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7 02:03:54

왕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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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농구3. 배구
3.1. V-리그
3.1.1. 남자부3.1.2. 여자부
4. 야구
4.1. KBO 리그
4.1.1. 2연속 우승 및 인근시기 우승 기준 분류법4.1.2. 3연속 우승 기준 분류법
4.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4.3. 일본프로야구
5. 축구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5.1.2. 중국
5.2. 유럽
5.2.1. 스페인5.2.2. 잉글랜드5.2.3. 이탈리아5.2.4. 독일5.2.5. 네덜란드5.2.6. 프랑스5.2.7. 스코틀랜드
6. 아이스하키7. 미식축구8. 모터 스포츠

1. 개요

王朝(Dynasty). 특정 팀이 우승을 계속해서 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막강한 실적을 쌓았을 경우 이 팀을, 혹은 이 팀이 활약을 한 기간 전체를 왕조라 부른다. 이는 흔히 쓰는 전통의 강호라는 표현과는 구분되는데, 이 용어가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역사를 가진 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들 중에서도 우승을 독점하는 것과 같이 그 스포츠 역사에 남을 만한 독보적인 수준의 성적을 이루어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1번 우승에 2~3번의 준우승이나 2번 연속 우승 정도로는 전통의 강호에는 해당할지언정 왕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냥 전통의 강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팀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3회 연속 우승(쓰리핏) 혹은 2회 이상의 연속 우승에 최소 3회 이상 단기간에 우승을 해야[1] 왕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우승이라는 확실한 타이틀 외엔 주관적인 개념으로 우승을 여러 번 했다고 쉽게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도 아니고 실적이 좋아도 그 내용 가지고 그 팀 팬들과 안티 팬들이 키배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문서다. 특히 아래 항목들처럼 폐쇄적 독립 리그 구조인 미국과 개방형 자유 시장 구조인 유럽 프로 리그에서 왕조라는 단어의 사용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전자는 구조적으로 드래프트와 샐러리 캡 등때문에 특정팀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선수를 모으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후자는 타팀 전력을 빼오기가 쉬워서 왕조의 유지 기간과 그 지배력에서는 전자와 비교 할때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 농구

2.1. 농구대잔치~한국프로농구

  • 기아자동차 실업농구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울산 모비스 피버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2013~2015년
    허재, 강동희, 김유택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허동택 라인업으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휩쓸었고,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후 프로 원년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2001년 들어 인수 및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온갖 잡음으로 잠시 암흑기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팀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강팀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2005/06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정규 리그 4번 우승, 챔피언 결정전 우승 2번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12/13~13/14 시즌에는 2년 연속으로 챔피언 결정전 우승, 그 다음 14/15 시즌에는 통합 우승에 성공하며 KBL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이룬 왕조가 되었으며 그 뒤 고양 오리온에게 챔피언 자리를 넘겼다.

2.2. WKBL

  • 아산 우리은행 위비: 2012~2019
    위성우감독 부임 후, 신한은행의 독주를 끝내며 5연속 챔피언에 등극했다. 물론 다섯변 연속 챔피언결정전 스윕. 1~3년차에는 신한은행과 KB 스타즈가 차례로 도전했으나, 4년째인 2015-16시즌에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5팀이 하향평준화되면서 리그 내에서 막을 팀이 없어진 상태다.[3] 그리나 2018-19시즌에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에게 플레이오프 패배 그렇게 5년에 걸친 왕조는 종지부를 찍었다.

2.3. NBA

  •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 1949~1954
    조지 마이칸이 6년 동안 5회 우승을 이끌었던 무적함대. 안타깝게도 레이커스가 1960년 LA로 연고이전한 후 이 시기의 스타들은 기념되지 못하고 있고, 영구결번도 해제된 상태.[4]
  • 보스턴 셀틱스 : 1960년대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3년 동안 11회 우승, 1회 준우승했다.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와 샘 존스(10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5]이 군림하던 시대.
  • LA 레이커스 : 1980년대
    1980, 1982, 1985, 1987, 1988년 파이널 우승으로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2년간 5번 우승, 4번 준우승했다. 매직 존슨, 카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디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다만 레이커스가 절대 최강자는 아니었고, 매직의 라이벌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있었다. 셀틱스도 1981, 1984, 1986년 파이널 우승으로 1981년부터 1987년까지 3번 우승, 2번 준우승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1980년대 NBA는 레이커스와 셀틱스 두 팀이 양분했고, 그 가운데 레이커스가 약간 더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두 슈퍼팀의 존재로 NBA 파이널은 녹화방송에서 생중계로 바뀌고, 리그의 인기자체가 상승하는 등 중요한 기반을 쌓게 되었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0년대 후반.
    2015, 2017, 2018년 총 3회 우승. 스테판 커리, 클레이 톰슨, 16~17시즌부터 합류한 케빈 듀란트 등이 군림하던 시절. 준우승했던 2015~16년 시즌에도 정규시즌 73승으로 NBA 역대 최다승을 올리는 등 임팩트는 대단했다. 다만 몇몇 팬들은 쓰리핏을 안했기에 왕조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칭하자는 얘기가 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1999, 2003, 2005, 2007, 2014년 5회 우승으로 결코 커리어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지만, 의외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받고 있다. 과소평가받는 이유는 연속 우승이 없고, 5번의 우승이 너무 장기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3연속 우승을 노리던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박살내고 5회 우승을 차지하자 스퍼스의 꾸준함이 재조명되면서 평가가 올랐다.[7] 그래서 스퍼스를 가장 조용한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팀 던컨은 5번 우승의 핵심 멤버였으며 데이비드 로빈슨(2회), 토니 파커(4회), 마누 지노빌리(4회), 카와이 레너드(1회) 등이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아이재아 토마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1989, 1990년 2년 연속 우승을 했고, 코비 브라이언트파우 가솔의 LA 레이커스도 2009, 2010년에 2년 연속 우승,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마이애미 히트도 2012, 2013년 2년 연속 우승을 했지만, 단지 2년 연속 우승만으로는 왕조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2.4. WNBA

  • 휴스턴 코메츠: 1997~2000
    WNBA가 출범된 첫 해부터 내리 4연패를 거두며 WNBA 최초의 왕조를 이룬 팀. 전성기가 겹쳤던 뉴욕 리버티는 코메츠에게 3번이나 준우승을 먹으면서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그 뒤 경영난으로 2008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메츠의 해체 이후 4연패를 한 WNBA팀은 전무하다.[8] 2017년 미네소타 링스가 4회 우승으로 코메츠를 따라잡았다.

3. 배구

3.1. V-리그

3.1.1. 남자부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997~2014
    다소 뒤늦게 창단되어 실업 리그에 참가, 2004년에 대회가 없어질 때까지 8연패를 질주했다.[9] 실업 배구가 막을 내린 뒤에도 V-리그 원년(2005년) 우승을 거머쥐며 총 9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년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2007-08 시즌부터 다시 7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10] 이 연속우승기록은 2014-15시즌 4월 1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깔끔하게 스윕패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후, 리그는 몰빵일변도를 넘어 춘추 전국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1] 이 시기의 삼성화재는 가장 논란이 많은 스포츠 왕조였으며 자세한 사항은 몰빵배구 참조.

3.1.2. 여자부

  • 호남정유/LG정유 여자 배구단: 1990~1999
    여자배구 최장기 집권 팀이자 9연속 슈퍼리그 우승팀. 장윤희, 정선혜, 이도희, 박수정, 홍지연이라는 전원 국가 대표 주전 라인업과 수비 배구의 달인 김철용 감독을 앞세운 무시무시한 철벽 수비로 슈퍼리그 9연패를 달성하고, 저 멤버에 한일합섬의 라이트 김남순만 끼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도 달성했다. 1997년부터는 LG정유라는 이름으로 팀명을 바꾸어 리그에 참여했다. LG라는 이름을 달았던 모든 구단들 중 유일하게 왕조를 이룩한 구단이기도 하다.
  • 현대건설 여자 배구단: 2000~2004
    동시기 현대 유니콘스와 더불어 현대 그룹의 또다른 왕조이자 실력으로 살아남은 구단. 연쇄 해단 상황 당시 모기업도 위험했던 상황에서, 당시 경영진이 경기를 보고 해단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 한다라는 의지를 피력해 해단 위기를 넘겼다. 당시 합류한 슈퍼 루키 정대영, 이숙자, 한유미에 기존 주전인 구민정과 이명희, 호남정유의 연승을 92에서 저지했던 선경의 멤버인 장소연, 강혜미, 류화석 감독을 조합으로 프로화 전까지 여자배구를 호령하던 명문. 다만, IMF 금융위기 당시 무려 5개 배구단(선경, 후지필름, 효성, 한일합섬, 대농)이 사라지며 얻은 진화타겁이라고 폄하되고 각인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

4. 야구

왕조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종목. 특히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짧은 역사 동안 특정 팀이 우승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 용어가 자주 쓰인다. 심지어 연속 우승도 아니고 한국시리즈에만 올라가도 왕조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설레발성 기사가 나올 정도이니 말 다 했다.

4.1. KBO 리그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파일:attachment/OB_Bears.png 파일:KtFaXn9.jpg파일:lotte_current_emblem.png파일:SL_emblem.png 파일:KtFaXn9.jpg 파일:KtFaXn9.jpg 파일:KtFaXn9.jpg 파일:KtFaXn9.jpg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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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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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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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37번의 시즌동안 KIA 11회, 삼성 8회, 두산 5회, SK 현대 4회, 롯데 LG 2회, 한화 1회 순으로 우승하였다.[12][13]

4.1.1. 2연속 우승 및 인근시기 우승 기준 분류법

일반적으로 2년 연속 우승 전후 몇 시즌 이내에 우승이 있는 경우 왕조로 취급한다.

하지만 이 분류법에 따르지 않고 아래와 같이 분류 되기도 한다.
  • 오직 3연속 우승을 기준으로 해서 해태 삼성만 왕조로 인정하는 경우
  • 현대의 우승이 너무 띄엄띄엄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해태 SK 삼성만 인정하는 경우
  • 그래도 현대가 해태 이후 최초로 2연속 우승에 성공했기에[14] 현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경우
  • 많은 지지를 받는 편은 아니지만 02 05 06 우승을 달성한 삼성의 성적이 현대와 비슷하므로 02~06 삼성도 포함해야 한다는 경우
보다시피 팬들간에서도 다양한 기준점을 놓고 왕조팀을 분류하는 편이다. 사실 본인이 응원하는팀에 유리하도록 주장하는게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분류법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앞서 소개했듯이 2년 연속 우승 전후 몇 시즌 이내에 우승이 있는 경우 왕조로 부른다고 했으나, 이 '몇 시즌'이 수치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2시즌 이내에 우승이 있는 경우로 하면 현대가 탈락해 버리고[15] 현대를 포함하기 위해 3시즌으로 확장해버리면 02~06 삼성이 걸린다. 하지만 현대는 대체적으로 왕조에 포함되는 편이지만 02~06 삼성은 포함되지 않는 편이 더 많다. 삼성팬들부터도 포함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아래 후술할 4팀들은 인상적인 성적을 몇 시즌 연속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왕조로 뽑힌 것이지 이 분류법에 의해 뽑혔다고는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왕조팀들이 선정되는 동안 분류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팬들과 기자들이 그 즈음에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뽑았을 뿐이다.

하지만 왕조팀들을 정하는 나름의 기준점은 필요했고 여러 의견이 오가면서 만들어진 것이 이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왕조팀들을 부정할 수는 없었고 기존팀들도 안고 가도록 하다 보니 모순이 발생했다. 결과를 정해놓고 뒤늦게 원인을 만들려고 했으니 객관적일 수가 없었고 결국 2년 연속 우승 전후 몇시즌 이내 우승이 있을 경우라는 애매한 기준을 가진 분류법이 만들지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야구팬들 100%를 만족시킬 수 없는 분류법으로 선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위의 왕조팀들이 다양하게 언급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이 팀은 넣고 저 팀은 빼자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아래의 팀들은 논란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팬들에게 지지를 받는 상황이니 왕조팀으로 기재한다. 분류법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다만 논란이 되는 팀들이 있고 앞으로도 생길 수밖에 없다. 02~06 삼성이라든가 15~18 두산이라든가
4.1.1.1. 1대 왕조: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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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9 1983년~1997년

한국시리즈 9회 진출, 9회 우승에 빛나는 김응용 감독이 이끌었던 시기.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2년~1985년에는 전무후무한 3할-20홈런과 10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등 투타겸업의 오리궁둥이 김성한과 콧수염 홈런왕이라는 별칭의 김봉연이 팀을 이끌었다. 또 타이거즈 초대 에이스 이상윤, 그와 같이 활약한 김용남 등이 투수진을 이끌었다. 이 당시에는 1983년 리그 2위, 최종 우승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해태의 최고 전성기였던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는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고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야전 사령관 이순철, 해결사 한대화가 새로이 등장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당시 해태는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2위만 3번하는 등 최강팀으로 불리기는 어려웠으나 가을에 뛰어난 집중력과 실력을 발휘하며 라이벌 팀들을 모두 누르고 우승했다. 가을 DNA의 원조인 셈.

이후 1990년대 초 들어서도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핵 잠수함 이강철, 싸움닭 조계현 등 슈퍼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도 이대진, 임창용, 홍현우 등 걸출한 신인들이 주전 선수들의 뒤를 받쳐주며 리빌딩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4년 연속 우승하던 80년대 중후반만큼은 아니어도 초호화 선수진을 이끌며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까지 90년대에 우승을 4번이나 차지했다. 무엇보다 우승한 시즌은 모두 통합 우승으로 역대급 포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해태의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이종범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하고, 그 외에도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는 등[16] 주전 선수들의 유출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하위권을 전전하였고 해태 왕조는 몰락하고 만다.
4.1.1.2. 2대 왕조: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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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4 1998년~2004년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찰나의 영광. 현대는 당시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야구 팀이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17] 분위기 쇄신이 목적이었으므로 현대는 가능한 한 짧은 기간 안에 강팀이 되어야 했다. 프론트 측은 삼성과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 쌍방울의 선수와 유망주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 했고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했다.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박종호, 송지만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팀들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시즌 최다승 기록인 91승을 거두기도 했다.[18] 오죽하면 야구장에서 김밥 파는 할머니가 감독 해도 우승한다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 이 시즌에 기록한 승률 0.695는 역대 시즌 승률 3위이자, 전/후기리그 체제가 아닌 단일 시즌 기준으로는 승률 1위의 기록이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가는[19]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08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뒤 신생 구단인 서울 히어로즈가 현대 선수단을 인수했다.

참고로 삼성이 2011년에 V5를 달성하기 전까지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의 우승으로 통산 우승 횟수가 공동 2위였었다.[20] 2018시즌 종료 기준으로는 통산 우승 횟수가 공동 4위로[21] 내려앉은 상태이고 해단으로 우승 횟수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으므로[22] KBO 리그 역사가 점점 흐를수록 통산 우승 횟수 순위는 계속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4.1.1.3. 3대 왕조: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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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준우승 시기
SK 와이번스 김성근 3 1 2007년~2010년

아직까지 신생 팀 이미지와 쌍방울 후신격 혹은 인천 야구의 서자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와이번스는 하위권에서 전전하기는 하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2003년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이후 스포테인먼트 차원에서 태평양 돌핀스 등으로 인천 야구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23]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걸게 된다. 아직도 현대의 배신 때문에 야구장을 찾지 않던 팬들에게 SK는 인천에 남을 것이라는 어필과 함께, 리빌딩을 하던 감독을 중간에 포기하면서까지 우승을 하겠다는 행보를 보였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팀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동시에 직접 펑고를 쳐가면서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경기에서는 1점을 짜내기 위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야구를 했다. 이는 약점이 없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는 원인이 되었지만 4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나가 2007년, 2008년, 2010년도에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이 때 주요 선수들로 에이스 김광현, 전대 에이스 채병용, 선발-불펜 전천후 송은범 등이 선발을 이끌었고 여왕벌 정대현, 고무팔 정우람, 좋은 슬라이더를 가진 윤길현, 원조 에이스이자 아픈 손가락 이승호, 또 다른 아픈 손가락 전병두, 롤러코스터 고효준, 어린왕자 김원형, 프랜차이즈 조웅천, 원포인트로 활약했던 큰 이승호가득염 등 재능있는 투수들이 김성근식 벌떼야구를 책임졌다. 타선에선 영구결번 박경완, 캐넌히터 김재현, 호타준족 박재홍, 중심타선 이호준, 난세의 영웅 안치용 등의 노장들과 가을 사나이 박정권, 짐승 김강민, 소년장사 최정, 날쌘돌이 정근우, 놀부 나주환, 아트스윙 박재상 등의 젊은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핵타선은 아닐지라도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4]

SK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6할 승률을 기록하는 등 왕조로 군림하였다.[25] 2009년 정규시즌에는 에이스 김광현, 박경완, 전병두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시즌 막판 19연승을 달성했고 한국시리즈에서 KIA를 7차전까지 압박하는 등 준우승 시즌에도 인천과 전국의 야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 SK는 특유의 집요함과 정밀함으로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야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공공의 적 취급을 받을정도로 치밀한 야구를 구사하여 다른 팀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26]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이후 왕조 시절의 성적을 유지하는데 실패하였고[27] 결국 왕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사실 왕조 시절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기사를 참고해보면 SK가 왜 몰락했는지 알 수 있다.김성근-이만수 결별은 예정된 귀결이었나

번외로 이만수 감독이 이끈 2011[28] ~ 2012 시즌을 준우승을 이유로 왕조에 포함하는 팬들도 있다.[29] 문제는 준우승을 왕조의 연장으로 인정하면 콩라인의 마스터피스였던 80년대 삼성과 빙그레 90년대 중후반 LG 10년대 중후반 두산 역시 왕조로 불러야 하는데 아무도 상기한 팀들을 왕조라 부르지 않는다. 연속 준우승은 왕조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만수의 SK 시절은 왕조가 끝난 뒤 바로 추락하지 않고 어느정도 정상권에 머물렀던 시기로 보는것이 더 적절하다.
4.1.1.4. 4대 왕조: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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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준우승 시기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4 1 2011년~2015년

전통의 강호였음에도 너무나 늦게 왕조의 지위를 듣게 얻은 팀. 삼성은 프로야구 원년부터 최소 중상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올리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큰 경기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왕조는 커녕 콩라인에서 벗어날 기미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 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드디어 준우승 징크스를 깼고,[30] 선동열 감독 재임 기간 과도기[31]를 거쳐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무기력한 스윕패를 이유로[32] 삼성은 용퇴라는 형식으로 선동열 감독을 해임하고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 류중일 감독은 전임 선동열 감독과는 달리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안정권KO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의 활약과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이 더해지며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돌아온 국민 타자 이승엽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2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결국 통합 3연패[33]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비로소 왕조로 불리게 되었다. 2014년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통합 4연패[34]를 달성해 버린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금지어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등의 국내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뒤를 받쳐 그야말로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쪽에선 대도 유망주 둘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국민타자 이승엽조차 6번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로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2014년에 데려온 외인타자 야마이코 나바로는 대박을 터뜨리며 공-수-주에서 어느하나 나무랄것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러다 통합 10연패 하는거 아니냐(...)는 과장된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그만큼 당시 삼성은 도대체 어느팀이 막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4년 동안 리그를 지배한 최강팀이었다.

2015년 삼성은 정규시즌 5연패에는 성공했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졌고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을 엔트리에서 제외하였다. 하지만 끝내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고 두산에게 1승 4패로 패하며 통합 5연패 달성에 실패한다. 사실 그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점차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35]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그룹이 갑작스럽게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했고 팀은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일련의 사건 후 야마이코 나바로박석민은 자금부족으로 인해 붙잡지 못했고, 돈을 아끼기 위해 데려온 용병들은 하나 같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돈은 돈대로 쓰고 성적까지 못내는 상황에 빠져들고 만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자신들의 삽질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류중일 감독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모양새를 보였고 이 곳으로 이사간 2016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무너지지 않을것 같았던 왕조도 몰락해 버렸다.

4.1.2. 3연속 우승 기준 분류법

사실상 원조 왕조 구별법이다. 미국에서 나온 개념으로 3연속 우승, 즉 스리핏

이 3팀을 흔히 다이너스티라고 부르며, KBO에 대입하면 해당되는 팀은 80년대 해태 타이거즈10년대 삼성 라이온즈 두 팀뿐이다.

이 분류가 생긴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먼저 2011년부터 시작된 류중일 감독의 삼성이 4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장기간 독주를 통해 연속 우승의 기준점을 늘려 놓았고, 두 번째로는 팬들은 강점기라며 자조해도 00년대의 삼성도 성적 자체는 다른 왕조인 현대나 SK와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좋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단 2연속 우승만으로 왕조를 분류할 경우 무분별하게 많은 왕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분류할 경우 위에 기재된 왕조팀들에 대한 평가가 갈리게 되는데 현대는 98 00 우승과 3년 후 03 04 우승으로 기존의 인식과는 달리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SK의 경우에도 삼성보다 먼저 왕조에 등극 할 뻔 했지만 3연패에 실패했으므로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현대와 SK팬들의 반발이 생기는 분류법이기도 하다.[36][37]

결론적으로 스리핏을 왕조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80년대 중후반 4연패를 달성 한 해태가 처음으로 왕조에 등극했고 이후 90년대 후반의 해태, 00년대 초반의 현대, 중반의 삼성, 후반의 SK가 3연패에 도전 했지만 실패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4팀의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났으니 스리핏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 할 수 있다. 이후 10년대 초중반에 삼성이 두번째로 4연패에 성공 왕조에 등극 했고 바로 다음해부터 두산이 3연패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현재까지는 왕조를 해태-현대-SK-삼성순의 4개팀으로 분류하는 기사가 다수이지만 앞으로 KBO 리그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해태 삼성을 포함한 스리핏에 성공한 팀만을 왕조로 둘 가능성이 있다.[38] 또는 흘러간 역사인 기존의 4개 왕조는 그대로 두고 새로운 왕조팀을 정할 때 스리핏을 기준점으로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나 SK와 비슷한 성적을 보인 팀을 왕조로 분류하는 등 왕조의 기준을 확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왕조의 개념이 너무 모호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당장 해태랑 삼성은 스리핏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현대와 SK를 포함한 왕조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2연속 우승 분류법에 나오듯 팬들 또는 언론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기준점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는 등 그 기준을 정확히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번외로 팀의 통산 우승 횟수도 왕조의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했었다. 2016시즌이 끝나고 대두됐던 의견으로 당시 두산은 V5를 달성하여 KIA의 V10과 삼성의 V8에 이어 통산 우승 횟수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두산 왕조 탄생하나?' 정도의 평가만 받았을 뿐 끝내 왕조로는 인정 받지 못했다. 이는 대중들이 왕조의 기준으로 통산 우승 횟수보다는 우승의 응집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시즌 후 V3을 달성한 SK가 V4의 삼성이나 먼저 V3을 달성한 두산을 제치고 3대 왕조에 등극한 사실만 봐도 팬들이 통산 우승 횟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에도 이러한 인식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왕조의 조건에 통산 우승횟수를 포함 할 수는 없을 것이다.[39]

4.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뉴욕 양키스: 1920~1965, 1995~2001
    1920~1965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타격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 20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LA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1995~2001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1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2~1976
    지금은 빌리 빈머니볼로 유명한 팀이지만 20세기에는 월드시리즈를 9차례나 제패했던 명문 구단이다. 특히 1970년대에 구단주 찰리 핀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72년~76년까지 월드시리즈 3회 연속 우승과 3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 5년 연속 지구 우승을 기록하며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이 때 달성한 월드시리즈 3연패는 메이저리그에서 오직 오클랜드와 뉴욕 양키스만 가지고 있는 기록. 이 시기 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로는 롤리 핑거스캣피시 헌터레지 잭슨바이다 블루, 진 테나스 등이 있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1~2005
    90년대 내셔널리그에는 바비 콕스의 브레이브스가 있었다. 왕조라는 이름으로는 어쩌면 동시대 양키스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을 팀. 파업으로 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은 1994년을 제외하면 해당 기간 내내 브레이브스가 지구 우승을 독식했다. 14회 연속 지구 우승은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장 기간 우승 기록. 메이저리그 2위가 양키스의 9회 연속 지구 우승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의 투수 3인방과 치퍼 존스를 중심으로 한 타선이 브레이브스의 시대를 이끌었으며, 매덕스, 글래빈이 나간 뒤로도 스몰츠와 젊은 투수들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식으로 이끌어 나갔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다소 부진해서 내셔널리그 우승은 5회였고, 월드시리즈 우승은 1995년 단 1회에 그쳤다. 하지만 매덕스-글래빈-스몰츠라는 1~3선발은 지금도 회자되는 화려한 트리오이다. MLB에서는 간혹 1~3선발을 리그 에이스급으로 도배하는 팀이 나타나고, 아주 가끔씩 5선발까지 도배하는 팀도 나타난다.[40] 하지만 1~3선발을 모조리 명전에 보내버린 팀은 1950년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41]와 이 팀뿐이다.

4.3. 일본프로야구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5~1973
    과장 아니고 매해 연말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왕정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일본 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1974년 1리 차이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종결.
  • 한큐 브레이브스: 1975~1977
    역사를 살펴보면 퍼시픽 리그 최초 스리핏을 달성한 구단이다. 발야구로 상대를 유린하고, 정상급 투수로 퍼시픽 리그 강호로 군림. 왕조 되찾으러 왔다는 자이언츠를 2연속 격파하며 자이언츠 천하 종결을 확인사살했다.
  • 세이부 라이온즈: 1982~1992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42]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43]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세이부가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두 번(1984, 1989)이며, 해당 기간 9회 일본시리즈에 출장해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우승했는데, 우승에 실패한 한 번은 상대가 역대 최고의 사기 타선을 보유했던 1985년 한신 타이거스였다.[44][45]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
    이대호 영입을 비롯한 과감한 투자를 시작으로 2014년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낙점되었고, 실제로도 2014 시즌부터 센트럴, 퍼시픽 종류 안 가리고 잘 이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로 2014년엔 한신 타이거스, 2015년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이부 라이온즈의 3연속 우승 이후 23년 만에 연속 우승팀이 나왔다. 단 2016년에는 전반기에 11.5게임차까지 게임차를 벌려놓은 채 선두를 유지하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막판 스퍼트에 역전당해 리그 우승을 내줬고, CS에서도 닛폰햄에 패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 2017년, 2018년 2연패를 달성하며 왕조는 끝나지 않은 것을 증명했다. 2019년까지 우승하면 자타공인 이견이 없는[46] 왕조 자리에 오른다.

5. 축구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

  • 일화 천마: 1993~1995, 2001~2003
    K리그에서 최초로 왕조를 구축했던 팀. 현재 '통산 7회 우승으로 K리그 최다우승팀이다.[47] 동대문 연고 시절인 1993~1995 시즌에 3연패, 성남으로 연고 이전한 이후인 2001~2003 시즌에 3연패로 총 2번에 걸친 3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첫 번째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인 1995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K리그 팀 중 최초로 시즌 더블을 달성하였다. 두 번째 3연패 기간 중 2003년에는 승점 91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다 승점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모기업이던 일화가 슬슬 발을 빼던 2010 시즌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결국 문선명 교주가 사망하면서 일화에서 성남시에 팀을 매각, 중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챌린지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2019년 현재는 다시 K리그1로 복귀하였다.
  • 전북 현대 모터스: 2009~
    현 시점 K리그의 최강팀.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하며 혜성같이 등장했고 이후 2009년 K리그까지 재패 했으며 이후 2011년도 우승 2014,2015년도 연속우승 2017,2018년도 연속우승 하며 제대로 깡패짓 했다. 심지어 2018년도 시즌은 스플릿 라운드 하기도 전에 우승하고 2016년도 심판 매수 사건 때문에 9점 승점 삭감에다가 마지막 라운드 FC서울의 막판 엎기로 16년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때 전북이 우승 못 한 2010, 2012, 2013, 2016년도는 전부 FC 서울포항 스틸러스가 우승했다.

5.1.2. 중국

  • 다롄 스더: 1994, 1996-1998, 2000-2002, 2005 (2012년 해체)
    당시 구단주인 쉬밍은 태자당의 선두주자인 보시라이를 뒷배경으로 두고 돈지랄을 하여 국대급 선수들을 모아 8회 우승을 했으나, 보시라이가 정치적으로 몰락하면서 팀도 발살이 났다. 이후 이 팀은 해체되어 이웃 연고팀인 다롄 아얼빈으로 합병되었고, 아얼빈은 다시 다롄 이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5.2. 유럽

아래 수많은 유럽 리그의 왕조들이 서술되어 있지만 대부분 자국 리그 한정이고, 유러피언 컵과 그 후신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준으로 한 축구 왕조[48]는 시대 순서대로 레알 마드리드 CF(1955~1960), AFC 아약스(1970~1973), 바이에른 뮌헨(1973~1976), 리버풀 FC(1976~1984), AC 밀란(1987~1994), FC 바르셀로나(2008~2012), 레알 마드리드 CF(2015~2018)[49]까지 7팀이 주로 언급된다.[50]

5.2.1. 스페인

5.2.2. 잉글랜드

  • 리버풀 FC: 1972~1985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거뒀다. 특히 당시는 리그 우승팀과 전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팀에게만 유러피언 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는데, 76-77 시즌부터 84-85 시즌까지 아홉 시즌간 유러피언 컵에 개근하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즉, 저 기간 동안 반드시 리그 우승이든 유러피언 컵 우승이든 거뒀다는 것이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2003, 2007~2013
    퍼거슨 왕조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0-91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필두로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미어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및 98-99 시즌 트레블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더욱이 이 트레블을 달성한 경기는 캄프 누의 기적(1999)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다. 이후 아스널, 첼시 등의 역습으로 잠시 침체기를 맞았으나[54] 2006년부터 다시 전력을 재정비, 2013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이룩했다.

5.2.3. 이탈리아

  • 토리노 FC: 1942~1949
    일명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 세리에 A 역사상 최초로 리그 5연패를 달성했으며, 인테르와 함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탈리아 클럽이다. 수페르가의 비극 문서 참조.
  • 유벤투스 FC: 1975~1986, 2012~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 시절 세리에 A 6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러피언 컵 1회, 컵 위너스 컵 1회, UEFA 컵 1회, 도요타 컵 1회 등 14개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이 당시 UEFA 주관 대회를 최초로 전부 제패한 기념으로[57] UEFA에서 UEFA Plaque라는 명예 트로피를 최초이자 최후로 지급받았다. 2011-12시즌부터 리그는 한시즌도 뺴놓지않고 우승하면서 다시 왕조의 반열에 올라섰다.
  • AC 밀란: 1987~1994
    압박 축구를 완성한 아리고 사키와 후임 파비오 카펠로 휘하의 87~94년 동안 리그 우승 3연속 우승을 포함한 4회를 기록했으며, 91-92 시즌에는 무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까지 무패를 이어가며 5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최후의 2연패를 포함한 3회 우승. 이때 당시의 밀란은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괜히 밀란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게 아니다.

5.2.4. 독일

  • FC 바이에른 뮌헨: 1971~1976, 2013~
    비록 분데스리가에서는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발목을 잡히고 74-75 시즌 리그 10위로 추락하기도 했으나, 리그 우승 3회와 유러피언컵 우승 3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독일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1966년 월드컵 준우승, 1970년 월드컵 4강, 1972년 유로컵 우승, 1974년 월드컵 우승을 거두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58] 2013년부터 현재까지 리그 연패 진행중이며 특히 2013년에는 독일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5.2.5. 네덜란드

  • AFC 아약스: 1965~1973
    축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었던 팀. 리누스 미헬스가 그의 분신 요한 크라이프를 앞세워 이룬 토털 혁명을 토대로 리그 우승 6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를 거뒀다. 71-72 시즌에는[59] 48전 42승 5무 1패, 135득점 27실점, 승률 87.5%라는 엽기적인 팀 기록을 찍으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87.5%라는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단일 시즌 최고 승률이다.

5.2.6. 프랑스

  • 올랭피크 리옹: 2002~2008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7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며 유럽 상위 리그 클럽 중 최다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이 기세를 몰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킬러로 등극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5.2.7. 스코틀랜드

  • 셀틱 FC: 2012~현재
    유일한 맞수인 레인저스 FC가 재정난 후 강제로 4부 리그로 강등당해 더 이상 말은 필요없긴 한데...그런데 1부리그로 승격했다 리그야 셀틱의 독무대이긴 하지만 컵 대회에서는 아니다. 2014년 리그 컵에서는 3부 리그 팀에게 연장전까지 가서 패했으니 왕조라고 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 물론 어디까지나 리그에 한해서 왕조는 확실하다.[60]

6. 아이스하키

6.1. NHL

  •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1955~1986
    NHL의 뉴욕 양키스, NHL 최다 우승횟수인 24회를 기록한 팀이며,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자존심인 팀. 50년대, 1955년부터 1986년까지 16번을 우승했으며 그 기간 사이 5회 연속 우승4회 연속 우승을 한 번씩 기록했다. 몬트리올의 1993년 우승은 현재까지 캐나다 소속 NHL팀의 마지막 우승이기도 하다.
  • 뉴욕 아일런더스: 1980~1983
    80년대 초창기의 왕조. 80~83년까지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면서 리그 정상의 자리를 지켰고, 가장 위대한 아이스하키 선수로 불리우는 웨인 그레츠키조차도 아일런더스의 벽을 넘는데 고생을 했다. 하지만 결국 성장한 그레츠키로 인해서 아일런더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61]
  • 에드먼턴 오일러스: 1984~1990
    선택받은 자로 불리우는 웨인 그레츠키의 80년대의 왕조. 웨인 그레츠키,마크 메시어,야리 쿠리,글렌 앤더슨이라는 꿈에서나 볼법한 라인업을 갖추어 84, 85, 87, 88시즌을 우승했고, 그레츠키가 LA로 떠난 이후에도 90년에 우승을 한 번 더했다. 무려 선수들의 재능을 팀이 감당하지 못하여 무너진 왕조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중소도시팀인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재정으로는 역사에 남을 뛰어난 선수들을 모두 지켜낼 수 없었고, 90년 이후로 영광의 멤버들이 팀을 떠나며 왕조는 막을 내렸다.

6.2.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 안양 한라 : 2015~현재
    영구결번 심의식의 지도하에 리그 역사상 2번밖에 없는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겪은 뒤, 체코 출신의 이리 베버 감독을 선임하면서 팀을 다시 재건했고 베버 감독에게서 영구결번 패트릭 마르티넥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15-16, 16-17, 17-18 3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룩했다. 일본팀과 러시아팀들 중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17-18시즌의 우승은 평창올림픽으로 주전들이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에서도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2패밖에 허용하지 않으면서 우승했다.

7. 미식축구

7.1. NFL

  • 샌프란시스코 49ers: 1980년대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격을 창시한 감독 빌 월시와 20세기 최고의 쿼터백인 조 몬태나가 환상적인 공격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와이드 리시버인 제리 라이스까지 합류하면서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러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1981, 1984, 1988, 1989 등 80년대에 슈퍼볼 4회 우승을 기록했다.
  •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2~1995
    새로운 구단주인 제리 존스와 함께 합류한 감독 지미 존슨이 팀을 완벽하게 물갈이한 결과 쿼터백 트로이 에이크만, 러닝백 에밋 스미스,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어빈 등 공격 트로이카를 구축했고 강력한 수비까지 더해지면서 1992, 94, 95 시즌 등 90년대에 슈퍼볼 우승 3회를 차지했다. 버팔로 빌스를 전설적인 콩라인으로 만들어버린건 덤.

8. 모터 스포츠

모터 스포츠에서의 왕조는 경주차의 제작사(컨스트럭터, 매뉴팩쳐러)가 따낸 포인트 기록을 합산하여 최종적으로 많은 포인트를 따낸 팀이, 이후 차기 시즌에도 연속 우승을 수립할 경우에 왕조라고 부른다. 모터스포츠에선 보통 자동차 제조사를 위한 컨스트럭터 챔피언쉽과 드라이버를 위한 드라이버 챔피언쉽이 있기 때문.

8.1. 포뮬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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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포뮬러 : 1960년 ~ 70년대 말
콜린 채프먼이 F1 레이스카 구조의 혁명을 이끈 시기. FR에서 MR로 넘어가고 프론트 윙과 리어 윙이 달렸으며 그라운드 이팩트까지 온갖 유체역학적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 당시 JPS 리버리의 로터스는 60~70년대동안 월드 챔피언쉽을 7번이나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최고의 드라이버들이던 에메르손 피티팔디, 스털링 모스, 잭 브라밤, 그레이엄 힐, 요헨 린트등이 팀 로터스에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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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레이싱 :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
아일톤 세나알랭 프로스트의 라이벌 매치로 대표되는 시기. F1이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F1을 호령하던 팀으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아일톤 세나의 전성기와 맞물리는 시기는 맥라렌에게 대적할 F1팀이 없었다.[62] 이는 혼다의 터보 엔진과 멕라렌 섀시의 궁합이 절정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1988년 시즌은 전체 시즌중 이탈리아 GP만을 제외하고 모두 맥라렌의 두 드라이버가 우승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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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데리아 페라리 : 2000년 ~ 2004년
슈마허 시대로 정리할 수 있는 F1 역사상 최강의 팀. 무려 5연속 더블 타이틀 석권과 미하엘 슈마허의 7회 F1 월드 챔피언이라는 대업적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페라리 드림팀이라 불리는 장 토드, 로스 브런, 미하엘 슈마허가 뭉쳤었고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역대 F1 종합성적 1위로 올려놓은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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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 레이싱 : 2010년 ~ 2013년
한국팬들이 제일 많이 기억하는 F1 왕조중 하나. 코리아 그랑프리가 처음 개최된 2010년부터 우승하기 시작해 2013년까지 4연속 더블 타이틀을 석권한 신흥 강팀. 제바스티안 페텔의 4연속 월드 챔피언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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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F1 : 2014년 ~ 현재 진행중
현재진행형인 F1의 왕조. 2018년 시즌을 더블 타이틀로 우승함으로 2000년대 페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5연속 더블 타이틀 챔피언이 되었다. 진정한 실버 애로우의 귀환. 혹자는 사실상 40년대 실버 애로우를 넘어섰다고도 얘기한다. 루이스 해밀턴후안 마누엘 판지오와 나란히 하는 5회 월드 챔피언으로 올려놓은 팀이기도 하다. 2014년 이후 하이브리드 터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팀.

8.2. W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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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레이싱 : 1970년~70년대, 80년대, 90년대 중후반, 2015~17년
사실상 70년대 이후 패배한 적이 없는 르망의 황제. 1970년 첫 출전 이후 통산 19승이라는 범접 불가능한 기록을 보유중이다. 1981년부터 87년까지 무려 7연승을 했을 정도. 70년대 이후 르망 역사는 포르쉐를 빼놓곤 성립이 안되는 수준. 더 웃기는 것은 워크스 팀으로 출전하지 않았을 때도 포르쉐의 차로 참가한 프라이빗 팀이 르망을 우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포르쉐가 사르트 서킷에 얼마나 일가견이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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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스포트 팀
21세기 초반 르망을 지배한 제조사. R8을 시작으로 디젤 시대를 지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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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1960~1965년
60년대 페라리는 르망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 250,270,330은 대표적인 페라리의 르망 위너들. 이 이후로 그 전설의 페라리 헌터 포드GT가 등장한 이후 신흥 강자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중.

8.3. W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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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 1987~1992년
스트라토스를 시작으로 초기 WRC를 지배하고 그룹B 때는 아우디에 잠시 밀렸다가 그룹 A 시대가 오면서 란치아 델타WRC 6연속 재패라는 대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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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 2003~2012년
세바스티앙 로브9시즌 연속 월드 랠리 챔피언 한 마디로 설명되는 2000년대 WRC 최강의 팀.[63]

[1] 기준점이 애매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2] 국내선수들로는 막을 수 없었던 하은주의 존재때문에 현재까지도 저평가를 받고 있는 왕조이기도 하다.[3] 2015-16시즌 정규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팀이 2,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 2017-18시즌 정규리그는 양지희의 은퇴와 외국인선수 두 명 모두 부상으로 교체하면서 개막 2연패 후 첫 승을 기록하였다.[4] 이를 비판하는 농구팬들은 미니애폴리스 시기의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면 5회 우승을 반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이로 인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NBA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였고 농구역사상 빼놓고 언급하는게 말이 안되는 마이칸이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이칸은 존재 자체로 위태로운 신생 NBA가 자리잡게 한 가장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또한 농구의 여러 규칙 (3초룰, 24초 샷클락, 골텐딩 등)이 이 분 때문에 바뀌었다. 그런데 이런 선수가 영구결번조차 못 된 것.[5] 빌 러셀이 은퇴하고 1974년과 1976년에 2번의 우승을 더했다. 총 8회 우승[6] 그러나 이후 시카고 불스 구단은 이 시기의 우승과 조던의 명성에 기대어 계속 팬들에게 장사만 하지 정작 우승에는 큰 관심이 없는 짠돌이 행보를 보이며 엉망인 운영을 하고 있어 이 왕조를 불스 왕조가 아니라 조던 왕조라고 불러야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불스 구단주는 화이트삭스도 같이 소유하고 있는데 야구빠이기 때문에 불스가 1990년대 우승을 연이어 할 때도 시큰둥해했다. 이 왕조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것이 일단 에이스가 NBA 역사상 최고 선수이며 연속우승이 끊긴게 두번 다 최고 선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패의 이미지가 있다.[7] 사실 2003~2007년까지만 보면 5년간 3회 우승이다.[8] LA 스팍스가 유일하게 2연패를 기록했다.[9] 이 시기는 좌진식 우세진의 쌍포화재로 대표된다.[10] 참고로 야구 최장은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4연속, 축구는 성남 일화 천마의 3연속, 농구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3연속.[11]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 OK저축은행의 김세진 감독 등 새로운 감독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를 팀에 접목하기 시작했다.[12] OB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로 팀명을 바꾸고 해태 타이거즈는 KIA에 인수 되어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바뀐다. 쉽게 말해서 OB의 우승이 두산의 우승이고 해태의 우승 역시 KIA의 우승이다.[13] 현대는 2007년 이후 해체 되어 최종우승 기록이 4회로 남게 되었다.[14] 현대의 03 04시즌 우승이 나오기 전까지 2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은 해태가 유일했다.[15] 현대는 98 00 03 04시즌에 우승했다.[16] 그리고 2001년에는 김응용 감독마저 삼성으로 이적하게 된다. 본인이 후술하길 해태 프런트로부터 경영난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삼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막상 김응용의 부인 분은 삼성으로 간다니 좋아했다고.[17]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그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18] 이후 두산이 2016년 93승으로 경신[19] 외환위기 직후의 해태와 행보가 비슷하다.[20] 현대는 04년, 삼성은 06년에 V4를 달성[21] 기아(해태 시절 포함)V11, 삼성V8, 두산V5, SK 현대V4. SK와 우승 횟수는 동률이지만 준우승이 밀린다.[22]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와는 역사가 단절된 별도의 팀이다. 히어로즈는 현대 해체 후에 재창단되었기 때문에 히어로즈가 이후에 우승을 한다고 해서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 횟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23]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성근이 89~90년 2년간 태평양 돌핀스를 맡으며 최초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도원아재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지만 막판에 임호균 각서파동까지 일으켜 가며 태평양을 버리고 삼성으로 가버리자 많은 도원아재들이 이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김성근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24] 07년부터 09년까지 3년간 팀 타격 sWARwRC+ 1위를 기록하였으며, 07년과 09년에는 팀 홈런 1위를 달성하는 등 수준급의 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다.07년, 08년, 09년 팀 타격 WAR / 07년, 08년, 09년 팀 타격 wRC+ 하지만 이 시기에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오른 선수들은 있었으나 개인 타이틀을 수상하는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가 없었으며, 김성근 감독의 작전 야구에 가려져 타선의 위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25] 2011, 2012년에 준우승을 했지만 그 때 감독은 이만수였고 SK 팬들에게 이만수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자. 다만 이만수 감독의 준우승 이력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26]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도 잘못한 게, 김성근 감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할 테니 너님들은 돈이나 대주라는 식 이었다.[27] 이만수 체제 이후 첫 2년간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고 2013년부터는 포스트시즌도 진출하지 못했다.[28] 김성근 감독이 중도 사퇴하여 이만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다.[29] 최초의 한국시리즈 6년 연속 진출이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이 2010 ~ 2015년 한국시리즈 진출로 타이를 이룬다.[30] 이른바 달구벌의 저주로 삼성은 2002년에 우승하기 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7번이나 패했다. V1은 1985년에 달성했지만, 당시 리그 제도상 전후기 통합 우승을 하여 한국시리즈는 치르지 않았다.[31] 과도기라고 하기에는 부임 직후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지만, 이후 4, 4, 5위에 무력한 준우승으로 마무리가 되어 왕조에는 미치지 못했다.[32] 사실 이거 하나 때문에 경질 된 건 아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선동열이 그동안 수십억에 달하는 돈을 썼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복잡한 사유가 겹쳤던 것. 자세한 건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 문서를 참고하자.[33] 최초[34] 최초[35] 예전에는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 받던 삼성이었으나 4연패로 인해 지명순위가 뒤로 밀렸고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수 없었다. 2015년 2차 드래프트가 그 증거로 삼성 2군은 타팀에 비해 유출이 적었다. 타팀에서도 이제 삼성 2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36] 통합우승 스리핏으로 기준점을 또 다시 올려버리면 이를 만족하는 팀은 삼성 밖에 없다. 4연속 우승을 했던 해태도 88시즌을 제외하고는 정규리그 1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KBO 리그에서의 우승은 한국시리즈 우승이지 정규시리즈 우승이 아니다. 페넌트레이스 우승도 동시에 달성하면 통합우승으로 위상이 좀 더 올라갈 뿐이므로 스리핏을 얘기 할 때는 정규시리즈 우승까지 따지지는 않는다.[37] 그라나 단일리그가 아닌 양대리그 혹은 여러 리그로 나뉜 NPB, MLB에서는 페넌트레이스 우승 역시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일리그로 치뤄지는 KBO가 오히려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단 1회에 그쳤지만 14회 연속 지구 우승으로 왕조라고 불리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그 대표적인 예.[38] 왜냐하면 뒷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39] 극단적으로 5년마다 한 번씩의 우승으로 통산 최다 우승을 한 팀이 있다고 해보자. KBO는 6팀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10팀까지 늘어났으므로 5년마다 우승을 하면 시기상의 문제만 있을 뿐 이론적으로는 최다 우승에 도달할 수 있다. 과연 이 팀을 왕조라고 할 수 있을까?[40] 로이 할러데이, 클리프 리, 로이 오스왈트, 콜 해멀스로 한해 사이영상 투표 5위 안에 3명이나 들어갔던 2011시즌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판타스틱4와 맥스 슈어저-스티븐 스트라스버그-조던 짐머맨-덕 피스터-지오 곤잘레스 선발진을 만들어낸 2015시즌 워싱턴 내셔널스가 유명하다.[41] 밥 펠러, 밥 레몬, 얼리 윈의 명전 1~3선발을 1949년부터 1956년까지 유지했다. 사이사이에 4선발은 올스타 투수인 마이크 가르시아와 비운의 투수 허브 스코어였던 말 그대로 핵선발 팀. 다만 이들은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에 밀려 줄창 아메리칸 리그 2위에 그치다가 딱 한 해 1953년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윌리 메이스뉴욕 자이언츠에 밀려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지금처럼 리그가 지구제였다면 이 팀도 충분히 왕조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팀 감독이었던 루 부드로알 로페스 또한 명전 헌액 감독.[42]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43] 키야마 코지, 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스트라데.[44] 얼마나 사기냐면 1번 타자부터가 .322, 34홈런이었다. 중심 타선은 그 유명한 바스, 카케후, 오카다. 셋이서 홈런만 130개를 넘게 쳤다.[45] 일본시리즈 역사상 유일하게 전경기 지명타자제였다. 퍼시픽 리그 룰이라 퍼시픽 리그가 유리했겠지만 결과는 선술했듯 센트럴 리그 한신의 첫 우승.[46] 인근 시기 우승은 만족하나 2016년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쓰리핏을 달성하지 못해 이견이 있다.[47] 현재 4회 이상 우승한 팀들의 우승 횟수는 성남 7회(최다), 전북•서울 6회, 포항 5회, 수원 4회 등이다.[48] 예를 들면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자국 리그에서의 왕조는 53년부터 65년까지지만 61년~65년까지는 유럽대항전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뒀기에 유럽 전체의 왕조 기간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약스의 경우에는 65년부터 자국 리그에서 강세를 보여줬으나 70년 이전까지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이 없으므로 유럽 왕조 기간은 71년부터로 보는 것이 옳다.[49] 2013-14 시즌부터 레알의 왕조가 시작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2014-15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무관에 그친 반면 2년간 부진하던 바르셀로나가 트레블을 달성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2015-16 시즌부터 왕조로 분류한다. 참고[50] 참고1참고2참고3참고4 해외 언론에서 언급한 왕조 내용과 한준희 위원이 레알 마드리드의 챔스 2연패를 언급하면서 나온 역대 최강팀들에 관한 의견이다. 레알 마드리드(1955~1960), 아약스, 바르셀로나는 항상 고정이고 챔피언스 리그 3연패 이후 레알 마드리드(2015~2018)까지도 포함된다. 다만 해외 언론에서는 리버풀과 뮌헨을, 한준희 위원은 밀란을 선정했는데, 세 팀의 전성 시대가 다 다르므로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 없이 모두 왕조로 인정해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51]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96경기 연속 무패로 2위.[52]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53] 2012년 4월 15일 2103점으로, 원래 1960년대 미겔 무뇨스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높은 레이팅을 기록했으나 최근 재조정되어 바르셀로나가 더 높은 레이팅을 기록하게 되었다. 다만 시즌 종료 시점의 레이팅에서는 무리뉴의 11-12 레알이 가장 높다.[54] 이건 당시 아스널 감독과 첼시 감독이 아르센 벵거 그리고 주제 무리뉴라서 그런거다.[55] 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56] 사실 위대한 인테르 시절 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57]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 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58]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유럽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59]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60] 사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럽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셀틱이 더 왕조에 가까울 것이다.[61] 마이클 조던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넘기위해 고생한 것과 비슷하다.[62] 그나마 비벼볼 만한 팀이 페라리 혹은 윌리엄즈 였다.[63] 로브의 드라이버 챔피언은 04년~12년, 시트로엥의 매뉴팩처러 챔피언은 03년~05년, 08년~12년. 선수와 팀이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로 양 챔피언십을 다 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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