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2 17:44:56

다니엘 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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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오스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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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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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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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7 KBO 리그 다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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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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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리그 탈삼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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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리그 승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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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오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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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59번
가내영(2001) 리오스(2002~2005) 그레이싱어(2005~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45번
척 스미스(2005) 리오스(2005~2006) 구자운(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박명환(1998~2006) 리오스(2007) 김명제(2008~2010)
}}} ||
파일:기아리오스.jpg
공동 다승왕을 기록했던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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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최전성기인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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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빨다 걸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이름 다니엘 리오스 (DaniEl Rios)
생년월일 1972년 11월 11일 ([age(1972-11-11)]세)
국적 미국
출신지 스페인 마드리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7)
캔자스시티 로열즈(1998 ~ 1999)
KIA 타이거즈(2002 ~ 2005)
두산 베어스(2005 ~ 2007)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2008)

1. 소개2. 커리어
2.1. 메이저 리그 시절2.2. KIA 타이거즈 시절2.3. 두산 베어스 시절2.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3. 약물 논란4. 이모저모5. 연도별 기록

1. 소개

파일:홈다니.jpg 파일:원정다니.jpg
두산 베어스, 그리고 리그 최고 에이스로 군림했던 시절

미국 출신 전 두산 베어스, 야쿠르트 스왈로즈 투수이자 금지 약물 복용 선수이다.

2. 커리어

한국프로야구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에서 선발 투수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고, 적응력이나 친화력도 뛰어나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KBO 1군리그 최초의 9구 3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소유하고 있기도 했다.[1][2]하지만 일본 진출 이후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약쟁이로 전락했다.[3]

2.1. 메이저 리그 시절

1997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 2경기를 뛰었으나 평균자책점 19.29로 크게 부진했다.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즈로 옮겼으나 큰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사실, 리오스는 원래 삼성에 입단할 뻔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여러 의미에서 약대급 배터리가 되었을 듯 하다 먼저 접촉한 쪽은 KIA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였는데, 2001년 초 해태는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당시 자매구단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외국인 선수는 무조건 보스턴이 추천해주는 선수만 받는다" 라는 조항과 리오스 쪽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하며 협상이 결렬되었고, 이후 시즌 중 팀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며 KIA로 팀명을 변경한 뒤 용병타자였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가 부진의 기미를 보이자 그의 대체 용병으로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리오스가 방광염 증세를 보이며 한국 입국을 거절함으로써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 말았다. 방광염 증세가 완쾌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결국 2002년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와 공식적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

KIA 입단 후에는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원체 선발 타입인 선수인지라 갑자기 맡게 된 마무리 보직 적응에는 시간이 걸렸다. 초반엔 더블헤더 연속 경기 세이브를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5월 이후로는 세이브 상황에서 종종 불show를 연출하며 김성한 감독 속을 까맣게 태웠고, 한 때 9시의 공포라는 별명으로 통할만큼 불안했던 것. 이후 최상덕의 부상을 틈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첫 해인 2002년 14승을 거두며 활약했다. 2003년에는 살짝 부진이 겹치며 10승에 그쳤다. 그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란이 잠시 있었으나 조금 삭감된 연봉에 재계약하며 2004년에도 KIA에서 뛰게 되었고 결국 그 해 17승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해낸다. 당시 삼성의 배영수, 두산의 게리 레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하지만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선 부진하며 팀 패배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05년에는 전년도와 달리 맞아나가는 빈도도 늘었고[4] 하필이면 팀 역시 부상선수가 속출하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꼴찌를 달리는 상황까지 겹치며 부진에 빠졌다.

그것을 빌미삼아 KIA에서는 리오스를 퇴출하려 했으나[5], 팬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결국 트레이드로 방향을 선회, 2005시즌 도중 두산의 좌완 유망주 전병두와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KIA의 생각은 뛰어난 유망주인 전병두를 받아오고 비슷한 급인 용병투수를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이었으며 당시 단장이던 정재공의 인터뷰에서도 '리오스 ↔ 전병두'가 아닌, 리오스 ↔ 전병두 + 그레이싱어라고 밝혔다. 단편적으로 볼 때 그레이싱어가 좋은 활약을 해줬고 전병두도 트레이드되자마자 불펜에서 그럭저럭 제몫을 하고 특유의 구위를 바탕으로 WBC 대표팀에 뽑혀 병역특례까지 받았으나,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병두는 SK로 조공트레이드되고서 재능을 꽃피웠다.(…)[6]

2.3.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60071022220846.jpg

한 마디로 리오스의 두산 시절은 본인 최전성기일 뿐만 아니라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우뚝선 시절이였다.

상술했다시피 2005년 시즌 도중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는데,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게 됨과 동시에 탄탄한 두산의 수비력 버프를 받은 덕분인지 후반기에만 9승을 올리며 활약한다.

2006년에도 최다이닝 1위에 오르며 역시 잘 던졌으나, 하필이면 팀의 간판 타자 김동주가 WBC에 참가한 후 어깨 부상을 입어 시즌을 절반 넘게 날려먹은 탓에 두점베어스로 전락하며 리오스도 득점 지원이 줄어들어 12승 16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2007시즌,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을 작성했다. 234⅔이닝 22승, 평균자책점 2.07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수립한 것.[7] 그 이전에,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9구 3삼진이라는, 그야말로 역사를 쓴 적도 있었다. 2007년 6월 16일 문학 SK전 8회말 이진영-박경완-최정을 모두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KBO 1군리그 역사의 대사건이다.

리오스의 2007년 공헌은 특히 9월에 엄청난 연투로 두산베어스의 2007년 2위 사수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아무리 외국인 용병 선수이지만 저렇게 써도 되는 건지, 이닝이팅 능력이 좋다 해도 저렇게 노예마냥 던질 수 있는 건지 많은 말들이 있었고, 특히 작두탄 김성근 감독이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던졌을 정도였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1차전에서는 4피안타 1볼넷 완봉승을 거두어 두산 베어스가 기세를 잡는데 큰 공헌을 했다. 여기서 김경문감독이 리오스를 4일만에(그러니까 3일 휴식) 4차전에 등판시키는 강수를 썼다가 5이닝 3실점 9피안타 1볼넷 2피홈런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그리고 상대 선발은 시즌 초반에 입을 잘못 놀린 안산공고 출신의 한 젊은 좌완 영건이었는데, 7과 1/3이닝 동안 단 한개의 피안타만 내주며 두산 타선을 쇠사슬로 묶어버렸으며 심지어 6회 1아웃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다. 결국 여기서 흐름이 뒤집힌 두산은 내리 깨지며 준우승에 그쳤다.[8]

파일:PP07103100010.jpg

이후 2007년 시즌 MVP가 되었고, 그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8시즌 전에 NPB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2.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2008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 한국에서 김성근,[9]김경문 감독에게 계속 지적받던 폼이 일본에서는 보크로 판정되어 투구폼을 수정하는 사건이 있었고[10] 이후 평균자책 5점대에 육박하며 개털리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08년 6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도핑 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계 양성 반응이 나왔다.

리오스는 이는 2007년 11월 치료를 받으며 주사한 것으로 이후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NPB에서는 '6개월 동안이나 약품이 체내에 잔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스테로이드는 복용 후 1년 정도 양성 반응이 나오므로[11] 한국에서도 약물 복용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에서의 오버페이스 → 일본에서의 급락한 성적으로 인해 리오스 약물 복용설에 박차를 가한다. 박동희의 기사에 따르면 약물과 관련해 상당한 지식을 보였다고 하며,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리오스가 한국에서도 약물을 복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편 KBO에서는 리오스를 대상으로 도핑 테스트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리오스는 1년간 출장정지를 받은 이후 바로 방출되었다. 2007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운동선수는 불과 6개월만에 최악의 오명과 함께 몰락했다. 선수로서의 모든 영예가 약물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사 자기 자신을 더럽혔다. 예전에는 한국 선수들에게 '약물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는데…. 나만 해서 좋은 성적 거둬야 되니 너네는 하지 마라 또한 KBO의 도핑 테스트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11경기 11선발 2승 7패 ERA 5.46.

3. 약물 논란

약물만 아니었으면 레전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 투수들의 시대가 된 2000년대 후반을 장식한 명투수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인다. 자기관리나 사생활 등에서도 모범적이었다. 특히 지금은 없어진 잡지인 스포츠 2.0에서 박동희 기자와 한 인터뷰는 개념 중의 개념 인터뷰. 그래서 한때는 한국형 용병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인간성과 적응력도 뛰어나서 KIA 시절에는 전라도 용병 이오수라는 한국식 별명으로 불렸으며[12] 한국식으로 동료나 구단 스탭 경조사도 잘 챙겨 스포츠신문의 미담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약물파동으로 날라갔다.

다만 리오스가 비판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비판이 리오스 한 명에게만 집중되는 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의 진갑용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박명환은 2006년 WBC에서 도핑 테스트에 걸렸지만 여론에서 별로 문제제기를 받지 못했다. 정황상 약물을 한 게 확실해 보이니 리오스의 기록이 흑역사로 취급받아야 한다면 약을 한 게 확실한 진갑용이나 박명환 역시 똑같이 대우받아야 하는데 이 둘은 그런 게 거의 없다. 특히 진갑용은 자팀 삼성팬들의 어마어마한 쉴드를 등에 업고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13] 똑같이 해외리그에서 약물복용이 적발된 펠릭스 호세덕 클락에 비해서도 까이는 정도가 심한 편이긴 한데[14] 이쪽은 덜 알려진 탓이 크다.

하지만 리오스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였고, 약물 의혹을 받을 당시 다승왕과 MVP를 차지했던 선수다. 때문에 자신이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그에 따른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외국인선수라서 적극적으로 언론에 해명하기도 어렵고 야구 내부인사들이 딱히 비호해줄 건덕지가 없어서 직접 결백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4. 이모저모

스페인-쿠바계 미국인이다. 본가는 플로리다에 있는데, 아버지는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동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카스트로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정세가 불안정한 쿠바대신에 미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강귀태에게 도마라는 호를 붙여주게 된 선수. 이유는 리오스가 프로야구 첫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려는 찰나, 안타를 쳐냄으로서 퍼펙트 게임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리오스가 일본에서 약물 때문에 퇴출된 기사가 알려지면서, 강귀태는 '약쟁이로부터 굴욕을 당할뻔한 KBO 리그를 구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인 '도마'가 붙여졌다.

2009년 12월에는 한화 데이비스와 함께 대만리그 트라이아웃을 받았으나 가정 문제를 이유로 중도에 귀국하였고 이 이후로 독립리그 쪽에서도 활동하지 않는 것을 보아 야구계를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그 MVP가 일본으로 가자마자 약물로 인해 아웃되는 일이 벌어지고, 선수 본인은 부인하지만 정황상 한국시절에도 약물을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지자 KBO는 비용상 문제[15]로 거의 시행하지 않았던 도핑검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는지 스페인어, 한국어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국 선수들과 한국말로 대화하곤 했다고.

두산 베어스에서 1년 더 있었다면 진정한 약대급 배터리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5.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 WHIP
2002 KIA 54 157⅔ 14
(5위)
5 13 1 0.737
(4위)
3.14
(4위)
140 14 68 102 59 55 1.17
2003 30 188⅔
(2위)
10 13
(3위)
0 0 0.435 3.82 186 19 90 121
(4위)
93 80 1.31
2004 32 222⅔
(1위)
17
(1위)
8 0 0 0.680 2.87
(4위)
209 10 95 145
(2위)
75 71 1.25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 WHIP
2005 KIA / 두산 32 205⅓
(1위)
15
(3위)
12
(1위)
0 0 0.556 3.51 203 20 74 147
(1위)
88 80 1.27
2006 두산 34 233
(1위)
12 16
(1위)
0 0 0.429 2.90 204 14 64 145
(3위)
86 75 1.09
(4위)
2007 33 234⅔
(1위)
22
(1위)
5 0 0 0.815
(1위)
2.07
(1위)
191 8 74 147
(2위)
69 54 1.06
(1위)
KBO 통산
(6시즌)
215 1242 90 59 13 1 0.604 3.01 1133 85 465 807 470 415 1.19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2 3완투
(3위)
0완봉
2003 2완투
(4위)
0완봉
2004 3완투
(3위)
2완봉
(1위)
2005 3완투
(2위)
0완봉
2006 4완투
(2위)
1완봉
(3위)
2007 6완투
(1위)
4완봉
(1위)
통산 21완투 7완봉

4년 연속으로 소화이닝 1위를 기록하고, 6년 평균 207이닝을 소화하는 등 최고의 이닝이팅 능력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다 필요없고 약빨 참고로, 불명예 기록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6년 연속 15사구(死球) 이상을 기록하며 6년 연속 몸에 맞는 볼 1위 기록도 갖고 있다(...).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투수 용병으로 남아있다.[16]


[1] 이 9구 3삼진은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이 세워서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에선 2014년 시즌까지도 한국프로야구 1군리그에서 단 4번 나왔다. 140년 MLB 역사에서도 단 40여 회밖에 나오지 않았다.[2] 윤성환이 12구 4삼진으로 이 기록은 과거형이다.[3] 일단 한국에서 기록한 성적이 모두 약빨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건 사실이다.[4] 더 정확히는 그냥 한없이 꼬이면서 무너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호세 카페얀의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2005 시즌 첫 등판에서 9이닝 1실점 완투패를 기록하고 시작했다.(…). 현재, 2010년대 프로야구를 보는 팬들은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한,미,일 야구가 팀 내 에이스가 저것 밖에 못하냐? 라고 할 정도로 보수적이였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2005년도 기아는 꼴찌를 하였고 투고타저가 시작 된 시점[5] 2004년까지 팀 감독이었던 김성한 전 감독과 특히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6] 다만 2009년~2011년 김성근 감독의 미칠듯한 혹사로 인해 어깨 수술을 받은 뒤 5년 동안이나 재활에 매달렸으나 끝내 복귀를 못하고 2016 시즌을 끝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만다.[7] 특히 10월 3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이후 도마 강귀태가 안타를 쳐내며 퍼펙트 게임을 세우는 데에는 실패했다.[8] 전날 3차전 벤치클리어때 리오스의 과도한 흥분과 헤드락을 당한 김동주등... 전체적인 두산 선수들의 기세가 완전히 가라 앉았고, 경기도 패배했다. 4차전은 누가 등판했건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일지도 모른다.[9] 당시 여론은 경쟁팀 에이스를 견제하기위한 언플이라는 시선이있었다.[10] MLB에서도 베테랑 소리 듣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투구폼이 보크로 지적받는 것을 보면 보크에 관한 룰은 일종의 로컬룰처럼 리그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 다만 이 주장은 NPB의 입장과 상충된다. 6개월 전에 주사한 약물이 검출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복용 후 1년 정도 양성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는 주장인데, 근육강화제 중 하나로 쓰이는 난드롤론의 경우 반감기가 약 11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12] 당시에 리오스의 트레이드에 관해 KIA팬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고 한 동안 트레이드로 온 전병두를 배척하기도 했다. 특히 주전포수인 김상훈하고 친해서 이적 직전 경기에서 교체되자마자 바로 김상훈에게 포옹을 했을 정도였다.[13] 다만 진갑용이 은퇴한 2015년을 기점으로 최진행이나 김재환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약물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어차피 더 이상 팀 전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서 그런진 몰라도 쉴드가 소멸하고 오히려 팬들이 은퇴식을 반대하여 막아냈지만, 당장 현역으로 활동하던 2013년까지만 하더라도 삼성팬들의 쉴드가 어마어마했으며 그걸 등에 업고 거의 까이지 않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14] 호세는 약물 적발 후에 시구도 했다.[15] 흔히 도핑검사를 선수협에서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 MLB 선수노조의 입장이며(미첼 리포트에도 관련해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한국 선수협은 예전부터 약물 문제에 적극적이고 전수검사에도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전수검사는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일본리그 또한 마찬가지이다.[16] 굳이 용병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6년 동안 90승, 1200이닝을 투구하는 등 절대 모자라지 않는 기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