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2:33:31

달빛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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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시리즈
(구) 88고속도로 씨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파일:1016281_981522_415.jpg
파일:464247049_1739949346842643_2895958203058000420_n.jpg
<rowcolor=#fff> 라이온즈 파크에서 챔피언스 필드에서
파일:달빛시리즈 2024.jpg
2024 시즌 달빛 시리즈 엠블럼
종합 전적
총 769경기
기준
삼성 라이온즈 무승부 KIA 타이거즈
393승 12무 364승
최근 경기 삼성 라이온즈 5 : 7 KIA 타이거즈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24년 10월 28일)
첫 경기 삼성 라이온즈 5 : 1 해태 타이거즈
무등 야구장
(1982년 4월 5일)[1]
최근 우세 구단 KIA 타이거즈 우세 (12승 4패)
(2024년)
역대 최다 점수 경기 KIA 타이거즈 15 : 13 삼성 라이온즈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24년 8월 31일)
역대 최다 점수 차 경기 삼성 라이온즈 1 : 22 KIA 타이거즈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17년 6월 29일)
다음 경기 삼성 라이온즈 : KIA 타이거즈
(2025년 ?월 ?일)

1. 개요2. 상세3. 이벤트 시리즈로서 역사
3.1. 2020년3.2. 2021년3.3. 2022년3.4. 2023년3.5. 2024년
4. 역대 상대 전적
4.1. 정규시즌4.2. 포스트시즌
5. 양 팀 간 트레이드6. 양 팀을 오갔던 선수ㆍ지도자들7. 양 팀의 vs놀이8. 말말말9. 여담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KBO 리그를 대표하는 전통의 원년 구단이자 리그 우승 횟수 1 · 2위에 올라있는 명문 구단인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라이벌전.

2020년 88고속도로 씨리즈라는 명칭으로 이벤트 시리즈가 시작됐는데, 이는 두 도시를 잇는 유일한 길인 88올림픽고속도로(現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88올림픽고속도로라는 도로 명칭이 2015년을 끝으로 사라져 이 도로명도 점점 잊히고 있는데다가,[2] 대구와 광주의 지역 협력 동맹을 뜻하는 달빛동맹이라는 단어가 절찬리에 사용되면서 2024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달빛동맹이라는 명칭은 지난 2013년부터 대구광역시광주광역시가 지자체 차원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며 써온 표현으로, 삼성의 연고지 대구의 옛 이름인 구벌과 KIA의 연고지 광주의 순우리말 이름인 고을에서 따온 것이다. 이외의 용례로는 대구~광주 간 철도 노선인 달빛철도가 있다.

2. 상세


KBO에서 손에 꼽히는 라이벌리로 전통적으로 양 구단 프런트와 선수단의 라이벌 의식이 상당하다. KIA와 삼성 팬덤도 서로를 주요 라이벌로 꼽는다.[3] 수도권잠실시리즈가 있다면 동남권에는 낙동강 시리즈가 있고, 영호남에는 달빛시리즈가 있다고 할 정도다. 잠실시리즈가 LG두산 중 한 쪽이 잠실이나 서울에서 떠나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 라이벌 관계인 것처럼, 달빛시리즈도 영호남 지역갈등이 완전히 소멸되고[4] KIA와 삼성을 통산 성적에서 모두 뛰어넘을 강팀이 등장하지 않는 한 영원한 라이벌 관계일 것이다.

다만 서로를 정상적인 프로 구단 취급도 하지 않거나, 아예 라이벌로 겸상할 수준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팬덤이 적지 않은 잠실시리즈낙동강 시리즈와는 달리[5] 달빛시리즈는 야구 외적인 지역감정 요소도 엮여 있고 통산 성적도 두 팀이 독보적으로 우월한 데다 1980~1990년대 한국시리즈 대결도 잦았으며, 영남과 호남을 각각 상징하는 강호라는 특성이 있어서[6] 대부분의 팬덤이 서로를 건강한 라이벌로 인정한다. 이런 점을 보면 두산 베어스-SSG 랜더스 라이벌리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7] 또한 전통의 명가 간의 라이벌리 답게 달빛시리즈는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이 벌어졌다.
  • 맹수 하면 생각이 나는 두 동물이 양 팀의 마스코트이다.(호랑이 vs 사자)
  • 두 팀의 상징 색깔인 빨간색 vs 파란색은 대표적인 대비색으로 꼽힌다.
  • 광주광역시 연고의 호남권 대표 vs 대구광역시 연고의 대경권(크게는 영남권) 대표 팀이라는 특징이 있다.[8][9] 호남권과 대경권은 인구 수가 약 490만 명으로 유사하고, 정치적으로 진보 텃밭과 보수 텃밭으로서 대립하는 지역이다.(민주당계 정당 초강세 지역의 광주 vs 보수정당 초강세 지역의 대구)[10]
  • 대한민국의 큰 틀을 받쳐온 대기업이 양 구단의 모기업이다.(현대자동차그룹 vs 삼성그룹)[11]
  • 포스트시즌에 강한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팀 KIA vs 정규시즌에 강한 페넌트레이스 최다 우승팀 삼성
  • 왕조라는 별칭이 붙은, KBO 리그에서 한국시리즈 4연패를 기록한 유이한 팀(해태 왕조 vs 삼성 왕조)
  • KBO MVP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9회)[KIA][삼성]
  • 두 팀 모두 리그 역사에서 자랑할 만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한국시리즈 전승(KIA) vs 정규시즌 최하위 없음(삼성))

KIA와 삼성은 KBO 리그의 쌍벽을 이루는 강팀이기도 하다. 2024 시즌을 기준으로 두 팀의 우승 횟수를 합치면 20회인데, KBO 리그 43년 역사에서 우승의 절반 가량을 양 팀이 나눠먹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두 팀이 동시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해는 단 4회(1995, 2019, 2020, 2023)에 불과하다. 둘 다 전성기에 무지막지한 페이스로 우승 횟수를 추가했는데, KIA는 첫 우승(1983년)부터 1997년 우승까지 15시즌 동안 9회, 삼성은 첫 한국시리즈 우승(2002년)[14]부터 2014년 우승까지 13시즌 동안 7회의 우승을 이뤄 각각 평균 1.67년(KIA), 1.86년(삼성)마다 우승을 차지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관계였다. 1980-90년대는 KIA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였다. 이 당시 삼성은 해태보다 압도적인 모기업의 지원을 받고도 해태가 아홉 번 우승을 차지할 동안 우승을 단 한 번밖에 하지 못했으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진 일곱 번이나 준우승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와 세 번 격돌해 모두 패한 것이 뼈 아픈 사실이었다.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호투하던 삼성 선발투수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가격당해 강판된 후 삼성이 패배하는 일이 벌어지자, 분개한 삼성 팬들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양 팀의 갈등이 폭발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준우승 전문', '무관의 제왕'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삼성은 해태가 IMF 외환 위기로 경영난에 처한 1990년대 후반부터 이순철, 조계현, 정회열 등 해태에서 밀려난 선수들부터 임창용, 이강철 등 해태의 핵심 선수들을 큰 돈 들여 영입했고, 해태 출신 서정환 감독까지 영입했다. 그러나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라는 역대급 명경기를 선보이자 해태에서 V9을 이끈 김응용을 감독으로 모셔오기에 이르렀다.

김응용 감독 취임 첫 해인 2001년에도 또 다시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배영수의 증언에 따르면 구단 수뇌부에서도 더 이상 우승을 언급하지 않는 지경까지 갔었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에 터진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동점·역전 백투백 홈런으로 칠전팔기 끝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때부터 삼성의 전성기가 개막했다. 2005년2006년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핏을 일궈냈고, 2011년 류중일 감독 취임 첫 시즌부터 2014년까지 KBO 최초 4년 연속 통합우승, 2015년까지 KBO 최초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삼성 왕조를 건설했다. 반면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기아로 구단이 인수된 이후 강팀의 면모를 잃어버린 타이거즈는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 최하위를 기록하며 명문 구단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고, 2009년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2010년대 초반 또 다시 암흑기를 겪기 시작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KIA와 삼성의 우승 횟수는 10 : 4로 KIA가 두 배 이상 앞서 있었지만, 2011년부터 삼성이 우승 행진을 시작하면서 2014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엔 10 : 8까지 좁혀지자 KIA 팬덤에서 "이러다 삼성에게 우승 횟수를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 왕조는, 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주축 투수들의 원정 도박 스캔들로 인해 투수 전력이 반토막나는 바람에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게 패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제일기획 이관과 함께 모기업의 투자가 줄어 프랜차이즈 3루수 박석민을 놓쳤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그룹이 어수선하던 2017년엔 4번 타자 최형우와 좌완 에이스 차우찬을 떠나 보내면서 전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그 결과 2016년과 2017년 삼성은 2년 연속 9위라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무너진 시스템을 좀처럼 복구하지 못하면서 유례없던 수준의 암흑기에 돌입했다. 반면 2016년 KIA는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2017년엔 FA 최형우 영입이라는 승부수를 던져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8년 만의 우승에 성공했다.

2018년엔 오랜만에 KIA와 삼성이 순위 경쟁을 펼쳤으나 최종 결과는 KIA가 승차없는 5위, 삼성이 6위를 차지하며 KIA의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3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끝났다. 그 이후 2019년부터 2023년까진 양 팀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 기간 KIA는 76956, 삼성은 88378을 기록하며 5년간 포스트시즌 각각 1회 진출에 그쳤는데, 이 두 팀이 동시에 비교적 장기간 중하위권을 전전한 것은 KBO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KIA와 삼성이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시즌이 네 번 있었는데, 그 중 세 번이 이 기간에 나왔을 정도다. 특히 5년간 KIA는 시즌 초반엔 상위권 경쟁을 하다가 여름을 기점으로 추락하는 패턴이 매 시즌 반복되었고, 삼성도 2020년 7월 중순까진 4위에 위치하며 팬들에게 가을야구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7월 말부터 투수진 붕괴가 가시화되어 결국 최종 8위로 마감했다. 그나마 진출한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도 결과가 나빴는데, 2021년 삼성은 시즌 말미에 kt wiz와의 타이브레이커에서 영봉패를 당해 6년만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 기회를 놓쳤으며 두산 베어스와의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0승 2패로 참패했고, 2022년 KIA는 4년만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으나 볼넷 남발과 결정적인 실책으로 한 경기만에 탈락했다.

2023년까지의 양 팀 역사를 정리하면, 1980~1990년대는 KIA(전신 해태 시절)의 전성기였고 2000~2010년대 초반은 삼성의 전성기였다. 다만 KIA의 전성기 시절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이지 매년 우승권에 위치하던 강팀이었고,[15] 삼성의 전성기 시절 KIA는 주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는 차이가 있다. 2016~2018년에는 KIA가 연이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우승도 한 번 차지한 반면 삼성은 최악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처지가 잠시 달라졌으나, 2019년부턴 둘 다 나란히 하위권에 머물게 되면서 거의 처음으로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었다. 2019~2023년 5년간 KIA의 평균 순위는 6.6위, 삼성은 6.8위로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엇갈린 역사 때문에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라이벌 관계임에도 2024년 전까지 포스트시즌에서 마지막 맞대결은 1993년 한국시리즈로, 무려 31년이나 걸렸다.

2024년에는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며 2001년 해태 타이거즈가 기아에 인수된 이후 3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만나게 되었다. 1차전에서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초로 우천 서스펜디드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결과는 4승 1패로 KIA가 삼성을 꺾고 2017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3. 이벤트 시리즈로서 역사

3.1. 2020년

6월 20일과 21일에 이뤄진 양 팀간의 경기에서는 KIA가 올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문희수가 시구, 김봉연이 시타를 맡으면서 조만간 이벤트 시리즈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는 이날부터 이벤트를 개시하려다 준비 부족으로 미뤄졌다는 루머가 떠돌았을 정도였다.
파일:허삼영 답례품.jpg
맷 윌리엄스 감독이 KIA 감독으로 취임을 한 후 상대팀 감독에게 선물로 와인을 한 병씩 주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각 구단 감독들이 답례품을 준비하는 문화가 새롭게 탄생되었다. 7월 1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경기에서, 삼성 허삼영 감독은 평소 와인을 즐긴다고 하여 연고지 인근 청도군의 감으로 만든 청도 감 와인을 답례품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3연전에는 25일과 26일[16] 이틀 동안 드디어 양 팀간의 공식적인 첫 이벤트 시리즈 매치가 열렸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이 시리즈에는 서로 올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시리즈 첫째 날인 25일에는 선동열 前 감독이 시구했으며, KIA 프런트에서는 이번 이벤트에 맞춰 양현종오승환 사진이 함께 래핑된 기념구와 반팔 티셔츠, 열쇠고리 등 기념 상품을 판매했다. 그 외에도 TBC에서 챔피언스 필드까지 찾아와 직접 취재를 하고, 전상현최채흥[17]이 함께 하는 랜선 싸인회, 타이거즈-라이온즈 팬인 커플이나 부부 유니폼 인증샷, 1980~90년대 양 팀간의 경기 직관 사진을 SNS에 올리면 기념 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렸다. 첫 이벤트 시리즈 경기는 25~26일 모두 KIA가 승리했다.

이후 9월 17일~18일에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두 번째 이벤트 시리즈가 열렸다. 그리고 이 두 경기도 모두 KIA가 승리했다.

3.2. 2021년

시리즈 개최는 아니었지만, 4월 24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타이거즈 레전드데이'를 맞아 양 팀의 경기에서 김응용 前 감독이 시구를 했다. KIA 선수단은 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가졌고, 삼성 선수단은 올드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지난해와 달리 이날은 삼성이 홈런 2방을 앞세워 8:4로 완승하면서 징크스를 깼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25일엔 오승환이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개인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다.

직접적인 시리즈 매치는 없지만, 2021년 6월 10일에는 중계방송사인 MBC SPORTS+가 크라식 매치라는 타이틀로 옛날식으로 경기를 중계했다. 이날은 크라식 매치마다 나오는 구자욱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승리를 가져왔다.

이후로도 삼성이 엄청난 상승세를 타고 있음과 동시에 KIA는 엄청난 추락세를 기록하고 있어 임기영멩덴 선발일 때를 제외하고 어김없이 삼성이 승리해서, 최종적으로 삼성이 11승 5패로 압도했다.

3.3. 2022년

이번 시즌은 반대로 삼성이 엄청난 추락을 하고, KIA는 어느 정도 팀이 다시 살아났지만 KIA가 폭발적인 상승세를 하고 있던 5월을 제외하고 어김없이 삼성이 위닝시리즈 내지 스윕을 하면서 삼성이 우세를 확정지었다.

3.4. 2023년

연일 죽을 쒔던 KIA가 삼성과의 광주 3연전 스윕을 가져가며 반등에 성공했고 5월 16일, 5월 17일 대구 2연전[18]마저 쓸어담았다. 삼성은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경기에서 뷰캐넌의 완투승으로 겨우 KIA전 연패를 끊어냈다.

후반기에는 포항에서 KIA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으나 이어진 대구 원정에서 위닝 시리즈와 1승을 가져가며 삼성이 분전했다.[19] 하지만 10월 8일 ~ 10월 9일 경기에서 다시 KIA가 2연승을 달리면서 상대 전적 우세를 굳혔다.

3.5. 2024년

삼성이 홈 개막날 나눠준 캘린더에 따르면 직접적인 시리즈 매치는 7월 2일 ~ 7월 4일 대구 3연전으로 예정되어 있다. 다만 기존의 88고속도로 씨리즈가 아닌 달빛시리즈로 바뀌었다. 두 팀은 해당 시리즈에서 각자의 레트로 유니폼(삼성 : 2002년 원정 유니폼, KIA : 2001년 원정 유니폼)을 착용했고, 시구와 시타가 이루어졌으며 삼성 홈구장임에도 전광판에 KIA 선수들의 등장 영상이 재생됐고 KIA 응원을 한 바 있었다. KIA 오프닝 영상 2024년 대구 달빛시리즈 첫 경기에서는 호걸이가 시구를 하고 대구시 마스코트인 '도달쑤'가 시타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광주 경기에서 이 시리즈를 하게 되면 삼성 선수 등장 영상이 나올 수도 있단 것이다.

7월 16~18일 광주에서 열리는 3연전도 달빛시리즈가 확정되었다. 이번 시리즈에는 삼성만 레트로 유니폼을 착용하고 KIA는 홈 유니폼을 그대로 입기로 했다. 지난번 대구에서 치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광주 달빛시리즈 첫 경기에서 블레오의 시구와 광주시 마스코트인 오매나의 시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우천취소로 무산됐다. 합동 응원 또한 진행되었다.

KIA 타이거즈의 달빛시리즈 리뷰 영상
삼성라이온즈의 달빛시리즈 리뷰 영상

2024년 달빛시리즈는 영남과 호남지역의 연고 야구팀간의 시리즈라는 의미있는 시리즈였지만, 시리즈 활성화를 위한 과제도 남겼다. 대구에서 열린 7월 2~4일 3연전과 광주에서 열린 7월 16~18일 3연전은 대구 TBC는 전부 중계한 반면, 광주 KBC는 중계를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달빛시리즈의 옥에티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시리즈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선 광주 KBC 측의 중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3루수 응원 더비 대결이다.[20]

2024년 한국시리즈에 KIA가 정규시즌 1위로 선착, 삼성이 2024년 플레이오프에서 LG를 3승 1패로 꺾으면서 1993년 한국시리즈 이후 무려 31년 만에 달빛 한국시리즈가 성사되었다.

2024년 10월 2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6회초를 진행하던 중 폭우로 인한 우천 중단이 되더니 결국 한국시리즈 최초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었다.

2024년 10월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가 삼성을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4. 역대 상대 전적

4.1. 정규시즌

연도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상대우위
1982년 3승 13패 13승 3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83년 11승 1무 8패 8승 1무 11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84년 11승 9패 9승 11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85년 7승 15패 15승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86년 11승 1무 6패 6승 1무 11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87년 9승 9패 백중세
1988년 11승 7패 7승 11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89년 12승 8패 8승 12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0년 13승 7패 7승 13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1년 14승 4패 4승 14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2년 8승 10패 10승 8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93년 7승 11패 11승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94년 10승 1무 7패 7승 1무 10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5년 6승 1무 11패 11승 1무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96년 11승 7패 7승 11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7년 10승 1무 7패 7승 1무 10패 해태 타이거즈 우세
1998년 8승 10패 10승 8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1999년 8승 10패 10승 8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0년 7승 1무 11패 11승 1무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1년 시즌 중 KIA 타이거즈로 인수
2001년 6승 13패 13승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2년 7승 12패 12승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3년 12승 2무 5패 5승 2무 12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04년 6승 1무 12패 12승 1무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5년 3승 15패 15승 3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6년 9승 2무 7패 7승 2무 9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07년 8승 10패 10승 8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08년 9승 9패 백중세
2009년 13승 6패 6승 13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10년 7승 12패 12승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1년 7승 12패 12승 7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2년 6승 1무 12패 12승 1무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3년 4승 12패 12승 4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4년 4승 12패 12승 4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5년 8승 8패 백중세
2016년 8승 8패 백중세
2017년 12승 4패 4승 12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18년 6승 10패 10승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19년 8승 8패 백중세
2020년 10승 6패 6승 10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21년 5승 11패 11승 5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22년 6승 10패 10승 6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2023년 11승 5패 5승 11패 KIA 타이거즈 우세
2024년 12승 4패 4승 12패 KIA 타이거즈 우세
통산 전적 364승 12무 393패 393승 12무 364패 삼성 라이온즈 우세

해태-KIA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해의 경우 삼성에 상대 전적 열세를 보인 게 1993년뿐이고, 삼성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해의 경우 해태-KIA에 상대 전적 열세를 보인 건 2006년뿐이다.

4.2. 포스트시즌

연도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결과
1986년 한국시리즈 4승 1패 1승 4패 해태 타이거즈 KS 우승
1987년 한국시리즈 4승 4패 해태 타이거즈 KS 우승
1990년 플레이오프 3패 3승 삼성 라이온즈 KS 진출
1993년 한국시리즈 4승 1무 2패 2승 1무 4패 해태 타이거즈 KS 우승
2024년 한국시리즈 4승 1패 1승 4패 KIA 타이거즈 KS 우승
통산 전적 16승 1무 7패 7승 1무 16패 KIA 타이거즈 우세

1990년 플레이오프를 제외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네 번 만나 모두 해태-KIA가 승리했다. 해태-KIA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시리즈 불패의 구단인 반면 삼성은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까지 한국시리즈만 가면 힘을 못 쓰는 팀이었다. 그 특성이 양 팀의 맞대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986년, 1993년, 2024년 한국시리즈는 해태-KIA가 선착을 한 상태에서 플레이오프를 거친 삼성과 맞붙은 것이고, 1987년 한국시리즈는 삼성이 선착을 하고 해태가 플레이오프 5경기를 치르고 올라갔음에도 해태가 4연승으로 우승했지만 이때도 플레이오프 종료 후 한국시리즈가 9일이나 지나서 시작됐다는 변수가 존재했다.

5. 양 팀 간 트레이드

5.1. 서정환

트레이드 일자 1982. 12. 07.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서정환 현금

KBO 리그 최초의 트레이드이자,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다.[21] 주전 자리에서 밀려 해태로 현금 트레이드된 내야수 서정환은 해태 왕조에 기여하며 해태의 트레이드 승리로 끝났다.

5.2. 김승남정성룡

트레이드 일자 1992. 11. 17.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김승남 정성룡

포철공고 시절 제2의 장효조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유망주였던 정성룡은 정작 프로에 입단하니 꽃을 피우지 못하고 2군을 맴돌았고, 좌타자에 항상 목말라했던 김응용 감독의 눈에 띄어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1993 시즌에는 해태의 V7에 기여하였다.

5.3. 동봉철, 김태룡이병훈, 김훈

트레이드 일자 1996. 05. 25.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동봉철, 김태룡 이병훈, 김훈

백인천 감독이 주도한 트레이드. 동봉철김태룡199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우승을 맛봤다. 이병훈은 1997년 초 음주운전에 교통사고를 내고 거기에 후유증까지 얻으며 선수 생활이 어려워져 은퇴했다. 이 트레이드도 해태의 승.

5.4.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 + 20억 ↔ 임창용

트레이드 일자 1998. 12. 14.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 + 20억 원 임창용

KBO 리그 역대 트레이드 중 최대어급의 트레이드이자 가장 충격적인 팀 이적 중 하나이다. 임창용과 양준혁 두 선수 모두 전성기 나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해태 타이거즈의 모기업인 해태그룹은 힘들어졌고, 그로 인해 선수를 팔아야 해서 현금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임창용은 삼성에 가기 싫어서 울었다고 하고, 항상 삼성만을 원했던 양준혁도 군기로 유명한 해태에 입단 거부 선언까지 하는 등 잡음이 많았으나[22] 김응용 감독이 잘 달래서 해태에 합류하였다. 훗날 양준혁은 삼성으로 복귀하며 김응용과 재회했다.

양준혁은 아이러니하게 합류 후 1999 시즌 커리어 하이를 달성[23]하고 1년 뒤 LG 트윈스로 이적했고, 임창용은 삼성에서 전성기를 꽃피우며 결국 이 트레이드 이후 18년 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진 후 방출되어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로 합류했다. 결국은 양준혁과 임창용 모두 자신들의 고향팀이자 친정팀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 재밌는 건 트레이드 당사자였던 양준혁과 임창용은 2002~2007 시즌 한솥밥을 먹으면서 한국시리즈 반지 3개를 얻었다는 것이다.

5.5. 신동주강영식

트레이드 일자 2001. 03. 21.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신동주 강영식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김응용이 자신이 총애하던 좌완투수 강영식을 데려오기 위해[24] 주전 외야수인 신동주와 맞바꾼 트레이드. 하지만 강영식은 정작 권혁에 밀려 자주 출전하지 못했고, 그나마 의의가 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투수였다는 것 정도. 그 이후 강영식은 선동열과의 갈등으로 2007년에 롯데 자이언츠신명철과 1:1 트레이드가 되었고, 롯데에서 활약했다.

신동주는 짧은 기간 동안 타이거즈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으나, 2003 시즌이 끝난 후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다시 삼성에 돌아갔다. 하지만 2005년, 최용호와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이적했으나 부진하여 웨이버 공시된 후 결국 은퇴한다.

5.6. 이강철

트레이드 일자 2001. 07. 30.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이강철 2,600만원

선동열 때문에 항상 2인자였던 해태의 간판 투수 이강철은 KBO FA 이적 1호로 삼성으로 갔다. 하지만 부진으로 먹튀가 되어 버린 이강철은 고향 팀으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해태가 KIA로 인수되기 이틀 전에 성사된 트레이드여서 7월 31일 인천 SK전에서 이강철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투구하는 마지막 모습을 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 중부 지방을 강타한 집중 호우로 우천 취소되었다. 결국 이강철은 친정팀으로 복귀하여 부활했고, KIA에서 성대하게 은퇴했다.

5.7. 신동주최용호

트레이드 일자 2005.07.24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4~2009).svg|width=65
]]]]
신동주 최용호

최용호는 트레이드 이후 1군 마운드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한 뒤 2006년 시즌 후 방출되었고, 신동주 역시 2006 시즌 중 방출되며 두 팀 모두 손해를 보게 된 트레이드가 되었다.

5.8. 김희걸조영훈

트레이드 일자 2012.06.21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0~2016).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김희걸 조영훈

2005년 트레이드 이후 7년 간 선수 교류가 없었던 두 팀이 삼성 전임 감독을 지냈던 선동열 감독과의 인연으로 오랜만에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김희걸은 삼성 라이온즈 불펜에서 추격조 롤을 수행하며 한국시리즈 엔트리까지 들어 2개의 우승반지를 획득했으나, 조영훈은 초반의 맹타 이후 결국 고질적인 수비 불안과 부진으로 시즌이 끝난 후 전력보강선수 지명을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며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5.9. 한기주이영욱

트레이드 일자 2017.11.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7~2020).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한기주 이영욱

최고 유망주이자 데뷔 후 즉시 전력으로 팀을 이끌던 투수 한기주는 아마 시절부터 누적된 혹사로 인해 젊은 나이부터 끊임없는 부상 및 재활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한기주가 KIA 프런트에 꾸준히 트레이드 요청을 했고, KIA 프런트는 여러 구단과 접촉해 본 결과 삼성이 외야수 이영욱을 제시하면서 1:1 트레이드가 되었다.

KIA의 경우 외야수 김호령의 군 입대로 생긴 로저 버나디나의 중견수 백업 롤을 수행해줄 것으로 기대했고, 삼성은 신용운이 그랬던 것처럼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힘을 빌려 한기주가 부활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영욱은 허벅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한기주는 2018 시즌 초 잠깐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결국 6점대 불펜이 되고 2019 시즌 이후 은퇴하며 양팀 모두 손해만 본 트레이드가 되었다.

5.10. 류지혁김태군

트레이드 일자 2023.07.05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류지혁 김태군

KIA는 FA 시장에서 박동원을 놓친 이후 주효상, 한승택, 신범수 등 여러 자원들로 주전 포수 자리를 돌려막기했으나 누구 하나 공수 양면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삼성은 김상수, 오선진, 이원석의 이적 등으로 인해 얇아진 내야 뎁스를 보강하기 위한 양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트레이드.

여담으로 다음 해 두 선수는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다 정규시즌보다 한국시리즈에서 더 뛰어난 기록을 보여주었는데, KIA 타이거즈가 우승하고 김태군은 한국시리즈 4차전 데일리 MVP가 되었다. 우승 운명을 결정짓는 5차전에서도 두 선수 모두 활약했으며 김태군 같은 경우에는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트레이드 후 다음 시즌에서 서로 리그 1위, 2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게 되면서 윈-윈 트레이드가 되었다.

6. 양 팀을 오갔던 선수ㆍ지도자들

지도자로서 오간 경우 ★ 표시.
현역일 경우 볼드체 표시.

7. 양 팀의 vs놀이

  • 김봉연 vs 이만수
    • 프로야구 초창기의 홈런왕 대결. 실업야구의 슈퍼스타였던 김봉연과 신예 홈런타자 이만수 두 선수 모두 원년 출범부터 전국구 인기스타가 되어 큰 이슈를 몰고 다녔다. 결국 원년 홈런왕은 김봉연이 차지했고 이후 최초 통산 100홈런은 이만수가 먼저 달성했다. 당시 둘 중 누가 최초의 통산 100홈런을 먼저 달성할 것인지가 장안의 화제였다.히스토리 13 이만수 vs 김봉연 '최초 100호 홈런 전쟁'
  • 김성한 vs 이만수
    • 원년부터 1990년대 초기까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이자 각각 영호남을 대표하는 타자들이었다. 프로야구 출범 전 실업에서 뛰던 선배들과 달리 마침 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프로야구 원년에 참가해 누적기록 손해 없이 라이벌로서 십수년간 활약했다. 첫 해부터 둘다 리그 탑급 성적을 내는 스타였는데 통산 성적만 놓고 보면 이만수가 조금 앞섰다. 영호남 지역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의 대결이라 양팀 팬들의 관계는 치열했지만[27] 실제 두 선수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두 선수는 1958년생 개띠 동갑내기인지라 대학 시절부터 잘 어울렸다고 하며 1995년 김성한의 은퇴식 때 이만수가 자신의 경기를 제치고 무등구장까지 찾아와 친구의 은퇴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도 했다. 광주MBC 김성한 은퇴식 영상
  • 이종범 vs 양준혁
    • 프로야구 커뮤니티 최고의 떡밥 중 하나. 통산 KBO 성적은 양준혁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1990년대 중반(이종범 일본 진출 전) 한정으로는 이종범이 1인자였고 양준혁이 좋은 성적에도 2인자로 활약했었기 때문에[28] 전성기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엔 이종범이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NPB에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종범의 성적이 부상 이전까지는 세이버매트릭스상으로 꽤 괜찮게 나오면서 '상위 리그에서 유의미한 성적은 어디까지 어떻게 인정해줘야 하는가?'의 예로 간혹 논쟁이 붙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상태이다. 통산 커리어는 양준혁의 우세, 전성기는 이종범의 우세다. 최근 들어 두 선수는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양신팀 vs 종범신팀으로 대결하고 있다.
  • 임창용은 어느 팀 레전드인가?
    • 돈이 없어 임창용을 삼성에 팔아야 했던 해태와, 임창용의 전성기를 함께 한 삼성. 임창용이 삼성에서 엄청난 커리어를 쌓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거쳐 시카고 컵스에서 퇴단하고 삼성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다들 삼전드의 컴백이라며 반겼으나[29],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며 방출되고 당시 도박 선수 명단이 알려지기 전, 대다수 크보팬들은 "해당 선수들 은퇴해야한다!" 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정작 해당 선수 중 임창용이 있음이 알려지고 그 선수만 방출이 되자 일부 KIA팬들은 다시 불러 오자며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임창용은 2016년 KIA에 복귀해서 반갑다는 환영을 받았고 3년간 활약하며 우승도 함께하였으나 결국 김기태 감독 및 프런트와 불화로 은퇴식도 없이 방출되며 현역 생활을 쓸쓸히 마무리했다. 이래저래 삼성팬들에게는 전성기를 함께하며 좋은 순간들을 같이 보낸 팀 레전드이자 애증의 존재, KIA팬들에게는 아쉽게 떠나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아픈 손가락이다. 결론적으론 임창용은 삼성의 레전드에 가까우며, 타이거즈의 스타이자 아픈 손가락이라고 볼 수 있다.
  • 최형우는 어느 팀 레전드인가?
    • 방출생 출신으로 신인왕에서부터 삼성 왕조의 주역이 되는 신화를 쓰며 팀의 간판 스타이자 레전드로까지 성장한, 차기 영구결번 후보였던 최형우가 KIA로 이적하게 되었고, 이적 직후 팀에 우승을 선사하고, 꾸준히 활약을 이어가며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간판 스타로서 활약하며 팀에 기여하였으며, 본인도 리그의 최상위 레전드로 그 위상을 높이게 되며 생긴 논쟁이다. 결론적으론 양팀 모두의 레전드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의 경우 이견의 여지없는 레전드이며,[30] KIA의 경우에도 최형우가 타이거즈 이적 후 명예의 전당 확정급의 선수로 올라섰고, 타이거즈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의 성적을 기여하였기에 MLB 기준으로 본다면 영구결번도 가능한 상황이 되어 레전드라고 부르기 충분한 상황이다.
  • 김선빈 vs 김상수
    •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양 팀의 주전 유격수. 특히 2012~2014 시즌에 둘 중 누가 더 잘하는 유격수인지 간혹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김주형정인욱 or 우동균 or 이영욱
    • 안터지는 노망주들끼리 바꿔보자고 양 팀팬들이 서로 트레이드 의견을 묻기도 했다. 프런트에서는 시도해본 적 없고 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하는 이야기. 다만 이영욱은 이후 한기주와 트레이드 되어 KIA 유니폼을 잠깐 입기도 했다. 결국 해당인물 모두 끝내 이렇다할 활약을 못한 채 방출됐다.

8. 말말말

“직장을 옮기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큰 것인지 몰랐습니다.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는 것 같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어떤 잡지를 보니까 직장 옮기는 스트레스가 자식 먼저 보내는 스트레스나 부모 잃은 스트레스 못지않다고 했던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 같아. 아무튼 어려워요”
- 2000년 11월 5일, 김응용 인터뷰, 해태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후 #
"영호남 라이벌팀인 해태와 삼성전은 아주 치열했다. 광주로 원정 경기를 가면, 해태 응원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수 바보’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담배 필터를 귀에 틀어막고 타석에 들어선 적도 있다. 그때는 해태 팬들이 너무 두려웠다. 나한테 바보라고 놀린 사람은 그들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만수 바보’란 구호가 듣기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 2011년 7월 4일, 이만수 인터뷰 #
"KIA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30년 동안 쌓였던 한을 풀 기회다. 설령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관계 없다. 삼성과 KIA가 붙는 한국시리즈 매치업은 상당한 파괴력이 있는 흥행 카드가 되지 않겠는가"[33]
- 2011년 7월 5일, 삼성 구단 관계자 인터뷰 #
나이쑤 내가 다 기뻤음[34]
- 2013년 7월 2일, 손동욱정병곤에게 #
"아마 내가 은퇴하기까지 (대구에서) 야유는 감당해야 하지 않겠나"[35]
- 2017년 7월 18일, 최형우 인터뷰 #
"해태하고 코리안시리즈나 이런 게임을 하면 해태한테 많이 진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93년도에 저희들은 박충식 선수가 던졌고 2대1 인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동열, 주자 2루에 놔두고 제가 2루타 쳐서 동점 만드는 상황이 있습니다. 다른 홈런 치고 이런 것보다도 그 게임이 아마도 제일 인상 깊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 2018년 4월 16일, 이종두 인터뷰,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36]을 추억하며 #
"해태 참….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했는데. 검은 바지에 위에 빨강 옷을 입고 나오면 떨기도 했다. 허허허. 한 시대를 풍미했는데. 당시 해태 타이거즈는 자금력이 없었고, 삼성 라이온즈는 있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삼성이 반대로 우승을 했다면 야구판이 어떻게 됐을까…. 삼성이 1980년대 우승을 많이 했다면 새 야구장도 빨리 지었을 것이고, 투자도 더 많았을 텐데. 자꾸 늦어졌다"
- 2019년 8월 15일, 류중일 인터뷰 #
"내년에 가장 위협적인 팀은 삼성 라이온즈라고 본다. 공격력도 굉장히 강하고, 선발 투수들도 좋은 선발 투수들이 많다. 그리고 구자욱 선수도 빠져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붙는다고 하면 굉장히 껄끄러운 팀이지 않을까 싶다. 올 시즌 전체적인 팀들을 놓고 봤을 때 다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삼성 라이온즈가 2등을 차지했고 아무래도 올 시즌에 큰 경기를 치뤄본 젊은 선수들이 내년에는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내년에 가장 껄끄러운 팀은 삼성이 되지 않을까 싶다."
- 2024년 11월 6일, 이범호 인터뷰 #

9. 여담

  • 해태-KIA 타이거즈의 경우 KBO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2회) 기록과 KBO 한국시리즈 진출 시 100% 우승 기록, 매 연대별 우승 기록[37][38]을 가지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페넌트 레이스 최다 우승(9회) 기록과 포스트 시즌 최다 진출(30회) 기록과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진출(12년 연속) 기록과 리그 최하위 순위 횟수 0회 기록[39]을 가지고 있다.
  • KIA와 삼성 양쪽에서 구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는 김응용, 선동열, 임창용, 최형우가 있다.
    • 김응용은 1980-90년대 해태의 감독으로 18년간 집권하면서 아홉 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2001년 삼성으로 옮겨 2002년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성공시켰다. 이후 제자 선동열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자신은 삼성 구단 사장으로 영전했고, 사장 퇴임 이후로도 고문으로서 삼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문직에 있던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구자욱을 지명하도록 스카우터들을 압박한 것이 대표적인 예. KIA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삼성에겐 이후 전성기로 이어지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줬기에 양 팀 팬들에게 모두 호평받는 몇 없는 인물이다.
    • 선동열은 해태 선수 시절 당대의 독보적인 에이스 투수로서 팀의 여섯 차례 우승을 이끌었고, 그의 등번호(18)는 은퇴 후 타이거즈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이후 해태 시절 스승이었던 김응용 삼성 감독 아래에서 코치로 있다가 2005년 삼성 감독으로 취임해 2005~2006년 2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의 삼성 감독 재임기는 불펜 혹사 논란, 재미없는 스몰볼 야구, 프랜차이즈 선수 홀대에 대한 반감과 리빌딩을 통해 삼성 왕조의 기틀을 닦았다는 재평가가 공존하기에 삼성 팬덤 내에서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2012년엔 친정팀 KIA의 감독에 취임했으나 3년간 588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기면서 감독 선동열은 선수 선동열과 달리 타이거즈 팬들의 혹평을 받았다.
    • 임창용은 1995년 해태(KIA의 전신)에서 데뷔한 투수였으나, 1999년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양준혁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하였다. 삼성에서도 '애니콜'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혹사를 감당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해외 진출 이후 2014년 삼성에 복귀해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그러나 2015년 원정 도박 파문으로 인해 수사를 받음에 따라 삼성과 계약이 해지되었고, 2016년 고향팀 KIA에 입단하여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2018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커리어에 걸맞은 명예로운 은퇴를 하지 못했다.
    • 최형우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기용되기 시작하여 2010년대 초반엔 삼성의 4번 타자로서 4년 연속 통합우승, 삼성 왕조의 주역으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7년 고향팀 KIA와 4년 120억 원 FA 계약을 체결해 이적했고, KIA에서도 활약하며 8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적 과정에서 "전라도 출신이라 소외감을 느꼈다"라는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삼성 팬덤에게 이미지가 실추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대구경북에 확산되자 KIA 선수단 및 코치진, 2020 시즌 주장 양현종과 이화원 대표이사가 각각 1,000만 원씩 총 3,000만 원을 대구적십자사에 기부를 하며 달빛동맹에 힘을 쓰기도 했다.
  • 오승환의 400번째를 제외한[45] n백 번째 세이브가 모두 달빛 시리즈에서 나왔다.
  • 두 그룹끼리는 사업 영역이 겹치는 경우가 몇 있다. 신용카드는 삼성카드와 현대카드, 광고 업무는 제일기획과 이노션이 있다. 증권업으로는 삼성증권과 현대차증권, 아파트 브랜드는 래미안과 힐스테이트가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승용차와 트럭에서 대결을 하였는데 삼성 쪽에서는 트럭은 삼성중공업(삼성상용차), 승용차는 삼성자동차[46]가 맡았고,[47] 현대차그룹의 경우 기아[48]와 현대자동차가 현재까지도 담당한다.
  • 2024년 두 팀은 잠실팀들 상성이 극과 극인데 KIA는 팀 자체가 엘나쌩일 정도로 엘지전 성적이 좋은 반면 두상바인 선수가 많고, 삼성은 두나쌩이 많지만 엘상바인 선수가 많다.[49] 대표적으로 팀의 마무리 투수인 정해영은 엘지전에서는 악마이지만 두산전 성적은 최악이며, 오승환김재윤은 두산 상대로 강하지만 엘지전 성적이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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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선수단 명단선수단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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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기록 해태-KIA 타이거즈 기록 및 인물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1호 기록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공사 현장 변천사홈런존 저주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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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IA 타이거즈로서의 첫 경기는 2001년 8월 21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6 : 2 KIA 타이거즈 경기이다.[2] 애초에 88올림픽고속도로라는 명칭 자체가 전두환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성공을 기념한답시고 붙였던 이름이라 영호남 지역과는 연관성이 없었다.[3] 삼성의 또 다른 라이벌은 롯데 자이언츠(클래식 씨리즈)와 두산 베어스(싸대기 매치)가 있지만, 롯데는 삼성과 통산 성적에서 많이 뒤쳐져 있으며 같은 경상도 연고 구단이기 때문에 연고지 간 감정이 거의 없고, 두산도 포스트시즌에서 여러 차례 격돌했던 팀이지만 야구 외적으로는 관심 자체가 전무한 편이다. KIA도 마찬가지로 엘롯기로 묶이는 롯데 자이언츠(해태 시절 제과업계 라이벌, 선동열 vs 최동원), LG 트윈스(잠실구장 패싸움 사건, 잠실 야구장에서의 관중 동원)가 라이벌로 꼽히기도 하지만 통산 성적으로 보나 지역 구도로 보나 삼성만큼 완벽한 대척점에 선 라이벌은 없다.[4] 달빛시리즈가 단순한 연고지 라이벌리가 아니라 투수력/타력, 정규시즌/포스트시즌, 호랑이/사자 등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고지에 기인한 라이벌리일 경우 어느 한 팀이 연고지 이전을 벌이면 그 라이벌리는 흐지부지된다.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시절 더비 상대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5] 예를 들어 2000년대 후반 두산 팬들은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무릎을 꿇으면서 SK를 최고 라이벌로 생각했었다. 지금은 LG 성적이 올라가며 두산 팬들도 LG를 더 주요한 라이벌로 꼽는다. 낙동강 시리즈 역시 롯데 팬덤은 NC를 두고 근본 없는 신생구단이라며 무시하고, NC 팬덤은 반대로 롯데의 역린인 성적을 건드리며 맞수를 놓는다. 앞의 두 시리즈는 비슷한 지역 구단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성적/정통성 논리가 개입된 더비 매치에 가깝다면 달빛시리즈는 둘 다 명문구단에 비슷한 지역 구단도 아니므로 지역감정의 논리가 더 크다.[6] 영남에는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나 창원의 NC 다이노스도 있지만 롯데는 강호보다는 약체의 이미지가 강하고 NC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에 포함되기가 모호하다. 호남에도 전주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사라진 팀이다.[7] 실제로 두산과 SSG도 대표적 라이벌로 꼽히며 SSG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만날 때마다 전승을 거뒀다.[8] 해태-KIA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있던 시절에도 전남권뿐만이 아닌 호남권 전체를 대표했다.[9]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도 영남지역 연고 팀이긴 하나(롯데 자이언츠: 부산광역시, NC 다이노스: 경상남도 창원시) 롯데 자이언츠는 최하위로 마치는 시즌이 매우 잦았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1992년 이후로 32년 째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NC 다이노스는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에 비해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2012년 첫 창단 구단이기 때문에 사실상 영남지역 연고 대표 팀은 삼성 라이온즈라고 봐도 무방하다.[10] 재미있게도 현재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의 상징색은 KIA-삼성의 상징색과 서로 반대이다.[11] 사실상 또다른 재계 라이벌 시리즈로도 볼 수 있다.[KIA] 85·88 김성한, 86·89·90 선동열, 94 이종범, 09 김상현, 11 윤석민, 17 양현종.[삼성] 83 이만수, 87 장효조, 93 김성래, 97·99·01·02·03 이승엽, 04 배영수.[14] 첫 공식 우승은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우승으로, 이 당시 삼성이 전·후기 리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최초로 한국시리즈를 소멸시키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대의 야구 팬들뿐만 아니라 삼성 구단조차 이를 공식적인 우승으로 여기지 않았었다. 물론 KBO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식 우승으로 인정한다.[15] 애초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끼지 준우승을 7번이나 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삼성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강팀이었다는 의미이다.[16] 원래 24일~25일에 개최하려고 했으나, 24일 우천 취소가 되면서 하루씩 미뤄졌다.[17] 둘은 대구상원고등학교 2년 선후배 사이다. 생년월일은 1년 차이이나, 전상현이 부상으로 인해 1년 유급했기 때문.[18] 5월 18일 경기는 우 천취소.[19] 그러나 이미 승리를 많이 헌납해서 우세 불가와 열세 확정을 8월에 확정지었다.[20] 특히 이 두 팀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1루 응원석.[21] KBO 리그 최초 선수 간 맞트레이드는 정영기차동열 맞트레이드다.[22] 그래도 팀에 합류하고 나서는 둘 다 잘 지냈다. 임창용은 안지만, 윤성환 등 삼성 투수들과 친하게 지냈고 양준혁도 군기라고만 생각했는데 kia에서 선후배 간의 잘 챙겨주는 문화를 느꼈다고.[23] 다만 1999년은 1982~2013년까지 시즌 중 최고의 타고 시즌이어서 클래식 기록들이 그렇게 보인 것이고, 실제론 양준혁이 당시에 데뷔하고 뛴 7년 중 가장 낮은 wrc+를 기록한 해였다.[24] 강영식은 당시 김응용 감독이 원하는 워너비 선수 조건인 '공이 빠르고 밥도 많이 먹고 덩치가 큰 좌완 투수'에 부합했다. 이 때문에 해태 입단 초기 때는 김응용 감독이 광주 자택에서 직접 밥을 해먹여 키울 정도로 총애했다. 참고로 강영식과 함께 광주에서 숙식을 했던 선수가 당시 김응용의 부산상고 후배였던 채태인.[25] 1983년~2000년까지 18년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는 동안 무려 9번의 우승을 이끌었고,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 된 2001년엔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해 본인의 첫 준우승을 하였으나, 이듬해인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이 없었던 삼성에게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해 주었다. 이후 200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현대 유니콘스에게 패하여 준우승을 한 후 선동열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겨주고, 본인은 야구인 최초의 야구단 사장직을 역임하게 되었다.[26] 2005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고, 2011년 류중일 당시 삼성 수비/주루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긴 뒤, 1년간 현장을 떠나 있었다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다.[27] 이만수가 무등구장 원정에 올 때마다 해태팬들이 '만수 바보~'라고 놀려대기도 했다.[28] 양준혁은 이종범이 떠난 이후에도 같은팀에 1인자가 등장하며 꾸준한 2인자 그룹의 이미지가 더욱 공고해졌다.[29] 사실 임창용은 해외 시절 인터뷰를 여러 번 하면서 말년은 타이거즈에서 뛰고 싶다고 하였으나, FA 신분이 아니라 삼성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2011 시즌 인터뷰 당시에는 타이거즈 복귀를 강력 어필했으나, 그 다음 해부터 사이가 껄끄럽던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자 그 이야기가 흐지부지 되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KIA나 삼성 어디라도 부정적이지 않지만 선동열 있는 곳은 안 간다[30] 이적 당시 구설수가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가고 최형우도 팬들에게 꾸준히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며 팬들과의 관계도 많이 나아졌다.[31] 2011년 4월 16일, 두산과 삼성의 경기 8회 초, 정수빈이 기습번트를 치고 1루로 달려나가던 도중에 정전이 되어 경기장 전체가 칠흙같은 어둠에 쌓였던 사상 초유의 사태.[32] 참고로 두 구장의 설계사가 공간으로 같다. 챔피언스 필드를 설계 후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개선하여 라이온즈 파크를 지었다는 게 정설이다.[33] 이후 KIA와 삼성은 2024년 한국시리즈에서 31년만에 맞붙었다. 삼성은 1승 4패로 패배하며 결국 30년 동안 쌓였던 한을 푸는 데에는 실패했다.[34]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3년 6월 28일, 양 팀간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삼성 정병곤의 페이스북에서 당해년도 KIA 1라운드 지명 손동욱이 '나이쑤 내가 다 기뻤음'이란 댓글을 달았다가 KIA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뒤늦게 이에 대해 단국대학교 선후배 사이라서 그랬다고 해명했지만, 잠시 더위를 먹어서 그랬다는 핑계로 더더욱 욕을 먹었다.[35] FA로 KIA 이적 당시, 삼성에 '소외감'을 느꼈다는 실언으로 이적 후 첫 시즌인 2017 시즌 시범경기부터 라이온즈 파크 원정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KBO 올스타전/2017년을 참고 바람.[36] 이 경기는 박충식이 전설의 181구를 던지는 투혼과 15회 공방 끝에 무승부로 끝난 한국시리즈 명경기로 불리는 경기 중 하나다.[37] 리그에서 KIA만이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0, 1990, 2000, 2010, 2020년대에 모두 최소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구단이다.[38] 이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구단은 두산 베어스로, 아직 2020년대 KS 우승 기록이 없다.[39] 리그에서 삼성만이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SSG 랜더스 역시 최하위 순위 기록은 없지만 창단년도인 2000년에 매직, 드림 전체 총합 최하위의 승률을 기록한 적이 있다. 이 때는 드림리그와 매직리그 양대 리그로 운영되었기에 단일 리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단일 리그나 양대 리그에서 한 번도 최하위 기록이 없다.[40] 이는 대한민국의 인구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해 거주하며, 압도적으로 강했던 수도권 구단이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광복 이후 서울 중심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며 지방사람들이 서울로 이사를 가 뿌리가 전라도나 경상도인 서울 사람들이 많고, 고향팀을 응원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수도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냥 우승을 밥먹듯이 해먹었던 극강의 팀이 있으면 다른 팀들이 잊혀질 수도 있겠지만 이에 부합하는 팀도 없다. 또한 KIA와 삼성 뿐만 아니라 롯데한화도 마찬가지이다.[41] 1984년과 2000년 딱 두 시즌만 1루 덕아웃을 홈으로 썼다. 그러나 다시 3루로 돌아오게 된다.[42] 이들 팀 외에 한때 3루 덕아웃을 홈으로 쓰던 팀도 있다. 과거 인천을 연고로 했던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가 3루 덕아웃을 홈으로 썼다. 희한한 것은 이 당시 홈구장인 숭의야구장은 남향으로 지어져 있어서 3루 덕아웃을 홈으로 쓰면 시종일관 홈팬들과 홈팀 선수들이 땡볕을 바라봐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 그럼에도 3루 덕아웃을 고집했던 것은 선수단의 비상시 동선 때문이었다. 이유인즉슨... 청보와 태평양의 성적이 처참하게 안 좋다 보니 거의 매경기 극렬 관중들이 난동을 피웠는데 선수들이 이를 피해서 빨리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고 결국 3루 덕아웃으로 가면 성난 관중들을 피해 빨리 도망갈 수 있다는(...) 답을 찾았다. 실제로 당시 3루 쪽은 인천공설운동장의 정문과 더 가까웠다. 결국 팀의 성적이 정상을 되찾은 1994년이 돼서야 홈 덕아웃이 1루로 돌아오게 된다. 2020년 잠실시리즈 전 경기에 한해 LG 트윈스가 3루 덕아웃을 사용한다. 원래 LG 트윈스 홈경기라면 1루 덕아웃을 홈으로 써야 하지만 라커룸이 3루 덕아웃 뒤에 있기 때문에 그라운드 위나 구장 내 실내 복도를 통해 1루와 3루를 오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 창궐하면서 선수단 이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접촉을 막기 위해 각 팀의 락커룸과 인접한 덕아웃을 홈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잠실 3루 덕아웃 뒤에는 LG 트윈스 락커룸이 있고 1루 덕아웃 뒤에는 두산 베어스 락커룸이 있다.[43] 게다가 두 동물은 동물원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동물인지라, 본 경기는 '동물원 시리즈'로도 통한다. 그러나 사자호랑이야생에서는 사는 곳이 다르다. 사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사는 반면, 호랑이는 아시아 대륙에서만 살기 때문에 두 동물은 실제로 만날 일은 없다. 사자는 멸종위기등급이 '취약'으로 지정돼 있고, 호랑이 역시 멸종위기등급이 '위기'이기 때문에 이 두 동물은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될 가능성이 높아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는 이 두 동물을 멸종위기로부터 구해내고자 매년 7월 29일은 세계 호랑이의 날로 8월 10일은 세계 사자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44] 이 날은 일요일이었다. 원래 7월 31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이 해태의 마지막 경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당시 중부 지방을 할퀸 집중 호우로 이 경기가 우천 취소되었다.[45] SSG전에서 달성.[46] 르노삼성자동차를 거쳐 현재는 르노코리아자동차이며, 삼성과의 관계는 이미 끊어진 상태.[47] 삼성은 버스를 만들지 않았다.[48] 트럭은 1톤트럭, 버스는 고급형 한정. 승용차는 겹치는 면이 많아 논외.[49] 그나마 삼성은 LG전 8승 1무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게 선방했지만 KIA는 두산전 6승 1무 9패를 기록하면서 두산에게 상성이 안맞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