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fff> 구분 |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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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colbgcolor=#d70c19><colcolor=#fff> 명칭 | 한글: 일본프로야구 |
| 영문: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 |
| 일본어: 日本プロ野球 | |
| 종목 | 야구 |
| 창설 | 1936년([age(1936-01-01)]주년)[1] |
| 개편 | 센트럴 리그: 1950년 1월 1일 ([age(1950-01-01)]주년) 퍼시픽 리그: 1950년 1월 1일 ([age(1950-01-01)]주년) |
| 국가 | |
| 운영 주체 | 일본야구기구 |
| 커미셔너 |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2022~) |
| 최근 우승 구단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5) |
| 최다 우승 구단 | 요미우리 자이언츠 (22회) |
| 링크 | |
1. 개요
| <nopad> | |
세계 스포츠 리그 수익 13위를 기록하며,[2] MLB에 이은 세계 2위의 야구 리그이다. 일본에서는 가장 많은 인기를 차지하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2. 인기
| <nopad> |
| 2023년에 집계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일본프로야구, KBO 리그 평균 관중 수이다. |
2024년 기준 전 세계 누적 관중 수 2위 리그. (총 26,681,175명 직관, 미국 MLB에 이어 세계 2위 리그)[5]
일본프로야구는 1936년 출범한 이후 일본에서 제일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다음인 세계 2위의 프로야구 리그이다. 야구가 국기인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 리그로 자리잡고 있다.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 나누면 센트럴 리그가 1,384만 명, 퍼시픽 리그가 1,113만 명이다. 즉 12개 구단으로 구성된 리그가 구단당 1년에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고 있고, 이를 경기당 숫자로 환산하면 각 구단이 매 경기 평균 2만 6천 명 정도를 동원한다.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관중 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2016년 경기당 평균 관중 동원이 21,000명 수준인데, 이는 같은 해 KBO 리그 관중 동원 1위인 두산 베어스를 능가하고 MLB 최하위권 구단들보다도 확실히 많다. 또한 치바 롯데와 두산이 가지고 있는 배경 인구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관중 동원력은 더 차이가 난다. NPB 측에서는 이 정도 관중 동원도 부진하다면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롯데 등 비인기 팀들에게 관중을 좀 더 동원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관중 수 집계는 출범 첫 해인 1993년부터 실제 입장 수 기준으로 관중 수를 집계하고 있는 J리그와 달리 2005년부터 실제 입장 수대로 관중 수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26,681,715명으로 신기록[6]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KBO 리그도 천만 관중을 돌파하며 두 나라의 야구 인기가 정점을 찍었다.
총 12개의 팀이 있는데 모든 팀이 KBO 리그와 유사하게 모기업을 끼고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들 기업들의 규모가 KBO 리그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작다는 인식이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그룹은 12구단 중 최고의 자금력을 자랑하는 명백한 대기업이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운영하는 라쿠텐도 최근엔 경영 위기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가 많으나 엄연히 전자상거래 발전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오릭스 버팔로즈를 운영하는 오릭스 역시 미즈호, MUFJ, SMBC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초 대규모 은행들에 비해 규모가 작을 뿐이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 마스터카드보다 큰 규모의 금융회사이다. 한신 타이거스를 운영하는 한신 전기철도의 모체인 한큐한신토호그룹은 메인 사업인 전기철도나 한큐 전철을 포함해 H2O 리테일링과 토호 같은 유통, 미디어 등의 여러 사업을 망라하는 대기업이다.
그 밖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모기업 세이부 철도도 버블 경제 붕괴와 창업주의 체포 등으로 자금력이 약해져 이전에 비해 돈을 못 쓰고 있지만 대형 사철의 일원답게 대기업에 걸맞은 규모라 할 수 있다. 다소 예외적인 경우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모기업인 마쓰다인데, 이쪽도 자동차 산업에선 이름 있는 대기업이지만 카프 항목에도 나오듯 구단이 모기업의 경영 문제로 1970년대 말부터 마츠다 창업주의 개인 자산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명목상 대기업 산하지 실질적으론 개인 소유 구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이라 칭하기엔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적잖이 존재한다. 일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기업 요미우리 신문과 주니치 드래곤즈의 모기업 주니치 신문은 비상장기업이라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치더라도[7], 식품 사업을 하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모기업 야쿠르트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모기업 닛폰햄은 분명 일본 재계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심지어 야쿠르트의 사장이 "야구단이 없었으면 그저 야쿠르트를 만드는 회사에 머물렀을 거다"라고 직접 증언을 했을 만큼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또한 일본 롯데도 연매출액이 한국 롯데의 1/20에 불과한 수준이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는 어렵진 않다. DeNA도 게임 회사이기 때문에 매출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규모가 작다는 인식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의 근간이 되는 토요타, 미츠비시, 닛산, 파나소닉 등과 같은 제조업 기반의 재벌 기업들이 리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야구 전문가들은 이를 NPB의 보수성, 경직성에 기인한 문화로 보는데, 이들 기업들이 의욕을 갖고 야구단을 만들고자 할 때도 야구계에선 수출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들이 야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서 "너네는 수출이나 신경을 쓰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했기 때문에 참가를 하지 못했고, 그런 반면 뒤늦게 창립한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는 창립 초기부터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고[8] 그에 따라 기업들이 야구 대신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결과 이들 대기업으로선 야구단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질 못해 여태껏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9]
그러나 한국에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앞서 언급한 재벌 기업들은 자사 산하의 사회인야구팀을 보유해 프로야구의 운영비보다 훨씬 더 적은 운영비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으며, 애초에 프로야구 자체가 단순히 돈이 있다고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당장 한국프로야구의 야구단만 해도 매년 200~300억씩 쓰는데 일본 야구 선수들의 전반적인 연봉의 수준을 감안하면 저보다 훨씬 많을 것은 자명하다. 당장 20년 전만 해도 2004년 킨키 일본 철도가 자사가 운영하는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운영을 포기하고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할 것을 선언하면서 프로야구 재편 문제가 새롭게 생겼고, 팀 수를 10팀으로 줄이고 단일 리그로 환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가 후루타 아츠야를 위시한 선수회 파업으로 무산되고 대신 라쿠텐이 새로 프로야구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각 팀들의 재정 상황이 열악한 시절도 존재하였다. 특히 2005년 이전까지의 퍼시픽 리그는 이전부터 인기가 매우 적었던 데다 일본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콩고물을 받아먹을 수도 없던 환경이라 모기업이 허구한 날 바뀌고 연고지도 옮기는 게 일상다반사였을 정도.
그럼에도 일본의 야구단이 멀쩡히 운영될 수 있는 건 모기업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한국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대외적 홍보 효과가 적지 않은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현재 일본프로야구의 재정자립도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상당히 높아진 것이 위안.
모기업의 전체적인 현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운영 주체에 변동이 생긴 2012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모기업 변동과정을 도표로 정리한 곳이 있다. 또한 팀 기준의 구별이 아닌 업종 기준으로 구별한 도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업종과 기업규모에 정리가 이루어지지만, 그 사이에 실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정식 인수나 혹은 네이밍 스폰서, 제휴나 공동 경영의 형태로 운영에 발을 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봉의 경우 대체로 대한민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1군 최저연봉은 1600만 엔(한화로 1억 7천~8천만 원 수준)으로 5000만 원의 한국보다 훨씬 높으며 주전급은 1억 엔 이상, 최고연봉은 대략 5~6억 엔 선에서 형성된다. 과거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으나 현재는 FA 계약으로 4년 100억 원 이상 계약을 따내는 선수가 나오는 등 많이 따라잡아 대략 1/2, 2/3 정도까지 따라잡았다. 최저연봉도 한국과 큰 차이가 나는데 지배하선수(한국으로 치면 정식등록선수)의 경우 440만 엔이 최저보장되어 대략 한국의 2배 좀 못 되는 최저연봉을 받는다.
다만 육성선수의 경우는 최저 230만 엔을 받기 때문에 KBO 리그보다도 연봉이 적은데, 이렇게 '육성선수'와 '등록선수'의 연봉에 차등을 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헝그리 정신의 강조와 아마추어 야구와의 공생. 헝그리 정신은 당연히 육성선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고, 아마추어 야구와의 공생은 구단이 무분별하게 신고선수를 쓸어담지 못하게 하는 제약이다. 연봉이 230만 엔밖에 안 되면 신고선수를 할 바에야 안정적인 사회인야구를 택하거나[10], 프로를 목표로 하더라도 대학 진학이나 사회인야구 진출을 선택해 공부를 더 하고 돈을 더 모으고 하면서 드래프트 입단을 준비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빨리 프로에 가고 싶은 선수만 신고선수 계약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제약을 걸어놓은 것.
구단 측에서 프로에서는 애매하지만 사회인야구에서는 중요한 전력이 되는 수준의 선수들을 로또 삼아 신고선수 계약으로 죄다 쓸어가 아마추어 야구가 고사하는 일을 막고, 선수 개인으로서도 신고선수 계약밖에 제시를 못 받을 정도면 냉정히 프로로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이야기인데, 이런 선수가 섣불리 신고선수 계약을 택해 얼마 못 가 방출되어 갈 곳이 없어질 바에 사회인야구를 택하는 것이 멀리 볼 때 안정적일 것이다. 프로 신고선수에게 사회인야구 연봉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면 당연히 프로를 선택할 테니 아마추어 야구계에 선수가 부족해지고, 선수는 고작 눈 앞의 큰 돈에 앞으로의 인생이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구단 입장에서도 터질 가능성이 희박한 신고선수에게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은 손해이므로 제약을 두는 것이 아마야구계와 선수 본인, 구단 모두의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막아놓은 것.[11]
다른 리그와 비교하면 일본프로야구의 그저그런 1군 선수, 즉 백업이나 플래툰, 패전처리 정도로 2군에 잘 안 가고 1군에서 꾸준히 살아남는 선수는 연봉이 대만에서는 에이스급 선수들이 받는 연봉과 똑같으며, 일본의 준척급 FA 계약 규모가 어지간한 한국의 고액 FA에 버금가는 수준이다.[12]
또한 선수의 연봉이 공개되는 한국과 달리, 언론이나 연감에 공개되는 연봉이나 FA의 계약 금액은 기본적으로 추정 금액이다. 선수도 개인이라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에 들어가며, 구단 경영 차원에서도 경비를 얼마나 썼는지 재무재표를 일부 공표하는 셈이라 별로 달갑지 않기 때문에 선수의 사생활과 구단의 경영편의를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 그래서 연봉협상 때는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구단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선수에게 인터뷰를 해서 연봉을 알아내는 것이 연례행사. 선수도 정확히 밝히지는 않고, "작년보다 조금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X천만엔 이상인가요?" "아 그만큼은 못 받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적으로 외국인 선수 같이 구단과의 합의하에 시원하게 연봉을 까는 선수도 있다.
2.1.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프로야구의 위기설이 대두되었는데 TV 시청률 및 지상파 중계방송 횟수의 하락, 젊은 층,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이러한 위기설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TV 중계방송이 줄어든 것은 지상파 중계 한정이고[13]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은 있으나 모든 경기를 1회초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중계해 주기 때문에 야구팬 입장에서는 시청 환경이 훨씬 나아졌다. 이런 점은 2010년대 10팀 체제가 되고 SPOTV가 2채널 체제가 되면서 1980년대에 비해 지상파 중계는 완전히 없어지다시피했지만 패넌트 레이스 자체는 매일 5경기 전체를 케이블 중계해 주는 KBO 리그와 비슷하다.[14]
그리고 2014년부터 폭스스포츠에서 일본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했다.[15] 관중동원은 소폭이나마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16] 여성팬층의 경우 2013, 2014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경우 간토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팬덤이 생기며 카프죠시(カープ[ruby(女子, ruby=じょし)])[17]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여성 팬덤의 유입이 적극적이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여성팬 흥행 이후 다른 구단들도 여성팬에게는 유니폼 및 응원도구를 무료로 증정해 준다거나, 여성 전용 좌석 신설, 레이디스 데이 개최로 여성팬 무료 입장 행사를 하는 등 여성팬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2015년 시즌 12구단 중 6구단[18]이 여성 관련 행사를 개최한 날 시즌 최다 관객을 유치하는 등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도요게이자이신문에서는 "KBO 리그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을지 몰랐다"며 놀라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인터넷으로의 중계 접근성, 서비스 가격 설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센트럴 리그는 리그 차원에서 통합 중계를 제공하는 KBO 리그[19],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퍼시픽 리그보다 온라인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일단 퍼시픽 리그는 6개 구단이 퍼시픽리그TV(パリーグTV)라는 통합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20], 센트럴 리그는 요미우리가 <자이언츠 라이브>, 한신이 <토라테레>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히로시마는 지역방송인 RCC가 PPV로 <카프 라이브>를 서비스하는 등[21] 완전히 각개전투였으나 2017년부터 주니치, 히로시마, 요코하마 경기도 Sportsnavi, DAZN이 중계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 그리고 2018년부터 DAZN 플랫폼으로 요미우리를 제외한 11구단 경기가 방송되며[22], 요미우리 홈경기는 Hulu 및 자이언츠 라이브스트림 서비스를 별도로 이용해야 한다. 2019년부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DAZN 중계를 이용하게 되었으나 히로시마, 야쿠르트 경기는 각각 J SPORTS 온디맨드, 후지 테레비 ONE 온디맨드 서비스로 봐야 한다.
야구에 대한 일본 젊은층들 사이의 인식 개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프로야구 구단들은 여성 팬덤 유입을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는 J리그의 성공적 안착 요인 중 하나로 젊은 여성 팬 유입이 꼽힌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는 지배적이기 때문이고[23] 여기에 각 프로야구 구단도 자극받은 탓이 크다. 반면 일본프로야구는 평균관중은 여전히 많지만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야구는 중년 세대나 보는 스포츠'란 인식이 팽배하다. 독특한 문제점이라면, '회사 사회'로 불리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중년이 되면 당연히 봐야 할 스포츠가 되어버린다.[24] 본 아이리서치가 20대 중후반,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이내의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젊은 사원들이 회식 때 하기 싫은 이야기 2위에 야구 이야기가 올랐을 정도.[25] 즉, 한국으로 치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쯤으로 프로야구 관련 화제가 치부되는 분위기가 된다. 좀 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일본프로야구 흥행 측면에서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메이저 리그조차 경기당 평균 5만 명의 관중을 넘은 것은 세계 최초의 개폐식 돔구장에 월드 시리즈 우승 버프를 받은 1992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풋볼 겸용구장이던 마일하이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고 창단팀 버프를 받던 1993년의 콜로라도 로키스 등밖에 없다.[26] 심지어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조차 현재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다저 스타디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경기당 평균 5만 명을 동원한 적이 없으며 뉴욕 양키스도 팀 역사에 경기당 평균 5만 명이 넘는 관중동원을 기록한 건 4번밖에 없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도쿄돔이 개장된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매 경기 평균 55,000명을 동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단이 발표하는 구장의 수용능력과 실제 수용능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조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시리즈이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무조건 유료관중을 실제 숫자 그대로 집계하도록 되어 있었고 매경기 55,000명을 동원한다는 요미우리가 정작 일본시리즈에서의 관중동원수는 의문의 여지없이 관중들이 구장에 전부 들어찼음에도 불구하고 46,000~47,000명 수준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관중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2004년까지 요미우리는 이 차이가 일본시리즈 초청권 때문이라고 둘러대왔는데, 실제로 매진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국구 인기구단의 체면상 중계화면까지 빈 자리가 보이는데도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무조건 매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2004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문제로 촉발된 일본 프로야구 재편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져 오던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반성과 시정이 요구되었고[27] 2005년부터 실제 표를 사서 입장한 관중들만 카운트하는 것으로 체제를 바꿨다. 따라서 링크된 자료를 볼 때는 2004년 이전의 자료는 무시하거나 약 10~15% 정도 심하게는 20~30% 가깝게 깎아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5년 이후로만 볼 것 같으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의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센트럴 리그는 적어도 현상유지, 퍼시픽 리그는 관중 수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프로야구가 인기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는 일단 프로야구 지상파 중계의 시청률이 떨어진 건 사실이고[28]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이 다양화되고 따라서 예전처럼 프로야구 하나에 인기가 집중되던 시절은 일본에서도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또한 위성방송, 케이블TV의 보급 확대로 다양한 구단의 팬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중계하는 패키지를 구입해서 위성방송 등으로 야구를 즐기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에 지상파에서 중계하는 요미우리 경기의 시청률이 더더욱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29]
요미우리와 한신을 중심으로 하는 인기팀들이 모인 센트럴 리그의 관중 동원은 최근 10년간 정체에 가까운 수준인 점도 한몫하고 있다. 게다가 2010년 일본시리즈가 치바 롯데 마린즈와 주니치 드래곤즈라는 비인기[30] 대진으로 결정나면서 1, 2, 5차전이 지상파 전국 네트워크 중계 없이 지역방송과 위성방송으로만 송출된 것도 이러한 인상을 부채질했다.[31] 퍼시픽 리그의 관중 동원이 증가하면서 센트럴 리그 팀들도 공격적인 투자, 구장 리모델링 및 팬서비스 보강책을 내놓고 있다. 그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2012년 DeNA의 인수 이후 평균관중이 1.8배로 늘어나고 A클래스까지 다시 복귀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요미우리와 한신도 2014년부터 라이벌리를 '전통의 일전'으로 공식 브랜드화하여 공동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도 인터리그 기간 동안 각 지역 방송국들이 라이벌리 기획을 함께 벌이기도 한다.[32]
2.2. 2010년대
2010년대 들어서는 1980년대까지의 과거처럼 온 국민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미쳐돌아가는 시기까지는 아니라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다시 돌아왔다. 특히 여성층과 청년층에서도 그 인기가 매우 불어났다.이는 2002년을 전후해 한참 주가를 올리던 축구계가 2010년대 들어 인기가 부진한 점도 겹쳤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젊은 팬들의 일본프로야구로의 유입은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히로시마의 야구 인기를 다룬 기사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여성팬 공략으로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퍼시픽 리그는 2015년에 관중 1072만 6020명을 유치해 1950년 리그 창설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센트럴 리그도 관중 1351만 900명으로 1992년 이후 최다이며 관중동원 집계가 정상화된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신기록이다.[33]
구단 별로는 센트럴 리그에서 야쿠르트, 요코하마가 2005년 이후 신기록을 세웠고, 히로시마는 창단 후 첫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퍼시픽 리그에서는 라쿠텐, 세이부, 오릭스, 소프트뱅크가 관중 기록을 새로 썼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NPB를 지배한 단어는 '위기'였다. 2004년 일본 최대 사철기업인 킨키 일본 철도가 보유하던 프로야구단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운영을 포기했는데, 한신에 밀려 인기가 좋지 못했지만 오사카 돔의 킨테츠 연선과 벗어난 위치로 인해 전철을 동원한 관중 동원이 힘든 데다 비싼 대관료 등이 겹쳐 약 15억엔의 큰 적자를 보고 있었기에 이 이상 계속 운영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거기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결국 다이에는 파산했다.)으로 다른 팀에 합병될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상술했듯 이 위기는 아예 10개 구단으로 축소해 단일 리그로 운영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후루타 아츠야를 위시한 선수회의 강한 반발로 결국 무산되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킨테츠 대신 창단, 호크스는 소프트뱅크에게 매각(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킨테츠가 합병해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는 걸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위기는 지속됐다. 센트럴 리그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워낙 저조한 인기와 성적이 겹쳐 구단 운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34] 그리고 요코하마는 2011년 인터넷 기업 DeNA에 매각됐다.
일본프로야구는 경영 면에서 한국프로야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야구단 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엄청난 야구 인기에도 경영수지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센트럴 리그,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라는 양대 인기 구단의 영향력이 크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08년 NPB 전체 TV중계권 수입 1억1740만 달러의 90.5%는 센트럴리그 6개 구단의 몫이었다. 그리고 77.7%를 요미우리와 한신이 가져갔으며, 요미우리 1개 구단의 몫은 절반이 넘는 51.8%였다. 메이저 리그식 통합 마케팅이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노모 히데오부터 스즈키 이치로, 마츠이 히데키 등 슈퍼스타의 메이저 리그 진출에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센트럴 리그는 2011년, 퍼시픽 리그는 2012년부터 관중이 매년 증가 추세이다. 전체 수입에서 입장료 비중이 큰 현실에서 긍정적인 신호이다.
- 기존의 인기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스는 전체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들어 많은 구단들이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발한 마케팅 노력이 눈에 띈다. 오릭스는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체크무늬 유니폼을 선보인다. 유니폼 판매를 염두에 둔 마케팅이다. 메이저 리그식 마케팅으로 유명한 라쿠텐은 올 시즌 개막전을 오후 4시에 치른다. 1968년 이후 최초의 '황혼 경기'이다. 관중 편의를 우선한 발상이다. 히로시마는 올해 360점의 신상품을 기획했다. 그 중 하나는 55만 엔(약 549만 원)짜리 3대 한정 가죽 소파이다.
- 통합마케팅에도 눈을 뜨고 있다. 퍼시픽리그는 6개 구단에서 전문가를 차출해 한국의 KBOP[35]와 유사한 통합마케팅 조직을 만들었다. 해외 중계권 등 업무를 맡을 예정으로 최근 한국 방송사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 구단 조직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프로야구는 모기업에서 파견된 간부가 구단 대표를 맡아왔다. 대개는 스포츠 비전문가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게 메이저 리그식 단장(GM)이다. 1994년 치바 롯데 마린즈가 요미우리의 선수 출신이자 야쿠르트, 세이부 감독 출신인 히로오카 타츠로를 최초의 GM으로 임명했지만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오히려 실패만 거뒀다. 지금은 직함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7개 구단이 GM과 유사한 직위를 두고 있다.
- 구단 운영과 구장 운영을 일체화시키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요코하마는 올 시즌 홈구장 과반수 지분을 취득해 일체 경영에 돌입했다.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가 870억 엔을 투자해 후쿠오카돔을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인수했다. 매년 50억 엔이 넘는 임대료 부담을 경감하고, 구장을 수익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에서였다. 최규덕 롯데 홍보팀장은 “수입 구조상 일본 뿐 아니라 한국 프로 구단도 구장과의 일체형 경영이 절실하다.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36]고 말했다. 현재 NPB에서 모기업이 구장을 소유한 구단은 모두 6개다. 그리고 라쿠텐과 히로시마는 모기업, 또는 스폰서사가 구장 명명권을 취득하며 야구단 운영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37]
일본 스포츠전문잡지 <넘버> 고정 칼럼니스트인 요시자키 에이지씨는 “오릭스·킨테츠 합병 문제가 발생한 2004년은 위기가 고조된 해였다. 그때를 분수령으로 모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 아닌 프로야구에 애착이 있는 전문 프런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금의 마케팅 활성화는 그 성과다. 이어 “아직까지는 ‘선물을 증정하면 손님이 온다’는 수준이다. 프로야구 흥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야구의 인기는 2015년을 기점으로 메이저리그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간 단축을 위한 스피드업 제도 도입과 젊은층을 공략하는 서포터문화 확장, 국가대표 야구를 확장한 사무라이 재팬의 신설등 게임 분야에서도 코나미의 프로야구 스피리츠,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등등 다양한 미디어, 게임시장 등 젊은층들의 문화를 공략하여 그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 그러나, 코나미의 경우에는 라이센스 독점 문제로 인하여 프로야구 게임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또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오릭스 버팔로즈 같은 비인기팀들도 호성적과 더불어 다양한 마케팅 시도로 그 관중수와 인기가 불어나고 있다. 위 영상은 NPB의 대표적인 하위권 팀이며 걸출한 스타 선수도 없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혜성같이 나타난 대졸 신인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리그 신인 최다 세이브를 달성하는 영상인데,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야마사키의 등장 음악[38]에 맞춰 점프를 뛰며 '야스아키'를 외치는 일명 '야스아키 점프'가 눈여겨 볼 장면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세계 야구계가 전체적으로 가장 큰 과제인 경기시간 단축과 빠른 경기 흐름의 야구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일본에서 야구인기는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시청률 면에서 야구의 사무라이 재팬이 축구의 사무라이 블루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5년 11월 12일, 비슷한 시간대에 열린 일본 야구대표팀 경기와 일본 축구대표팀 경기를 비교했을 때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 시청률이 좀 더 좋게 나왔다는 걸 볼 수가 있다.
| 경기 | 방송사 |
| 2015 프리미어 12 예선 일본 vs 도미니카공화국 | TBS 테레비 지상파 중계 |
|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일본 vs 싱가폴 | 후지 테레비 지상파 중계 |
| 지방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간토 | 15.4% | 13.2% |
| 간사이 | 15.9% | 11.4% |
| 나고야 | 14.6% | 12.8% |
| 북부 규슈 | 25.3% | 11.1% |
또한 2016년 1월에 나온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순위에서도 야구스타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 일본 스포츠스타 인기순위 - 일본인이 사랑하는 스포츠맨…男테니스 니시코리 게이 1위, 야구에선 이치로가 오타니에 51표 앞서
한편으로는 도쿄, 오사카 등 몇몇 도시에 구단이 집중되어 있는 과거와는 달리 전국 각지의 대도시에 팀이 하나씩 생기면서 분권화 및 지역밀착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1953년 연고제 정착, 1958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다이에이 유니온즈와의 합병으로 12구단 체제가 정립된 이후부터는 주쿄권의 주니치 드래곤즈, 츄고쿠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을 빼고는 죄다 도쿄 중심의 칸토 지방과 오사카 중심의 칸사이 지방에 몰려있었다. 물론 후쿠오카에서 사이타마로 옮겨온 세이부 라이온즈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롯데 오리온즈라는 예외도 있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다이에가 난카이를 인수해 후쿠오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을 보고 퍼시픽 리그에서 적극적으로 지역 밀착 정책을 실시한 구단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2004년 '공백의 2일' 파업,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한 이후, 간토 권역에는 6팀으로 5팀으로 큰 변화는 없었으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홋카이도에 가서 대박을 치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뺀 나머지 구단들은 연고지 이름을 붙이면서 정체성을 강화했다. 위에서 말한 인기의 하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 하락일 뿐 일본프로야구 전체의 인기 하락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신 타이거스의 경우에는 198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의 인기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칸사이권은 한때 한신 타이거스를 포함해 난카이 호크스, 한큐 브레이브스, 킨테츠 버팔로즈 등 무려 4팀이나 있었으나 난카이가 후쿠오카로 떠나고, 한큐의 후신 오릭스와 킨테츠가 합병하며 현재는 2팀으로 줄어든 상태. 게다가 오릭스-킨테츠 합병으로 탄생한 오릭스 버팔로즈는 합병 과정에서 팬들의 실망을 산 탓에 세월이 흘러 마케팅으로 인기를 많이 올린 현재도 사실상 한신 타이거스가 오사카권 팬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2.3. 2020년대
매년 프로야구 인기 순위는 조금씩 변동이 있지만 항상 1~6위 안에 드는 요미우리, 한신, 소프트뱅크, 주니치, 닛폰햄, 히로시마가 인기팀으로 꼽히며, 7~12위에 드는 DeNA, 라쿠텐, 세이부, 야쿠르트, 롯데, 오릭스가 비인기팀으로 꼽힌다.[39] 여기서도 사실 격차가 큰 게 파리그에서 인기 2위로 꼽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인기는 보통 전체에선 5~6위, 딱 중위권으로 취급받으며 센트럴 리그에서 인기가 중하위권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도 전체적으로 보면 중위권은 된다. 인기 하위 5팀을 보면 야쿠르트를 빼면 다 파리그 소속이다. 참고로 보통 퍼시픽 리그의 인기 상위 3팀은 소프트뱅크, 닛폰햄, 라쿠텐인데 파리그 내에선 인기팀 축에 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라쿠텐도 하위 50%에 드는 비인기구단이다.[40] 파리그에서도 바닥을 다투는 롯데와 오릭스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비인기인 두 팀을 비교하자면 보통 홈 관중은 오릭스가 더 많고, 원정 관중 동원력은 롯데가 더 좋다는 평가가 많은데,[41] 그래도 오릭스보다는 롯데가 좀 더 팬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2026년 일본 인기 스포츠 조사 기준 일본프로야구 팀 인기 순위는 1위 요미우리(18.6%), 2위 한신(12.1%), 3위 주니치(6.4%), 4위 소프트뱅크(5.4%), 5위 닛폰햄(4.7%), 6위 히로시마(4.3%), 7위 DeNA(2.7%), 8위 야쿠르트(2.3%), 9위 라쿠텐(1.7%), 10위 롯데(1.6%), 11위 세이부(1.1%), 12위 오릭스(0.5%) 순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연속으로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으나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오랜 염원이던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하였다. 일본 야구계는 이번 금메달을 통해 코로나19로 침체된 야구 열기를 다시금 끌어올릴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통합 플랫폼을 운영하며 이용자들을 끌어모으는 중인 파리그티비는 전체 이용자 중 18~34세에 해당하는 연령층이 70%를 차지하는 통계 결과가 나와 여전히 야구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전한 탓에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임해야 하는 야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지만 이를 보란 듯이 떨쳐내고 전승으로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도쿄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WBC마저도 제패하면서 일본 내 야구 인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여파인지 2024년 관중 신기록을 경신했다.[42]
그러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커미셔너의 취임 이후 초상권 관련해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우승팀이 원래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야 한다는 꼰대식 발언, 일처리로 12개 구단 팬들에게 욕을 들어먹고 있으며 결국 2025년에 NPB가 아닌 메이저 리그를 방송하였다고 후지 테레비의 취재 패스를 압수한 사건으로 언론탄압이라는 욕을 들음과 동시에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경고 조치를 받았다. 거기다 사카키바라 커미셔너 체제 이후 더욱 극심해진 투고타저 현상에 학을 떼기 시작한 팬들도 늘어났으며[43], 2025년 초반에 논란이 되었던 일부 선수들의 온라인 불법 도박 문제에 관한 처분을 사무국이 나서지 않고 구단에 처분을 일임하여 방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데다 SNS 규제를 강화해 경기장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조차도 올리기 어려워지는 등 민심을 잃을 법한 행보만 걷고 있어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불만들이 쌓여가던 와중에, 일본 대표팀이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네수엘라전에서 패배해 사상 최저 성적인 본선 2라운드로 대회를 마치게 되자 그간 국제 대회에서의 호성적에 가려졌던 일본 야구계에 대한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시작했으며 중계권 졸속 협상으로 인해 넷플릭스가 WBC를 독점 중계하는 바람에 결국 시청권, 광고 수익 등에서 극심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리그에 극심한 투고타저를 초래한 공인구 교체[44], 대회 내내 일본 투수들이 적응에 애를 먹었던 피치 클락 도입 등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45]
2027년부터 센트럴 리그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4. 대한민국에서
일본프로야구와 교류도 많고 라이벌의식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팬층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일본 프로야구는 투고타저 경향이 짙은지라 KBO 리그의 타고투저에 싫증난 팬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들이 있지만, 막상 현지 중계 화면으로 보려고 해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중계카메라 앵글,[46][47] 앰프 응원에 익숙하여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트럼펫 응원소리, 언어의 장벽[48] 등 진입 장벽이 MLB보다도 까다로운 편이다.
또한 리그의 수준도 KBO 리그보다는 높고 MLB보다는 떨어지는 애매한 정도이기에 수준이 높은 야구를 보고 싶어하는 야구 팬들은 대다수 MLB를 보는지라 대한민국 내에서는 현저히 낮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대호와 오승환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우리에게도 관심을 줬으면 좋겠다", "모든 포커스가 메이저 리거들에게만 쏠려 있어서 섭섭하다", "일본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고, 구원왕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MBC는 메이저리그만 중계해놓고 왜 우리를 섭외했느냐"[49] 라고 대놓고 투덜거렸을 정도.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해외야구 방면에선 메이저리그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상당히 속이 상한 것 같다. 이대호와 오승환이 이러한 이유로 그토록 MLB 진출을 갈망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외적으로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했을 때에는 관심을 많이 받은 편이다. 시즌 전이었던 2006 WBC에서의 맹활약으로 관심도가 폭발한 상황 +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닛폰 테레비에 중계권료만 100억을 준 SBS Sports에서 KBO 리그보다 적극적으로 중계해 주면서 당시 이승엽과 교진의 인지도는 상당했다.[50][51]
한때는 중계해 주는 곳이 TV에서 없었다 보니 대부분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프로야구 팬들은 아프리카TV의 오승환 공식 하이라이트,[52] 토토 분석/사설토토 사이트에서 일본 중계 방송을 본다. 과거에는 공식 프로토에서 일본야구가 빠진 적이 있어서 순수한 일본야구 팬들도 졸지에 사설토토를 하는 악질 토쟁이 취급을 받았고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일본야구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53]
그리하여 한국에서 일본프로야구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보통 지역제한이 없는 퍼시픽리그TV를 결제하여 보거나,[54] VPN을 사용하여 J스포츠 온디맨드, 라쿠텐TV, 교진의 GLS, 야쿠르트/세이부의 후지 테레비 온디맨드, 한신의 토라TV 등 일본 내수용 유료중계를 결제하여 시청한다.
비디오 게임으로 야구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많이 접하게 될 수밖에 없는 리그이다. MLB 더 쇼 시리즈는 멀티플랫폼 진출을 표명했으나 결국 현재까지는 엑스박스까지에 그쳤고 특히나 닌텐도 콘솔인 경우에는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나, 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 패밀리 스타디움 시리즈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시리즈를 하면서 NPB에 입문한 경우도 많은 편이다.
일본에서 실패한 KBO 출신 용병들의 기사가 네이버 해외야구 기사란을 장식하면 중계는 하지 않지만 눈꼽만 한 관심은 받는다. 물론 대다수는 KBO 리그가 질이 낮다며 무작정 까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요즘은 댓글 기능이 사라져 여러 커뮤니티로 그 관심이 옮겨갔다.
한국에서의 저조한 인지도 때문에 일본 외 타국에서도 인지도가 낮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NPB는 과거의 노후되어 있던 시설 등을 개보수하며 서서히 세계에서의 인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 중에 있으며 실제로 과거보다는 관심도가 세계적으로 올라가 있다.[58] 트레버 바우어[59] 등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거물급 선수들도 NPB에 몸을 담그기까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NPB는 KBO는 비할 것도 없고 MLB에 비해서도 대중성이 있는 리그가 아니기에 한국에서 NPB가 야구 커뮤니티 등지에서 활발히 언급되기까지는 멀었다.
일본야구 마이너 갤러리, 에펨코리아 야구 게시판 NPB 탭 등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커뮤니티이다.
2.4.1. 대한민국 선수
KBO 리그 출범 전의 진출은 1962년 백인천의 토에이 플라이어스 입단이 최초로, 백인천은 이후 일본에서 20년 동안 뛰게 된다. 1966년에는 중앙고 3학년이었던 투수 이원국이 도쿄 오리온즈와 계약했으나, 1967 시즌 단 1경기 등판에 그친 채 퇴단한 후 미국 마이너 리그로 떠났다. KBO 리그 출범 이후의 첫 진출은 해태에서 주니치로 이적한 선동열로, 선동열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이후 한국프로야구의 특급 선수들을 데려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타자로서는 이종범, 이승엽, 이범호, 이병규, 김태균, 이대호 등이 있었다.투수로서는 조성민, 선동열, 이상훈, 구대성, 임창용, 이혜천, 오승환 등이 있었다. 2025년 기준, 2016년 이후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선수는 아무도 없다.
진출 가능성이 있던 황재균, 김현수, 손아섭 역시 KBO 리그에서 뛰는 길을 선택했으며, 양현종도 KIA 타이거즈에 잔류한다. 1995년 이후 20년 이상 늘 한국인이 일본 리그에 1명 이상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사실 2017년에 김정후가 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 직전까지 갔으나, 그의 입단에 호의적이었던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바로 무산되었다.
고졸로 미국에 직행한 해외파 중 갈 곳 없는 선수나 일본 독립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입단 테스트를 받아서 들어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상황.
마지막까지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는 2016 시즌의 이대은, 하재훈, 김무영. 그러나 이대은은 병역 이행을 위해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퇴단해 귀국했고,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 병역을 이행한 뒤 2019년도(2018년 9월 시행) 신인 2차지명에서 전체 1순위로 kt wiz의 지명을 받았다.[60] 하재훈은 야쿠르트 입단 전 뛰었던 독립 리그 팀 도쿠시마 인디고삭스로 돌아갔다가[61] 투수로 전향, 2019년도 신인 2차지명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다. 김무영은 라쿠텐에서 방출당한 뒤 은퇴했다.
일본 진출이 이토록 시들해진 이유로는, 한국프로야구의 연봉 상승과 메이저 리그 진출 루트가 가까워짐이 가장 크다. 과거 KBO 리그에서 MLB로 진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에 쉽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일본만 가도 한국과 금전적 차이가 났기에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으나, 한국도 FA 규모가 커지며 특급 선수에게는 일본의 2/3에 가까운 연봉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일본프로야구 최고 연봉자들의 연봉이 4~5억 엔대에서 형성되는데, 이대호가 롯데에서 4년 150억으로 약 40억 좀 안 되는 금액을 받기도 하는 등 이제는 거의 차이가 없는 금액까지 올라왔으며, 그 외 특급 FA의 경우 계약금 포함 연 20억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일본프로야구도 3억 엔 이상 고액 연봉자들은 열 명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2/3 정도의 규모까지 올라온 셈이다. 세금이나 해외 체류 비용 및 물가 차이를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줄고 그 외 음식이나 언어 등에서 오는 외국 생활 적응 등 금전 외적 문제까지 고려하면 해외 나가서 고생하느니 국내에서 편하게 야구를 한다는 메리트가 일본 진출로 얻는 금전적 이득보다 커진 셈이다.[62][63] 또한 KBO 리그의 인기가 커지면서 한국과 같은 시간대에 경기가 열리는 일본프로야구의 인기가 많이 줄었고, 같은 시간대라면 한국 경기를 중계하지, 굳이 일본프로야구의 중계권을 살 방송사도 그다지 없기 때문에 야구 외적으로는 말 그대로 인기스타로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한국에 비해 일본리그 용병은 그런 대접을 바라기 힘들고, 한국에서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또한, 류현진 이후 메이저 리그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는데, 이쪽은 진짜로 한국에 비해 최소 2배, 많게는 수십 배의 연봉과 일본 야구에 비해 훨씬 큰 인기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뛴다는 명예까지 얻을 수 있어서 상술한 디메리트를 희석하고도 남아, 최상급 선수들은 일본보다 메이저 리그를 정조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선호하는 선수 타입이 한국 리그에 없기도 하다. 일본에서 선호하는 용병 선수 유형이라면 투수는 선발과 구원을 막론하고 구위가 좋은 파이어볼러, 야수는 역시 장타력을 지닌 거포를 최우선으로 원하는데, 이런 선수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우선적으로 원하는 데다 그 수도 적어, 용병으로 수입해 오는 판이다. 현재 해외 진출을 노릴 만한 기량이 되는 국내 리그 선수들은 에버리지 히터 유형이거나 호타준족형이 많아 일본 야구에서 선호하는 외국인 선수 타입과는 거리가 있어 선수들도, 구단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는 모양새라 당분간은 일본 진출이 계속 시들할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도 매우 오랫동안 일본 진출 선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축구와는 다르게 유망주들이 일본 진출을 거의 하지 않는데, 똥군기니 시설이니 장황하게 써도 문제는 역시 계약금. 마이너 리그도 시설 구리고 출장 기회 보장을 못 받긴 마찬가지만[64] 100만 달러씩 턱턱 내놓을 수 있는 미국 구단과는 다르게[65] 일본 구단은 1억 엔 이상 계약금은 정말 1라운더급이 아니면 내놓지 않는다. 설령 일본 1라운드급 유망주가 있다 할지라도 이 정도 실력이면 미국 구단에서도 러브콜을 보낸다. 물론 일본보다 높은 금액으로. 이런 탓에 여태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일본으로 진출을 했던 유망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만이야 유망주들이 일본에 많이 가는 편이지만, 여긴 자국 프로 리그가 거의 박살이 난 상황이라 사정이 많이 다르다.[66] 그런 반면, 한국은 자국 학원야구[67]와 프로 리그가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유망주 유출은 김칫국 마시는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고교-대학/사회인 야구 등 아마추어 레벨에서 일본에 진출하는 케이스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상당히 많은데,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프로 리그까지 올라오는 선수가 없어 유망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KBO에서 상위지명이 가능한 레벨의 진짜 유망주는 어지간하면 KBO에 남거나, 100만 달러급의 계약금을 지불할 수 있는 MLB 직행을 택하지[68], KBO보다 수준은 높은데 계약금 액수가 MLB처럼 확 뛰지도 않는 데다가 불투명한 1군 입성을 두고 경쟁해야 하고, 국내 인기도 낮은 NPB에 가지 않는다.
대부분 딱히 상위권 지명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이 더 넓은 인재풀과 높은 교육 수준[69]을 지닌 일본 학원야구에서 배워 기량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일본에 가는데, 애초에 한국에서도 안 통하던 실력이 일본 간다고 급격히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사례가 거의 없는 것. 실례로 지금까지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한국인은 김무영, 신성현, 송상훈 3명이 끝이다. 그리고 지명된 세 명 중에서도 김무영만 유일하게 1군을 밟았으며, 그마저도 30대 초반에 커리어가 끝났다. 그나마 저들 이후 유학파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케이스로 코시엔에서 홈런을 치는 등 주목받았던 송호경(메이토쿠기주쿠고교-니혼대학)이 있었는데[70] 니혼대 진학 이후 부상으로 백업, 대타 요원을 전전하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고, 2020년 기준 독립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아직 24세이긴 하지만 독립 리그 기록도 썩 좋지는 않아서 일본프로야구에서 보기는 어렵다.
2020년 11월 성남고등학교 3학년 이준명[71]이 오릭스 버팔로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합격 시 4년 만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한국 선수가 나올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입단하지 못했고 동의대로 진학했다.
여담으로 오릭스 버팔로즈의 2020년 드래프트 지명자 겐 켄다이(元謙太)[72]가 오릭스 입단 당시만 해도 한국 국적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입단 이후인 2021년 5월에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뉴커머가 아니라 기후현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출신이다.
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 한화 이글스 투수 김서현이 NPB 진출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원태인의 경우에는 메이저 리그 또한 생각 중이라고 밝혔으나, 김서현은 이와 달리 메이저 리그는 아직까지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73]
최지만도 2024년 뉴욕 메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기 이전 NPB 3개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은 일본에 갈 때가 아니다"라는 워딩으로 언젠가는 일본에 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으나, 추후 2025년 국내 복귀를 위해 KBO 드래프트 참가를 선언하고 이를 위해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결정하면서 일본으로 갈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74]
2025년 드래프트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오사카가쿠인대학교의 외야수 에드폴로 케인[75]이 일본 언론의 보도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인 것으로 밝혀졌다.[76] 이로써 2026년 일본프로야구에는 2020년 야쿠르트의 우에다 츠요시[77] 이후 6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 선수가 생기게 된다.
2026년 7월 14일, NPB 2군 하야테 벤처스 시즈오카에서 뛰고 있던 단국대-NC 다이노스 불펜 포수 출신 한국인 선수 이건희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육성선수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보도되며, 재일교포 등의 한국 혼혈이 아닌 순수 한국인 선수가 자그마치 10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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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일본프로야구/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팀
※ ☆은 일본시리즈 우승(★은 10회), - 뒤는 일본에서 줄인 표기[78]와 TV 중계나 언론 매체 등에서 쓰이는 한 글자 약호(한자 혹은 가타가나와 영문 한 글자 표기)[79] 한자 혹은 가나 표기는 모기업 명에서, 알파벳 표기는 팀 닉네임에서 따왔다. 알파벳 표기는 과거 스타디움 히어로를 해본 사람이면 상당히 눈에 익을 것이다. 회사명 자체로는 해당 구단이 리다이렉트되지 않지만, 일본 현지 중계에서도 공식 사용하고 비교적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한 지역명+기업명 구조 이름은 리다이렉트되어 있다. 다만 중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히로시마 도요로는 리다이렉트할 수 없다.
| 일본프로야구 소속 구단 | ||||
| <rowcolor=#fff> 팀명 | 연고지 | 홈구장 | 약호 | 일본시리즈 우승 |
| | ||||
| 한신 타이거스 |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 한신 고시엔 구장 | 神[80], T[81] | <colcolor=#ccac00>☆☆ |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요코하마 스타디움 | De[82], DB[83] | ☆☆☆ |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도 | 도쿄 돔 | 巨, G[84] | ★★☆☆ |
| 주니치 드래곤즈 | 아이치현 나고야시 | 반테린 돔 나고야 | 中[85], D[86] | ☆☆ |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 広, C | ☆☆☆ |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도쿄도 | 메이지진구 야구장 | ヤ[87], S[88] | ☆☆☆☆☆☆ |
| | ||||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 미즈호 PayPay 돔 후쿠오카 | ソ[89], H[90] | ★☆☆ |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홋카이도 키타히로시마시 |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 日[91], F[92] | ☆☆☆ |
| 오릭스 버팔로즈 | 오사카부 오사카시 | 교세라 돔 오사카 | オ[93], B[94] | ☆☆☆☆☆ |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미야기현 센다이시 | 라쿠텐모바일 최강파크 미야기 | 楽, E[95] | ☆ |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 베루나 돔 | 西[96], L | ★☆☆☆ |
| 치바 롯데 마린즈 | 치바현 치바시 | ZOZO 마린 스타디움 | ロ[97], M[98] | ☆☆☆☆ |
| 해체된 팀 | ||||
|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오사카부 오사카시 | 교세라 돔 오사카 | 近, Bu[99] | |
- 과거의 구단에 관한 정보는 과거 참가 구단 항목 참조.
4.1. 16개 구단으로 확대?
현재 일본프로야구는 양대 리그제를 실시하여 각각 6구단씩 총 12구단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4구단을 더 창단해 16구단 체제로 하자는 떡밥이 살포되었고, 일본의 최대 정당인 자유민주당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가 NPB 구단 신설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양대 리그 초창기(1903~1960년)와 같은 규모가 된다.[100]보도에 따르면 자민당은 2014년 프로 구단이 없는 시즈오카현, 시코쿠 지방(도쿠시마현·카가와현·에히메현·고치현)[101], 오키나와현, 호쿠신에쓰(北信越) 지방[102]을 새 구단의 근거지 후보로 예시하고 정부에 지원책 검토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시된 지역들은 위에서 언급한 지방구장 경기가 열리는 곳들이기도 하다.[103] 교통편이나 원정 이동 거리가 정말 문제가 된다면 (MLB가 그러하듯) 각 리그를 2개 지구로 나누어 각 지구별 4팀씩 4팀×2개 지구×2개 리그(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16팀 체제를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수는 리그 내 같은 지구 팀당 18경기씩, 다른 지구 팀당 12경기, 다른 리그 팀당 6경기(인터리그)를 가정한다면 3×18+4×12+8×6=150경기 또는 리그 내 같은 지구 팀당 22경기, 다른 지구 팀당 12경기, 인터리그 팀당 4경기를 가정한다면 3×22+4×12+8×4=146경기가 된다.
사실 현 12개 구단 체제에서 4개의 신생 구단이 추가로 참여하는 안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 선수회의 파업과 단일 리그 개편안 철회 이후 전문가들이 NPB의 활성화 방안으로 거론했던 대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시 라쿠텐과 라이브도어 간 신규 참여 쟁탈전 때 선수단 운영 비용에 관한 우려도 있었던지라 운영 비용과 창단 준비에 큰 부담이 있는 신생 팀 창단보다는 독립 리그 운영 쪽으로 선회를 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시코쿠),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조신에츠·호쿠리쿠 지방), 베이스볼 퍼스트 리그(간사이 지방) 등의 독립 리그이다.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나온 리그 확장안과 독립 리그가 설립된 지역과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2025년 기준 일본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J1리그도 20구단이 있고, 프로구단 전체를 합치면 무려 60구단이나 있다. 한국에서도 2015년부터 KBO 리그가 NPB에 필적할 수준인 10구단 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건 엄청난 고정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책만 가지고 기업들이 쉽게 구단 창설에 뛰어들지는 미지수이다.[104] 또한 KBO 리그에서도 1군 구단 수를 9~10구단으로 늘릴 때 논란이 되었듯이 갑자기 구단 수를 늘리면 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당연히 제기되고 있다.[105]
그리고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바라는 지역에 구단이 들어설 것인지도 고민이다.[106] 어느 정도 인구가 받쳐주는 시즈오카현이나 니가타현은 원안대로 하더라도 인구가 적고, 교통이 불편한 시코쿠나 오키나와는 신설 구단들의 제2 구장 경기 등으로 수요를 충족시키고, 정령지정도시이며 조금만 손보면 프로용으로 사용 가능한 야구장을 이미 갖춘 가와사키시, 고베시, 교토시, 오카야마현 등지에 신설 구단을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야구의 전설이자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회장 오 사다하루 역시 일본 프로야구 구단을 16개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알비렉스 니가타가 NPB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있다.[107] 그리고 2018년 7월에 일본 최대 패션몰 조조타운 창업자 마에자와 유사쿠[108]가 프로야구 진출을 선언하면서 16구단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20년 현재 조조타운 쪽에서는 프로야구 진출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니가타, 오키나와, 시코쿠, 시즈오카 총 4팀을 더 창단해서 16구단 체제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현재 오키나와의 경우는 이미 NPB 참가팀 확대를 노리고 만든 독립 구단 류큐 블루오션즈가 있는 상태.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단체로 박살 나면서 한동안은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이며, 오키나와의 경우 본토에 비해 낮은 소득 및 인구 규모, 태풍과 호우가 심한 기후로 인하여 프로스포츠 팀이 새로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109] 대신 MLB에 가입한 캐나다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대만의 구단을 가입시키는 것을 고려하자는 일본 언론의 사설이 올라왔다. 대만 언론까지 이 글을 보도할 정도. # 이미 대만에서는 한 정치인이 대만 프로야구 리그의 팀을 2개로 통폐합한 뒤 일본프로야구에 가입하자는 주장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해당 문서 참고.
2023년 9월 30일, NHK를 통해 2024년부터 새로 2개 구단이 창단되어 2군 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내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 각각 시즈오카와 니가타를 연고로 하며, 시즈오카의 팀명은 쿠후 하야테 벤처스 시즈오카와 니가타의 팀명은 오이식스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이라고 한다. 다만 보도 기사에 따르면 두 구단의 1군 참가에는 기구 측에서 소극적인 상황이다. 2026년부터 2군은 아예 단일 리그로 재편되었고, 1개 리그를 3개 그룹으로 나누어 5개 구단씩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14개 구단을 5-5-4개씩 나누었다. 1군과 별개 리그처럼 운영하겠다는 게 구단주들의 방침.
2024년 12월 19일, 일본 야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회장이 향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그간 와타나베의 눈치를 살피느라 논의조차 되지 못한 16구단 확장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행 12구단 체제에서 4개의 구단이 추가적으로 리그에 참여해야 하는 규모가 큰 사안인지라 연고지 문제, 모기업 문제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많아 여전히 구단 확장 가능성은 낮기는 하지만, 와타나베 회장 생전에 리그 확장 가능성이 아예 전무했던 상황에서 그나마 희박하게나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2025년 8월 4일 회의에서 2027년부터 센트럴 리그에 지명타자제가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프로야구 개편[110]에 첫 발을 내딛었다.
5. 시즌 운영
5.1.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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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일본프로야구 신인선수 선택회의#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일본프로야구 신인선수 선택회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다른 스포츠 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드래프트 제도인 1라운드 지명권 완전추첨제가 특징.
5.2. 페넌트 레이스 및 교류전
페넌트레이스는 2015년부터 팀당 143경기를 소화한다. 같은 리그 팀과는 25경기씩 토탈 125경기를 치르고, 나머지 18경기는 다른 리그와 교류전[111]을 치른다. 덕분에 오히려 KBO 리그보다 1경기가 더 줄어들게 되었다. KBO의 경우는 128경기 체제였다가 2015년 kt wiz가 참가하며 경기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원정경기 이동 시 센트럴 리그는 신칸센을 이용해서 다니는 반면, 퍼시픽 리그는 일본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센트럴 리그의 경우 모든 팀이 도카이도 - 산요 신칸센 연선에 붙어 있는 반면[112], 퍼시픽 리그의 경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는 저 멀리 삿포로가 연고지이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후쿠오카에 연고지가 있어 신칸센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의 경우 신칸센이 후쿠오카까지 들어가지만 긴 소요 시간으로 인해 오릭스 및 (2년에 한 번 가는) 히로시마, 한신, 주니치 원정 외에는 전부 비행기로 때우고 있고, 닛폰햄은 2025년 현재 아예 신칸센을 탈 기회도 없다. 홋카이도 신칸센이 홋카이도로 들어오고 있지만 겨우 세이칸 터널 너머 신하코다테호쿠토역이 시종점이고, 삿포로역까지는 따로 호쿠토를 타고 4시간을 소요해야 갈 수 있으며, 삿포로까지의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은 2031년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센트럴 리그 팀들이 신칸센을 타고 다니는 건 다른 이유도 있으니, 바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때문이다. 사고기가 사고 당일 하네다 - 후쿠오카 노선을 왕복할 때 죽음의 원정을 다니던[113] 한신 타이거스 선수단이 사고 발생 1시간 전에 그 사고기를 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가 도쿄에서의 대형 사철 관련 회의에 참가 후 사고기를 타고 오사카로 복귀하려다가 참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실 나카노 하지무가 참가할 회의도 아니었는데 대리출석하다 사고를 당했다. 당일 사고기는 하네다-삿포로-하네다-후쿠오카-하네다-이타미-하네다 순으로 다니는 스케줄이었고 사고는 제일 마지막 이타미 가는 항공편에서 터졌다. 즉, 만에 하나라도 그 사고기의 벌크헤드가 조금이라도 일찍 틀어졌다면 샤페코엔시 참사를 30년 전에 보았을지도 모르는 상황. 보통 센트럴 리그 팀들의 경우 스프링캠프를 간다거나 교류전 닛폰햄, 라쿠텐,[11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115] 원정 정도 말고는 비행기 탈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
교류전은 2005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2005, 2006년은 36경기씩(6팀*3연전*홈&어웨이) 치러졌으나 센트럴 리그 5개 구단의 반발로[116] 2007년부터는 24경기로 축소되었다. 그러고도 2연전 체제라서 중간중간 이동일 및 휴식일이 너무 많고 기간에 비해 경기 소화가 적으며 너무 늘어져서 관중들의 흥미가 반감된다는 이유를 들어서 2015년부터 다시 18경기로 축소하였다. 사실 이것도 교류전의 결과가 2연전 체제와 잦은 휴식 때문에 에이스급 투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이들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퍼시픽 리그에게 유리하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이다. 그리고 교류전이 끝나갈 때 쯤 되면 주주총회 시즌이 오는데, 야구단 모기업들의 경우 팀이 성적이 저조하면 주주 총회장에서 주주들이 기업 경영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야구단에 대한 청문회를 더 열정적으로 하는 경우가 생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의 통합 전적은 압도적으로 퍼시픽리그 소속 구단들이 우세하다. 2009년을 제외하고 시즌당 리그별 승수가 퍼시픽 리그가 센트럴 리그를 앞지른다. 양 리그 간의 차이를 짚어볼 수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서 16년 만에 교류전이 중지되었다.
5.3. 비디오 판독
NPB는 비디오 판독 도입이 매우 늦은 편이다.[117] 그나마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의 경우도 홈런 / 파울, 2016년부터는 홈 충돌 방지 판정에서나 사용했으며, 각 팀의 홈 경기장이 아닌 지방구장 경기에서는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2016년이 되어서야 가능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오심도 굉장히 많아서 일부 일본 팬들은 바다 건너에서 실시하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자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4년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한신 타이거스에 끝내기를 맞고 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오심이 발생한 적이 있어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승엽과 이대호도 홈런 하나씩을 손해 본 적도 있었다.2017년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는 이 비디오 판독으로 인해 승부가 뒤바뀌었다. 그날 따라 비디오 판독이 2번이나 일어났다. 비디오 판독이 가능한 케이스가 딱 두 상황인데 그 두 상황이 모두 일어난 것. 첫 번째는 소프트뱅크의 홈런/파울 판독으로 파울->파울. 두 번째는 소프트뱅크 주자의 홈에서의 태그아웃/세이프 판독으로 태그아웃->세이프. 참고로 이때 태그아웃이 되었으면 요코하마와 3대3으로 동점이었는데 세이프로 바뀌는 바람에 4대3으로 역전승에 성공하였다.
이와 관련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2018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을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 실행하게 된다. 초기에는 시설이 미비한 관계로 KBO 리그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TV 중계 화면에 의존한 합의판정이 진행되었다가, 이후 MLB와 마찬가지로 각 구장마다 비디오 룸이 갖춰진 이후에는 KBO 리그, MLB 심판이 헤드셋 착용과 달리 NPB는 각 구장 내의 비디오 룸을 활용해서 비디오 판독을 시행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할 때 '챌린지'라는 용어가 너무 도전적이라는 이유로 '리퀘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제도 도입 이후에는 크게 얘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해가 갈수록 리퀘스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데 오심이 판독을 통해서도 번복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025년 들어 해당 문제가 심화되며 각 구단 및 야구팬들의 불만이 커졌고 결국 2025년 8월 4일, 판독 센터 도입을 검토하기로 하며 리퀘스트 제도 개선에 첫 발을 내딛었고 2026 시즌부터 판독 센터가 도입되기로 결정되었다.
5.4. 지방 구장 경기
일본프로야구는 각 팀들의 홈구장 주변 연고지 혹은 연고지 외 지방의 구장에서 치르는 일명 '출장시합'이라는 홈경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있다. 출장시합은 세 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연고지 내 기존 홈구장외의 야구장에서 홈경기 개최,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 개최, 다른 구단들의 홈 구장에서 홈경기(!) 개최가 있다. 지역 연고의 프로팀이 있는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경기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스모의 '쥰교'의 영향을 받은 문화로, 100년 가까이 된 리그라 TV도 없고 제대로 된 교통수단도 미비하던 시절 지방민은 정말 야구를 보기 힘들었기에 이렇게 시골에 살지만 오락거리를 원하고 또 야구가 보고 싶은 팬들을 위해 야구단이 찾아가던 시스템으로, 21세기 현재는 TV와 인터넷 중계와 대중교통 발달 등으로 과거보다는 필요성이 줄어서 횟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연고지 밀착, 옛날 홈구장, 시장 확대 등 여러 이유로 치러진다. 다만 거의 매년 지방 구장 경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며, 이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치바 롯데 마린즈는 아예 지방 구장 경기를 전부 2군 경기로만 돌린 후 그 경기에서 1군 수준으로 이벤트나 행사를 많이 열어[118] 돈을 벌겠다는 식으로 방침을 바꾸었다.[119] 1군에서도 지방구장 경기를 하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역시 1군 경기를 개최하는 지방구장에서 추가로 1~2경기 정도 2군 경기를 잡는 이벤트를 한다.
연고지 내의 타 구장 홈경기의 사례로는 홋카이도 연고 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오비히로, 하코다테 등), 후쿠오카 연고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규슈 경기(키타큐슈,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 사이타마 연고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미야 경기가 있다. 매년 고정으로 열리는 구장[120]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장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올해 했다고 다음 해에도 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매 시즌 일정표에서 이를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비슷한 예로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의 포항이나 롯데 자이언츠의 울산, 한화 이글스의 청주 등이 있다.
연고가 없는 제3지역에서 홈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마츠야마, 시즈오카, 후쿠시마, 아키타 경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오키나와, 군마 경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후[121] 경기 등이 있으며 한 해에 같은 구장에서 서로 다른 팀의 홈 경기가 열리는 사례도 있다. 2012년의 경우 4월 21일, 22일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의 홈 경기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도호쿠 라쿠텐의 2연전이 가고시마(21일), 구마모토(22일)에 열렸는데 4월 25일, 26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요코하마 DeNA의 2연전이 구마모토(25일/우천취소), 가고시마(26일)에서 열렸다. 또한 아키타에서는 5월 12, 13일엔 도쿄 야쿠르트의 홈 경기로 도쿄 야쿠르트-요미우리 2연전이 열렸고 8월 28일에는 요미우리의 홈 경기로 요미우리-주니치 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첫 정규시즌 경기가 6월 26일, 27일 요코하마 홈경기로 요코하마 DeNA-도쿄 야쿠르트의 2연전으로 나하에서 개최되었다. 윗 문단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올해 열린 제3지역 경기가 다음 해에도 열린다는 보장이 없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의암 야구장이나 제주 야구장에서 KBO 1군 경기가 치러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능가하는 다른 구단의 홈 구장에서 홈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지역의 팬들과 연고 이전 이전의 팬들을 위해 치르는 이유가 크다. 대표적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도쿄 돔[122] 경기,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가 있으며, 한신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123], 2017년 일정에서 소프트뱅크의 홈경기를 도쿄 돔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요미우리 홈경기는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렸으며[124], 심지어 1999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 같은 경우에는 호크스와의 홈경기를 호크스의 홈인 후쿠오카 돔에서 치른 적도 있었다.[125] 2008년과 2012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교류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 치르는 홈경기를 호크스의 텃밭인 규슈의 키타큐슈(2008년, 2012년)와 오이타(2008년)[126], 나가사키(2012년)에서 치르기도 했다. 2016년 4월 19일부터 20일까지 요미우리는 규슈 출장으로 각각 구마모토와 가고시마에서 주니치와의 홈 경기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인하여 두 경기가 모두 취소되고 정작 자신들의 홈 구장인 도쿄 돔에서는 라쿠텐과 오릭스의 경기가 개최되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팀의 프랜차이즈 보호구역에서 경기를 개최할 경우 그 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127]
또한 야구에서도 일본과 대만이 워낙 각별한 사이인지라 2002년에는 다이에와 오릭스가 대만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128] 그러나 장거리 원정에 지친 선수들의 불만으로 그때 한해 치르고는 그만뒀다. 또한 이승엽이 치바 롯데에 소속되어 있던 2005년에는 롯데 측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를 문학과 사직에서 한 경기씩 치르는 계획도 추진했으나 흥행 가능성의 문제를 들어서 취소되기도 했다.
기후 나가라가와 구장 개장 첫 장외홈런을 친 장종훈, 우베 시민구장에서 홈런을 날린 이종범, 오비히로에서 홈런을 친 이대호를 제외하고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인 타자들은 지방구장에서 홈런을 친 적이 없다.
보통 지방구장 경기를 할 때 그 지역 연고의 선수가 있으면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하거나, 백업급 선수지만 그날만큼은 스타멘에 올린다거나 하는 일이 있다. 보통 전문 불펜 선수거나 백업급 야수라서 무리하게 선발로 넣었다가 경기를 내주면 순위싸움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싶을 때는 불펜이나 대타, 대수비로 올리곤 하는 편. 다만 요시이 마사토는 키타큐슈 시민구장 원정 때 키타큐슈 출신의 오시타 세이이치로를 이런 거 싹 무시하고 끝까지 벤치에 앉혀서 까이기도 했다.
이런 지방경기들은 우천취소 등이 일어날 시에는 제1구장 경기로 바뀐다. 따라서 지방구장 경기를 보러 가려는 팬들은 주의할 것. 또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개막이 연기되었는데, 6월 이후의 지방구장 경기도 상당수가 미리 취소되었다.
대표적 지방경기로는 아래와 같이 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교세라 돔 오사카 - 칸사이권 팬들을 위해 매년 1~2회 개최
- 한신 타이거스: 교세라 돔 오사카 - 고시엔 기간 및 홈 개막전 개최, 머스캣 스타디움 - 매년 1~2회 개최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키타큐슈 시민구장 - 매년 2회 개최, 교세라 돔 오사카 - 난카이 호크스 시절 팬들을 위해 개최, 도쿄 돔 - 도쿄 팬들과
회장님 및모기업 사원들을 위해 개최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도쿄 돔 - 도쿄 팬들을 위해 매년 10회 이하 개최[129], 홋카이도 시리즈(아사히카와, 하코다테 등) - 홋카이도 지역 팬들을 위해 개최. 2020년은 아사히카와, 오비히로, 쿠시로. 그러나 코로나19로 전부 무산.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도호쿠 지역 팬들을 위해 순회하며 실시된다. 2024년은 아키타[130], 후쿠시마[131], 야마가타[132], 히로사키[133], 모리오카[134] 순으로 개최된다.
- 오릭스 버팔로즈: 홋토못토 필드 고베 - 블루웨이브 팬들을 위해 매년 20회 이하 개최하며, 매년 8월 고시엔 기간에는 교세라돔을 임대해서 쓰는 한신 구단 때문에 아예 임시홈구장이 된다. 지방구장 경기 중에서 가장 많이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오미야에서 매년 3경기를 치른다. 군마에서도 지방경기를 한다. 도쿄 돔에서 홈경기를 하기도 한다. 2020년에는 오미야 3경기, 군마 1경기, 도쿄돔 1경기. 단 코로나19로 오미야 2경기와 군마 경기, 도쿄돔 경기는 무산.
5.5. 올스타전
경기는 매년 2~3경기를 치른다. 경기수는 매년 시즌 일정을 정할 때마다 새로 정하므로 무슨 규칙이 있어서 어떨 때는 2경기 어떨 때는 3경기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 3경기를 치르고 해당 수익금을 일본올림픽대표팀의 후원금으로 기부한 경우도 있다.또한 각 포지션별 올스타 투표는 별 차이가 없지만, 투수 부문에서는 선발-중간-마무리로 나눠 투표한다.
KBO와는 다르게 후보에 없는 선수도 투표가 가능하며, 포지션을 맞춰서 투표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면 윌린 로사리오를 유격수로 투표할 수도 있다(...) 다만 2003년 당시 2ch 유저들의 장난으로 2군에서 부상으로 인해 먹튀를 하고 있던 카와사키 켄지로 선수가 올스타 투표를 통해 올스타 선발 투수가 될 뻔한 통칭 카와사키 축제로 인해 후보로 투표하려면 그 시즌에 투수는 5경기 혹은 10이닝 이상 등판/타자는 10경기 혹은 20타석 이상 서야 한다는 규칙이 생긴다.[135] 또한 1일 1투표라서 한 명이 여러 표를 행사할 수 있다.[136]
5.6. 외국인 선수
- 역대 외국인 선수는 외국인 선수/역대 일본프로야구 문서 참고.
일본에선 외국인 선수를 스켓토(助っ人)라 부른다. 즉, 직역하자면 도우미 정도의 의미. 한국에서 용병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뒀는데,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 재일 한국-조선인 선수들이 활약했던 것과 유사하게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주로 일본계 미국인들이 활약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나미네 카나메. 1950년대에는 나이 등의 이유로 메이저 리그 진출 가능성이 미약해진 니그로리그 출신 선수들이 일본으로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마이너 리그 트리플A 출신 선수들을 영입했다.
KBO 리그와는 달리 K리그1, K리그2처럼 외국인 선수 보유에는 제한이 없다는 점이 특징으로, 즉 팀에 자금만 넉넉하다면 얼마든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서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2군에 등록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1군에 콜업해서 쓰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는 대신 그만큼 국내 선수의 보유 한도가 줄어든다.
따라서 즉시전력감에 치중하는 한국과는 달리 육성형 선수나 보험용 계약도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선수 교체에도 제한이 없어서 즉전감으로 데려온 선수라고 해도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하면 한국처럼 잠깐 2군에 보냈다가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하지 않고 칼같이 2군에 박아 버린 후에 새 선수를 물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몇몇 국내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 진출했다가 MLB의 벽에 막힌 선수들이 일본으로 가면 주전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도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1군에는 최대 4명까지 등록이 가능하고, 외국인 선수 등록한도를 전원 투수나 타자로만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등록한도를 최대로 채워도 타자와 투수를 최소 1명씩 등록해놔야 한다.[137] 이때 4명까지만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불펜 용병을 쓰거나 용병 타자가 2명 이상인 팀들은 2019년까지의 KBO 리그만큼은 아니지만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용병 타자 2명, 용병 선발 1명, 용병 불펜 2명을 1군에 등록시킨 팀이 있다고 가정할 때 용병 선발이 출전하는 날은 용병 불펜과 용병 타자 중 한 명을 제외시켜야 한다. 거기다가 불펜진이 얇아서 용병 불펜 둘이 각각 8회 셋업과 마무리를 맡는 팀의 경우라면 용병 타자를 빼야 할지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138]
거기다가 투타를 각각 2~3명씩 등록하는 경우는 아무 제한이 없지만, 투수 4명/타자 1명의 조합이나 그 반대의 조합으로 외국인 선수를 등록시킨 경우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무조건 4:1 조합으로 가거나, 외국인 쿼터를 스스로 4명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있다. 만약 투수 4명/타자 1명으로 외국인 등록을 이미 해버린 팀이 타자를 2명 1군에 올리고자 하면 외국인 쿼터를 4명으로 축소하여 투수 2명/타자 2명으로 등록하는 방식밖에 할 수 없다. 다만 투수 4명/타자 1명인 팀이 투수 1명/타자 4명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한 듯.
선발 출전으로 4명 출전하려면 투수 2명 타자 2명, 투수 3명 타자 1명, 투수 1명 타자 3명으로 출전해야 한다.
참고로 육성선수의 경우 만 26세 이상인 선수는 매년 3월 말일까지만 지배 등록이 가능하다. 그 시기를 넘기면 그 시즌에는 계속 육성선수로 남아 있어야 한다.
또한, 특정 조건을 만족한 외국인 선수는 국내 선수로 취급되어 외국인 선수 제한에서 제외된다.
- 1.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간 뛰며 FA 자격을 얻은 선수.
대표적인 선수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호세 페르난데스, 랜디 메신저, 블라디미르 발렌틴, 다얀 비시에도, 네프탈리 소토, 리반 모이넬로가 있다.[139]
- 2. 일본 국내에서 고교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드래프트 신청 직전의 교육기관이 일본 국내 정규교육기관이며 드래프트를 거친 경우.
이 예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장훈이나 김일융 등의 재일교포 선수들,[140] 대만 출신의 요다이칸, (후쿠오카제일고-닛폰햄) 한국에서 태어나고 야구를 시작했다가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가서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2008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김무영(하야토모고-후쿠오카경제대-후쿠오카 레드와블러스)[141]과 신성현(교토국제고)[142], 브라질 출신의 루시아누 페르난두(하쿠오대[143])가 있다. 2017년에는 키수 데수자 펠리페라는 브라질 출신 선수가 오릭스 버팔로즈에 육성선수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아니지만 백인천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외국인 선수로 간주하지 않았다.
- 4. 일본에 5년 이상 거주한 후, 사회인 야구 팀에서 통산 3년 이상 재직한 선수.
일본계 브라질인 타마키 시게오(미츠비시자동차 카와사키-히로시마)가 있다.
- 5. 항목 3, 4의 필요한 연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드래프트를 거쳐 입단 후 학교의 재학 기간과 일본 프로 야구의 재적 기간을 합쳐 5년 이상 경과한 선수.
주니치에 잠시 몸 담았던 송상훈이 있다.
5.6.1. 2024년 외국인 선수
NPB는 외국인 육성선수도 있다 보니 육성선수를 구별하기 위해 정식 선수에게만 볼드체를 씌움. 외국인 쿼터에 들어가는 선수만 표시. 대신에 한국이나 대만 국적이어도 외국인 쿼터를 적용받으면 표시할 것.[144] 명단은 전년도 리그 순위.국내 야구팬의 시선으로 본다면 매년 일본에서 실패한 용병이 2~3명씩 다음 해나 다다음 해에 한국으로 오기 때문에 이 중 몇 명은 분명히 1~2년 후에 KBO에서 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름 정도는 훑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145]
2017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18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는 지미 파레디스가 있다.
2018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19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로는 조 윌랜드, 카를로스 페게로가 있다.
2019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0년에 KBO와 계약을 맺은 선수로는 데이비드 뷰캐넌이 있다. 이후 타일러 애플러가 2022년에 KBO에 진출했다.
2020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1년에 호세 피렐라, 조일로 알몬테가 KBO와 계약을 맺었고, 이후 저스틴 보어도 대체용병으로 합류하였다. 이후 션 놀린이 2022년에 KBO에 진출했다.
2021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2년에 알버트 수아레즈, 케빈 크론, 글렌 스파크먼이 KBO와 계약을 맺었다.
2022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3년에 브라이언 오그레디가 KBO와 계약을 맺었다.
2023년 일본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중 24년에 데이비드 맥키넌, 디트릭 엔스, 맷 데이비슨, 드류 앤더슨이 KBO와 계약을 맺었다.
5.6.1.1. 센트럴 리그
|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2024시즌 용병 | |||||
| <rowcolor=#ffffff> 팀 | 국적 | 포지션 | 배번 | 성명 | 비고 |
| | | 투수 | No.00 | 하비 게라 | |
| No.99 | 제레미 비슬리 | |||
| 외야수 | No.7 | 쉘든 노이지 | ||
| No.55 | 요안 미에세스 | |||
| | | 투수 | No.42 | 토마스 해치 | |
| No.68 | 테일러 헌 | |||
| No.98 | 로베르트 코르니엘 | |||
| 내야수 | | | 7월 퇴단 | |
| No.95 | 제이크 샤이너 | |||
| No.130 | 모이세스 라미레스 | |||
| 외야수 | No.131 | 넬슨 로베르토 | ||
| | | 투수 | No.42 | 안드레 잭슨 | |
| No.49 | J.B. 웬델켄 | |||
| No.62 | 로완 윅 | |||
| No.69 | 앤서니 케이 | |||
| No.93 | 요프렉 디아스 | 6월 지배하 등록 | ||
| No.105 | 윌니 모론 | |||
| No.107 | 한셀 마르셀리노 | |||
| No.110 | 알렉산더 마르티네스 | |||
| 내야수 | No.99 | 마이크 포드 | ||
| 외야수 | No.3 | 타일러 오스틴 | ||
| | | 투수 | No.29 | 포스터 그리핀 | |
| No.33 | 카일 켈러 | |||
| No.49 | 알베르토 발도나도 | |||
| No.65 | 요안데르 멘데스 | |||
| No.035 | 엘비스 루시아노 | |||
| No.041 | 황진하오 | |||
| 내야수 | No.39 | 코코 몬테스 | ||
| No.98 | 에스타미 우레냐 | |||
| 외야수 | | | 4월 퇴단 | |
| No.42 | 엘리어 에르난데스 | |||
| No.013 | 훌리안 티마 | |||
| | | 투수 | No.37 | 엘빈 로드리게스 | |
| No.39 | 호세 에스파다 | |||
| No.54 | 사이 스니드 | |||
| No.99 | 미겔 야후레이 | |||
| 내야수 | No.13 | 호세 오수나 | ||
| 외야수 | No.25 | 도밍고 산타나 | ||
| | | 투수 | No.91 | 움베르토 메히아 | |
| No.92 | 라이델 마르티네스 | |||
| No.93 | 마이클 펠리스 | |||
| No.202 | 프랑크 알바레스 | |||
| 내야수 | No.95 |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 ||
| No.99 | 올란도 칼리스테 | |||
| 외야수 | No.94 | 알렉스 디커슨 | ||
| No.220 | 카를로스 모니에르 | |||
5.6.1.2. 퍼시픽 리그
|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2024시즌 용병 | |||||
| <rowcolor=#ffffff> 팀 | 국적 | 포지션 | 배번 | 성명 | 비고 |
| | | 투수 | No.00 | 앤더슨 에스피노자 | |
| No.42 | 안드레스 마차도 | |||
| No.54 | 루이스 카스티요 | |||
| No.59 | 루이스 페르도모 | 5월 입단 | ||
| 내야수 | No.8 | 마윈 곤살레스 | ||
| No.40 | 레안드로 세데뇨 | |||
| 외야수 | No.45 | 코디 토마스 | ||
| | | 투수 | | | 7월 퇴단 |
| No.41 | 댈러스 카이클 | 7월 입단 | ||
| No.42 | C.C. 메르세데스 | |||
| | | 7월 퇴단 | ||
| No.69 | 지미 코데로 | |||
| 내야수 | No.99 | 네프탈리 소토 | ||
| 외야수 | No.22 | 그레고리 폴랑코 | ||
| No.138 | 앤디 마틴 | |||
|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엠블럼.svg | | 투수 | No.2 | 카터 스튜어트 | |
| No.35 | 리반 모이넬로 | |||
| No.54 | 로베르토 오수나 | |||
| No.63 | 다윈즌 에르난데스 | |||
| No.135 | 알렉산더 아르멘타 | |||
| No.141 | 마일론 펠릭스 | |||
| No.156 | 루이스 로드리게스 | |||
| No.176 | 다리오 사르두이 | |||
| 내야수 | No.4 | 지터 다운스 | 7월 입단 | |
| No.175 | 데이비드 알몬테 | |||
| 외야수 | No.28 | 애덤 워커 | ||
| No.144 | 마르코 시몬 | |||
| No.173 | 호세 오수나 | |||
| | | 투수 | No.13 | 코디 폰스 | |
| No.20 | 닉 털리 | |||
| No.43 | 쑹자하오 | |||
| No.017 | 왕옌청 | |||
| 내야수 | No.23 | 마이켈 프랑코 | ||
| | | 투수 | No.00 | 제프리 얀 | |
| No.42 | 보 타카하시 | |||
| No.54 | 알베르트 아브레우 | |||
| No.116 | 빅토르 로페스 | |||
| 내야수 | No.44 | 헤수스 아귈라 | ||
| 외야수 | No.55 | 프란치 코데로 | ||
| No.78 | 앤서니 가르시아 | 7월 지배하 등록 | ||
| | | 투수 | No.31 | 패트릭 머피 | |
| No.41 | 브라이언 로드리게스 | |||
| No.42 | 아네우리스 자발라 | |||
| No.45 | 드루 버헤이겐 | |||
| No.196 | 쑨이레이 | |||
| 포수 | No.2 | 아리엘 마르티네스 | ||
| 외야수 | No.6 | 앤드류 스티븐슨 | ||
| No.99 | 프란밀 레예스 | |||
5.7. 포스트시즌
5.7.1.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을 야구인 플레이 오프는 클라이맥스 시리즈(Climax Series)로 불린다.퍼스트 스테이지(1회전)에서는 3전 2선승제로 하고 파이널 스테이지(2회전)에서는 1위팀과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리한 팀이 7전 4승제로 붙는데, 1위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를 주기 때문에 1차전을 이미 이긴 것으로 간주하여 실제로는 6전 게임이 된다.[146] 그리고 원정팀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모든 경기를 높은 순위에 있는 팀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일정상 유리하고(이동일 하루를 빼지 않는다.) 야구가 홈팀 어드밴티지가 큰 스포츠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긴다면 9회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순위 높은 팀이 유리한 규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혹여나 무승부 경기가 나와서 동률이 되어버리면 그냥 순위 높은 팀이 진출한다.
사실 센트럴 리그에서 교류전(인터리그)와 더불어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퍼시픽 리그보다 더 반대를 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센트럴 리그가 퍼시픽 리그보다 실력적으로 밀리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센트럴 리그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강해졌다. 이러한 성향을 거쳐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는데 동의하면서 거기에 정규시즌 1위팀에게 유리한 조건을 달은 것이다.
연도별, 리그별, 스테이지별 결과는 해당 문서 참조
5.7.2. 일본시리즈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시리즈)는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7전 4전승제로 일본시리즈에서의 홈 어드밴티지는 홀수해에는 퍼시픽 리그, 짝수해에는 센트럴 리그 팀에게 주어진다. 참고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시리즈에서는 12회까지 연장전으로 진행한다.6. 역대 우승팀
6.1. 단일리그 시대[147]
| 1936년 춘계 - 제1회 일본 직업 야구 리그[148] | |||||
| 도쿄 세네터스[セ] | 도쿄 세네터스[セ] | 도쿄 세네터스[セ], 한큐군 | |||
| 고시엔 대회 | 나루미 대회 | 다카라즈카 대회 | |||
| 1936년 하계 - 연맹 결성 기념 전일본 야구 선수권[152] | |||||
| 나고야군 | 한큐군 | 오사카 타이거스 | |||
| 도쿄 대회 | 오사카 대회 | 나고야 대회 | |||
| 1936년 추계 - 제2회 전일본 야구 선수권 | |||||
| 도쿄 교진군 | 오사카 타이거스 | 도쿄 교진군 | 오사카 타이거스, 나고야군 | 도쿄 교진군, 오사카 타이거스 | 오사카 타이거스, 한큐군 |
| 오사카 대회 | 나고야 대회[토너먼트] | 오사카 대회[토너먼트] | 도쿄대회 | 오사카대회 | 도쿄대회 |
| 제2회 전일본 야구 선수권 승점 순위 | 1936년도 우승 결정전[155] | ||||
| 도쿄 교진군 | 2.5 | 도쿄 교진군 | 5-3 | 오사카 타이거스 | |
| 오사카 타이거스 | |||||
| 나고야군 | 0.5 | 도쿄 교진군 | 3-5 | 오사카 타이거스 | |
| 한큐군 | |||||
| 도쿄 세네터스[セ] | 0 | 도쿄 교진군 | 4-2 | 오사카 타이거스 | |
| 다이도쿄군[157] | |||||
| 나고야 킨코군[158] | 도쿄 교진군 우승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0.92em; letter-spacing: -0.85px; word-break: keep-all" | 순위 없음 | 순위 없음 | 도쿄 교진군 | 도쿄 교진군 | 오사카 타이거스 |
| 1936년 춘계 | 1936년 하계 | 1936년 추계 | 1937년 춘계 | 1937년 추계 | |
| 오사카 타이거스 | 도쿄 교진군 | 도쿄 교진군 | 도쿄 교진군 | 도쿄 교진군 | |
| 1938년 춘계 | 1938년 추계 | 1939년 | 1940년 | 1941년 | |
| 도쿄 교진군 | 도쿄 교진군 | 한신군 | 전쟁 악화로 인해 중단 | 킨키 그레이트링 | |
| 1942년 | 1943년 | 1944년 | | 1946년 | |
| 오사카 타이거스 | 난카이 호크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리그 개편 | ||
| 1947년 | 1948년 | 1949년 | 일본프로야구 | ||
6.2. 양대리그 분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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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일본시리즈#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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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 요미우리 | 1956 니시테츠 | 1957 니시테츠 | 1958 니시테츠 | 1959 난카이 | |
| 1960 타이요 | 1961 요미우리 | 1962 토에이 | 1963 요미우리 | 1964 난카이 | |
| 1965 요미우리 | 1966 요미우리 | 1967 요미우리 | 1968 요미우리 | 1969 요미우리 | |
| 1970 요미우리 | 1971 요미우리 | 1972 요미우리 | 1973 요미우리 | 1974 롯데 | |
| 1975 한큐 | 1976 한큐 | 1977 한큐 | 1978 야쿠르트 | 1979 히로시마 | |
| 1980 히로시마 | 1981 요미우리 | 1982 세이부 | 1983 세이부 | 1984 히로시마 | |
| 1985 한신 | 1986 세이부 | 1987 세이부 | 1988 세이부 | 1989 요미우리 | |
| 1990 세이부 | 1991 세이부 | 1992 세이부 | 1993 야쿠르트 | 1994 요미우리 | |
| 1995 야쿠르트 | 1996 오릭스 | 1997 야쿠르트 | 1998 요코하마 | 1999 다이에 | |
| 2000 요미우리 | 2001 야쿠르트 | 2002 요미우리 | 2003 다이에 | 2004 세이부 | |
| 2005 롯데 | 2006 닛폰햄 | 2007 주니치 | 2008 세이부 | 2009 요미우리 | |
| 2010 롯데 | 2011 소프트뱅크 | 2012 요미우리 | 2013 라쿠텐 | 2014 소프트뱅크 | |
| 2015 소프트뱅크 | 2016 닛폰햄 | 2017 소프트뱅크 | 2018 소프트뱅크 | 2019 소프트뱅크 | |
| 2020 소프트뱅크 | 2021 야쿠르트 | 2022 오릭스 | 2023 한신 파일:한신 타이거스 로고.svg | 2024 DeNA | |
| 2025 소프트뱅크 | 2026 | 2027 | 2028 | 2029 |
6.3. 3연패 이상 기록 구단
7. 개인 시상
7.1. 최우수선수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F8F2D> | 센트럴 리그 역대 최우수선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코즈루 마코토 쇼치쿠 / 외야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 오토모 타쿠미 요미우리 / 투수 | 스기시타 시게루 주니치 / 투수 |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투수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외야수 |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 투수 |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 아키야마 노보루 타이요 / 투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 투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내야수 |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 투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내야수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외야수 | 에나츠 유타카 히로시마 / 투수 |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외야수 | 에나츠 유타카 요미우리 / 투수 | 나카오 타카요시 주니치 / 포수 | 하라 타츠노리 요미우리 / 내야수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 랜디 바스 한신 / 내야수 | 키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 투수 | 야마쿠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 포수 | 카쿠 켄지 주니치 / 투수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외야수 |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투수 |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 투수 | 잭 하월 야쿠르트 / 내야수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포수 | 쿠와타 마스미 요미우리 / 투수 |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 내야수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포수 | 사사키 카즈히로 요코하마 / 투수 | 노구치 시게키 주니치 / 투수 |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 외야수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외야수 | 이가와 케이 한신 / 투수 | 카와카미 켄신 주니치 / 투수 |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카네모토 토모아키 한신 / 외야수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외야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 내야수 | 알렉스 라미레즈 요미우리 / 외야수 |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 와다 카즈히로 주니치 / 외야수 | 아사오 타쿠야 주니치 / 투수 |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 포수 |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 외야수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내야수 | 아라이 타카히로 히로시마 / 내야수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 외야수 | 사카모토 하야토 요미우리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내야수 | 무라카미 쇼키 한신 / 투수 |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투수 | ||
| <rowcolor=#FFFFFF> 2025 | |||||
| 사토 테루아키 한신 / 내야수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3fb1e5> | 퍼시픽 리그 역대 최우수선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외야수 | 야마모토 카즈토 난카이 / 내야수 | 유키 스스무 난카이 / 투수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내야수 | 오오시타 히로시 니시테츠 / 외야수 | |
| <rowcolor=#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외야수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내야수 |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투수 | 스기우라 타다시 난카이 / 외야수 | ||
| <rowcolor=#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투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조 스탠카 난카이 / 투수 | |
| <rowcolor=#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아다치 미츠히로 한큐 / 투수 | 요네다 테츠야 한큐 / 투수 | 나가이케 토쿠지 한큐 / 외야수 | ||
| <rowcolor=#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 키타루 마사아키 롯데 / 투수 | 나가이케 토쿠지 한큐 / 외야수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카네다 토메히로 롯데 / 외야수 | |
| <rowcolor=#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 카토 히데지 한큐 / 내야수 | 야마다 히사시 한큐 / 투수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외야수 | |||
| <rowcolor=#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 키다 이사무 닛폰햄 / 투수 | 에나츠 유타카 닛폰햄 / 투수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부머 웰즈 한큐 / 내야수 | |
| <rowcolor=#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이시게 히로미치 세이부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외야수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외야수 | |
| <rowcolor=#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 노모 히데오 킨테츠 / 투수 | 카쿠 타이겐 세이부 / 투수 | 이시이 타케히로 세이부 / 투수 |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 투수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
| <rowcolor=#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 투수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내야수 | 쿠도 키미야스 다이에 / 투수 | ||
| <rowcolor=#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터피 로즈 킨테츠 / 외야수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내야수 | 죠지마 켄지 다이에 / 포수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스기우치 토시야 소프트뱅크 / 투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내야수 | 다르빗슈 유 닛폰햄 / 투수 | 이와쿠마 히사시 라쿠텐 / 투수 | 다르빗슈 유 닛폰햄 / 투수 | |
| <rowcolor=#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 와다 츠요시 소프트뱅크 / 투수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요시카와 미츠오 닛폰햄 / 투수 | 타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 투수 |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 투수 |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닛폰햄 / 투수, 외야수 | 데니스 사파테 소프트뱅크 / 투수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내야수 | 모리 토모야 세이부 / 포수 | |
| <rowcolor=#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야마모토 요시노부 오릭스 / 투수 |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외야수 | |||
| <rowcolor=#FFFFFF> 2025 | |||||
| 리반 모이넬로 소프트뱅크 / 투수 | }}}}}}}}} | ||||
7.2. 일본시리즈 최고수훈선수
7.3. 사와무라 상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사와무라 상#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사와무라 상#|]]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4. 최우수신인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F8F2D> | 센트럴 리그 역대 최우수신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오오시마 노부오 쇼치쿠 / 투수 | 마츠다 키요시 요미우리 / 투수 | 사토 타카오 코쿠테츠 / 외야수 | 곤도 마사토시 쇼치쿠 / 투수 | 히로오카 타츠로 요미우리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 니시무라 카즈노리 오사카 / 투수 | 아키야마 노보루 타이요 / 투수 |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 투수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투수 | 쿠와타 타케시 타이요 / 내야수 |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 호리모토 리츠오 요미우리 / 투수 | 곤도 히로시 주니치 / 투수 | 죠노우치 쿠니오 요미우리 / 투수 | 수상자 없음 | 다카하시 시게유키 타이요 / 투수 |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 수상자 없음 |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 투수 | 타케가미 시로 산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