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05 11:58:35

찰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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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찰스 스미스/Example.jpg
이름 찰스 리 스미스(Charles Lee "Bubba"[1] Smith)
생년월일 1969년 12월 18일 ([age(1969-12-18)]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신체조건 189cm 115kg
포지션 내야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26라운드(시애틀 매리너스)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삼성 라이온즈)
소속팀[2] 삼성 라이온즈(1999~2000)
LG 트윈스(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최익성(1996~1998) 찰스 스미스 (1999~2000) 이정호(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한국 데뷔까지2.2. 삼성 라이온즈 시절2.3. LG 트윈스 시절
3. 퇴출 이후4. 연도별 성적5. 총평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를 거친 前 외국인 선수. 포지션은 1루수, 좌익수.

2. 선수 경력

2.1. 한국 데뷔까지

1991년 데뷔해 마이너 올스타에도 몇 번 선정되는 등 커리어를 쌓았지만 결국 빅리그에 승격되지 못하고 마이너리거로 남으려던 상황에 1999년 한국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1998시즌 타이론 우즈의 대활약에 고무받아 외국인 거포타자를 희망하던 구단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3개월짜리 멕시칸리그에서 홈런 14개를 날리며 애초부터 관심을 받았으나 트라이아웃에서는 빌빌대는 모습을 보이며 트라이아웃 캠프에서조차 퇴출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의해 1라운드 지명되었다. 삼성이 1라운드 지명한 건, 애초에 삼성이 그와 사전 접촉을 했고 타 구단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태업을 지시했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삼성에 입단한 스미스는 펠릭스 호세와 함께 1999년 기대되는 거포 용병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삼성 타선은 이승엽-양준혁의 막강한 3, 4번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삼성은 임창용 트레이드로 양준혁을 해태로 보내고 대신 쌍방울에서 김기태를 데려왔다. 중심 타선이 지나치게 왼손 타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자주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었는데 당연히 오른손 거포를 찾고 있었던 삼성에 부합하는 외국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당초 기대와 달리 스미스는 1999년 시즌 초반 상당히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상당한 덩치를 가진데다가 카림 가르시아 이전에 '선풍기 스윙'이라는 별명을 선점했듯이 위압적인 스윙폼을 가져서 상대 투수나 중계를 보는 야구팬들에게 상당한 위엄을 주었으나, 그러면 뭐해 맞추지를 못하는데...

하지만 5월부터 주형광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한 이후,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해서 이내 정상급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는 외국인치고는 꽤나 겸손했던 그의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의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구단 입장에서도 외국인 선수라는 존재가 가르치고 성장시켜서 성과를 낸다기보다는 '갖춰져 있는 걸 구입해서 쓴다'라는 인식이 강해서 뭘 가르치고 교정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못하면 내다버리고 새 거 사서 쓴다는 인식. 사실 현재도 이런 인식이 기본적으로는 있다. 다만 외국인 제도 초창기 때는 그야말로 용병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생각을 했었다고.

반면에 스미스의 경우 삼성 타격코치진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고, 또 코치진이 제시하는 조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 결과 '선풍기 스윙' 일변이었던 그의 스윙은 컨택 능력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다소 변화했고, 때에 따라서는 간결한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변하면서 스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1999시즌 성적은 타율 0.287에 홈런은 무려 40개나 뽑아내면서 성공적인 용병 선택이었음을 입증했다. 당연히 재계약 대상자.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이 즈음 꽤나 재계약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3]

우선 당시 중심타선이었던 이승엽김기태가 수비에서 1루를 놓고 겹치는 상황, 거기에다가 스미스가 가능한 포지션 역시 1루 뿐. 지명타자를 1명 밖에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상당히 고민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40홈런짜리 외국인 타자를 수비 겹친다는 이유로 내보내기도 거시기하고... 스미스도 좌익수로 나오기도 했다. 결국 김기태가 외야수로 이동하면서 땜빵식으로 포지션이 해결되었다. 물론 스미스가 좌익수를 선 날 그의 수비범위는 이영우나 말년의 가네모토 도모아키마저 울고 갈 수준으로 매우 좁았다. 어깨가 쓸만하기 이전에 발이 워낙 느리니까... 감이 안 온다면 현재의 나지완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4][5]

1999시즌 성적이 올라오면서 나름대로 대구 지역 중심으로 팬층이 형성되었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국인치고는 푸근해보이는 인상에다가 덩치 좋고 둥글둥글한 외모의 거포에 대한 지역의 전통적 선호 분위기에 거대한 체구 및 체중에 의해 가끔 발생하는 몸개그로 인해 다소 컬트적인 팬층이 형성되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곰팅이 같이 생긴 넘이 타석에서 헛스윙하다가 휘청대며 넘어지거나 좌익수 넘어가는 타구에 2루에서 아웃당하는 모습이 상당히 웃겼던 모양. 물론 이러한 반응은 평상시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그냥 까이겠지만.[6]

스미스의 체중은 위키 백과 등 공식적인 프로필에는 101kg로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 시기 비공식적인 그의 체중은 127~129kg으로 이대호최준석 이전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무거운 체중이었다고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2000시즌 삼성은 재계약 시 스미스에게 사상 초유의 '체중 감량 옵션'을 걸었다. 계속 뛰려면 살 빼라는 것.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에 성공한 스미스는 2000시즌 시범경기부터 시즌 초반 장타를 펑펑 날리며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6월 이후 스미스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슬슬 퇴출 얘기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삼성하면 화끈한 타격 위주의 팀이라는 지역 팬들의 정서 때문에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퇴출을 고려한 적이 없다는 대응까지 나왔지만, 결국 7월말 웨이버 공시를 통해 퇴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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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지역 뉴스 화면 캡쳐. 스미스의 크고 아름다운 덩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저게 어딜봐서 101kg냐

사실 스미스가 6월부터 하락세를 보인 건 구단이 조건으로 내건 체중감량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120kg가 넘는 거구의 선수가 체중을 줄이려면 일반 체중의 선수보다 두 세배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이라는 건 대부분 좋게 말해 식단 조절, 나쁘게 말해 기존에 섭취하던 열량보다 적은 열량을 섭취해야 한다는 뜻. 물론 이것만이 성적 하락의 요인은 아니겠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장기 시즌제 운동선수가 중후반기로 가면서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인 일. 물론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면 가능도 했겠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용병 특성 상 적다.

사실 스미스의 퇴출은 단순히 실력 하락에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퇴출 직전까지 스미스가 내고 있었던 성적은 타율 0.274에 홈런 20개. 그리 나쁘다고 할 수 만은 없는 성적이다. 다만, 당시 구단에서는 타격보다는 투수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실제로 스미스가 퇴출된 후 영입한 용병은 투수였다.[7]

결과론적이지만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의 단초를 제공한 셈인데 1,2차전까지는 롯데 상대로 끝내기 안타와 홈런도 치며 맹타를 휘둘렀으나 그 이후 차갑게 식어버렸다. 안그래도 투수진이 빈약했던 삼성은 애니콜 임창용을 엄청 굴렸고, 스미스는 공격에서 부진하면서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2.3. LG 트윈스 시절

웨이버 공시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스미스를 붙잡은 건 다름 아닌 LG. 때마침 LG는 장타력을 보강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오른손 거포를 더더욱 희망하고 있었다. 스미스가 딱 적임자였던 상황.

LG로 이적한 이후 스미스는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시즌 종료 후 그의 성적은 타율 0.288에 홈런 35개, 100타점. 전년도에 비해 홈런 수에서 다소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체중감량 옵션으로 인한 고생에다가 삼성 퇴출 후 LG 입단 등의 현실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스미스는 LG 타선 역사에서 최초로 100타점을 넘긴 타자였다.[8] 똑딱이 타선으로 고민하던 LG로서는 준수한 장사였던 셈. 하지만 결국 그는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9] 후임이 댄 로마이어였는데 그도 김성근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무려 팀내 타점왕인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3. 퇴출 이후

한국프로야구 퇴출 이후 2006년까지 마이너리그 생활을 지속했다고 하는데, 2006년 독립리그 American Association의 북부 디비전 소속팀인 Sioux Falls Canaries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29게임 108타수 33안타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다.

2008년 기사에 따르면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의 커너스빌에서 살고 있고, 가전제품 매장에서 일하면서 지역 야구팀의 코치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9 삼성 라이온즈 123 408 .287 117 20 1 40
(3위)
98 70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0 삼성 / LG 118 423 .288 122 27 1 35
(5위)
100
(5위)
71 0
KBO 통산(2시즌) 241 831 .288 239 47 2 75 198 141 1

5. 총평

장타력과 홈런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기여했으나 내야수라는 포지션이 국내 선수들과 겹치는 일이 많아서 각 팀에서 설 자리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만약 타율만 조금 더 높아서 3할대에 30~40개의 홈런을 날렸던 스펙이었다면 삼성에서도, 혹은 삼성을 떠나서도 국내 프로야구에 상당기간 잔류할 수 있었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타격 성향 상 나날이 발전하는 국내 프로야구의 질적 수준(특히 투수 부문)에 의해 어느 한 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상당한 기량을 보여주고도 퇴출된 케이스인데, 구단의 관점에서는 다소 아쉽지만 몰락이 예상되는 선수를 그대로 놔두기도 힘든 상황. 용병인데다가 해당 구단에서는 포지션이 겹치는 등 계륵과 같은 존재였을 수도...

아직도 삼성 올드팬층에서는 회자되는 용병 선수이다. 특유의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이 경상도 특유의 정서와 겹쳐서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절반은 그 체격으로 인해 생기는 일종의 친근함, 혹은 쉬운 접근성 때문이다.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TV 중계를 보는 이들은 낄낄대면서 '저 돼지X끼 또 삼진이네 킬킬킬'대다가 그가 홈런을 날리면 '아오 우리 귀여운 돼지X끼~'라고 낄낄대는 상황이 많았다. 삼성 용병 중에서는 팬들과 인간적인 친밀도가 높았다고 볼 수 있을 듯.

참고로, KBO 역대 한시즌 40홈런 이상 기록자 중 최저 타석인 442타석 기록(1999)을 가지고 있다. 30홈런 이상 기록에서도 최저 타석기록이었으나, 2017년 SK 와이번스제이미 로맥이 416타석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규정타석 미만 30홈런 기록자가 되어 경신하였다. 다만 스미스가 30홈런을 기록했을 당시의 타석수와 로맥이 30홈런을 기록했을 당시의 타석수를 비교해보면 스미스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1] 미국에서 등록명이 버바 스미스였다.[2] 메이저리그 활동 기록이 없다.[3] 해태 타이거즈는 돈이 없어서 같은 40홈런을 친 샌더스를 말 같지도 않은 언플로 퇴출시킨다.[4] 야구에 만약이란 없지만 원래 당시 삼성 감독 서정환의 계획은 데이비스를 영입할 계획이었다. 공수주 3박자가 모두 완벽했던 데이비스였기에 좌익수의 구멍을 어느정도는 만회할수 있었을 것이다.[5] 첨언하자면 1998년까지만 해도 수준급 중견수 최익성, 강동우 둘 중 누굴 쓸까 고민했었는데, 최익성은 노장진과의 트레이드로 강동우는 플레이오프때의 부상으로 동시에 가용불가한 상황. 하지만 막판에 이 센터 내야수 출신에 중견수도 볼수있다는 점에서 홀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홀은 초반 반짝후 공수 양면에서 망하며 도루 하나만 도움이 되었다.[6] 이 부분의 현재 시점 적자는 바로 박석민.[7] 대체 외국인 선수로 투수 마이클 가르시아가 입단했지만 기대에 못미쳤고, 투수보강을 위해 고심하던 삼성은 다음해인 2001년 큰 돈을 들여서 ML 경험이있는 살로몬 토레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결과는...[8] 이후 순수히 LG 유니폼을 입고 한 시즌 100타점을 넘긴 선수는 9년 뒤인 2009년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기록했으며, 이듬해인 2010년 조인성이 107타점을 기록하며 LG 한시즌 최다타점을 경신했다.[9]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게 컸다.[10]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