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12 15:06:33

윌리 모 페냐

이름 윌리 모데스토 페냐 구티에레즈
(Wily Modesto Peña Gutierrez)
생년월일 1982년 1월 23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포지션 1루수, 외야수[1]
학력 Laguna Salada Escuela[2]
프로입단 199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뉴욕 양키스)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2002~2005)
보스턴 레드삭스(2006~2007)
워싱턴 내셔널스(2007~2008)
브릿지포트 블루피쉬[3](201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11)
시애틀 매리너스(201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2~2013)
오릭스 버팔로즈(201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5)
치바 롯데 마린즈(2017)
응원가 Bomb The Music Industry!-25![4]

1. 개요2. 메이저리그 시절
2.1. 신시네티 레즈 시절
2.1.1. 2004 시즌2.1.2. 2005 시즌
2.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2.1. 2006 시즌2.2.2. 2007 시즌
2.3.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2.4. 독립 리그/AAA 시절2.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2.6.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3. 일본프로야구 시절
3.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3.1.1. 2012 시즌3.1.2. 2013 시즌
3.2.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3.2.1. 2014 시즌
3.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3.3.1. 2015 시즌
3.4.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4.1. 2017 시즌
4. 그 후5. 플레이 스타일6. 역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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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7년 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식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의 전 야구선수.

2. 메이저리그 시절

원래 어마어마한 기대를 받았던 초고교급 유망주였다. 1998년 당시 그는 만 16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유계약 선수 중 역대 최고액이라는 4년 370만 달러[5]라는 거액을 받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여 1999년부터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2년 만에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2.1. 신시네티 레즈 시절

2002년.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다음 해인 2003년부터 공갈포의 재질을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80경기에서 타율 .218에 5홈런 16타점을 기록한다.

2.1.1. 2004 시즌

2004년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의 부상 덕분에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하였다.

이 해에 페냐는 마이너 강등없이 풀 타임으로 뛰는 데 성공하였는데, 시즌 최종 성적은110경기 26홈런 66타점 타율 .259로 겉보기에는 매우 준수한 성적이지만 실상은 22볼넷 108삼진으로 선구안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선풍기질을 했다.[6] 덕분에 OPS도 8할 대 중반에 그쳤다.

2.1.2. 2005 시즌

2004년의 활약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한 이 해는 한달 좀 넘게 DL을 가는 바람에 99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그래도 19홈런 51타점으로 슬러거로써의 활약은 충분히 해줬다. 하지만 볼삼비는 20볼넷 116삼진으로 거의 눈 감고 휘두르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타율은 .254로 작년과 별 차이 없었으나 19홈런이나 친 슬러거임에도 불구하고 OPS 7할대의 기록을 찍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2.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006년 WBC 도미니카 공화국 국대로 선발되었고, 시즌 개막 전에 브론슨 아로요와 트레이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가게 되었다.

2.2.1. 2006 시즌

84경기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해에는 안타를 그럭저럭 치고, 볼삼비도 20볼넷 90삼진으로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타율이 .301이 되었다. 커리어 내내 그가 3할 타율을 기록한 해는 이 해가 유일.

그러나 장타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11홈런 42타점에 장타율 .489로 OPS 기록경신은 실패하였다.

2.2.2. 2007 시즌

73경기에서 5홈런 17타점 타율 .218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찍고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3.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그러나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된 후반기에는 갑자기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전 좌익수 자리를 꿰차고 37경기에서 8홈런 22타점 타율.293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이 끝난 후 1년 200만 달러에 재계약했으나, 2008년 시즌에 64경기 2홈런 10타점 타율 .205로 먹튀행각만 벌이고 다음 해 시범경기 도중에 칼같이 지명할당.

2.4. 독립 리그/AAA 시절

결국 2년 동안 그는 마이너 리그, 독립 리그 등을 떠돌아야만 했다. 2009년에는 6월달에 뉴욕 메츠 마이너리그에서마저 방출되는 바람에 그 해 시즌 내내 야구를 쉬었고, 2010 시즌이 시작하고도 팀을 구하지 못하다가 2010년 5월 말에 결국 독립 리그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마이너를 거쳐 2010년 시즌이 끝난 직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게 된다.

2.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2011년 시즌은 AAA에서 시작했는데, 63경기 21홈런 타율 .363으로 AAA를 그야말로 산산조각을 내버리고 6월달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메이저에서도 17경기에서 5홈런을 칠 정도로 장타력은 여전히 살아있었으나, 타율은 .196으로 역대 최악이었고, 홈런은 5개인데 타점은 7개일 정도로 심각한 공갈포의 모습만 보여주는 바람에 한 달만에 또 지명할당되었다.

2.6.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다행히도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를 데려간 덕분에 메이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단에서 주전 지명타자 자리까지 내주면서 얻은 마지막 기회마저 22경기 2홈런 8타점 타율 .209로 날려먹었다. 결국 또 지명할당되었다.

끝내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일본프로야구로 눈을 돌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약 125만 달러에 1년 계약을 맺었다.

3. 일본프로야구 시절

3.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3.1.1. 2012 시즌

홈런을 1개씩 칠 때마다 2만 5천엔을 도호쿠 대지진 부흥 지원 재단에 기부한다고 하였다.

이 해 성적은 130경기 타율 .280 21홈런 76타점 장타율 .490 35볼넷 130삼진으로 볼삼비는 메이저리그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판이다. 21홈런이라는 숫자가 적어 보이지만 그래도 홈런 4위를 기록했다. 장타율 1위는 덤.[7][8]

이 해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에 지명타자로 뽑혔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였다.

3.1.2. 2013 시즌

그러나 작년의 활약과 다르게 이 시즌은 그냥 먹튀. 같은 해에 이대호는 3할 타율에 24홈런을 쳤는데 페냐는 꼴랑 1홈런이 전부다. 시즌 성적은 55경기 1홈런 16타점 타율 .233 장타율 .307. 똑딱이 수준의 처참한 장타율을 보여주고 결국 칼같이 방출당했다.

후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무릎 부상 때문에 5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고 한다.

3.2.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자유계약 상태가 된 페냐에게 손을 뻗은 팀은 이대호소프트뱅크에 빼앗겨서 새로운 외인거포를 찾던 오릭스 버팔로즈. 1년 약 10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3.2.1. 2014 시즌

라이벌이라고 봐도 좋은 이대호와 팀을 뒤바꾸어서 치른 첫 시즌. 페냐는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140경기에서 타율 .255에 32홈런 90타점으로 커리어 사상 최다 홈런이자[9] 일본프로야구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심지어 그동안 눈 감고 휘두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볼삼비도 59볼넷 124삼진으로 볼넷이 삼진의 1/2 수준까지 올라왔다. 평소에 볼넷이 삼진의 1/4~1/6(!)까지 기록하던 페냐였기에 이 성적은 매우 발전한 것. 특히 득점권 타율이 .297로 평균 타율에 비해 4푼이나 높았다.

거기다가 이대호는 이 해 19홈런 68타점에 그치며 일본프로야구 경력 중 역대 최악의 해를 보냈다. 타율은 3할로 투고타저인 일본야구를 감안하면 타격 자체는 좋았지만 홈런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못한 해였다. 2014년의 중심타선을 맡아줄 용병으로써의 역할은 페냐의 완승.

구단에서는 재계약을 원했고, 페냐도 재계약을 하고 싶어 했으나, 세부 조건이 맞지 않아서 결국 협상 결렬. 페냐는 결국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하였다.

3.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3.3.1. 2015 시즌

구단에서 매우 큰 기대를 가지고 영입했던 선수여서 그런 건지 페냐가 같은 해에 라쿠텐에 입단한 외국인 선수 케니 레이의 번호를 자신에게 달라는 조금 무리한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좋아진 선구안이 작년만의 플루크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 해에는 70볼넷 111삼진을 기록했다. 이 선수의 볼넷 개수X2가 삼진 개수보다 많은 시즌은 이 시즌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득타율이 많이 떨어졌고, 장타력이 예전에 비해서 떨어졌는지 홈런 갯수가 거의 절반 가까이로 급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0]

시즌 성적은 125경기 타율 .268 17홈런 40타점. 출루율이 .396으로 5푼 이상 오르며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11] 장타율은 .448로 거의 4푼 가까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타율과 출루율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홈런 생산력 때문에 재계약에 실패하여 일본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로 1년 동안 팀을 구하지 못하면서 야구를 이렇게 은퇴하나 싶었지만, 2017년 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야구를 쉬나 했더니...

3.4.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4.1. 2017 시즌

35살 먹은 외국인 노년가장
외인 타자이 모두 맛이 가 버린 치바 롯데 마린즈와 1년 3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참고로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2017년 9월 29일 기준 페냐를 제외한 3명이 친 홈런을 다 합치면 17개[12]

롯데에 입단한 후 페냐는 일본에서 4년을 뛰었던 베테랑답게 처음 일본에 와서 낯선 일본 문화를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나머지 3명의 용병의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 그리고 팀의 4번 지명타자를 맡게 되었다. 특히 문화권이 겹치는 로엘 산토스지미 파레디스는 페냐가 롯데에 입단한 이후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인터뷰할 정도로 팀 내 용병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

9월 29일 기준 65경기에서 13홈런 35타점 타율 .246을 기록중. 볼삼비는 22볼넷 67삼진으로 오릭스, 라쿠텐 시절보다는 다시 선풍기화됐지만 그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괜찮아진 모습을 보이며 카쿠나카 카츠야, 스즈키 다이치와 함께 박살나다 못해 증발해버린 치바 롯데 마린즈 타선을 지탱하고 있다. 참고로 중간에 영입된 선수인데도 2017 시즌 치바롯데 홈런 1위이다!

9월 30일 14호 홈런을 쳤다.

9월 18일에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 팀에서는 천관위와 함께 페냐에게 재계약 제안을 할 것이 밝혀졌다.

10월 1일 15호 홈런을 쳤다. 이틀 연속 홈런. 팀은 9회초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10월 9일 대타로 출전해서 사사구 하나를 얻어 출루하였다. 이날 지미 파레디스가 시즌 10호 쓰리런과 적시타를 치면서 2안타 4타점으로 활약했는데 페냐가 파레디스 본인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고향 동생이라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는 듯. 지미 파레디스가 엄청난 먹튀를 해 놓고도 구단에서 재계약 고민을 하는 것도 페냐와의 케미스트리 덕분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

시즌 최종 성적은 70경기 타율 .242 15홈런 38타점. 타율이 조금 아쉽지만 풀 시즌을 뛰었다면 알프레도 데스파이네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팀에선 재계약을 하겠다고는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12월 2일 자유계약 공시가 되었다. 연봉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듯.

아무 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계약 결렬인 듯.

4. 그 후

모국인 도미니카에서 개인 트레이닝 중이라고 한다. 아직 은퇴할 생각은 아닌듯. 그러나 2017년 이후로 팀을 구하지 못한 걸 보면 결국 은퇴하지 않을까 싶다.

5. 플레이 스타일

1000타석 이상 소화한 역대 메이저리거 중 컨택율이 뒤에서 5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공갈포 스타일. 하지만 데뷔 초창기에는 메이저리거들로부터 시즌 35홈런도 가능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장타력은 메이저리거 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않다. 장타력이 얼마나 좋냐면 145M짜리 대형 홈런도 친 적 있다. 이 홈런은 메이저리그 역대 홈런 중 비거리 탑 5에 들어간다. 다만 강력한 파워에도 불구하고 플라이볼보다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13]를 많이 날리는 스타일이라 의외로 일본에서조차 30홈런은 단 한 차례 기록했다. 20홈런을 넘긴 시즌도 그렇게 많지 않다. 싱글 A 시절 한번(26홈런), 트리플 A 시절 한번(25홈런), 2004년 메이저리그에서 한번(26홈런), 소프트뱅크에서 한번(21홈런), 오릭스에서 한번(32홈런). 통산 290홈런을 친 슬러거지만[14] 시즌 평균 홈런은 15개 수준이다.

빠른 패스트볼과 몸쪽 공에 강하고, 바깥쪽 공에 약하다고 한다. 외야수 수비력은 어깨는 강하지만 타구판단이 좋지 않고 송구 방향을 잘 못 잡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에서는 주로 지명타자로 뛴다. 또한 120kg 가까이 나가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발이 빠른 편이다. 좌익수 플라이 상황 때 1루에서 2루로 태그업을 할 정도.

6. 역대 성적

역대기록[15]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2 소프트뱅크 호크스 130 461 .280 129 30
(2위)
2 21
(4위)
76
(4위)
52 2 43 130
(1위)
.339 .490
(1위)
2013 55 150 .233 35 6 1 1 16 8 0 20 52 .322 .307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4 오릭스 버팔로즈 140 502 .255 128 20 0 32
(3위)
90
(2위)
68 2 69 124 .344 .486
(5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5 도호쿠 라쿠텐 125 406 .268 109 20 1 17 40 51 1 86
(2위)
111 .396
(4위)
.448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7 치바 롯데 마린즈 70 219 .242 54 14 0 15 38 24 0 31 72 .333 .511
NPB 통산(5시즌) 520 1738 .261 454 90 4 86 260 203 5 249 489 .353 .466


[1] 2017년 현재는 지명타자 위주로 출장.[2]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고등학교.[3] 독립 리그.[4] 윌리 모 페냐~ 라라라라~ X2 가사가 일본 응원가 답지 않게 매우 심플하다. 원래 크레이그 브라젤과 스미 코타가 썼던 응원가였다.[5] 현재 물가로도 40억 수준이다! 하물며 1990년대 후반 시절에는 상당한 금액이다.[6]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고도 남는다는 파워를 가졌으나 선구안이 쓰레기라서 한 순간도 콜업되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난 에르네스트 메히아보다도 선구안이 나쁘다! 다만 에르네스트 메히아는 마이너리그 기록이고 페냐는 메이저 기록이라 비교가 어렵지만.[7] 참고로 이대호가 이 해에 24홈런 91타점 타율 .286 장타율 .478을 기록하면서 홈런 2위 타점 1위 장타율 2위를 찍었다.[8] 공교롭게도 이대호는 2012~2013 2년간 오릭스에 있다가 2014년 소프트뱅크로 이동했는데, 페냐는 2012~2013년 소프트뱅크에 있다가 2014년 오릭스로 떠났다.[9] 메이저에서도 30홈런을 친 해는 없었다.[10] 그렇다고 똑딱질만 했던 것은 아닌게, 홈런 갯수는 급감하였으나 2루타 갯수는 2014년과 똑같이 20개였다.[11] 페냐가 출루율이 3할 5푼을 넘긴 해는 이 해가 처음이다.[12] 참고로 시즌이 다 끝난 후 따져보니 19개였다. 파레디스가 두개 더 쳤다.[13] 100명의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최고의 파워히터를 묻는 질문에서, 페냐를 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의 엄청난 속도를 지적했다.[14] 메이저, 마이너, 독립 리그, 일본프로야구, 도미니카 프로야구까지 합친 기록.[15] NPB 기록만 기재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