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1-27 01:37:59

맷 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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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Matthew Randel (매튜 랜들)
생년월일 1977년 2월 15일
출신지 미국 워싱턴 주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1]
신체조건 183cm, 82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입단
소속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1999~2000)
요미우리 자이언츠(2003~2004)
두산 베어스(2005~2008)
두산 베어스 등번호 30번
이경필(1998~2004) 맷 랜들(2005~2009) 후안 세데뇨(2009)


1. 소개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이전2.2. 일본프로야구2.3. 두산 베어스 시절
3. 트리비아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두산 베어스 외국인 투수.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이전

리지필드고교 졸업 후 LA 다저스에 84라운드로 지명받았으나 입단하지 않았고, 야구 장학생으로 루이스앤클라크 대학에 진학했으나 2학년을 마치고 중퇴했다. 이후 피자집 아르바이트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199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거쳐 연봉 480만엔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했다.

2.2. 일본프로야구

1999년에는 줄곧 2군에 머물렀고 이듬해인 2000년 7월 19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에 구원 등판, ⅓이닝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1군 데뷔전을 마친다. 하지만 호크스에서의 1군 등판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2000시즌이 끝난 후 랜들은 일본을 떠난다. 이후 다시 1년 가량을 쉬다가, 이후 2002년 독립리그를 거쳐 그 해 말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일본 야구에 재도전하게 된다.

2003년은 2군에서 출발했으나 다른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을 틈타 1군에 승격, 4월 24일 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1군무대 첫 승을 거둔다. 이후 등판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곧 2군으로 내려갔으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잔류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개막 1군 엔트리에 합류했고, 중간계투와 임시 선발을 오가며 전반기에만 3승을 거뒀으나 팔꿈치 부상이 오면서 시즌 아웃, 결국 요미우리를 떠나게 된다.

일본에서 거둔 성적은 28경기 4승 3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76.

2.3.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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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팀만을 바라보며 던졌던 두산 베어스 시절

더스틴 니퍼트 이전의 두산 베어스에서 가장 베어스만을 바라보던 헌신적이었던 외국인 선수
리오스와 함께 당대 리그 최고의 외인 원투펀치

이후 랜들은 요미우리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게리 레스의 추천으로 한국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두산 팬들은 메이저리그는 커녕 마이너리그 경험도 전무하고 일본에서의 성적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데다 팔꿈치 부상 경력까지 있는 랜들보다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베테랑 투수 척 스미스 쪽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랜들은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고, 이후에도 안정된 피칭을 보여주며 선발진을 이끌게 된다. 한편 두산은 4승 6패 ERA 4.55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척 스미스를 7월 4일부로 웨이버 공시하고, 대체 외국인 선수로 KIA 타이거즈다니엘 리오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해온다. KIA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리오스는 두산에서 완벽히 부활했고, 두산은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다.

랜들은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의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이후 팀은 한화를 스윕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랜들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승패없이 물러났고, 결국 두산은 4전 전패로 스윕당하며 준우승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2006시즌, 랜들은 두 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무려 16승을 거두며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은 5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07시즌에도 랜들은 12승을 기록하며 무려 22승을 거두는 괴력을 선보인 1선발 리오스의 뒤를 든든히 받쳤다. 토종 에이스 박명환LG 트윈스로 이적하고, 이혜천은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으며, 유망주 김명제마저 정체된 모습을 보인 가운데 이 해 두산의 선발진은 저 외국인 선수 두 명이 지탱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었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 선발 로테이션은 리오스-랜들-비-비-비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2][3] 어쨌든 두산은 이 막강한 원투펀치를 앞세워 정규리그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연승 후 4연패를 당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8시즌에는 일본으로 떠난 리오스 대신 랜들과 절친한 사이인 게리 레스가 두산으로 복귀해 시너지 효과를 이룰 것이라 기대를 받았으나, 레스가 가족의 건강 문제로 5월 초에 임의탈퇴로 한국을 떠났고 랜들도 9승에 그치며 한국에 온 뒤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랜들은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 두 번 선발등판해 1승을 따내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한다. 플레이오프 6차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끝내 출국하지 않고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 5⅓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어 1차전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랜들은 팀이 1승 2패에 몰린 4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역투했으나 끝내 팀은 패하고 말았고, 팀은 결국 1승 후 4연패를 당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랜들이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팀에 대한 헌신은 선수단과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정규시즌에서의 다소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랜들은 또다시 재계약에 성공한다. 하지만 시즌을 코앞에 둔 2009년 3월 12일, 야구장으로 출근하던 랜들은 선릉역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전치 6주의 허리 부상을 당한다. 재활기간까지 포함해 최소 3개월 정도의 공백이 불가피해지면서 결국 3월 30일 두산은 랜들의 퇴출을 발표하게 된다.

두산에서 방출 된 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3. 트리비아

취미는 음악으로, 기타 등 악기 연주는 물론 곡을 직접 쓰기도 한다고. 선수 시절에도 밴드를 결성해 이태원동의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은퇴 이후에는 아예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까지 국내에서 Mixed Blood라는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 중이었다.

포스트시즌에 굉장히 강했다. 통산 9경기 5승 1패 평균자책점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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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구장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빠던을 시전한 양준혁에게 경기 도중 법규를 시전한 적이 있다. 저 시절에는 미국인 야구선수들이 배트 플립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으니 마냥 이해 못할 행동은 아니지만...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0 소프트뱅크 1 0 0 0 0 0.00 2 0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요미우리 3 9⅓ 1 1 0 0 7.71 12 5 5
2004 24 39 ⅔ 3 2 1 0 5.45 39 20 4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5 두산 베어스 29 149 ⅔ 12 7 0 0 3.25
(3위)
163 62 111
2006 30 192 ⅓
(3위)
16
(2위)
8 0 0 2.95 170 68 142
(4위)
2007 28 164 ⅓ 12
(5위)
8 0 0 3.12
(5위)
142 65 113
2008 29 150 ⅔ 9 9 0 0 4.48 171 58 101
NPB 통산(3시즌) 28 50 4 3 1 0 5.76 53 26 48
KBO 통산(4시즌) 116 657 49 32 0 0 3.41 646 253 467
완투, 완봉기록(KBO)
연도 완투 완봉
2005 0완투 0완봉
2006 2완투 (4위) 2완봉 (1위)
2007 0완투 0완봉
2008 0완투 0완봉
통산 2완투 2완봉


[1] 이중국적자. 은퇴 후에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아내를 만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에 정착해 한동안 살았다. 2018년 현재는 미국으로 돌아가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전설적인 명투수 워렌 스판과 관련된 시의 패러디이다. 이쪽도 팀이 워렌 스판-자니 세일의 원투펀치 말고는 답이 없어서 이 둘만 나오면 좋겠다고 한 신문에 기자가 쓴 시[3] 여담으로 같은 해인 2007년 한화 이글스도 선발진을 류현진-정민철-세드릭-비-비-비 형식으로 운영했다.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이 이 우천취소를 잘 써먹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