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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후의 아마추어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아마추어 시절
이종범의 장남 정후(12)군은 광주 서석초 6학년 야구선수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처럼 등번호 7번을 달고 유격수를 맡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반대로 왼쪽 타석에 들어선다.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서다.
중앙SUNDAY, 2010년 6월 20일[1]
살레시오초등학교 재학 도중 아버지 이종범이 스프링 캠프를 떠났을 때 어머니와 함께 야구부가 있는 서석초등학교에 가서 테스트를 봤고 3학년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아버지의 반대가 없었다면 더 일찍 야구를 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중앙SUNDAY, 2010년 6월 20일[1]
2010년 제7회 KIA 타이거즈기 호남지역 리틀 야구대회에서 6학년이던 이정후는 3회말 구원 등판해 4이닝 동안 4피안타 1탈삼진 2실점을 기록, 결승전 승리 투수가 됐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트로피와 글러브를 받았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 투수와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0.667(12타수 8안타)에 7득점 4타점 3도루를 기록했으며, 투수로서도 나서 3승을 챙기며 만점활약을 펼쳤다. #
무등중학교로 진학한 이정후는 2학년이던 2012년 이종범이 은퇴한 후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가면서 중학교 2학년 말 광주를 떠나 휘문중학교로 전학했다. 이후 휘문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줄곧 주전으로 뛰었으나[2] 유격수 자리에는 1년 선배인 김주성이 있었기에 여러 포지션을 돌았으며 김주성이 졸업한 2016년에야 비로소 주전 유격수가 되었다. 1학년때는 외야수 및 1루수로 뛰었으며 2학년 2학기 부터는 유격수 및 3루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공격력 부분에서는 매우 뛰어난 재목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무등중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타격상을 휩쓸었으며 보통 야구선수들은 고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으나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1학년때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3할 3푼을 기록하는등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다. 이것도 사실 전반기까지 5할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신입생이다보니 체력문제로 3할 3푼까지 떨어졌다. 2학년이던 2015년에는 더욱더 발전해 유신고 홍현빈과 함께 고교야구에서 최고의 1번 타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유신고 홍현빈이 동년배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유급생 출신이었고 서울권에 비해 약체로 평가받던 경기권에서 낸 성적, 게다가 그 성적도 이정후에게 뒤쳐졌던 점, 마지막으로 신체조건이 작았던 것을 포함하면 사실상 고교 포텐셜 포함 최고의 컨택터이자 1번타자로는 이정후가 뽑혔다. 단순히 아버지빨(?)이 아니라 실제로 스카우터들이나 각 구단관계자들도 장타력이 부족할 뿐이지 실질적인 고교 넘버1 타자로 이정후를 뽑았을 정도로 이정후의 타격 실력을 매우 높게 봤다. 이정후의 문제는 다름 아닌 수비. 실력이 쟁쟁한 서울권에서 2학년때 11경기 24안타 14득점 12타점 7도루 타-출장 .500 /.528 /.667을 기록. 2학년 때부터 서울권 1차지명 후보로 쭉 언급이 됐다.
3. 프로 지명
2017 KBO 신인 드래프트 |
넥센 히어로즈에서 1차지명으로 지명된다. 이전부터 넥센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썰이 계속 나돌았다. 기대를 모았던 3학년때는 정작 부진. 이정후 이름값에 맞지 않게 타율 3할 6푼을 기록했지만 무등중때부터 쭉 지켜봤다는 넥센 히어로즈 관계자 및 고형욱 스카우트 팀장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정후 인터뷰를 보면 황금사자기 대회 때 경남고전에서 슬라이딩을 잘못해 손가락이 골절이 되어서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손가락 골절 부상으로 전반기 부진하다가 후반기 4할 5푼을 치면서 휘문고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으며 아래 후술되었으나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6할을 기록했다.
그런데 뛰어난 타격실력에도 불구하고 수비부분에서는 안정성이 가장 필요한 유격수 포지션임에도 풋워크 등 기본적인 스킬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심지어 아버지인 이종범도 이에 대해서 “공격은 좋은데 수비는 한참 멀었다.”라고 언급할 정도. # 본인의 마지막 고교대회였던 2016 봉황대기 결승전에서도 에러를 2개나 기록하면서 수비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어깨는 매우 강해서 프로 입단 후 외야전향도 고려됐다. 넥센 외야수 중에 강견 외야수가 별로 없는 것도 이정후의 경쟁력에 힘을 실어 줄 수가 있다.[3]
KIA 타이거즈 팬들은 이종범이 활동했던 KIA 타이거즈에서 뛰길 바랐으나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휘문고에 다니는터라 서울팀 지명이 예상 되었다. 2학년때부터 계속 넥센 1차지명썰이 나왔었으며 역시 썰대로 2016년 6월 27일 진행된 연고지 출신 신인 1차 지명회의에서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 되었다. 이날 선택받은 1차 지명자 중 유일한 타자 지명자다. 원래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전학한 선수는 1차지명 대상이 아니지만 이정후는 전면 드래프트 시행 시기에 전학했기에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1차 지명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로써 KBO 리그 최초의 부자 1차지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2016년 7월 5일 넥센 1차 지명 입단식 |
7월 5일 넥센과 2억원에 계약하였다.[4] 계약소감으로 "아버지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으며, 이종범은 이제 시작이니 프로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2016년 11월 2일 넥센 마무리 캠프 내야수로 선발되어 가고시마 캠프로 훈련을 하러갔다. 2017 드래프트로는 김혜성과 함께 둘 뿐이다.[5]
[1] #[2] 1학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는 1루수, 2학년 야구대제전에서는 중견수로 뛰었다.[3] 또한 추가적인 의견으로, 내야수로서는 다소 큰 체격도 포지션 전환에 한몫할 수 있다. 현재 이정후의 키는 185cm로 유격수를 보기에는 다소 큰 체격이다. 이는 팀 선배인 임병욱이 겪은 상황과 똑같다.[4] 지금 보면 살짝 적게 준 거 같긴 하지만 지금 물가와 2016년 물가는 살짝 차이가 있고, 이때 당시의 이정후는 주 포지션이 내야수지만 내야수비가 좋지 않고 타격이 좋긴 했지만 3학년 성적이 상대적으로 1,2학년 시절보더 떨어져서 성장이 살짝 더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5] 캠프 당시 관련 기사 ‘바람의 손자’ 이정후, 당당한 첫 발걸음 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