일 넥센과 2억원에 계약하였다. 임병욱:어서와 2억원은 처음이지? 최원태:응 난 첫승에 3억 5천만원 계약소감으로 "아버지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으며, 이종범은 이제 시작이니 프로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계약 직후 열린 제11회 아시아청소년야구대회에 대표팀으로 참가해 출전했다. 유일하게 한국 선수들 중 청소년 대표 올스타 TOP 10에 들었으며 중견수1루수를 보면서 1번타자로 타율 6할과 최다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대만전 오심으로 눈물을 글썽이던 장면은 많은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2016년 11월 2일 넥센 마무리 캠프 내야수로 선발되어 가고시마 캠프로 훈련을 하러갔다. 2017 드래프트로는 김혜성과 함께 둘뿐이다.[27]

2.2. 프로 경력

2.2.1. 2017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후/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www.heroesbaseball.co.kr/28a8e709-82e1-4ded-b940-54cac4377290.jpg

시범경기에서의 맹활약과 주전 외야수 임병욱의 부상이 겹쳐 시즌 초부터 주전 외야수로 기회를 잡았다. 고졸 신인이라는 벽을 깨고, 또 시작부터 엄청난 성적을 내버린 시즌. 신인 관련 기록을 모조리 갱신하며 신인 기록제조기로 자리매김하였다. 신인왕에도 등극하였다.

2.2.2.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후/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3. 2019 시즌

3할 타율 눈앞 이정후 “저는 더 뻔뻔해졌습니다”

순수 파워가 강한 타자가 아니기에 공인구 교체의 타격을 직격으로 받았다. 4월 중순 기준으로 2할 5푼을 넘지 못하는 부진에 빠진 상황. 이맘때 이정후는 3할 3푼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었는데 현재는 2할 3푼대로 거의 1할정도 떨어졌다. 잘 맞은 타구도 야수 정면으로 가는 등 운까지 따라주지 않고 있다. 4월 25일 기준으로는 타율이 조금 올라와서 2할 6푼대를 기록중이다.

4월 후반부터 계속해서 안타를 꾸준히 때려내면서 5월 2일 현재 타율을 .285까지 회복했다. 다만 타율에 비해 아직까지도 출루율이나 장타율은 썩 좋지 못한 편. 여전히 OPS가 7할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5월 10일 언제 그랬냐는 듯, 벌써 3할 5리까지 끌어올리면서, 출루율과 장타율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현재 안타 부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타고난 핏줄은 속일 수가 없는 듯.

7월 6일에 공개된 더그아웃 인터뷰에 따르면 시즌 초반 부진에 대해 본인이 몸상태에 대해 과신했던게 주된 이유였던것 같다고 밝혔다. 어깨수술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몸상태가 100%가 아님에도 야구를 하고 있으니 100%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했던게 문제였다고... 원래대로라면 몸상태가 100%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끔 다른 루틴으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아 잘못된 준비를 했었고 부진이 이어졌다고 한다.참조

전반기 성적은 94경기 385타수 125안타 5홈런 44타점 57득점 12도루, 타출장 .325/.379/.455에 wRC+ 128.9, sWAR 2.99로 마무리했다. 초반에 부진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중. 다만 선수 본인이 언급한대로 적극적인 스윙을 가져간 때문에 준수한 볼삼비(사사구 34개, 삼진 32개)에도 불구하고 출루율은 타율에 비하자면 약간 아쉬운 면이 있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는 3번으로도 꽤 출전하면서 출루보다는 타점 생산에 더 무게를 두느라 그런 거 아니겠냐는 분석이 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살짝 주춤한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8월 3일 KT전에서 8일 SK전까지 4경기 연속 멀티히트, 그 중에서도 7일 롯데전에서는 무려 2루타 3개에 5타점을 기록하고, 8월 10일 두산전에서는 5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를 기록하면서 완벽히 살아난 모습을 보였다. 10일 경기 이후 기준 143안타로, 어느덧 안타 1위인 페르난데스를 단 1개차로 추격했다.

8월 11일 두산전에서는 5타수 3안타 2득점을 기록하면서 146안타째를 기록, 타율을 .333까지 올렸다. 다만 이 날 페르난데스도 안타 3개를 추가하면서 여전히 1개 차이로 안타 2위를 기록중이다.

8월 15일 NC전에서는 4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하면서 149안타째를 기록했고, 이 날 두산 경기가 우천취소 되면서 드디어 페르난데스와 함께 안타 공동 1위를 달성했다. 다음날인 16일 NC전에서도 5타수 2안타(1홈런) 3타점 1득점을 기록하면서 역시 2안타를 친 페르난데스와 같이 안타 공동 1위를 유지했다.

이후 계속해서 페르난데스와 안타 공동 1위 자리를 유지하다가 8월 21일 KT전에서 이정후가 5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하고, 두산 경기가 우천취소되면서 157안타로 안타 단독 1위에 올랐다.

8월 22일 KIA전에서는 5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하면서 페르난데스와 안타 공동 1위 자리를 유지했으며, 이 날 안타로 KBO 리그 최연소(21세 2일), 최소 경기(369경기) 500안타 달성을 이루어냈다. 리그 3년차에 500안타를 달성했으니 이승엽 해설위원의 말처럼 KBO 리그 최초 3000안타 달성도 헛된 소리만은 아닐 듯...?

8월 23일 KIA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하면서 159안타째를 기록했다.

8월 28일 한화전에서는 5타수 무안타에 두 번의 1사 1,2루 찬스에서 두번이나 병살타를 치면서 대차게 까였다. 그 다음 경기인 29일 롯데전에서도 4타수 무안타로 침묵. 안타 1위 페르난데스와는 4개의 격차가 생겼다.

9월 6일 삼성전에서 4타수 4안타 2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2번째 4안타 경기. 이날 4안타를 치면서 174안타로 다시 페르난데스를 1개 차이로 제치고 안타 단독 1위에 오르긴 했지만, 두산키움보다 6경기나 더 남아있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 1위 자리는 사실상 힘들어진 상황.

9월 8일 KIA전에서 6타수 4안타 3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이 2017시즌에 세웠던 시즌 최다 안타인 179안타를 넘어 180안타를 기록하였다.

9월 11일 SK전에서는 3타수 3안타에 볼넷 하나로 4출루 경기를 했다.

이후 조금씩 부진하더니 9월 29일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두산 베어스호세 페르난데스보다 2개 뒤쳐진 192개를 기록하고 있다. 두 팀 모두 1경기씩 남은 상황이라 최다 안타는 힘들어 보인다. 10월 1일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인 롯데전에서 1안타만 추가한 상황에서 다리에 이상을 느껴 선수보호 차원에서 송성문과 교체되어 시즌을 마쳤다. 아쉽게도 193안타로 최다안타 2위에 머물렀다.

정규시즌을 정리하자면 팀내 젊은 타자들 다수가 투고타저 흐름속에 작년보다 퇴보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wRC+(18시즌 127.4 →19시즌 135.1), sWAR*(18시즌 3.75 → 19시즌 4.88)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진일보했다. 비록 두 자리수 홈런은 무리지만 31개의 2루타와 리그 1위의 3루타(10개)는 중장거리 타자로의 길을 밝게 했다.

공인구 교체로 인한 극심한 투고타저에 작년 포스트시즌에 당한 어깨부상에 대처하는 몸관리 노하우 부족으로 시즌 초반에 심하게 부진했음에도 이 정도 성적이 나왔다는 점은 2020년 건강한 이정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고무적인 요소다. 막판 최다안타 경쟁에서 부진하지만 않았어도 골든글러브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되었을 정도로 좋은 성적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SK를 상대로한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533 3타점을 기록하며 스윕승에 공헌해 MVP를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두산을 상대로 4할 타율에 2타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0승 4패로 스윕패하는 바람에 마지막에 빛이 바랬다.

2.2.4. 2020 시즌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몸을 키운다고 밝혔다. 두자릿수 홈런을 치려고 하는 듯.

2.3. 국가대표 경력

2.3.1.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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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며 U24 국가대표로 선발 되었다. 참고로 외야/주루코치가 이종범이다.(...)부자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이종범이 야구 선배로서 몸 상태가 둔하다며 지적했는데, 이정후는 단순한 부모의 잔소리인줄 알고 뭐요~(...) 라며 응수했다 한다. 이에 이종범이제부터 잔소리 안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상 최초로 부자 동반 참가하게 되자 코치님이 시키시는 일은 잔말 없이 다 따르겠다라고 대답 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중입니다.

여담으로 신인왕 수상때 수상 소감을 통해 대표팀 훈련과정에서 아버지의 펑고 템포가 너무 빠르다고 형들에게 컴플레인이 왔다며 이야기해 큰 웃음을 줬다.# 당연히 이종범 코치는 차명석 해설위원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갸는 자식도 아녀~라고 농담섞인 디스를 날렸다.[28] 그런데 하필 바뀐 사람이 타구 스피드 빠르기로 유명한 김재현.선배들:혹을 떼라니까 붙이고 있네

11월 8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넥센과의 첫 평가전 경기 후 이정후는 “(안타를 친 뒤) 아버지가 (1루에서) 장비를 받아준 것이 신기했다. 소속팀이랑 뛴 것도 느낌이 색달랐다”고 말했다. #

11월 16일 일본전에서 출장해 7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4회 잘맞춘 타구가 일본 외야의 삽질과 겹쳐 2타점 쐐기 2루타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범타로 물러난게 아쉽다.

다음날 대만전에서는 5번타자 중견수로 출전해 6회말 2사 1루에 대표팀의 귀중한 선취점을 안겨주는 1타점 3루타를 작렬시켰다. 그리고 투수진들이 이 귀중한 1점을 지켜내며 결승타로 기록되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2번 타자로 돌아와 몸맞는 공으로 출루했으나 무안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 날 한국팀에서 살아나간 타자는 단 네명뿐이었다.

2.3.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파일:2018아시안게임이정후.jpg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자신의 커리어 첫 A대표팀 소집이자[29], 이른 나이에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최충연과 등번호가 겹쳐 나중에 발탁된 자신이 51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17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하는 거 보면 최충연이 51번 포기했어야 된다.[30] 기왕 원래 번호 못 쓰는 거 절친인 축구선수 이승우의 아시안게임 등번호와 맞추려 그랬다고.

예선라운드 대만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사사구로 두 차례 출루했고 인도네시아전에서는 2타수 2안타 2타점 그리고 예선 마지막 홍콩전에서는 7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예선라운드 기간 동안 12타수 7안타 2홈런 6타점 타율 .583을 기록하며 고전 중인 타자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슈퍼라운드 일본전에서는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중국전에서는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7회말 1사만루에서 3루수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기록했다.[31]

결승전에서는 볼넷 하나를 얻어서 선취득점을 했으나 이후 안타와 출루를 기록하지 못했다. 경기 후반 우익수 자리에서 9회초 우승확정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여담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될 플라이 타구를 잡는 과정에서 펄쩍 뛰며 스텝을 넓게 밟는 특이한 동작을 취해서 "이정후는 포구도 멋지게 한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인터뷰 중에 나온 본인의 해명에 의하면 스텝이 꼬인 것이었다 한다. (...)

이정후는 결승전 포함 전경기에 출장하며 24타수 10안타 6타점 6득점, 타율 0.417을 기록했다. 대체선수로 뒤늦게 합류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호성적에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특유의 기복없는 타격과 수비를 대회 기간 내내 선보여 앞으로도 부동의 리드오프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써 만 20세에 병역특례를 받게 되었고, 향후 FA 연수와 해외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날 동일한 결승 상대인 일본을 꺾고 우승한 축구 대표팀의 절친 이승우도 덩달아 병역특례에 골인했다.

2.3.3. 2019 WBSC 프리미어 12

지난 아시안게임에 이어 프리미어 12에 참가하는 김경문호에도 선발됐다. 아시안게임보다 더 다양하고 수준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프로 3년차 이정후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 지 팬들의 기대가 상당하다.

김경문 감독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이정후를 중심타선인 3번타자 겸 중견수에 배치하며 신뢰를 보이고 있다. 이정후 역시 그 기대에 보답하며 1라운드 3경기 모두 선발출전해 9타수 4안타, 4사사구, 2타점-2득점 맹활약을 펼쳤다. 가히 김경문호의 2라운드 전승진출의 1등 공신이라 칭할 만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사기에요. 정말 사기 캐릭터에요. 그렇게까지 잘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가족들도, 삼촌도 ‘1군에서 좀 뛰다가 2군에 내려가겠지’라고들 얘기했어요. 물론 나중에는 잘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정후처럼 바로 1군에 적응해서 전혀 신인 같지 않은 모습으로 활약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사촌형 윤대영 #[32]
정후는 타고난 놈이에요.
서건창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 그 자체.

정교한 타격과 경쾌한 몸놀림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플레이, 그리고 뛰어난 야구센스 면에서 아버지를 빼다 박은 느낌을 준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에 좌타자라는 점에서 구자욱의 모습이 겹친다. 특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이 배트 컨트롤을 사용하여[33] 안타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도저히 고졸 1년차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 외야수로서 신장도 좋고 어깨도 강하고 스윙 스피드도 빠르다.

발전 속도도 상당하다. 시즌 초에는 안타 생산에만 치중하여 볼넷을 잘 고르려 하지 않고 나오는 타구도 대부분 단타였는데, 타율을 까먹지 않으면서도 장타 비중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으며 타율과 출루율간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소속팀 장정석 감독의 평에 의하면 주력 자체는 썩 빠르지는 않은 모양이지만,[34]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센스 덕에 주루플레이에서도 강점[35]을 보인다. 수비의 경우 원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송구에 대한 부담 때문에[36] 외야수로 보직 이동을 했는데, 경력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감있는 수비를 선보인다.

프로 지명 당시에는 유격수 수비가 부족했지만 타격재능이 뛰어난 엄청난 컨택터로 그해 야수들 중 방망이만 보면 실질적인 타자 넘버 1으로 뽑혔다. 단적으로 청대 국가대표에서 유일하게 한국 선수들 중 베스트 10에 올랐으며 일본전,대만전 포함 타율 6할 이상을 기록했다. 게다가 프로 적응력과 성장 속도가 상식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어 마무리캠프-스프링캠프-시범경기 내내 고졸 1년차 신인으로서 꾸준히 씹어먹는 것도 모잘라 정규시즌 내내 압도적으로 치고나가 신인왕 1순위로 경쟁자가 없었을 정도.

요컨대 재능이 흘러넘치는 천재 스타일. 남들은 매우 힘들게 습득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호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해낸다. 이는 수많은 예를 통해 드러나는데, 프로 세계에서도 이정도는 노력을 한다 해서 아무 선수나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주목을 많이 받아왔는데도 생각보다 긴장도 잘 하지 않아서 본인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에 걸림돌도 없다.

다만 아직 어린 나이 때문인지 키(187cm)에 비해 체중(80kg)이 덜 나가서 호리호리한 체형이며, 따라서 당장 홈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인도 파워 부족을 절감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꾸준히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37] 85~90kg까지 증량을 하는게 목표라고. 아버지에 비해(이종범은 178cm, 72kg) 체격이 확실히 큰 편이다.

4.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7 넥센 144 552 .324 179
(3위)
29 8
(2위)
2 111
(3위)
47 12 60 67 .395 .417 111.3
2018 109 459 .355
(3위)
163 34 2 6 81 57 11 42 58 .412 .477 127.4
2019 키움 140 574 .336
(4위)
193
(2위)
31 10
(1위)
6 91
(4위)
68 13 45 40 .386 .456 135.1
KBO 통산
(3시즌)
393 1585 .338 535 94 20 14 283 172 36 147 165 .397 .449 123.5

5. 기타

  • 그 외에 사람들이 게이[38]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는데, 여기에 대한 대답이 멋진 선배님이죠.(...) 강정호 의문의 1패 당연히 성소수자인 게이에 대해서 물어본 건데, 자신이 오해를 하는 덕분에...관련 글 그 외에 1차지명을 받고 계약금으로 2억을 받았을 당시에, 이종범이 했던 말이 아빠보다 1억 3천 더 받았네...[39] 이쯤되면 집안이 조금 개그끼가 있나보다. 사실 이종범 본인도 근엄하기보단 쾌활하고 말이 많은 편이라 방송 나가서 이런저런 드립도 꽤 쳤다. 다만 방송특유의 과장과 합쳐져 부적절한 발언이 좀 있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 스윙 폼과 궤적이 정말 이쁘다. 오죽하면 SBS에선 그림으로 만들었을 정도.#
  • 선동열이종범을 강제 은퇴시켜 이종범 일가가 서울로 이사하지 않았으면 이정후기아에 입단할 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일부 기아팬들 사이에서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이종범이 은퇴한 2012년 이종범은 만 42세였고 이정후는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무리 이종범의 은퇴가 늦어졌어도 이정후가 고등학교 때는 은퇴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사의 결정적인 원인은 딸의 교육 문제였기 때문에 이 의견은 딱히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먹히는데, 해태 왕조 공신이자 동료이던 이종범을 친정팀에 감독으로 돌아온 선동열이 은퇴를 종용한 것과 기대이하의 성적 등이 겹친 선동열에 대한 괘씸죄와 이정후에 대한 타이거즈 팬덤의 미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로 보인다.
  • 민경훈을 닮은 미남이다. 씨잼도 닮았다. 이미 충만한 스타성에 방점을 찍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돌 대포캠 사진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 신인왕 출신 선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만큼 데뷔 1년차로서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 프로 입단초기 타팀 KIA 타이거즈 레전드 선수였던 아버지 이종범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들 이정후에 대한 과한 애정과 관심이 일부 기아 팬들에게서 표출되고 있다. 기아이종범이 가지는 의미가 워낙 크다보니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넥센에서 데뷔한 선수인데 언젠가는 기아에 와야한다는 둥 듣는 넥센팬들이 기분나쁠 법한 언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기아팬들 사이에서도 올스타 투표 때 이적해와서 잘하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이 도마에 오른 바 있고...[40]어쨌든 이정후 본인은 개의치 않고 인터뷰에서 광주아버지의 고향이고 내 고향은 일본이다.라고 못박는 편이다. 이런 인터뷰와 예전 싸이글 덕에 기아광주를 싫어한다고 몰고가는 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인도 부정한 바 있으니 괜히 오해할 필요가 없다.
  • 위의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보통 운동선수들이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곳, 흔히 엘리트체육인의 경우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하므로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후는 야구를 시작한 광주가 아닌 굳이 출생지이고, 3년 전후로 지내서 기억도 가물가물할 일본 나고야시를 고향으로 들고 있다.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데, 명백히 본인은 특정 지방과 관계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을 긋는 의도가 담겨 있는 무브먼트. 그러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도의 인터뷰도 했던 만큼, 특정 지방이 싫어서라기보다는 특정 지역 팀의 레전드의 아들로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역감정에 휘말리는 것이 싫기에 굳이 대외적으로는 일본을 고향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명인의 아들로서 고충이 많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임과 동시에 유명인으로서 현명한 처사이기도 하다.그냥 별 생각없이 나고야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이라는걸 수도 있고...
  • 과거에 레드벨벳열혈 팬이였다. 입단 당시부터 Rookie를 등장곡으로 썼으며, The Red Summer 발매 이후로는 추세에 맞춰서 타이틀곡인 빨간 맛으로 바꾸었다. 이 밖에도 레드벨벳 SNS 페이지에 꾸준히 좋아요를 누르는 등 상당한 팬심을 보이기도 했다. # 이후 갤럭시아SM 소속 자격으로(큰그림) SM 엔터테인먼트의 할로윈 파티에 초대 받고 레드벨벳 멤버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성덕 등극. 매우 부럽다. 다음 달에는 엑소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2018년 1월 6일 SMTOWN FRIENDS 식구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슬기와 사진을 찍었다. 다만 최근 인터뷰에서 연예인에 관심 없다면서 걸그룹 레드벨벳 슬기와 사진을 찍었냐는 질문에는 "팬이었다. 내 등장곡이 레드벨벳 노래였다. 이제 강렬한 걸로 바꾸고 싶다. 응원가는 괜찮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2018 시즌 개막이후 등장곡을 레드벨벳 노래 대신 다른 노래를 택했다.
  • 2018년부터는 사촌형인 윤대영경찰 야구단 복무를 마치고 1군 무대에 합류할 예정[41]이기 때문에 바람의 친손자 vs 바람의 외손자 형제간의 대결 또한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쇼트트랙도 했었다고. 그 외에도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을 했었다고 한다.[42]
  • 1998년생 동기인 축구선수 이승우와 친구 사이다.[43] 다만 오래 전부터 친한 것은 아니고 둘 다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서로 같은 등번호(17번)를 달고 경기를 뛰었는데 이정후이승우에게 17번을 같이 달고 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 전술한 대로 미남이긴 하지만, 피부가 안 좋은 편이다. 20살이 지났음에도 없어지지 않은 트러블 자국뿐만이 아니라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생겨나는 트러블도 꽤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나이 때문은 아니고, 지성에 민감성이 겹친 형태의 피부로 보인다. 아버지도 지성피부였던걸로 보아 야구재능만이 아니라 안 좋은 부분도 유전되어 버린 개인으로서는 상당히 불행한(...)피부.괜찮아 잘생겼잖아 왜 이런게 유전되서..... 같은 팀 후배 안우진도 피부가 안 좋은 편이다.
  • 2018년이 겨우 입단 2년차 되는 해이지만 팀에 대한 대단한 애정표현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마다 팀에 대한 자랑 멘트는 물론이고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다면 원팀맨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던지, 2018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쉬라고 구단에서 권유했지만 끝끝내 경기장에 나와서 카메라 부스에서라도 끝까지 팀과 함께한다던지...[44]
  • 2019년 프로야구 개막 전 MBC 스포츠매거진에서 중화반점을 열창하는 모습으로 놀림받았다. #
  • 2019 시즌 페넌트레이스 종료 시점 기준으로 퓨처스 리그를 통산 단 3경기를 출장했다. 그것도 프로 2년차인 2018년에 뛰었다. 아시안 게임 병역 특례로 상무에서 활약할 일이 없어졌으므로, 앞으로 기량이 쇠퇴하거나 부상 이후 컨디션 점검 차원이 아니라면 퓨처스 리그에서 보기 힘들 듯하다.

5.1.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파일:이정후&이종범(어린시절).png파일:이정후&이종범(어린시절2).png파일:이정후&이종범(어린시절3).png
어린 시절
파일:이정후&이종범(010620).png파일:이정후&이종범(2009).png
2001년 6월 20일 4살 시절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정규리그 우승했을 때
파일:이정후&이종범(20160705).jpg
2016년 7월 5일 넥센 1차 지명 입단식

이종범은 프로로서,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나 자기 관리에 대해서만 조언할 뿐 야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한다고 한다. 프로와서는 물론 아마추어 시절 때도 단 한 번도 안했다고.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한마디씩 던지는 위치인지라 엇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렇게 해 주는 게 맞긴 한데 이종범 정도 되는 대선수가 그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 기사를 읽은 팬들은 모두 현명하다며 감탄했다. 유일하게 야구에 대해서 조언한 것이라고는 타석만큼은 왼쪽에 서라는 것이었는데, 아버지 이종범이 왼손잡이였음에도 우투좌타의 개념이 없었기에 우투우타가 된 아쉬움을 담아 우투좌타로 정착시키게 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로서 목표는 아버지의 통산 기록을 넘는 것이라고 한다. 반응은 팬이던 아니던 그거 진짜 힘들텐데... 로 단결. 이종범KBO 최강의 1번 타자였던 만큼, 이종범을 넘으려면 15년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줘야 한다.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을 넘으려면 KBO 기록만으로도 통산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 1100득점 730타점 716사사구[45]를 넘어서는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매년 120안타 15홈런 80득점 50타점 50사사구 35도루를 15년 연속 기록하면 아버지 이종범을 넘을 수 있다. 그나마 일본 갔다 온 공백기를 제외한 견적이다. 이종범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기록 중 한 두 종류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성적을 쌓는다고 가정해도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항목이라면 역시 안타와 득점. 교타자라는 스타일과 현 페이스를 유지해 전성기를 무탈히 마친다면 2천 안타 및 1천 5백 득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타점과 사사구는 비슷하거나 약간 넘을 것으로 보이며, 홈런과 도루는… 일단 도루는 구단과 본인도 포기한 듯 하다[46]

단일 시즌 야수 WAR 1, 2위를 다투는 이종범 최전성기 MVP 시즌인 94년 기록은 4할에 육박하는 타율(0.393, 시즌 1위)에 196안타(1위)[47] 출루율(0.452, 시즌 1위), 19홈런(시즌 4위), 113득점(시즌 1위), 84도루(시즌 1위, KBO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이며, 그에 버금 가는 97년에는 157안타(시즌 2위) 30홈런(2위) -30도루(64도루, 시즌 1위), 112득점(시즌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격수로 출전하며 1번 타자로 기록한 것이라 더욱 돋보이는 기록이다.아버지의 후광으로 생긴 깊은 그늘에 빠지지 않도록 넥센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가장 잘했던 시즌인 94년의 절반만 한다고 쳐도 10홈런에 42도루를 해야 한다. 참고로 2016년 손아섭/2016년이 16홈런 42도루다. 반만 했는데 골든글러브를 다툴 수준이다.

2017년 6월 2일자 야덕일지에 의하면, 데뷔 후 지금까지의 페이스가 계속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아버지의 기록을 넘기까지 안타는 10.5년, 홈런은 32.3년, 도루는 67.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신인왕 확정 급의 페이스인데도 이렇다. 야덕일지 KBO 역사를 바꿀 기록의 사나이들

하지만 데뷔 7경기만에 아버지와 나란히 선 기록도 있다. 바로 잠실 야구장에서 한 경기 2홈런 치기인데, 이종범일본에 갔다 온 이후 2004년 8월 28일 LG를 상대로 잠실구장에서 2홈런을 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이정후는 이걸 두산 상대로 해냈다. 첫 홈런은 유희관에게, 두 번째는 김성배한테서 뽑아냈는데, 이 경기에서 무려 5타점을 쓸어남았다.


아버지가 수상하지 못한 신인왕을 고졸 프로 1년차 신분으로 달성했다.[48]
아버지, 저는 지금 고척 스카이돔 라커룸에서 선수단 미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선수셨을 때 늘 이런 준비를 하셨겠죠. 행동 하나 하나에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제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야구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반대하셨죠. 3학년 때까지는 기다려 보라고 시간을 주셨잖아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게 야구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도 하셨고요.

그래도 전 야구가 너무 좋았어요. 아버지가 야구 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었거든요. 사촌형(LG 윤대영·현재 경찰청 소속) 야구하는 데 따라가서 같이 하면 진짜 재미 있었어요. 골프도 해 보고 축구도 해 봤지만 야구만큼 신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야구가 왜 좋은지,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보고 자란 게 야구니까 그렇지 않을까도 싶네요. 야구장에 처음 갔던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요.

아버지께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짐하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왼손타자를 하라”(이정후는 원래 오른손잡이다)고만 조언해 주셨잖아요. 다른 말씀은 전혀 안 해주셨고, 기술 같은 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죠. 감독님, 코치님 지도대로 하라고. 그리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만 하셨죠. 그래도 전 하나도 안 섭섭했어요. 아버지는 그냥 우리 아버지니까…. 나름 많이 참으셨던 것도 알아요. 하긴 제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아버지는 제가 경기에서 못 하거나 잘 하거나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했다”고 칭찬과 격려만 해주셨잖아요. 생각해보니 야구 시작하고 지금껏 아버지께 야구로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죠. 경험상 경기를 망치면 가장 속상한 게 선수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승부 근성은 아버지보다 더 강하다고 늘 주변에 말씀하셨으니까 제 마음을 헤아리셨던 거겠죠.

“잠 많이 자고 밥 많이 먹어라.” 프로에 입단한 뒤 아버지가 유일하게 강조하신 말씀이죠. 144경기를 치르려면 가장 중요한 게 체력 관리, 컨디션 관리라고. 그래서 경기에 져서 분하고 화나고 그래도 잠은 꼭 많이 자려고 해요. 몸무게도 4년 내 90㎏(지금 78~79㎏)까지 늘리려고요. 그래야 타구에 힘이 실릴 테니까요. 지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비시즌에 하루 6끼 먹어야죠. 그러니까 아버지도 고기 많이 사주셔야 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가끔씩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나요. 아버지는 집이 가난해서 ‘헝그리 정신’으로 야구를 했다고. 사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은 그게 가족을 위해 선택한 아버지의 길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만요.

한 달간 1군 경기를 뛰어보니 프로라는 세계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 알게 됐어요. 처음 야구 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것 같고요. 그런데 아세요?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다는 것. 아버지가 프로 유니폼을 입으면서, 그리고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이 와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아버지처럼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사실 아버지의 야구 명성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바람의 손자’가 아닌 ‘야구 선수 이정후’로 한 번 당당히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일희일비도 하지 않으려고요. 그게 아버지를 닮아 같은 길을 가려는 제 나름의 방식입니다. 어머니께는 문자로 가끔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버지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아들 정후 드림
ㅡ 2017 시즌 중반 ‘야구 선수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인터뷰)[49]

2017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사상 최초로 부자 동반 태극 유니폼을 입었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일찍 실현됐다. 정작 야구장 안에서만 아버지를 봤다. 도쿄 숙소 내 방에 단 한 번도 안 오셨고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기뻐했고,# "이번에 한 번 이뤘다. 앞으로 자주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하면서 1루에서 아버지가 내 장비를 받아주실 때 신기했다. 사인을 잘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뒤에 있다고 하셨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하면 아빠인 이종범이 춤을 추고 이정후 본인이 남진둥지를 부른다는 공약을 했는데, 실제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공약을 이행했다. 문제의 부자 공연 영상. 현장에 있는 모든 해설위원들, 양준혁까지 포함해서 빵 터졌다. 여담이지만 이 동영상이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동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많다.

2017년 12월에 열린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양신팀' 소속으로 출전해서 아버지의 팀인 '종범신팀'과 맞붙었다. 이종범이 직접 타석으로, 이정후가 투수로 나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러다 이정후의 투구가 이종범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빈볼이 나와 버렸다. 이 때 이종범의 표정이 볼만하다. 해당 장면

살짝 찡그릴때의 표정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친정 팀이었던 KIA전에서 꽤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50] 본인은 기아에 악감정이 없다는데 워낙 잘치다보니 사실 악감정 있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농담조로 나온다.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2018년에는 7회초 무사 1루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기가 막히게 잡았다 는거.. 팀의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시켰다. 경기후 아버지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해서 분석..

아버지 이종범과 연관 있는 팀을 상대로는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 의문의 효자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종범의 친정팀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는 2시즌 통산 타율 0.396 OPS 0.940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2018년에는 5회 만루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로 1타점, 7회 무사 1루 동점 상황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슈퍼캐치로 잡아낸 후 곧장 2루로 송구해 나지완까지 잡아내며 동점을 허용해 묘해진 경기 분위기를 다시 뒤집는 등 4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펼쳐 KIA 침몰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과거 싸이월드에 했던 말이 다시 한번 재평가를 받으며 갸갤 등지에서는 제발 용서 좀 해달라며 비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아버지가 코치로 있다가 옷을 벗었던 한화 상대로는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2시즌 통산 타율 0.452 OPS 1.099로 KIA전보다 상대 전적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18년 한화 상대 최고 타율+최고 안타를 기록했으며, 아버지의 신인왕을 뺏어간 선수가 소속되 있었고 아버지의 유니폼을 벗겼던 감독이 맡았던 팀인 삼성을 상대로는 타율 0.391 OPS 0.998을 기록했다. 아버지랑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산 상대로도 18시즌 타율 0.393 OPS 1.032을 기록했는데 알고 보니 이종범빵 사건의 주범이라고 누명 썼던 그 경기 날 상대 팀이 두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항목 참조.

동일 종목에서 대를 이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다. 아버지인 이종범2002 부산 AG 야구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땄고, 16년 후 그 아들인 이정후선동열호에 속해서 자카르타 팔렘방 AG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 여기에 이번 대회에서는 아버지인 이종범이 코치로 참가해서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 # 참고로 모자 금메달리스트인 황재균은 어머니가 테니스 선수여서 동일종목까지는 아니었다. 이종범-이정후 부자와 같은 경우가 있다면 여홍철 - 여서정 부녀의 케이스.[51] 아빠는 면제로이드 제작에 도움을 줬고 아들이 배합 마무리를 해서 마셨답니다.[52]

2019년 이종범이 LG 트윈스 2군 코치로 가게 됐을 때 해설자로 버는 돈보다 적을 돈을 주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차명석 단장은 이종범의 아내이자 이정후의 모친에게 연락했는데, 그 대답이 '돈은 우리 정후가 벌어다주니까 그 양반 좀 빨리 제 눈 앞에서 치워주세요.'라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5.2. 과거 논란 및 구설수

아마 시절부터 주목받던 선수라 구설수가 몇 번 있다. 다만 대부분이 프로 데뷔 전이고, 아직 성숙치 못한 시절 때 일이긴 하다. 아버지
따끔하게 혼낸 일화도 있어서 이미 지난 일로 치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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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이종범이 은퇴했을 때 자신의 싸이에 이종범 은퇴시킨 기아 X같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정후가 왜 아버지의 은퇴에 이런 경솔하다면 경솔한 반응을 보였었는지 문단을 참조. 이종범이 은퇴할 당시 98년생 이정후는 중학교 1학년의 어린 학생이었다.[53] 지금은 어린 마음에 감정적인 글을 쓴 걸 후회한다고.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언행은 변하지 않은듯 기나쌩 클럽 회원이라 카더라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스즈키 이치로는 가장 존경하고 따라잡고 싶은 야구선수. 즉 롤모델이다. 관련기사 데뷔 시즌 선택했던 41번도 51번을 선택한 양훈이 있어서 선택한 번호고 2018 시즌 선택한 등번호도 스즈키 이치로의 51번.
  • 아버지에게 최근 쓴소리를 들었다. ‘프로는 관리’ 이종범이 아들 이정후에게 전하는 메시지 2017 시즌에 1군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후 풀타임으로 활약하는데 체력관리와 회복이 중요하다며 잘 먹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고.
  • 2019년 7월 21일 유튜브 LG 트윈스 TV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차명석 단장이 초대되어 전화연결이 되었는데 [54] 넌지시 웃으면서 차명석 단장에게 "저 좀 데려가달라"라고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했다. 바로 뒤에 생방송임을 알아차린 이정후는 농담이었고 자신은 키움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수습하는 말을 했지만 선수팔이로 고통받은 키움 히어로즈 팬들에게는 실망감과 불쾌함이 들만한 내용이었다. 몇 시간후 "내 부모님과 같은 키움 팬들에게 상처드리는 실수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앞으로 언행에 신경써서 조심하겠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라면서 사과하는 기사가 나왔다. # 통화 내용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사과문을 게재하였으나 얼마 안가 다시 삭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논란 당시에는 올스타전 이후 브레이크 기간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여론이 악화되어 여러 커뮤니티에서 팬들간의 논쟁이 일어났으나 후반기가 시작되고는 거의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 사태로 인해 일부 팬들은 이전처럼 이정후를 마냥 팬심으로 바라보게 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 실망과 분노 안타까움이 섞인 감정을 보여주는중이다.[55][56]


[1] 2017년 9월 5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경기에서 심재민의 공을 안타로 만들면서 이루어졌다. 이때 KT 측에서는 넥센에서 제작한 기념문구를 스크린에 띄웠다. 종전 기록은 서용빈의 157안타.[2] 2017년 9월 21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경기에서 달성. 종전 기록은 유지현의 109점.[3]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개명한 이름이다. 원래는 이광현에서 이정후로 개명. 그의 여동생 이름인 이가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현자 돌림이였다. 게다가 실제론 함평 이씨 29대 '載'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항렬을 따라갔으면 원래이름은 이광재?[4] 아버지인 이종범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할 때 태어났다. 동아일보 1998년 8월 21일 <"날 꼭 빼닮았네"...득남 기쁨> 기사 참조.[5] 여담이지만 홍희정 기자가 이정후를 인터뷰 했을 때 이정후 본인이 자신의 고향은 일본이라고 밝혔다. 한편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인터뷰 영상에서 이정후가 입고 있는 언더슈트엔 한화 이글스 로고가 박혀있다. 아마 이종범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에 지급 받은 것을 입은 게 아닌가라고 추정된다.[6] 이 인터뷰로 지역감정을 들먹이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정후 본인은 오히려 지역감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한다. 굳이 일본을 고향으로 지목한 것은 그런 의도가 있다.[7] 29세손. 원래 함평 이씨 29세손의 항렬자는 '재(載)'자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8] 광주 무등중에서 전학.[9] 주 포지션은 중견수이지만 임병욱이 엔트리에 오르면 우익수로 간다. 경기 후반 포지션 변동이 있으면 좌익수 수비도 본다.[10] 연세대학교 재학 중. 각종 콩쿠르, 연주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매가 모두 예체능[11] 이종범의 외조카.[12] 모두가 예상했던 Bad Boy와 달리 본인이 강렬한곡을 원해서 이 곡을 택했다.[13]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 안타안타안타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 이정후!X4[14] 원래 키움 히어로 부분에 힘차게 달려라, 더높이 비상하라라는 가사가 들어갈 예정이였으나 팬들의 반응도 별로였기 때문에 키움 히어로로 바꾼듯[15]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16] 2014년 나성범의 2억 2천만원을 넘은 3년차 최고 연봉이다.[17] 2018시즌까지는 갤럭시아SM 소속이었으나 시즌 후 좋은스포츠로 옮겼다. 갤럭시아SM의 사무국장이었던 임재철이 사업본부장으로 있으며,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인 박성희 교수가 대표로 있다. 박민우, 이민호, 구창모, 송성문과 같은 에이전시다.[18] 야갤 등지에서는 '반투명갑'(...)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종범투명드립과 엮어 '투명갑'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투명한 아버지와 투명하지 않은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므로 반투명이라는 논리이다. 2019시즌에 불꽃 남자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는데 본인은 바람의 손자가 더 좋다고 한다.[19] 물론 사촌형 바람의 외손자 윤대영을 제외하고 말이다.[20] 이름은 정연희. 본래 이름은 정정민이였는데. 현재는 개명했다.[21] 경향신문 1998년 8월 24일 기사 참조. 단, 광현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태명인지 아니면 출생신고 때 정식으로 올렸다가 개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22] 위키백과에는 개명했다고 나와있다.[23] 아버지 이종범은 왼손잡이지만 우투좌타라는 걸 몰라 그대로 우투우타가 되었으나 오른손잡이인 이정후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우투좌타로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근데 이종범 본인이 정말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좌타로 치게 했다고 한다.[24] 당시 이종범이 원치않게 은퇴하던 상황이라 이정후 포함 가족들 표정이 영 좋지 못하다. 아래 기타 항목 참조.[25] 1학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는 1루수, 2학년 야구대제전에서는 중견수로 뛰었다.[26] 또한 추가적인 의견으로, 내야수로서는 다소 큰 체격도 포지션 전환에 한몫할 수 있다. 현재 이정후의 키는 187cm로 유격수를 보기에는 다소 큰 체격이다. 이는 팀 선배인 임병욱이 겪은 상황과 똑같다.[27] 캠프당시 기사 ‘바람의 손자’ 이정후, 당당한 첫 발걸음 떼다[28] 국가대표팀경찰 야구단의 연습 경기에서 나온 이야기였다.[29]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은 A대표팀이 아닌 U-24 대표팀이다.[30] 하지만 최충연이 1년 더 빨리 데뷔한 선배고, 아시안 게임에서 2.2이닝 2피안타 4K로 대표팀 투수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31] 중국3루수가 파울 지역에서 호수비를 했고 3루주자 김현수의 주루 플레이가 좋았다.[32] 그리고 본인은 2019년 2월 말에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 처리되었다.[33] 양준혁KBO역사상 저런 배트컨트롤을 보여준 선수는 자기생각엔 장효조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34] 이미지 때문인지 초 준족의 느낌을 주는 선수지만 실제 스피드는 평균을 조금 넘기는 정도이다.[35] 단 도루 센스는 개판 수준이다.2019년에 성공률이 65%.[36] 송구도 송구지만 큰 키 역시 이유가 되는 듯.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가 키 커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키가 크면 움직임 자체가 상당히 커지기에 움직임이 많은 포지션 특성상 무릎에 피로가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작은 단신 내야수들보다 더 크게 쌓이기 때문에 선수생활을 갉아먹기 때문.[37]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면 먹는건 그대로인데 운동량이 급감해서 체중이 늘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대표적으로 이 분이 분 이 분도 있다 이종범은 은퇴한지 5년여가 지난 2018년 현시점에도 현역시절과 크게 다름없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좀 불긴 불었다[38] 강정호의 하이퍼링크가 아니다![39] 그러나 이걸 개그로만 볼 점이 아닌게 이종범이 프로에 입단할 당시 신인 입단 계약금 7000만원도 상당한 거금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 치면 억대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종범의 소속 구단이 다른 팀보다 자금력이 딸리던 해태 타이거즈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해태 타이거즈서울은 물가가 높으므로 광주 7000만원이 서울 1억보다 낫다고 하며 계약금을 깎았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이종범의 1년 선배인 정민태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할 때 받았던 신인 계약금 1억6000만원이 그 당시 신인 역대 최고 대우였다.다만 그때 당시 OB양준혁을 잡기 위해 백지수표를 제시 했다고 한다. 양준혁은 삼성으로 갔지만...[40] 물론 팬투표는 자기 맘대로 하는 거지만 잘해주는 우리 팀 선수는 이적생이라고 거르고, 상대팀 선수를 레전드 아들이라고 예뻐하는건 팬 입장에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특히 갸갤에서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를 픽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41] 본래 NC 다이노스에서 데뷔했지만 1군 경험은 없었고, 입대를 앞두고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은 채로 군 복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1군 데뷔는 LG 트윈스에서 하게 된다.[42] 이유는 아버지의 유명세에 아들이 힘들까봐 아버지 이종범이 어떻게든 야구만은 시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이종범도 어린 시절 축구에 소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故 하일성 해설위원의 전언으로는 이종범이 축구선수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냥 이 집안은 스포츠 쪽으로는 사기캐 집안[43] 야구선수와 축구선수가 서로 친한 사례는 종종 있다. 신태용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영남대학교 동기 양준혁 해설위원과 절친인 것이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야구선수 친분 관계.[44] 시즌 종료 후에는 엔트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덕아웃에 출입할 수 없다.[45] 고의사구 포함[46] 2019년에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하긴 했지만, 비교대상이 이종범이다 보니...[47] 2014년 서건창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는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다.[48] 이종범이 실력이 안 되어서 신인왕을 못한 게 아니다. 하필이면 그 해 양준혁도 같이 데뷔(…)해서 그렇다. 대신 1993년 한국시리즈 MVP는 이종범이 차지했다. 1993년은 꽤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해다. 신과 신의 전쟁.[49] 출처[50] 2017시즌 .397, 2018시즌 .395, 2019시즌 .354[51] 기계 체조 도마 부문에서 여홍철1994년, 1998년에 금메달을 따고 20년 만에 그 딸이 메달을 땄다. 여담으로 여홍철이종범과도 아는 사이라고 한다.[52] 정작 이종범은 방위병으로 복무했다.[53] KIA 팬들은 이정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항상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것 때문에 더욱 KIA로 오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이종범을 응원하고, 그의 아들 이정후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팬이라면 이런 말은 하지 말도록 하자.[54] 고우석과의 통화 중 이정후가 인사를 하고싶다고 하여 전화를 바꾸어주었다.[55] 근데 이건 일부 팬들의 의견인데다가 실제 방송을 본 사람이면 충분히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차명석이 선수들에게 편하게 대하다보니 나온 농담인 것. 임찬규차명석과의 일화들이 논란이 되지는 않잖아?[56] 일부 팬들의 과민반응인건 명백하나 사실 이정후도 저런 농담은 자제하는 게 맞다. 히어로즈가 영세한 자립구단이라 FA도 제대로 못 잡을 만큼 재정도 썩 넉넉치 않고 과거 트레이드 파동을 자주 겪은 탓에 팬들은 피 같은 선수들을 많이 보내는,(핵심 선수들도 꽤 있었다)슬픈 경험을 한 팬덤이다.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의 팬덤이 응원하는 구단의 핵심 선수라면 그런 발언은 앞으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