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6 03:16:00

최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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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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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86 KBO 리그 승률왕

OB 베어스 등번호 24번
박종호(1982~1983) 최일언(1984~1989) 김익재(1991~1995)
LG 트윈스 등번호 34번
하기룡(1982~1989) 최일언(1990) 김성준(1991~199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최동원(1989~1990) 최일언(1991) 이광길(199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7번
윤석환(1991) 최일언(1992) 한명호(1993~1995)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75번
결번 최일언(1997~2003) 권명철(2006~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77번
결번 최일언(2006~2011) 조 알바레즈(2012)
NC 다이노스 등번호 78번
팀 창단 최일언(2012~2018) 배민서(2019~)
LG 트윈스 등번호 71번
최경훈(2015~2018) 최일언(2019~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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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 코치 최일언.jpg
LG 트윈스 No.71
최일언(崔一彦 / Choi Yil Yeon)[1]
생년월일 1961년 7월 27일 ([age(1961-07-27)]세)
신체 177cm / 80kg
출신지 일본 야마구치현
학력 하부초 - 하부중 - 시모노세키상고 - 센슈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4년 OB 베어스 해외교포 입단
소속팀 OB 베어스 (1984~1989)
LG 트윈스 (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지도자 OB-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1993~2003)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4~2005)
SK 와이번스 2군 재활코치 (2006~2010)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2)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3~2016)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017)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7~2018)
NC 다이노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8)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9~)

1. 소개2. 유년 시절3. 선수 시절4. 지도자 시절
4.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4.2. LG 트윈스 투수코치
5. 이모저모6. 연도별 성적

1. 소개

전직 KBO 리그 야구선수이자, LG 트윈스의 투수코치.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

2. 유년 시절

일본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고시엔에 서는 것을 목표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정식 야구부가 아닌 동아리 야구부였다는데, 다행히 야구를 잘 했는지 명문 시모노세키상고에 진학하게 됐다. 신입생 360명 중 11등으로 들어갔다 하니 공부도 꽤 잘했던 모양.

고등학교 3학년 때 그토록 바라던 봄 고시엔[2]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대회 개막전이었던 1회전에선 승리를 했으나 2회전에선 그 해 우승팀이었던 미노시마고를 만나 4회에만 실책 4개로 5점을 주면서 결국 탈락하게 된다. 고시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도 여느 탈락한 팀 선수처럼 흙을 퍼갔다. 그 흙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그 해 여름방학 때 봉황대기에서 재일교포 야구팀으로 참가함으로써 처음 대한민국을 찾았다고 한다.

센슈대 4학년 2학기 때 일본프로야구 입단을 목표로 좋은 조건을 받고 사회인야구에 갈 예정이었는데 앞서 말한 봉황대기 때 당시 감독이었던 한재우의 설득으로 KBO 리그OB 베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3. 선수 시절

파일:LG 1990년 팬북.jpg
딱 1시즌 있었던만큼 정말 찾기 힘든 LG 트윈스 선수시절 사진 출처
왼쪽 사진은 김용수, 오른쪽 위 사진은 정삼흠, 그 밑의 사진이 최일언이다.

1984년 김일융을 놓쳐 아쉬움이 컸던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당시 OB 감독이었던 김성근은 재일교포 출신에다가 자신과 같은 일본 사회인야구 출신이었던 최일언을 매우 편애했다. 최일언이 입단했을 때 김성근은 "최일언은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정통파로 피칭을 배운 선수다."라고 치켜 세웠다.# 지금 보면 우습게 들릴 소리지만 이 당시 갓 출범해서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한국 프로야구보다 일본 사회인야구는 훨씬 수준이 높았기에 틀린 말도 아니다.

입단 첫 해부터 9승을 올리며 활약했다. 특히 입단 3년차였던 1986년에는 19승 4패 방어율 1.58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이때 승률 타이틀을 수상하면서 선동열의 4관왕을 저지했다. 또한 단 5명만이 가지고 있는(박철순, 김시진, 선동열, 이상훈, 최일언) 200이닝 이상 피안타율 1할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한다. 또한 시즌 피홈런은 단 2개만을 기록하며, 절정의 구위를 보여 주었다.

당시 해태를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는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등판한 경기에서 13연승을 거두며 해태 킬러로 활약하기도 했다. 거기에 OB에 선동열 킬러 김진욱이 있는 건 덤 그 이유로 해태 타자들이 몸쪽 패스트볼에 약한 타격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몸쪽 패스트볼에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브볼을 던지면 해태 타자들이 맥을 못췄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김광현급. 하지만 해태와의 1987년 2승 1패로 앞서있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연장 끝내기 폭투로 패전했고, 이보다 앞선 1차전에서도 대량 실점하며 패했다. 결국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해태가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도 4연승 싹쓸이로 우승했다.

투구 속도보다는 변화구 구사 능력이 뛰어났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보급되지 않았던 포크볼을 제대로 선보인 KBO 리그 역대 최초의 포크볼러[3]이며, 상당한 각의 슬로우 커브, 체인지업, 싱커도 구사하였다. 전성기였던 1986 시즌에는 원하는 대로 공을 유도할 정도로 싱커 제구가 잘 됐다고 한다. 훗날 SK 와이번스 투수코치 시절 송은범에게 느린 커브를 전수하기도 했다.

당시 좋은 활약을 했는데, 김성근 개인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지도 덕분이라고 칭송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일언 본인의 노력 때문이다. 말만 프로였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라곤 전무했던 초창기 프로야구 현실 속에서, 최일언은 동료였던 장호연과 서로 상대방의 투구 내용을 체크해 주었고,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날에도 덕아웃에서 경기 내용을 1구 1구 체크해가며 타자들을 연구하는 등 KBO 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 노력했던 선수였다. 김성근이 같은 재일교포인 최일언을 매우 아끼고 편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것이 지도로 포장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1989시즌 최일언은 급격한 노쇠화를 겪기 시작했고 시즌이 끝나고 김상호를 상대로 LG 트윈스트레이드되었다. 이것은 LG 트윈스에 있어서 트레이드 잔혹사의 서막이었다. 김상호는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며 OB 베어스 타선에 힘을 불어넣었고[4], 최일언은 단 3승에 그치며 1990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1 시즌을 앞두고 삼성 감독으로 부임해서 각 팀의 베테랑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대거 영입하고 있던 김성근에 의해 삼성으로 영입되었다. 삼성에서 잠시 활약했지만, 199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4. 지도자 시절

일언매직

은퇴 후에는 송재박처럼 사실상 대한민국에 정착한 듯. 친정 팀 OB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박명환, 진필중 등 수많은 유망주들을 키워 내며 유능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다. 2004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으며,[5] 2006년부터 2011년까지 SK 와이번스 코치로 활약하다가 어수선했던 SK의 2011 시즌 종료 후 새로 창단하는 NC 다이노스로 옮겨 초대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4.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파일:external/ncdinos.firstmall.kr/64_1458440845_20112714_profile.jpg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시절.

2012년 야큐 리포트 인터뷰 1부, 2부

2013년 내내 NC의 선발진은 리그 탑급을 달렸으나 방화범만 가득한 불펜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최일언 투수코치를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 2014년부터는 불펜 방화범들을 어떻게 소방수로 키워내느냐에 따라 그의 역량이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NC 불펜진은 2014년은 김진성, 원종현, 손정욱을, 2015년은 임창민, 임정호, 최금강, 2016년 박민석, 박준영, 2017년 윤수호 등 새로운 자원들을 계속 발굴해내면서 리그 최상급의 불펜진을 보여주고 있다. NC가 단시간에 강팀으로 성장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불펜진인 이상 이쯤 되면 투수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데 동의할 만 하다.

2017 시즌부터는 투수코치에서 수석코치로 보직을 변경한다. 하지만 국내 선발진들의 큰 부진 탓인지 시즌이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5월 19일에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앞으로 장현식, 구창모 등 젊은 선발 유망주들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본인과 팀 투수진의 운명이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재학, 구창모, 최금강 등이 시즌 초에 비해 좋은 활약을 선보였으며 임시 선발이었던 이형범까지 생애 첫 선발승과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등 답이 없던 국내 선발진들을 어느 정도 살렸다! 이에 엔갤에서는 종신투수코치를 해야한다고 찬양하고 있다.

6월 11일 경기를 앞두고 NC의 현재 투수진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이재학이민호에게 아쉬움이 크다고 한다.

구종 전수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등등) 이재우에게 포크볼을 전수한 장본인이며, 김진성도 그에게 포크볼을 배웠다. 이혜천에게는 투심도 전수했다. 왕웨이중에게는 커터도 전수했다. 또한 2017시즌에 데뷔 후 최저 성적에 그친 이재학을 다시 살리고 유원상, 강윤구 등 이적생들이 140km/h 중반의 구속을 회복하는 것 역시 최일언의 코칭 덕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불펜진의 혹사 문제에서는 투수코치로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실제보다 과대평가를 받는다는 견해도 있다. 투수 개개인에 대한 지도 능력만큼은 좋지만, 그렇게 키워 낸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기 때문. 물론 김경문 감독의 의지를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최소 방관했다는 소리이므로 그건 그거대로 문제. 밑에 나와 있는 인터뷰에 따르면 3일 연속 등판을 막는 등 나름대로 투수 관리를 했기 때문에 혹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당연하겠지만 단지 연투만 막았다고 혹사가 아닐 수는 없다. 등판 횟수나 이닝, 투구수만 보아도 NC 불펜들이 여러모로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은 야구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기 때문이다. 결국 김경문 감독이나 최일언 코치 둘 다 구시대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팀을 운용했다는 것은 굉장히 아쉽다고 볼 수 있다.

결국 2018년 6월 4일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후 코치진 개편으로 잔류군인 D팀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겼다.

D팀 코치로 옮긴 이후 김종문 단장대행에게 계속해서 사의를 밝혔지만 9월 20일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대답을 받았고,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시즌 후 사의를 수리 받고(기사 상은 재계약 불가 통보) 팀을 떠나게 되었다. 사임 이후 인터뷰에서 2018년 팀 케미스트리 붕괴, 두 외국인 투수의 실패, 투수 혹사 논란, NC 선수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남들 놀 때 쉬고 남들 훈련할 때 훈련하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NC 선수들이 오재원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열정과 노력, 욕심을 배워야 한다는 쓴소리도 했다. 다만 3연투만 없다면 일주일 4번 등판은 혹사가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며 김경문 감독을 옹호한 것 때문에 많은 팬들은 아쉬우면서도 떠날 사람 잘 떠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4.2. LG 트윈스 투수코치


2018년 10월 24일 이종범, 김재걸, 김호 코치와 함께 LG 트윈스의 코치진에 합류하여, 1990년 선수로 LG에서 활동한 지 29년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LG 팬들은 일언매직의 힘을 기대하며 강상수가 전 투수들을 138km 클럽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멸망시킨 투수진을 살려주길 바라고 있다.

2018년 12월 5일 1군 메인 투수코치로 확정되었다. 먼저 진해수를 1:1로 맡아 부활시켜보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감은 있지만 최소한 말도 안되는 좌우놀이는 안 보게 되고 불펜진의 짜임새가 살아나 전임자에 비하면 호평이 나오고 있다.

작년 끔찍한 투구 내용을 보인 이우찬의 제구를 잡아 4월 13일 10.1이닝 무실점 피안타율 .034라는 활약을 하게하였다.

작년에 평균자책점 5.29로 6등인 팀을 4월 17일 현재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하면서 2위인 두산 베어스의 3.02와는 0.83으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강상수를 영입한 KIA 타이거즈는 5.35로 10개구단중 9위를 기록중이다. 평균자책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투수코치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투수들이 많이 좋아졌다.

5월 들어서 타선들이 죄다 못치면서 오로지 투수진의 힘으로만 승리를 챙기고 있다. 특히 구원 WAR은 5월 12일 기준으로 4.83으로 압도적이 1위이며 구원 ERA도 2.59로 압도적인 1위이다.

그리고 불펜이던 이우찬을 선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LG의 승리 요정이 되어, 6월 15일 기준 현재 4승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이우찬이 선발인 그 날 경기는 항상 승리하여 일언 매직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5. 이모저모

OB/두산 시절 김인식 감독 휘하에서 투수코치를 하던 당시에 김인식 감독이 투수를 교체해야겠다 싶어서 "일언아~"하고 최일언 코치를 불렀는데 최일언 코치는 가만히 있고 선수들만 눈치보면서 웅성웅성거리기만 하길래 좀더 큰 목소리로 "일언아!"하고 외쳤더니 "일어나"로 알아들은 선수들이 우르르 덕아웃에서 일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스포츠 조선에서 김인식 감독 관련 에피소드들을 소개한 기사에 실릴 정도.

LG 트윈스에서 1990시즌 한 시즌만 뛰고 고작 3승밖에 못했지만 199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서 반지 하나는 타갔다. 본인 선수 커리어에서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6.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4 OB 37 167⅔ 9 6 3 0.600 2.84 145 6 73 86 60 53 1.25
1985 38 144⅔ 10 14 3 0.417 2.43
(5위)
119 4 80
(5위)
88 57 39 1.34
1986 33 221⅔ 19
(2위)
4 2 0.826
(1위)
1.58
(3위)
140 2 107
(2위)
101 49 39 1.09
1987 24 154⅔ 14
(4위)
8 1 0.636
(5위)
2.56 129 4 76 70 52 44 1.29
1988 20 115⅔ 6 4 0 0.600 2.18
(3위)
100 0[6] 53 50 33 28 1.28
1989 28 136⅓ 7 12 2 0.358 4.29 132 4 84 62 75 65 1.5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LG 15 48⅔ 3 2 0 0.600 4.62 49 6 36 24 26 25 1.6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1 삼성 32 96⅔ 9 6 0 0.600 4.47 100 4 56 56 54 48 1.58
1992 13 29⅓ 1 1 0 0.500 4.60 28 4 16 19 16 15 1.47
KBO 통산
(9시즌)
240 1115⅓ 78 57 11 0.578 2.87 942 34[7] 581 556 422 356 1.33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4년 2완투 0완봉
1985년 2완투 0완봉
1986년 12완투
(공동 4위)
6완봉
(2위)
1987년 9완투 2완봉
1988년 2완투 0완봉
1989년 3완투 1완봉
1990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31완투 9완봉


[1] 재일교포라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란 일본식 이름이 있다.[2] 선발고교야구대회(센바츠 대회)라고 한다.[3] 앞서 말한 고등학교 3학년 때 포크볼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 전이었던 고시엔 때는 커브를 주로 던졌다고.[4]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홈런왕, MVP,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이는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배출한 최초로 배출한 홈런왕이었다.[5] 이 때, 문동환이 그에게 체인지업을 배워, 에이스로 거듭났다.[6] 유일한 규정이닝 무피홈런기록이다.[7] 통산 규정이닝(1000이닝) 최소 피홈런 2위. 1위는 선동열28피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