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로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1998 |
1993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 ||||
1992년 래리 시츠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00타점 |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스왈로즈) 94타점 | → | 1994년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드래곤즈) 107타점 |
1999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 ||||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0타점 |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53타점 | → | 2000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8타점 |
1997년 센트럴리그 최고 출루율 | ||||
1996년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431 |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444 | → |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421 |
1999년 센트럴리그 수위타자 | ||||
1998년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37 |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69 | → | 2000년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46 |
1999~2000년 센트럴리그 최다 안타 | ||||
1998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4안타 |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2안타(1999년) 168안타(2000년) | → | 2001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1안타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2루수 베스트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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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40 | 1947 | 1948 | 1949 | |||
카리타 히사노리 츠바사군 | 치바 시게루 요미우리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치바 시게루 요미우리 | 하코다 히로시 코쿠테츠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이노우에 노보루 주니치 | 츠치야 마사타카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이노우에 노보루 주니치 | 츠치야 마사타카 요미우리 | 코사카 요시타카 히로시마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도이 쇼조 요미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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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모토오 한신 | 쿠나사다 야스히로 히로시마 | 존 시핀 타이요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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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시타 츠요시 히로시마 | 데이비 존슨 요미우리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데이브 힐튼 야쿠르트 | 펠릭스 미얀 타이요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모토이 미츠오 타이요 | 시노즈카 토시오 요미우리 | 마유미 아키노부 한신 | 시노즈카 토시오 요미우리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카다 아키노부 한신 | 시노즈카 토시오 요미우리 |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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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기 유타카 타이요 | 와다 유타카 한신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와다 유타카 한신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타츠나미 카즈요시 주니치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에디 디아스 히로시마 |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 아라키 마사히로 주니치 그렉 라로카 히로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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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마사히로 주니치 | 타나카 히로야스 야쿠르트 | 히가시데 아키히로 히로시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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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케이이치 한신 | 타나카 히로야스 야쿠르트 | 니시오카 츠요시 한신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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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키쿠치 료스케 히로시마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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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료스케 히로시마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마키 슈고 DeNA | 요시카와 나오키 요미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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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혼도 야스시 마이니치 | 야마모토 카즈토 난카이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모리시타 마사오 난카이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사사키 신야 타카하시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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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아키라 니시테츠 | 모리시타 노부야스 난카이 | 잭 블룸필드 킨테츠 | 다릴 스펜서 한큐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다릴 스펜서 한큐 | 쿠나사다 야스히로 난카이 | 돈 블레이싱게임 난카이 | 야마자키 히로유키 롯데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야마자키 히로유키 롯데 | 모토이 미츠오 니시테츠 | 사쿠라이 테루히데 난카이 | 야마자키 히로유키 롯데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바비 마르카노 한큐 | 요시오카 사토루 타이헤이요 | 바비 마르카노 한큐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마자키 히로유키 롯데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 시라이 카즈유키 닛폰햄 | 후쿠라 준이치 한큐 |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 후쿠라 준이치 오릭스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코쿠보 히로키 다이에 |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 코쿠보 히로키 다이에 | 훌리오 프랑코 롯데 | 카네코 마코토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 이구치 타다히토 다이에 | 타카기 히로유키 세이부 | 이구치 타다히토 다이에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호리 코이치 롯데 | 타나카 켄스케 닛폰햄 |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타나카 켄스케 닛폰햄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타나카 켄스케 닛폰햄 | 혼다 유이치 소프트뱅크 | 타나카 켄스케 닛폰햄 | 후지타 카즈야 라쿠텐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타나카 켄스케 닛폰햄 | 아사무라 히데토 세이부 |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 나카무라 쇼고 롯데 | 아사무라 히데토 라쿠텐 | 코부카타 히로토 라쿠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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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번호 6번 | ||||
조 레드필드 (1988) | → | 로버트 로즈 (1989~1992) | → | J.T 스노우 (1993~1996)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등번호 23번 | ||||
R.J 레이놀즈 (1991~1992) | → | 로버트 로즈 (1993~2000) | → | 오가와 히로후미 (2001~2004) |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4번 | ||||
사카이 타다하루 (1997~2002) | → | 로버트 로즈 (2003) | → | 맷 프랑코 (2004~2006) |
<colbgcolor=#fff> 로버트 리처드 "바비" 로즈 Robert Richard "Bobby" Rose | |
출생 | 1967년 3월 15일 ([age(1967-03-15)]세) |
캘리포니아 주 코비나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 85kg |
출신학교 | 샌디머스 고교 |
포지션 | 2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5년 MLB 드래프트 5위 |
소속팀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9~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00) |
[clearfix]
1. 개요
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일본프로야구 선수.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소속으로 뛰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짧은 전성기를 이끈 외국인 선수.2. 선수 시절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21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하여[1] 1992년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콜업 기회가 줄어들자 199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했다.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야수로서는 드물게 2루수[2][3]로 8년을 뛰면서, 통산 .325의 고타율과 4할 이상의 출루율로 베스트나인 6회에 선정되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머신건 타선[4]의 중심에서 요코하마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입단 초창기엔 같은 시기에 요코하마에 입단한 신시내티 레즈의 1990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글렌 브랙스가 거물 용병으로 더욱 주목을 끌었으나, 그럼에도 브랙스와 함께 주전 중심타자 자리를 지키며 요코하마 타선을 이끌면서 이적 첫해인 1993년 94타점으로 타점왕을 수상하였고[5], 이후 브랙스가 1996년 부상 및 성적부진으로 은퇴하자, 바로 붙박이 4번 타자 자리를 꿰차며 요코하마 전성기의 중심타자로써 대활약을 펼쳤다.
몬스터 시즌이었던 1999년의 성적이 적힌 야구 카드.
요코하마의 일본시리즈 우승 시즌인 1998년 .325/.413/.516 19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며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더불어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요코하마가 팀타율 .291을 기록한 '머신건 타선'의 절정을 찍은 해였는데, 로즈는 그 해 타율 .369/OPS 1.093[6] 192안타 37홈런 153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수위타자와 타점왕,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한다. 이 해 기록한 192안타는 2005년 아오키 노리치카가 202안타를 칠 때까지 센트럴리그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이었으며, 153타점은 1950년 쇼치쿠 로빈스[7]의 코즈루 마코토[8]가 기록한 161타점을 잇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역대 2위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괴물 같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해 MVP 투표에선 주니치 드래곤즈 선수진의 우승 버프에 밀려 1위 표를 고작 1개만 받은 채 5위에 그쳤다.[9] 투표 출처
2000년에도 타율 .328/168안타로 최다안타, 타율 2위[10]를 기록하는 등 여전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즌 후 재계약 협상에서 연봉 5억 엔+다년 계약을 요구한 로즈와 단년 계약을 제시한 요코하마 구단[11]과의 의견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어 8시즌 동안 뛰어온 요코하마를 떠나게 되었다. 요코하마 퇴단 직후 로즈를 영입하려는 일본 내 타 구단의 러브콜도 있었으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은퇴를 선언, 미국으로 귀국해버린다.
이후 2년간 소속팀 없이 트레이닝만 계속하면서 지내오다가, 2003년에 치바 롯데 마린즈와 연봉 8천만엔의 단년 계약을 맺고 다시 일본으로 왔다. 하지만 2년간 야구에 손을 놓았던 데다 당시 나이도 36세로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연습시합에서 계속 무안타에 머무르는 등 스프링캠프 시작 때부터 노쇠화가 뚜렷한 모습을 보였고, 때마침 가족들까지 외지 생활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결국 입단한 지 채 1개월도 안되어 돌연 "야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란 말을 남기고 캠프 도중 퇴단, 역대 최단기간 퇴단 기록(28일)만 남긴 채 그대로 다시 은퇴하고 만다. 치바롯데 팬들에게는 먹튀로서 기억되는 원인. 여담으로 로즈가 퇴단을 선언하면서 주포 자리가 비워지게 된 치바 롯데는 로즈의 대타로 황급히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호세 페르난데스를 영입하게 된다.
3. 기타
- 터피 로즈와 같은 시대에 뛰었는데, 등록명의 발음만 같을 뿐[12] 인종(백인/흑인), 포지션(2루수/외야수), 플레이스타일(중장거리형 교타자/슬러거)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반대된다는 점이 주목을 끌기도 했다.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
- 현역 시절 응원가는 당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응원가[13]답게 로즈의 응원가 역시 팬들 사이에서 명곡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요코하마의 찬스 테마[14]로 쓰이고 있다.
- 은퇴 뒤에는 콜로라도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야구 코치를 했다고 하며, 2013년부터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쇼트시즌 싱글 A 구단인 스포케인 인디언스에서 타격코치를 맡았다. 2014 ~ 2017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들을 주로 돌며 코치 생활을 했고 2017년 ~ 2019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들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 2012년 팀 이름이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바뀐 뒤 가진 첫 홈 개막전에서 1998년 우승의 일등공신이자 팀의 간판이었던 마무리 투수 '대마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대결했다. 그리고 암흑시대를 사는 요코하마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15]
4. 관련 문서
[1] 드래프트 동기들을 보면 배리 라킨(1라 4순위), 배리 본즈(1라 6순위), 라파엘 팔메이로(1라 22순위), 랜디 존슨(2라 36순위), 데이비드 저스티스(4라 94순위), 채드 크루터(5라 109순위), 디온 샌더스(6라 149순위), 알 마틴(9라 198순위), 브래디 앤더슨(10라 257순위), 보 잭슨(20라 511순위), 존 스몰츠(22라 574순위), 짐 애보트(36라 826순위) 등이 있다. 심지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14라운드 359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다음해 NBA로 간 델 커리도 있다.[2]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용병 2루수로는, 로즈 이외에도 쿠바 출신으로 50~60년대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빠른 발과 화려한 수비로 활약한 로베르토 바르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전신인 타이요 훼일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친 거포 2루수 존 시핀, 한큐 브레이브스와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약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바비 마르카노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2루수나 유격수 등 센터 내야수로서 데뷔한 외국인 선수들은 많았으나, 대부분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커리어를 거치면서 타격을 살리거나 자국인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다는 이유로 3루수, 1루수, 코너 외야수나 지명타자 자리로 이동하였다.[3] 1996년에 신임 감독으로 취임한 오오야 아키히코의 내야 수비진 변혁 구상에 의해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기도 했으나, 3루 수비에서 필딩률 .962에 그치는 등 난조를 보이면서 본래 2루수를 맡을 예정이었던 신도 타츠야에게 3루 자리를 내주고 2루수로 돌아왔다. 대신 3루수-유격수 포지션을 서로 맞바꾸게 된 이시이 타쿠로와 신도 타츠야가 새로운 포지션에 잘 정착하면서 이 구상은 성공을 거두었다.[4] 당시 요코하마 타선은 이시이 타쿠로 - 하루 토시오의 호타준족 리드 오프, 스즈키 타카노리 - 로버트 로즈 - 코마다 노리히로의 출중한 장타력, 교타력을 겸비한 중심타선, 그 뒤를 받치는 하위타선엔 사에키 타카히로, 나카네 히토시, 타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타츠야와 같이 상위타선으로 가기엔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쓸만한 타격을 갖춘 선수들이 자리잡는 등, 전 타순을 막론하고 타격이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컨택이 나빠서 주로 8번에 선 신도 타츠야를 빼면 대부분 3할 초중반대의 고타율을 노릴 수 있는 컨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한 시즌 10여개 언저리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적당한 장타력과 안타 머신으로써의 연타력까지 지닌 교타자들이었으며, 이 타자들이 머신건(기관총)처럼 안타를 연발하며 상대팀을 날려버리는 것이 당시 요코하마의 공격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1997~2000년까지 센트럴리그 수위타자(2000년 수위타자는 위의 중심멤버보다는 뒷 세대인 재일교포 스위치 히터 킨죠 타츠히코였다.)가 모두 요코하마에서 배출된 것은 당시 요코하마 타선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던 일화. 자세한 설명은 참고[5] 같은 해 브랙스도 타율 .345/OPS 1.051에 28시합 연속 안타로 외국인 선수 연속안타 신기록을 세우고 1979년 타카하시 요시히코가 수립한 33시합 연속안타 기록까지 넘보는 대활약을 펼쳤지만, 전반전 종료 직전에 새끼손가락 골절상으로 시즌아웃되며 기록 갱신에 실패한 채 아쉽게 데뷔 시즌을 마쳤다.(그런데 전반전 시즌아웃임에도 19홈런으로 로즈와 팀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대신 다음 해인 1994에 건강하게 돌아와 35홈런, OPS 1.023으로 건재를 과시하며 베스트나인을 수상했고 이후 1996년까지 요코하마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6] 당해 센트럴리그 OPS 1위는 44홈런으로 홈런왕을 수상한 로베르토 페타지니(1.146)였다.[7] 1952년에 요코하마의 전신인 타이요 훼일즈와 합병했다.[8] 1922~2003.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시즌 최다타점(161) 기록 외에도 시즌 최다득점(161), 시즌 최다루타(376), 10경기 연속 타점 기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앞의 기록들은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1950년에 기록했으며 이 해 51개의 홈런을 날리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5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타율 0.355, 51홈런 161타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홈런왕, 타점왕, MVP를 차지했으나 타율 0.362를 기록한 후지무라 후미오에 밀려 타격 3관왕엔 실패하고 말았다.[9] 당해 센트럴리그 MVP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 투수 노구치 시게키가 수상했는데 이 시즌 노구치의 성적은 29등판 203.2이닝 19승 7패 145K ERA 2.65으로, 뛰어난 성적임에는 분명했지만 앞서 서술한 로즈와 더불어 MVP 투표 2위이자 당해 센트럴리그 신인왕이었던 우에하라 코지가 25등판 197.2이닝 20승 4패 179K ERA 2.09로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 탈삼진 1위를 기록하며 노구치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것을 고려하면 주니치의 우승 버프가 MVP 고득표에 크게 작용했음이 자명했다. 실제로 당해 MVP 투표에서도 노구치는 우에하라보다 1위 표를 21개나 적게 받았으나 대신 2위 표를 배로 받으면서 총합 점수에서 우위를 차지해 MVP 수상에 성공했으며 MVP 득표수 상위 5위 중 3명을 주니치 선수진(노구치, 세키카와 코이치, 레오 고메스)이 차지했다.[10] 당해 센트럴리그 수위타자는 앞 각주에서 상술한 같은 팀의 킨죠 타츠히코(.346)가 수상했으며, 이 해 킨죠는 스위치 히터 타율 최고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리그 신인왕도 수상했다.[11] 당시 요코하마는 마루하에서 TBS테레비로 모기업이 바뀌면서 수뇌진들이 잇달아 교체되는 등 다소 어지러운 시기였고, 애시당초 구단 자체가 본래부터 재정에 여유가 별로 없던 데다 로즈의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언제 하락세가 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다년계약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12] 성(姓)도 다르다. 로버트 로즈는 Rose, 터피 로즈는 Rhodes.[13] 현역 당시 팀 동료들이었던 이시이 타쿠로, 스즈키 타카노리, 코마다 노리히로의 응원가들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명곡들로 칭송받는다.[14]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거나 역전, 끝내기가 기대되는 상황일 때 응원단이 트는 노래/구호이다.[15] 포수는 1998년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자, 前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인 타니시게 모토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