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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한국시리즈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KBO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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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 라이온즈의 전기·후기 리그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다.
[2]: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 경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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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KBO 한국시리즈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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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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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3.svg
1987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MVP 김준환
쳤습니다. 자 역시 이순철이 마감을 할 듯, 마감했습니다! 87년도 한국시리즈 제패는 83년에 이어서 또다시 해태 타이거즈. 83년도, 작년 86년도, 금년 87년도, 그래서 82년 원년부터 시작된 한국시리즈, 토탈 여섯번중에 세번을 장식하는 해태 타이거즈입니다. 세 번 우승을 하면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 해태 타이거즈의 화려한 금자탑이 이룩됐습니다.

MBC 임주완 캐스터의 우승콜
1. 개요2. 일정3. 시리즈 전 상황4. 엔트리5. 결과
5.1. 1차전
5.1.1. 스코어보드5.1.2. 경기 내용
5.2. 2차전
5.2.1. 스코어보드5.2.2. 경기 내용
5.3. 3차전
5.3.1. 스코어보드5.3.2. 경기 내용
5.4. 4차전
5.4.1. 스코어보드5.4.2. 경기 내용
6. 총평7. 여담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1. 개요

198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파일:해태 타이거즈 심볼(1982~1995).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1987년 10월 21일부터 1987년 10월 25일까지 진행했던 한국시리즈.

해태가 4연승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2연패 및 첫 한국시리즈 전승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반대로 삼성 입장에서는 원년 이래 계속되어 온 한국시리즈 부진의 늪이 계속되었던 시절의 일부다.

한국시리즈 MVP는 정규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준환이 선정되었다.[1]

2. 일정

1987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VS 삼성 라이온즈 | 4선승제
<rowcolor=#ffffff> 경기 경기 시간 경기장 AWAY 결과 HOME 방송사
1차전 10월 21일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해태 5 3 삼성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2차전 10월 22일 14:00 2 1 파일:MBC 로고(1986-2005).svg
3차전 10월 24일 14:00 무등 야구장 삼성 2 4 해태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4차전 10월 25일 14:00 2 9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파일:MBC 로고(1986-2005).svg

3. 시리즈 전 상황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후기리그 4위로 내려 앉으면서 PO을 치러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라이온즈는 감독을 김영덕에서 박영길로 교체하고 1987년에는 독하게 우승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는 1987년 팀 타율 3할[2]과 전기 및 후기리그 동반 제패의 위업이었다.

특히 타선이 정말 무시무시했는데, 과장 하나 안보태고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틈이 없었다. 이 시즌 주요 삼성 타자들의 성적을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다.

이만수: 타율/출루율/장타율 0.344/0.431/0.579 18홈런 76타점으로 타점 1위, 홈런, 타율, 출루율, 장타율 2위,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
김성래: 타율/출루율/장타율 0.332/0,413/0.569 22홈런 70타점으로 홈런 1위, 타점 2위, 출루율, 장타율 3위,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
장효조: 타율/출루율/장타율 0.387/0.461/0.493 2홈런 58타점으로 타율, 출루율 1위,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
허규옥: 타율/출루율/장타율 0.326/0.369/0.451 3홈런 24도루 39타점으로 타율 7위
류중일: 타율/출루율/장타율 0.287/0.362/0.364 2홈런 8도루 28타점으로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홍승규: 타율/출루율/장타율 0.276/0.340/0.401 7홈런 13도루 26타점
이종두: 타율/출루율/장타율 0.275/0.325/0.401 10홈런 14도루 38타점
장태수: 타율/출루율/장타율 0.282/0.368/0.451 8홈런 32타점, 규정타석에 33타석 미달
오대석: 타율/출루율/장타율 0.326/0.387/0.471 6홈런 40타점, 규정타석에 62타석 미달

이밖에도 백업인 김동재가 192타석에 타율 0.318 9홈런, 박승호가 222타석 타율 0.286에 4홈런을 기록하는 등 중심타선과 하위타선까지 타율 0.250 이하가 한명도 없는 지뢰밭 같은 타선이었다. 특히, 이만수, 김성래, 장효조는 스탯티즈 기준으로 리그 sWAR*과 wRC+ 순위가 각각 1,2,3 등이다. 리그를 지배한 세 명의 타자가 전부 같은 팀에 있었던 셈. 현재까지도 이렇게 강한 라인업은 보기 드물며, 2025년 현재까지도 리그 sWAR*이나 wRC+ 1~3등이 전부 같은 팀에 속했던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정도로 삼성의 타선이 막강했다는 뜻이며, 그해 득점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보다 무려 150득점을 더 했다.[3]

다만 투수진은 확실히 타선에 비해 많이 약했다. 1984년~1986년 삼성의 원투펀치였던 김일융이 일본 프로야구로 복귀하고 3선발 황규봉이 부진 끝에 은퇴하며 선발진의 무게감이 확 떨어졌으며, 유일한 에이스로 23승을 거둔 김시진은 평균자책점이 3.12로, 당시 리그가 투고타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범한 축에 속했다.[4] 진동한이 144이닝을 투구하며 12승 6패 평균자책점 2.81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권영호가 18세이브에 2.41의 평균자책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 정도를 제외하면, 겨우 100이닝 정도 던진 양일환이나 성준 빼고 믿을만한 투수가 없었다. 빙그레의 한희민& 이상군, 롯데의 최동원&윤학길, OB의 장호연, 김진욱, MBC의 김용수&정삼흠처럼 확고한 더블 에이스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김시진도 누적된 혹사가 겹쳤는지 예전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삼성의 마운드는 팀 평균자책점이 7팀 가운데 5등이었으며, 따라서 87년 삼성의 팀컬러는 2014년 넥센 히어로즈와 비슷하게 타자들이 점수를 대량 뽑아주면 투수들이 무난하게 막아가는 스타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하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반면 해태 타이거즈는 상당히 고된 한 해를 보냈는데, 전기리그를 2위 OB 베어스에 3.5게임차로 뒤진 3위로 마감하며 PO 진출권을 헌납했고, 후기리그에서도 시즌막판까지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리그 막판 삼성과의 2연전을 모두 이기며 천신만고 끝에 단 한 게임 차로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하며 1987년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하필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에서 전국체육대회이 열리는 바람에 홈 경기를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른 해태 타이거즈는 3차전까지 1승 2패로 지고 있었고, 4차전도 9회말 2아웃까지 한 점차로 지고 있었지만, OB 유격수 유지훤이 느린 내야 땅볼을 대시하지 못하고 처리하다가 내야 안타를 만들어주면서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에서 승리하고, 이어 5차전까지 이기면서 극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러한 팀 성적이 보여주듯 1987년 해태 선수들의 개인성적은 우승을 노리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였다. 김성한김종모가 여전히 건재하여 팀을 이끌어갔고, 서정환과 신인 백인호 등이 분전했으나, 이순철한대화, 김봉연 등 작년 해태의 우승의 주역들의 성적이 대폭락하며 타선이 많이 약해졌다. 투수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는데, 부동의 에이스 선동열에 그 뒤를 잇는 차동철은 여전했고, 여기에 2년차 신인 김대현(1962)신동수가 각성하며 선발진의 든든한 보탬이 되어주었으며, 문희수 역시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삼성에 비해서는 확실히 투수진은 좋았다.

그럼에도 막강한 전력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삼성과 1987년 플레이오프에서 혈전을 치른 해태 타이거즈를 비교했을 때 1986년 한국시리즈와 달리 이번에는 삼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1987년 해태는 역대 한국시리즈 진출팀들 중 유이한 득실차 마이너스 팀이었다.[5]

그러나 이 해 포스트시즌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가 짜 놓은 1987년 플레이오프 일정이 10월 7일부터 10월 12일까지였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1일부터 10월 29일까지였다. 즉, 1987년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더라도 1987년 플레이오프 승자가 무려 8일을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위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해태 타이거즈는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격렬한 일정에서 쌓인 피로를 무려 8일이라는 시간동안 넉넉히 다 해소할 수 있었다. 즉, 삼성이 정규시즌 1위팀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기 때문에 얻어야 할 체력적인 어드밴티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정이었고, 이 때문에 해태 타이거즈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6]

4. 엔트리

4.1.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198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colbgcolor=#fecd00> 감독 1명 박영길
코치 5명 정동진, 황규봉, 유백만, 우용득, 배대웅
투수 8명 김시진, 김기태, 진동한, 양일환, 권영호, 김성길, 성준, 김훈기
포수 3명 이만수, 손상득, 박정환
내야수 8명 함학수, 김용국, 김성래, 이종두, 오대석, 류중일, 박승호, 김동재
외야수 6명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 최무영, 구윤, 홍승규

4.2.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198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colbgcolor=#09081e> 감독 1명 김응용
코치 4명 김인식, 임신근, 백기성, 박정일
투수 8명 이상윤, 선동열, 김정수, 차동철, 신동수, 김대현, 방수원, 문희수
포수 3명 김무종, 장채근, 이건열
내야수 9명 김봉연, 김성한, 서정환, 한대화, 차영화, 김일환, 조충열, 백인호, 박철우
외야수 5명 김준환, 조재환, 김종모, 이순철, 송일섭

5. 결과

5.1. 1차전

5.1.1. 스코어보드

한국시리즈 1차전, 10월 21일 수요일,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 김대현 3 0 0 0 0 0 0 2 0 <colbgcolor=#dcdcdc,#222222> 5 7 - -
삼성 김시진 1 1 0 0 0 0 0 0 1 3 11 - -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이규항 | 해설: 하일성

5.1.2. 경기 내용

삼성은 선발로 김시진을, 해태는 선발로 김대현을 내세웠다. 승부는 1회초에 갈리고 말았다. 1회초 볼넷으로 나간 이순철이 도루를 시도했고, 삼성 포수 이만수의 송구가 뒤로 빠지면서 주자는 3루까지 진루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김성한이 친 우익수 뜬 공을 장효조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며 놓치는 바람에 해태는 먼저 선제 득점을 했고, 이어 한대화가 2점 홈런을 치면서 순식간에 점수는 3:0이 되었다. 삼성도 1회말과 2회말에 각각 한 점을 내면서 추격했지만, 3회부터 나온 해태의 차동철에게 8안타를 치고도 9회말에 한 점을 만회했을 정도로 꼼짝 못하고 눌리고 말았다.

1회 실책 속에 3점을 내준 김시진은 7회까지는 해태의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8회초 김성한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이어 적시타를 또 내주면서 2점을 더 실점하며 경기가 기울고 말았다. 삼성은 9회말에 연속 3안타로 1점을 추격했지만, 차동철이 2사 1, 3루 위기에서 그 해 홈런왕이었던 김성래를 땅볼로 막아내면서 먼저 1승을 챙겼다. 안타는 삼성이 더 많았지만, 해태는 홈런과 상대 실수를 묶어 먼저 기선을 잡았다. 결국 김시진1984년 한국시리즈 2패, 1986년 한국시리즈 3패에 이어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전을 적립하며 통산 KS 6패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5.2. 2차전

5.2.1. 스코어보드

한국시리즈 2차전, 10월 22일 목요일, 14:00 ~ 16:59 (2시간 59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 김정수 1 1 0 0 0 0 0 0 0 <colbgcolor=#dcdcdc,#222222> 2 5 - -
삼성 김기태 1 0 0 0 0 0 0 0 0 1 4 - -
중계방송사: 파일:MBC 로고(1986-2005).svg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이호헌

5.2.2. 경기 내용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를 내세웠고, 삼성은 선발로 김기태를 내세웠다. 경기 자체는 치열한 투수전이라기에는 뭔가가 부족한 빈공의 연속이었다. 특히 삼성이 더 심했다. 해태가 1회 이순철이 나간 후, 도루 2개로 3루까지 진출한 후 김종모의 희생플라이로 가볍게 득점에 성공했고, 2회에도 2사 1, 3루에서 1루 주자 차영화의 도루를 잡겠다고 던진 이만수의 송구가 뒤로 빠지면서 또 한 점을 냈다. 삼성은 1회말 공격에서 이만수의 적시타로 점수를 냈지만, 그 이상의 점수는 다시는 내지 못했다.

기회 자체는 삼성이 훨씬 더 많았다. 선발 김정수 상대로 안타 4개, 사사구 8개를 얻어내면서 찬스를 무수히 잡았지만, 그 때마다 범타나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찬스를 날렸다. 이날 놓친 찬스를 열거하면 3회 무사 1, 2루, 6회 2사 1, 2루, 7회 1사 2루 그리고 최후의 찬스였던 8회 1사 1, 3루였다. 하지만 8회 1사 1, 3루 찬스에서 삼성은 해태가 내세운 절망의 벽인 선동열을 맞이해야 했고, 선동열은 후속 타자를 삼진과 땅볼로 요리하면서 결국 팀의 승리를 지켰다. 김정수는 7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1실점으로 2차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패전 투수는 김기태.

5.3. 3차전

5.3.1. 스코어보드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4일 토요일, 14:00, 무등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권영호 2 0 0 0 0 0 0 0 0 <colbgcolor=#dcdcdc,#222222> 2 5 - -
해태 신동수 0 0 2 1 1 0 0 0 - 4 9 - -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타사중계3]

5.3.2. 경기 내용

삼성은 권영호를, 해태는 신동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기선을 잡은 것은 삼성이었다. 1회초 공격에서 이만수가 2점 홈런을 치면서 앞서 나간 것이다. 그러자 해태는 곧바로 투수를 문희수로 바꾸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해태는 3회말 공격에서 김성한의 2루타로 동점을 만든 후, 4회 김준환의 솔로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5회말 김봉연의 안타로 다시 점수를 내면서 4:2로 앞서 나갔다.

삼성은 9회초 최후의 찬스를 잡았다. 1회 구원 등판한 후, 삼성의 타선을 요리하던 문희수 상대로 무사 1, 2루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구원 등판한 차동철 상대로 2사 2, 3루의 기회를 잡은 삼성은 박승호가 친 타구가 1루 베이스를 맞고 빠지지 않고, 1루수 글러브에 들어가면서 동점을 만들 기회를 아깝게 놓치면서 시리즈 3패로 몰리고 말았다.

5.4. 4차전

5.4.1. 스코어보드

한국시리즈 4차전, 10월 25일 일요일, 14:00, 무등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김시진 0 1 0 0 1 0 0 0 0 <colbgcolor=#dcdcdc,#222222> 2 7 - -
해태 김대현 0 2 0 1 3 3 0 0 - 9 14 - -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파일:MBC 로고(1986-2005).svg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이호헌

5.4.2. 경기 내용

벼랑에 몰린 삼성은 김시진을 내세웠고, 해태는 김대현을 내세웠다. 삼성이 먼저 2회초에 이만수이종두의 연속 안타로 선제점을 냈지만, 해태는 2회말 공격에서 바로 김준환의 2점 홈런이 나와 곧바로 역전했다. 그리고 4회 이순철의 적시타로 기어이 김시진을 강판시켰다. 삼성도 5회초에 기회가 있었다. 볼넷과 안타,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만회한 후, 2사 1, 3루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1루 주자의 견제 때 홈을 파고들려던 작전이 실패하여 1루 주자가 먼저 아웃되면서 추가 득점에 실패, 결국 경기는 해태의 손에 기울고 만다.

해태는 곧바로 이어진 5회말 공격에서 무사 만루의 찬스를 잡아 밀어내기 볼넷과 안타와 상대 실책을 묶어 3점, 다시 6회말에 연속 5안타를 작렬하면서 또 다시 3점을 내며 승부를 완전히 굳혔다. 이 날 해태의 타자들은 14안타를 치면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선발 전원 안타 기록을 세웠다. 마운드에서는 5회부터 나온 김정수가 삼성의 타선을 묶으면서 경기가 끝나며 해태는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정규시즌 0.204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김준환은 3차전, 4차전의 홈런 2방을 포함해 0.500 2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6. 총평

6.1. 우승: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는 정규시즌 부진했던 선수들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팀을 구원해냈고 4승0패로 우승하며 2년 우승을 달성하였다. 가을까치 김정수는 별명답게 정규시즌에서는 부진했으나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 7⅓이닝 1실점을 포함해 2경기 11⅔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77으로 펄펄 날았고, 한대화는 해결사라는 별명 답게 14타수 5안타 1홈런 3볼넷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김준환은 정규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으나[8] 한국시리즈에서는 12타수 6안타 2홈런 4볼넷으로 미쳐 날뛰며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특히 해태 전력의 절반을 차지했던 선동열은 어깨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는 아예 등판하지 못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도 2차전 세이브 상황에서 딱 한 경기 등판한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다른 투수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삼성 타선을 잠재우며 해태가 꼭 선동열 혼자만의 팀은 아님을 증명했다.

6.2. 준우승: 삼성 라이온즈

단기전에서 방망이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속설을 아주 잘 알려준 시리즈였다. 삼성이 그렇게 자랑했던 막강한 타선은 이만수를 제외하고 지독한 물타선으로 변신했는데 특히 김성래는 17타수 2안타 3병살타로 대놓고 국밥을 말았고 장효조나 허규옥 등도 정규시즌 만큼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만수 혼자 13타수 5안타 1홈런에 3볼넷 3도루까지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다른 타자들이 전부 침묵해버려 빛을 보지 못했다. 삼성은 충격적인 4전 전패로 인해 0승 4패로 준우승하며 2년연속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전년 한국시리즈 3차전~5차전에 이어 한국시리즈 7연패(敗)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으며, 2025년 현재까지도 한국시리즈 직행 팀이 0승 4패로 탈락한 유일한 한국시리즈로 남아있다.[9]

7. 여담

  • 불과 4게임만에 싱겁게 끝나면서 KBO 직원들은 줄어든 입장 수입 때문에 대단히 아쉬워 했다 카더라.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4연승 싹쓸이로 끝난 첫 번째 한국시리즈다.
  • 전후기 우승을 한 팀이 1986년과 1987년에 모두 재미를 보지 못하자 전후기 우승팀에게 이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말은 해태가 1988년 전후기 우승을 모두 독식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면서 사라졌고, 1989년부터는 단일 시즌이 되어 완전히 없어졌다.
  • 이 시리즈 때문에 다소 비극적으로 삼성을 떠난 사람이 박영길, 김시진, 장효조다. 세 사람은 나름대로 삼성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웠는데 박영길 감독은 당시로서는 사상 최초의 팀 타율 3할의 핵타선 팀을 완성했고 심지어 김시진과 장효조는 이만수와 함께 대구상고 출신 선후배 3인방으로서 대구야구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력을 구축해놓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고 이른바 '한국시리즈 우승 조급증'에 걸린 삼성그룹 비서실의 주도로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하며[12] 준우승의 원흉을 찍어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이 원흉으로 찍혔고 나란히 1988년 말에 삼성에서 쫓겨났다.
  • 박영길 감독은 10월 1일 삼성의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치렀던 잔여 5경기 중에서 1승 4패의 부진을 기록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은 후기리그 막판 패배가 결과적으로 해태의 PO 진출을 돕는 일이 됐고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올라오게 계기를 만들었다는 이유를 뒤집어 씌웠다. 여기에 적용된 논리가 박영길 감독과 김응용 감독의 개인적 친분 관계였다. 박영길 감독과 김응용 감독은 1940년생 동갑내기로서 실업야구 시절부터 국가대표 룸메이트로 가깝게 지낸 절친이자 라이벌이었는데 박영길 감독이 절친했던 김응용 감독을 위해 해태를 암묵적으로 밀어줬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박영길 감독은 1988시즌 종료 후 해임되고 만다.
  • 김시진은 이번 시리즈를 포함한 통산 3개의 한국시리즈에서 7전 7패라는 초라한 결과를 냈고 이후 다시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13] 그는 결국 1988년 롯데와의 초대형 트레이드에서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을 거둔 최동원과 맞트레이드되며 고향 대구를 떠나게 됐다.
  • 장효조는 이 시리즈 1차전에서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했는데 3년 전인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의 만세 사건까지 묶여서 한국시리즈 연속 준우승의 원흉으로 찍혔다. 그리고 1988년 시즌 종료 후 김용철과의 대형 트레이드 명단에 포함돼 삼성을 떠나게 된다. 김시진을 롯데로 보낸 후 정확히 한 달 뒤에 벌어진 트레이드였다.
  • 특이하게 전 경기가 낮 경기로 치러진 유일한 한국시리즈이다. 심지어 평일에 열렸던 대구광역시 1차전, 2차전도 낮 경기로 열렸는데, 전년도에 있었던 불상사 때문으로 추정된다.
  • 최초로 서울에서 중립 경기가 열리지 않은 한국시리즈이며[14] 최초로 홈팀이 홈 경기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시리즈다. 이전까지는 동대문이나 잠실 중립에서 우승했고,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롯데의 홈이었던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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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1987 KBO 플레이오프 1987 KBO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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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김준환의 아내는 희귀 질환인 혈소판 감소증에 걸렸고 생사의 기로에 설 정도로 병세가 나빴다. 김준환은 아픈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전남대학교병원과 야구장을 오가는 고생을 해야 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아내가 무등 야구장 관중석에서 한국시리즈를 지켜봤고 남편이 영광의 MVP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을 지켜보게 된다. 당시 관중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김준환 부부의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2] 2014년에 삼성이 .301로 경신했고 2015년에 .302로 또 다시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17년 KIA 타이거즈가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고 이듬해인 2018년 두산 베어스가 또 갈아치우며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의 주인은 바뀐 상태다.[3] 한편으로는 선동열 vs 최동원 득점지원 드립 많이 치는데 롯데도 평균은 하는 팀이었다. 다만 롯데는 최동원, 윤학길 외에는 에이스가 없었고 이로 인해 해태보다 투수진 전체적으로 뒤쳐졌다. 당시 막장이었던 빙그레 이글스청보 핀토스를 생각하면..[4] 실제로 ERA+가 고작 114.4로,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5] 나머지 하나는 2001년 두산. 65승 5무 63패 승률 0.508 득실차 -1을 기록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두산도 똑같이 삼성을 상대로 업셋 우승을 해냈다.[6]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삼성은 실제로 우려했던 무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발목을 잡아 내리 4패로 광탈해버렸다. 2년 뒤에 1989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빙그레 이글스역시 똑같은 상황을 겪었고, 삼성과 마찬가지로 경기 감각 부족이 발목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첫 업셋 우승과 함께 1989년 플레이오프를 우승하고 올라온 해태 타이거즈의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제물이 되고 만다.[타사중계3] MBC 라디오 캐스터 송인득 - 해설 김소식.[8]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준환은 아내가 출산 후 중병(혈소판 감소증)에 걸렸고 간호하느라 집 - 무등 야구장 - 전남대병원을 왔다갔다하느라 그 시즌에 유독 부진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해 우승 및 개인상 수상을 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시즌이라고 말했다.[9] 삼성은 1990년2010년에도 4연패로 우승을 놓쳤지만, 그때는 모두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올라왔다. 특히 1990년은 준PO-PO를 연속으로 패배 없이 올라왔으므로 전승준을 했다고 봐야 맞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직행팀이 1경기도 못 건지고 싹쓸이를 당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전패준이다.[10] 만약 해태가 이 해 한국시리즈를 스윕하지 못했다면 이 날 잠실에서 5차전을 치를 예정이었다.[11]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우승한 것도 1987년과 일치한다.[12] 1987년 무기력한 준우승의 충격에 이어 1988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삼성이 빙그레에게 0승 3패로 패하자 삼성그룹 비서실이 야구단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13] 선수로서의 마지막 해였던 1992년에 롯데가 우승했지만 그 해 1패에 그친 김시진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14] 이후 1991년과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는 잠실에서 열리지 않았고 두 시리즈 모두 4경기 만에 승부가 결정되었다. 1991년은 광주와 대전만 오갔고 2010년은 인천과 대구만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