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4 17:31:08

롯데 자이언츠/프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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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정보 롯데그룹 | 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군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실업 롯데 | 1984년 한국시리즈 | 1992년 한국시리즈 | 1999년 포스트시즌 |
롯데 자이언츠/2019년 | 역대 감독 | 프런트 | 사건·사고 | 트리비아 | 우승 이후 | 엘롯기 | 헬로키티
구단 세부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GIANTS TV | 팀 응원가 | 조지훈 | 박기량 | 안지현
지역 연고 학교 개성고등학교 | 경남고등학교 | 부경고등학교 | 부산고등학교 | 부산공업고등학교
부산정보고등학교 | 동래고등학교해체
경기장 관련 정보 사직 야구장 | 울산 문수 야구장 | 상동 야구장 | 구덕 야구장철거
팬덤 관련 정보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 갈매기 마당 | 거인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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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구단 주요 인사
1.1. 역대 구단주 / 구단주 직무대행1.2. 역대 대표이사1.3. 역대 단장
2. 특징
2.1. 구단에 별 관심이 없는 구단주2.2.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단장 및 프런트2.3. 짠돌이 운영2.4. 돈을 허투로 쓰는 구단 운영2.5. 막장 행각
2.5.1. 2012년 이후의 주요 행보
2.6. 프런트의 현장 개입과 철밥통 코치

1. 역대 구단 주요 인사

1.1. 역대 구단주 / 구단주 직무대행

구단주
이름 기간 학력 비고
신준호 1982년 4월 ~ 1996년 10월 11일 경남고, 동국대 경제학과 롯데그룹 부회장, 롯데햄.우유, 롯데건설, 롯데개발 대표 겸임
신격호 1996년 10월 11일 ~ 와세다실업학교 화학공학 롯데그룹 총괄 회장

구단주 직무대행
이름 기간 / 선임 학력 이력
조동래 1998년 2월 2일 선임 경남고, (대학 미상) 前 롯데 햄.우유 사장, 롯데 자이언츠 사장
김인환 2001년 3월 16일 선임 경남고, 서울대 법대 前 롯데 자이언츠 사장
김부곤 2002년 3월 19일 선임 부산고, 영남대 前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사장
김두봉 2003년 3월 22일 선임 고려대 前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신동인 2005년 2월 4일 ~ 2015년 8월 10일 부산공고, 한양대 기계학롯데제과 대표, 호텔롯데 사장, 롯데쇼핑 대표 겸임

1.2. 역대 대표이사

이름 선임 / 취임 학력 이력
조동래 초대 사장 경남고, (대학 미상)前 롯데호텔 대표이사(부사장), 前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단장
민제영 1989년 7월 15일 선임 경기고, 서울대 법대前 경제기획원장관 비서실
前 롯데제과 부사장
김인환 1994년 2월 3일 취임 경남고, 서울대 법대前 롯데제과 상무이사
안흥석 1998년 3월 1일 취임 경남고, 부산대 화공학과前 롯데리아 대표이사 (전무)
한중문 1999년 5월 23일 선임 경남고, 고려대 법대前 롯데쇼핑 포장사업본부 대표이사
이근수 2002년 3월 18일 선임 前 롯데쇼핑 식품사업본부 (전무)
하영철 2005년 2월 4일 선임 경남고, 고려대 前 롯데제과 전무이사
박진웅 2008년 2월 11일 선임 경남상고, 동아대 前 롯데 유통사업본부장
장병수 2010년 2월 10일 취임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前 동아일보 사회부 부장
前 롯데그룹 정책본부 홍보실장 (전무)
최하진 2013년 2월 3일 선임 브니엘고, 성균관대 무역학과前 롯데기공 대표이사
이창원 2014년 11월 13일 취임 서라벌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前 대우자동차
前 롯데그룹 정책본부 홍보팀장 (전무)
김창락 2016년 11월 28일 취임 서울고,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前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상품본부장 (전무)
김종인 2018년 12월 17일 선임 서울대 경제학과 前 롯데마트 대표이사
롯데 사장의 경우 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전문 경영인이 선임되고 있다. 다른 야구단처럼 초창기를 제외하면 사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장병수, 최하진, 이창원 사장의 경우 언론에 직접 노출되는 등 전면으로 나선 경우가 많았는데, 역풍을 맞은 등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인지 후임인 김창락 사장은 언론에 드러나는 일 없이 내부에서 경영에만 매진했다. 전문성 없고 능력이 떨어지는 역대 단장들과 달리 그래도 사장들은 타 계열사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전문 경영인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1.3. 역대 단장

이름 직급[1] 선임 / 취임 학력 이력
박종환 전무이사 1983년 11월 4일 ~ 1989년 6월 25일 경남고 (선수출신) 前 KBO 총재보좌관
퇴임 후 KBO 사무총장 역임
송정규 관리이사 1991년 3월 15일 선임 한국해양대학 항해과 前 해운사 스콜피오 선장, 개인사업체 운영
퇴임 후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한영국 상무이사 1993년 2월 1일 선임 前 롯데제과 상무이사
롯데 자이언트 운영진, 롯데 자이언츠 창단 실무
정광조 이사 1993년 2월 1일 선임 前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
퇴임 후 메스텍 코퍼레이션 사장
최경열 이사 1998년 3월 10일 선임 前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이철화 1998년 10월 26일 선임 동국대 (선수출신)前 한국전력 선수
삼미 운영과장, 롯데 운영부장
이상구 이사대우 2002년 4월 10일 선임 대경상고 (고졸) 롯데주조 입사, 前 롯데 자이언츠 기획부장
퇴임 후 NC 다이노스 단장, 부사장 역임
배재후 이사대우 2010년 2월 10일 선임 대구대 경제학과 롯데산업 입사, 前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관리부장
이윤원 이사대우 2014년 11월 7일 선임 경원대 경영학과 롯데칠성음료 입사, 前 롯데푸드 경영기획부문장

2. 특징

구단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구단 내적으로는 KBO 최악 수준의 막장 프런트가 언급된다. 외부적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 팬들은 다른 팬들과 싸우는 횟수보다 프런트와 싸우는 횟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롯데 프런트의 막장력은 알아주는 편이다.

그 수준이 얼마였느냐 하면 신은 공평하다라는 밈(?)이 한창 돌던 당시, "신은 롯데에 열성적인 팬덤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프런트도 내려주셨다"는 예시가 나올 정도였다. 크보 유일의 흑자구단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물론 비꼬는 것으로 팬은 많은데 프런트가 돈을 짜게 쓴다고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을 것이라 하여 붙은 별명.

일단 프런트 요직에 있는 인물이 심각하게 무능하고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의 어처구니 없는 경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1. 구단에 별 관심이 없는 구단주

롯데 자이언츠 창단 직후부터 1996년까지 신격호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이 구단주를 역임했다. 롯데 자이언츠 관련 나무위키 문서나 최근 일부 언론기사에 신준호를 구단주 대행으로 표기한 경우가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80 ~ 90년대의 모든 언론 기사에는 신준호의 직함을 구단주로 표기하고 있다. 1996년 이전까지 80~90년대 신문 기사들을 보면 신준호 전 부회장이 구단주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996년 10월 11일 신격호 회장이 그를 롯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해임시킬 때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라고 보도되어 있다. 신준호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부회장과 여러 계열사의 사장을 겸임하였으나, 형 신격호 회장과 토지 분쟁으로 소송전을 벌이다가 1996년 10월 11일 그룹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신준호는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시절부터 구단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1979년 실업야구 리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0 ~ 90년대 기사나 야구 저서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신준호 전 부회장이 실제로 구단주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내용으로 볼 때 신격호 회장은 야구단 운영에 큰 관심과 열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준호는 그룹의 오너가 아니었고 맡은 계열사도 많았기 때문에 구단주로서의 임무에는 소홀한 편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창단 이래 96년까지 신준호가 구단주의 위치에 있었지만 신격호 회장도 롯데 구단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주로 선수들의 연봉을 많이 올려주지 마라는 일화와 관련되어 전해지고 있다.

신준호 해임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 언론기사에 보도되고 있다. 1997시즌이 지나자 신격호 구단주는 조동래 전 롯데 자이언츠 사장을 구단주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이후 신격호 회장은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때까지 구단주 대행 체제가 이어진다.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이 주로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룹에서 실권을 잃고 좌천 형식으로 구단주 대행에 취임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실권을 행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구단주 대행 중 유일하게 유능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조동래 초대 구단주 대행은 과거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단장을 역임하였고, 롯데 자이언츠 창단을 직접 주도했으며, 창단 후 초대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조동래 대행은 롯데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는 현재까지 20년 동안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마지막 해였다.

하지만 조동래 대행 이후 김인환 대행을 거쳐 이후 야구와는 전혀 무관한 원로 경영인들이 연이어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면서 8888577의 최악의 암흑기를 이어가게 된다. 2005년에는 신격호 회장의 5촌인 신동인 사장이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어 10년간 장기 집권하게 된다. 신격호 회장이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대실업대학에 다닐 때 신동인 집안의 도움을 크게 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하지만 신동인 대행은 여러 계열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고 역시나 그룹 오너가 아니었으며, 총수의 친인척이라 하더라도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 업무에 치여 롯데 자이언츠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신동인 대행이 다른 계열사 경영에 매진하느라 감독 선임조차 미루는 등 롯데 구단 업무는 뒷전이라는 비판 기사까지 등장했다. #

저 기사가 나온 정황은 실은 당시 막 등장한 신동빈 부회장의 개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 신격호 회장의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당시 암흑기를 이어오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에 개입하여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임명하며 롯데의 부흥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신동인 구단주 대행과 일종의 이중 오너쉽 체제가 이어지게 되며 신동빈 부회장, 신동인 구단주 대행 누구도 적극적으로 구단에 개입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상황이 이어지게된다. 신동빈 부회장이 2011년 그룹 회장이 되었지만, 신동인 구단주 대행이 집안의 웃어른이며, 선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선임한 인물인데다가, 앞서 설명된 집안 사정 등으로 신동빈 구단주 대행을 쉽게 내치거나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8월, 롯데 그룹 경영권 분쟁 중에 신동인이 구단주 대행 사의를 밝혔고, 2015년 9월 1일부로 신동빈 회장이 직접 롯데 자이언츠를 챙기겠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구단주의 위치에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구단주에 취임했다는 보도는 없으며, 지금까지 신동빈 회장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 보도한 기사는 없다. 2015년 이후에도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목상 구단주로 보도하는 기사가 간간히 나오고 있다.

어쨋거나 2015년 이후 신동빈 회장이 직접 롯데 자이언츠를 관리하는 구단주의 위치에 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신동빈 회장은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 대행 및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및 정치권의 수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구단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2.2.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단장 및 프런트

롯데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학력이 낮은 사람이 포진해 있다는 특징이 있다.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롯동금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될 정도로 롯데그룹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수준의 낮은 임금으로 유명했고,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이 절대적으로 기피하는 회사였다. 첨단 기술 개발이 필요치 않는 유통과 서비스업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의 특성상 굳이 고임금을 주고 고급 인재를 영입할 필요가 없었고, 저임금을 통한 저비용 경쟁력을 추구했다. 이는 롯데의 경쟁 기업들이 더 저임금, 저비용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롯데로서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롯데 그룹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출신이 별로 없고 지방 사립대 출신 혹은 고졸이 많이 입사하던 회사였다. 물론 최근 10년간 롯데의 저임금도 개선이 되었고 취업난으로 인해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도 많이 입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룹의 중간관리자 이상 직급은 여전히 과거 박봉 시절 입사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타 구단의 경우 유명 야구선수 출신으로 전문성을 보유한 인물 혹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서 경영 능력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엘리트가 단장으로 선임되는데, 특히 최근에는 야구선수 출신이 단장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롯데는 과거 초대 박종환, 6대 이철화가 선수 출신으로 단장이 된 적이 있지만, 이철화는 선수 생활을 일찍 접고 프런트에서 운영부장 등으로 오래 근무해온 만큼 선수 출신이라기 보다 프런트 출신에 가깝다.

롯데는 주로 프런트 운영부장 출신이거나 계열사의 부장급 중간관리자가 단장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계열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유능한 인물도 아닌 사람이 단장으로 선임되고 있다. 프런트 부장 출신 단장들도 입사 당시부터 야구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롯데 다른 계열사로 입사하여 일하다가 야구단으로 좌천된 옮겨온 경우가 많다.

학력이 확인된 단장들의 경우 고졸이거나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 학력이 좋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실제로 구단 경영에 있어서 그 능력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인물들이 많다. 과거 롯데그룹의 특성상 본사의 일부를 제외하면 대기업 답지 않게 명문대 출신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지방대 출신 또는 고졸 출신이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그룹의 상황[2]이 야구단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롯데 프런트도 지방대 출신 또는 고졸 출신들이 많다. 위 표에 나와 있듯이 역대 단장들을 보면 상고를 나온 이상구 전 단장, 대구대를 나온 배재후 전 단장, 경원대를 나온 이윤원 현 단장 등 학력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대구대나 경원대는 당시 기준으로 지방에서도 좋은 대학이 결코 아니었고, 당시 실업계에 종종 우수한 학생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고 출신 이상구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상고에서 공부 잘하던 사람들은 웬만하면 은행 등 다른 더 좋은 직장에 취직했기 때문에[3] 이상구가 상고 출신 중에서는 엘리트라고 볼 근거도 없다.

롯데 구단 단장들은 처음에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입사하여 야구와 관계없는 직무를 하다가 중간에 좌천되어 야구단으로 옮겨온 경우가 많다. 운영부장 출신 단장들이 많아서 겉으로는 전문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에 다른 계열사에서 근무하다가 중간에 프런트로 옮겨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 단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롯데 프런트 전체가 그렇다. 즉 선수 출신이거나 처음부터 야구에 관심이 있어서 야구단으로 입사한 인력이 아니라 타 계열사의 일반 직렬에서 근무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중간에 야구단으로 귀양온 옮겨온 사람들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박종환 전무를 제외하고 역대 롯데 단장 가운데서 유일하게 선수출신에다가 프런트의 밑바닥부터 올라왔던 사람이 이철화였다. 현재 기준으로 볼 때 역대 롯데 단장 가운데 그나마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철화도 선수시절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선수였는데다가[4]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오랫동안 프런트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보통 경력직을 뽑을 때는 가능하면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 출신을 영입하여 선도 회사의 시스템을 이식하려는게 보통인데, 롯데 프런트는 리그에서 가장 비체계적이었고 소위 문제 구단으로 낙인 찍혔던 삼미 과장 출신을 운영부장으로 영입했던 것이다(...).

오늘날 야구단에서는 경영학이나 통계학, 공학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최근 사이버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각종 분석 기술이 첨단으로 발달하면서 각종 통계 기법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는 야구단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명문대에서 경영학, 통계학, 공학을 전공한 이들이 프런트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고 나아가 단장, 대표가 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롯데 프런트는 이런 추세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롯데 프런트의 행태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인 통계 지표 조차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매년 FA 시장을 보면, 팀의 입장에서 선수 가치의 공정가격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어떤 선수는 필요 이상으로 비싸게 사오고, 꼭 필요한 선수를 단 1,2억을 더 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놓치고 시즌 운영에 큰 타격을 입는 등 좌충우돌하는 삽질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말도 있듯이 처음에는 미숙하더라도 실수하면서 배우며 발전하는 것이 사람인데, 현 롯데 프런트를 보면 몇 년이 지나도 발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8년이나 단장을 한 이상구 때도 그랬고, 5년째 단장을 하고 있는 현 이윤원 단장도 그렇다.

그룹 수뇌부에서 단장을 선임할 때도 대기업의 의사 결정 프로세스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한 예가 송정규 단장이다. 송정규는 본업이 해운사 소속 선장인 열렬한 롯데팬이었다. 그는 팬심에서 롯데 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바램을 아예 ‘롯데 자이언츠 필승전략 톱 시크리트’이라는 책으로 써 냈는데, 그걸 신 모 구단주가 읽고 감명을 받아서 “바로 이 사람!”이라면서 송정규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송정규가 특이하게 관리 이사라는 직급을 가졌던 이유. 구단주가 외항사 선장인 송정규를 일약 단장으로 영입한 것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학맥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 신문기사에까지 실렸다. 1992년 10월 15일 동아일보 기사 - 거인 우승에 구단 뭘했나. 그러나 팬이 야구를 보는 관점과 실제 구단 운영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송정규 시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게다가 외부에서 관련 경력이 전혀 없이 영입되었기 때문에 구단 내부 인사에서도 상당한 잡음이 일었다.

롯데에서 가장 오랜 기간 단장을 역임했던 이상구실업계상고를 졸업한 고졸 출신으로, 단장으로 있는 동안 수많은 삽질을 했는데 이대호 등 여러 선수들과 연봉협상에서 푼돈을 아끼려고 갈등을 벌였던 것은 애교 수준이다. 2007년 해외 선수 지명 때 이상구가 점집에 가서 점쟁이 말을 믿고 송승준을 뽑지 않으려다가 구단 수뇌부가 이건 도저히 아니다면서 이상구를 제지하여 송승준이 뽑힐 수 있었던 사실은 롯데 팬들에게 제법 알려진 일화다.(...)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류현진을 뽑지 않고 나승현을 뽑은 등 선수 선발에 있어서 상당히 좋지 않은 안목을 보여줬다. 또 NC로 이적한 후에는 전 직장인 롯데 구단에 대해 엄청난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롯데의 단장 잔혹사는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경원대(현 가천대)[5]를 졸업한 현(現) 이윤원 단장은 이상구, 박종화 단장 이후 최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데, 역시 경영자로서 기본 중의 기본적인 자질조차도 의심되는 병크를 연속으로 저지르고 있다. 일단 감독을 자신의 말을 잘 들을 법한 초보 감독을 선임한다. 물론 초보 감독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소신이 있기 때문에 멍청한 단장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번 겪더니 이제는 단장을 해본 사람을 감독으로 앉히고 있다. 돈을 써야할 곳에는 구두쇠처럼 아끼고,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곳에는 돈을 펑펑 쓰며, FA 때마다 내부 선수들과 감정 싸움을 하면서 크지 않은 금액 차이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선수들을 놓치고 있는 반면 중복 포지션에 있는 외부 선수는 시장가격보다 수십억원이나 웃돈을 주고 영입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5년째 계속 보이고 있다. 때문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 오히려 팀 성적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단장이 된지 5년이나 됐지만 문제점이 거의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3. 짠돌이 운영

롯데 구단의 여러 문제점 중에 특히 대표적인 아이덴티티는 바로 짠돌이 운영이었다. 짠돌이 운영을 비롯한 롯데 구단의 수많은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모기업인 롯데그룹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모기업인 롯데그룹은 외형적으로는 대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수준 이하의 저질 대기업이었다는 것에서 롯데 구단의 비극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롯데는 외형적으로는 대기업이지만 다른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달리 기술력이 전혀 필요없고,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한 능력만이 요구되는 유통, 물류, 식품, 숙박업 등을 사업영역으로 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러한 사업 특성 때문에 명문대 출신의 고급 인력이 필요치 않은 기업이었고, 중소기업 수준의 저임금으로 유명했다. 2000년대까지 상위권 대학에서는 소위 롯동금(롯데, 동부, 금호)은 대기업이지만 절대 가면 안된다는 얘기가 널리 회자되었을 정도였다. 롯데 구단이 짠돌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근본적으로 2010년대 이전 롯데그룹 특유의 저임금, 저비용 경영 기조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때문에 롯데 구단은 최동원, 이대호 등 간판급 선수들과 연봉협상에서 많은 갈등을 벌여왔다. 이런 갈등은 롯데그룹의 경영방침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없던 롯데그룹은 가격 경쟁력이야말로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었고 때문에 곳곳에서 저비용을 추구했고, 사원들의 연봉도 대기업 최저수준이었다. 이처럼 저비용, 저임금 기조로 굴러가고 있는 회사에서 특정 스타 선수들에게 연봉을 크게 올려준다면 팀을 넘어서서 롯데그룹 전체 사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목은 다르지만 해외 명문 축구팀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은 다른 명문팀에 비해 선수들의 연봉이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맨유는 이제 아닌데? 77ㅓ억~ 이들 팀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단의 내부방침을 뛰어넘는 수준의 연봉을 요구하는 선수들은 영입하지 않는다. 연봉이 높은 특정 스타를 영입한다면 다른 선수들도 연봉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구단 제정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이 그만둔 후 맨체스터 유나이트가 고액 연봉자인 알렉시스 산체스를 영입하자 다른 선수들이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재계약을 거부하는 등 내부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래요. 롯데는 처음부터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6] 이런 상태에서 프로 롯데라고 믿음이 갔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롯데를 위해 1984년을 통째로 바쳤어요.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대가가.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된 이후 인터뷰에서 [박동희의 야구탐사] 철완 최동원? 옵션의 희생양이었다.

대표적인 만행으로 에이스 최동원을 그야말로 부려먹으며 연봉을 깎을 생각만 했으며 심지어 85년 연봉협상때는 연봉 25%이상 못올려준다고 고집을 부렸다. 참고로 85년 초 연봉협상은 최동원이 84년 한국시리즈때 9경기중 5경기 등판이라는 전설적인 성적과 혹사를 보여준 직후의 연봉협상이었다. 이는 최동원 문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20년 뒤에도 막장행각은 변하지 않아 2010년 시즌 '7관왕 타자' 이대호에게 기어이 7,000만원의 의견차이로 연봉조정신청까지 간 사건 등 연봉문제로 오만 갈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선수들도 롯데와 연봉 문제로 대립하는 것은 거의 연례 행사 수준.
롯데는 최근 몇년간 내부 FA 선수들을 잔류시키는 데 실패했다. 표면상 이유는 금액차.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협상 과정에서 이 고위 관계자의 강압적인 태도가 선수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한 고참급 선수는 "고위 관계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화를 삭히지 못하고 선수를 향해 물병을 집어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그 선수는 치욕을 느껴 조건과 상관없이 타 구단으로 이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2014년 CCTV 사태 직후 나온 기사.

롯데 사정에 능통한 야구인은 롯데의 협상태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민호가 보상금액(20∼30억)을 빼더라도 다른 팀에 가겠다고 답답해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참 쓰라린 삼성 강민호, 방심한 롯데가 당했다
그결과 롯데 자이언츠는 창설부터 계속 내부 선수들과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데 다른 구단들의 경우에도 이런 자잘한 충돌소식은 들리나, 롯데는 그 충돌이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다.

최동원은 연봉 협상 때마다 충돌을 빚은 선수 중 한 명이었는데, 당시 박 모 단장이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어 병신, 육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사실을 알고 결국 88시즌 종료 후 미국 유학을 떠나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복귀하나,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로 강제 트레이드 되었다. 전준호도 기천만원 더 주는게 싫어서 매년 싸우다 단돈 5억에 현대에 팔아먹었으며 김민재는 1억 더 주는게 싫어서 SK로 떠나보냈다. 손아섭은 구단의 고압적인 행태에 반발해 스프링캠프때 로고를 가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대호에게는 연봉 7천만원 더 올려주는 게 싫어서 연봉조정신청까지 가 기어이 이겨먹었으며, 선수 본인은 다른 선수들 앞에서 신동인 구단주 대행으로 부터 면박을 당하기도 했는데, 직전 시즌 이대호는 전설의 9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찍어낸 명실상부 크보 원탑의 괴물타자였으며 당연히 정규시즌 MVP도 수상하였다. 이대호도 이대호지만, KBO 최고 타자가 이런 대접을 받는 마당인데 대체 다른 롯데 선수들의 대우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조성환은 첫 FA였던 2011년에 꼴랑 문자 한 통 보낸 다음,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만나줬다. 장원준에겐 계약 안 하면 제시액을 언론에 공표하겠다며 협상 대신 협박을 했는데, 아무리 그전에 대우가 어떻든, 협상 기간을 전후해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이 일어나 선수단이 동요하는 상황에서 할 행동은 아니다.

그리고 2018년엔 롯데 프랜차이즈이자 더 나아가 부산의 상징으로서 차기 영구결번 떡밥도 나오던 강민호가 직접 롯데에 남고 싶다며 먼저 구단에 2번이나 찾아왔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결국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가면서, 현재까지도 이런 구단 프런트의 행태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다.

또한 이런 구단의 모습은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내부 FA 유출 구단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이다.
롯데가 놓친 내부 FA 선수들
순번 이름 이적 년도 포지션 이적 팀
1 김민재 2002년 내야수 파일:attachment/sk_wyverns_s.png
2 임경완 2012년 투수
3 김주찬 2013년 외야수 파일:attachment/kia_tigers_s.png
4 홍성흔 지명타자 파일:attachment/doosan_bears_s.png
5 장원준 2015년 투수
6 김사율 파일:attachment/kt_wiz_emblem_s.png
7 박기혁 내야수
8 심수창 2016년 투수 파일:attachment/hanwha_eagles_s.png
9 황재균 2018년 내야수 파일:attachment/kt_wiz_emblem_s.png
10 강민호 포수 파일:attachment/samsung_lions_s.png
11 최준석 지명타자 파일:attachment/nc_dinos_s.png

보면 알겠지만 김주찬, 장원준, 황재균, 강민호는 팀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축 멤버들이었으나 모두 떠나갔다. 특히 장원준강민호는 롯데를 상징하는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정 받았고 액수 또한 더 크게 제시 받았음에도[7] 팀을 떠났다는 사실은 롯데 프런트와의 협상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강민호는 FA때 |롯데가 안이하게 대처해서 적극적으로 대하지 않았다가 삼성에게 뺏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조쉬 린드블럼과의 협상에서 잡음이 있었고, 린드블럼 측의 발언과는 달리 롯데가 딱히 린드블럼에게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은 점, 이대호, 문규현, 손아섭 등 롯데가 좋은 대접을 해준 다른 사례 역시 존재하는데다가, 린드블럼 포함해 롯데에서 타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들 대부분이 타 구단 이적에 능한 특정 에이전트를 고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롯데 측에서는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는 평도 있긴 했다.

그러나 린드블럼에 관련해서는 실제로 단장이 딸의 건강만 해결되면 재계약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두 번이나 했으며, 린드블럼 계약 관련해 롯데 프런트가 거짓말을 하고도 언플로 빠져나가려 했던점이 밝혀지면서 롯데 프런트가 잘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또한 일명 "카톡 통보"로 오질라게 욕을 먹었던 황재균조차도 이 건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8] 롯데의 언플에 질려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수근박명환의 방송에 나와 밝히길 자신은 롯데에 가고 싶었으나, 프런트에서 처음 걸려온 전화 내용이 "우리랑 계약 안할 거죠?"였다고 한다. 양의지이예랑 에이전트 또한 당연히 롯데에 오퍼가 올 줄 알았으나 전혀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

2.4. 돈을 허투로 쓰는 구단 운영

다만 롯데는 최근 10년간 임금과 복지 수준이 향상되어 중소기업 수준이라는 비아냥은 듣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롯데 구단도 더이상 짠돌이 구단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 하지만 롯데가 이렇게 기업다운 기업이 된 것은 불과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문제는 현 롯데 그룹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임직원들은 모두 롯데가 기피되던 롯동금 시절에 입사한 인물들로, 자질과 능력부터가 타 대기업 임원들과 차이가 있고, 신입사원 시절부터 롯데그룹 특유의 짠돌이 문화에 체화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을 아끼는데는 귀신이지만,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에 대해서는 결정해본 적이 거의 없는 인물들이다. 애초에 롯데그룹 자체가 그동안 내수 소비자 시장만으로 먹고 살았던 기업이었기에 저비용을 위한 고민만이 필요할 뿐, 신사업 '투자'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필요치 않았던 기업이었다.

최근 모그룹에서 구단에 남부럽지 않게 자금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고위층들이 무능하고 돈을 제대로 쓸 줄을 몰라서 필요한 전력은 영입하지 않고 크게 필요치 않는 자원을 시세보다 수십억원의 웃돈을 줘가면서 데려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내부 FA 선수에게 매몰차게 대하며 그들을 붙잡지 않는 것이 전력의 큰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2.5. 막장 행각

1987년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성 모 감독님 문제로 박 전무를 만나러 구단 사무실에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전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박 전무가 아버지를 본체만체 하다가 사무실을 나가며 한마디를 했단다. 그게 뭔지 아나? 'X신 꼴값하네'였다. 다리를 저시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큰 모멸감을 느끼셨다. 그때까진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께선 내가 상처받을까 우려해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누구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리가 불편한 내 아버지한테 구단 책임자란 사람이 어떻게 'X신'이란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9]
최동원

하다못해 경영실력만 막장이면 동정이라고 가는데 그냥 임원진 전체가 인간부적격자들이라 최동원의 아버지에 대한 욕설이나 토사구팽 사건, 故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때도 재판까지 가서' 등 떠밀리듯 보상금을 지급한 것등 돈문제라고는 볼 수없는 오만 사건들을 터트렸다. [10] 2008년 야구판 황금기 이전에는 시설이나 환경면에서도 덜 떨어진 수준으로 방치, 임재철은 한화를 떠나면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한화는 얼마나 안좋았길래 그리고 임재철은 2015년부터 다시 X 같은 감독의 부탁으로 X같은 팀으로 돌아왔다

비밀번호 8888577 찍던 시절에는 KBO 총재 박용오로부터 "관중이 찾지 않는데도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부 구단이 바로 프로야구 부흥의 걸림돌이다. 내년 시즌부터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으로 관중 동원력을 상실한 프로야구단의 경우 구단주 총회의 의견을 모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는 야구판 전무후무한 비공식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수준 미달의 운영 실력을 보여주었다. 기사 나중에는 9,10번째 구단 창단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등의 사건으로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닥 이미지는 나아진 게 없다. 정작 장병수 전 사장이 반대 근거로 제시한 고교야구 팀이 적다는 의견과 달리 NC 다이노스와 kt wiz 창단이후 고교야구 선수풀이 크게 확장 되었다. 자세한 것은 장병수 문서 참조. 그런데 9, 10구단 반대를 두고 롯데 프런트의 이미지때문에 '밥통 줄어들까봐 그러는거 아냐?'라고 마냥 까대는 타팬들이 많은데, 장병수 사장의 명분을 들어보면 맞는 말도 상당히 있다. 설명한 대로 롯데 프런트라서 안 믿는 것일뿐 결국 NC는 창단된지 1년도 안된 2012년 1월경 신구장 건설을 놓고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고래싸움에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삼성 구단도 만만찮게 반대의 소리가 컸지만 롯데 프런트의 까임 수준에 묻혔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그나마 21세기 들어서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사실은 모두 거짓이었고 2014년에는 국회의원이 나설 정도의 초대형 범죄를 저지른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문서 참조

여담으로 치바 롯데 마린즈도 NPB 12구단 가운데 프런트가 최악인 구단중 하나인데 치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루세 요시히사가 2014년 시즌 종료 후 구단의 개혁을 잔류 조건으로 걸며 FA 선언을 했는데, KBO나 MLB와는 달리 NPB에서 FA 선언이란 소속구단과의 결별을 의미하므로[11], 프런트가 마음에 안들어 이적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고,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12]

때문에 야구팬들은 '롯데라는 기업 자체도 쓰레기인데 야구단도 그에 지지 않는다.'며 마구마구 까고 있는 실정, 실제 롯데 그룹자체가 오만 경영비리로 첨철된 기업인걸 감안하면 이 비리적 문화가 야구단 운영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2.5.1. 2012년 이후의 주요 행보

2012년에는 프런트가 완전히 달라졌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즌 전에는 이승호, 정대현 등 외부수혈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0년 동안 우승 못하면 프로구단으로의 존재 이유가 없다.' 등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해체하게 됐... 만약 2019년까지 한국시리즈에 못올라가면 준우승도 20년간 못한 팀이 된다 시즌 후에는 김주찬, 홍성흔FA 계약에서 섭섭치 않는 대우를 약속하여 결과적으로 두 명다 놓쳤음에도 오히려 팬들에게 할만큼 했다며 칭찬을 받았고, 보상선수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두 구단의 뒷통수를 쌔려버리는 신의 한 수를 세번이나 보여주며 '이게 정말 롯데 프런트가 맞냐?'며 야구팬들을 감탄시켰다. 그리고 양승호가 입시비리로 감옥에 가면서 이것 역시 신의 한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건 그냥 얻어 걸린 거다(...).

이 모든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병수 대표가 2010년 부임하면서 구단의 우승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앞서 말한 '존재의미' 드립을 포함해 '20년동안 우승 못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등의 직설적인 말들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결국 20년 채웠다

결국 2012년 12월, 프런트진은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로 부터 감사와 격려의 의미가 담긴 떡 조공까지 받는 초유의 사태 일이 일어났다. 중간에 보이는 모 갤러가 쓴 멘트처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감개가 무량했을듯...하지만 김주찬, 홍성흔 등 스타급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나가버리자 관객수가 급감하게 되었고, 또한 김시진 감독의 삽질, 돈독 오른 프런트의 모습들에 2013년 시즌 들어서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병신짓으로 선수들 못잡는다고 까이던 롯데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 강민호를 심정수의 60억을 아득히 뛰어넘는 75억+α[13]라는 KBO 역대 최고 금액으로 강민호를 팀에 눌러 앉힌 것. 롯데팬들은 막장 꼴런트 강민호 몸값이 카더라로 80이라는 추측이 나돌던 시절 그냥 그 돈 2군에 써서 장성우, 용덕한을 키우자는 입장과 그래도 강민호인데 잡아야 하지 않겠냐며 싸우던 롯데팬들도 강민호를 잡자마자 꼴렐루야 한마음으로 롯데에게 감사인사를 남겼다. 만일 여기서 FA라도 잡는다면 다시 갱생했다며 용서받을 분위기. 롯데팬들은 내심 정근우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SK와 정근우의 계약 난항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카더라 그런데 정근우는 한화로 가버렸다 그래서 까이긴 까였으나...

여기에 강영식마저 우선협상 마지막날에 4년 17억에 계약을 완료했으며 유먼, 옥스프링마저 재계약 성공, 또한 FA로 풀린 최준석을 34억원으로 영입함으로써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병타자 히메네스도 영입하였다. 꼴빠 롯데팬들은 일제히 "우리 꼴런트가 달라졌어요"를 외치고 있다. 알고보니 스토브리그에서만 제정신이라 카더라

이후 연봉계약에 난항을 겪는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또 다시 이대호 연봉조정사건이 재현되는듯 했으나 손아섭에게 첫 협상자리에서 1억 9천만원을 인상한 연봉 4억을 제시, 손아섭이 수용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한번 칭찬받는 중. 배스트 댓글이 월드콘 많이 먹고 있다. 이 와중에 댓글은 자일리톨을 시작으로 롯데리아, 호텔롯데, 롯데캐슬까지 나오고 있다

최하진 사장 취임 이후 적극적인 투자 외에도 다면적으로 야구단에 신경쓰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다.

2014년 1월 7일 기사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을 만든다고 한다.

2014년 1월 20일, 상동구장 증축공사를 완료하여 숙소 수용인원을 늘리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였다.

사도스키가 MLB 구단을 상대로 공개 테스트를 치루고 싶었는데 치룰 장소가 여의치 않자 롯데에서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 불펜 피칭장을 대여해줬다고 한다. 기사

2014년 6월 17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조성환을 코치로 육성하면서 레전드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확실하게 보강하겠다고 한다.

다만 1차지명 및 고교 스카우트 픽의 경우에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17년에는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로 그럭저럭 괜찮은 평을 받다가... 린드블럼의 협상 결렬과 강민호, 황재균의 이적건에서 변함없이 고압적인 태도, 거짓말과 언플을 늘어놓으며 변함없는 막장 프런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SBS의 뉴스 보도를 통해 모든 야구팬들에게 그 모습이 비춰진 것은 덤.

2.6. 프런트의 현장 개입과 철밥통 코치

2012년 양승호 경질후 옐로우 카드 - 롯데 높은분들…'단디해라, 쫌!!'

2000년대 초반의 문제가 투자 부족과 관심 결여였다면, 2008년 이후에는 프런트의 지나친 현장 개입으로 인한 선수단 및 코치진의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직접 데려왔을 때는 이런 논란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구단주 대행체제로 다시 회귀하면서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양승호 감독 부임 당시 권두조 수석코치를 프런트에서 꽂으면서 불거졌다. 권두조 코치가 양승호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야구관도 다르면서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후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학교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하자 권두조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다시 권영호 1군 수석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다시 1군 수석코치로 돌아왔고, 권영호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내린 뒤 1주일만에 경질(…)하는 막장 운영을 보여줬다. 이것은 김시진 감독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것이 중론.= #

이후 2014년 5월 27일 항명사태가 일어나 권두조 코치가 사임하였다. 여기서 이후 보도에 따르면 권두조 코치가 프런트의 입장을 들먹이면서 감독과 선수단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고 하며,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한 코치가 이후 스카우팅 팀으로 이동하는 회전문 인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루이스 히메네스의 대체용병을 찾는 일이 꼬여버리는 등 프런트에서 특정 코치진을 두둔하는 문제는 상당했다. 상세한 부분은 권두조 문서 참조.

이후 김시진 감독을 해임하려 했으나 최하진 사장의 의중을 무시하고 프런트에서 감독경질을 단행하려다 사장과의 충돌로 무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시진 사퇴미수사건

이 일로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과 이문한 부장을 축으로 한 프런트의 마찰, 최소한 소통부재가 표면화되었다. 팬들은 김시진 감독 경질 소문에 호응하는 분위기였으나, 이후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김시진 감독이 물러난 이후 후임 감독을 두고 프런트 내부에서 충돌이 있은 뒤, 선수단과 코치진, 프런트 간의 심각한 갈등의 골이 표면화되었고, 봉합되기는커녕 너 고소까지 나오는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프런트는 이 갈등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종운 감독을 내정함으로써 1인 시위에 나선 팬들의 분노까지 더 가중시키고 있다.

끝내 이런 기사도 나왔다. 비교체험 극과 극

파일:attachment/롯데 자이언츠/그거해봐그거.png
이제는 도긴개긴이다.

해당 기사가 나온후 박동희가 대놓고 저격기사를 내놓았다. 충격과 공포의 롯데 CCTV 불법 사찰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법행위를 구단 고위부가 지시를 한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문서 참조. 이 사건으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 인사들 중 배재후 前 롯데 자이언츠 단장, CCTV 사찰을 지시한 최하진 前 롯데 자이언츠 사장은 사임을 표명했다.

2015년 8월 31일, CCTV사태 이후로 남아있던 프런트 인사들은 신동주(기업인) 라인으로 분류되었던 신동인 前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 사태에 사임하면서 결국 모두 프런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롯데는 이후 차기 구단주 대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 취임 당시 기준[2] 취업이 엄청나게 잘되서 웬만하면 여러 기업에 동시에 취업이 되던 80 ~ 90년대 시절에는 중소기업 수준의 박봉을 주던 롯데는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기피하던 회사였고, 지방대 출신이나 고졸이 정규직으로 주로 입사했다.[3] 지금은 서울에서 은행에 취업하려면 서울대 출신이거나 집안이 좋지 않으면 들어가기조차 거의 힘들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은 주로 상고 출신 고졸들이 입사하던 곳이었고, 아니면 지방대 상대 출신들이 입사하곤 했다. 당시 은행 급료는 지금처럼 좋지도 않았고, 창구에서 고객들을 접객해야 하는 은행 업무 특성상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은행 취업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었다. 은행 실업팀에서 근무하던 선수들도 은퇴하고 은행에 근무했다. 김응용, 김성근도 선수를 은퇴하고 지도자가 되기 전 한때 은행에서 근무했다. 김응용, 김성근은 지도자로 영입되면서 은행을 관두었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의 경우 은행에 계속 있다가 지점장까지 하고 은퇴한 경우도 많았다. 기사 - [은행원] (40) 운동선수출신..점포장급만 모두 100여명 90년대 이후 은행원 연봉이 엄청나게 높아지면서 고교나 대학 야구 감독으로 가면서 은행을 그만둔 경우보다 그냥 은행에 남아 있었던 이들이 현재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4] 부산고 3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재능은 있었다.[5] 가천대는 지금은 수도권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낙후된 성남에 있는 지방대로 치부되어 지금보다도 훨씬 매우 낮은 입결을 보였다. 부산의 동아대, 동의대, 대구의 영남대, 계명대, 광주의 조선대 같은 지방 대학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비슷한 예로 성균관대 자연계가 수원으로 이전하고 나서 지방대 취급을 받으며 입결이 폭망하여 90년대까지 동국대보다 낮은 커트라인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분당, 수지, 영통 등 신도시 건설, 수원 삼성전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지하철 노선 연장, 경부고속도로 확장, 광역버스 노선 확충 등으로 수원, 성남, 용인 지역 대학교의 입결이 급상승하였다.[6] 롯데 자이언트는 최동원에게 5,000만 원의 계약금을 주기로 했는데 먼저 현금 2,100만 원을 주고 나머지 2,900만 원은 6개월 어음으로 주기로 했다. 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최동원은 믿었으나, 그가 죽을 때까지 롯데는 그 어음을 결제 해주지 않았다.[7] 장원준은 88억을 제시 받았으나 84억을 제시한 두산으로, 강민호는 80억을 제시 받았으나 마찬가지로 80억을 제시한 삼성으로 이적했다.[8] 처음엔 카톡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하겠다"며 구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하려고 하니 구체적인 사항은 내일 선수단 소집일에 만나서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9] 최동원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다리는 한국전쟁때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참전용사 단체의 줄소송을 맞았을만한 사건[10] 당시 임수혁이 쓰러졌던 경기가 LG의 홈이었고 LG구단 내부 의사가 오진해서 발생한 사태이므로, 엄연히 LG구단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LG구단도 보상금 지급 재판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11] NPB에서는 구단 잔류시 FA 선언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연봉 협상으로 몇 년씩 따로 계약을 하는 게 관례화되었다.[12] 그런데 나루세는 하락세인 선수라 구단에서 그를 잡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해서 현재 나루세는 그냥 먹튀 그 자체인 행보를 보이는 중.[13] 마이너스 옵션은 아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