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4 21:17:42

채드 크루터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3876512325_e82604b4fd.jpg
이름 채든 마이클 크루터
(Chadden Michael Kreuter)
출생 1964년 8월 26일 ([age(1964-08-26)]세)
캘리포니아주 그린브래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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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양타
신체 188cm, 86kg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109순위
텍사스 레인저스 지명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1988~199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92~1994)
시애틀 매리너스(1995)
시카고 화이트삭스(1996~1997)
애너하임 에인절스(1997)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너하임 에인절스(1998)
캔자스시티 로열스(199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0~2002)
텍사스 레인저스(2003)
지도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2006~)

1. 개요2. 커리어3.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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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최전성기 시절 박찬호의 전담포수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1]

2. 커리어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받아 프로생활을 시작한 크루터는 메이저리그 커리어동안 텍사스 레인저스(1988~1991, 200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92~1994), 시애틀 매리너스(1995), 시카고 화이트삭스(1996~1997), 애너하임 에인절스(1997~1998), 캔자스시티 로열스(199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0~2002) 총 7개의 팀을 옮겨다녔다.

199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타율 .286 15홈런 51타점을 기록하였지만, 타격에서는 그다지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다. 메이저리그 통산기록은 944경기 593안타 54홈런 274타점 타/출/장 .237 .335 .357 OPS .692.

2000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크루터는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전성기 박찬호의 전담포수로 활약하면서 국내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다저스의 주전포수진이 토드 헌들리, 폴 로두카같은 공격력은 빼어나지만 수비력은 영 아쉬운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크루터는 준수한 리드실력과 수비력으로 박찬호의 전담포수로 낙점받는다. 이 때문에 주전포수였던 로두카는 박찬호 선발등판 경기에선 1루수3루수로 나오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팬들은 다저스를 물타선이라고 욕한 적이 많았지만 이는 박찬호가 자초한 면도 있다. 포수로서 OPS 9할을 넘기는 파괴력을 갖춘 헌들리와 로두카가 박찬호 경기에선 나오지 못했으니...[2]

박찬호와 호흡을 맞춘 2000~2001년 통틀어 단 3개의 에러를 기록했고 어깨도 출중해서 2000년 48%, 2001년 37%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해 수비형 포수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호흡을 맞춘 포수중에 소화이닝수가 1위이며, 박찬호 등판경기에서 크루터는 통산 0.571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3]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떠난 이후엔 크루터도 박찬호와의 인연 때문인지 2003년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맺고 잠시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

3. 은퇴 이후

2006년 6월엔 그의 장인이자 전임 감독이었던 마이크 길레스파이(Mike Gillespie)가 은퇴한 후, 야구명문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야구팀(USC Trojans baseball)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박찬호가 그와의 친분 덕분에 2007년에 USC에 와서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박찬호와 사이가 틀어졌는데, 2009년 12월에 박찬호가 빌려간 돈을 갚으라며 크루터를 LA 카운티 상급법원에 고소했다. 기사 2005년에 박찬호가 크루터에게 빌려준 46만 달러 중에 29만 달러만 크루터가 갚고 17만 달러는 갚지 않은 것.[4]

하지만 2011년엔 박찬호가 크루터에 대한 고소를 취하함으로써 대인배 인증을 했다.기사

2020년 현재 뉴욕 메츠 산하 AAA 팀인 시라큐스 메츠의 감독으로 있다.

[1] 국내에서는 마이크 피아자가 박찬호의 전담포수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팬이 많으나, 박찬호의 전담은 크루터였다. 이는 피아자가 워낙에 유명선수이기도 하고 크루터 이전과 샌디에이고 시절에 박찬호와 배터리를 맞춘 경기가 많기 때문인 듯 하다. 실제로 박찬호의 공을 받은 이닝 수로는 크루터가 앞서지만 경기 숫자로는 피아자가 앞선다.[2] 그러나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채드 크루터의 다저스 시절 3시즌 타/출/장/OPS는 2000시즌 271타석 .264/.416/.410/.827, 2001시즌 234타석 .215/.355/.377/.732 2002시즌 기록은 .263/.333/.379/.712로 헌들리,로두카만큼의 장타력은 없어도 출루능력이 있어서 타격이 떨어지는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02시즌은 박찬호가 텍사스로 떠난 이후라 출장기회가 줄어들어 기록을 까먹은 걸 고려해도 크루터와 같이 뛴 것이 박찬호에게 절대 불리하지만은 않았다.[3] 이는 박찬호의 주자 견제 능력이 뛰어난 면도 있다. 물어깨라고 놀림받던 마이크 피아자도 그렇고 박찬호와 호흡을 맞춘 많은 포수들은 자신의 커리어 평균보다 더 높은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4] 여담으로 크루터는 빅리그 16시즌동안 $8,087,000를 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