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2 10:57:0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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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パ・リーグ / NPB 퍼시픽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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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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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롯데 마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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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ruby(埼玉, ruby=さいたま)] [ruby(西武, ruby=せいぶ)]ライオンズ
Saitama Seibu Lions
법인명 ㈜세이부 라이온즈
株式会社西武ライオンズ
창단 1949년 11월 26일
연고지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1979년 ~ 현재)
연고지 변천 후쿠오카현 (1950~1978)
사이타마현 (1979~)
구단명 변천 니시테츠 클리퍼스 (1950)
니시테츠 라이온즈 (1951~1972)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1973~1976)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1977~1978)
세이부 라이온즈 (1979~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
홈 구장 카스가하라 구장 (1950)
헤이와다이 구장 (1951~1978)
메트라이프 돔 (1979[1]~)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2008[2]~)
2군 구장 세이부 제2구장 (1979~)
모기업 서일본 철도 (1949~1972)
후쿠오카 야구 주식회사 (1973~1978)
세이부 철도 (1979~)
감독 츠지 하츠히코
킷 스폰서 마제스틱
마스코트 파일:Seibu_Lions_Mascot.png
레오 & 라이나
일본시리즈 우승
(13회[3])
1956, 1957, 1958, 1982, 1983,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2004, 2008
퍼시픽 리그 우승
(22회[4])
1954, 1956, 1957, 1958, 1963, 1982전기리그 , 1983, 1985,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7, 1998, 2002,
2004, 2008, 2018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08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2, 2004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8
역대
한국인 선수
백인천(1975~1976)
공식 홈페이지, 공식 유튜브
1956년, 1957년, 195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5-요미우리 자이언츠 니시테츠 라이온즈 1959-난카이 호크스
1982년, 198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1-요미우리 자이언츠 세이부 라이온즈 1984-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6년, 1987년, 198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5-한신 타이거즈 세이부 라이온즈 1989-요미우리 자이언츠
1990년, 1991년, 199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9-요미우리 자이언츠 세이부 라이온즈 1993-야쿠르트 스왈로즈
2004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3-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세이부 라이온즈 2005-치바 롯데 마린즈
200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7-주니치 드래곤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9-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
2007-주니치 드래곤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1-삼성 라이온즈

1. 소개2. 역사
2.1. 니시테츠 시절2.2. 고난의 시기: 다이헤이요 클럽-크라운 라이터 시절2.3. 세이부의 인수
2.3.1. 1980년대 황금기2.3.2. 황금시대 이후2.3.3. 모기업의 위기와 매각위기2.3.4. 2013년 시즌2.3.5. 2014년2.3.6. 2015년2.3.7. 2016년2.3.8. 2017년2.3.9. 2018년2.3.10. 2019년
3. 홈구장4.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5. 2군 시설 및 클럽하우스6. 이모저모
6.1. 마스코트6.2. 팬덤
7. 유니폼8. 주요 선수들
8.1. 현역
8.1.1. 투수8.1.2. 포수8.1.3. 내야수8.1.4. 외야수
8.2. OB
8.2.1. 투수8.2.2. 포수8.2.3. 내야수8.2.4. 외야수8.2.5.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8.3. 영구결번8.4. 준영구결번

1. 소개

퍼시픽 리그의 원조 명문 구단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사이타마현. 1980년대 왕조를 구축했던 퍼시픽 리그의 과거 강호다. 한국 언론에는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세이부 라이온즈'라고 쓰지만, 매체 등에서는 '세이부', '사이타마 세이부' 식으로 쓴다.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는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저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굳이 귀찮게 사이타마까지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역사

2.1. 니시테츠 시절

파일:external/star.ap.teacup.com/1337494116.jpg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우승팀으로, 1949년 창단하고 1950년 양대리그제 시행 이후 후쿠오카헤이와다이 구장[5]을 연고지로 한 니시테츠 클리퍼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같은 후쿠오카의 센트럴리그 구단 니시닛폰 파이리츠와 합병하여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되었다. 애초에 후쿠오카 정도의 지방도시에 야구팀이 두 개나 있는게 무리였으나, 당초에는 철도회사인 서일본철도와 신문사인 서일본신문(西日本新聞)의 합작으로 후쿠오카의 단일연고팀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중 어느 리그에 속할 것인가를 두고 두 회사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결국 따로따로 팀을 창단했고 결국 1년만에 니시닛폰이 GG를 치고 니시테츠와 합병하여 퍼시픽리그 소속이 되었다. 1950~60년대의 강팀으로 군림하면서 1956~1958년에는 명감독 미하라 오사무. 명투수 이나오 카즈히사와 강타자 오시타 히로시, 나카니시 후토시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3연패를 차지했다.

그 후 1963년 리그 우승을 끝으로[6]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원래 지방 사철이 모기업이라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데다 당시 비인기팀들이 모여있던 퍼시픽리그 소속에 소규모 지방도시를 홈으로 쓰는 덕분에 관중동원도 여의치 않아 팀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프로야구 최악의 흑역사인 검은 안개 사건으로 주전들 대부분이 줄줄이 구속→영구제명 크리를 먹어 팀이 순식간에 약체화되었고, 그 때문에 니시테츠가 더이상 팀을 유지할 수 없어서 1972년 구단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2.2. 고난의 시기: 다이헤이요 클럽-크라운 라이터 시절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활동기간이 얼마 안 돼서인지 구글에 일본어로 검색해도 구단기를 거의 찾기 힘들다.

이후의 사정은 현대 유니콘스우리/서울/넥센/키움 히어로즈가 짬뽕된듯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니시테쓰는 1972년 시즌을 끝으로 구단에서 손을 떼면서 기시 노부스케의 비서이자 롯데 오리온즈의 구단주였던 나카무라 나가요시[7]에게 구단 매각을 의뢰했는데,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자 자신이 직접 후쿠오카 베이스볼(주)라는 구단 운영법인을 만들어 팀을 인수하고 팀 운영비는 롯데 오리온즈 시절처럼 팀의 명칭을 팔아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스폰서의 변천에 따라 1973년 다이헤이요 클럽(太平洋クラブ)라이온즈[8][9], 1977년 크라운 라이터[10] 라이온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라이온즈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롯데와는 달리 라이온즈의 스폰서로 나선 기업들은 업종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야구 구단을 인수할만한 능력은 전혀 되지 않아서 이 당시의 라이온즈는 키움 히어로즈 창단 이후 2년간과 거의 비슷한 안습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11]

결국 미덥지 못한 스폰서의 쥐꼬리만한 재정지원으로 강팀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팀의 막장화만 가속되었다. 끝내 얼마 안되는 스폰서 자금과 나카무라의 개인 인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GG를 치고 팀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처해있을때 한 줄기 빛과 같은 광명이 비추었으니 당시 부동산, 사철 재벌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세이부 그룹이 구단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마침내 후쿠오카의 시민들도 든든한 구단주를 얻어서 옛 영광을 다시 재현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세이부가 관심을 표명했을때만 해도 이것이 일본판 현대 유니콘스, 아니 이 놈들이 현대 유니콘스의 선구자적 사건이 될 줄은...!!!

2.3. 세이부의 인수

2.3.1. 1980년대 황금기

1978년 말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구단을 인수할 것을 표명했다.

그러나 세이부는 구단인수의 조건에 자신들이 한창 부동산 개발중이던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로의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12][13]

그 조건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팀 해체밖에는 길이 없었던 라이온즈 구단으로서는 무조건 조건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팀은 세이부 그룹에 인수되어 후쿠오카를 떠나 사이타마로 이전했고, 후쿠오카의 팬들은 옛 영광의 재현은커녕 크나큰 상실감만 맛보아야 했다. 결국 후쿠오카는 1989년 서로 죽이지 않고는 못살던 예전의 라이벌 호크스가 후쿠오카 이전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10년동안의 세월을 연고팀 없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세이부에게 인수된 뒤 인기 만화였던 밀림의 왕자 레오의 레오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레오의 일러스트는 실제로 테즈카 오사무에게 저작권료를 주고 정식으로 사용권을 승인받았다. 근데 정작 테즈카 오사무는 한신팬이다. 어?[14] 후쿠오카에서 도쿄 근교로 이전해 오면서 일단 기존 팬층은 개척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만화주인공을 마스코트로 해서 어린이들부터 공략하자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공략당한 어린이들이 밑에서 기술한 세이부 황금시대를 거치면서 3, 40대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 세이부 팬층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계약이 끝난 2009년부터 이 로고는 폐기되고[15] 클래식 유니폼 데이 때만 일 단위로 계약하고 있다. 아무리 사용 못 한다 해도 아주리 블루까지 버릴 필요는 없는데.

세이부 라이온즈로 바뀐 이래,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팬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일념하에 구단주인 츠츠미 요시아키는 감독 겸 관리부장(GM 역할)이던 네모토 리쿠오(1982년부터는 관리부장 직에만 전념)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했고, 네모토는 각종 방법을 동원[16]하여 팀의 전력을 강화시켰다.[17] 결국 이러한 전력 보강 등을 이어간 끝에 1982년, 팀은 드디어 퍼시픽리그 전기리그 우승에 이어 플레이오프 에서도 후기리그 우승팀 닛폰햄 파이터즈를 격파하며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루고[18] 뒤이어 일본시리즈에서도 주니치 드래곤즈를 격파. 24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룩하며 그 결실을 이루어냈다. 그 뒤로부터 1992년까지 10여년의 기간, 그러니까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동안은 가히 세이부의 황금시대, 왕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세이부는 이시게 히로미치-츠지 하츠히코 키스톤과 아키야마 코지-키요하라 카즈히로-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의 일명 AKD 클린업 트리오, 모리의 계승자 이토 쓰토무가 버티는 백스톱까지 갖춘 철벽 야수진을 갖췄고, 투수진에는 와타나베 히사노부-쿠도 키미야스 원투펀치에 '오리엔탈 특급' 곽태원(궈타이위안, 카쿠 타이겐)가 선발진에 버티고 있고 구원진에는 카토리 요시타카. 시오자키 테츠야 등이 건재했다. 이 시기 세이부는 V9 시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버금가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강 전력의 팀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명장 모리 마사아키의 지도 아래 이 기간만 리그 우승 9회, 일본시리즈 우승 8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 진출 후 패한 경우는 한신 타이거즈양대리그제 실시 이후 현재까지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인 1985년... 이래저래 한신 타이거스만 여러 의미로 안습 리그 우승을 못한 경우는 1984년의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경우와[19] 1989년의 긴테츠 버팔로즈에게 리그 3번째 우승을 헌납한 경우.[20]
그렇게 해서 세이부(西武) 라이온즈로 30년 가까이 이어졌으나, 인기도 떨어지고 모기업 세이부 철도의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자 2008년 지역 이미지 부각을 위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되었다. 도쿄에 미련이 남아있던 세이부 그룹으로서는 끝까지 사이타마라는 명칭의 사용을 거부해왔으나(이것도 수도권의 수원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끝까지 서울 연고를 포기하지 않은 한국의 현대 유니콘스와도 비슷하다.) 결국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팬베이스가 자신들이 원하던 자이언츠 네이션 도쿄 중심부가 아닌 사이타마의 베드타운 지역에 형성된 탓에 결국은 고집을 꺾었다. 오죽 사이타마라는 명칭을 쓰기 싫었으면 세이부(西武)라는 명칭은 과거 전국시대의 도쿄와 그 주변지역을 의미하는 무사시노(「武」蔵野)의 서부지역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주장하며[21] 본거지와 팬베이스가 도쿄의 서부지역이니 세이부라는 명칭도 지역명칭이라는 해석을 굳이 강조하기하면서까지 사이타마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면서 버텼다.

2.3.2. 황금시대 이후

1992년 이후 세이부 황금시대 주역들이 노쇠하거나 타 팀으로 트레이드[22] 및 주축 선수들의 FA(자유계약선수) 선언[23]으로 1980년대의 황금기는 끝난다...라고는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도 세이부는 여전히 파리그의 강호였고, 첫번째 리그 우승을 이룬 1982년부터 2007년[24]까지 B클래스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단지 문제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 해서 그렇지. 모리 마사아키의 뒤를 이어 팀을 맡은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이 지휘한 1997~1998년에는 2년 연속으로 파리그 우승을 하였지만, 당시 일본시리즈에서는 각각 노무라 카츠야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머신건 타선'을 앞세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 이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제4대 괴동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명 유격수 마쓰이 카즈오, 대형 슬러거 알렉스 카브레라 등이 투타의 기둥으로 활약하면서 이하라 하루키 감독 지휘 하에서 2002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오랜 기간의 감독 수업을 거친 이토 츠토무가 감독으로 취임한 2004년에는 정규시즌에 2위를 하였으나 플레이오프를 통해 닛혼햄과 다이에를 차례대로 꺾고 리그 우승을 하고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와 7차전 까지 가는 접전 끝에 1992년 이후 12년만에 다시 일본시리즈를 우승하게 된다.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지휘한 2008년 시즌에는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대결하여 4승 3패를 기록,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신인 니시테츠 시절을 포함하여 1950년 2리그제 시행 후 현재까지 리그 21회, 일본시리즈 14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엠블렘, 홈 덕아웃 위치(1루에서 3루로), 유니폼을 변경하고 출발한 원정 유니폼이 희대의 좆망 유니폼으로 바뀐 뒤에는 2009년에는 B클래스를 기록하였고 2010년에는 퍼시픽리그 2위를 기록했지만 PS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패배하며 탈락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2011년과 2012년에서 UTU을 하다가 각각 2011 클라이맥스 2스테이지에서, 2012클라이맥스 1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파일:external/www.seibulions.jp/ph_illust01.jpg
애니메이션 아노하나의 배경이 사이타마라서 이런 이미지도 나왔다.

2.3.3. 모기업의 위기와 매각위기

모기업인 고쿠도[25]의 경영 부진이 계속되자 세이부 구단도 점점 살림을 줄여나갔고 2004년 세이부 돔과 2군 구단의 명명권을 인보이스에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였다.
2004년 긴테츠-오릭스 구단 합병으로 일본 야구계 재편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세이부 구단도 치바 롯데, 니혼햄 파이터즈, 다이에 호크스 4개 구단과 합병을 논의하였으나 니혼햄 파이터즈는 삿포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합병에서 발을 빼고 롯데 마린즈와 다이에 호크스도 세이부가 아닌 서로 간의 양자 합병을 모색하게 되면서 세이부의 합병 시도는 무산되었다.[26]

이후 세이부 철도의 뇌물공여 및 유가증권 허위기재 등 비리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결국 상장폐지까지 되자 세이부 그룹에서는 구단 매각 방침을 세웠고 긴테츠 인수, 신구단 창단 등에서 연달아 물을 먹은 라이브도어에서 적극적으로 인수의사를 밝히면서 순조롭게 매각협상이 진행되나 싶었지만 200억~250억에 이르는 구단 인수비용과 세이부 돔을 반드시 사용해야한다는 조건 때문에 인수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세이부 그룹에서는 매각을 포기하게 된다.

2.3.4. 2013년 시즌

2013년에는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를 제치고 퍼시픽리그 2위를 하였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1승 2패를 당하여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하였다. 더 압권인 건 잔루가 넘쳐났으며 8회에 교체 된 와쿠이 히데아키가 불을 지르면서 2실점으로 방화를 했다는 것. 서드 유니폼을 원정 유니폼으로 승격해야 할텐데

이 팀은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하는 입장이든 당하는 입장이든 묘하게 플레이오프/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하위팀이 상위팀을 이기는 업셋 승부가 많다. 2004년부터 시작된 퍼시픽 리그의 플레이오프/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이 팀이 얽힌 업셋 승부만도 2004, 2006, 2010, 2011, 2012, 2013년으로 8번 출전 중에 무려 6번이나 되며 전적은 2승 4패로 업셋을 당하는 편이 많은 편.[27] 이 팀도 은근히 포스트시즌에서 은근히 달갑지 않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결국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의 업셋 패배의 책임을 지고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자진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2002~2003년에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팀을 2002년 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하라 하루키 감독이 복귀해서 팀 재정비를 노리게 됐다.

2.3.5. 2014년

2014년 시즌에 노히트 노런 기록이 나왔다. 5월 2일 치바와의 원정경기에서 키시 타카유키가 달성에 성공했다.

일본 진출 후 안정궤도를 달리던 한신 타이거스의 오승환에게 첫 블론세이브와 패전 철퇴를 날렸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성과와는 대조적으로 팀 자체는 팀 인수 첫해인 1979년 이래 최악의 성적을 내면서 꼴찌를 달렸다. 교류전에서의 분발로 5위인 라쿠텐과의 승차를 좁히기는 했지만 시즌 중반까지 최하위 근처에서 헤맸다. 결국 황금시대를 재건하겠다던 감독 이하라 하루키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6월달에 시즌 도중 사임하고 황금시대의 주전유격수로서 츠지 하츠히코와 키스톤을 형성하던 수비코치 타나베 노리오가 감독대행자리를 맡게 되었다. 감독이 시즌 도중에 사임하고 대행이 지휘를 잡는 건 세이부 그룹의 라이온즈 구단 인수 이후로 사상초유의 사태.

2014년의 부진의 원인은 이하라 하루키 감독이 경기 외적으로는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통제하고 경기 내적으로는 볼배합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시대착오적인 관리야구라는 평이 대세이다. [28] 한마디로 부진의 원인을 요새 애들이 정신이 빠져가지고라고 결론을 내리고 해결책이랍시고 80년대 식으로 회귀하는 것을 들고 나왔다는 거다.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 시절부터 시작되어 모리 마사아키 감독 시대까지 계승된 치밀한 관리야구가 이 팀의 황금시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조차 시간이 흐른 현재의 야구의 경향과는 맞지 않는 낡은 방식이 되어버렸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의 원인이 과거의 성공 매뉴얼에서 벗어난 지도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과거의 인물을 감독자리에 앉힌 프런트의 오판이 빚어낸 참사라 하겠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프런트의 오판으로 1979년시즌 이후 35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할 뻔 했으나 5위인 라쿠텐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이기고 라쿠텐이 남은 경기를 전패함으로서 어부지리로 탈꼴찌에 성공했다. 회색 유니폼의 희망고문

다만 혜성 같이 등장한 신인 모리 토모야 포수[29]가 3경기 연속 홈런에 베테랑 투수와의 승부에서 고의사구로 경원당할 만큼의 활약을 선보였고, 파리그 홈런왕 메히아 내야수와의 잔류 교섭에 성공하는 등 다음 세대의 세이부는 희망이 있다는 걸 팬들에게 어필했다.

2.3.6. 2015년

아키야마-쿠리야마-아사무라-나카무라 타케야로 이어지는 공격야구를 선보이며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퍼시픽리그 최다 팀홈런, 팀 ops 1,2위 경쟁을 할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다. 스태프진이 물갈이되면서 팀 체질개선의 한 방책으로 헛스윙을 두려워하지 말고 풀스윙을 하도록 팀의 타격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는데, 전년에는 자기 스윙이 제대로 장착되지 않은 상태라 역대 팀 최다삼진만 경신하는(...) 불명예를 얻었으나 2015년에 들어와서 드디어 개화했다는 평. 물론 전년만큼은 아니라도 당연히 삼진도 여전해서 홀로 1000 팀삼진 돌파 페이스를 달리고 있으며, 팀 최다삼진인 1경기 17삼진(...)을 2번이나 당했고, 5월 주중 소프트뱅크 전에서 3연전 총합 39삼진을 당하는 등 깨알같은 삼진기록을 계속 내고 있는 중. 그렇게 모 아니면 도 식의 타격이 되다 보니 기복이 상당히 심한 편이다. 팀 전원의 애덤 던

그렇다 보니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소프트뱅크, 닛폰햄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그 이후 투타의 동반부진과 함께 추락하며 7월 15일부터 8월 2일까지 1970년 이후 구단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12연패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연패의 흐름을 끊는답시고 구단 타이기록이 걸린 경기에 고졸 2년차 신인 타카하시 코나2015년의 대정의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프로데뷔 첫 선발등판을 시키는 로또질까지 했다. 결과는 볼넷 남발로 자멸. 그 전 6경기까지 합하면 18전 1승 17패(...)라는 흠좀무스러운 성적. 당연히 승률도 5할 밑으로 추락하면서 롯데에게 3위를 뺏기고 4위로 전락했다. ~~
라어강~~ 8월 4일, 리그 5위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0-4로 지고 있다가 4-4로 만드는 뒷심을 보여줬지만..8회 1점을 내주면서 5-4로 패배했다. 결국 13연패를 기록하며 70년 이후 구단 최다 연패 기록을 새로 썼다(..) 8월 5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기쿠치의 호투로 6-1로 이기며 겨우 연패탈출에 성공했다.

8월 11일, 니혼햄전에서 파리그 대괴수 오오타니에게 6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7회 쿠리야마의 안타, 작년만큼 활약은 못하는 에르네스트 메히아의 역전 투런홈런이 터지며 오오타니에게 3패를 안겨주며 승리, 이날 노게임으로 경기를 못한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를 2.5경기차로 줄였다.

20일, 라쿠텐을 상대로 4-7으로 지고 있었지만, 막강한 화력전을 펼치며 15-7로 역전승을 거두며, 라쿠텐 시리즈를 스윕하며 4연승을 거뒀다. 이로써 니혼햄에 스윕당한 치바 롯데와 경기차를 반게임차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21일, 퍼시픽 리그 3위 자리를 두고 치바 롯데와 단두대 시리즈 1차전, 4회 상대 선발 와쿠이 히데아키를 상대로 4점을 뽑아내고, 7회에도 3점을 더 뽑아내며 7-1로 앞서갔다. 하지만, 9회 마무리 타카하시 토모미의 작가정신으로(..) 4피안타를 기록하며 5점을 내주며 7-6으로 찜찜한 승리를 거뒀다. 어쨌든, 이로써 13연패를 극복하고 다시 3위를 찾는데 성공했다.

22일, 노가미 료마가 3과 1/3이닝 8실점 7자책점으로 발리며 떡실신 당한 끝에 5:9로 패배, 다시 3위 자리를 치바 롯데에게 내줬다. 1일 천하

23일, 타율 수위를 다투는 아키야마 쇼고의 쓰리런 홈런을 앞세워 선발 오미네 유타를 두들겨 4이닝만에 끌어내리고, 신예 타카하시 코나의 9이닝 완봉으로 7-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다시 3위에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될 뻔 했는데 그나마 고졸 2년차 신인투수 타카하시 코나가 데뷔전의 악몽을 극복하고 대형신인의 싹수를 보였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요소도 발견했다.

8월 27일, 니혼햄 전에서 선발 복귀한 마키타 가즈히사의 6이닝 무실점 역투, 아키야마 쇼고, 나카무라 타케야의 투런포로 6-0으로 승리를 거두며 니혼햄전 2연패를 팀완봉승으로 갚아줬다. 이로써 이날 경기가 없던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를 1경기차로 늘렸다.

8월 31일, 휠윈드 에르네스토 메히아가 5타수 4안타(2홈런) 8타점(!)을 올리는 원맨쇼를 펼치고, 나카무라 타케야가 홈런을 보태는 등 타선이 대폭발했고 선발 타카하시 코나가 5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2%부족한 호투로 4승 1패 평균자책점 2.96의 호성적을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타카하시 코나는 8월 월간 MVP를 수상, 사상 최연소 월간 MVP 수상자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9월 1일, 돌아온 에이스 키시의 7이닝 2실점 5삼진으로 2개는 이대호 호투했고, 에르네스토 메히아, 나카무라가 각각 홈런포를 가동, 리그 선두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13-4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치바 롯데와의 게임차를 1게임차로 늘렸다.

9월 2일 소프트뱅크전, 대만 투수 궈춘린이 1회 4실점을 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초반에 끌려갔다. 하지만, 추격전을 펼친 끝에 8회 오사키 유타로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며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12회초, 무안타에 그쳤던 야나기타의 결승홈런 내가 무안타 였던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을 내주며 5-4로 패배하면서 니혼햄에 승리를 거둔 치바 롯데에 또다시 동률을 기록했다.

3연전 세번째 경기에서는 선발 마키타가 1회초에만 5실점한 것을 비롯 5이닝동안 10점을 내주며 떡실신당하고 10대1로 대패. 1차전의 대승을 그대로 되돌려받으며 다시 4위로 추락했다.

4일, 3위를 두고 경쟁중인 치바 롯데전, 와쿠이와 도가메의 호투 속에 치열한 투수전이 전개됐다. 결국 연장전 끝에 오사키 유타로의 결승타점으로 2-1로 승리했다. 도가메는 7이닝 1실점 4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10승 도전은 다음으로 미뤘다. 다시 롯데와 동률을 이뤄 3위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5일, 에르네스토 메히아의 5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맹활약과, 기쿠치 유세이의 8이닝 1실점 4탈삼진의 호투로 치바 롯데에게 6-0으로 승리를 거두며 승차를 1경기차로 늘렸다.

6일, 타카하시 코나가 1회 2실점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2회 1할대포수 스미타니 긴지로의 쓰리런, 3회 나카무라, 모리의 적시타등을 앞세워 6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타카하시가 5회 2사 만루 위기를 탈출하며 5이닝 2실점 0삼진으로 잘 버텼고, 이후 노가미, 오카모토, 타카하시 토모미로 치바 롯데 타선을 잠재우며 9-3으로 승리, 승차를 2게임차로 벌렸다.

9일, 오릭스의 딕슨에게 6이닝 무득점으로 끌려갔지만, 후반기에 각성한 메히아가 히라노를 상대로 역전 투런, 수비형 포수스미타니 긴지로의 쐐기타로 3점을 뽑아내며 딕슨 지못미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8이닝 1실점 탈삼진 10개로 호투하고도 패할 뻔한 에이스 키시에게 5승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고, 치바 롯데와의 2경기 승차를 유지했다.

10일, 천적 토메이 다이키에게 꽁꽁 묶이며 완봉패로 4연승을 마감했다. 선발 마키타가 3회 4실점을 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아사무라 히데토의 홈런성 타구는 이토이에게 호수비로 잡히고, 5회 무사 12루 찬스에서 모리 토모야의 잘 맞은 타구가 T-오카다에게 잡히는 등 운이 안 따른 면도 있긴 했다. 다행히도 치바 롯데가 라쿠텐에게 패하며 2경기차를 유지했다.

12일 닛폰햄전, 사실상의 에이스 도가메 켄이 1-0의 상황을 못 지키고 1.1이닝 7피안타 6실점으로 떡실신당하며 2회도 못채우고 강판됐다. 하지만, 2회 3점, 4회 1점, 6회 2점을 내며 7-7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1회초 나카타 쇼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11회 말 아사무라의 볼넷에 이은 4타수 무안타에 빛나던 나카무라 타케야가 역전 투런으로 경기를 끝냈다.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는 3.5경기차.

13일 치바 롯데전, 6회까지 2-1로 앞서며 이기려니 했는데, 기쿠치 유세이의 스퀴즈 번트 송구 실책으로 역전당했고, 7회 2점을 뽑으며 추격했으나 4-5로 패배했다. 치바 롯데와 경기차는 2.5경기차.

14일 라쿠텐 전, 노리모토에게 7이닝 무득점으로 묶인 끝에 키시에게 시즌 6패를 안겨주며 패배했다. 15개의 삼진을 당하며 라쿠텐 투수진에 완전히 묶이며 팀 완봉패를 당하며 5할 승률에서 추락했다. 경기가 없던 치바 롯데와 경기차는 2 경기차. 17일 소프트뱅크 전, 선발 타카하시 코나가 5회도 못 채우고 강판 당했고, 8회 2점을 추격했으나 결국 5-3으로 패했다.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는 2경기차.

9월 27일 라쿠텐 전에서 1-5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68승 째. 같은 날 롯데는 소프트뱅크를 상태로 1-3 승리를 거두어 1.5경기차를 유지했다.

28일, 치바 롯데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롯데의 에이스 이시카와에게 6이닝 2득점으로 묶이며 4-2로 패했다. 경기차는 반게임차. 한편, 경기 중 95년 3순위로 입단해 182승 118패, 97년 사와무라상 수상에 빛나는 팀 레전드 니시구치 후미야의 은퇴식이 열려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10월 1일, 오릭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4 패배를 당하면서 69승 69패 5무로 정확히 5할 승률을 맞추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같은 날 롯데는 닛폰햄을 상대로 10-2 대승을 거두어 69승 68패 1무가 되면서 3위 자리를 롯데에게 뺏겼다.

세이부는 이미 시즌을 마쳤기 때문에 당연히 자력으로 3위는 불가능해졌고, 5경기를 남겨둔 롯데는 2승 3패만 해도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30]

결국 치바 롯데가 4일 니혼햄 전에서 승리하면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확정되었다. 최근 10경기 6승 4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으나 치바 롯데 마린스가 12경기 10승 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 이로써 올해 세이부는 70년대 이후 팀 최다연패 갱신과 더불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로 시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관중은 왕조 시절보다 더 많이 왔다. 응?

2.3.7. 2016년

명불허전의 타력으로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2연속 역전승을 거두며 정규리그를 시작했다. 전년도 안타왕 아키야마 쇼고, 에르네스트 메히아, 아사무라 히데토 등의 맹활약이 돋보였다. 하지만,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선 앤디 밴 헤켄이 사사구 6개를 내주는 등 제구난조로 고전하며 5이닝 4실점을 기록하고, 역전 찬스마다 병살, 삼진, 범타를 적립하는 야마카와와 사카타의 맹활약으로(...) 5-4로 첫 패를 기록했다. 그 이후, 타자들의 맹활약으로 3월을 3승 2패로 마무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4월 들어 좋은 타격 페이스를 보여주던 아사무라 히데토가 갑작스레 타격 슬럼프에 빠지며 팀 타격 페이스가 들쭉날쭉하기 시작했다. 전년도 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올스타까지 선발됐던 모리 토모야는 2할 초반대에서 허덕이다 2군으로 갔고..그나마 사람 노릇을 하는 타자는 전년도 216안타의 아키야마, 메히아, 베테랑 쿠리야마 정도.. 거기에, 선발 투수진이 3명이나 나가 떨어졌다.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에이스 키시 타카유키는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고, 전년도 10승 투수 토가메 켄은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군행, 150만불을 줘서 데려온 앤디 밴 헤켄은 140도 안되는 직구에 되도 않는 변화구를 던지다 자멸 테크를 타며 2군행. 밴핵켄 덕분에 4월은 23전 9승 2무 12패, 5월 1일에서 15일까지는 12전 3승 9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교류전에서는 9승9패로 본전치기는 했지만 라쿠텐조차 11승7패를 하며 2부리그양학해대는 교류전에서 5할승률은 도리어 뒷걸음친 것이나 마찬가지.[31]

교류전 이후로는 사정이 더욱 나빠져서 시즌 내내 팀 전체가 겨우 38개의 실책만을 범하며 철벽수비를 자랑했던 1990년의 황금시절과 대조적으로 2016년 전반기에는 12개 구단 중에서 최다 실책[32]을 뿜어내면서 예능야구를 시전 중이다. 그나마 답 없이 공격만 하던(...) 전년도와는 달리 주포 나카무라 다케야가 부진에 빠지면서 공격도 못하는 야구로 전락. 라쿠텐과 4~5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2016년도 절반을 소화한 6월 하순에 전년도를 뛰어넘는 역대급 페이스를 찍고 있는 한 때 라이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언감생심, 3위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도 무려 8게임차가 나고 있어 닛폰햄이나 7월이후 닛폰햄과 자리를 바꾼 롯데가 전년도의 자신들과 같은 '대형 삽질'만 하지 않는다면 자칫하면 1981년 이후 35년만에 3년연속 B클래스에 머물게 생겼다.

게다가 6월 27일 경기에서는 타나베 노리오 감독이 부상에서 회복하여 갓 돌아온 에이스 키시 타카유키의 부상 이후 첫 등판에 6⅔이닝동안 무려 140구를 던지게 하며 무리수를 둔 끝에 7대3으로 앞서가던 경기를 막판에 뒤집히고 역전패. 팬들로부터 아무리 불펜이 못미더워도 겨우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투수에게 140구가 웬말이냐면서 무능한 감독으로 가열차게 까이고 있다. 애초에 비전을 가지고 준비한 감독이 아니라 코치자리에 있다가 전임 이하라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얼떨결에 감독 대행이 되었다가 그대로 정식감독으로 취임한지라 감독으로서의 수업을 제대로 받은 것도 능력도 검증받은 것도 아니라서 2016년의 사태는 그냥 구단 OB 출신 중에 급한대로 적당한 인사를 감독으로 앉힌 프런트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낸 참사라 하겠다. 팬덤에서는 구단 출신 감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외부에서 유능한 감독을 모셔와서 팀을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33]

오릭스가 폭망하면서 최하위까지는 내려가지 않았으나 전반기 막판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2연전에서 전부 패배하면서 전반기를 5위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에 부진한 모습을 보인 앤디 밴 헤켄을 웨이버 공시하였고, 앤디 밴 헤켄은 친정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였다. 7월 2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홈경기에서 패배하며 세이부 시대의 원년인 1979년 이래 37년만에 처음으로 팀의 부채가 17까지 올라갔다.[34] 게다가 같은 팀 명칭을 쓰는 KBO 리그삼성 라이온즈도 부채 15(37승 1무 52패[35])를 찍으면서 한일 양국의 라이온즈 야구단이 망테크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7월 29일 오사카 돔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첫 경기에서 7:1로 패배, 30일 경기에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31일 경기에선 5:4로 끝내기 패배[36],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결국 6위 오릭스와의 경기차가 0.5게임차로 좁혀졌다.세이부의 7월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으로, 7월 동안 7승 16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6월 9일~10일 요미우리-주니치에게 거둔 2연승 이후인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의 기간동안 단 한번도 2연승조차 거둔 적이 없으며, 이 기간 중에 위닝 시리즈를 거둔 연전마저도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8월 2일, 세이부 프린스 돔에서 진행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8월 홈 3연전의 첫 경기에서 6-2로, 경기 내내 한번도 우세를 잡지 못하고 6회에 4실점으로 빅이닝을 허용하면서 무기력하게 경기를 내줬다.[37] 8월 3일에 열린 경기도 7-3으로 패배하였고[38], 그나마 같은 날 오릭스 버팔로즈라쿠텐 이글스에게 6대1 패배를 당하며[39] 최하위 추락은 면했다. 그리고 8월 4일 경기에서는 5회초에 3-2로 세이부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소프트뱅크 마츠다 노부히로의 동점 적시타와 무사만루 요시무라 유우키 타석에서 병살타를 허용하였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4-3 역전, 거기에 주자 3루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츠루오카 신야의 중견수 앞 안타로 1타점을 올리면서 3-5로 역전당하고[40] 결국 스윕패를 당하며 37년만에 승패차 -20을 기록하고 기어이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연승을 반복하며 8월 26일 현재 4.5게임차로 최하위 오릭스를 앞서게 된다.

그렇게 분전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41] 결국 3년 연속 B클래스가 확실해진 9월 1일, 타나베 감독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후임으로는 세이부 황금기의 간판스타였던 아키야마 코지 전 호크스 감독, 역시 황금기에 불펜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던 시오자키 데츠야 헤드코치 등이 거론되고 있는 와중에 9월 29일 츠지 하츠히코 주니치 수비, 작전코치와 접촉한 사실이 보도되어 새감독으로 유력하다. 앞서 언급된 3명 모두 세이부 OB. 결국 신 감독은 역시 OB이자 타나베 전 감독과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던 츠지 하츠히코가 선임되었다.

2016년 시즌은 143전 64승 76패 3무, 퍼시픽리그 4위를 기록했다. 오프시즌엔 투수진의 기둥이던 에이스 키시 타카유키가 FA로 라쿠텐과 계약을 맺으며 세이부를 떠났다.

2.3.8. 2017년

시즌 초반: 3이부시즌 후반: 세2

2017년 시즌이 반환점을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6월 5일에야 이 문서가 생성되었다(...)

츠지 정권의 첫 해. 다나베 시대의 흑역사를 딛고 다시 A클래스에 복귀할 지, 아니면 후쿠오카 시대의 암흑기로 돌아갈 지의 기로에 놓인 중요한 시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전년도 일본챔피언 니혼햄과의 개막 3연전은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이 후 오릭스와의 2연전에서 전패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했으나,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에서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면서 3위에 복귀, 4월 내내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않으며(...) 3위를 유지했다. 골든 위크 기간 동안 소프트뱅크에게 3연패, 라쿠텐에게 1승 2패를 기록하면서 4위까지 내려갔으나, 5월 12일~14일 오릭스와의 원정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다시 3위에 복귀했고, 이 후 4연속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면서 B클래스 팀들과의 격차를 안정적으로 벌렸다. 기쿠치 유세이브라이언 울프가 선발진을 이끌고, 구원진의 마키타 가즈히사-마스다 타츠시 듀오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야수진에서는 아키야마 쇼고, 아사무라 히데토에르네스트 메히아가 타선의 축으로 활약중. 특히 팬들을 기쁘게 하는 건 나카지마 히로유키 이후 백업급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온 유격수 자리에 사회인야구 출신 신인 [겐다 소스케]]가 주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정교한 타격과 빈틈없는 수비, 주루를 보여주며 신인왕 레이스의 앞자리를 예약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최강팀들에 비해 선발진 뎁스가 두텁지 못하고, 타선에서는 수비형 포수 스미타니가 자리하는 8번 포수 자리, 좌익수-지명타자 슬롯에 배치되는 베테랑 쿠리야마를 빼면 사카타, 타시로 등 온갖 쩌리들이 누가누가 못하나 경연대회를 보여주는 코너 외야가 명백한 약점.카네코 유지나 모리 토모야가 돌아와야...

교류전에서는 센트럴리그 최강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개막 3연전에서 1승 2패에 그쳤으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3연전에서 2승 1무승부로 위닝 시리즈를 달성했다. 단 6월 4일 경기에서 8회까지 8-2로 앞서가다가 9회 말에 실책 2개로 자멸하며 8-8 무승부가 된 것은 옥의 티. 그 다음 상대인 요미우리와의 3연전 두번째 경기에서 3-0으로 영봉승을 거두며 상대팀에게 구단 자체 신기록인 12연패째를 선물하면서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다음날 경기도 초반부터 복날 개패듯이 상대팀을 두들기면서 13-2로 압승. 요미우리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폭탄을 닛폰햄에게 넘겼다.그리고 햄은 미콜라스에게 농락당하며 폭★8 그리고 6월 14일 한신을 4-2로 누르면서 같은 시간 카프에게 패한 오릭스, 거인에게 노히트를 당한 호크스를 제치고 교류전 2위까지 올라섰다! 카프와 호크스가 교류전 마지막 3연전에서 단두대 매치를 벌이는 사이 세이부는 약체 주니치와의 3연전을 벌이기 때문에 주니치 전에서 3연승할 경우 창단 첫 교류전 우승도 마냥 꿈만은 아닌 상황. 그러나 3연전의 2차전에서 1-4로 패하며 창단 첫 교류전 우승은 안타깝게 좌절되었다.

6월 28일 경기가 끝난 직후 안타깝게도 불펜 코치 모리 신지가 급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42] 향년 42세. 사인은 다발성 장기 부전.

7월 후반부터 제대로 각성했다. 홋카이도를 박살낸 것을 시작으로 오릭스 짓밟기는 기본, 치바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오더니만 1위였던 도호쿠도 박살내며 2위로 끌어내리는 등 12연승을 달성했다. 신구 후쿠오카 시리즈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전만 스윕하면 15연승에 전 구단 연속스윕이라는 대업을 달성한다. 하지만 8월 5일 8,9회에 6점을 따라가는 괴력을 선보였지만 끝내 연장 10회에 결승점을 내주며 연승행진의 숫자를 13에서 마감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기세가 한층 수그러들었지만, 8월 들어 신나게 내려가고 있는 라쿠텐을 가시권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소뱅이 1위를 독주하고 있으며 세이부는 소뱅만 만나면 맥을 못춘다 결국 8월22~24일 후쿠오카에서 벌어진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에서 3연패하면서 1위와의 게임차는 10게임으로 벌어졌고 1위 추격은 포기하고 2위자리를 노리는 쪽이 좀 더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다만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에이스 기쿠치 유세이의 키킹동작이 초구부터 심판에게 2중동작 반칙투구 판정을 받고 페이스가 흐트러지면서 대패를 하게 됐는데 이에 대해서 말이 많은 상황. 츠지 감독은 왜 시즌 초에는 말이 없다가 이제와서 지적하냐는 것과 비슷한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 투수들이 많은데 왜 기쿠치에게만 반칙투구 판정을 내리느냐면서 강력하게 항의했다. 다만 심판위원회 말로는 시즌 초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5월 이후부터 투구폼에 변화가 생기면서 점점 2중동작이 노골화되었으며 그 점에 대해서 투구영상을 심판원 전원과 공유해서 의견수렴을 했고 기쿠치 본인에게도 거의 한달 전부터 누차 주의를 준 상태에서 바로 직전 등판에도 반칙투구를 하는 것을 잡아냈는데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창 상승세를 타는 팀의 에이스를 흔들어서 추격의 기세를 꺾으려 한다는 음모론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심판측의 주장. 과연 시즌 중에 에이스의 투구폼을 지적받은 것이 앞으로의 운영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

다만 그 이후의 등판에서 다시 라쿠텐을 때려잡으면서 2위자리 탈환의 선봉장이 됐다. 라쿠텐과의 맞대결 3연전에서 또한번 싹쓸이 3연승을 거두면서 라쿠텐과 자리바꿈을 했고 라쿠텐이 DTD 하는 사이에 게임차가 1.5게임으로 벌어졌다. 다만 소뱅은 이미 매직넘버가 들어온 상황이라 9월 이후는 라쿠텐을 견제하면서 2위자리를 사수하는 전략으로 가야할 듯.

라쿠텐의 DTD가 갈수록 심해지는 덕분에 2위자리는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문제는 1위팀인 소프트뱅크의 완전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7승 15패로 완전히 밀리는데다 홈 구장에서 소프트뱅크의 리그우승을 확정짓는 승리를 헌납하는 굴욕까지 겪었다. 에이스인 기쿠치 유세이가 프로 데뷔 이후 6년동안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단 1승도 못하고 있다는 점도 걸린다. 통산 0승 11패, ERA 5.68로 완전히 호구노릇을 하고 있으며 2017년 시즌만 해도 0승 4패에 ERA는 무려 7.97(...). 반면 라쿠텐을 상대로는 7승무패, ERA 0.78을 기록하면서 소프트뱅크의 역전우승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비밀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만날 호크스를 상대로 에이스가 이런 성적이라 안 그래도 전력에서 밀리는데 엄청난 핸디캡이 될 듯.

빨간 유니폼을 입고 정규시즌 2위 탈환에 성공했기에 하극상을 선언하며 기존 홈/원정 유니폼 대신 클라이맥스 시리즈 내내 불꽃 사자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맞이한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은 기쿠치 유세이의 완봉 호투에 힘입어 라쿠텐전 시즌 성적이 8승 0패였으니 라쿠텐을 10:0으로 개박살냈다. 2차전에서 라이온즈 응원단이 작년까지 라이온즈 선수였던 라쿠텐의 선발투수 기시가 등판할때마다 야유를 했는데 기시한테 한 점도 못뽑아내고 개털렸다. 거기다 기시의 히어로 인터뷰에서까지 야유를 했다. 2, 3차전 동안 단 3점만을 내는 빈타 및 집중력 부재에 허덕이며 라쿠텐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세이부의 4년만의 가을야구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2012년부터 3회 연속으로 가을야구에서 업셋을 당했다 홈 어웨이 구분도 안되게 징크스만 믿고 빨간 유니폼 입어서 진거다

그래도 아키야마 쇼고, 아사무라 히데토 등 젊은 코어들이 건재하고 신인 유격수 겐다 소스케가 전경기에 출장하며 야수로서는 18년만인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의 좋은 소식들이 있었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도 겐다를 포함해 12구단 중 최다인 6명의 선수가 선발, 토노사키 슈타가 대회 MVP를 획득하고 야마카와 호타카가 중심 타선에서 활약하는 등 젊은 선수들이 좋은 퍼포먼스로 앞날을 밝게 했다. 다만...

2.3.9. 2018년

미친듯이 폭발하는 타선과 반비례하는 투수진, 그렇지만 리그 우승![43]
NPB 역대 최고의 타선, 약칭 산적타선[44][45]
그러나 그 타선을 보여줘야 할 때 보여주지 못해서 10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은 좌절

지난 시즌 11승을 거둔 노가미 료마가 FA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2년 연속 우완 선발들의 유출 불펜진은 나름 쓸만했지만 기쿠치를 제외하곤 고만고만한 선발투수들만 있는 세이부 입장에선 대형 악재. 후반기 들어 부진한 활약을 보인 브라이언 울프와 재계약을 결정한 가운데, 기쿠치와 원투펀치를 이룰 강력한 용병 선발투수를 더 데려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벤 해켄같이 한국에서 데려왔다가 피보진 말고 한국, 그것도 "그" 한화에서 뛰었던 파비오 카스티요를 데려왔다?? 노가미의 보상선수로는 타카기 하야토를 데려왔다. 타카기의 지명에 대해서는 이게 웬 떡이냐는 반응. 비록 2017 시즌에는 1승에 그쳤지만 언제든지 선발요원으로 쓸 수 있는 기량의 선수라 실질적으로 노가미와 타카기 하야토 + 2000만엔의 트레이드나 다름없다는 반응이다.

노가미 이후에 연말까지 소식이 없다가 해가 바뀌고 포스팅을 마키타 가즈히사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2년 계약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선발진의 한 축에 이어 불펜의 핵심마저 유출했다. 3년동안 B클래스에서 헤매다가 겨우 회복하려는 찰나 안그래도 얇은 투수진에 매년 핵심급 전력이 줄줄이 유출되는 바람에 전력의 약화가 불가피하다. 과연 2년차를 맞는 츠지 감독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거리이다. 2015년 이후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타카하시 코나, 2015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다와타 신사부로 등이 분발해서 선발로테이션의 자리를 채워주지 않으면 꽤나 고전이 예상된다.

개막전은 기쿠치 유세이의 역투와 토노사키 슈타를 필두로 한 핵빳따의 위력을 여실히 선보이며 삿포로 돔에서 승리를 가져갔고, 기세를 몰아 니혼햄에 스윕을 거뒀다. 그리고 4월 3일부터 8일까지 열린 소프트뱅크, 오릭스와의 홈 개막 5연전을 강력한 타선과 선발투수들의 역투로 모두 스윕, 91년 이후 27년 만의 개막 8연승으로 선두로 치고 나가고 있다. 이후 4월 30일 현재 19승 5패로 2위 닛폰햄과의 게임차를 5.5로 벌리며 안정적으로 1위 자리를 사수 중. 특히 파리그 타격 10걸 중에 아키야마 쇼고, 겐다 소스케, 아사무라 히데토, 야마카와 호타카, 모리 토모야, 토노사키 슈타 등 무려 6명이 속한 타선은 12구단 가운데 최강의 파괴력을 선보이며 세이부의 초반 쾌진격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헐거워진 투수진도 기쿠치와 함께 개막 5연승으로 급성장한 타와다 신사부로, 요미우리로 FA 이적한 노가미 료마의 보상선수로 받아온 타카기 하야토, 한신에서 트레이드로 입단한 에노키다 다이키가 구멍난 선발진을 잘 메꿔 주면서 순항중.

그러나 5월 들어 타선의 침묵과 에이스 기쿠치의 부상으로 인해 슬금슬금 패가 쌓이기 시작, 교류전이 시작되는 5월 29일 현재 니혼햄에게 1게임 차로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교류전에서 얼마만큼 승을 쌓아 니혼햄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시기. 그러나 마침내 뻗어버린 불펜진이 거의 매 경기 빠짐없이 불을 질러주다보니 교류전 내내 간신히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믿을맨이 완전히 전멸해버린 불펜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시즌의 절반을 넘긴 7월 5일 현재 지옥 끝까지 추락한 라쿠텐을 제외하고 3,4,5위 자리를 놓고 세 팀이 대혼전에 빠져있는 퍼시픽리그에서 니혼햄과 지긋지긋한 1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0게임차까지 따라잡힌 적도 종종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리그 1위 자리는 한 번도 빼앗기지 않고 사수하고 있는 중. 그러나 근 두 달동안 불펜진이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개판이 된 불펜진 사실 선발도 기쿠치라쿠텐에게 털리기도 하는 등 많이 불안해진 상태다은 분명 10년만의 리그 우승의 가장 큰 걸림돌인 상황. 급한대로 파비오 카스티요를 마무리로 돌리는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고육책을 내놨지만 어김없이 불안을 노출하는 중. 제구가 안 된다고 제구가 하지만 7월 25일 현재 타선과 선발진의 눈물겨운 분투에 힘입어 어떻게든 1위 자리는 지켜내고 있는 중.

후반기에 접어들어 한때 한화에서 테스트까지 받았지만 짤렸던 듀엔트 히스가 붙박이 마무리로 고정되었고, 신나게 털리기만 하던 와그너를 2군으로 내려보내고 새롭게 영입한 마틴이 믿을맨으로 활약하며 어느 정도 불펜에 숨통이 트였다. 또한 2년차 신인 이마이를 비롯한 영건들이 활약해주는 것과 동시에 나카무라 타케야가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완벽 부활했다. 결국 9월 17일부로 UTU를 시전하며 미친듯이 올라오던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며 10년만의 우승을 위한 매직넘버를 11로 점등시켰다!

9월 27일 현재, 홈런 상위 5걸에 1위 야마카와(44개), 3위 아사무라(30개), 공동5위 나카무라 다케야(27개) 3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46]. 11위 아키야마(22개), 공동15위 도노사키(18개), 18위 모리(15개)도 언제든지 홈런을 쳐줄수 있는 타자들이다. 공동29위 메히아(9개)는 안습... 이러한 타선의 힘을 바탕으로 질 경기도 억지로 이기는 짓을 반복하여 9회 2사에 역전 쓰리런을 친다거나 9회 1사에 역전 만루홈런을 친다거나 10연승을 달리고 있다. 소뱅도 7연승으로 떡상 중이지만 도저히 따라올 수가 없음

27일부터 매직넘버 5인 상황에서 홈에서 2위 소프트뱅크와 3연전을 한다. 여기서 스윕하면 우승 확정이며, 상대 잔치집 신세였던 메트라이프 돔에서 홈팀이 우승 확정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9월 28일 역시 야마카와와 나카무라의 홈런 두방으로 센가 코다이를 무너뜨리고, 기쿠치 유세이가 드디어 소뱅전 연패를 끊으며 12연승, 매직넘버가 1로 줄었다. 그러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패 하는 바람에 우승은 다음날로 넘어간데다가, 이 경기가 홈에서 하는 마지막 경기인 관계로 결국 홈에서 우승을 보고자 했던 꿈은 깨지고 말았다.

다음날인 9월 30일에 B클래스가 확정된 치바 롯데가 9-1로 대승을 거두며 사이타마 세이부는 당일 경기 포함[47] 남은 경기 결과 상관 없이 10년만에 퍼시픽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세이부 없는 세이부 우승 순간. 10년 전에도 그랬다.[48] 경기가 끝난 뒤 해가 바뀌어도 계속 걸어놨던 모리 신지 전 코치 유니폼을 들고 아쉬움 섞인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소프트뱅크에게 5경기 44실점을 당하며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하극상을 허용하고 말았다. 10년만의 우승을 거둔 해 치고는 마무리가 아쉬웠던 시즌. 역사상 네번째로 뒤집혀 떨어지게 되었다.[49]

세이부는 기껏 구축한 사상 최강의 타선을 잘 유지, 보수하는 것이 앞으로의 주된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이번 시즌 FA를 획득하는 주장 아사무라 히데토와 수비력 하나는 일본 제일인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를 지켜 내는 것이 중요하며, 노쇠화가 조만간 찾아올 나카무라 타케야의 3루와 쿠리야마 타쿠미의 좌익 자리를 잘 메꿔놓는 것 역시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20대 중후반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야수진인 만큼 당분간은 집토끼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투수진의 경우 또 다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한데, 우선 부동의 1선발 기쿠치 유세이가 메이저 진출을 선언한 상태. 18시즌 다승 1위 타와타 신사부로, 한신에서 데려온 혜자갑 에노키다 다이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2년차 이마이 타츠야 등의 선발진의 폭과 깊이를 더해야 할 필요가 이번 가을 야구를 통해 명확히 제기되었다. 물론 가장 심각한 부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불을 질러대는 불펜진. 시즌 후반 급히 영입한 듀엔트 히스와 카일 마틴이 없었으면 리그 우승은 물 건너 갔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세이부는 돈을 들여서라도 물론 그래왔던 적은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없었지만 불펜진을 보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A클라스 강팀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2.3.10. 2019년

2018 시즌이 끝나자마자 파리그 최고의 2루수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하던 아사무라 히데토가 4년 20억엔의 조건을 제시한 라쿠텐으로 FA 이적했다. 산적 타선 결성 1년만에 전격 해체 팬들은 매년 반복되는 FA 유출[50]에 치를 떨면서도 4년 28억엔을 제시한 소뱅으로 이적하지는 않은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 중. 또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에이스 기쿠치 유세이 역시 최종적으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2019시즌도 투타의 기둥뿌리가 뽑혀나간 상태에서 시즌을 치러야 하는 상황인데 이미 매년 반복되는 FA 유출에 익숙해진 팬들은 벌써 2019시즌 끝나고 FA가 되는 아키야마 쇼고의 동향을 걱정하고 있는 중...NPB 타팀으로 가느니 차라리 메이저리그를 가라고 빌고 있다. 주전 포수였던 스미타니 긴지로는 모리 토모야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고 보상 선수로 요미우리의 전직 좌완 에이스인 우츠미 테츠야가 지명됐다.

개막 3연전은 최근 2년 간 4승 19패의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던 야후오쿠 돔에서 전년도의 설욕을 노렸으나... 투타 모두에서 소뱅에게 명백한 열세를 보이며 5년만의 싹쓸이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홈 개막전에선 마찬가지로 투타가 박살난 치바 롯데 마린즈를 상대로 7대4로 승리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7:4로 리드한 9회 초에 마무리로 올라온 카일 마틴이 2사 만루를 내주는 위기도 있었지만 카쿠나카 카츠야가 초구 치고 아웃당하는 바람에 한숨 돌렸다. 이후 얼추 투타의 밸런스가 맞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초반에 미쳐 날뛰는 소뱅라쿠텐의 뒤를 이어 2017년? 3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그 소뱅라쿠텐을 연달아 만나며 도합 1승 9패를 조공해주는 바람에... 시즌 초반 라쿠텐의 아사무라의 맹활약을 포함하여 독주도 돕고 부상자가 속출한 소뱅의 2위 수성도 도와주는 특급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며 4월 21일 현재 롯데오릭스와 함께 눈물겨운 B클래스 혼전을 벌이고 있다. 4월 24일부터는 현재 파리그 유이한 팀 방어율 4점대에, 순위까지 같은 롯데와의 원정 멸망3연전을 벌이는데, 첫 경기부터 양 팀이 실책과 삽질을 주고받는 크보급 병맛 대전을 5시간 21분 동안 선보이며 9:9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소뱅과 라쿠텐에게 삥을 뜯긴 승점을 롯데, 오릭스를 겁박하여 뜯어내며 헤이세이의 마지막을 5할 승률을 지켜내며 마무리했다.

5월 초순에는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하면서 5연패, 단독 5위로 추락했다. 타카하시 코나는 어김없이 올해도 기대를 배신하고, 타와타 신사부로도 작년 다승왕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4경기 연속 QS 실패, 이마이 타츠야도 4승을 거두고는 있지만 5점대에 육박하는 방어율을 보이며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 투수는 모두 20대 초중반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경력이 일천한 영건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중심을 잡아줘야 할 중고참급 투수진이 부상, 부진, FA 이적 등으로 사실상 전멸해버린 상황이라는 것. 불펜진도 노예 히라이 카츠노리와 마무리 마쓰다 타츠시를 제외하면 믿을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건 매한가지. 물론 혼다 케이스케[51], 모리와키 료스케 등의 하위 라운더 중고신인들이 상위 라운더들이 불을 지르는 와중에 나름대로 활약해주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이며, 야마카와 호타카는 최소 50홈런의 기세로 장타를 몰아치고 나머지 주전들의 타격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5월 15일 현재 파리그는 소뱅을 상대로 적지에서 위닝을 거두질 않나 절대 강자 없이 서로 물고 물리는 대혼전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언제든지 반등할 준비는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오릭스에 위닝을 거두고, 홈에서 그 소프트뱅크에게 다시 2연전을 스윕하면서 3위로 복귀한다. 5월 22일 현재 2위 라쿠텐과는 1게임차, 1위 소프트뱅크와는 2경기차. 그 뒤로 닛폰햄에게 위닝시리즈를 거두고, 라쿠텐에게 1승1패를 기록하나, 지바롯데에게 루징시리즈를 당하면서 다시 2.5경기차 4위로 떨어졌다. 간단히 요약해서 아슬아슬하게 중위권 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다.

그리고 교류전에 돌입하는데, 첫 상대가 하필 세리그에서 한창 내달리고 있는 히로시마. 그러나 나카무라 타케야의 끝내기와 궈쥔린뜬금선발승에 힘입어 위닝을 거두며 산뜻한 스타트를 했지...만, 요코하마에게 1승 후 2연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한 풀 꺾였다. 이후 홈에서 벌어진 요미우리와의 일전에서는 사실상 세이부에서 버림받다시피하여 FA로 이적한 스미타니 긴지로의 분노의 공수 양면의 하드 캐리에 피격당하며 2카드 연속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다. 교류전 마지막 주 6연전에선 주니치를 스윕했지만 고시엔 원정에서 한신을 상대로 또다시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다. 교류전 최종전적은 10승 8패. 루징을 3번이나 당했지만 주니치전 스윕 덕분에 흑자를 기록하며 교류전을 마쳤다. 같이 A클래스 경쟁을 벌이던 닛폰햄이 교류전 막판 부진하여 적자를 기록한 덕분에 무난히 A클래스에 복귀했다.

3. 홈구장

세이부 돔 항목 참조.

4.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연 평균 1,498,365명 1,616,827명 1,618,194명 1,673,219명 1,763,174명
일일 평균 20,811명 22,456명 22,791명 23,239명 24,833명

5. 2군 시설 및 클럽하우스

안습한 세이부의 선수 기숙사. 공단에 있는 컨테이너 기숙사처럼 생겼다(...) 현지에서는 도호쿠 대지진 등으로 집을 통째로 날린 이재민들을 수용하는 가설주택이라고 까이고 있다. 사진에는 안 나와있지만 세이부 돔 안에 있는 1군 라커룸도 안습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한 때 구리기로 유명했던 요코하마 스타디움만 하더라도 DeNA가 구단을 인수한 후로 적극적인 투자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개수가 이루어져 지금은 메이저리그가 부럽지 않은 클럽하우스가 됐는데 이 팀의 클럽하우스는 팬들로부터 "만화가게냐"라면서 까일 정도.

츠츠미 일가가 그룹 총수자리에서 야구단에 아낍없이 투자하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12개 구단 중에서 손꼽히는 시설이었으나 츠츠미 일가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로는 시설이 낡아가는데도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현재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중 열악한 쪽으로 선두를 다투는 기숙사, 훈련 시설이 돼 버렸다. [52] 경영주체가 바뀐 이후로 모기업인 세이부 측에서 야구단을 짐짝으로 보고 있는 시선이 많아지다 보니[53] 제대로 된 개/보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홈구장인 세이부 돔의 개/보수에도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키시 타카유키의 FA 이적, 세이부 선수단의 집단 성명 등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공조 시설 확충 등의 시설 개선을 하였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종료 이후 세이부돔과 2군 시설, 기숙사 시설 리모델링에 180억엔을 투자해 2021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다. 기사

6. 이모저모

  •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이팀의 열성 팬이다. 이 팀의 구단주였던 츠츠미 요시아키의 세이부철도 그룹에서 펜션을 구매하였다고(...)
  • 참고로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가 하고 있는 네이밍 마케팅의 원조가 바로 이 팀이다. 다이헤이요 클럽과 4년, 크라운 라이터와 2년간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네이밍 마케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후에 세이부 철도가 인수, 세이부 라이온즈로 바뀌게 되었다. 이 팀의 2군도 한때는 명명권 계약으로 2005~2006년까지는 인보이스(インボイス), 2007년에는 굿 윌(グッドウィル)과 계약을 맺어서 팀명을 변경했다가 2008년에 계약종료 후 다시 세이부 라이온즈로 되돌아갔다.
  • 2015년까지 일본시리즈에서 홈 경기로 스윕 승리를 맞이한 유일한 구단이다.(1990년 일본시리즈) 나머지 4연승의 4번째 경기는 전부 원정 경기에서 나왔다.
  • 팀명에 '사이타마'라는 지역명이 들어가 있으나 정작 사이타마시즈오카와 함께 '일본 축구의 성지' 라고 불릴 정도로 축구의 인기가 야구보다 압도적으로 높다[54]. 실제로도 사이타마 현에서 세이부는 현대 유니콘스보다는 아주 조금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55] [56] 그래도 오릭스보다는 인기 좋다[57] 2010년대 들어서 지역밀착 마케팅, 2008년부터 시작한 오미야구장 홈경기, 2017~2018 시즌의 호성적으로 인해 세이부 구단의 홍보물이 오미야역 근처에도 걸리는 등 사이타마현 동부지역에서도 인기가 늘어나는 중. #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2018시즌에는 구름관중이 모여들었다.
  • 역사적으로 드래프트에서 제비를 잘 뽑는 팀이기도 하다.[58]특히 일본프로야구의 판도를 바꿀만한 초대형 신인[59]이 나오는 해의 경우 유난히 제비를 잘 뽑아서 팀 전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키요하라 카즈히로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있고[60] 2009년에도 6팀의 경쟁을 뚫고 코시엔 여름 대회에서 154km/h를 뿌린 좌완 투수인 기쿠치 유세이를 뽑아내는 강운을 과시했다. 2010년에도 또다기 6구단 경합이 벌어진 와세다 대학의 마무리 투수였던 오오이시 타츠야를 한방에 뽑아서 2년연속 6개 구단경합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확률로 보면 2.7%. 이정도 되면 사기같다(...). 사이타마 파워 주입! 그리고 이 드래프트 1픽 운은 2010년대 들어서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가져갔다.
  • 노모 히데오가 나왔던 1989년[61]다르빗슈 유가 나왔던 2004년[62]의 경우에는 아예 지명자체를 하지 않아서 제비뽑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명을 안 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뽑겠다고 달려들면 사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제비뽑기운이 좋은 팀이다.
  • 80년대 황금시대에 보여줬던 퍼시픽리그의 끝판왕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교류전 성적은 신통치 않다. 2017년 현재 교류전 통산 승률은 5할을 살짝넘는 정도로 12개 구단 중 정확하게 중간인 6위이고, 교류전 우승은 한 차례도 없다. 이치로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이 후 암흑기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하는 오릭스 버팔로즈도 해본 교류전 우승인데 저정도면 본전치기는 한 게 아니냐고 생각도 할 수 있겠으나 교류전이 워낙 퍼시픽 리그센트럴 리그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는 양상으로 전개가 되어온지라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 실제로 퍼시픽 리그 내로만 따지면 리그 내 4위에 해당하고 2~3위권인 롯데와 닛폰햄과는 통산 승수에서 10승 정도 차이가 나고 5위인 오릭스와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성적이라 교류전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 왠지 최근 몇 년 간은 '중간계투불을 지르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니코니코 동화 같은 곳에서는 '세이부의 중간계투'라는 전용 태그가 따로 있으며, 2군에서는 통하는데 1군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볼질에 불만 지르는 중간계투의 모습을 풍자한 '우리들'(俺達, 오레타치)라는 네타가 정리되기도 했다.오레타치
  • 유달리 보복성, 고의성 빈볼 및 사구(死球)가 많은 팀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빈볼 공세는 후쿠오카 시절 말기~세이부 인수 초창기 팀의 에이스였던 히가시오 오사무의 전매특허였고, 히가시오가 1990년대 중~후반 7년동안 감독을 맡으면서 투수들을 육성한 영향도 어느정도 있다. 문제는 이 팀의 배터리가 대체적으로 이러한 빈볼투구를 비신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대팀의 심리를 흔들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히가시오와 배터리를 이룬 이토, 선수시절 선후배로서 히가시오로부터 이러한 투구술을 배운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차례차례로 감독을 맡으면서 "몸쪽 공을 공략 못하거나 못 피하고 맞는 쪽이 병신 기술이 없는 것"이라는 식의 태도가 코칭스탭과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까지 만연해 있다. 또한 팀에 입단하는 투수들에게 신인시절부터 그러한 인식을 주입시켜오기 때문에 이 팀의 투수들이 대체적으로 빈볼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그 결과,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FA를 선언하고 라이벌 팀에 입단한 호소카와 토오루에게 4번연속(...)으로 상반신에 140km 볼을 던졌지만, 이를 호소카와가 모두 회피해 결국 포볼로 진출시킨적도 있다.[63] 또한 오릭스와 사이가 안좋을때는 오릭스 타자에게 예고 빈볼을 맞춘후 사과도 안하고 당당하게 퇴장해 빈축을 산적도 있고, 홈런 세레모니가 요란한 모 타자는 세레모니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빈볼을 맞은 적도 있다. 또한 한이닝에 빈볼을 3연발을 한적도 있어서 상대팀이 항의하러 뛰어나오자 세이부 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세이부 선수들은 씩 웃는 모습카메라에 찍힌바 있다. 이상 나열한건 일부 사례일 뿐이고 수개월의 한번씩 매번 다른구단과 고의사구(死球)로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고 있다. 2013년 6월 라쿠텐의 앤드류 존스에게 고의사구로 벤치클리어링을 유발했고, 2010년 닛폰햄전에서는 연전중 3명을 고의사구로 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이런 인상이 그냥 인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실제로 2014~2017 4시즌 동안 팀 최다 사구 1위를 3번이나 기록했으며 그 중에서도 2번은 2위와 상당한 차이가 나는 1위이다.
  • 우승이 귀한 센트럴리그 의 위안거리로 세이부가 두들겨맞는 거 다시 보기라는 말이 있다. 양 팀 모두 세이부를 꺾은 게 마지막 일본제패였기 때문. 또한 퍼시픽 리그에서는 유이하게[64] 센트럴리그 6팀과 최소 한번씩[65]시리즈에서 맞붙어본 적이 있는 팀이기도 하다. 일단 요코하마가 일본시리즈에 올라오는 일이 워낙 드물어서 미션을 클리어하려면 상당히 빡세다.[66]
  • 2013시즌 이후 3년만에 상대팀 에이스투수에게 홈에서 우승확정을 허용한 굴욕을 맛봤다.
  • 2017년 기준으로 과거 9년간 홈 구장에서 6번이나 우승을 허용한 전적이 있다. 특정 구장에서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를 치를 확률이하고 해봐야 크게 잡아야 1/6인데 이것 또한 엄청난 확률이다. 정작 사이타마가 잘 나갈 땐 원정에서 우승 18년은 본인이 우승하여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끝...인 줄 알았으나 홈에서 일본시리즈 진출을 허용했다.
  • 묘하게 8로 끝나는 해에는 우승 아니면 팀 역사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창단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8로 끝나는 해인 1958년에는 이나오 가즈히사를 앞세운 기적의 리버스 스윕으로 일본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1968년에는 5위에 그쳤는데 그 다음 해에 검은 안개 사건이 터지는 등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해였다. 하지만 이 해 드래프트에서 히가시오 오사무를 지명하며 훗날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유망주를 발굴하기도 하였다. 1978년은 세이부 그룹이 구단을 인수해서 후쿠오카에서 사이타마로 이전하고 세이부 라이온즈로서 출범한 해이다.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로는 매년 무슨 일이 있어도 8로 끝나는 해에는 최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에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4승1패로 꺾고 1958년 이후 30년만에 일본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고, 1998년에도 리그우승을 차지했으나 이 해에는 머신건 타선을 앞세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무릎을 꿇었다. 2008년에는 그 직전해 25년 연속 A클래스의 기록이 중단되고 B클래스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서 하라 감독나믿승믿(...)을 시전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탈환했다. 그 후 10년동안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가 2018년에도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선두로 나서 10년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한편 현재의 구단 역사와는 관계 없지만 1948년엔 옛 모기업이었던 서일본 철도 소속 사회인야구팀이 도시대항 야구대회[70]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6.1. 마스코트

예전에 쓰던 로고는 밀림의 왕자 레오의 레오를 로고 겸 마스코트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서 나오는 이야기중 유명한 것이 데즈카 오사무가 자신은 마스코트로 판쟈를 그렸는데, 세이부 라이온즈 측에서 멋대로 레오라고 주장한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일본위키백과에서도 언급은 하지만 출처제시가 안되는 부분이고, 세이부는 레오라고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글대제 출판본을 기준으로 보면 미묘하게 다르게 생겼다 같은 이야기를 제외하고 보면, 판쟈와 레오의 외모 차이를 두는 부분은 귀 끝의 검은 부분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물론 판쟈의 귀끝도 검게 그리는 예가 없지는 않지만[71], 전집을 포함해서 둘의 차이를 둘 때는 판쟈는 그야말로 순백으로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마스코트는 판쟈보다는 레오의 성체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기 보다는 판쟈라는 근거가 저 카더라와 느낌적 느낌 밖에 없다. 사실 이런 것 다 필요없이 세이부 측이 레오라고 사용하고 있고, 이름 들어가는 부분은 다 레오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마스코트는 레오가 맞다.

프로야구 초창기 삼성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점퍼의 마스코트가 저 마스코트를 약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수준에서 모방한 것이었다. 어느 어린이 회원은 삼성 라이온즈 점퍼를 입고 민속촌에 갔다가 일본 관광객들이 '세이부 라이온즈네' 하는 바람에 약간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팀명을 바꾸면서 사이타마현 캐릭터인 코바톤을 비공식 마스코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6.2. 팬덤





유니폼 교체 이후 응원문화가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 1루 외야 홈 시절엔 작은 배트를 사용한 비교적 전통적 응원이었는데, 같은 현 안의 축구단 보고 꼴린 건지 서포터즈들은 배트를 놓고 손뼉응원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 손으로 드는 작은 깃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거기다 게이트기도 심심찮게 보여 축구장이 다 되어가고 있다. 샄카현 인증 연고지 정착은 23년이나 빠른데 응원은 대놓고 치바 롯데 파크리 누가 응원으로 경쟁하는 팀 아니랄까봐 롯데처럼 점프 응원도 즐겨 한다. 그러나 응원콜을 좋아해서 응원가를 안 부르는 타석도 많은 롯데와는 다르게 응원가를 많이 부르며 선발 라인업 발표 직후에 모든 선수의 응원가를 한번씩 불러주는 것도 여전히 하고 있다.(롯데는 현재 선발 라인업 발표 후에 응원가를 불러주지 않는다.)

2013년에 비교적 가까운 치바 롯데 마린즈와 라이벌전을 선포하고 양 측 홈에서 3연전을 아노하나 vs 오레이모[72]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로 각 한번씩 치뤘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클라이맥스 퍼스트에서 도호쿠행 티켓을 놓고 붙게 되었다.

간사이권에서 다른 부, 현은 한신 인기가 가장 많은 데 비해 시가현에 팬이 상당히 많다. 세이부 계열 오미 철도가 있고, 세이부 그룹의 발상지가 시가현이기 때문. 기사

참고로 응원단 멤버 중 테드 스미스가 있다.

7. 유니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유니폼 항목 참조.

8. 주요 선수들

8.1. 현역

8.1.1. 투수

  • 11. 이마이 타츠야
  • 12. 와타나베 유타로
  • 13. 타카하시 코나
  • 14. 마스다 타츠시
  • 15. 오이시 타츠야
  • 17. 마츠모토 와타루
  • 18. 타와타 신사부로
  • 19. 사이토 히로마사
  • 20. 타카기 하야토
  • 21. 토가메 켄
  • 22. 나카츠카 슌타
  • 23. 노다 쇼고 : 2017년 현재 일본 최단신 투수. 좌완 원포인트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 25. 히라이 카츠노리
  • 26. 아와츠 카이토
  • 27. 우츠미 테츠야
  • 28. 모리와키 료스케
  • 29. 코이시 히로타카
  • 30. 에노키다 다이키
  • 34. 사노 야스오
  • 36. 이토 쇼
  • 40. 타무라 이치로
  • 41. 아이우치 마코토
  • 42. 카일 마틴
  • 44. 오가와 류야
  • 45. 혼다 케이스케[73]
  • 47. 파비오 카스티요
  • 48. 타케쿠마 쇼타
  • 50. 랴오렌레이 : 요미우리에서 방출당한 걸 세이부에서 데려왔다. 1군 데뷔도 세이부에서 했다. 또한 유학생 출신이라 외국인 쿼터랑은 상관없다.
  • 54. 잭 닐
  • 57. 코쿠바 츠바사
  • 59. 미나미카와 타다스케
  • 61. 타이라 카이마
  • 66. 마츠모토 나오아키
  • 67. 후지타 코키
  • 68. 듀엔트 히스
  • 69. 궈쥔린 : 대만 출신. 등록명은 처음에는 일본 발음대로 '가쿠 슌린'[74]이었으나 2018시즌부터 본인의 희망에 의해 원어 발음인 궈쥔린(일본 표기로는 쿼쥰린, クォ・ジュンリン)으로 등록명을 바꿨다. 아무래도 가쿠라는 등록명을 사용하면 위대한 고국의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실제 발음하고도 일치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

8.1.2. 포수

  • 10. 모리 토모야
  • 37. 오카다 마사토시 : 모리 토모야의 오사카토인고교 선배인데 후배에게 밀려서 백업포수 전용이다.
  • 38. 마키노 쇼야
  • 62. 코마즈키 히토토
  • 64. 나카타 쇼타

8.1.3. 내야수

  • 0. 미즈구치 다이치 : 현 일본 최단신 선수 (163cm)
  • 4. 야마노베 카케루
  • 5. 토노사키 슈타 : 2017 시즌엔 주로 외야수로 출전, 내외야 전천후로 활약 중. 2017 APBC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등, 국가대표에도 그 전천후성을 인정받아 자주 거론되곤 한다.
  • 6. 겐다 소스케 : 17년 데뷔시즌에 유격수로 전경기 출전, 역대 신인 최다안타 4위인 155안타를 기록하면서 신인왕을 획득한 유망주. 참고로 1998년 이래 무려 19년만에 나온 퍼시픽리그 야수 신인왕이다.[75] 그리고 데뷔 경기부터 299경기를 풀타임으로 연속 출장했다.[76]
  • 31. 사토 류세이
  • 32. 나가에 쿄헤이
  • 33. 야마카와 호타카
  • 39. 우녠팅 : 대만에서 유학, 다이이치공업대학 졸업
  • 51. 니시카와 마나야
  • 52. 야마다 하루카
  • 56. 카네코 카즈키
  • 60. 나카무라 다케야
  • 63. 츠나시마 슈세이
  • 99. 에르네스트 메히아

8.1.4. 외야수

  • 1. 쿠리야마 타쿠미 : 18년째 세이부의 타선을 책임져 준 베테랑 외야수. 최근에는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며 녹슬지 않은 타격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 8. 카네코 유지 : 2016년 도루왕. 발군의 주력을 자랑하지만 타격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다. 2019 시즌에는 1번 타자의 중책을 맡아 활약중. 재일교포라는 썰이 있으나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근거는 없다.[77]
  • 9. 기무라 후미카즈
  • 46. 스즈키 쇼헤이
  • 53. 타케다 아이토 - 등록명 "아이토"
  • 55. 아키야마 쇼고
  • 58. 쿠마시로 마사토 : 내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 백업... 이지만 그보다는 경기 전 선수들에게 훈화(...)를 하는 등 팀 내 분위기 메이커로 맹활약중이다.
  • 65. 사이토 쇼고
  • 71. 토가와 다이스케
  • 72. 카와고에 세이지
  • 73. 타카기 와타루

8.2. OB[78]

8.2.1. 투수

8.2.2. 포수

  • 와카나 요시하루 (1972 - 1978)
  • 오쿠미야 타네오 (1978 - 1980)
  • 타부치 코이치 (1979 - 1984)
    세이부에서는 주로 1루수, 지명타자를 보았다.
  • 노무라 카츠야 (1979 - 1980)
    오랫동안 지내왔던 난카이 호크스에서 내쫓겨나다시피 하며 떠난 뒤 롯데 오리온즈를 잠깐 거쳐 여기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 이토 쓰토무 (1982 - 2003)
  • 오쿠보 히로모토 (1985 - 1992)
  • 나카지마 사토시 (1998 - 2002)
  • 호소카와 토오루 (2002 - 2010)
    멘도사 라인의 수비형 포수. 그러나 의외로 거포 스타일이라서 전성기 때는 15홈런 정도 쳤다. 물론 홈런만 치지 컨택 선구안 모두 쓰레기라 전형적인 공갈포였었다. FA로 세이부를 떠난 후에도 여러 팀을 거쳐오면서 2019년에도 뛰는 중. 물론 지금은 한국나이로 40세라 장타툴마저 사라졌다.
  • 스미타니 긴지로 (2006-2018)
    철벽수비를 자랑하지만 타율은 진짜 NPB 역대급 멘도사 타격이다. 그런 점에서는 선배인 호소카와 토오루를 빼다 박았다. 호소카와가 FA를 선언하고 소뱅으로 이적한 이후 8년째 주전포수 하고 있는 데 8년 동안 100안타를 친 해가 없고 타율도 2할 1푼만 찍어줘도 고마운 수준이다. 거기다가 장타력도 풀 시즌 뛰어서 홈런 5개 칠까말까한 수준에 3할을 넘긴 해가 거의 없으며, 볼삼비는 에르네스토 메히아보다 안 좋으며[82] 통산 출루율이 2할 5푼, OPS가 5할 5푼이 안 된다. 하지만 수비력은 NPB 최강이라서 주전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데다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다.냉정하게 이 선수는 크보나 대만야구 와도 수비형 포수할거 같다. 사실 이런 모습은 2005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때의 평가와는 전혀 딴판인데 드래프트 때는 수비와 투수리드는 뛰어나지만 공격이 안 되는 호소카와 때문에 고교 통산 48홈런의 공격형 포수의 소질을 보고서 스미타니를 지명한 거였다. 고교 3년동안 친 홈런의 갯수가 프로에서 13년동안 친 홈런의 갯수보다 많다. 그러나 정작 프로에 와서 보여준 모습은 호소카와 2세(...)[83] 2018년 시즌 타격에 각성하여 산적타선의 일원이 된 모리 도모야에게 완전히 주전자리를 뺏기고 백업으로 밀려나자 FA를 통해 요미우리로 이적.

8.2.3. 내야수

8.2.4. 외야수

8.2.5.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8.3. 영구결번

24. 이나오 카즈히사: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 님. 이나오가 은퇴한 때부터 1972년까지 24번을 달고 감독직을 지냈다. 그런데 구단이 다이헤이요로 매각된 1973년에 이나오 자신은 81번으로 번호를 바꾸고 24번을 후배 선수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며 준영구결번으로 남겼다. 이후 라이온즈 24번의 계보는 고가 마사아키(古賀正明)-아키야마 코지-히라노 켄(平野謙)-마츠나가 히로노리(松永浩典)로 이어지다, 결국 2012년에 이나오 탄생 75주년을 맞아 동년 5월에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8.4. 준영구결번

3. 오시타 히로시: 1960년 은퇴 후 오시타의 커리어를 기리기 위해 당시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구단사장이었던 니시 마다지로(西亦次郎)가 '당분간 오시타의 3번을 결번으로 처리하겠다'라고 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1968년 오시타가 토에이 플라이어즈에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슬그머니 영구결번을 해제했다. 이에 대해 오시타의 동의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라고. 어쨌든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하고 나서는 라이온즈의 3번은 키요하라 카즈히로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가장 최근에 이를 달고 활약한 선수로는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있고, 2017년 시즌부터는 신성 2루수 아사무라 히데토마쓰이 카즈오가 7번을 물려받기 이전에 달던 등번호였던 32번에서 바꿨다.

6. 나카니시 후토시: 1970년에 은퇴 당시 나카니시에 견줄만한 선수가 등장하면 그 선수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위의 이나오 카즈히사와 비슷한 이유로 해제가 됐고, 당시 감독이었던 이나오가 추천한 키쿠카와 소지로(菊川昭二郎)가 이 번호를 사용했다. 세이부로 바뀌고 나서 그나마 이 등번호를 달만한 자격이 있던 플레이를 했던 선수는 90년대 초반 유격수로서 황금시대를 떠받친 타나베 노리오. 2017년부터는 사회인야구 출신의 신인 유격수 겐다 소스케가 이 번호를 달고 플레이하는 중이며, 빈틈없는 수비주루와 정교한 타격을 보여주며 2017년 신인왕을 수상해 이 등번호의 전망을 밝게 하는 중.

27. 이토 쓰토무: 은퇴 후 이토 스스로가 인정한 후배 포수에게 넘겨주기로 하여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후 2006년 호소카와 토오루(細川亨)가 사용했으나 2010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FA 이적하면서 결번 상태였다가, 2012년부터 스미타니 긴지로(炭谷銀仁朗)가 사용하고 있다.


[1] 개장 당시에는 야외 구장이었으나 이후에 지붕을 덮었다.[2] 제 2홈구장[3]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4]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5] 후쿠오카 돔이 지어지기 전까지 오사카에서 이사온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홈구장이기도 했다. 그러다 구장 보수를 하던 도중 이 구장 부지가 헤이안 시대에 있었던 유적지 코로칸(鴻臚館)이 위치했던 유적지였음이 밝혀졌고, 결국 1997년 폐장 후 철거된 뒤 역사공원이 조성되었다.[6]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배했다. 근데 누가 알았을까. 이로부터 불과 2년 뒤가 진정한 요미우리의 캐씹사기 리즈시절인 V9의 시작이란 걸(...).[7] 당시 오리온즈는 1964년 마이니치 신문이 손을 뗀 후에 영화회사 다이에이의 사장인 나가타 마사이치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그래서 팀 이름도 마이니치 오리온즈에서 도쿄 오리온즈로 바꾸었고 다시 롯데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현재 넥센 히어로즈 방식으로 롯데 오리온즈로 이름을 바꾼다. 롯데는 1970년 퍼시픽리그 우승 이후 팀 운영에 자신을 보이고 정식으로 구단을 인수했다. 이 롯데가 오리온즈의 네이밍 스폰서만 맡던 시절에 구단주를 맡은 사람이 나카무라였다.[8] 골프장, 리조트 개발회사이다.[9] 백인천이 이 때 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10] 우리가 아는 그 담뱃불 붙이는 라이터 만드는 회사 맞다. 80년대에 타업체에 인수되면서 업종변경으로 회사의 자취가 소멸되었다.[11] 물론 자금난을 버티지 못해 가끔 주력선수를 팔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긴 했지만, 주력선수를 팔아서 연명하지는 않았다. 라이온즈 프랜차이즈의 레전드 중 한 명인 히가시오 오사무(東尾修)는 저무는 니시테츠-고난의 행군기-세이부의 최전성기를 두루 거쳤던 팀의 간판이자 에이스였다. 팀이 막장이던 시절 타선의 빈타 때문에 시즌 20패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해 일본프로야구계에서도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평하기도 한다.[12]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기 전에 두 차례나 야구단 스폰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나눠지기 이전에 존재했던 일본야구연맹(JBL)에 참여했던 도쿄 세네터스(東京セネタース)-츠바사군(翼軍)의 재정적 스폰서를 해줬다.(나중에 도쿄 세네터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이 바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다.) 당시 귀족원 의원이었던 아리마 요리야스와 세이부 그룹의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너터스가 재건에 실패하자 1970년대에는 다이요 훼일스요코하마 스타디움 건립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다이요의 2대 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문제는 후원하는 팀마다 성적이 시망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머니게임에 집착했는지도 세이부가 야구단을 인수한뒤 도쿄 근교로 연고지를 옮기고 싶어했던 이유이기도 바로 이러한 과거도 있었기 때문이다.[13] 근데 사실 세이부 그룹에게 이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철인 도쿄-사이타마 지방의 세이부 철도를 기반으로 하는 세이부 그룹에게 있어서 거의 적자가 안 발생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스포츠단인 라이온즈를 그나마 적자가 최대한 안 나게 운영하고, 연고지 주변 지역의 관중을 끌어들어 수익을 올리려면 반드시 사철이 자리잡은 곳 근처에 스포츠단 연고지를 두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애초에 간토 도쿄-사이타마 지방의 세이부가 드럽게 멀리 떨어진, 자기네 철도도 안 다니는 큐슈 후쿠오카 지방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넌센스였다. 당장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왜 해체되었는 질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온다.[14] 근데 그 전에도 1960~70년대에 산케이-야쿠르트 아톰즈(現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철완 아톰아톰을 마스코트로 쓴 적 있기도 하다.[15] 다만 걸어놓는 팀 깃발에서는 잘만 쓰고 있다. 물론 영리 목적 사용은 금지이므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다.[16] 마유미 아키노부 등을 보내고 거포 타부치 코이치를 데려오는 등의 대형 선수 트레이드는 기본이고, 드래프트에 지명이 확실한 전국의 고교 유망주를 뒷공작과 다른 구단과의 물밑 협상으로 선수 자격이 아닌 구단 직원 채용 형식으로 확보해둔 뒤, 드래프트외 선발로 입단시키는 방법(20년간 세이부의 안방을 지켜온 이토 쓰토무치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 이런 케이스)이나 그룹 계열사 내 일본의 사회인야구 팀인 프린스 호텔 야구부로 빼돌려서 아예 다른 팀의 지명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세이부 황금기의 팀의 주장을 맡은 이시게 히로미치가 이런 케이스. 방법은 간단하다. 학교를 졸업할 때 '난 프로 안 갈래' 하고 일단 프린스 호텔에 입단한다. 그러고 나서 다른 팀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다음 드래프트 때는 미리 포기하는 것)까지 동원했다.[17] 1990년대 후반의 현대 피닉스가 연상된다면 이는 착각이 아니다.[18] 여담이로 이 해를 끝으로 퍼시픽리그는 1973부터 운영해 온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를 폐지하고 센트럴리그처럼 6구단 중 리그 우승(1위)팀만 일본시리즈에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니 세이부가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 시대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우승팀인 것이다.[19] 그러나 한큐는 일본시리즈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패배. 참고로 이게 현재 카프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 기록이다.[20]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3연승 후 4연패로 내리 역관광당하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참고로 이때 긴테츠 감독은 공교롭게도 전신인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던 오기 아키라였다.[21] 세이부라는 그룹 명칭의 기원인 것은 맞다. 하지만 타지 철도회사이자 도시권이나 공업 지대 지역 이름으로도 많이 쓰이는 '한신'과는 달리 '세이부'는 어떤 곳에서도 지역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22] 대표적으로 1994년 오프시즌의 세이부 - 다이에 간 2-3 트레이드. 아키야마 코지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건너갔다. 참고로 당시 다이에의 단장은 공교롭게도 1980년대 세이부의 황금기를 구축한 그 네모토 리쿠오였다.[23] 쿠도 키미야스가 FA로 다이에로 이적하고, 기요하라 카즈히로도 1996년 FA로 그토록 원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다.[24] 이토 쓰토무의 세이부맨 커리어가 이로 인해 끝장나게 된다.[25] 세이부 철도의 최대주주[26] 롯데-다이에 간의 합병 논의도 마지막에 다이에 호크스 구단을 소프트뱅크가 인수하게 되면서 무산되었다[27] 업셋을 한 해는 2004, 2011, 당한 해는 2006, 2010, 2012, 2013.[28] 구대성이 오릭스에서 뛰었던 당시 감독을 역임하면서 구대성을 홀대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다. 이거 보면 혐한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사람 재일 한국인이다(...) 한국명은 윤춘식으로 데뷔 초엔 이름을 음독한 이하라 슌쇼쿠를 등록명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은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라고 서술되어 있으나 재일 한국인인지는 불명이다.[29] 출신자체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유소년 팀 출신이다. 다만 포수로서 실력은 아직 많이 미숙해서 실책이나 리드 미스가 눈에 띄었다.[30] 2승3패를 하게 될 경우 승률이 5할로 동률이 되는데 이 경우 퍼시픽리그는 1) 맞대결 전적에서 우위에 있는 팀, 2) 1)로도 동률일 경우 교류전을 제외한 동일리그 소속팀과의 대결에서 승률이 높은 팀(즉, 교류전의 하위팀), 3) 1), 2)로도 동률일 경우 전년도 성적 상위팀의 기준으로 순위를 가르게 되어 있다. 2015년의 경우 세이부와 롯데의 맞대결은 13승 1무 11패로 롯데가 우위기 때문에 1)이 적용 되어 동률이면 롯데가 상위를 점하게 된다. 참고로 동률 팀의 순위를 가르는 기준이 양 리그가 다른데 센트럴리그의 경우는 동률일 경우 1) 승리수가 많은 팀, 2) 1)이 동률일 경우 맞대결에서 우위에 있는 팀, 3) 1), 2)까지 동률일 경우 전년도 성적 상위팀 순으로 기준을 정하게 된다.[31] 실제로 리그 내 교류전 성적은 5위에 머물렀다. 밑에는 교류전에서도 폭망하며 센트럴 리그 팀들의 보약 노릇을 한 3부리그 팀 오릭스 버팔로즈 뿐이었다.[32] 2016년 7월 31일 기준으로 81개'. 2위 오릭스 버팔로즈의 67개와도 10개 이상 차이가 난다.[33] 타나베 뿐만 아니라 와타나베 히사노부, 이토 쓰토무, 히가시오 오사무 등 OB출신인 감독들이 있었다. 근데 이 3명은 전부 리그 우승 이상은 했는데?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 아닌가?[34] 일본식 표현인데 승수가 패수보다 많을 때 승수-패수 차이를 저금(貯金), 패수가 승수보다 많으면 부채(借金)라 일컫는다. 예, 20승 10패면 저금 10, 10승 20패면 부채 10)[35] 「[프로야구 순위] 5위 롯데 8위 LG 격파,두산 3위 넥센에 완승, 6위 KIA 10위 KT 대파, 4위 SK 7위 한화이글스 제압」, 이슈톡, 2016-07-27[36]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7월 31일 세이부-오릭스 경기[37]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8월 2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38]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8월 3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39]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8월 3일 오릭스-라쿠텐 경기[40]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8월 4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41] 8월에 3연승 이상의 연승을 여러차례 했는데도 50승을 채우는데 한참 걸렸다. 그만큼 이전에 워낙 답이 없었다.[42] 6월 25일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했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았다.[43] 9월 12일 기준으로 양대 리그 유일의 팀 OPS 8할인데 퍼시픽 리그 팀 중 유일하게 팀 평균자책점 4점대에다 최하위다. 링크된 팀을 보면 알겠지만, 2001년 최후의 리그 우승 당시 평균자책점 5점대 문턱을 찍어대던 투수진을 팀홈런 200개 이상을 날려댄 강타선이 보완하고 리드하면서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는데 2018년의 세이부가 딱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사이좋게 가을야구에서 그 강타선이 식어버리는 바람에 죽을 쒔다[44] 최종적으로 역대 팀 총득점 3위를 기록했는데 역대 팀 득점 순위에서 세이부와 1950년의 쇼치쿠 로빈스(1위)를 제외한 2위 2003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5위 2000년 닛폰햄 파이터즈까지가 전부 소위 래빗볼이라고 불리는 반발력이 높은 공인구를 사용한 시즌을 보낸 팀들의 기록이다. 타고투저로 인한 보정이나 시대를 감안해 볼 때 걸출도로는 2018년의 세이부가 가장 뛰어나다는것. #[45] 사실 산적타선이란 명칭은 과거 1975년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시절 처음 나왔다.[46] 2위와 4위는 소프트뱅크의 야나기타(34개)와 마츠다(28개)[47] 롯데-소프트뱅크 경기가 끝났을 당시 세이부는 8회 닛폰햄에게 1-4로 지고 있었고, 그 점수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48] 2008년엔 도호쿠 라쿠텐이 승리하며 세이부를 우승시켜줬다.[49] 첫번째는 시행 원년에 당한 요미우리 자이언츠(vs 주니치, 한신), 두번째는 가을의 풍물시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vs 치바 롯데), 세번째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vs 요코하마 디엔에이).[50] 실제로 FA제도 시행 이후 세이부가 18명으로 가장 많은 FA유출을 경험했다.[51] 축구선수 혼다 케이스케와는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52] 세이부 급으로 열악한 훈련시설로는 비만 좀 오면 그라운드가 침수되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 토다 구장, 공장 부지의 자투리 땅에 대충 그라운드만 만든 치바 롯데 마린즈의 롯데 우라와 구장 등이 꼽힌다. 어째 전부 사이타마에 있다[53] 이는 세이부 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츠츠미 가문이 분식회계, 허위공시로 축출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 때부터 이어져온 기조로, 매년 주주총회에서 한신만큼은 아니지만 야구단 운영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를 보다 못한 세이부홀딩스 주주가 2017년 구단 2군 시설 및 인재육성 시스템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GM, 그룹 오너 앞에서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 사장이 라쿠텐보다 연봉 많다는 개드립을 쳐서 세이부 팬들에게 까였다.[54] 당연히 이곳을 연고지로 둔 J리그우라와 레즈는 일본의 인기 프로축구팀이며, 게다가 서포터들의 규모 역시 일본 최대다. 물론 얘네들이 훌리건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함정[55] 참고로 사이타마 시는 세이부 철도의 영업구간이 아니라 토부 철도의 영업구간이며, 야쿠르트와 롯데 2군 구장이 오히려 사이타마 시에서 더 가깝다. 그리고 세이부의 홈구장은 사이타마 시에서 접근하기 좀 골룸한 위치에 있는데, 평일에도 경기가 있는 야구는 경기장 접근성이 관중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히려 세이부를 지지하는 팬층은 사이타마 현보다도 도코로자와 시에 인접한 도쿄 도의 시 지역부분(우리가 생각하는 도쿄가 아닌 그 외곽의 위성도시들로 이루어진 도쿄 도의 영역)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이부가 도쿄에 집착한 것도 일리는 있지만 홈구장이 사이타마 현에 있어서...[56] 일각에서는 사이타마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최고의 인기구단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존재와 그에 못지 않은 오미야 아르디자의 인기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둘의 더비는 '사이타마 더비'로도 불릴 정도다.) 실제로는 같은 사이타마현이지만 세이부 라이온즈가 있는 도코로자와시와 사방에서 우라와 레즈깃발이 펄럭이는 사이타마시는 완전히 다른 동네다. 베드타운인 사이타마현의 특징 덕분에 도쿄로 가는 교통시설만 잘 정비돼 있기 때문에 사이타마 동부와 서부는 같은 현이라도 교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 사이타마 시에서 야구를 보러 가려면 도쿄 돔이 오히려 더 가깝고 가는 시간은 세이부돔의 절반 정도밖에 안걸린다.(무사시노선 참조)[57] 사이타마TV, 분카 방송, NACK5 FM이 전담중계를 하는 세이부와는 다르게 오릭스는 그 어떤 간사이권 공중파 방송사에서도 전담중계를 하지 않으며, 제작해도 타국으로 보내버린다.[58]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1차지명은 전구단 제비뽑기로 뽑는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 항목 참조.[59] 당연히 복수의 구단이 1순위로 지명한다.[60] 특히 기요하라가 있던 10년간 세이부는 퍼시픽 리그 우승 8회에 일본 시리즈 우승 6회를 차지하는 리즈시절을 누렸다.[61] 대신 1990년대 세이부 불펜진의 핵심인 시오자키 테츠야를 지명했다.[62] 대신 와쿠이 히데아키를 지명했고 세이부의 에이스가 되었다가 FA선언하고 롯데로 튀었다.[63] 2012년에만 50개가량의 빈볼을 던져 리그 탑순위의 빈볼을 기록했다. 심지어 빈볼의 대부분은 중간계투가 아닌 선발투수의 의한 고의성 빈볼[64] 2018년 소프트뱅크와 히로시마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65] 요미우리 : 1956~1958, 1963, 1983, 1987, 1990, 1994, 2002, 2008/한신 : 1985/주니치 : 1954, 1982, 1988, 2004/야쿠르트 : 1992, 1993, 1997/히로시마 : 1986, 1991/요코하마 : 1998. 승리한 연도는 볼드체 표시.[66] 센트럴 리그도 쉽지는 않은 게 오릭스가 클라이맥스 시리즈 시행 이후로 퍼시픽, 아니 12구단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일본시리즈에 올라온 적이 없다. 라쿠텐도 잘 안 보이지만 그나마 2013년에 진출했다.[67] 제 2 홈구장은 실제로도 고교야구 전국대회 기간에도 쓰는 교세라 돔 오사카. 홈경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오릭스 원정 때도 한신 머리수가 더 많다.[68] 세이부 홈구장인 메트라이프돔은 간사이 주요 도시에서도 기본 4시간은 걸릴 정도로 심각하게 접근성이 나쁘다. 일단 도쿄역에서 2번 환승해서 1시간~1시간 반[69] 공교롭게도 90년대까진 옆동네 라이온즈타이거즈의 충실한 오나홀이었다.[70] 일본에서 거의 정상급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인야구 대회[71] 데즈카 오사무 스스로 정글대제는 6번 단행본이 나왔고, 뭐가 맞다고 할 수 없다고 전집에서 언급했다.[72] 2013년 시즌 당시 타이업한 작품들.[73] 축구선수 혼다 케이스케랑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74] 이미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만 출신 선수들도 원어 발음으로 등록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으나 궈쥔린은 구단 측에서 80년대 활약했던 궈타이위엔이 일본식 발음인 '가쿠 타이겐'으로 등록했 것을 염두에 두고 '가쿠'라는 이름을 살려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서 일본식 발음으로 등록한 것 같다.[75] 참고로 19년전인 1998년의 퍼시픽리그 야수 신인왕도 세이부에서 나왔다. 바로 아래에 나오는 오제키 타츠야가 주인공.[76] 300경기째 되는 날에 에토 미사와 열애중임을 인정했고, 3회에 몸에 맞는 볼로 인해 교체당했다.[77] 관보에 생년월일과 사는 곳이 똑같은 김유사(金侑司)라는 한국인이 귀화해서 재일교포 설이 나온 케이스. 카네코 유지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금자유사(金子侑司)이다 보니.[78] 괄호 안은 재적 연도[79] 한자: 郭泰源.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가쿠 타이겐. 중국식 발음으로는 궈타이위안.나이 든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곽태원이 더 익숙하다.[80] 등록명은 데니였으며, 일본식 이름은 유이 토모리이다.[81] 일본판 톰 션. 작년의 밴헤켄보다 더 허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말기인 9월에 방출당했다(...) 세이부에서는 똑같이 전력 외로 밀려난 다른 외국인 선수들을 10월 시즌 끝 까지 기다려줬는데 이 선수는 얼마나 빡쳤는지 중도에 방출.[82] BB/K가 메히아는 .334인데 스미타니는 .212 (...) 참고로 볼넷을 절대로 못 얻어나간다고 개까이는 박종윤의 통산 BB/K가 .277이다(...)[83] 호소카와는 적어도 홈런이라도 간간이 쳐주는 공갈포기라도 했지 스미타니는 똑딱이...[84] 후에 본인이 결백을 주장하여 재조사 후 영구제명은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