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6 20:12:32

훌리오 프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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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코.png
롯데 자이언츠 No.81
훌리오 세자르 로블레스 프랑코
(Julio César Robles Franco)
생년월일 실제 1956년 8월 23일([age(1956-08-23)]세)
주민 등록상 1958년 8월 23일([age(1958-08-23)]세)[1]
국적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png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 아토 마요르
포지션 유격수[2], 2루수[3], 지명타자[4], 1루수[5], 외야수[6]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PHI)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8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83~1988)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3)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4)
치바 롯데 마린즈 (199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6~1997)
밀워키 브루어스 (1997)
치바 롯데 마린즈 (1998)
템파베이 데빌 레이스 (1999)
삼성 라이온즈 (200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1~2005)
뉴욕 메츠 (2006~200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7)
티그레스 테 킨타나 로오 (2008)
포트워스 캐츠 (2014)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2015)
지도자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 감독 (2013~2014)
포트워스 캐츠 플레잉코치 (2014)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감독 (2015)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6)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6~2017)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7)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8~2019)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타격코치 (2019~ )
파일:external/s20.postimg.org/americanleaguelogo.png 1991년 아메리칸리그 수위타자
1990년
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329
훌리오 프랑코
(텍사스 레인저스)
.341
1992년
에드가 마르티네스
(시애틀 매리너스)
.343
199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보 잭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훌리오 프랑코
(텍사스 레인저스)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4번
노장진 (1999) 훌리오 프랑코 (2000) 문남열 (2001~2003)

1. 소개2. 메이저리그 1기, 일본프로야구 시절3. 삼성 라이온즈 시절4. 메이저리그로 돌아간 후5. 롯데 자이언츠 코치행6. 여담7. 연도별 성적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통합 23년간 현역선수로 뛰었고 2016년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 코치로 재직중인 제이미 모이어, 리키 헨더슨과 더불어 2000년대 메이저리그산신령 중 하나. KBO 사상 최대 거물 외국인 선수[7]이자, 어느 리그에서도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여준 노익장 운동선수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에 21승을 거둔적도 있던 호세 리마나 20+홈런 시즌 3번의 루크 스캇, MLB 올스타 경력도 있는 펠릭스 호세, 카를로스 바에르가등 임팩트 있는 외국인 선수도 있었지만 누적성적에서는 그 누구도 훌리오 프랑코와 견줄수 없다. 메이저리그 통산 2,527경기 출장 9,731타석 8,677타수 1,285득점 2,586안타 173홈런 407 2루타 54 3루타 1,194타점 281도루 .298 .365 .417. 여기에 한일 성적까지 합하면 2,917경기 출장 11,382타석 10,115타수 1,502득점 3,028안타 478 2루타 60 3루타 223홈런 1,439타점 311도루!! 멕시칸 리그에서의 316안타와 도미니카 윈터 리그에서 거둔 267안타까지 합하면... 성적만 봐도 알겠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역대 외국인 선수 중 가장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8] [9] 아니, 메이저 리그 성적만 봐도 충분히 역사에 남을 만한 성적을 찍은 선수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실버슬러거를 수상했고 1994년에도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공식적으로는 1958년에 출생했다고 나와 있지만, 출생 신고가 늦어서 실제로는 1956년생이라고 한다. 참고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뛸 당시 등록된 생년은 1961년생.(...) 그리고 심지어 1955년생, 영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54년생이라는 말도 있고, 차명석이 만난 프랑코의 동창(1954년생)의 말에 따르면 그보다 더 일찍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10]

어린 나이에 야구를 하러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 스페인어만 할 줄 알고 영어를 할 줄 몰라서 3개월 동안 프라이드치킨과 감자튀김만을 먹었다고 한다.

2. 메이저리그 1기, 일본프로야구 시절

197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자유계약으로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해 프로 야구 생활을 시작했고, 1982년 4월 23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유격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데뷔했다.

1983년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1루수 본 하예스를 상대로 매니 트릴로, 조지 부코비치, 제이 볼러, 제리 윌러드와 함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며, 그때부터 유격수에서 2루수로 포지션을 바꾸며 안착하게 된다. 그 해에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하며 자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11]

이후 매년 2할 8푼~3할 중반대에 10~20홈런 20~30도루를 기대할 수 있는 성적을 발휘하며 클리블랜드 말년인 1988년부터 실버슬러거를 시작으로 1989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이적한 이후 1992년까지 4년 연속으로 아메리칸리그 실버슬러거 2루수 부문에 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1990년 MLB 올스타전에서 결승타를 쳐 MVP에 선정되었다.

파일:external/boxscorebrothers.weebly.com/2759293_orig.jpg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의 타격 자세. 배트를 투수 방향으로 겨누는 듯한, 독특한 포즈를 취한 것으로 유명했다. 고자방지 타법? 국내 선수 중에는 박진만이 유사한 타격폼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상복은 만년 약체였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5할은 찍지만 포시에는 못 올라가던 당시의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좋지 못한 성적으로 인해, 시즌 MVP 후보에서는 1994년 8위를 한 것이 전부다.

1991년에는 .341의 타율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등극하며 첫 번째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1993년에는 46경기 연속 출루로 텍사스 레인저스 팀 내에서 25년을 최다 출루 기록자로 이름을 올렸다.[12] 1994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커리어 첫 20홈런을 때리며 아메리칸리그 실버슬러거 지명타자부문에 오르며 두 번째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1995년에는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의 여파로 메이저리그 시즌이 정상적으로 개막하지 못하자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해 일본프로야구에서 뛴다. 레인저스의 감독이었던 바비 발렌타인과 함께 1년을 뛰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후 1998년에 다시 치바 롯데 마린즈와 계약하는데, 이때 일본야구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선수로서 팀의 주장을 맡으며 활약했다. 다만 이 해 롯데가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다연패인 18연패 기록을 세우며 침몰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news.nateimg.co.kr/2015102101002249900154541.jpg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는데, 심판들의 노골적인 견제에도 불구하고 132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 2푼 7리(477타수 156안타) 22홈런 110타점 79득점 12도루의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재계약하지 않았다. 홈런이 생각보다 적어 보이는데, 당시에도 홈런이 적어 국내에서 프랑코 무용론이 불자 자청하여 기자들을 불러 모으고는 "너님들 내가 홈런을 '못' 치는거라고 생각하냐? 우리팀엔 이승엽, 김기태, 스미스 있으니까 칠 필요가 없는 거지 못 치는 거 아님" 이라고 말하고는 며칠 뒤 1경기 3홈런을 때려 냈다.

삼성 시절에는 공격력에 비해 수비는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원래 내야수지만 삼성에서 느닷없이 외야수로 뛰게 된 탓이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 라인업은 김기태-김종훈-프랑코로 이어지는 호화 멤버..-_-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수비도 나쁘지 않은 수준. 메이저리그 시절 2루수 경험을 살려 삼성에서도 2루수 알바를 뛰기도 했는데, 5월 초중순에는 내야진 부상 속출로 인해 선발 2루수로 활약했으며, 이후로도 가끔씩 2루수로 나왔다. 유격수 대수비를 본 적도 있다.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0150811123431611238.jpg
2루 수비를 보는 프랑코.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코치를 거치지 않고 후배 선수들에게 타격 기술을 과외해 준 것 때문에 코치진들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또한 타격 기술 외에도 아래 언급한 자기관리에 대해 선수들에게 조언을 열심히 하면서 삼성 선수들이 시어머니 같다는 평도 남겼다. 하지만, 당시 주장이였던 김기태는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재계약 거부에 대해 삼성에선 늙은 나이도 한몫했다고 하지만, 그건 명백한 오판이었다.

4. 메이저리그로 돌아간 후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가 200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43세의 나이에 입단해 2005년 6월 28일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만루 홈런을 쳤으며 2007년 5월 5일에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홈런을 쳤다.[13] 그리고 2008년 멕시칸 리그를 뛴후 49세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 즉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1950년대 출생 선수라는 뜻...[14]

은퇴 후 잠시 메츠 산하의 루키 팀의 감독직을 했고,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술, 담배, 청량음료 등은 입에도 대지 않고 생과일 주스를 즐겨마시던 습관, 단백질 위주의 하루 7번 식사, 규칙적인 생활습관 등 실로 감탄할만한 자기관리로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아 많은 야구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오죽하면 삼성시절 김기태가 프랑코에게 존경을 표했겠는가. 게다가 젊은 시절에는 유격수, 2루수, 1루수로 차례대로 옮겨다니면서도 준수한 성적을 뽐내었는데[15], 후에 이러한 선수 커리어를 마이클 영이 이어가게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이런 걸 악용한 건가

성적으로만 봐도 훌륭한 누적 스탯을 쌓았지만, 2013년 명예의전당 투표에서는 1.1% 득표에 그쳐서 한 방에 자격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어찌 보면 가장 저평가받은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설명에는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지만 통산 2,500안타를 달성하였고[16][17], 타격왕 타이틀과 5개의 실버슬러거를 갖고 있는 선수였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으며, 오히려 오랜 선수생활 동안 철저한 몸관리를 보여주며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런 모범적인 선수의 득표율치고는 지나치게 낮았다. 들도 10퍼센트 이상 받았는데

2014년 5월, 프랑코는 미국 독립리그 팀인 포트워스 캐츠에 선수 겸 코치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떴다!!!!! 참고기사 나이 56세에 선수로 뛴다는 것[18]은 정말 프랑코가 얼마나 자기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보여주는 예다!

그리고 2015년 3월 13일 일본 독립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팀인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 선수 겸 코치공식입단했다가..

5. 롯데 자이언츠 코치행

2015년 10월 20일 뜻밖에도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로 들어왔다!!기사 아마 지바 롯데에서 뛰어서 한국 롯데 자이언츠와도 인연이 닿은 듯 하다. 크보를 거친 외국인 선수 출신의 코치는 카도쿠라에 이어 두 번째. 이제 롯데 자이언츠 2군 선수들 프랑코 옹의 잔소리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삼성 시절 국내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한 회 끝날 때마다 담배 핀다고 갈구고, 탄산음료도 못 마시게 했는데 과연... 손아섭: ㅋㅋㅋ[19]

2016년 1월 31일부터 롯데 자이언츠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20] 시즌 시작 전 2군스프링캠프대만 퓨처스 캠프에서 인터뷰 기사에서는 선수 제의가 온다면 당장이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하신다. ㅎㄷㄷ 팬들은 1군 1루를 원한다

2016년 4월 6일 SK전 시타 후 인터뷰를 보면 그가 야구 선수로서 뿐만이니라 인생 선배로서도 대단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2016년 8월 18일자로 장종훈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꾸며 1군에 올라왔다. 타자들의 떨어진 의욕을 되살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안될거야 아마

난데없이 치바 롯데 마린즈의 차기 감독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루머가 뉴스로 떴다. 히로유키의 본캐 사랑 하지만 2017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1군 타격코치로 잔류했다. 하지만 4월 중순부터 타선 전체가 부진하면서 그 책임을 물어 1군 명단에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코치는 김승관인데.. 이 분 지금 롯데 자이언츠의 공격력을 싸그리 깎아 드셨다.

2018 시즌 내내 2군 타격코치를 하고 있으며, 조원우 감독이 프랑코 코치에 대해 자신이 평가할 수 없는 분이지만 언어의 벽 탓에 선수와 코치 사이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지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프랑코 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올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랬던 결과, 롯데는 제대로 망했다. 넥센은 외국인을 코치로 올려서 4위 찍고 있다 그리고 2군 롯데는 타격에서 퓨처스를 폭격하고 있다

6. 여담

  • 삼계탕을 상당히 좋아한다. 한국에 왔을 때 통역에게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추천을 받았는데, 맛도 있어서 한국에 있을 당시에 몇백 그릇은 먹었다고 말했다. 1년밖에 안 있었으니 매 경기 직전 혹은 끝난 후 저녁식사는 거의 매일 삼계탕을 먹었다는(...) 이야기. 안 질리나 심지어 박찬호뉴욕 메츠에 입단하고 프랑코가 박찬호에게 처음 했던 말은 찬호, 찬호, 삼계탕 먹으러 가자(....) 롯데 2군 타격코치를 5년째 역임중인 지금도 퇴근하고 시간나면 먹으러 가지 않을까 추측된다.
  • 오랜 현역 생활과 이후의 코치 활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모범적인 모습으로 인해 중남미 야구계의 살아 있는 거목같은 존재. 한국 연예계로 비유하면 중견배우 이순재같은 위치. 2013년 당시 내한한 펠릭스 호세롯데 자이언츠이문한 운영부장에게 훌리오 프랑코의 연락처를 알려 주고 간 것도 그만큼 프랑코가 중남미 야구계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방증해 준다. 롯데 구단과 연락이 닿은 프랑코는 히메네스를 추천하였고, 메이저 경력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일본 야구에서도 실패한 히메네스였지만 2014 시즌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코의 선수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히메네스는 한국 야구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야 했는데... 롯데 팬의 그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고 그는 뼛속까지 삼성맨이었다.(...) 그리고 롯데 코치로 들어와서 다시 롯데 팬 설레게 한다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2 필라델피아 필리스 16 29 .276 8 1 0 0 3 3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49 560 .273 153 24 8 8 80 68 32
1984 160 658
(1위)
.286 188 22 5 3 79 82 19
1985 160 636 .288 183 33 4 6 90 97 13
1986 149 599 .306 183 30 5 10 74 80 10
1987 128 495 .319 158 24 3 8 52 86 32
1988 152 513 .303 186 23 6 10 54 88 2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9 텍사스 레인저스 150 548 .316 173 31 5 13 92 80 21
1990 157 582 .296 172 27 1 11 69 96 31
1991 146 589 .341
(1위)
201
(5위)
27 3 15 78 108 36
1992 35 107 .234 25 7 0 2 8 19 1
1993 144 532 .289 154 31 3 14 84 85 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4 시카고 화이트삭스 112 433 .319 138 19 2 20 98 72 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5 치바 롯데 마린즈 127 474 .306
(5위)
145
(공동 3위)
25 3 10 58 60 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12 432 .322 139 20 1 14 76 72 8
1997 78 289 .284 82 13 1 3 26 46 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7 밀워키 브루어스 42 177 .241 34 3 0 4 19 22 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8 치바 롯데 마린즈 131 487 .290 141
(공동 5위)
27 2 18 77 78 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9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1 1 .000 0 0 0 0 0 0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0 삼성 라이온즈 132 477 .327 156
(5위)
19 1 22 110
(3위)
79 1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5 90 .300 27 4 0 3 11 13 0
2002 125 338 .284 96 13 1 6 30 51 5
2003 103 197 .294 58 12 2 5 31 28 0
2004 125 320 .309 99 18 3 6 57 37 4
2005 108 233 .275 64 12 1 9 42 30 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6 뉴욕 메츠 95 165 .273 45 10 0 2 26 14 6
2007 40 50 .200 10 0 0 1 8 7 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5 40 .250 10 3 0 0 8 1 0
MLB 통산(23시즌) 2527 8677 .298 2586 407 54 173 1194 1285 281
NPB 통산(2시즌) 258 961 .298 286 52 5 28 135 138 18
KBO 통산(1시즌) 132 477 .327 156 19 1 22 110 79 12


[1] KBO에 등록된 생년은 1961년이다.[2] 데뷔 초부터 1987년까지[3] 1988년부터 1991년까지[4] 93, 94시즌[5] 1996년부터 은퇴할 때까지[6] 삼성 라이온즈 시절. 주로 우익수로 뛰었다.[7] 지금 시점에서도 거물급 경력의 소유자인데, 지금보다 비교적 낮게 평가받았던 2000년대 초반에 들어왔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급이 높다던 호세 리마, 펠릭스 호세, 루크 스캇등 보다도 더 뛰어났다. 누적 BWAR가 43.5나 되며, MVP컨텐더급 성적 기준인 WAR 6 이상을 2회나 기록했다.[8] 임팩트까지 고려하자면, 역시 삼성에서 뛰었던 카를로스 바에르가, 투수로는 KIA의 호세 리마 정도가 그 뒤를 잇는다.[9] 단 2019년에 기아 타이거즈 감독으로 맷 윌리엄스가 부임하면서, 감독/코치/선수로서 크보를 거쳐간 모든 선수 중에서 경력이 화려한 것으로 계산하면 두번째로 밀려나게 되었다.[10] 중남미 선수들의 나이는 사실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가 행정력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에 돈 벌러 가기 위해 나이를 속이는 건 흔하고, 심지어는 여권을 위조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입국하는 일도 있다. 암튼 진실은 저 너머에. 그나마 행정력이 잘 갖춰진 베네수엘라 국적 선수는 믿어주는 편.[11] 1위는 화이트삭스 소속 론 키틀, 유감스럽게도 1991년에 일찌감치 야구선수를 그만두고 독립리그 등지에서 코치생활을 하다 얼마 안 되어 야구판을 아예 떠났다. 지금은 벤치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고.(...)[12] 2018년에 추신수가 52경기 연속 출루로 갱신했다.[13] 이 때 상대 투수가 무려 빅 유닛이었다. ㅎㄷㄷ[14] 1930년대생은 필 니크로, 1940년대생은 찰리 허프, 1960년대생은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지막이다. 1970년대생은 2020년대가 되어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15] 이 분야 본좌는 역시 벤 조브리스트이긴 하나 좁노예 조브리스트는 유틸리티인 반면 프랑코는 포지션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다.[16] 14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2014년 2500안타를 돌파한 아드리안 벨트레가 97번째 달성자였으며 현재 명전 입성 가능성이 언급되는 선수이다. 즉,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17] 참고로 3,000안타를 달성한 선수들 중에서는 도박왕두 약쟁이를 뺀 모두가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거나 가입이 확정된 상태다. 데릭 지터의 경우 첫 해 입성은 확정이고 관건은 득표율이다.[18] 김시진, 이만수와 동갑이다... 아니, 실제 출생년도를 감안하면 김일권, 유승안과 동갑이다.[19] 손아섭은 탄산음료도 자제하는 철저한 몸 관리로 유명하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해도 그가 프랑코에게 지적받을 일은 전혀 없다는 의미.[20] 참고로 첫 출근에 감자탕을 먹었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