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1 12:03:22

우메노 류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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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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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c7bc69 금메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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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202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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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메노 류타로 12 사카모토 세이시로 39 사카에다 유키 57 나가사카 켄야
59 후지타 켄토 68 나카가와 하야토 95 카타야마 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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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30706 우메노 류타로.jpg
한신 타이거스 No. 2
<colbgcolor=#000000> 우메노 류타로
梅野隆太郎 / Ryutaro Umeno
생년월일 1991년 6월 17일 ([age(1991-06-17)]세)
출신지 후쿠오카현 치쿠시군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후쿠오카공업대학부속조토고교
후쿠오카대학
신체 173cm / 80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입단 2013년 드래프트 4라운드 한신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 (2014~)
등장곡 Bigfumi - Life[홀수타석]
Bigfumi - 繋いでいけ[짝수타석]
응원가 응원가[가사(일본어)][가사(한국어)]

1. 개요2. 프로 입단 전3. 프로 입단 후4. 플레이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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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신 타이거스 소속 포수.

2. 프로 입단 전

아버지는 동네 야구를 즐겼으며, 리틀야구단을 운영하였다. 초2때 아버지의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는 것으로 그의 야구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외야수를 하다가 초4부터는 포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해 모친이 사망하는 불운도 겪어야 했다.

중학교 때는 타격도 잘 돼서 4번 타자 겸 포수로 수많은 대회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맹활약을 했다고 한다.

고교에는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지만, 정작 1학년 때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2학년 때는 잠깐 외야수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다만 고시엔 진출은 한 적이 없다고. 그래도 고교 통산 24홈런으로 장타에 소질이 있음은 증명했다. 그러나 2009 드래프트에선 결국 지명이 되지 않았고[5] 후쿠오카 대학으로 진학하여 야구를 계속하기로 했다.

4년이 더 지나 2013년에 실시된 2014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한신 타이거스의 지명을 받았다. 입단 동기로는 이와자키 스구루, 이와사다 유타 등이 있다.

3. 프로 입단 후

우메노 류타로의 프로 첫 경기는 2014년 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오키나와 캠프 연습경기였다. 그러나 그가 안방을 지킨 6이닝 동안 투수들은 5실점했고 본인은 타석에서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 그래도 한신 포수진이 워낙에 열악한 상태[6]에 드래프트 순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즉전감으로의 가능성이 높다 판단되어, 12개 구단 신인 포수 중 유일하게 첫 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막전, 노우미 아츠시가 먼지가 나도록 털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 7회초에 대타로 1군 첫 출전을 하게 됐다. 그 뒤 3월 30일엔 첫 안타를[7], 4월 20일엔 첫 선발 출전을, 4월 27일엔 첫 홈런과 타점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1군 92경기에 출전하며 수비율 0.995, 도루저지율 0.263, 포일 0개를 기록했다. 타격에서도 홈런 7발을 날리는 등 고교 때 장타력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은 했지만, 정작 타율 0.197, 볼넷 10개, 삼진 78개로 1 : 7이 넘어가는 볼삼비 및 멘도사 라인 급 타율이 문제가 됐다. 그래도 한신의 2위 수성에 알게 모르게 공헌은 했지만, 막상 돌부처와의 궁합이 너무 안 좋아[8] 결국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부턴 우메노의 출전 비중이 줄기 시작했다. 보통 오승환이 나올 때 정도 되면 우메노를 빼고 츠루오카 가즈나리 또는 후지이 아키히토 같은 경험이 많은 포수들을 대수비로 넣곤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더블 스위치가 벌어질 수도 있다.[9]

2017시즌 가네모토 도모아키 감독의 중용으로 주전포수로 출전하고 있다. 포수로서의 성장이 두드러지며 도루저지율 세리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타격은 5월초 기준 타율 0.204 홈런 1개로 좋지 않으나 득점권 상황에서 적시타를 자주 때려내고 있다.

2018시즌에는 개인 최다 132경기에 출장했다. 거의 대부분의 타격부분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고 OPS도 7할을 넘겼다. 시즌 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폭망한 2018 한신의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었다.

2019시즌엔 개막 이전인 4월 3일 발가락을 골절당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노 아키히로 신임 감독은 우메노를 개막 엔트리에 넣어서 불안을 주었는데, 이게 웬걸 4월 9일 코시엔 개막전에서 개인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해버렸다.

첫 타석의 3루타는 잡힐수도 있던 타구였으나 상대팀 DeNA의 외야수 소토가 포구에서 미스를 저지르며 2타점 3루타가 되었고(처음엔 에러로 기록되었다가 3루타로 변경) 마지막 2루타는 본인이 기록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3루로 내달리다가 선행주자 나바로가 홈에서 횡사하는 바람에.. 공수교대가 되며 2루타로 인정되어 기록이 완성되었다.

이후로도 도저히 발가락 부러진 사람이라고는 상상 못 할 활약을 공수양면에서 펼치며 한신을 캐리하는 중. 전반기 타출장 .290 .351 .448에 7홈런으로 데뷔 첫 두자리수 홈런도 무난해 보이는 성적으로 커리어하이를 쓰고 있고 올스타전에도 무난히 선발되었다. 공수양면에서 한신을 캐리하는 한신의 소년가장. 하지만 여름동안 타격 페이스가 떨어져 결과적으로는 2018 시즌과 비슷한 성적에 머물렀다. 홈런도 최종 9개로 두자릿수 기록에 실패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66 , 9홈런 59타점, OPS 0.718을 기록. 다만 도루는 14개를 기록하면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다. 14개를 기록하는 동안 도루 실패는 3번뿐으로 성공률도 상당히 좋다. 시즌후에는 수비력을 인정받아 2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2020시즌에는 98경기 출장에 타율 0.272 7홈런 29타점에 OPS 0.723으로 결과적으로 18,19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3년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시즌 종료 후 조지마 켄지의 등번호였던 2번으로 교체했다. 원래 2번을 달고 있었던 선수는 호죠 후미야 였다. 하지만 그 전에 조지마 켄지가 2번을 사용하고 있었고 포수였기에 존경하는 의미로 단 것일 확률이 높다.

2021년엔 히로시마의 아이자와 츠바사가 부상으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사퇴하면서, 대타로 선발되었다. 마침 본인의 데뷔 첫 시즌에 팀 동료였던 오승환도 대체 승선 형태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면서, 2014~2015년 한신에서 한솥밥을 먹던 둘은 적으로 만나게 됐다. 실제로 이스라엘-한국전을 직관하기도 했고, 기사도 이스라엘전 이전부터 여러개 쏟아졌을 정도. 경기에서 배터리로서 호흡이 잘 안맞았던 것과는 별개로, 사석에서는 오승환과 꽤 친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에서는 준준결승 미국전에 선발 포수로 1경기 출장했다.

2021년 정규시즌 성적은 전년에 비해 하락했는데, 장타율이 주저앉으며 3년 연속 기록했던 7할 OPS가 무너졌다. 130경기 출전에 3홈런 33타점, 타율 0.235 출루율 0.299 장타율 0.300 기록. 수비에서도 6실책에 42도루 허용으로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

2018년만 해도 라인업에서 젊은 축에 들던 타자였으나 팀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을 한 2021년엔 고참 축에 들게 되었다.

21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행사하지 않고 한신에 잔류했고, 한신은 이에 고액 다년계약으로 화답했다. 고향팀에는 어깨 하나만으로 주전인 포수가 있어서 그런듯 하다.

2022시즌에는 100경기 출장에 타율 0.228, OPS 0.581로 타격성적이 전년보다 하락했다. 사카모토, 나가사카와 포수마스크를 나눠쓰며 주전 출장도 다소 줄어들었다.

2023 시즌에는 이토이 요시오의 은퇴로 야수중 최연장자가 됐다. 후쿠도메가 4번을 치던 몇 년 전의 노인정 타선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신임 오카다 감독은 일찌감치 우메노를 정포수로 지정하며 밀어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5월 13일 기준 타율이 딱 .100으로 너무 좋지 않아 사카모토에 선발포수를 잠시 내주고 있다. 그 후로도 계속 사카모토와 번갈아가며 출장했고, 그나마 타율이 1할 후반대까지 올랐으나 8월 13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투구에 손목을 맞고 골절을 당해 시즌아웃당했다. 9월 14일 한신이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고시엔 구장에 오랜만에 등장했고, 우승 헹가래에도 참여했다.


4. 플레이스타일

5. 여담



[홀수타석] [짝수타석] [가사(일본어)] 気迫のスイング 燃えろよ梅野 どでかいアーチ 勝利への一撃 (키하쿠노 스인구 모에로요 우메노 도데카이 아-치 쇼오리에노 이치게키)[가사(한국어)] 기백의 스윙 타올라라 우메노 큼지막한 아치 승리의 일격[5] 사실 진작부터 상위 순번에 지명 안 되면 그냥 대학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6] 베테랑이자 오승환 전용 포수 츠루오카 가즈나리, 후지이 아키히토를 빼면 나머지 포수들은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시즌 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FA 이적한 선발 투수 쿠보 야스토모의 보상선수로 츠루오카 가즈나리를 뽑고도 저런 상황이었다. 포수 유망주(라기보다는 사실상 노망주)이던 이마나리 료타는 3루수로 전업하고 가끔 외야도 겸업했지만, 14시즌 중후반까지는 포수로 등록되어 있긴 했다.[7] 이 공은 어머니의 묘에 바쳐졌다고 한다.[8] 오승환의 첫 블론 포함 14시즌 6블론 중 3개가 우메노 포수일 때 나왔다.[9] 한신이 있는 세리그는 투수도 타석에 선다. 선발 투수가 조기강판 당하지 않는 이상은 보통 2~3타석 정도 들어서고 그 뒤로는 투수 타석에 대타 세우고 그 대타 또는 다른 야수가 투수로 교체되면 그 투수의 타순은 직전 이닝의 마지막 타순에 위치하게 해서 최대한 투수 타석이 안 들어오도록 조치한다. 물론, 투수에게 멀티이닝을 맡길 경우라면 불펜 투수가 타격하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지만 제법 볼 수 있다. 오승환도 멀티이닝 소화를 위해 타석에 선 적이 몇 차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