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19 13:09:52

트로이 닐


파일:external/special.buffaloes.co.jp/img_photoplayer08.jpg
이름 트로이 니일 (Troy Lee Neel)
생년월일 1965년 9월 14일
국적 미국
출신지 텍사스 주 프리포트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86년 드래프트 9라운드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92-1994)
오릭스 블루웨이브(1995-2000)
두산 베어스(2001)

파일:nipponseriesflag2000.png 1996년 일본시리즈 최고 수훈 선수(MVP)
1995년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스왈로즈)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7년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1996년 퍼시픽리그 최다 홈런
1995년
코쿠보 히로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8홈런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32홈런
1997년
나이젤 윌슨
(닛폰햄 파이터즈)
37홈런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1996년 퍼시픽리그 최다 타점
1995년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타나카 유키오
(닛폰햄 파이터즈)
하츠시바 키요시
(치바 롯데 마린즈)
80타점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111타점
1997년
코쿠보 히로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14타점

1. 개요2. 메이저리그 시절3. 일본 프로야구 시절4. 한국 프로야구 시절5. 그 외

1. 개요

트로이 니일은 미국의 우투좌타 내야수이다.2001년 두산에서 타격강화를 목적으로 영입했다.

2. 메이저리그 시절

원래 농구 선수였으나 20살때 야구에 두각을 나타내며 야구를 시작했다.

199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으며 3시즌간 230경기를 뛰면서 0.280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특히 '93년에는 19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나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그래도 3시즌간 OPS 0.8을 넘게 기록한, 백업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백업이었다.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그뒤 '95년 오릭스로 가게되는데 거기서 엄청난 전성기를 맞게된다. 6시즌 동안 614경기에 출전하며 136홈런 435타점을 기록했고 '96시즌에는 홈런-타점 2관왕에 올랐다. 같은 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1]를 수상했다.

하지만 조금씩 성적이 하락했으며 2000년 8월 7홈런을 쳤지만 끝내 퇴출되고 만다.

4. 한국 프로야구 시절

그러던 중 타격강화를 원하던 두산에서 그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돈보다 야구를 사랑해서 한국에 왔다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펼쳤다(...) 뭐 사실 맞는 말인 것이 일본시절 큰 활약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아 이미 큰 부자였기에 2001년 당시 한국같은 별볼일없는 리그에서 여태까지 받던 금액과 비교하면 푼돈을 받으면서 굳이 힘들게 뛰느니 그냥 은퇴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돈보다는 진짜 야구가 좋아서 온 게 맞긴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테스트차 들어왔을때 타이론 우즈가 그를 꽤나 경계했다고 한다. 우즈는 아무도 모르는 그린 머레이라는 선수를 칭찬하며 구단에 추천하기도 했다.하지만 두산은 닐을 영입하게 된다.

닐은 감독에게 잘보이기 위해 가끔씩 공을 주었는데 그것이 김인식감독에게는 마음에 들었는지 닐을 엄청 좋아하게 된다. 거기에다 그는 덕아웃에서 나 정도 선수는 해도된다. 는 말을 남기며 덕아웃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그는 뉴질랜드에 리조트를 소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갑부였었다. 말 그대로 고급용병이었던 것.

그의 기량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범경기에서 18안타 2홈런 11타점으로 수위타자에 오르며 그의 기량논쟁은 끝났다. 개막전에서 몸맞는볼로 부상을 당해 10일 동안 1군에 제외되었던 그는 돌아오자마자 삼성전에 마수걸이 홈런을 쳐냈다.[2]

하지만 그뒤로 엄청나게 부진했으며 두산이 우동수 트리오가 해체되자 구상했던 우동닐 트리오는[3] 닐 혼자 나가리가 되었다. 성적면으로는 부진하긴 했지만 고작 17경기 치른 상태라 반등을 기다려볼 수도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그를 퇴출시키고 만다.

당시 두산의 용병투수였던 마이크 파머가 퇴출되자 송별식으로 둘이서 술집에 술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한국인들과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된다. 한 한국인 여성이 닐의 엉덩이를 만지자 이에 닐의 부인은 여성에게 술병을 던졌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게 된것이다. 닐은 당구큐대를 휘둘렀으며 결국 경찰서로 가게된다. 그리고 이건 용병 1호 사건으로 기록에 남는다(…).

두산 입장에서는 퇴출이 확정된 파머는 그렇다쳐도 성적도 좋지못했던 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골치를 썩어야 했는데, 결국 퇴출되었다. 나중에 그는 구치소에서 신었던 고무신이 마음에 들어서 가져갔다고 한다(…).

5. 그 외

일본에 있었을 때 많은 싸움을 일으켰으며 심판판정에 많은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경기 출장에도 의욕적이어서 휴식을 줘도 나간다고 했다고. 다혈질적이고 소위 말하는 승부욕이 강했던 타입.

은퇴후 바누아투의 에리코아 섬을 임대계약으로 구매했다.그리고 그곳에서 리조트 사업을 했다. 금수저는 뭘해도 다르다.

2005년 양육비 지급을 피해 국외 도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2009년 샌안토니오 지방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77만 9천달러를 지급하라고 했으나 2010년 11만 6천만달러를 주는것으로 합의했다.

대단한 일빠였으며 '99년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홈구장인 고베 스타디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실패한 메이저리거였지만 일본에서는 홈런왕까지 먹고 거액의 연봉과 큰 인기를 누리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으니 일본에 대해 호감이 안 생길 수가 없었을 것.


[1] 2015년 일본시리즈에서 이대호가 활약하며, 닐 이후 19년만의 외국인 일본시리즈 MVP가 되었다.[2] 삼성의 감독이었던 김응룡감독은 어디서 저렇게 고급용병을 데리고 왔냐고 말하기도 했다.[3] 원래 그의 이름은 닐인데 두산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니일이라고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