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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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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KBO 한국시리즈
1983년
해태 타이거즈
1984년
롯데 자이언츠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
삼성 라이온즈
파일:external/dimg.donga.com/40431052.2.jpg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롯데 자이언츠
MVP 유두열
아~ 볼... 아 스트락아웃입니다! 스트락아웃! 스트락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한국 챔피언 롯데 자이언츠! 롯데가 6:4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MBC 김용 캐스터의 우승콜

1. 개요2. 진출팀 결정3. 엔트리4. 시리즈 전 분위기5. 경기 결과
5.1. 1차전5.2. 2차전5.3. 3차전5.4. 4차전5.5. 5차전5.6. 6차전5.7. 7차전
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롯데 자이언츠 & 최동원이 4승 3패로 우승.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희대의 져주기 게임을 시전하면서 롯데를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최동원에게 패배한 것으로 유명한 시리즈.

일명 최동원 시리즈. 삼성은 김시진김일융원투펀치를 보유하고 있었고 뒤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황규봉[1], 권영호[2]라는 좋은 투수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롯데에는 임호균[3]이라는 나름 준수한 투수도 있었으나 최동원은 롯데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에이스였기 때문에 초인적인 완투를 해야만 했다. 거기에 타선도 홍문종김용철 정도가 있던 롯데에 비해 이만수, 장효조, 정현발 등 강타자가 즐비한 삼성 타선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2. 진출팀 결정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리그 100경기를 치렀고,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제패하면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시스템.[4]

1984년 당시 삼성은 김시진, 김일융의 투톱에 이만수, 장효조를 위시한 강력한 타선을 앞세워 전기리그에서 우승했다. 삼성은 이대로 후기리그까지 우승해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계획이었으나, 전기리그 우승으로 인해 분위기가 안이해있었던 삼성과는 달리 마지막 남은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다른 팀들이 치열하게 경기를 치루면서 선두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때문에 삼성은 계획을 바꿔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주전들의 체력을 안배하고 치열한 후기리그 순위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관망하고 있었다.

막판 2연전만이 남고 어느 정도 한국시리즈 진출 팀의 윤곽이 보이자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전력을 비축하는 한편, 손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을 탐색했다. 그리하여 간택된 팀이 전기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 OB 거르고 롯데 전기리그에서 삼성이 9승 1패로 롯데를 호구잡고 완전히 압도해버린 데다, 최동원마저 정규시즌에서 삼성 상대로는 그리 잘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4년 정규시즌에 무려 27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찍은 최동원이었지만, 정규시즌 중에는 삼성 상대로는 그다지 강한 모습이 없었다. 져주기 경기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는 2승 4패 3세이브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박영길 당시 타격코치만이 롯데 대신 OB를 밀어줄것을 주장했다. 박영길은 과거 롯데 자이언트 시절 감독으로서 1981년 코리안시리즈에서 말도 안 되는 최동원의 초인적인 활약상을 보았기에 그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롯데를 밀어주기로 결정했다.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었던 김성근도 당황했다.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1%28%BC%F6%C1%A4%29.jpg
후기리그가 2경기 남은 시점에서도 리그 우승의 향방은 예측 불가 상태였는데, 위의 표를 보면 알겠지만 OB가 아무리 기를 써도 삼성이 대놓고 롯데를 봐주면 그냥 게임 끝이었다.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올리겠다고 결정이 났기 때문에 김영덕 감독은 남은 2경기에서 희대의 져주기 게임을 시전한다.
파일:external/eeeb4d668c7607e31e72895143f3cc68bbf6f90d6370f07f051b19c9f9802e8d.jpg
너무 표가 나다 못해 지켜보는 사람이 이 무슨 병림픽이라고 할 정도의 노골적인 게임을 치뤘다. 안타 치고 고의로 오버런해서 주루사를 당하고, 수비할 때는 플라이성 타구를 일부러 안 잡아서 롯데 선수들을 진루시켜 주고, 이만수의 타격왕도 노릴 겸 홍문종이 칠 차례만 되면 무조건 고의사구로 출루시키질 않나[5], 고의적인 실책으로 롯데 주자들을 꾸역꾸역 진루시켜 주는 등 그야말로 일부러 져주기 위한 발악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리그 마지막 2경기가 후기 리그 우승팀을 결정짓는 경기인 만큼 전국 방송 중계였기 때문에 더욱더 지탄을 받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중계를 맡았던 MBC는 대놓고 져주기 경기가 이어지자 중계를 중간에 끊을 것을 검토하였다고 한다.[6]

물론 김영덕 감독은 공식적으로는 져주기를 부인했다. 선수들도 자기 기록이 달려있는데 어떻게 져주기를 할 수 있냐고. 하지만 이 때 삼성이 선발 출장 시킨 선수들은 후보급이었다. 경기력이 형편없어도 그래도 후보급이었고 한국시리즈를 위한 체력 안배 차원이었으면 말이 될 텐데... 이 선수들이 감독님 마음도 몰라주고 날아다녔다는 거(...)[7]. 거기다 삼성이 후보 선수들을 선발로 출장시킨다는 소식을 듣자 롯데도 체력도 아끼면서 무난하게 2연승을 한다는 생각으로 똑같이 후보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김영덕 감독의 의도대로가 아닌 삼성의 일방적인 원사이드 경기로 기울기 시작하자 감독의 의중을 알만한 주전들이 나오고... 그 뒤로는 저 위에 나온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성이 역전패로 졌다. 23일 경기에서도 삼성은 3점을 먼저 내지만 어제와 비슷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며 또 역전패.

참고로 최종 2연전에서 해태도 OB를 상대로 져주기를 시전했다. 우리가 한국시리즈에 못 가도 제과업계 라이벌인 롯데가 한국시리즈로 가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8]. OB는 그 보답(?)으로 김일권에게 도루를 대량 허용하면서 김일권이 세 시즌 연속 도루왕에 등극하는데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롯데가 2승을 거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실패. 물론 삼성의 져주기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3. 엔트리

3.1.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198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감독 1명 김영덕
코치 4명 정동진, 박영길, 유백만, 우용득
투수 7명 김시진, 김일융, 황규봉, 권영호, 성낙수, 양일환, 송진호
포수 2명 이만수, 송일수
내야수 9명 함학수, 천보성, 배대웅, 김근석, 박승호, 김성래, 오대석, 정진호, 김한근
외야수 6명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 홍승규, 정현발, 김이수, 황병일

3.2.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198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감독 1명 강병철
코치 3명 도위창, 이희수, 서말구
투수 8명 최동원, 임호균, 배경환, 이진우, 천창호, 안창완, 이문한, 조용철
포수 2명 심재원, 한문연
내야수 7명 김용철, 김용희, 박영태, 정영기, 이광길, 김민호, 김성호
외야수 8명 김성관, 유두열, 홍문종, 박용성, 김재상, 조성옥, 김석일, 김한조

4. 시리즈 전 분위기

이런 기사들이 나올 정도로 삼성에 대한 여론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고, 희대의 져주기 경기 때문에 KBO에서는 고의로 지는 경기가 없도록 규정을 손보겠다고 했다. 박영길은 회고에서 "만일 삼성이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했다면 이기기 위해서는 이런 변칙을 써서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기에 삼성의 패배가 오히려 약이 되었다." 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미팅 자리에서 최동원 선수한테 1, 3, 5, 7차전 선발을 통보한다. 이건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면서 반발하는 최동원 선수한테 강병철 감독은 나직히 한 마디를 남기는데...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그리고 최동원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마운드로 향한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9]
김일융과 김시진의 확실한 원투펀치가 있는 삼성에 비해 롯데의 확실한 에이스는 최동원 뿐이었다. 나머지는 삼성에 비하면 공기나 다름없었고 결국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이런 극단적인 투수 기용을 선택한 것.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켜버렸을 정도로 전력이 탄탄했지만, 롯데로서는 한국시리즈가 언제 다시 올 지 모를 기회였다[10]어렵게 잡은 기회를 반드시 잡아서 우승하고자 했던 것이다.

5. 경기 결과

5.1. 1차전

한국시리즈 1차전 09.30(일)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롯데 최동원 0 2 0 2 0 0 0 0 0 4 7
삼성 김시진 0 0 0 0 0 0 0 0 0 0 7
  • 승리투수: 최동원 (9이닝 0실점 완봉승)
  • 패전투수: 김시진 (3이닝 4실점(3자책))
  • 홈런: 박용성(2회초, 2점)
  • 중계방송사: KBS 1TV

경기 하이라이트[11]

각 양팀의 에이스 투수들이 맞붙어 투수전이 되리라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김시진이 2회초에 박용성에게 투런을 허용당한데 이어 4회초 김용희에게 적시타를 두들겨맞고 박용성의 번트타구에 실책을 범하며 4실점을 하고 강판당했다. 2012년 3월 11일 MBC <히스토리, 후>에 따르면,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경기장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몰던 중 동네에서 놀던 꼬마와 접촉사고가 났는데, 이를 수습하기 위해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히 꼬마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큰 경기에 앞서 마음을 여유롭게 먹을 겨를이 없었다는게 문제.

결국 경기는 최동원이 7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완봉승으로 끝났다. 김시진 강판 이후 릴리프로 올라온 권영호가 6이닝 3피안타로 호투했고 삼성도 나름대로 최동원의 공에 대한 공략법을 가지고 있어서 7안타를 치며 분전했지만 산발로 끝나며 무득점을 하게 된다. 권영호의 경우에는 이후에도 선발 및 불펜으로 등판하여 준수한 투구를 보여준다.

이 경기가 김시진의 한국시리즈에서의 불명예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시진은 통산 124승을 거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0승 7패를 기록했다.

5.2. 2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 10.01(월)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롯데 안창완 1 0 0 0 1 0 0 0 0 2 5
삼성 김일융 1 0 2 0 1 0 4 0 - 8 9
  • 승리투수: 김일융 (9이닝 1실점 완투승)
  • 패전투수: 안창완 (2.1이닝 3실점)
  • 홈런: 장효조(3회말, 2점)
  • 중계방송사: MBC TV

안창완이 형편없는 투수는 아니었다.(27경기 70이닝 1.67) 그러나 상대가 삼성의 에이스 김일융이었다는 점과 안창완이 정규시즌에서 거의 불펜으로 나왔던 점을 감안했을 때, 이 날 롯데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롯데의 계획 자체도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는 날은 그냥 버리는 경기지, 애초에 이길 생각도 이길 능력도 없었다. 롯데가 제2선발 임호균을 2차전 선발로 내보내지 않고 구원으로 짧게 던지고 내려보낸 점에서도 롯데의 이러한 전략이 잘 나타난다.

삼성은 1:1로 동점이던 3회말에 장효조의 2점 홈런으로 기세를 제압한 후 이후에도 안창완-임호균-천창호-배경환을 연달아 두들겨 추가 득점하면서 1차전의 패배를 확실하게 되갚았다.

5.3. 3차전

한국시리즈 3차전 10.03(수) 18:00, 구덕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김시진 0 0 0 1 0 0 1 0 0 2 7
롯데 최동원 0 1 1 0 0 0 0 0 1X 3 6
  • 승리투수: 최동원 (9이닝 2실점 완투승)
  • 패전투수: 권영호 (0.2이닝 1실점)
  • 중계방송사: KBS 1TV

1차전 리턴매치. 롯데가 삼성 수비진들의 실책을 틈타 2회말, 3회말에 연달아 1점씩을 얻었고 최동원은 4회 1실점 이후 호투를 하다가 7회 득점권 상황에서 장효조에게 적시타를 맞는 바람에 1실점을 했지만 그외 삼성 타자들은 철저히 누르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김시진은 1차전과 달리 산발 5피안타로 2실점만 내주며 7회까지 호투를 이어갔으나, 8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문종의 강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으면서 쓰러져버리고 만다. 이후 긴급히 등판한 권영호가 8회를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으나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정영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롯데가 승리.

1차전 완봉 이후 이틀 쉬고 나온 최동원은 12탈삼진으로 당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과 함께 완투승을 거두며 시리즈 2승째를 거둔다.

5.4. 4차전

한국시리즈 4차전 10.04(목) 18:00, 구덕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김일융 1 0 0 1 1 0 4 0 0 7 10
롯데 임호균 0 0 0 0 0 0 0 0 0 0 4
  • 승리투수: 김일융 (8이닝 무실점)
  • 패전투수: 임호균 (4.1이닝 3실점)
  • 중계방송사: MBC TV

최동원에 가려져 있지만 임호균은 1984년 롯데에서 최동원에 이은 제2선발로 활약하며 롯데의 후기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임호균은 1984시즌 롯데의 투수진 중 최동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2자리 승수를 거둔 투수였다. 10승 9패로 이중 3승은 친정팀 삼미를 상대로 거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삼성의 선발은 김일융으로 투타 모두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 삼성은 5회까지 3점을 먼저 내고 이후에도 정현발과 송일수의 홈런을 곁들여 4점을 더 보태 7:0으로 화끈한 완승을 거둔다.

삼성의 선발 김일융은 8이닝 4피안타 8탈삼진으로 롯데 타선을 가볍게 누르고 시리즈 2승을 따낸다.

5.5. 5차전

한국시리즈 5차전 10.06(토)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롯데 최동원 0 0 0 0 1 1 0 0 0 2 4
삼성 권영호 0 0 0 0 0 2 1 0 - 3 6
  • 승리투수: 김일융 (3이닝 무실점)
  • 패전투수: 최동원 (8이닝 2실점 완투패)
  • 중계방송사: KBS 1TV

원래 김시진이 올라올 계획이었지만 3차전에 당한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한국시리즈 들어 부진했기 때문에 권영호가 선발로 대신 등판한다.

경기 초반은 최동원이 5회까지 3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던지고 있는 롯데가 2:0으로 리드를 잡아나갔으나 계속된 연투에 지친 최동원이 6회에 홍승규의 3루타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인해 1점을 내줬고, 이후 장효조의 도루와 롯데의 실책으로 2-2 동점이 되고 만다. 계속되는 연투에 지친 최동원을 구원 등판할 투수가 롯데에는 없었고 최동원은 8회까지 완투한다.

이 상황에서 7회에 삼성은 원래 6차전 선발로 내정했던 김일융을 투입하는 강수를 둔다. 그리고 김일융은 그 기대에 호응하듯 이후 3이닝을 무실점을 막았으며 그 사이 7회말에 대타 정현발이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승부를 결정짓게 된다. 구원 등판한 김일융은 시리즈 3승을 먼저 거둔 반면, 최동원은 6피안타 6K로 호투했으나 완투패를 기록하게 된다.

최동원을 투입하고도 진 롯데로서는 이제 남은 길이 없었다. 애초에 최동원 하나만 믿고 가기로 한 시리즈였고, 그렇다고 다른 투수들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반면 삼성은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을 6차전만 잡으면 되기에 우승은 따놓은 당상인 듯 했다. 1, 3, 5차전을 모두 완투한 투수가 6차전에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고, 설령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전날 8이닝을 던진 투수가 제 컨디션일 가능성은 없다시피했다.

그렇게 시리즈는 삼성 쪽으로 기울어갔다.

5.6. 6차전

한국시리즈 6차전 10.07(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김시진 0 0 0 1 0 0 0 0 0 1 -
롯데 임호균 0 0 0 3 0 0 0 3 - 6 -

삼성의 선발은 부상으로 5차전을 거르고 나온 김시진. 사실 김시진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채 나온 것이었다. 김시진이 회상하기를 진통제 먹고 던졌는데 공을 던지니까 진통제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시작되었지만 그걸 참으면서 자존심을 위해 던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일융이 한국 시리즈 내내 호투하면서 최동원과 김일융의 대결구도가 흐르는 것도 김일융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김시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롯데는 일단 예정대로 2선발 임호균이 등판했다.

선취점은 삼성이 냈다. 이만수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1점을 냈고 이제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올라온 김시진의 호투만 있으면 삼성이 이길 것 같았는데 4회말 1사 조성옥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 이후에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인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가 연속 안타를 터트리고 그 후 김민호의 땅볼로 3점을 뽑아내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4회까지 1실점으로 버텨주고 있던 롯데 선발 임호균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KBS N 스포츠에서 강병철 감독이 밝힌 이유는 임호균의 손가락 살이 까져서 공을 던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땅히 구원투수로 올라올 선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최동원이 등판했다.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전날 완투한 최동원을 5회부터 다시 등판시켰다. 최동원이 등판한 5회 이후 삼성 타선은 최동원을 상대로 단 3안타만을 기록하며 맥없이 물러나고 만다. 이후 롯데 타자들이 최동원의 역투에 보답하듯 8회에 3점을 더 내며 6:1로 롯데가 승리하게 된다.

에이스의 자존심을 찾으려 했던 김시진은 완투 끝에 한국시리즈 2패를 당한다. 5회부터 구원등판한 최동원은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기록하며 시리즈 3승을 거둔다.

3:3의 시리즈 스코어로, 롯데와 삼성이 비슷한 상황인 것 같지만 롯데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인 최동원과 임호균을 모두 써 버렸다. 삼성은 3일을 쉰 김일융을 7차전에 낼 수 있었기에,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5.7. 7차전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타순 선수명 포지션 타순 선수명 포지션
1 김재상 LF 1 홍승규 LF
2 홍문종 CF 2 장태수 CF
3 김용희 3B 3 장효조 RF
4 김용철 1B 4 이만수 DH
5 유두열 RF 5 김근석 3B
6 박용성 DH 6 함학수 1B
7 한문연 C 7 오대석 SS
8 박영태 2B 8 배대웅 2B
9 정영기 SS 9 송일수 C
SP 최동원 SP 김일융
한국시리즈 7차전 10.09(화)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롯데 최동원 0 0 1 0 0 0 2 3 0 6 7
삼성 김일융 0 3 0 0 0 1 0 0 0 4 8

7차전 6~9회 하이라이트

한국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7차전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시리즈 시작 전부터 져 주기 게임으로 삼성에 대한 숱한 비난여론으로 화제가 되었던 시리즈였고,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으로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7차전은 입장 정원을 훌쩍 넘는 35,000명을 불러들였다.

원래 7차전은 10월 8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 날 서울에 비가 내려 7차전 날짜가 하루 밀렸다. 아무리 최동원이 무쇠팔이라 해도 5차전과 6차전 이틀간 14이닝을 던진 상황에서 7차전까지 연투를 했다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자락 가을비가 지쳐 있던 최동원의 어깨에 일말의 휴식을 준 셈이다. 결국 이 비가 사실상 양 팀의 승부를 가른 셈이 됐다.

최동원은 계속된 연투에 지쳐 구위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삼성은 2회말 1사 만루에서 2루수 앞 땅볼과 적시타로 먼저 3점을 내고 이후에도 오대석의 솔로 홈런을 더해 4점을 선취하며 승기를 굳히는 듯했다.

롯데의 반격은 3회초에 시작됐다. 김재상의 1타점 적시타를 통해 추격을 시작한 롯데는, 이전 타석까지 한국시리즈 내내 19타수 1안타에 허덕이다가 겨우 중전 안타로 나간 유두열을, 장효조의 실책성 플레이로[12] 나온 한문연의 3루타로 불러들이고 이어서 나온 정영기의 적시타를 통해 4:3까지 쫓아가게 된다. 이 때 장효조가 적극적으로 앞으로 대시하면 잡을 수 있는 타구였으나, 바로 앞타석 한문연의 타구에 만세를 부른 실책으로 위축되어서인지 한 박자 늦게 타구를 쫒아가서 원바운드로 바로 앞에 떨어져 안타가 되어버렸다.

이후 운명의 8회. 롯데는 1사 이후 김용희와 김용철이 연속 안타로 출루하면서 1사 1, 3루라는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된다. 김일융도 2,4차전 선발등판에 5차전 구원등판까지 하고 7차전에 출전했기 때문에 상당히 지쳐있었고, 이 날 최동원보다 안타를 더 많이 맞고 있던 상태에서 위기가 계속되자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몇번이나 덕아웃을 쳐다보며 구원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김영덕 감독의 머리속은 굉장히 복잡했겠지만, 결국 시리즈 내내 호투했던 김일융 투수의 관록과 노련함을 믿고 싶었는지 김일융의 구원요청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는 유두열이 들어섰다. 볼카운트는 1-1. 롯데 응원석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합창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일융은 1루에 힘없는 견제구를 던진 뒤 최소한 장타만은 맞기 않기 위해 몸쪽으로 낮게 파고드는 패스트볼을 던졌다.[13] 20타수 2안타[14]라는 부진한 타격에 자신이 없었던 유두열은 병살타만은 치지 않길 바라면서 차라리 희생플라이라도 내자는 생각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백스핀이 걸린 타구는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겨 폴대 오른쪽을 살짝 지나갔다. 역전 쓰리런 홈런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점수는 이제 롯데 6 : 4 삼성.

이후 김일융은 바로 강판되고 몸을 풀고 있던 황규봉이 구원등판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롯데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고, 거기에다 유두열의 홈런과 동시에 최동원의 컨디션이 급상승했다[15]. 삼성은 8회 1사 3루, 9회 2사 3루의 기회를 잡고 역전을 노려보지만, 8회말에는 오대석의 깊은 2루수 플라이에 3루주자 함학수가 홈으로 언더베이스를 하다가 박영태의 정확한 송구로 아웃당하였고, 9회말 1사 1루에서 박승호가 좌중간 안타를 때려냈으나 송일수가 3루까지 가는 사이에 2루까지 가는 무리한 주루로 아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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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학수가 아웃되자 최동원와 한문연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85년도판 KBO의 프로야구 연감 표지를 장식했다.

2사에 몰린 삼성의 타석에는 장태수가 올라왔다. 풀카운트에서 최동원의 라이징 패스트볼이 들어오자 하프스윙 후 볼넷을 직감하고 1루로 뛰어갔지만, 주심 선에서 스윙이 인정되어 삼진 아웃이 되었다. 최동원은 방방 뛰며 환호하면서 포수 한문연과 힘차게 포옹하고, 순식간에 달려온 선수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렇게 최동원은 가을의 전설이 되었다.

6. 기타

  • 이 시리즈에서 최동원이 거둔 성적은 5경기 등판 4승 1패 4완투 3완투승 1완봉승 4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80 WHIP 1.08. 그런데 비록 최동원에 묻히긴 했으나 김일융도 2,4,5차전 승리, 7차전 패전으로 시리즈 3승 1패를 거뒀다. 7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두 투수는 모두 3승을 거둔 상태. 즉 7차전은 시리즈 3승 투수간의 대결로, 누가 승리투수가 되든 4승 투수가 등장하는 경기였던 셈이다.
  • 한국 시리즈에서 최동원의 첫 삼진 제물이었던 장태수는 7차전 9회말 2아웃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마지막 삼진을 당하며 한국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이로 인해 늘 1984년 한국시리즈 영상이 나오면 항상 마지막 삼진을 당하는 타자로 등장을 하게 된다.
  • 이전에도 최동원은 혼자서 시리즈 우승을 일군 적이 있다. 정규시즌에서도 롯데 팀 전체가 소화한 324이닝 중 최동원 혼자서 206 이닝을 소화하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1981년 코리안시리즈에서도 무승부 포함 6경기에 모두 등판해 3승 1세이브를 거두며 롯데의 우승을 이끈다. 팀이 소화한 6경기 54이닝 중 혼자서 42⅓이닝을 투구했다.
    • 10월 25일 - 1차전 0:3 패, 9이닝 3실점 완투
    • 10월 26일 - 2차전 4:5 패, 7이닝 무실점 구원
    • 10월 27일 - 3차전 6:6 무, 6이닝 3실점 구원
    • 10월 29일 - 4차전 7:4 승, 7이닝 3실점 1자책 선발승, 8회 2사 만루 구원(1루수)
    • 10월 30일 - 5차전 5:3 승, 3이닝 무실점 구원
    • 10월 31일 - 6차전 6:4 승, 9이닝 4실점 완투

    이 쯤 되면 사람의 레벨이 아닌 것 같다... 참고로 박영길은 롯데 감독 시절 최동원의 원맨쇼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혼자서 롯데가 아닌 OB를 밀어줄 것을 주장했다.
  • 최동원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무엇이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자고 싶다"라고 말했다. 우승 축하 파티 도중에 쌍코피를 터뜨릴 정도였으니... 당시 7차전의 해설을 맡았던 허구연도 그를 보고 무척 피곤해 보인다고 얘기했다.
  • 한국시리즈 MVP는 한국 시리즈 4승을 한 최동원이 아니라 7차전에서 3점 홈런을 날린 유두열. 역시 인생한방 그리고 삼성의 이만수는 시즌에서 밀리고 최동원이 시즌 MVP를 가져갔다.[16]
  • 김영덕 감독 항목을 보면 알수 있지만 OB에서 삼성으로 이적 과정에서 김영덕 감독과 OB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던 것도 상대방 고를때 고려되었었던 점이라고 볼수 있다.[17]
  • 최동원 사후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김시진이 고백하길, 절친이기도 하지만 라이벌이었던 최동원을 이겨보는게 소원이었다고. 아마 때부터 최동원에 번번히 막혀서 우승을 못했었던 것이 큰 듯. 한양대 시절 연세대의 최동원에게 밀려서 우승 실패, 육군 경리단에 복무하면서 실업야구 우승을 노렸지만 코리안 시리즈 전경기 출장을 한 롯데 자이언트의 최동원에 밀려서 또 실패, 프로 들어와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노렸지만 또다시 실패. 하지만 최동원은 못해 본 자이언츠 감독은 해봤다
  • 7차전에 유두열은 원래 5번이 아닌 6번으로 내려고 했었으나 기록원의 실수로 박용성과 타순이 바뀌었다. 기록원이 다시 라인업을 적으려고 했으나 강병철 감독은 그냥 그대로 놔두라고 했다. 강병철 감독은 "왠지 그냥 바꾸고 싶지가 않았다" 라고 말했다.
  • 유두열은 7차전의 홈런으로 인해 이듬해 공포의 1할타자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1985년에 결코 못친 건 아니다. 팀내 최다 안타에 타율도 0.287을 기록했다.
  • 7차전 4-3으로 지고 있던 유두열의 타석 때 강병철 감독이 잠시 타임을 부르고 유두열에게 "스퀴즈 사인을 낼지도 모르니 벤치를 주시하라" 고 말했다. 그때 유두열의 대답은... 네에? 라고 놀라면서 반문했고, 이때 강병철 감독은 속으로 '그렇게 번트에 자신이 없나...' 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스퀴즈 사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유두열이 반문할만도 한게 당시 3루 주자가 김용희였기 때문이다. 김용희는 빠른 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작전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듯.
  •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롯데의 페넌트레이스 전후기 통합 승률은 전체 4위인 .510.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중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의 .508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승률이다. 또한 이 시리즈는 1999년 한국시리즈와 더불어 정규시즌 승률 4위팀이 우승한 유이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때가 전/후기 리그제라서 모르는 사람이 많다. 99년도 매직/드림 양대리그제여서 4위인줄도 몰랐다
  • 우승 이후 롯데는 자사그룹 중 하나인 롯데제과에서 만드는 빼빼로 광고에 우승 당시 멤버들을 기용한 광고를 제작하여 방영했다. 당시 광고영상 참고로 이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는지 당시 광고를 찍고 돈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유두열의 회고가 있다.롯데 'V1의 주역' 유두열을 만나다 그러나 롯데의 개막장 프런트는 이때도 변함이 없어서 직후 최동원과 연봉협상에서 25% 이상 못올려 준다고 쌩 난리를 부렸다. 이부분은 최동원 문서 참조
  •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구단주였던 이건희 당시 부회장이 이 시리즈 이후 지금까지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야구장에 갈 때마다 삼성이 매번 져서(...). 아들야구장 갈 때마다 이기는데... 한국시리즈 1차전에 삼성 구단 대표자 자격으로 대구구장을 찾았는데 이날 삼성은 앞서 서술한대로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패의 희생양이 됐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이 7차전 직관. 이 부회장은 자신이 야구장에 갈 때마다 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이날도 태평로 삼성 본관 집무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삼성이 4:1로 앞서고 최동원의 구위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이 부회장은 그때서야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잠실야구장 좌석에 앉자마자 발생한 사건은 장효조 만세 사건.(...) 결국 삼성은 거짓말처럼 대역전패를 당했고 이후의 충격으로 그는 야구장 직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아들이 아버지가 못 이룬 직관 우승의 꿈을 이뤘다.[18]
  • 한국시리즈가 전후기 우승팀의 대결로 치뤄진 시리즈에서 후기리그 우승팀이 승리한 유일한 시리즈.
  • 경기가 마무리되고 선수단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환호할 때, 손팻말을 든 관중 1명을 시작으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같이 펄쩍펄쩍 뛰면서 선수들의 등짝을 때려대거나 끌어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어차피 우승 확정 순간이어서 딱히 제재하려 하지도 않았던 듯하지만 희귀한 장면인 건 사실이다.[19]
  • 한국시리즈의 잠실 중립경기 규정(5-7차전 잠실 중립경기)이 이 해부터 확립되어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전에는 1차전 전기리그 우승팀 홈구장, 2차전 후기리그 우승팀 홈구장, 3-7차전 동대문야구장(1982), 잠실야구장(1983) 순으로 치러졌으나 1983년에 MBC 청룡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7차전을 잠실에서 치뤄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규정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플레이오프 및 단일리그 도입 등으로 1~4차전 경기장의 선택은 변경되었지만 5~7차전은 잠실에서 개최되었다. 단, 1998년부터는 서울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시에는 잠실은 중립구장이 아닌 서울팀 홈구장으로 치러졌다.[20][21]
  • 이 해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날짜가 10월 9일인데 이는 역대 한국시리즈 중에 가장 빠른 날짜에 최종전이 열린 기록이다. 다만 이 당시만 해도 포스트시즌이라고는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맞붙던 한국시리즈 밖에 없었기에[22] 이런 기록이 가능했다.

7. 관련 문서


[1] 김시진, 김일융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매년 10~15승씩을 거둬주던 투수였다.[2]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전문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단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 건 1985년부터고 1984년까지는 선발로 활약했다.[3] 전년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장명부 다음 2선발이였고, 당시 롯데 마운드에서 최동원 다음 걸출한 투수가 없었던게 탓이다.[4] 실제로 김시진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이듬해 1985년도에 삼성 라이온즈가 통합 우승을 달성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5] 이만수의 타율이 .340으로 .339인 홍문종에 불과 1리(.001) 차이로 앞서 있었기 때문에 홍문종이 안타라도 하나 친다면 타율 역전이 일어날 것이 뻔했으므로 홍문종의 타율을 굳히고자 했던 것. 결국 이만수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즌 MVP는 최동원의 것이 되었다.[6] 이 일로 인해 허구연은 2013년까지만 해도 삼성 경기만 맡으면 말이 없어진다. 잘 하는 선수가 있어도 이승엽, 양준혁 정도만 칭찬했고 홈 구장이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시설도 매우 낡았으니... 이 일은 구자욱 등 새로운 신인이 등장하고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건립되자 어느정도 해소되었다.[7] 어짜피 후보급들의 목표야 주전으로 살아남는 것이니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나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는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8] 거기에다 디펜딩 챔피언이기도 했으니 이에 대한 우위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9] 33년 후 롯데 자이언츠는 포스트시즌 캐치프라이즈로 이 문장을 걸어놓는다.[10] 1992년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롯데는 이 당시 전기리그를 꼴찌로 마쳤었다. 그것도 최동원이 있었던 때였음에도 이랬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것도 운인데 이렇게 올라와서 진다면 그야말로 낭패 아닌게 없었다. 특히 열성적인 부산팬들의 염원을 고려해서라도 반드시 우승해야 했던게 롯데의 사정이었다.[11] 비공개 처리가 되어 열람 불가.[12] 일명 '장효조 만세 사건'이라 부르는 실책이였다. 라이온즈의 승리의 아이콘인 이재용과 달리 부친 이건희는 필패의 아이콘으로 유명한데, 당시 4:3으로 이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겼다 싶어 직관을 오자마자 장효조의 실책이 터졌고 연이어 유두열의 홈런을 맞고 패배한 것에 트라우마가 생겨 그 이후로 직관을 잘 안 온다고 한다. 아무튼 장효조는 이 사건으로 인해 큰 경기에 약한 패배의 상징이라는 점이 찍혀 훗날 트레이드된다.[13] 치지않고 가만 놔뒀으면 주심이 볼로 선언 할수도 있을 만큼 낮은 볼이었다.[14] 그래도 그 2개의 안타 중 하나가 7차전 당일, 그것도 8회 역전 홈런 바로 전 타석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름 타격감을 회복하고 있었던 상황인 셈.[15]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롯데는 이 유두열의 3점 홈런 전까지는 시종일관 삼성에 뒤진 상황에서 경기 끝말에 역전 홈런이 터졌으니 최동원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입장이었던셈.[16] 물론 이만수는 타격왕 밀어주기 논란 때문에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이해 최동원은 시즌 27승으로 다승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탈삼진은 별도의 수상을 하지 않았지만 탈삼진도 1위였다. 이해 최동원이 세운 탈삼진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17] 원래 삼성에서 영입 제의가 왔던 것은 OB의 투수코치로 있던 김성근이나 그걸 김영덕이 낼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와전된 것이다.. 김성근이 김영덕과 상의를 했는데 그냥 있으라 해서 있었더니 정작 김영덕이 선임되었다. 그리고 김성근은 OB 감독을 맡아 전년도 꼴찌를 승률 1위로 만드는 기적을 발휘한다. 그래봤자 한국시리즈 진출을 못했지만...[18]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야구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연습구장으로는 톱클래스인 경산 볼파크의 건립을 지시한 사람은 다름아닌 이 회장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현재도 야구는 거의 매일 본다고 전해진다.[19] 80년대만해도 중요한 야구 경기가 끝났을 때 몇몇 관중들이 난입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도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승리한 MBC 청룡백인천 감독이 승리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어린 팬 한 명이 멀리 뒤에서 카메라를 보고 V싸인을 하는 모습도 보였으니. 옛날에는 이러한 장면을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행크 아론베이브 루스를 뛰어넘는 715호 홈런을 칠 때도 관중 두 명이 뛰어들어 같이 베이스를 돌았으며,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빌 매저로스키가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치자 피츠버그 관중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오는 바람에 매저로스키가 손으로 이리치우고 저리치우며 홈을 밟았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인 1993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조 카터가 끝내기 홈런을 치자 소수지만 그라운드로 뛰어나오는 일반인들이 보인다.[20] 1,2,6,7차전 리그 1위팀, 3~5차전 플레이오프 승리팀. 애당초 이랬어야 정상인데...[21] 그런데 1999년에 양대리그가 되었다가 2001년에 단일리그로 넘어오면서 서울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중립구장 규정(5~7차전 잠실)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2001년 한국시리즈는 3~6차전이 잠실에서 열리는 상황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당시 리그 1위팀인 삼성 라이온즈는 본의아니게 손해를 본 셈이 되었다.[22] 플레이오프 제도가 신설된 것은 1985년,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긴 것은 1989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탄생한 것은 201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