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2 23:11:12

타이론 우즈

타이론 우즈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수상 기록(KBO)
1998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0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2001년 한국시리즈 MVP
2001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1998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1998, 2001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수상 기록(NPB)
2004, 2006, 2007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베스트나인 1루수 부문
2003, 2004, 200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홈런왕
200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타점왕
}}} ||
타이론 우즈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3번
김광현(1996~1997) 타이론 우즈(1998~2002) 쿨바(2003)
}}} ||
파일:attachment/e0036358_4a158869269c8.jpg
이름 타이론 윌리엄 우즈
(Tyrone William Woods)
생년월일 1969년 8월 19일 ([age(1969-08-19)]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주 브룩스빌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MLB 드래프트 5라운드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8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OB 베어스)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1988~1994)
볼티모어 오리올스(1995)
보스턴 레드삭스(1996)
OB-두산 베어스(1998~200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2003~2004)
주니치 드래곤즈(2005~2008)
응원구호 우~~~~~~~~~~~~~~~~즈[1]

1. 소개2. 선수 경력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2.2. 한국프로야구 시절2.3. 일본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기록4. 이모저모

1. 소개

파일:우즈세리머니.jpg

베어스 역대 최강의 외인타자이자,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타자들 중 항상 거론되는 주인공이다. 역대 최초로 잠실을 홈으로 40홈런을 기록한 선수이자[2] 사상 최초의 외인타자 잠실 홈런왕, 외국인 시즌 MVP를 달성하였다.

OB-두산 베어스 소속의 외국인 선수. 본명은 타이론 윌리엄 우즈(Tyrone William Woods)로 흑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일본 시절 애칭은 T

베어스 팬들에겐 잊지 못할 외국인 선수이며 펠릭스 호세, 제이 데이비스, 에릭 테임즈와 함께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인 타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1998년도에 OB 베어스를 통해 드래프트에 뽑혀서 국내땅을 밟았다.

2. 선수 경력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된 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1995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다.

1996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다시 이적한 후 레드삭스 산하 더블A팀 트랜턴 선더에서 99경기 25홈런 OPS .982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트리블A팀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29경기 9홈런 OPS 1.064를 기록한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장타력만큼은 인정을 받았으나, 문제는 수비와 주루 때문에 1루 외에는 볼 수 있는 포지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보스턴의 1루에는 1995년 아메리칸리그 MVP 모 본이 있었고, 지명타자 자리에는 레지 제퍼슨이 1996년에 타율 .347를 때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우즈는 콜업을 받지 못한다. 3루수나 외야수도 볼 수 있었지만 그 수준은 매우 막장스러웠다.[3] 게다가 1루 수비마저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한 때 보스턴에서 지명 받은 유망주 제프 배그웰이 우즈처럼 비슷한 포지션 중첩으로 피해를 본 사례다. 물론 배그웰은 다른 팀에서 포텐이 터졌다. 모 본은 98년 이 후 보스턴을 떠나지만 거기서 부터 아예 얘는 말아먹기 시작한다.....

선수 생활을 같이 했던 안경현 해설위원은 타격은 메이저리그급이지만 수비 때문에 일본이나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꽤 있는데 타이론 우즈도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고 한다.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제가 (1998) 시즌 후에 목표를 잡았는데 팀 1위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홈런왕도 아니었습니다. 타점왕도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타이론 우즈를 이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승엽출처

당대 적수가 없던 KBO 최고의 외인타자인 동시에 베어스 역대 최고의 외인타자였다.
두산 베어스V3의 주역이다.

결국 20대 후반까지도 메이저에서 부름이 없자 야구를 그만 두고 소방관이 될 생각을 했으나 1998년 당시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면서 한국 무대를 노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5081201000681000045823_99_20150812063014.jpg
1998년 시즌 42호 홈런으로 장종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모습. 이 기록은 1년 후인 1999년 이승엽에 의해 경신된다.

파일:승우즈.jpg
1999년 당시 이승엽과 함께 홈런왕 경쟁을 펼치던 시절.

1998년 한국무대 데뷔 중반까지도 당시 한국야구의 좌우폭이 넓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고[4] 선풍기질만 하면서 퇴출까지 거론되었지만, 김인식 감독이 3번 타순에 고정시키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이에 부응하듯 7월부터 홈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때 8개 차까지 벌어졌던 이승엽을 추월하고,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41홈런)마저 경신하며 홈런왕, 타점왕에 올랐고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5][6] MVP 선정 과정은 예상보다 치열했는데, 기자들이 18승으로 다승왕을 따낸 LG 김용수[7]를 밀어주면서 2차 투표까지 간 접전 끝에 MVP 수상에 성공한다.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0812171841460107000001070100-001.jpg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를 이루어 두산 베어스의 강타선은 물론 리그 최고의 클린업트리오를 구축했으며[8] 심정수가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2001년에는 심재학의 가세로 우동학(우즈-김동주-심재학)트리오를 형성,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무너뜨리고 두산의 세 번째 우승에 공헌하면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98년의 페넌트레이스 MVP에 이어 2001년 올스타전 MVP[9]와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MVP 트리플크라운[10]을 기록한 선수.

2001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때려낸 홈런은 김동주 이후 두 번째로 기록된 잠실구장 장외 홈런.

1998~2001년까지 42-34-39-34홈런을 기록하면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나 2002년에는 25홈런 타율 .256으로 부진에 빠졌다. 당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텃세,[11] 두산 프런트의 섭섭한 대우에 불만이 쌓여서 태업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받는다. 당시 한국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이 좌우로 지나치게 넓은 것에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프로야구 영상을 보면 2010년대보다 좌우로 공 두 개 정도는 넓게 존을 잡아주는 것을 알 수 있다.[12] 심판들이 우즈에게는 유독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우즈존이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5년간의 두산 생활을 접고 2003년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한다.[13]

그리고 우즈가 떠난 이후 두산은 2014년 호르헤 칸투[14]가 성공하기 전까지 외국인타자 잔혹사가 이어진다. 마이크 쿨바-이지 알칸트라-맷 왓슨[15]의 실패로 한동안 두산은 외국인 타자 영입을 꺼렸다. 이후 닉 에반스도 초반 부진하며 잔혹사가 이어지는듯 했으나 2년 연속 3할-20홈런을 기록하고 영양사라는 별명을 얻어내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해 주었다.[16] 그러나 지미 파레디스[17], 스캇 반 슬라이크라는 흑역사가 동시에 터지고 마는데...

이 모든건 2019년 쿠바산 폭격기를 만나기 위함이였다. 가끔 뉴비들이 스포츠 뉴스 댓글에 이분과 대조를 이으려고 하는데 페르난데스의 현 시절과 우즈의 시절 야구 자체가 다름으로 괜히 이상하게 엮지 말자.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한국에서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나가며 주니치 드래곤즈 역대 최고의 외인타자로 군림했다.

2003~2004년 약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는데, 애초 싼 맛에 데려왔을 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18] 요코하마 구단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파워스윙을 선보이면서 2003년 40홈런으로 알렉스 라미레스, 2004년 45홈런으로 터피 로즈와 함께 세리그 공동 홈런왕이 된다. 우즈는 이로서 요코하마 구단 역사상 최초로 40홈런을 친 타자로 기록에 남았다. 2018년 현재까지 요코하마에서 40홈런을 친 선수는 우즈 이외에는 타무라 히토시, 무라타 슈이치, 토니 블랑코, 츠츠고 요시토모, 네프탈리 소토뿐이며, 이 중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한 것은 우즈밖에 없다.

2005년 중심타선 보강을 위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뒤 투수친화적인 나고야 돔에서도 38홈런을 때려냈고, 2006년에는 요미우리의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홈런 47개로 홈런왕, 144타점으로 타점 1위를 차지한다. 특히 팀의 우승이 결정된 10월 10일 도쿄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4회에 선제 46호 쓰리런, 연장 12회에 47호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혼자 7타점을 쓸어담는 활약으로 주포로서의 위용을 뽐낸 장면은 주니치 시절의 활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이승엽이 보는 눈앞에서 친 홈런이였다

2007년에는 무라타 슈이치에게 1개 차로 뒤진 35개로 홈런 공동 2위였지만, 위압감은 대단해서 121개의 볼넷과 19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낸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8년에도 홈런 35개를 쳤으나, OPS .904로 일본리그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ops 9할이 커리어 로우? 그해 말 연봉협상에 난항을 겪어서 재계약에 실패. 사실 연봉을 높게 부르고 깎지 않았던 우즈의 태도도 있었지만,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센트럴 리그에서 나이 많고 수비가 불안한[19] 우즈를 그렇게까지 비싼 돈에 가지고 있을만한 이유가 없었던 주니치는 그냥 깔끔하게 우즈를 포기하게 된다. 거기에 대신해서 데려온 용병인 토니 블랑코가 생각보다 우즈의 공백을 잘 메꾸어주어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홈런왕에 오른 선수는 우즈가 유일하며 이는 이대호, 이승엽, 김태균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20] 옆 리그의 호세 페르난데스나 우즈의 성공을 계기로 일본프로야구 팀들은 KBO의 특급 용병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이후 세스 그레이싱어, 다니엘 리오스, 릭 밴덴헐크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엄청 잘 나갔는데, LG의 차명석 코치에 의하면 전지훈련 도중에 우즈를 만났는데 우즈가 아예 귀족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격은 아예 망나니가 되었다. 대표적 예시로 2005년 5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경기 중 5회말 타석 때 후지이 슈고의 몸쪽 위협구에 분노, 그의 오른쪽 뺨을 구타하여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만 엔의 중징계를 받았을 정도. 일본판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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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시절 우즈의 참교육(...) 움짤. 헤이, 슈고! 돈 두댓! 만약 투수가 손혁이었다면?

다만 이것에는 우즈도 할말이 있는데, 후지이 슈고는 등판중에 혀를 낼름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필이면 우즈에게 몸쪽 공을 던지고 난뒤 자신을 노려보는 우즈를 향해 버릇대로 혀를 내밀었고 이걸 자신을 조롱하는걸로 받아들인 우즈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후지이 슈고는 멘탈이나 소행면이 썩 좋지 않은 투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우즈를 옹호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무난한 인성으로 인기가 좋아서 이미지가 좋았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일본에서의 별명은 "우데스".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에는 이승엽과 강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7년 10월 20일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차전에서 주니치 투수였던 나카타 겐이치가 이승엽에게 의도적인 몸쪽 공을 던지면서 이승엽이 조심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1루 수비를 보던 우즈가 뜬금없이 이승엽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이승엽이 맞서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일본팬들은 우즈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였는데, 우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일어날만한 충돌이기도 했다.

우즈는 한국에서 뛰면서 많은 설움을 겪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볼 패널티를 받기도 했고, 뛰어난 성적을 올렸음에도 개인수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매년 홈런왕 경쟁을 했기 때문에 우즈에게는 큰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이승엽에게 돌아갔다. 이승엽이 NPB에 진출하면서 동등한 외국인 조건이 되었지만 이승엽은 일본 최고 명문팀 요미우리의 4번타자였고, 우즈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았는데도 여전히 일본에서 한국과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우즈는 결국 여러 사건들로 이승엽에게 피해의식이 생겼고, 두산에서 뛸 때도 종종 이승엽을 돌려까기도 하였다. 2006년 이승엽이 센트럴리그 최고 홈런타자라고 연일 매스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자 "이승엽은 도쿄돔 빨이다" 라고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 우즈의 계속된 견제에 이승엽도 슬슬 심기가 불편해졌고, 어쩌면 두사람의 충돌은 결국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일본에서 재적 당시 뛰었던 팀들의 팬들, 특히 주니치 팬들은 우즈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주니치의 역대 타자용병들 중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찍어줬던 것도 있고 특히 숙명의 라이벌인 요미우리를 상대로 상당히 강해서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펼쳤기 때문이다. 이는 요미우리 팬들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일본 웹에서는 간간히 우즈가 너무 무서웠다고 추억하는 글들을 올리는 요미우리 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은퇴이후 고향인 플로리다주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 입으로 말하길 모 퍼시픽 리그 구단 중 한 곳에서 영입 요청이 들어왔지만 센트럴 리그에서만 뛰고 싶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는 두산 베어스프런트가 시구나 행사 등에 초청하기 위해 찾아봤지만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운영중인 플로리다에 위치한 부동산은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참고로 메세지 등으로 연락도 가능하다

3. 연도별 기록

한국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998 126 138 42
(1위)
103
(1위)
0.305 0.393 0.619 1.013
1999 124 135 34 101 0.297 0.406 0.556 0.972
2000 127 151 39
(2위)
111
(2위)
0.315 0.414 0.605 1.020
2001 118 127 34
(3위)
113
(1위)
0.291 0.402 0.571 0.973
2002 119 104 25 82 0.256 0.339 0.499 0.838
통산 614 655 174 510 0.294 0.393 0.574 0.967

홈런왕 1회, 타점왕 2회, 골든글러브 1회, MVP 1회 수상. 더불어 2016년 에릭 테임즈전까지 최소 경기 100홈런[21]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2001년 포스트시즌엔 총 6홈런을 기록 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2013년 최준석, 2017년 오재일과 공동 1위의 기록이다.[22] 태업이 의심되는 2002년을 제외한다면 리그 최고의 우타자이자 잠실을 지배했던 거포라고 할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136 131 40 87 0.273 0.361 0.559 0.921
2004 130 142 45 103 0.298 0.394 0.613 1.007
2005 135 155 38 103 0.306 0.392 0.571 0.963
2006 144 162 47 144 0.310 0.402 0.635 1.037
2007 139 126 35 102 0.270 0.418 0.530 0.948
2008 140 135 35 77 0.276 0.377 0.527 0.904
통산 824 851 240 616 0.289 0.391 0.573 0.964

홈런왕 3회, 타점왕 1회, 베스트나인 3회 수상. 6년 중 4년을 홈구장으로 나고야 돔을 쓰면서도 연평균 홈런 40개를 쳐냈으며, 통산 OPS 0.964는 3000타석을 기준으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6위다.

4. 이모저모

  • 밀어치는 우월홈런이 상당히 많았는데, 밀어쳐서 도쿄돔 상단 광고판을 때릴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 국내에서 강렬한 포스를 남겼지만 아무래도 2002년까지 5시즌만 뛰었기 때문에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늘어난 야구를 처음 접한 팬들은 타이론 우즈를 몰라 이에 대한 일화가 생기기도 하였는데,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한 두산팬이 2010년 포수 양의지의 스윙폼을 보고 우즈 닮았네라고 하자 어느 유동이 댓글로 "저 선수 불륜 안했거든요?!"라고 언급한 것이 캡쳐되어 떠돌아 다녔고, 자기 팀 레전드도 모른다며 야갤에서 까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를만도 한 게, 2회 WBC 이전에 아예 은퇴를 해버린 데다가 '우즈'하면 과거부터 야구를 봐왔거나 일본 프로야구를 어느 정도 아는 팬들을 제외하고는 대개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기 때문. 이름도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세대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 자신의 완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이용해서 언론을 통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거나 경기 중 상대팀의 견제가 들어올 경우 먼저 나서서 시비를 트는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 이승엽이 야구 내적으로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일본 시절에 자주 이승엽을 도발했으며 실제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전혀 관계도 없는데 이승엽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사실 우즈는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영악하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서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후 일본인 선수들이 체격들이 작고 시비에 소극적인 성향인걸 파악하고는 조금만 거슬리거나 아니면 전혀 상대가 시비걸지 않아도 의도적으로 난폭하게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상대선수에게 주먹을 휘둘러대면서 상대가 자신의 플레이에 방해하는 요소를 차단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문제는 우즈의 그 노하우를 보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따라하게 되었다는게 문제(...)
  • 일본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경기 중에 눈에 띄게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 이에 대해 당시 팀 내에서 코치 양승호나 김태형 등이 우즈가 사고를 치지 못하게 기강을 잡은 덕이라는 설명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본 체육계에도 이런 문제는 비일비재한 일이고, 돌출 행위 역시 타 팀 선수들에게만 그랬지 자기 팀 선수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기 줏 선수들이 흥분하거나 거칠게 반응하는 면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덜한다고 판단해서 그걸 믿고 행동했던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할듯.
  • 당시 두산 베어스 팬들은 우즈가 타석 등장곡인 경기병 서곡이 울려퍼질때 타석에 들어서면 전부 일어나 북소리에 맞춰 흰 막대풍선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서 우~ ~ ~즈!! 우~ ~ ~즈!!를 반복해서 외치곤 했다. 뭔가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이 단순한 응원가는 상대팀 투수는 물론이고 상대팀 팬들조차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압감을 풍겼다. 주니치 시절에는 메인 응원가 전에 에미넴의 'Without Me'의 코러스 반주에 맞춰 "T!"를 외치는 응원이 있었다.T?
  • 일본프로야구시절 임창용이 우즈 킬러로 유명했는데 특히 인터뷰에서 우즈를 까내리던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얻어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 카더라.
  • 2015 시즌 중반 잭 루츠가 방출당한 후 스카우터는 우즈를 잊지 못한 두산 팬들의 향수를 위해 이 선수를 데려왔으나, 시즌을 마감하고 나니 흑인이라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 2010년에는 한 TV프로 녹화방송과 관련하여 주니치에서 퇴단한지 약 1년 5개월만에 일본을 방문해 옛 동료들을 격려했고, 시즌 개막 직전 나고야 돔을 전격 방문해 자신의 후임 4번타자인 토니 블랑코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 KBO 사상 유래없이 긴 배트인 36인치짜리 배트를 쓰는 선수로 유명했다. 국내 배트 제조업체들에선 이걸 어떻게 휘두르냐며 제작에 난색을 표하기까지... 넓은 스트존에 맞서기 위한 크보 맞춤 배트 세계적으로도 타이론 우즈보다 더 긴 배트를 쓴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의 후지무라 후미오의 37인치 배트. 실제로 우즈는 바깥쪽 공에 아주 강한 선수였고 보기와 달리 윙스펜이 아주 길어서 바깥쪽 볼이라 생각되는 볼도 중심에 맞춰 넘겨버리던 선수였다. 즉 타고난 팔길이 + 장대배트의 버프.
  • 박명환유튜브 2019년 5월 27일자 방송에서 정수근이 폭로한바에 따르먄 샤워를 하는데 선수들이 우즈랑 떨어져 샤워하길래 왜 그러지? 하면서 자신은 우즈옆에서 샤워하다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자기도 떨어져 샤워했는데 왜 그러냐고 박명환이 질문하자 정수근은 그만 우즈의 그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며 자기 팔뚝을 보여주며 이정도라고 하는 순간 방송심의를 위한 의 배경음악이 나왔다. 즉 남성의 그게 크다는것(...)


[1] 응원가는 아니고 응원구호이다[2] 이 기록은 2018년 김재환이 기록할때 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유일한 기록이었다.[3] 한국에서도 3루수나 외야수 알바를 가끔 뛴 적이 있었는데 다 수비범위 한발자국이라는 극악의...[4] 이때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정말 심해서 스트라이크존을 공하나 정도 더 넓게 잡아주곤 했다.[5] 그런데 정작 골든글러브는 MVP인 우즈를 제치고 이승엽이 차지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우즈가 이후 이승엽에 대해 눈에 띄게 라이벌의식을 드러낸 것도 이때 생긴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6] 한편으로는 이승엽도 1998시즌 직후 우즈가 꿈속에 나오는 악몽을 자주 꿨다고 회고할 정도로, 당시 홈런왕 경쟁에 밀렸던 아쉬움이 컸다. 이래저래 이승엽에게 당시 우즈는 최종보스와도 같은 존재였던 셈.[7] 당시 김용수도 38세의 최고령 다승왕으로서 나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LG가 당해년도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었다는 이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당시 MVP 투표는 포스트시즌 이전인 10월 초에 했으므로 해당사항 없는 얘기다.[8]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무려 99홈런 308타점을 합작했다.[9] 2000년 9개로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최다 홈런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2010년 홈런레이스에서 먼 훗날의 후배인 김현수가 10개를 기록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10] 국내선수 중에는 이종범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록이며, 우즈보다 2년 늦은 2003년에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여 달성했다.[11] 이를 두고 '차별'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의 영입은 국내파 선수들보다 한수 위의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기대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프로야구 초창기 장명부, 김일융 등 재일교포 선수들과 비슷했다. 메이저리그처럼 외국인이 자국 선수들보다 나을거라는 보장이 적은 경우라면 모를까, 일정 수준의 기대를 전제로 비싼 돈을 주고 영입해서 통역 등을 붙여주며 관리해주는 선수에게 차별이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경기에서의 견제, 시즌 후 시상에서의 불이익 등도 외국인 선수가 지나치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면 장기적으로 리그의 장래에 부정적임을 염두에 둔 무의식적 방어심리에 더 가깝다.[12] 당시 1999~2001시즌까지 타고투저가 지속되어 KBO에서는 2002시즌 스트라익존을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많은 타자들이 볼넷-삼진 비율에서 손해를 봤으며 타고투저 시즌에 비해 득점력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13] 당시, 요코하마 구단주는 우즈를 싼 맛에 데려가 모험을 즐기려고 했었다고...[14] 근데 이 호르헤 칸투 역시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결국 두산을 떠났다[15] 왓슨은 심지어 '왜왔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받았다.[16] 닉 에반스는 대신 잔부상 등으로 지명타자만 주로 담당하긴 했지만.[17] 명실상부한 두산의 흑역사이자 2018 시즌 최악의 WAR를 기록하였다.[18] 오히려 요코하마가 계약금 100만 달러, 연봉 275만 달러(약 3억엔),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들여온 좌타자 스티브 콕스는 스프링캠프부터 드러누워버린데다가 15경기만에 또 부상을 당해 1년만에 방출되었다.(...) 참고로 그 해 콕스의 먹튀짓을 만회한 우즈의 연봉은 5000만엔에 불과했다.[19] 오치아이 히로미츠 당시 감독은 수비력과 기동력을 중시하는, 투수 친화적인 나고야 돔에 특화된 지키는 야구를 중시했다.[20] 다만 이대호는 일본 시절 타이틀을 따보지도 못한 이승엽, 김태균과는 달리 2012년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오른 바 있다.[21] 324 경기[22] 공교롭게도 당시 세 선수의 소속팀은 두산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