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9:37:40

롯데 자이언츠/프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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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정보 롯데그룹 | 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군 | 프런트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실업 롯데 | 1984년 한국시리즈 | 1992년 한국시리즈 | 1999년 포스트시즌 |
롯데 자이언츠/2019년 | 역대 감독 | 프런트 | 사건·사고 | 트리비아 | 우승 이후 | 엘롯기 | 헬로키티
구단 세부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GIANTS TV | 팀 응원가 | 조지훈 | 박기량 | 안지현
지역 연고 학교 개성고등학교 | 경남고등학교 | 부경고등학교 | 부산고등학교 | 부산공업고등학교
부산정보고등학교 | 동래고등학교해체
경기장 관련 정보 사직 야구장 | 울산 문수 야구장 | 상동 야구장 | 구덕 야구장철거
팬덤 관련 정보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 갈매기 마당 | 거인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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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구단 주요 인사
1.1. 역대 구단주 / 구단주 직무대행1.2. 역대 대표이사1.3. 역대 단장
2. 특징
2.1. 개관2.2.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단장 및 프런트
2.2.1. 롯데의 마지막 우승 단장 송정규
2.3. 프런트 말 잘듣는 무능한 초보 감독만 선임2.4. 수준 이하의 코치진2.5. 짠돌이 운영2.6. 팬들을 이용해 돈만 벌려는 마인드2.7. 뇌가 없는 주먹구구식 구단 운영2.8. 막장 행각2.9. 2012년 이후의 눈속임 행보2.10. 프런트의 현장 개입과 철밥통 코치2.11. 원인

1. 역대 구단 주요 인사

1.1. 역대 구단주 / 구단주 직무대행

구단주
이름 기간 학력 비고
신준호 1982년 4월 ~ 1996년 10월 11일 경남고, 동국대 경제학과 롯데그룹 부회장, 롯데햄.우유, 롯데건설, 롯데개발 대표 겸임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초대 단장 역임
신격호 1996년 10월 11일 ~ 와세다실업학교 화학공학 롯데그룹 총괄 회장

구단주 직무대행
이름 기간 / 선임 학력 이력
조동래 1998년 2월 2일 선임 경남고, (대학 미상) 前 롯데호텔 사장, 롯데햄·우유 사장, 롯데 자이언츠 사장
김인환 2001년 3월 16일 선임 경남고, 서울대 법대 前 롯데 자이언츠 사장
김부곤 2002년 3월 19일 선임 부산고, 영남대 前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사장
김두봉 2003년 3월 22일 선임 장흥고, 고려대 상학과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사장, 롯데햄·우유 대표이사
신동인 2005년 2월 4일 ~ 2015년 8월 10일 부산공고, 한양대 기계학롯데제과 대표, 호텔롯데 사장, 롯데쇼핑 대표 겸임

롯데 자이언츠 창단 직후부터 1996년까지 신격호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이 구단주를 역임했다. 롯데 자이언츠 관련 나무위키 문서나 최근 일부 언론기사에 신준호를 구단주 대행으로 표기한 경우가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80 ~ 90년대의 모든 언론 기사에는 신준호의 직함을 '구단주'로 표기하고 있다. 1996년 이전까지 80~90년대 신문 기사들을 보면 신준호 전 부회장이 구단주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996년 10월 11일 신격호 회장이 그를 롯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해임시킬 때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라고 보도되어 있다. 신준호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부회장과 여러 계열사의 사장을 겸임하였으나, 형 신격호 회장과 토지 분쟁으로 소송전을 벌이다가 1996년 10월 11일 그룹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신준호는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에서 초대 단장을 역임했으며 이때부터 사실상의 구단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실업야구 리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0 ~ 90년대 기사나 야구 저서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신준호 전 부회장이 거의 모든 실무에 관여하며 어느정도 실질적인 구단주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요한 일은 신격호 회장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프로야구 탄생비화'에서는 신준호가 명목상 구단주였지만 신격호가 실질적인 구단주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준호는 명목상의 구단주에 불과했다는 표현 역시 타당한 평가는 아니다. 연고지를 서울로 할 것이냐 부산으로 할 것이냐와 같은 굵직한 사안에 대해서는 신격호 그룹 회장이 직접 관여했지만, 그밖의 대부분의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신준호가 구단주로서 거의 실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송정규 단장 선임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부에서 단장을 영입하는 정도의 일은 신준호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96년까지는 신격호 회장이 개입하는 일이 거의 없이 신준호가 구단주로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신준호는 그룹의 오너가 아니었고, 맡은 계열사도 많았기 때문에 구단주로서의 임무에는 소홀한 편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1996년 신준호 해임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 언론기사에 보도되고 있다. 1997시즌이 지나자 신격호 구단주는 조동래 전 롯데 자이언츠 사장을 구단주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이후 신격호 회장은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때까지 구단주 대행 체제가 이어진다.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이 주로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룹에서 실권을 잃고 좌천 형식으로 구단주 대행에 취임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실권을 행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구단주 대행 중 유일하게 유능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조동래 초대 구단주 대행은 과거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단장을 역임하였고, 롯데 자이언츠 창단을 직접 주도했으며, 창단 후 초대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조동래 대행은 롯데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는 현재까지 20년 동안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마지막 해였다.

하지만 조동래 대행 이후 김인환 대행을 거쳐 이후 야구와는 전혀 무관한 원로 경영인들이 연이어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면서 8888577의 최악의 암흑기를 이어가게 된다. 2005년에는 신격호 회장의 5촌인 신동인 사장이 구단주 대행에 선임되어 10년간 장기 집권하게 된다. 신격호 회장이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대실업대학에 다닐 때 신동인 집안의 도움을 크게 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하지만 신동인 대행은 여러 계열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고 역시나 그룹 오너가 아니었으며, 총수의 친인척이라 하더라도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 업무에 치여 롯데 자이언츠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신동인 대행이 다른 계열사 경영에 매진하느라 감독 선임조차 미루는 등 롯데 구단 업무는 뒷전이라는 비판 기사까지 등장했다. #

저 기사가 나온 정황은 실은 당시 막 등장한 신동빈 부회장의 개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 신격호 회장의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당시 암흑기를 이어오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에 개입하여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임명하며 롯데의 부흥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신동인 구단주 대행과 일종의 이중 오너쉽 체제가 이어지게 되며 신동빈 부회장, 신동인 구단주 대행 누구도 적극적으로 구단에 개입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상황이 이어지게된다. 신동빈 부회장이 2011년 그룹 회장이 되었지만, 신동인 구단주 대행이 집안의 웃어른이며, 선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선임한 인물인데다가, 앞서 설명된 집안 사정 등으로 신동빈 구단주 대행을 쉽게 내치거나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8월, 롯데 그룹 경영권 분쟁 중에 신동인이 구단주 대행 사의를 밝혔고, 2015년 9월 1일부로 신동빈 회장이 직접 롯데 자이언츠를 챙기겠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구단주의 위치에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구단주에 취임했다는 보도는 없으며, 지금까지 신동빈 회장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 보도한 기사는 없다. 2015년 이후에도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목상 구단주로 보도하는 기사가 간간히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2015년 이후 신동빈 회장이 직접 롯데 자이언츠를 관리하는 구단주의 위치에 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신동빈 회장은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 대행 및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및 정치권의 수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구단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그룹 경영권 분쟁 때문에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 직원들의 지지와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며, 때문에 무능한 롯데 프런트 조직을 개편하는데도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 역대 대표이사

이름 선임 / 취임 학력 이력
조동래 초대 사장[1] 경남고, (대학 미상)前 롯데호텔 대표이사(부사장), 前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단장
민제영 1989년 7월 15일 선임 경기고, 서울대 법대前 경제기획원장관 비서실
前 롯데제과 부사장
김인환 1994년 2월 3일 취임 경남고, 서울대 법대前 롯데제과 상무이사
안흥석 1998년 3월 1일 취임 경남고, 부산대 화공학과前 롯데리아 대표이사 (전무)
한중문 1999년 5월 23일 선임 경남고, 고려대 법대前 롯데쇼핑 포장사업본부 대표이사
이근수 2002년 3월 18일 선임 前 롯데쇼핑 식품사업본부 (전무)
하영철 2005년 2월 4일 선임 경남고, 고려대 前 롯데제과 전무이사
박진웅 2008년 2월 11일 선임 경남상고, 동아대 前 롯데 유통사업본부장
장병수 2010년 2월 10일 취임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前 동아일보 사회부 부장
前 롯데그룹 정책본부 홍보실장 (전무)
최하진 2013년 2월 3일 선임 브니엘고, 성균관대 무역학과前 롯데기공 대표이사
이창원 2014년 11월 13일 취임 서라벌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前 대우자동차
前 롯데그룹 정책본부 홍보팀장 (전무)
김창락 2016년 11월 28일 취임 서울고,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前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상품본부장 (전무)
김종인 2018년 12월 17일 선임 서울대 경제학과 前 S-oil
前 롯데마트 대표이사
롯데 사장의 경우 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전문 경영인이 선임되고 있다. 다른 야구단처럼 초창기를 제외하면 사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장병수, 최하진, 이창원 사장의 경우 언론에 직접 노출되는 등 전면으로 나선 경우가 많았는데, 역풍을 맞은 등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인지 후임인 김창락 사장은 언론에 드러나는 일 없이 내부에서 경영에만 매진했다. 전문성 없고 능력이 떨어지는 역대 단장들과 달리 그래도 사장들은 타 계열사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전문 경영인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2010년대 이후 선임되는 롯데 사장들의 특징은 신동빈 회장의 측근이자 그룹의 핵심인 정책본부 실장 출신이거나 또는 타 계열사의 대표로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또 애초에 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롯데로 이직하여 고위 임원으로 승진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문제는 이렇게 선임된 사장들이 개인적 능력은 있는 사람들이지만 야구 자체에는 문외한들이라는 점이다. 타 구단이라면 사장들이 야알못이라 할지라도 능력 있는 경영자라면 야구단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롯데 구단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롯데 프런트라는 조직 자체가 워낙 막장과 무능함, 그리고 오만과 독선, 아집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유능하긴 하지만 야알못인 사장 한 사람으로는 어떻게 상황을 개선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사장 밑에서 이를 떠받치고 보좌하면서 프런트 실무 직원들과 가교 역할을 해야 할 단장들이 심각하게 무능력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결국 맨위에서 사장들이 겉도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하진 사장처럼 스스로 야구를 공부해서 세이버매트릭스에 제법 정통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무식한 프런트 실무진과 현장에 의해 사장이 왕따를 당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1.3. 역대 단장

이름 직급[2] 선임 / 취임 학력 이력
박종환 전무이사 1983년 11월 4일 ~ 1989년 6월 25일 경남고 (선수출신) 前 KBO 총재보좌관
퇴임 후 KBO 사무총장 역임
송정규[3] 관리이사 1991년 3월 15일 선임 한국해양대학[4] 항해과 前 해운사 스콜피오 선장, 개인사업체 운영
퇴임 후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한영국 상무이사 1993년 2월 1일 선임 前 롯데제과 상무이사
롯데 자이언트 운영진, 롯데 자이언츠 창단 실무
정광조 이사 1993년 2월 1일 선임 前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
퇴임 후 메스텍 코퍼레이션 사장
최경열 이사 1998년 3월 10일 선임 前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이철화 1998년 10월 26일 선임 동국대학교 (선수 출신)前 한국전력 선수
삼미 운영과장, 롯데 운영부장
이상구 이사대우 2002년 4월 10일 선임 대경상고 (고졸) 롯데주조 입사, 前 롯데 자이언츠 기획부장
퇴임 후 NC 다이노스 단장, 부사장 역임
배재후 이사대우 2010년 2월 10일 선임 한국사회사업대학[5] 경제학과 롯데산업 입사, 前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관리부장
이윤원 이사대우 2014년 11월 7일 선임 경원대학[6] 경영학과 롯데칠성음료 입사, 前 롯데푸드 경영기획부문장

2. 특징

문단 명을 특징이 아니라 비판이라고 해야 한다.

2.1. 개관

총체적 난국의 야알못 막장 프런트

구단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구단 내적으로는 KBO 최악 수준의 막장 프런트가 언급된다. 외부적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 팬들은 다른 팬들과 싸우는 횟수보다 프런트와 싸우는 횟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롯데 프런트의 막장력은 알아주는 편이다. 아래 내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좋은 성적이 나올래야 나오기가 힘든 막장 구단이다. 의지가 없는 구단주부터 프런트 말단까지 무능과 야알못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일단 프런트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 심각하게 무능하고 자질이 부족한 야알못인 경우가 많다.대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며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선수 출신의 경우 타계열사로 입사했다가 야구단에 좌천되어 온 무능력자들이 많으며, 선수 출신인 경우에도 선수 시절 보잘 것 없는 능력을 보여줬지만 처세와 인맥 관리를 통해 롯데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는 철밥통들이 많다.

더욱 무섭고 암담한 점은 이런 롯데 프런트의 막장스러움이 단지 몇몇 프런트 요인들의 무능함과 막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기업이지만 대기업답지 않은 롯데그룹 고유의 본질적 특성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롯데 프런트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무능한 프런트 수뇌부가 경질되어도 새로운 무능력자가 부임하는 비극적 악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애초에 롯데가 부산 연고의 야구단을 운영하게 된 것이 재앙의 시발점이며, 결국 이런 비극의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롯데그룹이 야구단을 떠나고 새로운 기업이 야구단을 맡는 수 밖에 없다라는 팬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롯데 프런트의 수준이 얼마였느냐 하면 신은 공평하다라는 밈(?)이 한창 돌던 당시, "신은 롯데에 열성적인 팬덤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프런트도 내려주셨다"는 예시가 나올 정도였다. 크보 유일의 흑자구단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물론 비꼬는 것으로 팬은 많은데 프런트가 돈을 짜게 쓴다고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을 것이라 하여 붙은 별명.

롯데 프런트가 이렇게 무능하고 막장스러운 행적을 보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구단주가 절대로 우승을 원하지 않고 적당히 하위권에서 머물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2.2.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단장 및 프런트

단장 이하 롯데 프런트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학력이 낮은 무능한 사람이 포진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자존심 만큼은 하늘을 찌른다. 롯데 프런트는 연고주의의 온상으로 실력과 무관하게 연고주의에 의해 무능한 인물들이 들어와 철밥통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가끔 잘나고 유능한 인물이 들어오면 합심해서 쫒아낸다. 단장 이하 직원들은 학력과 지능이 낮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가치 평가를 하지 못하여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FA 등 선수 영입과 관련하여 수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점술가의 말을 듣고 선수를 뽑으려 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롯데 프런트의 능력이 얼마나 막장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롯동금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될 정도로 롯데그룹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수준의 낮은 임금으로 유명했고,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이 절대적으로 기피하는 회사였다. 첨단 기술 개발이 필요치 않는 유통과 서비스업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의 특성상 굳이 고임금을 주고 고급 인재를 영입할 필요가 없었고, 저임금을 통한 저비용 경쟁력을 추구했다. 이는 롯데의 경쟁 기업들이 더 저임금, 저비용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롯데로서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롯데 그룹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출신이 별로 없고 지방 사립대 출신 혹은 고졸이 많이 입사하던 회사였다. 물론 최근 10년간 롯데의 저임금도 개선이 되었고 취업난으로 인해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도 많이 입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룹의 중간관리자 이상 직급은 여전히 과거 박봉 시절 입사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타 구단의 경우 유명 야구선수 출신으로 전문성을 보유한 인물 혹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서 경영 능력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엘리트가 단장으로 선임되는데, 특히 최근에는 야구선수 출신이 단장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롯데는 과거 초대 박종환, 6대 이철화가 선수 출신으로 단장이 된 적이 있지만, 이철화는 선수 생활을 일찍 접고 프런트에서 운영부장 등으로 오래 근무해온 만큼 선수 출신이라기 보다 프런트 출신에 가깝다.

롯데는 주로 프런트 운영부장 출신이거나 계열사의 부장급 중간관리자가 단장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계열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유능한 인물도 아닌 사람이 단장으로 선임되고 있다. 프런트 부장 출신 단장들도 입사 당시부터 야구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롯데 다른 계열사로 입사하여 일하다가 야구단으로 좌천된 옮겨온 경우가 많다.

역대 롯데 단장들의 경우 주로 고졸이거나 지방 사립대, 그것도 종합대학도 아닌 단과대학 출신이 절대 다수이다. 이처럼 역대 롯데 단장들은 학력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실제로 구단 경영에 있어서 그 능력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인물들이 많다. 과거 롯데그룹의 특성상 본사의 일부를 제외하면 대기업 답지 않게 명문대 출신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지방대 출신 또는 고졸 출신이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그룹의 상황[7]이 야구단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롯데 프런트도 지방대 출신 또는 고졸 출신들이 많다. 위 표에 나와 있듯이 역대 단장들을 보면 상고를 나온 이상구 전 단장, 지방 단과대학인 한사대학을 나온 배재후 전 단장, 역시 지방 단과대학인 경원대학을 나온 이윤원 현 단장 등 학력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한사대학이나 경원대학은 당시 기준으로 지방에서도 좋은 대학이 결코 아니었고, 당시 실업계에 종종 우수한 학생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고 출신 이상구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상고에서 공부 잘하던 사람들은 웬만하면 은행 등 다른 더 좋은 직장에 취직했기 때문에[8] 이상구가 상고 출신 중에서는 엘리트라고 볼 근거도 없다.

롯데 구단 단장들은 처음에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입사하여 야구와 관계없는 직무를 하다가 중간에 좌천되어 야구단으로 옮겨온 경우가 많다. 운영부장 출신 단장들이 많아서 겉으로는 전문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에 다른 계열사에서 근무하다가 중간에 프런트로 옮겨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 단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롯데 프런트 전체가 그렇다. 즉 선수 출신이거나 처음부터 야구에 관심이 있어서 야구단으로 입사한 인력이 아니라 타 계열사의 일반 직렬에서 근무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중간에 야구단으로 귀양온 옮겨온 사람들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박종환 전무를 제외하고 역대 롯데 단장 가운데서 유일하게 선수출신에다가 프런트의 밑바닥부터 올라왔던 사람이 이철화였다. 현재 기준으로 볼 때 역대 롯데 단장 가운데 그나마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철화도 선수시절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선수였는데다가[9]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오랫동안 프런트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보통 경력직을 뽑을 때는 가능하면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 출신을 영입하여 선도 회사의 시스템을 이식하려는게 보통인데, 롯데 프런트는 리그에서 가장 비체계적이었고 소위 문제 구단으로 낙인 찍혔던 삼미 과장 출신을 운영부장으로 영입했던 것이다(...).

오늘날 야구단에서는 경영학이나 통계학, 공학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최근 사이버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각종 분석 기술이 첨단으로 발달하면서 각종 통계 기법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는 야구단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명문대에서 경영학, 통계학, 공학을 전공한 이들이 프런트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고 나아가 단장, 대표가 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롯데 프런트는 이런 추세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롯데 프런트의 행태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인 통계 지표 조차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매년 FA 시장을 보면, 팀의 입장에서 선수 가치의 공정가격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어떤 선수는 필요 이상으로 비싸게 사오고, 꼭 필요한 선수를 단 1,2억을 더 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놓치고 시즌 운영에 큰 타격을 입는 등 좌충우돌하는 삽질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말도 있듯이 처음에는 미숙하더라도 실수하면서 배우며 발전하는 것이 사람인데, 현 롯데 프런트를 보면 몇 년이 지나도 발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8년이나 단장을 한 이상구 때도 그랬고, 5년째 단장을 하고 있는 현 이윤원 단장도 그렇다.

롯데에서 가장 오랜 기간 단장을 역임했던 이상구실업계상고를 졸업한 고졸 출신으로, 단장으로 있는 동안 수많은 삽질을 했는데 이대호 등 여러 선수들과 연봉협상에서 푼돈을 아끼려고 갈등을 벌였던 것은 애교 수준이다. 2007년 해외 선수 지명 때 이상구가 점집에 가서 점쟁이 말을 믿고 송승준을 뽑지 않으려다가 구단 수뇌부가 이건 도저히 아니다면서 이상구를 제지하여 송승준이 뽑힐 수 있었던 사실은 롯데 팬들에게 제법 알려진 일화다.(...)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류현진을 뽑지 않고 나승현을 뽑은 등 선수 선발에 있어서 상당히 좋지 않은 안목을 보여줬다. 또 NC로 이적한 후에는 전 직장인 롯데 구단에 대해 엄청난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롯데의 단장 잔혹사는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경원대(현 가천대)[10]를 졸업한 현(現) 이윤원 단장은 이상구, 박종화 단장 이후 최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데, 역시 경영자로서 기본 중의 기본적인 자질조차도 의심되는 병크를 연속으로 저지르고 있다. 일단 감독을 자신의 말을 잘 들을 법한 초보 감독을 선임한다. 물론 초보 감독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소신이 있기 때문에 멍청한 단장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번 겪더니 이제는 단장을 해본 사람을 감독으로 앉히고 있다. 돈을 써야할 곳에는 구두쇠처럼 아끼고,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곳에는 돈을 펑펑 쓰며, FA 때마다 내부 선수들과 감정 싸움을 하면서 크지 않은 금액 차이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선수들을 놓치고 있는 반면 중복 포지션에 있는 외부 선수는 시장가격보다 수십억원이나 웃돈을 주고 영입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5년째 계속 보이고 있다. 때문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 오히려 팀 성적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단장이 된지 5년이나 됐지만 문제점이 거의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2.1. 롯데의 마지막 우승 단장 송정규

역대 롯데 단장 가운데 가장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롯데의 마지막이자 유이한 우승 단장인 송정규 단장이다. 송정규 전 단장은 본업이 해운사 소속 선장인 열렬한 롯데팬이었다. 그는 팬심에서 롯데 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바램을 아예 ‘롯데 자이언츠 필승전략 톱 시크리트’이라는 책으로 써 냈는데, 그걸 신준호 구단주가 읽고 감명을 받아서 “바로 이 사람!”이라면서 송정규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송정규가 특이하게 관리 이사라는 직급을 가졌던 이유. 사실 신준호 구단주는 송정규에게 전무 이사직을 주려고 했지만 조직 내부 반발로 관리 이사가 되었다고 한다.

송정규 단장은 92년 우승이라는 업적을 일궈내며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송정규 단장의 사례는 일개 야구팬의 시각이 무능한 철밥통 야알못 프런트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송정규 단장은 외부에서 관련 경력이 전혀 없이 영입되었기 때문에 프런트 내부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잡음이 일었다. 당시 언론 기사는 이러한 내부 잡음에 대해 보도하면서 일방적으로 송 단장이 야구판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시행착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행간을 보면 오히려 프런트 기득권자들이 언론까지 동원해 외부에서 영입된 송 단장을 흔들어보려는 시도라고 보여진다. 심지어 송정규가 외부에 영입된 것이 구단주인 신준호와 같은 경남고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학맥에 대해 공개적으로 트집잡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이례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외부 인사인 송정규를 흔들려는 시도로 보여지기에 충분하다. 1992년 10월 15일 동아일보 기사 - 거인 우승에 구단 뭘했나. 프런트 뿐만아니라 타팀 야구인들도 비야구인 출신인 송 단장을 매우 못마땅해 하며 그를 야알못으로 치부하며 적대시하였다.

최근 한 신문기사를 통해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야구인들과 프런트 출신들이 송 단장에 대해 악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 야구 원로는 “꼴찌 팀이니 비판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이건 과하다. 프로야구단이 야구판을 떠난 지 수십 년 지난 비전문가에게 망신을 당해야 하나. 야구단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목소리가 다 나올까 싶다”고 혀를 찼다. 롯데 프런트 출신의 야구인도 “소식을 접한 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고 했다.

(중략)

송 전 단장의 책에 대한 야구계 평가는 엇갈린다. “과거 롯데의 문제점에 대해 잘 정리한 책”이란 평가도 일부 있지만, 일각에선 ‘과대평가된 면이 적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한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출간 당시 여러 신문 기사를 정리한 수준이란 평을 들었던 책이다. 내용도 전문가 시각으로 볼 때는 평이하다”고 했다. 한 야구 원로도 “고 이종남 기자가 1980, 90년대 펴낸 책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책 한 권 보고 야구단 근무 경험도 없는 비전문가에게 덜컥 단장 자리를 맡긴 롯데가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단 운영을 너무 쉽게 했다는 생각”이라 했다.
- [엠스플 이슈] 롯데가 야구 못한다고 ‘도선사’ 훈수까지 들어야 하나
마치 메이저리그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영입되었을 때 김성근을 비롯한 다수의 국내 야구인들이 로이스터 감독에게 표출했던 적대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상기에 인용된 기사가 여러 차례 편견과 아집을 드러낸 전례가 있는 배지헌의 글이라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구단 내외부에서 들어오는 견제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송정규 단장이 우승을 이루어냈다는 점을 보면 이상구이윤원 처럼 계열사에서 야구단으로 좌천된 야알못들보다 열렬한 팬심을 가지고 있는 일개 야구팬이었던 송정규가 훨씬 유능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사직구장 시즌권을 끊은 관중 아무나 데려와 단장을 시켜도 야알못에 학력도 낮은 이윤원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송정규가 기존의 박힌돌들인 프런트 직원들과의 마찰(항명)로 우승 단장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짤렸지만 송정규가 나간 후 그 잘난 롯데 프런트에 의해 롯데가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는 점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송정규 전 단장의 구체적인 지적들은 젊은 야구팬들의 시각에서 보면 일부 지나치게 보수적이거나 주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현 롯데 팬들 입장에서 현 롯데 프런트가 팬들 평균보다 못하다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2.3. 프런트 말 잘듣는 무능한 초보 감독만 선임

롯데 프런트의 감독 선임은 프로야구 전구단 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 팀이 과연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인가 꼴찌를 목표로 하는 팀인가 팬들을 헷갈리게 한다. 아래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롯데 프런트의 감독 선임의 지향성은 우승 지향이 아니라 명백하게 꼴찌 지향임을 알 수 있다.

롯데 구단이 선임하는 감독들의 특징은 프런트의 말을 잘 들을만한 사람, 즉 감독 경험이 아예 없거나 감독 경력이 수년째 단절된 사람만 골라 감독으로 선임하는 상식과는 정반대로 역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타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명장들은 절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명장 영입설이 도는 경우 곧바로 프런트에서 영입 계획이 없다고 사전에 선을 그어 버린다.

아래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역대 롯데 감독 다수가 이전에 감독 경험 없이 코치만 했거나 아마추어 감독만 하던 초보 감독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최근 들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타팀 감독 경력이 있는 경우를 보면 모두 전적 팀에서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고, 백인천을 제외하면 포스트시즌은 구경도 못해본 전형적인 하위권 감독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백인천도 우승을 이룬 감독 첫해 단 1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해는 중하위권을 전전했다. 또 김시진을 제외하면 이전 마지막 팀에서 경질된 후 야구계에서 도태되어 다년간 실직자 생활을 하던 사람들[11]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사실상 은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경질의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겪었고, 때문에 프런트의 말을 잘 따를 수 밖에 없다. 김시진의 경우 유일하게 전적 팀에서 경질된 후 공백기 없이 롯데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김시진은 지도자로서 무능하긴 하지만 야구계에서 사람 좋기로는 유명한 사람이다. 롯데 프런트는 이처럼 오로지 제 마음대로 편하게 휘두르려는 목적으로 초보자 아니면 사실상 은퇴 상태에 있는 무능한 전직 감독들만 골라 영입했던 것이다. 감독 선임부터 이지경이니 롯데라는 팀의 성적이 잘 나올래야 잘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역대 모든 롯데 감독들을 망라해 보면 전원이 아래 세 가지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 단 초대 감독 박영길의 경우 실업야구 한전야구부의 플레잉 코치로 있다가 1977년 시즌 중간에 롯데 자이언트선수 겸 감독[12]으로 영입되었고, 1982년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하자 그대로 롯데 초대 감독이 되었다. 박영길 전 감독은 선수를 은퇴하기도 전에 플레잉 코치를 거쳐 플레잉 감독으로 단기간에 승진한 이례적인 케이스인데 실업야구 시절을 걸쳐 있고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례이기 때문에[13] 아래 카테고리에 넣지 않고 여기에 따로 기재하였다. 박영길 전 감독의 사례를 보면, 경력 없는 초보자를 감독으로 앉히는 롯데 프런트의 전통이 실업야구 때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임을 알 수 있다.

1.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진된 초보 감독들
성명 롯데 감독 선임 직전 보직 프로 코치 경력 기타 주요 경력
강병철(2, 6, 12대)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1년 동아대 감독(1978~1982)
김용희(7대)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4년[14] 다른 경력 없음
김명성(8대)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17년 롯데, 청보, 태평양, 삼성, 빙그레, LG에서 코치 역임
양상문(11대, 18대) LG 트윈스 투수코치 9년 롯데와 LG에서 투수코치 역임
제리 로이스터(13대) 없음[15] 4년[16] 콜로라도 로키스,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코치 및 감독대행 역임
롯데 감독 부임 전 5년간 지도자 경력 없음
이종운(16대) 롯데 자이언츠 주루코치/3군 코치 1년 롯데 3군 코치가 되기 전 경남고 감독을 11년간 역임
조원우(17대)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7년 한화, 롯데, 두산, SK에서 7년간 코치 역임

2. 대학 감독을 하다가 영입된 초보 감독들
성명 롯데 감독 선임 직전 보직 기타 주요 경력
성기영(3대)영남대 감독(5년, 1982~1988)부산상고, 경북고, 대구고에서 76년부터 81년까지 총 6년간 고교 감독 역임
양승호(14대)고려대 감독(4년, 2007~2010)두산과 LG에서 12년간 코치, 감독대행 역임
양승호 전 감독의 경우 롯데 감독이 되기 전에 2006년 LG 트윈스에서 반 시즌 조금 넘게 감독 대행을 맡은 적이 있다. 하지만 80경기 31승 3무 46패 승률 0.403의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3. 타팀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경질된 무능한 감독들
1) 어우홍(4대)
1984~1985시즌 MBC 청룡 감독을 역임했다.
MBC 청룡은 원년인 1982년 OB, 삼성과 함께 우승을 노리던 강호였다. 비록 원년은 OB, 삼성에 밀려 3위로 마감했으나 1983년 정규시즌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해태가 차지했다.
이랬던 MBC를 맡은 어우홍 감독은 첫해인 1984년 6팀 중 4위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5위로 내려앉았는데, 1985년 후기리그에서는 최하위인 6위로 내려앉았고 바로 경질되었다. 1988년 롯데 감독으로 영입될 때까지 2년간 야인으로 머물렀다.

2) 김진영(5대)
삼미 슈퍼스타즈 초대 감독을 맡았다가 1985년 삼미가 청보 그룹에 인수되면서 그해말 경질되었다. (후임은 허구연...) 이후 롯데 감독이 될 때까지 4년간 야인으로 머물렀다.

3) 우용득(9대)
1993~1995시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역임했으나 2015년 이전까지 삼성의 최고 암흑기(?)로 불린 556 암흑기에 빠지는 부진을 겪으며 경질되었다. 이후 2년간 야인으로 머물다가 1998년부터 롯데에서 2군감독, 1군 수석코치, 감독대행을 차례로 거치며 승진한 후 마침내 2002년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롯데 감독 부임 후 최하위를 기록하며 롯데의 비밀번호를 시작했다.

4) 백인천(10대)
1990~1991시즌 LG 트윈스 감독을 맡아 첫 해 우승을 차지했으나 구단 및 선수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이듬해인 1991년 6위로 내려 앉았고 감독에서 물러났다. 4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1996시즌부터 2년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역임했다. 삼성에서 2년 동안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이승엽을 키워내는 등 리빌딩을 이끌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강기웅, 전병호, 동봉철 등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등 많이 시끄러웠다고 한다. 이후 5년간 야인으로 머물다가 2002년 롯데 감독에 부임했다.

5) 김시진(15대)
2007시즌 현대 유니콘즈 감독과 2009~2012시즌 넥센 히어로즈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감독에 있었던 5년 동안 한번도 최하위권(8개팀 중 6~8위)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2012시즌 후 경질되었으나 곧바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했다. 김시진 감독이 나간 직후 넥센 히어로즈는 성적이 급등하여 거의 매년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컨텐더 팀으로 변모했다.

2.4. 수준 이하의 코치진

감독만 무능한 사람들로 뽑는 것이 아니다. 코칭 스태프 역시 무척 무능한 인적 자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선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놔두고 현역 시절 비주전급이었던 선수들이 현재 롯데 코치진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비교적 유능한 인물들은 3군에서 썪고, 무능한 코치들이 1군에 중용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유능한 코치들은 팬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타팀으로 떠나 버린다.

롯데 코치진의 질적 저하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수한 코치들은 결국 유능한 감독들 아래로 들어가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롯데는 계속해서 경력 없는 초보들만 감독으로 앉히고 있다. 경력 있는 코치들은 이런 수준 이하의 감독 아래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롯데가 코치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때문에 결국 수준 낮은 코치진을 꾸릴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2.5. 짠돌이 운영

롯데 구단의 여러 문제점 중에 특히 대표적인 아이덴티티는 바로 짠돌이 운영이었다. 짠돌이 운영을 비롯한 롯데 구단의 수많은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모기업인 롯데그룹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모기업인 롯데그룹은 외형적으로는 대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수준 이하의 저질 대기업이었다는 것에서 롯데 구단의 비극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롯데는 외형적으로는 대기업이지만 다른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달리 기술력이 전혀 필요없고,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한 능력만이 요구되는 유통, 물류, 식품, 숙박업 등을 사업영역으로 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러한 사업 특성 때문에 명문대 출신의 고급 인력이 필요치 않은 기업이었고, 중소기업 수준의 저임금으로 유명했다. 2000년대까지 상위권 대학에서는 소위 롯동금(롯데, 동부, 금호)은 대기업이지만 절대 가면 안된다는 얘기가 널리 회자되었을 정도였다. 롯데 구단이 짠돌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근본적으로 2010년대 이전 롯데그룹 특유의 저임금, 저비용 경영 기조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때문에 롯데 구단은 최동원, 이대호 등 간판급 선수들은 물론 여러 선수들과 연봉협상에서 많은 갈등을 벌여왔다. 이런 갈등은 롯데그룹의 경영방침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없던 롯데그룹은 가격 경쟁력이야말로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었고 때문에 곳곳에서 저비용을 추구했고, 사원들의 연봉도 대기업 최저수준이었다. 이처럼 저비용, 저임금 기조로 굴러가고 있는 회사에서 특정 스타 선수들에게 연봉을 크게 올려준다면 팀을 넘어서서 롯데그룹 전체 사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를 구실로 노조에서 인금 인상 요구를 한다면 큰 일이라고 롯데 수뇌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해외 명문 축구팀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은 다른 명문팀에 비해 선수들의 연봉이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맨유는 이제 아닌데? 77ㅓ억~ 이들 팀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단의 내부방침을 뛰어넘는 수준의 연봉을 요구하는 선수들은 영입하지 않는다. 연봉이 높은 특정 스타를 영입한다면 다른 선수들도 연봉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구단 제정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이 그만둔 후 맨체스터 유나이트가 고액 연봉자인 알렉시스 산체스를 영입하자 다른 선수들이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재계약을 거부하는 등 내부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래요. 롯데는 처음부터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17] 이런 상태에서 프로 롯데라고 믿음이 갔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롯데를 위해 1984년을 통째로 바쳤어요.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대가가.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된 이후 인터뷰에서 [박동희의 야구탐사] 철완 최동원? 옵션의 희생양이었다.

대표적인 만행으로 에이스 최동원을 그야말로 부려먹으며 연봉을 깎을 생각만 했으며 심지어 85년 연봉협상때는 연봉 25%이상 못올려준다고 고집을 부렸다. 참고로 85년 초 연봉협상은 최동원이 84년 한국시리즈때 9경기중 5경기 등판이라는 전설적인 성적과 혹사를 보여준 직후의 연봉협상이었다. 이는 최동원 문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20년 뒤에도 막장행각은 변하지 않아 2010년 시즌 '7관왕 타자' 이대호에게 기어이 7,000만원의 의견차이로 연봉조정신청까지 간 사건 등 연봉문제로 오만 갈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선수들도 롯데와 연봉 문제로 대립하는 것은 거의 연례 행사 수준.
롯데는 최근 몇년간 내부 FA 선수들을 잔류시키는 데 실패했다. 표면상 이유는 금액차.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협상 과정에서 이 고위 관계자의 강압적인 태도가 선수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한 고참급 선수는 "고위 관계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화를 삭히지 못하고 선수를 향해 물병을 집어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그 선수는 치욕을 느껴 조건과 상관없이 타 구단으로 이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2014년 CCTV 사태 직후 나온 기사.

롯데 사정에 능통한 야구인은 롯데의 협상태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민호가 보상금액(20∼30억)을 빼더라도 다른 팀에 가겠다고 답답해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참 쓰라린 삼성 강민호, 방심한 롯데가 당했다
그결과 롯데 자이언츠는 창설부터 계속 내부 선수들과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데 다른 구단들의 경우에도 이런 자잘한 충돌소식은 들리나, 롯데는 그 충돌이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다.

최동원은 연봉 협상 때마다 충돌을 빚은 선수 중 한 명이었는데, 당시 박종환 단장이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어 병신, 육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사실을 알고 결국 88시즌 종료 후 미국 유학을 떠나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 이후 복귀하나,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로 강제 트레이드 되었다. 전준호도 기천만원 더 주는게 싫어서 매년 싸우다 단돈 5억에 현대에 팔아먹었으며 김민재는 1억 더 주는게 싫어서 SK로 떠나보냈다. 손아섭은 구단의 고압적인 행태에 반발해 스프링캠프때 로고를 가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대호에게는 연봉 7천만원 더 올려주는 게 싫어서 연봉조정신청까지 가 기어이 이겨먹었으며, 선수 본인은 다른 선수들 앞에서 신동인 구단주 대행으로 부터 면박을 당하기도 했는데, 직전 시즌 이대호는 전설의 9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찍어낸 명실상부 크보 원탑의 괴물타자였으며 당연히 정규시즌 MVP도 수상하였다. 이대호도 이대호지만, KBO 최고 타자가 이런 대접을 받는 마당인데 대체 다른 롯데 선수들의 대우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조성환은 첫 FA였던 2011년에 꼴랑 문자 한 통 보낸 다음,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만나줬다. 장원준에겐 계약 안 하면 제시액을 언론에 공표하겠다며 협상 대신 협박을 했는데, 이 때 장원준은 이 액수에 사인 안하고 다른 구단과 더 적은 액수에 계약하려면 어쩔 거냐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 뒤는 다들 알다시피 장원준은 두산 베어스로 FA 이적하였으며 장원준을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인 속칭 "환경드립"이 이 때 등장한다. 아무리 그전에 대우가 어떻든, 협상 기간을 전후해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이 일어나 선수단이 동요하는 상황에서 할 행동은 아니다.

그리고 2018년엔 롯데 프랜차이즈이자 더 나아가 부산의 상징으로서 차기 영구결번 떡밥도 나오던 강민호가 직접 롯데에 남고 싶다며 먼저 구단에 2번이나 찾아왔음에도 사실상 무시나 다름없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결국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가면서, 현재까지도 이런 구단 프런트의 행태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다.

또한 이런 구단의 모습은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내부 FA 유출 구단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이다.
롯데가 놓친 내부 FA 선수들
순번 이름 이적 년도 포지션 이적 팀
1 김민재 2002년 내야수 파일:attachment/sk_wyverns_s.png
2 임경완 2012년 투수
3 김주찬 2013년 외야수 파일:attachment/kia_tigers_s.png
4 홍성흔 지명타자 파일:attachment/doosan_bears_s.png
5 장원준 2015년 투수
6 김사율 파일:attachment/kt_wiz_emblem_s.png
7 박기혁 내야수
8 심수창 2016년 투수 파일:attachment/hanwha_eagles_s.png
9 황재균 2018년 내야수 파일:attachment/kt_wiz_emblem_s.png
10 강민호 포수 파일:attachment/samsung_lions_s.png
11 최준석 지명타자 파일:attachment/nc_dinos_s.png

보면 알겠지만 김주찬, 장원준, 황재균, 강민호는 팀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축 멤버들이었으나 모두 떠나갔다. 특히 장원준강민호는 롯데를 상징하는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정 받았고 액수 또한 더 크게 제시 받았음에도[19] 팀을 떠났다는 사실은 롯데 프런트와의 협상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강민호는 FA때 |롯데가 안이하게 대처해서 적극적으로 대하지 않았다가 삼성에게 뺏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조쉬 린드블럼과의 협상에서 잡음이 있었고, 린드블럼 측의 발언과는 달리 롯데가 딱히 린드블럼에게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은 점, 이대호, 문규현, 손아섭 등 롯데가 좋은 대접을 해준 다른 사례 역시 존재하는데다가, 린드블럼 포함해 롯데에서 타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들 대부분이 타 구단 이적에 능한 특정 에이전트를 고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롯데 측에서는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는 평도 있긴 했다.

그러나 린드블럼에 관련해서는 실제로 단장이 딸의 건강만 해결되면 재계약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두 번이나 했으며, 린드블럼 계약 관련해 롯데 프런트가 거짓말을 하고도 언플로 빠져나가려 했던점이 밝혀지면서 롯데 프런트가 잘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또한 일명 "카톡 통보"로 오질라게 욕을 먹었던 황재균조차도 이 건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20] 롯데의 언플에 질려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수근박명환의 방송에 나와 밝히길 자신은 롯데에 가고 싶었으나, 프런트에서 처음 걸려온 전화 내용이 "우리랑 계약 안할 거죠?"였다고 한다. 양의지의 에이전트인 이예랑 리코스포츠 대표 또한 롯데에서 당연히 오퍼가 올 줄 알았으나 전혀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

2.6. 팬들을 이용해 돈만 벌려는 마인드

롯데는 프로야구 전 구단 중에서 관중 수입과 유니폼 판매 등 매출 1위를 놓치지 않는 팀이다. 부산의 열렬한 야구팬들을 등에 업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롯데 구단은 상기된 바와 같이 절대로 좋은 성적을 낼 생각은 없고 적당한 하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팬을 빨아먹고 등쳐먹을 생각만 하고 있다.

롯데 구단은 매우 무능력한 집단이지만 유일하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어떻게 하면 팬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는 것이다. 롯데 프런트는 각종 마케팅과 이벤트를 벌여 수시로 팬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가고 있다. 유니폼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각종 기념일을 만드는 상술을 벌인다.

최근 롯데그룹에서 구단으로 보내는 고위 인사를 보면 소위 마케팅 전문가가 많다. 야알못 마케팅 전문가를 구단으로 내려 보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팬들로부터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롯데는 팬들의 충성심과 열화와 같은 성원 덕분에 프로야구 구단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창출하지만, 이런 수익을 결코 팀의 성적 향상을 위해 쓰지 않는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롯데는 매출은 1위지만 투자액은 최하위권을 밑돌았다. 다만 신동빈 체제로 전환된 후 이런 행보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롯데도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눈속임이다. 롯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롯데가 야구단에 투자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한 금액 이상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기 때문이다. 롯데의 투자는 철저히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마케팅 목적으로써의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팀의 성적 향상과는 무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디시나 네이버, 엠팍에서 롯데팬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선수가 있으면 야알못 구단 수뇌부는 그 선수의 마케팅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하여 바로 웃돈을 주고 지른다. 이대호, 민병헌, 채태인 등 여러 선수들이 중복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시세보다 높은 몸값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조금 더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이승호, 정대현, 손승락, 윤길현을 영입할 때 모두 예상 액수보다 높은 가격으로 롯데가 영입한 바 있다. 이들은 비시즌기 롯데 팬들이 있는 여러 팬커뮤니티에서 많은 팬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선수들이다. 이대호는 말할 필요도 없고, 채태인의 경우 FA 시장 당시 재미있는 여러 짤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롯데 구단이 이들이 중복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시세보다 수십억원씩 높은 몸값을 주고 영입한 것은 전력 강화가 아니라 마케팅 용도로 사용하려는 데 주목적에 있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투자 비용 대비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중복 자원이기 때문에 전략 강화에는 실질적으로 별 보템이 되지 않기 때문에 팀이 덜컥 우승하여 구단주를 노하게 할 리스크도 적어진다.

반면 강민호, 황재균, 장원준, 노경은 등 팀에 꼭 필요한 자원들에 대해서는 적정가 이상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며 미련없이 타팀으로 보내버린다. CCTV 파동으로 구단 수뇌부가 교체되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떠난 장원준을 제외하고, 강민호, 황재균 등을 보면 이적하기 전에 롯데 팬들에게 다소 많이 까인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민호는 직전 포스트시즌에서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황재균도 평소 수비라든지 찬스 상황에서 삽을 푸는 행동 등으로 롯데 팬들에게 주기적으로 까였다. 팬들이 이들을 비난한 것은 내 자식이니 속상하고 앞으로 잘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힐책하는 것인데, 문제는 야알못 프런트는 팬들의 이런 비난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그들의 마케팅적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프런트는 이들에 대한 가치평가를 시세보다 낮게 설정하게 되고, 결국 FA 시장이 열리면 선수들은 더 높은 액수를 제안하는 타팀으로 줄줄이 이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옛날 해태처럼 잘하건 못하건 전부 박봉을 준다면 선수들도 차라리 덜 속상하겠지만, 영입선수들에게는 후하게 주면서 그동안 고생한 프랜차이즈들에게는 박한 기준을 들이미는 롯데 프런트의 이중적 행태를 보면서 그들이 떠날 때 감정이 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롯데가 요즘 많은 돈을 쓰면서도 의외로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1~2억원도 매우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외국인 선수는 팀 전력의 40%를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용병들의 몸값은 국내 고액 FA 선수들에 비해서 오히려 더 저렴하다. 하지만 롯데는 최근에 FA에 큰 돈을 쓰면서도 외국인 용병에 대해서 가성비를 추구한다느니, 키워서 쓴다느니,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수비형 용병을 영입했다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해가며 저렴한 용병들만 골라서 영입하고 있다. 닉 애디튼, 앤디 번즈 등 리그에서 가장 저렴한 용병을 쓰다가 이들이 망하면 도중에 퇴출시키고 대체 용병을 구하며 이중으로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조쉬 린드블럼처럼 몸값이 높아지면 그냥 포기해버리고 적당히 싼 다른 용병을 구한다. 외국인 용병이야말로 팀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이며 가성비 있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이처럼 저렴한 외국인 용병만 찾는 것은 구단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에 비해 마케팅이나 유니폼 수입 등의 효과를 거두기 힘들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2.7. 뇌가 없는 주먹구구식 구단 운영

다만 롯데는 최근 10년간 임금과 복지 수준이 향상되어 중소기업 수준이라는 비아냥은 듣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롯데 구단도 더이상 짠돌이 구단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 하지만 롯데가 이렇게 기업다운 기업이 된 것은 불과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문제는 현 롯데 그룹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임직원들은 모두 롯데가 기피되던 롯동금 시절에 입사한 인물들로, 자질과 능력부터가 타 대기업 임원들과 차이가 있고, 신입사원 시절부터 롯데그룹 특유의 짠돌이 문화에 체화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을 아끼는데는 귀신이지만,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에 대해서는 결정해본 적이 거의 없는 인물들이다. 애초에 롯데그룹 자체가 그동안 내수 소비자 시장만으로 먹고 살았던 기업이었기에 원가절감 등 저비용을 위한 고민만 했을 뿐, 신사업 '투자'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필요치 않았던 기업이었다.

최근 모그룹에서 구단에 남부럽지 않게 자금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고위층들이 무능하고 돈을 제대로 쓸 줄을 몰라서 필요한 전력은 영입하지 않고 크게 필요치 않는 자원을 시세보다 수십억원의 웃돈을 줘가면서 데려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내부 FA 선수에게 매몰차게 대하며 그들을 붙잡지 않는 것이 전력의 큰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야구에서도 각종 미세한 통계 지표가 발달한 덕분에, 통계나 경영학, 공학 지식이 뛰어난 사람은 선수출신들보다 훤씬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야구선수들을 평가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원래 야구와 관련없이 통계나 공학,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야구단 단장을 맡고 있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일반 야구팬들 중에서도 숫자에 밝은 사람들은 꽤나 전문적인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롯데 프런트에서는 이런 전문적인 분석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구단 실무진들이 영어 서류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외국인 선수들과 계약 관련 소송까지 가고 있다. 처음에는 린드블럼에게 롯데 구단이 사기를 쳤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린드블럼이 패소하면서 영어 계약서 해석을 잘못했다는 롯데 구단의 어처구니 없는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전현직 단장의 학력을 보면 영어에 까막눈이라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렇게 단장 이하 프런트들이 영어 해석에 죄다 까막눈들이니 세이버매트릭스 지표 같은 것을 습득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2010년대 이후에도 야알못 무뇌아 프런트 답게 1차지명 및 고교 스카우트 픽에서 삽질을 연속하고 있다. #

이처럼 롯데 프런트는 아직도 비합리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년전처럼 점쟁이 말을 믿고 구단을 운영하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2.8. 막장 행각

1987년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성 모 감독님 문제로 박 전무를 만나러 구단 사무실에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전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박 전무가 아버지를 본체만체 하다가 사무실을 나가며 한마디를 했단다. 그게 뭔지 아나? 'X신 꼴값하네'였다. 다리를 저시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큰 모멸감을 느끼셨다. 그때까진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께선 내가 상처받을까 우려해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누구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리가 불편한 내 아버지한테 구단 책임자란 사람이 어떻게 'X신'이란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21]
최동원

하다못해 경영실력만 막장이면 동정이라도 가는데, 임원진 전체가 인간부적격자들이라 최동원의 아버지에 대한 욕설이나 토사구팽 사건, 故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때도 재판까지 가서 등 떠밀리듯 보상금을 지급한 것등 돈문제라고는 볼 수없는 오만 사건들을 터트렸다.[22] 2008년 야구판 황금기 이전에는 시설이나 환경면에서도 덜 떨어진 수준으로 방치, 임재철은 한화를 떠나면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한화는 얼마나 안 좋았길래

비밀번호 8888577 찍던 2002년 11월에는 KBO 총재 박용오로부터 "관중이 찾지 않는데도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부 구단이 바로 프로야구 부흥의 걸림돌이다. 내년 시즌부터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으로 관중 동원력을 상실한 프로야구단의 경우 구단주 총회의 의견을 모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는 야구판 전무후무한 비공식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수준 미달의 운영 실력을 보여주었다. 기사 나중에는 9,10번째 구단 창단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등의 사건으로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닥 이미지는 나아진 게 없다. 정작 장병수 전 사장이 반대 근거로 제시한 고교야구 팀이 적다는 의견과 달리 NC 다이노스와 kt wiz 창단이후 고교야구 선수풀이 크게 확장 되었다. 자세한 것은 장병수 문서 참조. 그런데 9, 10구단 반대를 두고 롯데 프런트의 이미지때문에 '밥통 줄어들까봐 그러는거 아냐?'라고 마냥 까대는 타팬들이 많은데, 장병수 사장의 명분을 들어보면 맞는 말도 상당히 있다. 설명한 대로 롯데 프런트라서 안 믿는 것일뿐 결국 NC는 창단된 지 1년도 안된 2012년 1월경 신구장 건설을 놓고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고래싸움에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삼성 구단도 만만찮게 반대의 소리가 컸지만 롯데 프런트의 까임 수준에 묻혔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그나마 21세기 들어서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사실은 모두 거짓이었고 2014년에는 국회의원이 나설 정도의 초대형 범죄를 저지른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문서 참조

여담으로 치바 롯데 마린즈도 NPB 12구단 가운데 프런트가 최악인 구단중 하나인데 치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루세 요시히사가 2014년 시즌 종료 후 구단의 개혁을 잔류 조건으로 걸며 FA 선언을 했는데, KBO나 MLB와는 달리 NPB에서 FA 선언이란 소속구단과의 결별을 의미하므로[23], 프런트가 마음에 안들어 이적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고,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24]

때문에 야구팬들은 '롯데라는 기업 자체도 쓰레기인데 야구단도 그에 지지 않는다.'며 마구마구 까고 있는 실정, 실제 롯데 그룹 자체가 오만 경영비리로 첨철된 기업인걸 감안하면 이 비리적 문화가 야구단 운영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2.9. 2012년 이후의 눈속임 행보

2012년 이후 프런트가 많이 달라졌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많은 팬들이 구단에 긍정적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대부분 결국 눈속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롯데가 2008년 이후 암흑기에서 벗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텅텅 비었던 사직구장이 미어터지게 되었다. 롯데 구단의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매년 경신했다. 상승하는 성적과 더불어 이대호, 강민호, 홍성흔, 김주찬 등 간판 선수들의 인기도 치솟기 시작했다. 이에 롯데 프런트의 생각도 달라졌던 것이다. 즉 적당히 투자를 해서 포스트시즌 싸움을 할 정도로만 성적이 올라도 관중수와 매출이 폭발한다는 점을 채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롯데가 야구단에 투자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롯데의 투자는 구단의 성적 향상보다는 마케팅 용도에 철저히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2012년 이후 롯데가 영입한 FA들을 보면 모두 이제는 전성기를 지나 하향세에 접어드는 선수들이었지만 과거 성적과 명성으로 상품성만큼은 좋았던 선수들이었다. 롯데가 인기가 높았던 이대호, 민병헌 등 스타급 선수들을 시세보다 웃돈을 주고 샀다. 그밖에 준척급 선수들도 제법 많이 영입했는데, 준척급으로 영입한 선수들은 불펜 투수들, 특히 SK 출신 불펜 투수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롯데의 리즈 시절인 로이스터 시절 리그에서 왕조를 구축했던 SK가 롯데에 특히 강했고, 롯데가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타이밍에 번번히 SK가 롯데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 롯데는 김성근의 SK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25] 때문에 SK 불펜 투수들에 대한 평가는 롯데 팬덤에서 유독 더 높았는데, 당시 거의 경외심과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영입한 선수들은 실제로 하락세에 접어들던 선수였기 때문에 2012년 이후 롯데가 영입한 선수 치고 몸값을 제대로 했다 할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 2012년 이후 롯데의 FA는 모두 실패했던 것이다. 이런 실패는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롯데가 시세보다 높은 금액에 선수를 영입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 돈도 아니기 때문에 비싸게 주고 샀던 싸게 주고 샀던 일단 돈을 써서 선수를 영입한 것은 안쓰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반응을 보이며, FA를 영입할 때마다 팬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롯데 프런트에 대한 팬들의 평가도 수년간 매우 우호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미 우려했듯이 롯데가 FA로 영입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돈 값을 제대로 못했다.

2012시즌
전년도까지만 해도 선수들과 연봉 싸움으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언론 기사로 실시간 생중계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롯데 프런트는 2012시즌을 앞두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2시즌을 앞두고 롯데 프런트는 웬일로 이승호, 정대현을 영입하는 등 FA에서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부었다. 이에 팬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장병수 사장은 '20년 동안 우승 못하면 프로구단으로의 존재 이유가 없다.' 등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로 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그리고 결국 해체하게 됐... 만약 2019년까지 한국시리즈에 못올라가면 준우승도 20년간 못한 팀이 된다 그러나 이승호와 정대현은 SK 시절 김성근에게 살려조급의 혹사를 당한 대표적인 선수들이었고, 이미 혹사로 인한 노쇠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정대현은 롯데 영입 직전에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가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계약에 실패하고 귀국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둘은 모두 롯데에서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적지 않은 롯데 팬들이 프런트의 이런 눈속임에 열광했지만, 곧 시궁창인 현실이 눈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FA로 영입된 이승호는 첫해부터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2군을 오가다가 1시즌만에 20인 외 선수로 불려 NC로 떠났다. 20인 선수로 나가지 않았더라도 당시 사실상 팀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정대현은 아예 드러누웠다.

2013시즌
2012시즌 후 FA 시장에서는 팀 전력의 핵심인 김주찬, 홍성흔을 놓쳤다. 하지만 팬들은 오히려 할만큼 했다며 프런트를 칭찬했고, 보상선수로 홍성민, 장성호, 김승회를 데려오자 잘 했다면서 감탄하며 롯데 프런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26] 팬들은 이 모든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병수 대표가 2010년 부임하면서 구단의 우승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면서 진심으로 프런트를 응원했다. 그런데 결국 20년 채웠다

2012시즌을 끝으로 양승호 감독이 물러나자 팬들은 우승을 할 수 있는 명장의 영입하거나 제리 로이스터의 복귀를 원했다. 하지만 롯데 프런트가 택한 감독은 감독 경력 내내 8개팀 중 6~8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무능한 김시진이었다(2012년 11월 5일). 일부 팬들이 분노하기도 했지만, 다수의 팬들은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한 때 롯데 선수였던 김시진을 환영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2년 12월,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의 일부 갤러들이 프런트진에게 감사와 격려의 의미가 담긴 떡 조공을 하는 초유의 사태 일이 일어났다.[27]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결국 팬들의 태도도 돌아서고 말았다. 김주찬, 홍성흔 등 팀 전력의 핵심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나가버린 여파로 팀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실로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운 김시진 감독의 삽질이 이어졌다. 돈독 오른 프런트의 모습들에 팬들은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스타 선수들이 빠져 나가고 팀 성적이 떨어지자 관중수는 급감했다. 시즌 중반이 되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이처럼 지난 연말 조공을 한 것을 참회하거나 조롱하는 반응이 대부분을 이루게 되었다.(...)

2014시즌
실망스러웠던 2013시즌이 끝나고 팬들의 팬심도 차갑게 식었다. 강민호의 FA 계약을 앞두고 삼성팬들은 삼민호라 부르며 강민호의 이적을 기정사실화했고, 롯데팬들은 강민호 몸값이 카더라로 80이라는 추측이 나도는 상황에서 막장 꼴런트가 잡을 리가 있겠냐면서 그냥 그 돈 2군에 써서 장성우, 용덕한을 키우자는 입장과 그래도 강민호인데 잡아야 하지 않겠냐며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프런트가 강민호를 75억+α[28]라는 KBO 역대 최고 금액[29]으로 강민호를 팀에 눌러 앉히자, 팬들은 이때까지 병신짓으로 선수들 못잡는다고 까이던 롯데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며 감격했다. 롯데팬들은 강민호를 잡자마자 한마음으로 롯데 프런트에게 감사인사를 남겼다. 꼴렐루야

만일 여기서 FA라도 잡는다면 다시 갱생했다며 용서받을 분위기. 롯데팬들은 내심 정근우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SK와 정근우의 계약 난항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카더라. 그런데 정근우는 결국 한화로 가버렸다. 그래서 까이긴 까였으나...

강민호에 이어 강영식마저 우선협상 마지막날에 4년 17억에 계약을 완료했으며 유먼, 옥스프링마저 재계약 성공, 또한 FA로 풀린 최준석을 34억원으로 영입함으로써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병타자 히메네스도 영입하였다. 꼴빠 롯데팬들은 일제히 "우리 꼴런트가 달라졌어요"를 외치고 있다. 알고보니 스토브리그에서만 제정신이라 카더라 물론 조금더 좋은 영입을 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게 어디냐는 반응이었다.

이후 연봉계약에 난항을 겪는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또 다시 이대호 연봉조정사건이 재현되는듯 했으나 손아섭에게 첫 협상자리에서 1억 9천만원을 인상한 연봉 4억을 제시, 손아섭이 수용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한번 칭찬받는 중. 배스트 댓글이 월드콘 많이 먹고 있다. 이 와중에 댓글은 자일리톨을 시작으로 롯데리아, 호텔롯데, 롯데캐슬까지 나오고 있다

2014시즌
최하진 사장 취임 이후에도 투자가 이어졌다. 물론 전력 강화에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고, 대부분 돈벌이를 위한 마케팅 목적의 투자였다. 하지만 팬들은 최하진 사장이 적극적인 투자 외에도 다면적으로 야구단에 신경쓴다면서 칭찬 일색이었다.

2014년 1월 7일 기사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을 만든다고 한다.

2014년 1월 20일, 상동구장 증축공사를 완료하여 숙소 수용인원을 늘리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였다.

사도스키가 MLB 구단을 상대로 공개 테스트를 치루고 싶었는데 치룰 장소가 여의치 않자 롯데에서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 불펜 피칭장을 대여해줬다고 한다. 기사

2014년 6월 17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조성환을 코치로 육성하면서 레전드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확실하게 보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연말에 최악의 초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참조.

2015시즌 이후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의 여파로 롯데 프런트 수뇌부가 교체되었으나 이후 초보 감독을 연이어 선임하는 삽질에 팀의 성적은 하위권을 전전하며 팬들의 팬심은 차차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2015시즌 이후 프런트의 삽질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나마 팬들에게 칭찬받은 것이 이대호의 영입이라지만 이또한 현재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2017년에는 초판 엄청나게 욕을 먹다가 막판에 가을야구 진출로 그럭저럭 괜찮은 평으로 바뀌었다가... 린드블럼의 협상 결렬과 강민호, 황재균의 이적건에서 변함없이 고압적인 태도, 거짓말과 언플을 늘어놓으며 변함없는 막장 프런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SBS의 뉴스 보도를 통해 모든 야구팬들에게 그 모습이 비춰진 것은 덤.

2019년 상황은 팬들을 더더욱 분노케 만들고 있다. 검증된 여러 우승 감독들을 놔두고, 이번에도 단장에게 고분고분할 것으로 예상되는 프런트 친화적인 양상문을 감독으로 재영입했다. 지난 시즌 FA로 나온 양의지를 팬들은 기대했지만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2019년은 팀은 더더욱 성적이 추락해지면서 2019년 6월 3일 헨리 소사가 KBO재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한번 기대했지만 또 놓치고 말았다. 팬들의 분노와 언론에서 지적을 하니깐 2019년 6월 3일 프런트 조직개편으로 눈치를 보면서 바꾼게 이정도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운영팀장이 편성전력팀장으로 가고 스카우트 팀장이 운영팀장으로 가는 등 서로 책상을 바꿔 앉은 데 불과하다.(...) 2019년 6월 9일 투수 제이크 톰슨, 카를로스 아수아헤를 웨이버 공시했다고 겨우 움직일 정도다. 이윤원 現 단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양상문 감독도 까이고 있지만 감독만 바꿔서는 소용이 없고 근본적으로 단장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팬들도 깨달아가고 있다.

2.10. 프런트의 현장 개입과 철밥통 코치

2012년 양승호 경질후 옐로우 카드 - 롯데 높은분들…'단디해라, 쫌!!'

2000년대 초반의 문제가 투자 부족과 관심 결여였다면, 2008년 이후에는 프런트의 지나친 현장 개입으로 인한 선수단 및 코치진의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직접 데려왔을 때는 이런 논란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구단주 대행체제로 다시 회귀하면서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양승호 감독 부임 당시 권두조 수석코치를 프런트에서 꽂으면서 불거졌다. 권두조 코치가 양승호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야구관도 다르면서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후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학교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하자 권두조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다시 권영호 1군 수석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다시 1군 수석코치로 돌아왔고, 권영호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내린 뒤 1주일만에 경질(…)하는 막장 운영을 보여줬다. 이것은 김시진 감독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것이 중론.= #

이후 2014년 5월 27일 항명사태가 일어나 권두조 코치가 사임하였다. 여기서 이후 보도에 따르면 권두조 코치가 프런트의 입장을 들먹이면서 감독과 선수단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고 하며,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한 코치가 이후 스카우팅 팀으로 이동하는 회전문 인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루이스 히메네스의 대체용병을 찾는 일이 꼬여버리는 등 프런트에서 특정 코치진을 두둔하는 문제는 상당했다. 상세한 부분은 권두조 문서 참조.

이후 김시진 감독을 해임하려 했으나 최하진 사장의 의중을 무시하고 프런트에서 감독경질을 단행하려다 사장과의 충돌로 무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시진 사퇴미수사건

이 일로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과 이문한 부장을 축으로 한 프런트의 마찰, 최소한 소통부재가 표면화되었다. 팬들은 김시진 감독 경질 소문에 호응하는 분위기였으나, 이후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김시진 감독이 물러난 이후 후임 감독을 두고 프런트 내부에서 충돌이 있은 뒤, 선수단과 코치진, 프런트 간의 심각한 갈등의 골이 표면화되었고, 봉합되기는커녕 너 고소까지 나오는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프런트는 이 갈등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종운 감독을 내정함으로써 1인 시위에 나선 팬들의 분노까지 더 가중시키고 있다.

끝내 이런 기사도 나왔다. 비교체험 극과 극

파일:attachment/롯데 자이언츠/그거해봐그거.png
이제는 도긴개긴이다.

해당 기사가 나온후 박동희가 대놓고 저격기사를 내놓았다. 충격과 공포의 롯데 CCTV 불법 사찰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법행위를 구단 고위부가 지시를 한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문서 참조. 이 사건으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 인사들 중 배재후 前 롯데 자이언츠 단장, CCTV 사찰을 지시한 최하진 前 롯데 자이언츠 사장은 사임을 표명했다.

2015년 8월 31일, CCTV사태 이후로 남아있던 프런트 인사들은 신동주(기업인) 라인으로 분류되었던 신동인 前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 사태에 사임하면서 결국 모두 프런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롯데는 이후 차기 구단주 대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2.11. 원인

앞으로는 절대 우승하지 마라. 꼴찌는 하지 말고 6팀 중 4등만 해라.
롯데 오리온즈가 1974년 팀 창단 이래 최초로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여 선수단이 연봉 인상을 요구하자, 신격호 회장이 남긴 말.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신격호 회장이 이 망발을 남긴 후 4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롯데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는 귀신같이 4위 내외의 성적을 고수하며 우승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가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구단 수뇌부가 우승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이 연봉 올려달라는 소리 할 바에는 우승하지 말아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롯데 자이언츠가 84년, 92년에 우승했을 때도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은 대기업 중에서도 회장의 카리스마가 강한 기업에 속한다. 회장의 무언의 표정 하나로도 그룹이 뒤집히는게 한국 대기업의 생리인데, 기업 총수가 저렇게 직설적인 말을 했으니 롯데 프런트 실무진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팀을 운영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선수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봉이다. 특히 롯데 선수들은 역대로 연봉에 있어서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한 편이다. 롯데가 연봉 협상 문제로 시끄러웠던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80~90년대 롯데와 선수들의 연봉 협상 과정에서의 갈등은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최동원 90만원 사건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주전 선수들이 연봉 협상으로 구단과 큰 잡음이 있었다. 여기에는 윤학길과 같은 점잖은 이미지의 선수들도 모두 포함된다. 롯데가 짠돌이 이미지가 강하지만 80~90년대에도 연봉이 아주 박한 팀은 아니었다. 삼미, 해태, 청보, 태평양, 쌍방울 같은 모기업이 영세한 기업이 있었기에 롯데의 연봉 수준은 중간 정도는 됐다. 하지만 연봉 협상에서 롯데 선수들이 항상 기준으로 삼았던 팀은 삼성 라이온즈였다. 물론 삼성은 항상 우승권에 머물 때가 많았고 롯데는 하위권일 때가 많았다는 큰 차이가 있었다. 롯데의 연봉이 결코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승권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해태보다는 좋은 처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롯데 선수들은 시궁창인 현실과 달리 그 꿈과 이상 만큼은 항상 원대하게 품었던 것이다. 결국 총수의 의중에 따른 짠돌이 프런트와 객관적인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콜라보를 이루며 매년 전쟁과도 같은 연봉 마찰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롯데 프런트는 결국 연봉 올려달라는 소리가 안나오게 하려면 팀이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구단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아버리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군 우승을 원하지 않는 롯데그룹 수뇌부의 지향성은 롯데 프런트의 뼛속 DNA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롯데 프런트는 8888577 비밀번호를 찍는 동안에도 어떠한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수년간 지켜보다 결국 참다 못한 박용오 KBO 총재가 나서서 롯데 구단이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제재 혹은 퇴출까지 고려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협박성 발언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롯데 프런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4년 연속 꼴찌라는 금자탑을 쌓은 후 팬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을 때 즈음 마지못해 움직이는 시늉을 하여 성적을 577로 끌어올렸을 뿐이다. 이후에도 적당히 좋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며, 팬들의 성화가 고점에 달하면 그제서야 감독을 교체하거나 돈을 푸는 등 뭔가 움직이는 생색을 낸다. 그러나 그런 방향성이 결국 우승하려는 목적이 아니기에 팀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악순환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면 직후 경질되는 수순을 반복한다. 두 차례 우승을 거둔 강병철이나 3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그러하다. 우승을 이룬 송정규 단장도 우승 직후 짤린 바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 우승 엠블럼을 만들지 않은 유일한 구단이다. 1984년, 1992년 모두 우승 엠블럼이 없다. 한국시리즈 우승 엠블럼이 제작되지 않은 해는 이 두 해가 유이하다.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1985년조차 우승 엠블럼이 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롯데 프런트가 막장일 정도로 게을러서 우승 엠블럼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로 무서운 이유가 있다. 롯데 프런트가 엠블럼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다름아닌 절대 해서는 안될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롯데 프런트는 KBO 리그의 관례이자 전통인 우승 엠블럼 제작을 거부하면서까지 우리는 절대 우승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회장님께 우리가 정말 원하지 않았는데 실수로 우승해 버리고 말았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면서 스스로 자숙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이다.

신격호 회장의 저 발언은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 나온 발언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롯데그룹에 있어서 '연봉 인상'이란 그룹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롯데는 서비스업, 유통, 제과 등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어떠한 기술력도 필요 없이 원초적인 저비용을 통한 수익구조를 가진 기업이다. 때문에 롯데는 저비용을 위해 철저히 저임금을 추구했다. 실제로 롯데는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으로 유명한 기업이었으며, 공채에서 정규직 사원을 뽑을 때도 지방대나 고졸 출신을 대거 채용했다. 저비용, 저연봉 구조는 롯데그룹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할 금과옥조와도 같은 것이다. 만약 야구단의 연봉을 높여준다면 다른 계열사 노조에서도 연봉 인상 요구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며[30] 이는 롯데그룹의 수익 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하여 롯데그룹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때문에 신격호 회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가 그토록 연봉 인상에 대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다. 신격호 회장이라 한들 롯데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다. 김경홍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신격호 회장은 개인적으로 야구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야구를 좋아한다고 해도 연봉 인상 문제 만큼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롯데그룹인 것이다. 그래서 연봉 인상을 요구할 바에는 절대 우승하지 말고 꼴찌나 면하라고 한 것. 꼴찌는 하지 말고 4등만 하라고 한 것은 야구단에 최소한의 애정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꼴찌를 하게 되면 그룹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6팀 중 4등 정도만 해서 기업 이미지는 보호하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결국 롯데 팬들 입장에서는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차피 우승을 포기한 팀이니 백날 응원해 봐야 소용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롯데그룹이 야구판에서 떠나는 길 밖에는 없고, 실제로 암흑기 때 롯데 팬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결코 순순히 야구단을 포기할 리는 없다. 롯데 자이언츠는 프로야구 전 구단 중에서 거의 항상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구단이며 나아가 야구판에서 흑자를 창출해 내는 구단이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사업을 자발적으로 순순히 접을 기업은 세상에 없다. 롯데 구단은 갈수록 돈벌이에 더욱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롯데가 야구단에 돈을 쓰기 시작한 것은 롯데가 그동안의 짠돌이 짓을 회개하여 개과천선했기 때문이 아니다. 적당한 돈을 투자하여 팬들의 환심을 사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고 유니폼을 사게 하여 더 큰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조금은 더 세련된 전략으로 바뀐 것일 뿐이다. 몇년 전부터 롯데가 갑자기 FA에서 큰 돈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리하여 영입하는 선수들은 이대호, 채태인, 민병헌 등 팬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사랑을 받는 인기 선수들이다. 이들이 팀에서는 중복 자원이라 팀 전력 강화에는 큰 플러스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롯데가 이들을 거액에 영입하는 것은 팬들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에 돈벌이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 구단은 이대호의 복귀 효과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물론 전력 측면이 아닌 마케팅 측면에서. 롯데그룹에 대한 초강력 경제제재는 안되나요? 아니면 그냥 국민청원 올려야 하나요?

스포츠란 정정당당한 방법을 통해 최선을 다해 승리, 그리고 나아가 우승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다. 하지만 스스로 우승을 쟁취하지 아니하려는 팀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롯데인 것이다. 신격호 회장의 "절대 우승하지 마라"라는 발언은 스포츠의 존재 이유와 팬들이 스포츠를 응원하는 이유를 완전히 배신하는 최악의 발언이다. 이 발언은 본질적으로 승부조작과 다름없는 매우 심각한 발언이다. 우승을 하지 않으려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동은 승부조작의 범주에 충분히 들어간다.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승부조작은 이기기 위해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는 승부조작보다 더 최악의 행위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동이야말로 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야구계의 발전에 역행 하며 단지 모기업의 이득 만을 취하려는 구단은 야구계에서 퇴출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로 롯데가 암흑기에 있을 때 KBO가 롯데가 계속 투자를 안하고 손을 놓고 있으면 제재 혹은 퇴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KBO가 어떠한 실질적인 제재를 취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긴 했으나 이걸 걸고 넘어지면 롯데 입장에서는 구단 일선의 무능 탓으로 돌려 버리면 땡이다. 제재를 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물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잡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위의 발언의 경우 그냥 와전된 말이라고 해명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다고 2000년대 초반처럼 단순히 무능을 가지고 시비를 걸기도 뭣한 것이 작정하고 퇴출을 시키려면 차기 구단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런 움직임이 보이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미봉책 내세우면 KBO 측에서도 딱히 어쩌지 못하기[31]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격호 사후 후임 회장이 우승에 관심을 가지거나 물론 그렇게 우승해도 그 이후엔 아무도 모른다. 구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자이언츠에게는 뭔 짓을 해도 답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원천적인 부조리를 모른 채 단디하라고 하는 롯팬들만 불쌍하다. 진정한 불매 운동의 대상은 이놈들이다.
[1] 1989년 6월 27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박종환 전무와 동반 사표 제출[2] 취임 당시 기준[3] 2019년에 KBS 뉴스에서 근황이 나왔는데 당시 단장 경험을 토대로 롯데 구단의 저조한 순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당연한 비판이라는 의견, 오랜 기간 조용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입을 여냐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4] 현 한국해양대학교. 당시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전 단과대학이었다.[5] 현 대구대의 전신. 당시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전 단과대학이었다.[6] 현 가천대의 전신. 당시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전 단과대학이었다.[7] 취업이 엄청나게 잘되서 웬만하면 여러 기업에 동시에 취업이 되던 80 ~ 90년대 시절에는 중소기업 수준의 박봉을 주던 롯데는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기피하던 회사였고, 지방대 출신이나 고졸이 정규직으로 주로 입사했다.[8] 지금은 서울에서 은행에 취업하려면 서울대 출신이거나 집안이 좋지 않으면 들어가기조차 거의 힘들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은 주로 상고 출신 고졸들이 입사하던 곳이었고, 아니면 지방대 상대 출신들이 입사하곤 했다. 당시 은행 급료는 지금처럼 좋지도 않았고, 창구에서 고객들을 접객해야 하는 은행 업무 특성상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은행 취업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었다. 은행 실업팀에서 근무하던 선수들도 은퇴하고 은행에 근무했다. 김응용, 김성근도 선수를 은퇴하고 지도자가 되기 전 한때 은행에서 근무했다. 김응용, 김성근은 지도자로 영입되면서 은행을 관두었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의 경우 은행에 계속 있다가 지점장까지 하고 은퇴한 경우도 많았다. 기사 - [은행원] (40) 운동선수출신..점포장급만 모두 100여명 90년대 이후 은행원 연봉이 엄청나게 높아지면서 고교나 대학 야구 감독으로 가면서 은행을 그만둔 경우보다 그냥 은행에 남아 있었던 이들이 현재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9] 부산고 3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재능은 있었다.[10] 가천대는 지금은 수도권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낙후된 성남에 있는 지방대로 치부되어 지금보다도 훨씬 매우 낮은 입결을 보였다. 부산의 동아대, 동의대, 대구의 영남대, 계명대, 광주의 조선대 같은 지방 대학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비슷한 예로 성균관대 자연계가 수원으로 이전하고 나서 지방대 취급을 받으며 입결이 폭망하여 90년대까지 동국대보다 낮은 커트라인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분당, 수지, 영통 등 신도시 건설, 수원 삼성전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지하철 노선 연장, 경부고속도로 확장, 광역버스 노선 확충 등으로 수원, 성남, 용인 지역 대학교의 입결이 급상승하였다.[11] 백인천의 경우 타격 인스트럭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격 인스트럭트는 보통 비시즌 단기 임시직인 경우가 많으며, 지도자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12] 외야수를 하면서 감독을 겸했다.[13] 프로야구 출범 전 실업야구의 전성기 때만 해도 선수들의 평균 은퇴 시기는 20대 후반이었고 30세까지만 뛰어도 오래 뛴 축에 속했다. 30세가 넘어서도 뛴 경우는 대부분 플레잉 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사실상 은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14] 플레잉코치 포함 코치 경력 1년 포함[15] 밀워키 블루어스 감독대행이 롯데 감독 부임 전 마지막 경력[16] 미국 메이저리그(MLB)[17] 롯데 자이언트는 최동원에게 5,000만 원의 계약금을 주기로 했는데 먼저 현금 2,100만 원을 주고 나머지 2,900만 원은 6개월 어음으로 주기로 했다. 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최동원은 믿었으나, 그가 죽을 때까지 롯데는 그 어음을 결제 해주지 않았다.[18] 참고로 최동원 선수의 부친인 故최윤식 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다리를 잃어서 의족을 차고 다녀야 했다. 미국같은 나라였다면 사회생활 자체가 파탄날 발언이다.[19] 장원준은 88억을 제시 받았으나 84억을 제시한 두산으로, 강민호는 80억을 제시 받았으나 마찬가지로 80억을 제시한 삼성으로 이적했다.[20] 처음엔 카톡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하겠다"며 구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하려고 하니 구체적인 사항은 내일 선수단 소집일에 만나서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21] 최동원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다리는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참전용사 단체의 줄소송을 맞았을만한 사건.[22] 임수혁 사건이 잠실 야구장에서 롯데와 LG의 경기 도중 벌어졌고 LG구단 내부 의사가 오진해서 발생한 사태이므로, 엄연히 LG 구단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LG도 보상금 지급 재판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23] NPB에서는 구단 잔류시 FA 선언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연봉 협상으로 몇 년씩 따로 계약을 하는 게 관례화되었다.[24] 그런데 나루세는 하락세인 선수라 구단에서 그를 잡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해서 현재 나루세는 그냥 먹튀 그 자체인 행보를 보이는 중.[25] 롯데도 당시 강팀이긴 했지만 SK와의 전적을 보면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팀 맞나 싶을 정도로 SK에 처참하게 당했음을 알 수 있다.[26] 그리고 양승호가 입시비리로 감옥에 가면서 이것 역시 신의 한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건 그냥 얻어 걸린 거다(...).[27] 중간에 보이는 모 갤러가 쓴 멘트처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감개가 무량했을듯...[28] 마이너스 옵션은 아예 없다.[29] 이전 기록인 심정수의 60억을 아득히 뛰어넘는다.[30] 물론 야구 선수들이 개인 사업자임을 내세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일본에도 구단이 있기 때문에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31] 아예 우격다짐으로 나가면 규정 위반이 필연 이라 소송 걸고 뭐하면 별 소득 없이 피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