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8 15:49:37

1991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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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KBO 한국시리즈
1990년
LG 트윈스
1991년
해태 타이거즈
1992년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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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MVP 장채근
스트락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한국시리즈의 패권은 해태 타이거즈로 넘어갔습니다.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5:4로 4차전까지 승리를 장식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중계진의 우승콜

1. 개요2. 엔트리3. 시리즈 전 상황4. 경기 결과
4.1. 1차전: 클래스는 영원하다4.2. 2차전: 대승으로 홈에서 2승을 가져간 해태4.3. 3차전: 퍼펙트와 함께 날아간 승리4.4. 4차전: 타이거즈, 이글스의 영원한 악몽
5. 트리비아

1. 개요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

2. 엔트리

2.1.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감독 1명 김응용
코치 8명 백기성, 유남호, 김봉연, 서정환, 차영화, 이상윤, 김경훈, 조충열
투수 12명 선동열, 김정수(47), 신동수, 문희수, 조계현, 이강철, 송유석, 강태원
포수 2명 장채근, 정회열
내야수 8명 김성한, 한대화, 박철우, 윤재호, 홍현우, 김태완, 백인호
외야수 6명 김종모, 이순철, 이건열, 김성규, 이호성

2.2. 빙그레 이글스

빙그레 이글스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감독 1명 김영덕
코치 6명 김명성, 이희수, 함학수, 송일섭, 황병일, 정구선
투수 9명 한용덕, 한희민, 송진우, 이동석, 진정필, 김대중, 장정순, 김인권, 김홍명
포수 3명 김상국, 양용모, 유승안
내야수 8명 강정길, 전대영, 장종훈, 강석천, 황대연, 조양근, 지화동, 김용선
외야수 6명 이정훈(10), 이강돈, 이중화, 임주택, 진상봉, 임성우[1]

3. 시리즈 전 상황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월부터 치고 나간 해태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618득점/409실점으로 피타고리안 승률을 이용해 기대승률을 따지면 역대 2위(.695)[2]로 91승을 거둔 00년의 현대보다 더 높았다.[3]

빙그레 역시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최고의 전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타선은 이 해 35홈런을 친 장종훈을 위시하여 여전히 강했지만, 마운드의 원투펀치인 이상군한희민이 그동안 무리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송진우한용덕이 등장해 메우고 있었지만, 마운드의 높이에서는 해태에 비해 분명 약했고, 여기세 PO에서 준PO에서 4경기나 치루면서 전력을 소모한 삼성 상대로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면서 앞선 1989년과는 달리 이 번 시리즈는 해태가 절대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대로 결과가 나왔다.

4. 경기 결과

4.1. 1차전: 클래스는 영원하다

한국시리즈 1차전 10.09(수) 18:00, 무등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빙그레 한희민 0 1 1 0 0 0 0 2 0 4 8 2
해태 선동열 0 3 1 0 0 2 0 3 X 9 6 0

중계방송사는 KBS1 TV.

해태는 선발로 선동열을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를 내세웠다. 한용덕을 가급적 선동열과 붙이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는데, 일단 2회초에 강정길의 홈런으로 먼저 앞서기는 했다. 허나 해태는 2회말에 바로 한대화의 홈런과 장채근의 적시타로 앞서 나갔고, 그 뒤로도 빙그레가 점수를 만회할 때마다 추가점을 내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사실 빙그레도 4회부터 나온 장정순의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그 장정순은 6회에 교체되었고, 그 때 여지없이 2점을 실점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그르쳤다.

빙그레의 타선은 나쁘지 않았다. 찬스도 잘 잡았고, 무엇보다 선동열 상대로 4점을 내면서 끈질기게 공략했다. 만일 정상적으로 한용덕이 나왔다면, 승부는 정말 알 수 없었던 일. 어쨌거나 해태는 마운드에서 선동열이 9이닝 4실점으로 완투하며 시리즈 첫 승을 따냈다.

4.2. 2차전: 대승으로 홈에서 2승을 가져간 해태

한국시리즈 2차전 10.10(목) 18:00, 무등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빙그레 한용덕 1 1 0 0 0 0 0 0 0 2 7 3
해태 김정수(47) 0 1 1 0 6 1 2 0 X 11 13 1

중계방송사는 MBC TV.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47)를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용덕을 내세웠다. 경기 초반 빙그레는 제구 난조를 보인 김정수를 공략하고, 이건열의 실책을 묶어 먼저 2점을 냈다. 하지만 해태는 곧바로 2회말 한 점을 만회한 후, 실책의 당사자인 이건열이 3회말 홈런으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운드도 2회부터 이강철로 교체하여 더이상 실점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3회와 4회, 이순철의 잇딴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승부는 5회말에 갈렸다. 2사 후에 이건열의 역전 홈런을 신호탄으로 제구가 흔들린 한용덕을 공략하면서 한용덕을 마운드에서 끌어 내린다. 후속 투수는 그 해 8승을 거둔 신인 김인권. 그러나 신인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여기서 해태는 한대화와 장채근의 연속 적시타를 묶어 대거 6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7회말과 8회말에도 점수를 추가하면서 빙그레를 대파하면서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4.3. 3차전: 퍼펙트와 함께 날아간 승리

한국시리즈 3차전 10.12(토) 14: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해태 문희수 0 0 0 0 0 0 0 4 0 4 4 1
빙그레 송진우 0 1 0 0 0 0 0 0 0 1 8 0

중계방송사는 KBS 1TV.

홈으로 돌아온 빙그레는 송진우를 기용했고, 해태는 문희수을 내세웠다. 빙그레는 2회말 1점을 얻어 앞서갔고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이어갔다. 그때까지 해태는 송진우를 전혀 공략하지 못하며 철저히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2회 점수를 낸 후, 무사 1,3루 찬스와 3회 무사 1,2루의 찬스를 놓친 것이 아쉬웠지만, 송진우의 구위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경기를 이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회 2아웃 이후 대타 정회열 타석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파울플라이를 놓친 것이 화근이 되었고, 2-2에서 회심의 공을 볼로 판정하면서 결국 정회열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퍼펙트가 깨진뒤 송진우는 홍현우에게 안타를 맞으며 노히트노런도 무산되었고 이어 장채근에게 역전 2타점 2루타, 윤재호에게 3루타를 허용하며 연속 3실점을 하고 강판된다. 그 후 구원등판한 장정순이 이건열에게 안타를 맞고 추가 1실점을 하여 결국 1:4로 빙그레가 패했다. 이로써 빙그레는 1, 2, 3차전을 모두 내주며 말 그대로 벼랑끝에 몰렸다.

4.4. 4차전: 타이거즈, 이글스의 영원한 악몽

한국시리즈 4차전 10.13(일) 14: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해태 김정수 0 0 0 0 0 0 0 3 2 5 7 0
빙그레 한용덕 1 0 0 1 0 0 0 2 0 4 8 1

중계방송사는 MBC TV.

빙그레는 한용덕을 이틀 쉬고 내보내는 도박을 걸었고, 이 도박은 7회까지는 먹혔다. 빙그레가 1회 이정훈의 홈런과 4회 연속 2루타로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빙그레는 한 끗이 부족했다. 8회초에 무사 1,2루 찬스를 잡은 해태는 보내기 번트가 아니라 강공을 선택했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대타 김태완의 동점 2루타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는 보내기 번트와 땅볼로 역전.

빙그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8회말 선동열 상대로 강석천이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승부를 다시 뒤집었다. 아웃카운트 3개만 잡으면 잠실로 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나온 한희민은 장채근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3루수 실책이 나오면서 1사 1,2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순철이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결국 9회초 다시 2실점하여 빙그레는 패배했다. 반대로 해태는 불리했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으면서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복귀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빙그레는 잡을 수 있었던, 아니 잡아야만 했던 경기를 또다시 최악의 역전패로 장식하면서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맞대결 3전 3패를 당했고, 안방에서 스윕패라는 치욕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5. 트리비아

  • 앞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무승부로 4차전이 치러졌다.[4] 플레이오프에서는 3승 1패가 나왔다. 한국시리즈는 해태가 4차전만에 스윕하면서 포스트시즌 모든 시합이 4차전만에 끝났다는 진기록을 남겼다. [5] 그리고 전년 시리즈에 이어 2년 연속 스윕으로 끝난 유일한 시리즈.
  • 3차전 8회 2아웃 정회열 타석의 2-2에서 바깥쪽 직구에 대한 볼 판정은 지금도 논란거리이다. 송진우 본인은 아직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본 기자들은 그 공은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공이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당시 주심인 이규석 씨는 아직도 그 공은 볼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후 당시 포수였던 유승안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유승안의 인터뷰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 3차전이 대역전패로 끝나자 그 공 하나로 경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대전의 일부 관중 + 잠실 경기 표를 미리 산 암표상이 합세해서 심판 숙소를 점거하고, 심판과 한 판 뜬 사건이 벌어졌다. 21세기인 지금이야 대전 보살팬으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당시만해도 마산아재, 대구아재, 도원아재, 광주아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깔있는 대전아재들이었다.[8]어쨌든 결과는 의외로[9][10] 심판의 승리. 대신에 경찰에 가서 치료비는 다 물어줘야 했다고 한다.
  •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상대로 이 시리즈까지 세번 맞붙어서 0:3의 전적으로 처참히 발렸다.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이 늦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해태 때문이었다.[11] 사실 해태가 너무 강했다. 하필 빙그레의 전성기가 해태의 최전성기와 일치했던 것이 컸다. 거기다 세번 맞붙으면서 시리즈 전적도 2:4(1988년), 1:4(1989년), 0:4(1991년)으로 계속 맞붙을수록 승수가 줄어들면서 더 호구잡혔다. 빙그레-한화팬이 삼성팬 못지 않게 해태-기아를 못잡아먹어 안달이 났던 것도 다 이 탓인 듯.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 이후 빙그레-한화와 해태-기아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은 2017년을 기준으로 한차례도 없다.[12]
  • 별 것 아니지만, 우승 엠블럼에 오타가 있다. 'SERIES'가 'SERI'SE'로 적혀져있고,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당시 우승 횟수는 6회인데 별도 6개가 아니라 7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해태 타이거즈 년도덱들은 인기가 없었지만 블랙카드와 베테랑, 듀얼포지션 등이 패치되면서 현재 91년 해태덱은 큰 인기를 자랑한다.
  • 역대 포스트시즌 중 한국시리즈 포함하여 유일하게 잠실에서 단 한 경기도 개최되지 못했는데 그 해 플레이오프는 빙그레 승-빙그레 승-삼성 승-빙그레 승으로 마무리되어 4년 연속으로 지방 팀끼리의 플레이오프 잠실 홈경기가 성사되지 못했다[13].


[1] 4차전 9회말 2사 상황에서 선동열에게 삼진을 허용한 타자다..[2] 피타고리안 승률은 팀특점의 제곱 ÷ (팀득점의 제곱 + 팀실점의 제곱)으로 단순히 득점/실점을 따져 기대승률을 구하는 공식. 점수를 많이 이기고 적게 주는 팀이 높은 승률을 올리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기에 그팀이 전력에 비해 얼마나 좋은 승률을 올렸는지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3] 1위는 82년 삼성 라이온즈이며 당시는 한팀이 80게임만을 치뤘다.[4] 두번째 오버시리즈는 2004년 한국시리즈[14], 준PO 4차전은 2005년 5전 3선승제로 바뀌면서 나왔다.[5] 이후 2016년 포스트시즌에서 2차전이 최종전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하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모두 4차전에서 끝났다. 공교롭게도 이 때 한국시리즈 MVP도 포수.[6] 서울 연고였던 OB, LG는 진작에 4강 탈락했고, 한국시리즈가 5차전까지 갔으면 잠실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었는데, 해태가 스윕으로 막은 것이다. 더불어 이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5차전 마저 잠실 중립경기가 있었는데 빙그레가 3승 1패로 이겨서 5차전이 치뤄지지 않았다.[7] 한국시리즈 한정으로는 1987년 한국시리즈 이후 두 번째로 서울에서 단 한경기도 안열리고 끝난 시리즈이다. 이후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로 서울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고 끝났다.[8] 그러나 아직도 악명높은 대구아재, 마산아재들과는 달리 대전아재들은 2000년대를 끝으로 직관이 줄어들음으로서 세대교체가 되어 자연스럽게 보살 응원 문화로 바뀌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의 한화 홈구장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채로운 연령대가 오지만, 80~90년대에 한참 날렸던 대전아재 세대에 속한 50~60대들은 별로 직관을 하지 않고 야구 얘기가 나와도 무덤덤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굳이 추론하자면 오랜 암흑기로 인한 체념 +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이 작용함에 따라 대전아재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9] 사실 심판이 백이면 백 전직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예정된 참사였다.[10] 운동선수 출신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완력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11] 하지만 삼성은 이미 1985년에 통합우승으로 V1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한정 첫 우승은 통합 우승 이후 17년이나 지난 후에서야 했다. 그것도 자신들을 해태 시절 그렇게 한국시리즈에서 괴롭힌 감독 휘하에서.[12] 1994년, 2006년에 만난 적도 있긴 하나 둘 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준플레이오프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2승 스윕으로 한화가 해태를 눌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에게 스윕패로 탈락했고, 2006년에는 2승 1패로 한화가 KIA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사실 해태-KIA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어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상하게 단 한번도 승리를 못할 정도로 호구급이다.[13] 88년 빙그레 3승 89년 해태 3승 90년 삼성 3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