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14 01:27:20

폴 로두카

파일:external/www.dodgersbeat.com/Paul-Lo-Duca.jpg
폴 앤서니 로두카
Paul Anthony Lo Duca
출생 1972년 4월 12일 ([age(1972-04-12)]세)
뉴욕 주 브루클린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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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드래프트 25라운드 (전체 690번,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8~2004)
플로리다 말린스 (2004~2005)
뉴욕 메츠 (2006~2007)
워싱턴 내셔널스 (2008)
플로리다 말린스 (2008)

1. 개요2. 경력3. 미첼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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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던 포수 출신의 야구 선수. 어깨가 심히 소녀 어깨라서 도루저지율이 2할5푼을 찍기도 버거웠다는 점만 제외[1]하면, 수준급의 타격능력을 바탕으로 4차례나 리그 올스타에 오른 A급 포수였다.

하지만 2007년 미첼 리포트의 발간과 스테로이드 복용이 폭로되면서 스테로이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남았다. 게다가 이쪽은 다른 선수들에게 약물 복용을 권하는 몹쓸 짓까지 저질러 더욱 질이 나쁘다.

2. 경력

이미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시절부터 타격 소질 하나는 뛰어났기에[2] 1993년 드래프트 25라운드에서 다저스가 그를 지명한다. 문제는 그가 지명되던 시점에서 다저스의 안방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바로 갓 포텐을 터뜨린 마이크 피아자였다는 것. 대학교 졸업 후 프로행을 택한 로두카는 다저스 입단 당시에 이미 24살이었지만 피아자로 인해 하염없이 마이너리그를 달구고 있어야만 했고, 피아자가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에야 메이저리그 데뷔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00년 콜업 된후 눈도장을 찍은 후에 2001년부터는 주전 자리를 꿰찬[3] 로두카는 피아자와 달리 거포는 아니었지만, 정교한 타격[4]과 준수한 수비를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한다. 2004 시즌 중간에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5]되었고 말린스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2003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또 한번 페이롤 절감을 위해 파이어 세일을 단행하던 말린스에게, 로두카는 너무나 고액연봉자였고 2005 시즌 종료 이후 다시 같은 지구의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아자도 그렇고, 다저스에서 좋은 포수가 나오면 꼭 플로리다를 거쳐 메츠로 가는것 같다. 메츠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올스타에 선출되었고, 메츠의 2006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이끌었지만 2007년부터 부상으로 인해 급격히 포수 능력이 하락[6]하면서 메츠는 로두카를 잡지 않기로 결정한다. 로두카에게 러브콜을 날린 곳은 역시나 같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워싱턴 내셔널스. 1년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지만 망했어요. 부상으로 골골 거리면서 제대로 된 활약도 펼치지 못하다가 8월에 그대로 방출된다. 이후 친정팀 말린스로 돌아가 2달 정도 잠깐 활약을 펼쳤지만, 공수 모두에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하는 구단은 없었고 2009년 한 해를 무직[7]으로 지내면서 그렇게 은퇴하나 싶었다. 그런데 2010 시즌을 앞두고 백업포수를 구하던 콜로라도 로키스와 다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이미 뚜렷하게 진행중이었던 하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시즌 중간에 방출된 뒤 은퇴를 선언한다.

3. 미첼 리포트

2007년 12월 미첼 리포트가 발간되었고, 여기서 폴 로두카는 성장 호르몬 복용자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뉴욕 메츠의 트레이너였던 커크 래돔스키에게 3000불 가량을 지불하고 약물을 구입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근데 이 정황이 로두카의 자필 서명이 담긴 영수증이었다. 심지어 래돔스키의 집에서 발견된 만큼, 사실상 약쟁이 확정. 여기에 한 술 더떠서 로두카는 래돔스키에게 다저스 시절 동료였던 케빈 브라운[8]에릭 가니에 등을 소개시켜준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한참 동안 자신의 약물복용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로두카는 2013년에야 자신의 약물복용을 시인했다. 그런데 이 시인 발언이 굉장히 미묘한 뉘앙스여서 또 욕을 먹었다. "나는 성장호르몬을 복용했고 그게 썩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약물을 복용한다고 해서 누구나 레전드급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I took PEDs and I'm not proud of it..but people that think you can take a shot or a pill and play like the legends on that ballot need help.)"


[1] 그것도 말년에나 부상 탓에 그랬지 데뷔 초창기에는 도루 저지율 1위를 먹기도 했다.[2] 대학교 리그에서 4할 타율을 찍어서 MVP에 뽑히기도 했고, 3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3] 2001년에는 전담 포수를 둔 박찬호 때문에 박찬호 등판하는 날에는 주로 1루를 봤다.[4] 이 점에서 다저스의 또다른 명포수 출신인 마이크 소시아와 비슷했다.[5] 여담으로 이 때 로두카의 상대로 다저스에 온 선수가 최희섭이다. 물론 1대1 트레이드는 아니었고 최희섭 외에도 브래드 페니와 몇몇 마이너 유망주가 포함된다.[6] 그래서 이 시기부터 포수뿐만 아니라 1루와 외야도 겸직하기 시작한다.[7] 선수로 뛸 팀을 못 구했을 뿐이지 해설가로 활동했다.[8] 이 쪽은 약인지도 모르고 속아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