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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회 초에 누구를 대타로 내보내야 하나 하고 덕아웃을 둘러보는데 수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수혁이의 눈을 보고 있으니 마치 "감독님, 제가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대타, 임수혁."이라고 말했다.
김명성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99년 10월 20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 간의 KBO 리그 1999 시즌 플레이오프 7차전. KBO 리그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이자 롯데 팬들의 영원한 바이블이다.[1] 아직까지도 후술할 이 경기 요약 멘트를 '롯기도문'이라고 할 정도다. 물론 반대로 삼성 팬들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흑역사다.수혁이의 눈을 보고 있으니 마치 "감독님, 제가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대타, 임수혁."이라고 말했다.
김명성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
이 경기를 상징하는 말인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는 PSB(현 KNN)에서 제작한 플레이오프 7차전 하이라이트 영상(자세히는 1999 시즌 결산 특집 프로그램)에서 나온 대사이며, 해당 영상과 이 경기를 압축하는 대사로 유명하다. 내레이션은 황범 캐스터가 맡았다.
2. 경기 전
좌로부터 펠릭스 호세, 박정태, 마해영[2] 뒤에 20번은 임수혁 |
대구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임창용을 상대로 손인호가 동점 홈런을 때려내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고, 연장 12회까지 가는 끝에 박석진을 상대로 스미스의 끝내기 안타로 삼성이 5:4로 승리를 거두며 산뜻하게 시작했다. 2차전에서도 롯데는 선발 주형광이 4회에 4실점을 내며 무너졌고, 반대로 삼성은 찰스 스미스의 투런 홈런 등 타선이 터지면서 6:2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2연승을 달렸다. 이어 사직에서 열린 3차전에선 4회에 대거 4점을 뽑아낸 롯데 타선에 힘입어 10:2로 롯데가 승리를 거두며 반격을 준비했지만 4차전에서 노장진의 호투와 김한수, 김태균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9:6으로 승리하면서 롯데에 불리하게 흘러갔다.[4]
많은 이들이 이미 승부가 결정났다고 생각했고 5차전은 TV 중계 방송도 없을 정도였다. 한 경기만 이기면 올라가는 삼성과 한 경기만 지면 탈락하는 롯데의 맞대결은 9회 말에 결정났다. 9회 말 삼성이 5:3으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삼성의 마무리는 임창용이 버티고 있었다. 이때 호세가 임창용의 볼에 의도적인 스윙을 하면서 2스트라이크 2볼이 되었고, 5구째 공을 힘껏 밀어쳐 좌측 중앙 담장을 넘기는 역전 끝내기 쓰리런[5]이 터지며 승리를 기록했다. 그 후 열린 6차전에서 박석진의 6이닝 퍼펙트 피칭을 앞세운 롯데와 박석진이 내려간 롯데의 불펜을 상대로 5득점에 성공한 삼성의 치열한 공방 끝에 마무리로 올라온 에밀리아노 기론이 꾸역꾸역 막아내며 6:5, 1점차 롯데의 승리로 시리즈는 3:3 원점이 되었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한화 이글스[6]의 상대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많은 이들의 이목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으로 향했다.
3. 경기 내용
3.1. 선발 라인업
롯데 자이언츠 | 삼성 라이온즈 | ||||
타순 | 선수명 | 포지션 | 타순 | 선수명 | 포지션 |
1 | 김응국 | DH | 1 | 빌리 홀 | CF |
2 | 김대익 | CF | 2 | 김종훈 | RF |
3 | 박정태 | 2B | 3 | 이승엽 | 1B |
4 | 펠릭스 호세 | RF | 4 | 찰스 스미스 | DH |
5 | 마해영 | 1B | 5 | 김기태 | LF |
6 | 박현승 | 3B | 6 | 김한수 | 3B |
7 | 조경환 | LF | 7 | 정경배 | 2B |
8 | 강성우 | C | 8 | 김태균 | SS |
9 | 김민재 | SS | 9 | 진갑용 | C |
SP | 문동환 | SP | 노장진 |
1999 플레이오프 7차전 / 롯데 자이언츠 선발 라인업 | ||||
LF | CF | RF | ||
SS | 2B | |||
3B | SP | 1B | ||
DH | C | |||
1999 플레이오프 7차전 / 삼성 라이온즈 선발 라인업 | ||||
LF | CF | RF | ||
SS | 2B | |||
3B | SP | 1B | ||
DH | C | |||
3.2. 스코어보드
1999년 10월 20일 수요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R | H | E | B |
롯데 | 문동환 | 0 | 0 | 0 | 0 | 0 | 2 | 1 | 0 | 2 | 0 | 1 | <colbgcolor=#dcdcdc,#222222> 6 | 11 | 1 | 4 |
삼성 | 노장진 | 0 | 0 | 0 | 2 | 0 | 0 | 0 | 3 | 0 | 0 | 0 | 5 | 9 | 1 | 4 |
중계방송사[7]: KBS 위성2TV | 캐스터: 황량 | 해설: 하일성 한국스포츠TV | 캐스터 : 김성주 | 해설 : 이효봉 | 캐스터 : 권성욱 | 해설 : 박영길[8][타사중계7] |
- 결승타: 김민재(11초 1사 2루서 좌중간 2루타)
- 승: 주형광
- 패: 임창용
- 홈런[10]: 이승엽(4말 1점, 8말 1점), 김기태(4말 1점), 펠릭스 호세(6초 1점), 마해영(6초 1점), 김종훈(8말 2점), 임수혁(9초 2점)
- 심판 : 주심 임채섭/1루 조종규/2루 최수원/3루 이규석/좌선 최규순/우선 장진범
3.3. 경기 진행
이승엽과 김기태가 홈런을 하나씩 쏘아올리며 2:0으로 삼성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를 펠릭스 호세가 노장진을 상대로 쏘아올린 중월 추격 솔로포로 원점으로 가져오는 듯 했다. 그러나 홈런을 친 호세가 3루를 돌 즈음 페트병 하나가 호세의 옆을 비껴갔지만 호세는 이를 참았는데, 홈인하고 들어오던 도중 날아온 달걀 하나가 하필이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고, 이에 빡친 호세는 헬멧을 집어던지려는 시늉을 했으나 마침 옆에 있던 동료 선수들의 만류도 있고 해서 일단은 참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관중에게 배트를 투척하는 펠릭스 호세 |
대구아재: 호세야! 출출하제? 여 라면 한사발 묵으라!!
펠릭스 호세: 대구아재요! 고맙심더! 방망이 좀 가가소!!
샤다라빠의 만화에서 패러디가 된 내용인데, 사실은 대구 아재들이 호세에게 컵라면을 집어던지고 욕설을 하는 무개념한 행태를 비꼬는 대사다.[11]#
그러나 호세의 도발성 제스처에 흥분한 관중들이 오물, 페트병, 심지어 컵라면 국물까지 투척하며 롯데 선수단이 뒤집어쓰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한 호세가 덕아웃에서 뛰쳐나와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투척하며 임채섭 주심에게 퇴장 명령을 받는다. 당일 뉴스데스크를 보면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호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구 아재가 나온다. 당시 중계방송을 담당했던 KBS 위성1TV의 황량 캐스터와 하일성 해설위원과 한국스포츠tv(지금의 SBS 스포츠) 김성주 캐스터와 이효봉 해설위원은 대구구장의 이러한 수준낮은 관람 질서를 보인 것에 대해 독설을 했었다. 특히 이효봉 해설위원은 그런 팬들은 경기장에 영구적으로 출입 금지시켜야 한다고 일침했다.펠릭스 호세: 대구아재요! 고맙심더! 방망이 좀 가가소!!
샤다라빠의 만화에서 패러디가 된 내용인데, 사실은 대구 아재들이 호세에게 컵라면을 집어던지고 욕설을 하는 무개념한 행태를 비꼬는 대사다.[11]#
지금 경찰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러한 관중들은 모두 퇴장을 시켜야 됩니다.
관중 난동에 대한 당시 한국스포츠tv에서 중계했던 이효봉 해설위원의 일침
급기야 이 상황에 화가 난 박정태가 배트 케이스로 덕아웃 유리창을 죄다 깨버린 뒤 롯데 선수단을 몰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는 사태까지 발생했고[12], 롯데 선수단은 코치들[13]과 구단 직원들의 만류로 다시 시합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김명성 감독은 퇴장하는 선수들에게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프로야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다. 다음에 또 관중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심판에게 몰수 게임을 강력하게 요청하겠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박정태가 "호세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김명성은 "어떤 일이 있어도 관중에게 방망이를 던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엄한 표정을 지었다고.[14] 관중 난동에 대한 당시 한국스포츠tv에서 중계했던 이효봉 해설위원의 일침
그렇게 돌아온 박정태가 롯데 선수들을 모아놓고 분위기를 휘어잡으면서 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당시 롯데의 유격수로 활약했던 김민재가 프로야구 30주년 올스타전 관련 방송에서 밝힌 풀 버전은 "오늘 무조건 이기라. 안 그라모 다 디진다! 알긋나?", 김응국은 "이런 게임은 꼭 이겨야 한다. 지면 안 된다. 우리 이것을 계기로 해서 이겨야 더 좋은 팀이 되고 그래야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다."라고. 참고로 원본은 후배인 김민재의 발언이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지금 최악의 상황이고, 또 대구의 야구 팬이 그라운드 위 까지 올라가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데요, 오늘 경기는 프로야구 18년사에 가장 치욕적인 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PSB TV에서 중계를 하고 있던 권성욱 캐스터의 멘트[15]
그러나 삼리건들은 정신 못 차리고 롯데 선수들에게 계속 쓰레기를 던져댔고, 결국 롯데 선수들이 삼리건들과 싸우려고 달려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버렸다. 펜스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대참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실제로 박정태와 삼리건 간에 제대로 시비가 붙었고, 박영태 코치는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철망에 뛰어올라서 싸웠다. 구단 직원들과 심판진이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면 이날은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몰랐다.[16] 결국 심판이 구장 내 방송을 통해 "이런 식으로 쓰레기를 던져 경기 진행을 방해하면 홈팀인 삼성이 몰수패를 당한다"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경기가 중단되었다가 속행되기까지는 23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17]PSB TV에서 중계를 하고 있던 권성욱 캐스터의 멘트[15]
이 직후에 타석에 나선 마해영이 우중월 동점 솔로포를 쏘아올리고 와서 롯데 덕아웃 위의 관중들을 보면서 양손을 들고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대로 헬멧을 벗어서 땅바닥에 내다꽂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 때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이 타격 준비 동작 전에 잠깐 방망이를 우측으로 치켜드는 장면이 있는데, 일부 롯데 올드 팬들은 이를 두고 마해영이 "호세의 퇴장에 분노해 예고 홈런을 때렸다"고 기억하기도 한다. 이 몸 푸는 동작이 하필이면 홈런 예고로 유명했던 월드 레전드 베이브 루스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후 인터뷰에 밝히길, 타석에 들어설 때 무조건 홈런을 치자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홈런을 친 후 호세처럼 방망이를 던지고 퇴장당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빠지면 팀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다고.
7회 초에는 노장진 대신 올라온 임창용 상대로 조경환의 중전 안타와 김응국의 적시타를 묶어 3:2 역전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전날 선발로 나와서 6.1이닝 노히트로 승리 투수가 된 박석진이 폭투와 제구 난조로 크게 흔들리는 틈을 타 8회 말 삼성이 빌리 홀의 선두타자 2루타, 김종훈의 중월 역전 투런포[18]와 이승엽의 우월 솔로포로 백투백 홈런을 완성하며 5:3으로 다시 앞서나갔다.[19]
9회 초 공필성이 안타를 치고 나가 출루했으나, 임재철의 뜬공을 신동주가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 롯데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롯데는 대타로 임수혁을 출장시키는 초강수를 뒀고, 임수혁은 임창용의 바깥쪽 공을 노려쳐 우월 동점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10회 말에 강상수가 김종훈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고 찰스 스미스에게 안타를 허용, 신동주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키며 1사 만루를 만들자, 롯데는 에이스 주형광을 등판시켜 6번 타자 김한수를 삼진으로 잡고,[20] 다음 타자 정경배의 유격수 땅볼을 김민재가 어렵게 잡아내며 1루 주자가 2루에서 포스아웃되면서 이닝이 종료되었다. 당시 유격수였던 김민재의 술회에 따르면, “백핸드로 잡았어야 했는데 타구가 빨라서 미처 하지 못하고 글러브를 댄 것이 얼떨결에 공이 들어와버렸다. 그 다음에 공을 던지는 자세도 어려웠다. 무의식적으로 공을 잡아 글러브에서 뺐는데, 공의 실밥이 잡혀서 그대로 던져 아웃시켰다. 그때 '이기겠구나' 생각했고, 찬스가 왔다.” 실제로 당시 영상을 보면 김민재는 정말 어려운 타구를 기가 막힌 호수비로 처리해냈다.[21]
결국 11회 초, 임창용의 구위는 떨어진 상태였고 임재철의 안타, 임수혁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상황에서 10회 말 호수비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던 김민재가 1B-0S 상황에서 2구를 잡아 당겨 결승 적시 2루타를 뽑아냈다. 원래는 좌전 단타였는데, 2루에 있던 임재철이 홈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김한수가 공을 더듬는 등 삼성 수비진의 중계 플레이가 매끄럽게 되지 못하면서 홈 승부도 실패했고 김민재는 2루까지 들어가며 2루타가 되었다. 당시 롯데 투수코치였던 양상문은 "임재철의 플레이는 화약을 들고 불길로 뛰어드는 플레이였다."라고 평했다. 임재철 본인은 홈으로 들어가기엔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3루코치가 계속 팔을 돌려대서 전력을 다해 뛰었다고 한다.
정회열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포효하는 주형광 |
11회 말, 롯데의 에이스 주형광은 김태균-송재익-정회열을 모두 KKK로 처리하고 팀을 한국시리즈로 진출시킨 마지막 주인공이 되었다. 삼진과 함께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는 제스처는, 롯데 팬이라면 수없이 봤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했던 가을의 승부는 롯데 자이언츠가 승자가 되며 끝이 났다. 경기 종료 후 시리즈 MVP는 16.1이닝 2승 1패 ERA 3.30을 거둔 박석진으로 선정되었다.
4. 총평
히스토리 31 1999년 PO 7차전은 전쟁이었다경기 요약
5. 후일담
그러나 롯데의 단체 사진이 한국시리즈 우승 사진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너무 힘을 많이 써버린 롯데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선 1차전 3점차 승부를 제외하면 1점 차이로 승부가 갈리며 4대1로 한화가 창단 최초이자 유일하게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게 되었다.[22]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가 우세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있었긴 했으나, 1999년의 한화 이글스가 1998년 기존 주력 멤버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 로마이어와 데이비스가 가세해 한화 역사상 역대 최강의 전력이었고, 크로스 토너먼트 상대인 두산을 4:0으로 완파시킨 점을 감안하면 롯데도 한국시리즈에서 나름대로 잘 한 거다. 참고로 롯데가 이때 올린 승률(0.591)이 롯데 자이언츠 역대 최고 승률이다.
그리고 이 한국시리즈 이후 롯데는 25년이 지난 2024년까지 롯데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8888577을 기록하며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 가서야 다시 가을야구를 갈 수 있었으며, 상위 라운드 진출은 2012년 준플레이오프가 돼서야 가능했다.
반면 삼성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달구벌의 저주를 깨고 우승한 뒤 2009년 포스트시즌 탈락을 제외하고는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인해 99688로 몰락하기 전까지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나가고 8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으며 왕조도 세웠다.(2011년 한국시리즈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 4연속 통합우승)
6. 관련 영상
위 영상은 경기 당일과 다음날 이 경기와 이 경기내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이다.[23] 여담으로 이 보도 내용 중 세 번째 꼭지는 방송기자(미디어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이라면 한 번은 눈여겨볼 만한데, 사건을 요약하면서 스트레이트가 아닌 이슈화하는 뉴스 보도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석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팀과 선수를 양비론으로 싸잡아 까고 있어 한계 역시 명확한 리포트라 참고할 점이 많다.
이때 대구아재들의 도 넘은 깽판은 심지어 일본프로야구 방송에서조차 실릴 정도였다.[24] 해당 영상 34분 경에 나온다. 다만 조사를 제대로 안했는지 사건이 1999년 한국시리즈 당시 벌어진 것으로 나오고 라면이 냉면으로 둔갑하는 등 내용상 오류가 많다. 누가 봐도 CI가 전혀 다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를 구분 못하는 것이 황당할 따름.
6.1. 롯기도문
참고로 제시된 영상은 TV로 방송된 영상의 일부가 편집된 상태이다.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
롯데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기론을 다시 투입한다.
롯데 반격의 물꼬를 튼 것은 6회 호세의 중앙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 이때 홈런 축하 세례를 받는 호세에게 관중석에서 던진 음식물이 날아들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호세는 과격한 행동을 하고 만다. 호세에게 퇴장이 내려지고 롯데 선수들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대구구장은 경기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임채섭: 그런데 한번 제 말씀 한 말씀만 들어보세요. 내가 운동장에서 스물두 바늘 맞았다고 이걸 꿰맸다고. 운동장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이철화 단장: 그러니까 우리는 이해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쟤가, 쟤는 이해를 못 하니까 방망이를 던진 거야.
임채섭: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그러니까 할 수 없지. 이건 룰 상에 명시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철화 단장: 그라믄 조금 신중하게 해 줘야지.
임채섭: 아유 우린 신중하게 했어요~.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심리적인 동요는 유리할 게 없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마해영의 동점 홈런.
이어 라이언 킹 이승엽이 롯데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나섰다. 삼성 김종훈과 이승엽의 랑데뷰 홈런이 터지면서, 롯데는 5:3 뒤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9회를 맞는다. 7차전, 그리고 2점을 뒤지는 상황. 승리의 여신은 삼성에 미소를 짓는 것 같았던 그 시간. 공필성이 제몫을 해주고 난 뒤 대타로 나선 임수혁에게 롯데는 마지막 모든 것을 걸었다. 결과는 임수혁의 동점 홈런! 승부는 다시 원점, 스코어는 5:5.
롯데 마운드를 에이스 주형광이 차고 앉았다. 운명의 시간 연장 11회. 임재철이 2루에 있는 상황에서 김민재의 천금같은 2루타가 터졌다. 장장 4시간 30분, 롯데는 무서운 저력으로 삼성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And bad mistakes I've made a few
I've had my share of sand kicked in my face but I've come through
And I need to go on and on, and on, and on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
No time for losers 'cause we are the champions
롯데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기론을 다시 투입한다.
롯데 반격의 물꼬를 튼 것은 6회 호세의 중앙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 이때 홈런 축하 세례를 받는 호세에게 관중석에서 던진 음식물이 날아들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호세는 과격한 행동을 하고 만다. 호세에게 퇴장이 내려지고 롯데 선수들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대구구장은 경기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임채섭: 그런데 한번 제 말씀 한 말씀만 들어보세요. 내가 운동장에서 스물두 바늘 맞았다고 이걸 꿰맸다고. 운동장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이철화 단장: 그러니까 우리는 이해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쟤가, 쟤는 이해를 못 하니까 방망이를 던진 거야.
임채섭: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그러니까 할 수 없지. 이건 룰 상에 명시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철화 단장: 그라믄 조금 신중하게 해 줘야지.
임채섭: 아유 우린 신중하게 했어요~.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심리적인 동요는 유리할 게 없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마해영의 동점 홈런.
이어 라이언 킹 이승엽이 롯데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나섰다. 삼성 김종훈과 이승엽의 랑데뷰 홈런이 터지면서, 롯데는 5:3 뒤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9회를 맞는다. 7차전, 그리고 2점을 뒤지는 상황. 승리의 여신은 삼성에 미소를 짓는 것 같았던 그 시간. 공필성이 제몫을 해주고 난 뒤 대타로 나선 임수혁에게 롯데는 마지막 모든 것을 걸었다. 결과는 임수혁의 동점 홈런! 승부는 다시 원점, 스코어는 5:5.
롯데 마운드를 에이스 주형광이 차고 앉았다. 운명의 시간 연장 11회. 임재철이 2루에 있는 상황에서 김민재의 천금같은 2루타가 터졌다. 장장 4시간 30분, 롯데는 무서운 저력으로 삼성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And bad mistakes I've made a few
I've had my share of sand kicked in my face but I've come through
And I need to go on and on, and on, and on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
No time for losers 'cause we are the champions
짤방 버전.[28] |
롯데 자이언츠팬의 입장에서는 잊을 수 없는 명승부일지 모르지만 삼성 라이온즈팬에게는 잊고 싶은 흑역사며 당연히 이 경기를 언급하는 것을 싫어했다. 기도문이 아니라 저주의 주문 취급이었다. 당연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역전패하는 동영상이니까. 다만 대다수는 옛날 일이고 삼성이 이제는 우승 못 해본 팀도 아니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고, 롯데가 저 해 우승을 놓치고 이후 기나긴 암흑기를 거쳤기 때문에 애교 정도로 넘어가는 편이다. 오히려 시도때도없이 들먹이는 것 때문에 '쟤들은 저거 말고는 이야기할 게 없나?' 라며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하는 삼성팬들도 있다. 그럴 만 한 게 2005시즌과 2006시즌에 우승하고 2010년대 초반 삼성은 4연패 왕조에 2011 아시아시리즈 제패 위업까지 달성해서, 그냥 올렸다가는 "그래서 우승은 했어?"라고 바로 반격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성이 2001년부터 수없이 한국시리즈 갈 동안 롯데는 단 1번도 못 갔다고.
물론 삼리건 아저씨들의 행동은 꼴리건을 능가할 길이길이 남을 흑역사 확정이라 저거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도 있다. 당시의 뉴스데스크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삼성에겐 큰 충격이었기에 말이다.
2008년 사직 야구장에서 롯데가 스머프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던 날 조성환이 오승환에게 끝내기 2루타를 날리면서 롯데가 역전승했는데 이후로는 이 소스도 자주 사용되었다. 또 하필 그날 중계가 옛날 동영상을 기가 막히게 울궈먹기로 유명한 MBC ESPN이라서, 그 이후 이 방송사는 비슷한 상황만 되면 그때 비디오를 틀어댔다. 결국 일부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방송사에 항의한 다음에야 조금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직에서 오승환이 등판하면 나온다.
다만 2008년 이후 롯데가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인터넷의 몇몇 롯데팬들이 삼성전에서 누가 홈런만 쳐도 이 동영상을 우러먹는 등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KBO 한국시리즈 무관의 아픔을 들춰내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싫어하는 삼성팬들도 꽤 있었다. 물론 2020년대 중반인 지금은 20년이 훌쩍 넘은 오래 전 일이라서 좋고 싫고를 떠나 큰 반응은 없다.
7. 여담
- 이날 대구아재의 태도는 CNN을 통해 세계구 방송까지 타기도 했고, 상기한 것처럼 일본 방송에도 토픽으로 나왔을 정도다. 또한 경기 이후에도 일부 삼성팬들은 길거리에서 12시까지 전경들과 대치하면서 부산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을 파손시키기도 했다.[29]
- 호세는 이날 경기 종료 후 가진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대구 팬들도 달라지길 기대한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 이날 사건에 대한 KBO 상벌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징계를 내렸다.
- 나무위키의 전신인 엔하계 위키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표현이다. 스포츠 경기와 연관된 문서에 경기는 (상대 팀) 쪽으로 기울고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32] 물론 이후에 경기가 역전극으로 끝나거나, 최소한 다시 접전이 되었을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역전극이 많은 대첩 설명, 시리즈 포인트에서 몰리다가 역전우승을 한 시리즈가 나오는 경기에는 이 문구가 빠짐없이 남용된다. 물론 야구 관련 문서가 아니더라도 패배에 몰리다가 역전하거나, 아예 그대로 져 버리는 상황이 나와도 이를 기출변형으로 활용한 드립도 나온다.
- 언론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이 날 (당시만 해도 롯데 연고지였던) 마산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건물 전기 시설 불량으로 정전이 겹쳐 전교생이 경기 시간에 맞춰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하교했다. 그리고 마산시내에 풀린 학생들은 마산 어시장 등지에서 롯데 팬 아재들에게 술(!)과 모듬회를 얻어먹으며 열심히 TV를 보면서 해당 경기애서 롯데를 응원했는데, 이 모습이 시내 감독을 돌아다니던 선생님들에게 딱 걸려 다음날 야구부가 쓰는 드넓은 운동장에서 오리걸음을 해야 했었다. 간혹 59~61기 졸업생 중에는 이 기억이 서로 뒤섞여서 "고3 중 2/3이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야자를 째고 튀었고 다음날 선생님들에게 풍기문란(음주)으로 벌을 받았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사실 마산아재들에게 받은 잔이라 엄밀히 말하면 보호자가 있어서 괜찮은 상황이다.
- 5, 7차전에서 블론세이브에 역전패의 오명을 뒤집어쓴 임창용에겐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다. 다만 임창용만을 탓할 수 없는 게, 1999 시즌은 '애니콜' 임창용의 혹사가 절정에 다다른 시즌으로, 삼성의 부실한 불펜진을 혼자 메꾸느라 고군분투해야 했다.[34] 6회부터 나와서 세이브하는 게 다반사에 이러고 또 연투를 하는 경우도 흔했었고, 심지어 마무리 투수임에도 3년 연속으로 규정이닝(133이닝)을 채우고 이 해엔 평균자책점 타이틀까지 수상했다.
- 따라서 이는 임창용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정환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시즌 내내 물 쓰듯 임창용을 써댄 대가를 PO에서 톡톡히 치른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저 7차전에서도 임창용은 7회부터 나와 11회까지 줄창 던졌다. 임창용의 팔이 망가진 게 다 이유가 있다. 마무리 투수가 웬만한 선발 투수급으로 줄창 던져댔으니 팔이 멀쩡할 리가 없다.
- 이러고도 서정환은 삼성에서 배운 게 없는지 친정인 기아에 와서는 2002년 탈삼진왕을 차지했던 최고의 커브볼러 김진우를 아작냈으며, 그로도 모자라 신인 윤석민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게 시키며 밥 먹듯이 굴려댔다. 그나마 윤석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신한카드 덕분이었는데, 신인이던 윤석민 대신 그 멍에를 졌기 때문이다. 결국 신한카드도 몸이 다 망가져 버렸다. 그나마 신용운은 삼성에 가서 최첨단 과학의 힘을 빌려 재활에 성공해 우승반지까지 챙겼지만, 봉황대기 33이닝 연속 무실점, 51이닝 연속 무자책 등 각종 기록을 쏟아낸 괴물 투수는 끝끝내 부활에 실패하고 은퇴했다.[35] 재임 당시 대다수 불펜 에이스들을 아작내 버리고 가버린 서정환 덕분에 기아는 2010년대 불펜으로 내내 전전긍긍했으며, 우승 시즌인 2017년조차도 유망주 이승호를 내주고 김세현을 트레이드해오는 등 불펜으로 인한 출혈이 매우 심했다.
- 당시 3승 1패로 앞서다가 무릎을 꿇은 삼성은 다음해 200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2승 1패로 누르며 어느 정도 체면을 만회했다. 3차전에서 삼성이 리드를 잡자 롯데 팬들이 임창용을 연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롯데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며 비밀번호를 찍고, 8년 후인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8888577에서 마침내 탈출하며 내심 우승도 노렸던 롯데를 4위로 가을잔치 턱걸이한 삼성이 3연승으로 스윕하며 완벽한 복수에 성공했다. 이때의 충격인지 롯데의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는 4년이나 더 미뤄졌다.
- 2012년 4월 24일에는 롯데가 오승환에게 6실점을 먹이면서 2:6으로 대역전승을 하기도 했다.
- 14년 후 삼성 라이온즈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승패 순서를 그대로 재현하며[36] 마침내 아픈 기억을 털어내 버린다. 그것도 플옵보다 더 스케일이 큰 KBO 한국시리즈에서. 그리고 삼성은 팀 통산 7번째(KS 6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2013년 6월 26일에 구단의 초대로 펠릭스 호세가 방한하며 당시 영광의 주인공들이 모였다. 사진 앞줄 좌측부터 김대익, 펠릭스 호세, 주형광, 사진 뒷줄 좌측부터 마해영, 김응국. 또다른 주역이었던 임수혁은 이미 사망한지라 임수혁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 호세의 배트 투척 사건은 2013년 5월 4일 MBC every1에서 방영된 익스트림7 야구에 미친 사람들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 현역 시절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레전드 투수 최동원의 동생 최수원이 이 경기의 2루심이었다. 형을 혹사시키다가 결국 토사구팽한 팀과 그렇게 방출된 형이 말년을 보내다가 은퇴한 팀을 동시에 만나게 됐으니 최수원 입장에서도 만감이 교차했을 경기일 것이다. 그리고 최동원이 말년에 코치로서 몸담았던 팀을 한국시리즈 상대로 만나게 되었으니 훗날 다시보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같은 상황이 펼쳐진 셈. [37]
-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동명의 팀컬러로 삼성선수와 롯데 선수 각각 12인 이상을 1군에 기용하면 팀컬러가 적용되어 야수 올스탯 +5, 투수 올스탯 +3 이 부여된다. 이후 프랜차이즈 카드인 99 마해영에게 '경기는 삼성 쪽으로'라는 이름의 프랜차이즈 효과로 마해영, 호세, 박정태, 김민재, 임수혁에게 장타 +3, 정신 +2 가 부여된다.
- 당시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였던 김용희는 불과 1시즌 전까지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었다. 98시즌 중에 경질되고 99시즌을 앞두고 삼성에 입단했는데 99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 것.
- 이 결과로 삼성 라이온즈는 전 세대 우승을 영영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1980년대는 뒤늦게 1985년 통합우승을 인정하기라도 했지만, 1990년대 무관은 빼박이다. 당시 전 세대 우승은 롯데, 해태, 두산이 남게 되었고, 롯데도 2000년대 우승은 고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도 못하면서 나가떨어졌다. 두산은 2001년에 우승을 이룬 뒤 10년대에는 왕조를 이뤘다. 해태 역시 KIA로 이름을 바꾸고 2009년, 2017, 2024년에 우승을 한 번씩 해내면서 전 세대 우승을 이어갔다.
-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팬 사이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명경기로 손꼽는 게 있다. 진에어 스타리그 2011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서 정명훈의 승리로 거의 기울어진 전세를 허영무가 극적으로 뒤집어 정명훈에게 GG를 받아내고 우승을 차지한 경기이다. 가을의 전설 반열에 오른 명경기로 회자되며 프로토스 팬 사이에서는 롯기도문과 비슷한 취급이다.[38]
8. 관련 문서
[1] 롯데가 우승하면 신약성서가 쓰이고 본 경기는 구약성서로 남았겠지만 알다시피...[2] 원래 그의 등번호는 49번이다. 조경환의 연습복을 빌려 입은 것으로 보인다.[3] 당시 롯데에서 마무리 투수로 쓰려고 했던 선수는 마이클 길포일이었는데 워낙 못해서 시즌 초에 일찌감치 퇴출된 이후로 여러 투수로 돌려막기를 하다 시즌 중반부터 강상수로 고정되었다.[4] 손인호가 임창용을 상대로 때린 큼지막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2루타가 된 것이 컸다. 넘어갔더라면 롯데가 삼성을 상대로 2패 후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을지도 모른다.[5] 이는 KBO 리그 역사상 1996년 쌍방울의 박철우 이후 PO에서 터진 두 번째 끝내기 홈런임과 동시에 포스트시즌 최초의 역전 끝내기 홈런이다.[6] 플레이오프 상대인 정규시즌 승률 1위 두산 베어스를 4:0으로 스윕했다. 1999년과 2000년은 드림 리그 - 매직 리그 각 4팀씩 2개의 리그(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다)로 운영되어 준플레이오프 없이 각 리그의 1, 2위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1999년 시즌 중간에 규칙이 변경되면서 한 리그의 3위 팀이 반대쪽 리그의 2위 팀 승률을 역전할 경우 준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어있었으나, 드림 리그 3위 현대 유니콘스가 매직 리그 2위 한화의 승률을 역전하지 못해서 준플레이오프가 생략되었다.[7] 역대 최초 지상파-위성-케이블 3사 동시 중계한 경기다.[8] 당시 PSB는 정규방송으로 인해 8시 이후부터 PIP 방식으로 중계.[타사중계7] 블루웨이브FM 임경진-이성득.[10] 양 팀 득점 총합이 11점인데 이 중 9점은 홈런으로 냈다. 참고로 양 팀의 홈런은 7개. 그만큼 오랜 경기와 잦은 등판, 중압감으로 양 팀 투수들이 지쳤다는 얘기가 된다.[11] 몰로토프 칵테일 밈과 상당히 비슷하다. 겨울전쟁 때 몰로토프가 핀란드 침공을 핀란드 인민들에게 빵을 공수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핀란드 군인들이 몰로토프 칵테일을 소련 전차에 던지며 "몰로토프 네놈이 우리 핀란드한테 빵을 줬으니까 술도 한 잔 해야지? 옛다! 빵값이다!" 라고 말하면서 몰로토프를 비꼬았다.[12] 여기서 롯데 팬들이 명언으로 꼽는 발언인 "씨발! 짐싸라!"가 나왔다.[13] 다른 직원들이 말릴 때 몸으로 밀치며 막무가내로 나가려던 박정태를 막아낸 건 양상문 당시 롯데 투수코치였다. 박정태 왈: "당시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옆을 보니 양상문 코치님이 와 계셨다."[14] 박정태는 워낙 카리스마 있고 강한 성격이다 보니 온화한 성품의 김명성과 종종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트러블이라는 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김명성은 박정태가 이후 타격감이 식자 꾸준히 타석에서 반등할 기회를 주었다. 박정태 또한 김명성이 급사하자 충격을 받아 심적으로 부담을 가져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15] 사건이 발생했을 시각에 SBS 8시 뉴스 편성 때문에 PIP 방식으로 중계를 이어갔었다.[16] 심지어 최기문의 증언에 의하면 칼까지 꺼낸 관중도 있었다고 한다.[17] 이 과정에서 당시 롯데 자이언츠 1군 매니저로 있었던 최용락 매니저는 삼성 팬이 투척한 주스병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것도 작은 주스병이 아닌 그 큰 델몬트 주스병이라고 박정태가 증언하였다.[18] 김종훈은 희생번트를 댈려고 했으나, 폭투가 나와 주자가 3루에 안착하는 바람에 번트가 필요없게 되어 풀스윙을 했고 홈런이 되었다.[19] 박정태는 이후에 “사실 이기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그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노력하면 된다', 저는 그렇게 하면 되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거 하나 믿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된다'...”[20] 우타자임에도 좌투수를 올린 것에 대해 양상문 당시 투수코치는 김한수가 몸 쪽 떨어지는 슬라이더에 약점을 보여서 슬라이더가 좋은 주형광을 올린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김한수는 몸 쪽 떨어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하며 삼진당했다.[21] 반면 이 호수비로 안타를 도둑맞은 정경배는 결국 이날 무안타를 기록했다.[22] 이 해 플레이오프에서도 유독 1점차 승부가 많이 나온 포스트시즌이다. 한화-두산 2번(4대0), 롯데-삼성 4번(4대3). 그리고 나머지 경기들도 6대2 삼성이 이긴 플레이오프 2차전과 10대2로 롯데가 이긴 3차전을 제외하면 모든 경기가 3점 이내에서 승부가 갈렸다.[23] 이 영상에 앵커들 중 Co-앵커 김은혜는 이후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했고, 메인 앵커 이인용은 삼성그룹 미전실에 미디어 담당으로 입사했다가 정년퇴직했다. 삼성그룹 이재용 총수와 동명이인인 이재용 아나운서는 이후 MBC 해직 사태에 휘말려 한직을 전전하다 2018년 프리 선언을 했다.[24] 이 방송은 2000년 방영된 "20世紀プロ野球 珍プレー好プレー "(20세기 프로야구 진기명기 플레이)다.[25] 6회 초 호세의 홈런 후 영상의 20분 30초부터 삼성팬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행위가 거세지며 호세의 방망이 투척, 경기장을 나가려하는 롯데 선수들 등 분위기가 살벌해진다.[26] 게임 슬러거 홍보만화인 점은 감안하자. 그래도 홍보와는 별개로 당시 상황을 잘 묘사했다.[27] 여담으로 김성주는 이후 한국스포츠TV가 망하자 MBC로 경력직 입사를 하며 커리어의 황금기를 쌓게 되는데, 이 당시 한국스포츠TV에서 야구부터 당구까지 온갖 종목에서 혹사당한 게 오히려 자신의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 차례 술회한 바 있다.[28]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미묘하게 틀린 부분들이 많다. 임채섭에게 항의를 하는 롯데관계자의 정체는 이철화 단장이다. 경기 내내 사복 차림으로 덕아웃에 있었다. 퀸의 We Are the Champions는 진짜 가사를 써놓은 게 아닌 한국어 몬더그린을 따라 써놓은 것인데다 그 퀄리티가 심히 개판 엉망진창이다.[29] 이 당시만 해도 차주의 주소에 따라 '부산 가 1234' 처럼 관할지역의 명칭을 번호판에 달았다. 이 때문에 번호판의 지역이 부산이라고 표기된 것만 보고는 무조건 롯데팬의 자동차라고 생각해 차를 부순 것이다. 반론으로 엉뚱하게 피해를 본 차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원래 대구에서 자라났으나 개인 사정 때문에 부산에 거주하는 삼성팬의 자동차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2004년 차량 번호판 개정으로 지역 표기가 사라져 '05 가 1234' 형태가 됐다. 옛날에는 저 두 자리 코드만 보고도 지역을 추측 가능했지만 이제는 차량번호 두 자리가 만석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30] 단 펠릭스 호세의 출전 정지 징계는 그 다음 시즌의 KBO 정규시즌에 적용된 것이다.[31] 홈구장의 경우 상대편 선수들 또한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이렇다.[32] 이때 표현에 언급된 상대 팀은 대개 진다.[33] 이 외에도 정회열 전 KIA 타이거즈 코치도 이 날이 마지막 경기였다. 시즌이 끝나고 삼성에서 방출당했기 때문.[34] 이 시기 삼성의 투수진은 처참했다. 박충식, 김상엽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전 해에 4억 주고 해태에서 사온 조계현, 롯데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박동희는 노쇠화에 따라 부진했다. 그래서 선발투수는 그 해 한화에 최익성을 주고 데려온 노장진, 두산에서 사온 김상진, 2년차 신인 김진웅으로 선발진이 운영되었고 선발투수들이 최대한 긴 이닝을 던졌다. 그나마 5선발 ~ 불펜에서 정현욱, 전병호가 나름 버텼지만 둘 다 평균자책점은 5점대. 이준호, 문남열, 이동은 같은 불펜투수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성적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나마 잘 하던 김현욱이 포스트시즌까지 거의 100이닝을 던졌고 임창용이 71경기 133이닝 + @를 던지고 팀내 다승 2위(13승) + 최다세이브 + 평균자책점왕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고 만 것.[35] 그나마 완전히 망가지기 전인 2009년에 우승을 해서 반지는 있다.[36] XXOXOOO. 결정적인 7차전 장소도 그때처럼 대구였다. 삼성으로서는 이보다 완벽한 14년 전의 트라우마 청산이 아닐 수 없다.[37] 참고로 이 경기가 있었던 1999년 당시의 최동원은 야구계를 떠난 야인 신분이었다.[38] 해당 경기는 김캐리버 시리즈의 진짜 7탄으로도 만들어졌는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몇 기의 캐리어를 가지고 버티다가 급기야 드라군 부대까지 동원해서 전세를 뒤집었을 때 배경음악까지 <City of Joy>로 전환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