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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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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농구3. 배구
3.1. V-리그
3.1.1. 남자부3.1.2. 여자부
4. 야구
4.1. KBO 리그
4.1.1. 명백히 왕조로 인정된 팀4.1.2. 논란이 있는 팀들
4.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4.3. 일본프로야구
5. 축구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5.1.2. 중국5.1.3. 일본
5.2. 유럽
5.2.1. 스페인5.2.2. 잉글랜드5.2.3. 이탈리아5.2.4. 독일5.2.5. 네덜란드5.2.6. 프랑스5.2.7. 스코틀랜드
6. 아이스하키7. 미식축구8. 모터 스포츠9. 관련 문서

1. 개요

王朝(Dynasty). 특정 개인이나 팀이 우승을 계속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할만큼 막강한 실적을 쌓았을 경우 이 팀을 왕조라 부른다.

이는 흔히 쓰는 전통의 강호라는 표현과는 구분되는데, 이 용어가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역사를 가진 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들 중에서도 우승을 독점하는 것과 같이 그 스포츠 역사에 남을 만한 독보적인 수준의 성적을 이루어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즉, 1번 우승에 2~3번의 준우승이나 2번 연속 우승 정도로는 전통의 강호에는 해당할지언정 왕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냥 전통의 강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팀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2. 농구

2.1. 농구대잔치~한국프로농구

  • 기아자동차 실업농구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울산 모비스 피버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2013~2015년
    허재, 강동희, 김유택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허동택 라인업으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휩쓸었고,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후 프로 원년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2001년 들어 인수 및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온갖 잡음으로 잠시 암흑기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팀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강팀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2005/06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정규 리그 4번 우승, 챔피언 결정전 우승 2번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2/13~2013/14 시즌에는 2년 연속으로 챔피언 결정전 우승, 그 다음 2014/15 시즌에는 통합 우승에 성공하며 KBL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이룬 왕조가 되었으며 그 뒤 고양 오리온에게 챔피언 자리를 넘겼다.

2.2. WKBL

  • 아산 우리은행 위비: 2012~2019
    위성우감독 부임 후, 신한은행의 독주를 끝내며 5연속 챔피언에 등극했다. 물론 다섯변 연속 챔피언결정전 스윕. 1~3년차에는 신한은행과 KB 스타즈가 차례로 도전했으나, 4년째인 2015-16시즌에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5팀이 하향평준화되면서 리그 내에서 막을 팀이 없어진 상태다.[2] 그 뒤 2018-19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에게 패배하면서 5년에 걸친 왕조의 종지부를 찍었다.

2.3. NBA

  •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 1949~1954
    조지 마이칸이 6년 동안 5회 우승을 이끌었던 무적함대. 안타깝게도 레이커스가 1960년 LA로 연고이전한 후 이 시기의 스타들은 기념되지 못하고 있고, 영구결번도 해제된 상태.[3]
  • 보스턴 셀틱스 : 1960년대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3년 동안 11회 우승, 1회 준우승했다.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와 샘 존스(10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4]이 군림하던 시대.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980년대
    1980, 1982, 1985, 1987, 1988년 파이널 우승으로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2년간 5회 우승, 4회 준우승했다. 매직 존슨, 카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디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다만 레이커스가 절대 최강자는 아니었고, 매직의 라이벌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있었다. 셀틱스도 1981, 1984, 1986년 파이널 우승으로 1981년부터 1987년까지 3회 우승, 2회 준우승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1980년대 NBA는 레이커스와 셀틱스 두 팀이 양분했고, 그 가운데 레이커스가 약간 더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두 슈퍼팀의 존재로 NBA 파이널은 녹화방송에서 생중계로 바뀌고, 리그의 인기자체가 상승하는 등 중요한 기반을 쌓게 되었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0년대 후반.
    2015, 2017, 2018년 총 3회 우승. 스테판 커리, 클레이 톰슨, 16~17시즌부터 합류한 케빈 듀란트 등이 군림하던 시절. 준우승했던 2015~16년 시즌에도 정규시즌 73승으로 NBA 역대 최다승을 올리는 등 임팩트는 대단했다. 다만 몇몇 팬들은 쓰리핏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왕조로 칭하는것은 시기상조란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결국 2019년 파이널에서 쓰리핏에 실패하면서 왕조 논란에서 자유로워질수는 없게 되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1999, 2003, 2005, 2007, 2014년 5회 우승으로 결코 커리어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지만, 의외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받고 있다. 과소평가받는 이유는 연속 우승이 없고, 5번의 우승이 너무 장기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3연속 우승을 노리던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박살내고 5회 우승을 차지하자 스퍼스의 꾸준함이 재조명되면서 평가가 올랐다.[6] 그래서 스퍼스를 가장 조용한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팀 던컨은 5번 우승의 핵심 멤버였으며 데이비드 로빈슨(2회), 토니 파커(4회), 마누 지노빌리(4회), 카와이 레너드(1회) 등이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아이재아 토마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1989, 1990년 2년 연속 우승을 했고, 코비 브라이언트파우 가솔의 LA 레이커스도 2009, 2010년에 2년 연속 우승,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마이애미 히트도 2012, 2013년 2년 연속 우승을 했지만, 단지 2년 연속 우승만으로는 왕조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2.4. WNBA

  • 휴스턴 코메츠: 1997~2000
    WNBA가 출범된 첫 해부터 내리 4연패를 거두며 WNBA 최초의 왕조를 이룬 팀. 전성기가 겹쳤던 뉴욕 리버티는 코메츠에게 3번이나 준우승을 먹으면서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그 뒤 경영난으로 2008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메츠의 해체 이후 4연패를 한 WNBA팀은 전무하다.[7] 2017년 미네소타 링스가 4회 우승으로 코메츠를 따라잡았다.

3. 배구

3.1. V-리그

3.1.1. 남자부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997~2014
    다소 뒤늦게 창단되어 실업 리그에 참가, 2004년에 대회가 없어질 때까지 8연패를 질주했다.[8] 실업 배구가 막을 내린 뒤에도 V-리그 원년(2005년) 우승을 거머쥐며 총 9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년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2007-08 시즌부터 다시 7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9] 이 연속우승기록은 2014-15시즌 4월 1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깔끔하게 스윕패 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후, 리그는 몰빵일변도를 넘어 춘추 전국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10] 이 시기의 삼성화재는 가장 논란이 많은 스포츠 왕조였으며 자세한 사항은 몰빵배구 참조.

3.1.2. 여자부

  • 호남정유/LG정유 여자 배구단: 1990~1999
    여자배구 최장기 집권 팀이자 9연속 슈퍼리그 우승팀. 장윤희, 정선혜, 이도희, 박수정, 홍지연이라는 전원 국가 대표 주전 라인업과 수비 배구의 달인 김철용 감독을 앞세운 무시무시한 철벽 수비로 슈퍼리그 9연패를 달성하고, 저 멤버에 한일합섬의 라이트 김남순만 끼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도 달성했다. 1997년부터는 LG정유라는 이름으로 팀명을 바꾸어 리그에 참여했다. LG라는 이름을 달았던 모든 구단들 중 유일하게 왕조를 이룩한 구단이기도 하다.
  • 현대건설 여자 배구단: 2000~2004
    동시기 현대 유니콘스와 더불어 현대 그룹의 또다른 왕조이자 실력으로 살아남은 구단. 연쇄 해단 상황 당시 모기업도 위험했던 상황에서, 당시 경영진이 경기를 보고 해단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 한다라는 의지를 피력해 해단 위기를 넘겼다. 당시 합류한 슈퍼 루키 정대영, 이숙자, 한유미에 기존 주전인 구민정과 이명희, 호남정유의 연승을 92에서 저지했던 선경의 멤버인 장소연, 강혜미, 류화석 감독을 조합으로 프로화 전까지 여자배구를 호령하던 명문. 다만, IMF 금융위기 당시 무려 5개 배구단(선경, 후지필름, 효성, 한일합섬, 대농)이 사라지며 얻은 진화타겁이라고 폄하되고 각인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

4. 야구

왕조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종목.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속 우승도 아니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만 해도 왕조라는 용어가 쓰였고 이런 심한 남용은 여러가지 논란을 야기한다. 논란은 후술.

4.1. KBO 리그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파일:attachment/OB_Bears.png 파일:32zZQzk.png파일:lotte_current_emblem.png파일:SL_emblem.png 파일:32zZQzk.png 파일:32zZQzk.png 파일:32zZQzk.png 파일:32zZQzk.png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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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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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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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38번의 시즌동안 KIA[11] 11회, 삼성 8회, 두산[12] 6회, SK 현대[13] 4회, 롯데 LG 2회, 한화 1회 순으로 우승하였다.

4.1.1. 명백히 왕조로 인정된 팀

야구팬들 모두가 인정하는 논란이 없는 팀이다. 해태와 삼성 두팀이며, 각각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3연패는 사실상 원조 왕조 구별법으로 미국에서 나온 개념이며 3연속 우승, 또는 쓰리핏으로 불리고 있다.

이 팀들을 흔히 다이너스티라고 부르며, 이를 KBO에 대입하면 해당되는 팀은 1986~1989년 해태 타이거즈2011~2014년 삼성 라이온즈 두 팀뿐이다.
4.1.1.1. 1대 왕조: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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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4 1986년~1989년
KBO 최초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하며 이견없이 최초의 왕조로 인정받는 김응용 감독이 이끌었던 팀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였던 1983년 리그 2위, 최종 우승으로 첫 우승을 경험한 이후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야전 사령관 이순철, 해결사 한대화가 등장하고, 오리궁뎅이로 유명한 강타자 김성한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해태는 최고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 내리 우승을 하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해태는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2위만 3번을 기록하면서 페넌트레이스 기간에는 압도적인 강팀으로 불리기는 어려웠으나 가을만 되면 뛰어난 집중력과 실력을 발휘하며 삼성 라이온즈빙그레 이글스와 같은 라이벌 팀들을 모두 누르고 4차례의 우승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하면서 5연패 달성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비록 연패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해태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 부터 다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1997년까지 평균 2년마다 한번 꼴로 우승을 거두며 비록 온전한 왕조는 이루지 못했으나 여전히 당대 최강팀이란 것을 계속 보여주었다. 그래서 2019년 두산의 우승으로 인해 '왕조'에 대한 더 철저하고 엄격한 정의규정 필요성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타이거즈 왕조의 시기를 1986년에서 1997년까지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었다.[15]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 되어 있다. 삼성이 왕조 종결 이후 순식간에 하위권 팀으로 추락한 것과 비교해보면 인상적인 부분이다.
4.1.1.2. 2대 왕조: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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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4 2011년~2014년
전통의 강호였음에도 너무나 늦게 왕조의 지위를 얻은 팀. 삼성은 원년부터 중상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올리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큰 경기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왕조는 커녕 콩라인에서 벗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 감독을 거치며 준우승 징크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으며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스윕패를 이유로 삼성은 용퇴라는 형식으로 선동열 감독을 해임하고[16]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 류중일 감독은 전임 감독과는 달리 선발 야구[17],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안정권KO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의 활약과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이 더해지며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돌아온 국민 타자 이승엽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2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결국 통합 3연패[18]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비로소 왕조로 불리게 되었다. 2014년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통합 4연패[19]를 달성해 버린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금지어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등의 국내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뒤를 받쳐 그야말로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 쪽에서도 대도 유망주 둘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국민타자 이승엽조차 6번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로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2014년에 데려온 외인타자 야마이코 나바로는 대박을 터뜨리며 공-수-주에서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러다 통합 10연패 하는거 아니냐(...)는 과장된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그만큼 당시 삼성은 도대체 어느 팀이 막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4년 동안 리그를 지배한 최강팀이었다.

2015년 삼성은 정규시즌 5연패에 성공했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졌고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삼성은 두산에게 업셋 당하며 통합 5연패 달성에 실패한다. 사실 그 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점차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20]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그룹이 갑작스럽게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하며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그 여파로 중심 타선인 야마이코 나바로박석민은 타팀으로 이적한다. 그 후 돈을 아끼기 위해 데려온 용병들은 하나 같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돈은 돈대로 쓰고 성적까지 못내는 상황에 빠져들고 만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자신들의 삽질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류중일 감독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동을 하였고 2016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왕조도 몰락해 버렸다.

4.1.2. 논란이 있는 팀들

그동안 KBO 리그에서는 해태 - 현대 - SK - 삼성 순의 왕조가 주류였었다. 하지만 앞선 4팀들은 인상적인 성적을 꾸준히 보여 줬기 때문에 왕조로 언급 되었던 것이지 특별한 분류법에 의해서 뽑혔던게 아니었다.[21] 따라서 객관적인 기준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2연속 우승 및 인근시기 우승'이라는 조건을 가진 분류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분류법은 기존 왕조팀을 그대로 인정하려고 했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 한다.[22] 새롭게 만들어진 분류법은 객관적인 기준을 요구 받아 만들어진 것이고 기존의 왕조팀들은 주관적으로 정해진 결과였다. 객관적인 원인을 통해 주관적으로 정해진 결과를 끌어내려 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문제의 중심은 현대와 SK였는데 2000년대 현대, 삼성, SK 3팀의 성적은 매우 비슷했다.[23]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진 분류법을 적용하면 3팀을 모두 왕조로 인정 하던지 아니면 SK만 왕조로 인정하는게 옳았다.[24] 하지만 분류법을 만들어 놓고는 기존 왕조를 고수했고 이 때문에 인근 시기에 대한 객관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주관적인 결과를 객관화 시키지 않아서 거꾸로 객관적이었던 원인이 객관적이지 못하게 되버린 것이다. 이 문제점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고 2000년대 3팀과 비슷한 성적을 거두는 팀이 등장하면 그 팀을 두고 또 다시 지루한 논쟁이 오갈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2019시즌 두산의 우승으로 이는 현실화 돼 버린다. 분류법에 대한 객관적인 재설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여지가 있었고 여기서 3연패가 대두된다.

3연패에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는 시각도 있는데 3연패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만만한 성적이 아니다. 특히 야구는 상위권팀과 하위권팀간의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연속 우승이 엄청 어려운 종목이다. 우승팀이 6할의 승률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최하위팀이 3할 이상의 승률을 달성할 수도 있다. 다른 프로 스포츠인 축구, 농구, 배구 등을 보면 이러한 이질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승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낮은 허들 때문에 하위권팀에게 발목을 잡히면 우승을 못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 되었듯이 승률이 촘촘하게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야구가 가진 종목상의 특징 때문인데 다른 종목에서는 엄청난 기량을 가진 선수의 비중을 높이는 전술을 통해 높은 승률을 유지하면서 연속 우승에 도전 할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에이스급 선발 투수를 갖고 있더라도 그 선수를 활용 할 수 있는 경기는 전체 시즌 중 최대 1/5 안팍 정도이며, 홈런왕 4번타자를 갖고 있더라도 그 4번타자 역시 9명이 나서는 타자 중 한명 일뿐이다. 다른 종목과 비교시 특정 선수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며 팀 성적을 끌어 올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타 종목과 비교시 야구는 연속 우승이 쉽게 나올 수가 없다. 3연패는 이처럼 만만히 볼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위와는 반대로 3연패는 너무 가혹한 조건이므로 5년동안 3번의 우승을 왕조의 기준으로 놓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소 무리가 있는게 야구는 우승권 전력을 갖추기가 쉽지는 않으나 일단 우승권 전력을 만들면 연속 우승이 힘들지 5년동안 3번정도의 우승은 충분히 거둘수 있다.[25] 팀을 완성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 뿐 일단 완성하면 왠만해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얼핏 보면 위의 설명과 상반된 얘기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주의 해야 하는게 연속 우승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것이 아니다.[26]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특징이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선수가 빠져나가도 다른 종목과 비교시 타격이 크지 않다는 소리다.[27] 위의 2팀과 아래의 5팀을 합치면 5년동안 3번의 우승에 성공한 팀이 총 7팀인데 실제로 2019시즌을 끝으로 KBO는 38시즌을 보냈고 이를 5년으로 나누면 대략 7에서 8이다. 얼핏 보면 나오기 어려워 보이지만 5년동안 3번의 우승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생각만큼 엄청난 성적이 아니라는 소리다. 5년동안 3번의 우승을 왕조의 기준으로 잡으면 당장 7팀의 왕조가 생겨버린다.

마지막으로 해태와 삼성은 4연패를 달성한팀이고 아래의 팀은 5년동안 3번 우승을 한팀이다.[28] 4연패를 한팀과 5년동안 3번 더군다나 3연패 조차 실패하고 2번 1번씩 나누어서 우승을 한 팀을 동등하게 두는것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나아가 3번째 우승 이후 4번째 우승을 달성하는데 걸린 기간을 살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더 명확해진다. 해태와 현대는 7년이 걸렸고,[29] 삼성은 2011년으로 10년,[30] SK는 2018년으로 12년, 두산은 2001년으로 올라가 19년만에 4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이 가운데 그나마 가장 우수한 성적이 7년간 4회의 우승인데 이것을 4년간 4회의 우승과 동등하게 두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래의 팀들이 강팀인건 사실이나 4연패를 달성한 해태나 삼성처럼 왕조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 해야 한다.
감독 우승 시기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4 1991년~1997년
해태는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하며 5연패에 실패했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이후 1990년대 초 들어서 핵 잠수함 이강철, 싸움닭 조계현, 90년대 야수 sWAR 1위를 기록한 홍현우 등 슈퍼 스타들이 줄줄이 등장하였고 93년에는 이후 타이거즈의 투타의 핵심을 이룬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대진이, 90년대 후반에는 창용불패로 이름난 임창용이 등장하는 등 걸출한 신인들이 주전 선수들의 뒤를 받쳐주거나 주전을 꿰차면서 리빌딩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4년 연속 우승하던 80년대 중후반만큼은 아니어도 초호화 선수진을 이끌며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까지 90년대에 우승을 4번이나 차지했다. 무엇보다 4연패 시절에는 통합 우승이 1번뿐이었기에 페넌트레이스보다 유독 포스트시즌에 강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1990년대에 우승한 시즌은 모두 통합 우승을 기록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강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해태의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이종범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진출시키고,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며, FA였던 이강철, 홍현우도 놓치는 등,[31][32] 주전 선수들의 유출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감독 우승 시기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4 1998년~2004년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찰나의 영광. 현대는 당시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야구 팀이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33] 분위기 쇄신이 목적이었으므로 현대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강팀이 되어야 했다. 프런트 측은 삼성과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 쌍방울의 선수와 유망주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 했고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했다.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박종호, 송지만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팀들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양대 리그였던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시즌 최다승 기록인 91승을 거두기도 했다.[34] 이 시즌에 기록한 승률 0.695는 역대 시즌 승률 3위이자, 전/후기리그 체제가 아닌 단일 시즌 기준으로는 승률 1위의 기록이다. 오죽하면 야구장에서 김밥 파는 할머니가 감독 해도 우승한다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가는[35]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08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뒤 신생 구단인 서울 히어로즈가 현대 선수단을 인수했다.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3회의 통합 우승과 양대 리그 당시 1회 우승[36]으로 통산 네번 우승했다. 하지만 해단으로 인해 우승 횟수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어 최종 4회 우승으로 팀 역사를 마감한다.[37]
감독 우승 준우승 시기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선동열 3 2 2001년~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없이[38] 준우승만 6차례 기록했던 삼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해태 왕조의 수장 김응용을 영입하지만 2001년에 또 다시 준우승에 그치고, 그해 겨울 SK에 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정경배, 이용훈을 주고 좌완투수 오상민과 유격수 틸슨 브리또를 받아오는 6대2 트레이드를 단행, 양준혁도 FA로 다시 영입한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이승엽, 마해영의 백투백 끝내기 홈런으로 LG를 꺾고 마침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2003년 준PO에서 SK에 패하며 4위, 2004년 현대와 9차전 승부 끝에 준우승에 머무른 삼성은 시즌 종료 후 김응용 감독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선동열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FA로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하며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뒤 2005년, 2006년 각각 두산, 한화를 꺾고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07년부터 3년동안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중위권에 머물더니 결국 2010 시즌을 끝으로 김응용, 선동열 모두 삼성을 떠나게 된다.

이 시기의 삼성은 현대, SK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과 팬들로부터 유독 왕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현대와 전성기가 겹쳤던 점, FA를 싹쓸이하면서 돈성이라는 안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점,[39]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삼성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점[40] 등이 있다.
감독 우승 준우승 시기
SK 와이번스 김성근 3 1 2007년~2010년
아직까지 신생 팀 이미지와 쌍방울 후신격, 인천 야구의 서자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SK는 하위권을 전전하기는 했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2003년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후 스포테인먼트 차원에서 태평양 돌핀스 등으로 인천 야구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41]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건다. 아직도 현대의 배신 때문에 야구장을 찾지 않던 팬들에게 SK는 인천에 남을 것이라는 어필과 함께, 리빌딩을 하던 감독을 중간에 포기하면서까지 우승을 하겠다는 행보를 보였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팀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동시에 직접 펑고를 쳐가면서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경기에서는 1점을 짜내기 위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야구를 했다. 이는 약점이 없는 팀,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논란의 중심이 되는 원인이 되었지만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42] 2007년, 2008년, 2010년 세번의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록 2009년도에는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정규시즌에서 김광현, 박경완, 전병두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시즌 막판 19연승을 달성했고 한국시리즈에서 KIA를 7차전까지 압박하는 등 인천과 전국의 야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 SK는 특유의 집요함과 정밀함으로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야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공공의 적 취급을 받을 정도로 치밀한 야구를 구사하여 다른 팀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이 때 주요 선수들로 에이스 김광현, 전대 에이스 채병용, 선발-불펜 전천후 송은범 등이 선발을 이끌었고 여왕벌 정대현, 고무팔 정우람, 좋은 슬라이더를 가진 윤길현, 원조 에이스이자 아픈 손가락 이승호, 또 다른 아픈 손가락 전병두, 롤러코스터 고효준, 어린왕자 김원형, 프랜차이즈 조웅천, 원포인트로 활약했던 큰 이승호가득염 등 재능있는 투수들이 김성근식 벌떼야구를 책임졌다. 타선에선 영구결번 박경완, 캐넌히터 김재현, 호타준족 박재홍, 중심타선 이호준, 난세의 영웅 안치용 등의 노장들과 미스터 옥토버 박정권, 짐승 김강민, 소년장사 최정, 날쌘돌이 정근우, 놀부 나주환, 아트스윙 박재상 등의 젊은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핵타선은 아닐지라도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43]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44]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사실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기사를 참고해보면 SK가 왜 몰락했는지 알 수 있다.김성근-이만수 결별은 예정된 귀결이었나
감독 우승 준우승 시기
두산 베어스 김태형 3 2 2015년~2019년
두산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분위기가 침체된 삼성을 2015년에 무너뜨리고 2016년에는 통합 우승을 하며 2연패에 성공한다. 하지만 계속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두산은 2017년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 후 한국시리즈에서 무력하게 패배하며 3연패에 실패했고, 2018년에는 2위와 14.5게임차가 나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지만 SK에게 충격적인 업셋을 당해 버린다.[45] 하지만 2019년 후반기 80승에 선착하며 순조롭게 정규시리즈 우승을 달성할것 같았던 SK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시즌 최종전에 승리하면서 정규시리즈에 우승에 성공, 작년 SK에게 당했던 패배를 간접적으로 되갚아준다. 이후 두산은 한국시리즈 우승도 달성하며 2016년에 이어 2019년에 또 다시 통합 우승에 성공한다.

2019시즌이 끝나자 이미 왕조로 인정받았던 현대, SK와 엇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두산도 왕조로 칭해야 한다는 논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현대, SK는 왕조로써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 받았는데[46] 성적이 비슷한 팀이 등장하지 않았서 잠잠했을 뿐 언젠가는 분명히 발생 할 논란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논란은 걷잡을수 없이 커졌고 팬들간의 수많은 의견이 오가며 현재와 같은 문서로 정리가 되었다. 따라서 두산이 당장 2020년에 우승한다 하더라도 왕조로 칭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4.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뉴욕 양키스: 1920~1965[47], 1995~2001[48]
    1920~1965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타격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 20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LA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1995~2001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1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19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2~1976[49]
    지금은 빌리 빈머니볼로 유명한 팀이지만 20세기에는 월드시리즈를 9차례나 제패했던 명문 구단이다. 특히 1970년대에 구단주 찰리 핀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72년~76년까지 월드시리즈 3회 연속 우승과 3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 5년 연속 지구 우승을 기록하며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이 때 달성한 월드시리즈 3연패는 메이저리그에서 오직 오클랜드와 뉴욕 양키스만 가지고 있는 기록. 이 시기 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로는 롤리 핑거스캣피시 헌터레지 잭슨바이다 블루, 진 테나스 등이 있다.

4.3. 일본프로야구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1~1953, 1965~1973[50]
    1951~1953시즌은 양극화가 심각한 때였다. 센트럴에서는 요미우리만 올라오질 않나, 반대는 난카이가 올라오면서 자이언츠-난카이 3연전을 했다. 이 도전을 모두 이겨내면서 3연패 달성. 1호 야구단의 저력을 보여주며 1차 왕조를 세웠다. 1965~1973시즌은 1951~1953시즌을 왕조 따위로 만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시기. 과장 아니고 해마다 10월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왕정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1974년 1리 차이로 주니치에게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나인핏 왕조는 종결된다.
  • 니시테츠/세이부 라이온즈: 1956~1958, 1982~1992[51]
    1956~1958시즌은 후쿠오카 시절 왕조. 난카이가 콩조를 달성하고 주르륵 미끄러진 사이 그 틈을 노려 리그 우승을 했고, 바로 3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지방 사철이라 돈도 없어서 전력 유지가 힘든 나머지 내려왔고, 이후 검은 안개 사건으로 팀은 완전히 멸망 직전까지 갔다. 1982~1992시즌은 사이타마로 옮기고 세웠으며,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52]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53]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세이부가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두 번(1984, 1989)이며, 해당 기간 9회 일본시리즈에 출장해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우승했는데, 우승에 실패한 한 번은 상대가 역대 최고의 사기 타선을 보유했던 1985년 한신 타이거스였다.[54][55] 이 시기 세이부 감독을 맡았던 히로오카 타츠로모리 마사아키 모두 요미우리 V9 시절 멤버였고,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3번 만나 모두 이겼다.
  • 한큐 브레이브스: 1975~1977
    발야구로 상대를 유린하고, 정상급 투수로 퍼시픽 리그 최강으로 군림. 왕조 되찾으러 왔다는 자이언츠를 2연속 격파하며 자이언츠 천하 종결을 확인사살했다.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2019 진행중[56]
    이대호 영입을 비롯한 과감한 투자를 시작으로 2014년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낙점되었고, 실제로도 2014 시즌부터 센트럴, 퍼시픽 종류 안 가리고 잘 이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로 2014년엔 한신 타이거스, 2015년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이부 라이온즈의 3연속 우승 이후 23년 만에 연속 우승팀이 나왔다. 단 2016년에는 전반기에 11.5게임차까지 게임차를 벌려놓은 채 선두를 유지하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막판 스퍼트에 역전당해 리그 우승을 내줬고, CS에서도 닛폰햄에 패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 2017년, 2018년, 2019년 3-peat을 달성하며 진짜 왕조는 이제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세이부 왕조 감독들이 요미우리 왕조 출신이라면, 이 시기 소뱅 감독들인 아키야마 코지쿠도 키미야스는 세이부 왕조 멤버이자 일본시리즈 MVP 출신이며, 1999년 일본 시리즈에서 호크스의 35년만의 우승에 공헌을 했다. 또 감독으로서 호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오 사다하루는 구단 회장으로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5. 축구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

  • 일화 천마: 1993~1995, 2001~2003
    K리그에서 최초로 왕조를 구축했던 팀. 현재 '통산 7회 우승으로 K리그 최다우승팀이다.[57] 동대문 연고 시절인 1993~1995 시즌에 3연패, 성남으로 연고 이전한 이후인 2001~2003 시즌에 3연패로 총 2번에 걸친 3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첫 번째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인 1995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K리그 팀 중 최초로 시즌 더블을 달성하였다. 두 번째 3연패 기간 중 2003년에는 승점 91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다 승점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모기업이던 일화가 슬슬 발을 빼던 2010 시즌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결국 문선명 교주가 사망하면서 일화에서 성남시에 팀을 매각, 중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챌린지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2019년 현재는 다시 K리그1로 복귀하였다.
  • 전북 현대 모터스: 2009~
    현 시점 K리그의 최강팀.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하며 혜성같이 등장했고 이후 2009년 K리그까지 재패 했으며 이후 2011년도 우승 2014,2015년도 연속우승 2017,2018년도 연속우승 하며 제대로 깡패짓 했다. 심지어 2018년도 시즌은 스플릿 라운드 하기도 전에 우승하고 2016년도 심판 매수 사건 때문에 9점 승점 삭감에다가 마지막 라운드 FC서울의 막판 뒤집기로 2016년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때 전북이 우승 못 한 2010, 2012, 2013, 2016년도는 전부 FC 서울포항 스틸러스가 우승했다.

5.1.2. 중국

  • 다롄 스더: 1994, 1996-1998, 2000-2002, 2005 (2012년 해체)
    당시 구단주인 쉬밍은 태자당의 선두주자인 보시라이를 뒷배경으로 두고 돈지랄을 하여 국대급 선수들을 모아 8회 우승을 했으나, 보시라이가 정치적으로 몰락하면서 팀도 발살이 났다. 이후 이 팀은 해체되어 이웃 연고팀인 다롄 아얼빈으로 합병되었고, 아얼빈은 다시 다롄 이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1~2017
    이른바 황사머니로 세계 이적시장을 뒤흔들면서 리그 7연패에 2013, 201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차지한다.

5.1.3. 일본

5.2. 유럽

아래 수많은 유럽 리그의 왕조들이 서술되어 있지만 대부분 자국 리그 한정이고, 유러피언 컵과 그 후신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준으로 한 축구 왕조[58]는 시대 순서대로 레알 마드리드 CF(1955~1960), AFC 아약스(1970~1973), 바이에른 뮌헨(1973~1976), 리버풀 FC(1976~1984), AC 밀란(1987~1994), FC 바르셀로나(2008~2012), 레알 마드리드 CF(2015~2018)[59]까지 7팀이 주로 언급된다.[60]

5.2.1. 스페인

5.2.2. 잉글랜드

  • 리버풀 FC: 1972~1985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거뒀다. 특히 당시는 리그 우승팀과 전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팀에게만 유러피언 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는데, 1976-77 시즌부터 1984-85 시즌까지 아홉 시즌간 유러피언 컵에 개근하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즉, 저 기간 동안 반드시 리그 우승이든 유러피언 컵 우승이든 거뒀다는 것이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2003, 2007~2013
    퍼거슨 왕조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0-91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필두로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미어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및 98-99 시즌 트레블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더욱이 이 트레블을 달성한 경기는 캄프 누의 기적(1999)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다. 이후 아스널, 첼시 등의 역습으로 잠시 침체기를 맞았으나[64] 2006년부터 다시 전력을 재정비, 2013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이룩했다.

5.2.3. 이탈리아

  • 유벤투스 FC: 1930~1935, 1975~1986, 2012~
    1930년대 세리에 A 프로 개편 후 첫 5연패를 차지했고, 1970년대~1980년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 시절 세리에 A 6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러피언 컵 1회, 컵 위너스 컵 1회, UEFA 컵 1회, 도요타 컵 1회 등 14개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이 당시 UEFA 주관 대회를 최초로 전부 제패한 기념으로[65] UEFA에서 UEFA Plaque라는 명예 트로피를 최초이자 최후로 지급받았다. 2011-12시즌부터 리그는 한 시즌도 빼놓지 않고 우승하면서 다시 왕조의 반열에 올라섰다.
  • 토리노 FC: 1942~1949
    일명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로 리그 5연패를 달성했으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왕조의 막을 내렸다. 인테르와 함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탈리아 클럽이다.
  • AC 밀란: 1987~1994
    압박 축구를 완성한 아리고 사키와 후임 파비오 카펠로 휘하의 87~94년 동안 리그 우승 3연속 우승을 포함한 4회를 기록했으며, 91-92 시즌에는 무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까지 무패를 이어가며 5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최후의 2연패를 포함한 3회 우승. 이때 당시의 밀란은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괜히 밀란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게 아니다.

5.2.4. 독일

  • FC 바이에른 뮌헨: 1971~1976, 2013~
    비록 분데스리가에서는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발목을 잡히고 74-75 시즌 리그 10위로 추락하기도 했으나, 리그 우승 3회와 유러피언컵 우승 3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독일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1966년 월드컵 준우승, 1970년 월드컵 4강, 1972년 유로컵 우승, 1974년 월드컵 우승을 거두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68] 2013년부터 현재까지 리그 연패 진행중이며 특히 2013년에는 독일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5.2.5. 네덜란드

  • AFC 아약스: 1965~1973
    축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었던 팀. 리누스 미헬스가 그의 분신 요한 크라이프를 앞세워 이룬 토털 혁명을 토대로 리그 우승 6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를 거뒀다. 71-72 시즌에는[69] 48전 42승 5무 1패, 135득점 27실점, 승률 87.5%라는 엽기적인 팀 기록을 찍으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87.5%라는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단일 시즌 최고 승률이다.

5.2.6. 프랑스

  • 올랭피크 리옹: 2002~2008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7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며 유럽 상위 리그 클럽 중 최다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이 기세를 몰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킬러로 등극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5.2.7. 스코틀랜드

  • 셀틱 FC: 2012~현재
    유일한 맞수인 레인저스 FC가 재정난 후 강제로 4부 리그로 강등당해 더 이상 말은 필요없긴 한데...그런데 1부리그로 승격했다 리그야 셀틱의 독무대이긴 하지만 컵 대회에서는 아니다. 2014년 리그 컵에서는 3부 리그 팀에게 연장전까지 가서 패했으니 왕조라고 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 물론 어디까지나 리그에 한해서 왕조는 확실하다.[70]

6. 아이스하키

6.1. NHL

  •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1955~1986
    NHL의 뉴욕 양키스, NHL 최다 우승횟수인 24회를 기록한 팀이며,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자존심인 팀. 50년대, 1955년부터 1986년까지 16번을 우승했으며 그 기간 사이 5회 연속 우승4회 연속 우승을 한 번씩 기록했다. 몬트리올의 1993년 우승은 현재까지 캐나다 소속 NHL팀의 마지막 우승이기도 하다.
  • 뉴욕 아일런더스: 1980~1983
    1980년대 초창기의 왕조. 1980~83년까지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면서 리그 정상의 자리를 지켰고, 가장 위대한 아이스하키 선수로 불리우는 웨인 그레츠키조차도 아일런더스의 벽을 넘는데 고생을 했다. 하지만 결국 성장한 그레츠키로 인해서 아일런더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71]
  • 에드먼턴 오일러스: 1984~1990
    선택받은 자로 불리우는 웨인 그레츠키의 1980년대의 왕조. 웨인 그레츠키,마크 메시어,야리 쿠리,글렌 앤더슨이라는 꿈에서나 볼법한 라인업을 갖추어 1984, 85, 87, 88시즌을 우승했고, 그레츠키가 LA로 떠난 이후에도 1990년에 우승을 한 번 더했다. 무려 선수들의 재능을 팀이 감당하지 못하여 무너진 왕조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중소도시팀인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재정으로는 역사에 남을 뛰어난 선수들을 모두 지켜낼 수 없었고, 1990년 이후로 영광의 멤버들이 팀을 떠나며 왕조는 막을 내렸다.

6.2.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 안양 한라 : 2015~현재
    영구결번 심의식의 지도하에 리그 역사상 2번밖에 없는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겪은 뒤, 체코 출신의 이리 베버 감독을 선임하면서 팀을 다시 재건했고 베버 감독에게서 영구결번 패트릭 마르티넥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2015-16, 16-17, 17-18 3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룩했다. 일본팀과 러시아팀들 중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2017-18시즌의 우승은 평창올림픽으로 주전들이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에서도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2패밖에 허용하지 않으면서 우승했다.

7. 미식축구

7.1. NFL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980년대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격을 창시한 감독 빌 월시와 20세기 최고의 쿼터백인 조 몬태나가 환상적인 공격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와이드 리시버인 제리 라이스까지 합류하면서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러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1981, 1984, 1988, 1989 등 80년대에 슈퍼볼 4회 우승을 기록했다.
  •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2~1995
    새로운 구단주인 제리 존스와 함께 합류한 감독 지미 존슨이 팀을 완벽하게 물갈이한 결과 쿼터백 트로이 에이크만, 러닝백 에밋 스미스,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어빈 등 공격 트로이카를 구축했고 강력한 수비까지 더해지면서 1992, 94, 95 시즌 등 90년대에 슈퍼볼 우승 3회를 차지했다. 버팔로 빌스를 전설적인 콩라인으로 만들어버린건 덤.

8. 모터 스포츠

모터 스포츠에서의 왕조는 경주차의 제작사(컨스트럭터, 매뉴팩쳐러)가 따낸 포인트 기록을 합산하여 최종적으로 많은 포인트를 따낸 팀이, 이후 차기 시즌에도 연속 우승을 수립할 경우에 왕조라고 부른다. 모터스포츠에선 보통 자동차 제조사를 위한 컨스트럭터 챔피언쉽과 드라이버를 위한 드라이버 챔피언쉽이 있기 때문.

8.1. 포뮬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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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포뮬러 : 1960년 ~ 70년대 말
콜린 채프먼이 F1 레이스카 구조의 혁명을 이끈 시기. FR에서 MR로 넘어가고 프론트 윙과 리어 윙이 달렸으며 그라운드 이팩트까지 온갖 유체역학적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 당시 JPS 리버리의 로터스는 60~70년대동안 월드 챔피언쉽을 7번이나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최고의 드라이버들이던 에메르손 피티팔디, 스털링 모스, 잭 브라밤, 그레이엄 힐, 요헨 린트등이 팀 로터스에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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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레이싱 : 19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
아일톤 세나알랭 프로스트의 라이벌 매치로 대표되는 시기. F1이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F1을 호령하던 팀으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아일톤 세나의 전성기와 맞물리는 시기는 맥라렌에게 대적할 F1팀이 없었다.[72] 이는 혼다의 터보 엔진과 멕라렌 섀시의 궁합이 절정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1988년 시즌은 전체 시즌중 이탈리아 GP만을 제외하고 모두 맥라렌의 두 드라이버가 우승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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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데리아 페라리 : 2000년 ~ 2004년
슈마허 시대로 정리할 수 있는 F1 역사상 최강의 팀. 무려 5연속 더블 타이틀 석권과 미하엘 슈마허의 7회 F1 월드 챔피언이라는 대업적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페라리 드림팀이라 불리는 장 토드, 로스 브런, 미하엘 슈마허가 뭉쳤었고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멕라렌에게 빼았겼던 역대 F1 종합성적 1위로 당시 올려놓은 시기이기도 하다.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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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 레이싱 : 2010년 ~ 2013년
한국팬들이 제일 많이 기억하는 F1 왕조중 하나. 코리아 그랑프리가 처음 개최된 2010년부터 우승하기 시작해 2013년까지 4연속 더블 타이틀을 석권한 신흥 강팀. 제바스티안 페텔의 4연속 월드 챔피언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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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F1 : 2014년 ~ 현재 진행중
현재진행형인 F1의 왕조. 2018년 시즌을 더블 타이틀로 우승함으로 2000년대 페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5연속 더블 타이틀 챔피언이 되었다. 진정한 실버 애로우의 귀환. 혹자는 사실상 40년대 실버 애로우를 넘어섰다고도 얘기한다. 루이스 해밀턴후안 마누엘 판지오와 나란히 하는 5회 월드 챔피언으로 올려놓은 팀이기도 하다. 2014년 이후 하이브리드 터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팀.

8.2. W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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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레이싱 : 1970년~70년대, 80년대, 90년대 중후반, 2015~17년
사실상 70년대 이후 패배한 적이 없는 르망의 황제. 1970년 첫 출전 이후 통산 19승이라는 범접 불가능한 기록을 보유중이다. 1981년부터 87년까지 무려 7연승을 했을 정도. 70년대 이후 르망 역사는 포르쉐를 빼놓곤 성립이 안되는 수준. 더 웃기는 것은 워크스 팀으로 출전하지 않았을 때도 포르쉐의 차로 참가한 프라이빗 팀이 르망을 우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포르쉐가 사르트 서킷에 얼마나 일가견이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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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스포트 팀
21세기 초반 르망을 지배한 제조사. R8을 시작으로 디젤 시대를 지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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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1960~1965년
1960년대 페라리는 르망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 250,270,330은 대표적인 페라리의 르망 위너들. 이 이후로 오직 페라리만 때려 잡으려고 개발된 페라리 헌터 포드GT가 등장한 이후 신흥 강자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중.[74]

8.3. W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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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 1987~1992년
스트라토스를 시작으로 초기 WRC를 지배하고 그룹B 때는 아우디에 잠시 밀렸다가 그룹 A 시대가 오면서 란치아 델타WRC 6연속 재패라는 대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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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 2003~2012년
세바스티앙 로브9시즌 연속 월드 랠리 챔피언 한 마디로 설명되는 2000년대 WRC 최강의 팀.[75]

9. 관련 문서


[1] 국내선수들로는 막을 수 없었던 하은주의 존재때문에 현재까지도 저평가를 받고 있는 왕조이기도 하다.[2] 2015-16시즌 정규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팀이 2,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 2017-18시즌 정규리그는 양지희의 은퇴와 외국인선수 두 명 모두 부상으로 교체하면서 개막 2연패 후 첫 승을 기록했다.[3] 이를 비판하는 농구팬들은 미니애폴리스 시기의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면 5회 우승을 반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이로 인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NBA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였고 농구역사상 빼놓고 언급하는게 말이 안되는 마이칸이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이칸은 존재 자체로 위태로운 신생 NBA가 자리잡게 한 가장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또한 농구의 여러 규칙 (3초룰, 24초 샷클락, 골텐딩 등)이 이 분 때문에 바뀌었다. 그런데 이런 선수가 영구결번조차 못 된 것.[4] 빌 러셀이 은퇴하고 1974년과 1976년에 2번의 우승을 더했다. 총 8회 우승[5] 그러나 이후 시카고 불스 구단은 이 시기의 우승과 조던의 명성에 기대어 계속 팬들에게 장사만 하지 정작 우승에는 큰 관심이 없는 짠돌이 행보를 보이며 엉망인 운영을 하고 있어 이 왕조를 불스 왕조가 아니라 조던 왕조라고 불러야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불스 구단주는 화이트삭스도 같이 소유하고 있는데 야구빠이기 때문에 불스가 1990년대 우승을 연이어 할 때도 시큰둥해했다. 이 왕조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것이 일단 에이스가 NBA 역사상 최고 선수이며 연속우승이 끊긴게 두번 다 최고 선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패의 이미지가 있다.[6] 사실 2003~2007년까지만 보면 5년간 3회 우승이다.[7] LA 스팍스가 유일하게 2연패를 기록했다.[8] 이 시기는 좌진식 우세진의 쌍포화재로 대표된다.[9] 참고로 야구 최장은 해태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4연속, 축구는 성남 일화 천마의 3연속, 농구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3연속.[10]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 OK저축은행의 김세진 감독 등 새로운 감독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를 팀에 접목하기 시작했다.[11] 해태는 KIA에 인수 되어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바뀐다. 따라서 해태의 우승 역시 KIA의 우승이다.[12] OB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로 팀명을 바꿨기 때문에 OB의 우승은 두산의 우승에 해당된다.[13] 현대는 2007년 이후 해체 되어 최종우승 기록이 4회로 남게 되었다.[14] 이미 1936~1939시즌에 4연패, 1949~1953시즌에 5연패를 달성한 괴물팀.[15] 최근까지만 해도 본 문서의 타이거즈 왕조 서술부분에도 1997년까지로 기술되어 있었다.[16] 사실 이거 하나 때문에 경질된 건 아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선동열 감독이 수십억에 달하는 지원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복잡한 사유가 겹쳤던 것. 자세한 건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 문서를 참고하자.[17] 대표적인 예시가 윤성환이다. 선동열 감독 시절에는 5회까지만 던지고 말았던 선수였으나 류중일 감독 시절에는 외국인 선발도 밀어내며 팀의 실질적인 1선발 역할을 수행했다.[18] KBO 최초[19] KBO 최초[20] 예전에는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 받던 삼성이었으나 4연패로 인해 신인 선수 지명순위가 뒤로 밀렸고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수 없었다. 2015년 2차 드래프트가 그 증거로 삼성 2군은 타팀에 비해 유출이 적었다. 타팀에서도 삼성 2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21] 객관적인 기준 없이 팬들과 기자들이 그 즈음에 느꼈던 감상을 바탕으로 뽑았을 뿐이었다.[22] 4연패를 달성한 해태와 삼성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웠다.[23] 현대와 삼성이 2연패와 3시즌이내 우승을 달성, SK가 2연패와 2시즌이내 우승을 달성.[24] 인근시기 우승이 2시즌일 경우에는 SK는 그데로 두고 현대와 삼성을 제외하고, 3시즌일 경우에는 기존의 현대와 SK 사이에 삼성을 포함시키는게 맞기 때문이다.[25] 특히 KBO 리그는 MLB, NPB와 비교하면 더욱더 가능성이 높은데, 단일 리그로 치러지며 포스트 시즌에서 상위권일수록 한국시리즈에 가깝게 배치 시켜 주는 이점을 주기 때문이다.[26] 야구의 성적 변동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상위권팀은 다음해에도 상위권으로 예상되고 하위권팀은 하위권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7] 다른 종목에서는 핵심 선수의 공백이 생기면 우승을 했던 팀이 갑자기 하위권으로 추락하기도 한다.[28] 해태와 현대는 넓게 보면 7년동안 4번 우승, 좁게 보면 5년동안 3번 우승을 한팀이다.[29] 1991~1997시즌 해태, 1998~2004시즌 현대[30] 2011~2014 왕조와 연결된다.[31] 그리고 2001년에는 김응용 감독마저 삼성으로 이적하게 된다. 해태 프런트로부터 경영난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삼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막상 부인 분은 삼성으로 간다니 좋아했다고.[32]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형신인이던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도 지명하지 못하고 메이저 리그로 보내게 된다.[33]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34] 이후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두산이 2016년 93승으로 경신했다. 2000년 현대는 133경기에서 91승.[35] 외환위기 직후의 해태와 행보가 비슷하다.[36] 2000년도에는 양대 리그여서 통합 우승 개념이 모호하나 자리그와 인터리그 경기수가 동일했으며 현대는 그런 상황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했으므로 통합 우승으로 칭해도 무리가 없다.[37]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와는 역사가 단절된 별도의 팀이다. 히어로즈는 현대 해체 후에 재창단되었기 때문에 히어로즈가 이후에 우승을 한다고 해서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 횟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38] V1 자체는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39] 당시 최강팀이던 현대에서 박종호, 심정수, 박진만을 차례로 빼온게 컸다.[40] 기존 삼성의 공격적인 팀컬러에 익숙해져 있던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식 불펜 야구는 생소했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 배영수, 권오준, 권혁 등 많은 투수들이 혹사당했고 초반 2연패 이후 4-4-5라는 저조한 성적,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준혁의 은퇴 강요로 삼성 팬덤은 선동열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41]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성근이 89~90년 2년간 태평양 돌핀스를 맡으며 최초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도원아재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지만 막판에 임호균 각서파동까지 일으켜 가며 태평양을 버리고 삼성으로 가버리자 많은 도원아재들이 이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김성근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42] SK는 이후 2011년,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43] 07년부터 09년까지 3년간 팀 타격 sWARwRC+ 1위를 기록하였으며, 07년과 09년에는 팀 홈런 1위를 달성하는 등 수준급의 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다.07년, 08년, 09년 팀 타격 WAR / 07년, 08년, 09년 팀 타격 wRC+ 하지만 이 시기에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오른 선수들은 있었으나 개인 타이틀을 수상하는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가 없었으며, 김성근 감독의 작전 야구에 가려져 타선의 위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44]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잘못이 큰데, 프런트의 많은 배려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를 비난하는 늬앙스의 인터뷰를 하는 등 김성근 감독과 프런트의 갈등은 자주 일어났다.[45] 14.5게임차 업셋은 역대 최대 게임차 업셋이다.[46] 예전의 왕조들은 추상적인 기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현대와 SK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47] 1936~1939시즌에 4연패, 1949~1953시즌에 5연패[48] 1998~2000시즌에 3연패[49] 1972~1974시즌에 3연패[50] 1965~1967시즌에 3연패[51] 1986~1988시즌에 3연패, 1990~1992시즌에 3연패[52]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53] 키야마 코지, 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스트라데.[54] 얼마나 사기냐면 1번 타자부터가 .322, 34홈런이었다. 중심 타선은 그 유명한 바스, 카케후, 오카다. 셋이서 홈런만 130개를 넘게 쳤다.[55] 일본시리즈 역사상 유일하게 전경기 지명타자제였다. 퍼시픽 리그 룰이라 퍼시픽 리그가 유리했겠지만 결과는 선술했듯 센트럴 리그 한신의 첫 우승.[56] 2017~2019시즌에 3연패[57] 현재 4회 이상 우승한 팀들의 우승 횟수는 성남 7회(최다), 전북•서울 6회, 포항 5회, 수원 4회 등이다.[58] 예를 들면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자국 리그에서의 왕조는 53년부터 65년까지지만 61년~65년까지는 유럽대항전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뒀기에 유럽 전체의 왕조 기간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약스의 경우에는 65년부터 자국 리그에서 강세를 보여줬으나 70년 이전까지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이 없으므로 유럽 왕조 기간은 71년부터로 보는 것이 옳다.[59] 2013-14 시즌부터 레알의 왕조가 시작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2014-15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무관에 그친 반면 2년간 부진하던 바르셀로나가 트레블을 달성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2015-16 시즌부터 왕조로 분류한다. 참고[60] 참고1참고2참고3참고4 해외 언론에서 언급한 왕조 내용과 한준희 위원이 레알 마드리드의 챔스 2연패를 언급하면서 나온 역대 최강팀들에 관한 의견이다. 레알 마드리드(1955~1960), 아약스, 바르셀로나는 항상 고정이고 챔피언스 리그 3연패 이후 레알 마드리드(2015~2018)까지도 포함된다. 다만 해외 언론에서는 리버풀과 뮌헨을, 한준희 위원은 밀란을 선정했는데, 세 팀의 전성 시대가 다 다르므로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 없이 모두 왕조로 인정해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61]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96경기 연속 무패로 2위.[62]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63] 2012년 4월 15일 2103점으로, 원래 1960년대 미겔 무뇨스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높은 레이팅을 기록했으나 최근 재조정되어 바르셀로나가 더 높은 레이팅을 기록하게 되었다. 다만 시즌 종료 시점의 레이팅에서는 무리뉴의 2011-12 레알이 가장 높다.[64] 이건 당시 아스널 감독과 첼시 감독이 아르센 벵거 그리고 주제 무리뉴라서 그런거다.[65]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 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66] 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67] 사실 위대한 인테르 시절 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68]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유럽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69]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70] 사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럽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셀틱이 더 왕조에 가까울 것이다.[71] 마이클 조던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넘기위해 고생한 것과 비슷하다.[72] 그나마 비벼볼 만한 팀이 페라리 혹은 윌리엄즈 였다.[73] 하지만 이 시절이 페라리의 첫 전성기는 아니다. 페라리는 이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9번을 우승하는 굉장한 승률을 보여준 적이 있다.[74] 사실 페라리는 그룹 C가 발족된 80년대부턴 르망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지 않다. 이후 LMP 클래스가 신설되었을 때 333SP로 잠시 참가했으나 얼마 안갔고 GT1 클래스 때도 F50으로 참가하려 했으나 F1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엎어졌다. 현재도 최상위 클래스에 참가해 종합우승을 노리기 보단 GTE 팀과 워크스계약으로 참가하는 정도로 머무는 중...[75] 로브의 드라이버 챔피언은 04년~12년, 시트로엥의 매뉴팩처러 챔피언은 03년~05년, 08년~12년. 선수와 팀이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로 양 챔피언십을 다 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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