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9-19 19:17:17

코나미

이 문서는 일본의 게임 회사에 관한 것입니다. 일본의 여자 성우에 대해서는 요시다 코나미, 오오나미 코나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Konami Holdings Corporation
파일:attachment/1867304-1283384332_konami_logo.jpg
정식 명칭 コナミ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영문 명칭 Konami Holdings Corporation
한글 명칭 코나미 홀딩스 주식회사
설립일 1969년 3월 21일
업종 파칭코, 피트니스 관련, 게임 소프트웨어 공급
상장여부 상장 (도쿄 증권거래소, OTC Pink,
런던 증권거래소)
기업규모 직원 수: 5453명 (2014년)
수익: 159.95억 (2014)
영업 수입: 109.05억 (2014)
순이익: 121.70억 (2014)
공식 홈페이지
Konami Digital Entertainment
정식 명칭 株式会社コナミデジタルエンタテインメント
영문 명칭 Konami Digital Entertainment Co., Ltd.
한글 명칭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설립 연도 2006년
업종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홈페이지

1. 개요2. 코나미의 오너 코즈키 가문3. 게임성에 관하여4. 사업 확장5. 게임 사업에서의 철수 의혹6. 비판7. 관련 작품8. 개발 자회사, 개발자9.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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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코나미 로고. 1981년~1986년 전반까지 사용
파일:attachment/코나미/Logo-Konami-2012.jpg
2003년~2012년까지 사용된 로고. 모나미? 1986년 후반~2003년까지 쓰인 로고.
파일:attachment/1867304-1283384332_konami_logo.jpg
2013년부터 현재 사용중인 로고. 사실 기존에 로고 이미지가 빠지고 글씨만 기존의 코나미레드 색상으로 삽입되는 형태이다.
2012년 12월 초부터 점진적으로 교체했으며 2013년 1월에는 거의 교체가 완료되었다.

1. 개요

1969년에 창업하여 1972년 법인화한 일본의 기업집단. 2013년으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1] 쥬크박스의 렌탈 및 수리 사업으로 시작하였다. 현재의 사업 분야는 비디오 게임 개발 및 유통, (일본 외부에서의) 카지노 운영, 파칭코 제작 및 유통, 헬스 클럽 운영. 한편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비디오 게임 개발 업체로 친숙하다. 본사는 설립 당시에는 오사카에 있었으나 1986년 고베로 옮겼다가, 1993년부터 실질적인 본사를 도쿄로 이전했고 1999년에 등기상으로도 완전히 도쿄로 이전하였다. 도쿄 내에서도 몇번 본사를 이전한 바 있으며 2016년 현재는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위치해 있다.

풀네임은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Konami Digital Entertainment)로, 원래 코나미 이름을 걸고 게임을 만들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자회사들이 존재했으며 그 회사들이 주식회사 코나미로 묶여있던 형태였지만 2003년즈음 해서 계열사들을 전부 합쳐서 거대 회사화 했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바뀌었다. 현재 자회사 스튜디오들은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주식화사로 합쳐졌으며 로고에서는 코나미를 쓰지만 실질적으로 언론등에 노출될때는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또는 KDE)로 호칭한다. 근데 이 KDE는 로고가 따로 있다. 참고로 코나미라는 이름은 공동 창업자 3명의 이름의 로마자표기에서 두글자 씩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2] 일본의 기업은 설립자나 사장의 성이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토요타.

1979년,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에 편승하여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모방 작품인 <스페이스 워>[3]와 <스페이스 킹>을 만들면서 게임 분야에 진출한 코나미는(이 때는 레잔크 명의였다.) 다음 해인 1980년, 코나미 공업이라는 명칭으로 개명하여, 최초의 오리지널 게임인 슈팅 게임 디 엔드를 제작했다.

이후 그라디우스 시리즈 , 고에몽 시리즈, 악마성 시리즈, 콘트라 시리즈 등 80년대 명작들을 차례차례 내놓으면서 굴지의 게임 회사로 성장한 코나미는 계속해서 메탈기어 시리즈,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 BEMANI 시리즈 등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실험적인 게임들은 물론, 위닝일레븐 시리즈,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 프로야구 스피리츠, 파워프로군 포켓 등 스포츠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명작 게임들을 발매하였다. 또한 게임 뿐 아니라 초성신 시리즈, 유희왕 등 미디어믹스 작품도 내놓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중 2의 Xbox360판과 PS2용 빅 레드 원을 유통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자사 오락실 게임들은 모두 e-AMUSEMENT라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4]

규모 면에서는 이미 여느 대기업과 비교해봐도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 회사로 피트니스 클럽[5] 등의 건강 관련 사업과[6] Biometrics water라는 고급 생수 판매,[7] 대형 스포츠게임 스폰싱프로 스포츠팀 운영[8]까지 하고 있다. 특히 자사에서 야구게임을 제작하기 때문에 일본 내 야구 스폰싱에 대해선 일류급. 도쿄돔에 향시 광고가 달리는것은 기본이요 초창기 아시아 시리즈는 코나미의 전폭적 스폰싱덕분에 '코나미 컵 아시아 시리즈'라고 불리웠으며, 거기에 범세계적으로 진출하려고 하는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광고 스폰싱을 내걸을 정도로 야구 관련에는 돈을 펑펑 쓰면서까지 스폰싱을 하고 있다.[9]

코나미의 본사 사옥은 도쿄 미나토구 롯폰기 '미드타운' 내에 입주해 있다.[10] 본사 입구 근처에 코나미 직영 자사 프랜차이즈 쇼핑몰인 코나미스타일의 오프라인점포가 한동안 특별히 입점해있었으나 불황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2014년 12월 30일부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11]

KONMAI라는 애칭(?)이 있으며, 한국 내에서나 쓰이는 돈나미와는 달리 이건 전세계적으로 코나미를 깔때 자주 쓰인다. 국내 유희왕 TCG 광고 시엔 나미로 쓴다. 원인은 망할 대원미디어는 아니고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2015년대 행보는 故나미고나미로 적어야 맞지만, 공식적인 국내 지사 명칭이 '코나미 코리아'인지라 한국어 위키백과와 이 항목에서는 '코나미'로 작성된다.[12] 그냥 음성에서 코나미라고 그러니 코나미라고 하자.

과거 90년대 직접 진출하려 했을 때에는 고나미로 적었는데, 그 증거 중 하나가 왼쪽 줄에 지금은 흑역사가 되어 버린 '현대세가엔터테인먼트(주)' 관련 항목. 당연하지만 예전부터 DDR의 엄청난 히트 덕분인지 꽤 오래 전부터 한국 시장에 기웃거린 전력이 있다. 아무튼 20세기 후반에 KONAMI가 한국에서 활동하려고 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고나미로 여기저기 등록하고 다녔었기 때문에 아직도 고나미라는 표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봄 즈음에 허드슨과 합병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결국 2011년 4월 1일 부로 허드슨은 코나미의 자회사가 되었다.#

2012년까지 게임 크리에이터 학교인 코나미 스쿨도 운영하였다.http://hayabusa6.2ch.net/test/read.cgi/senmon/1291683781/ 일본의 최대규모 게임 크리에이터 학교인 닌텐도 게임 크리에이터 스쿨과 차이점은 BEMANI 시리즈의 영향덕분에 사운드 학과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그래픽 5 / 프로그래밍 4 / 사운드학과 1수준으로 운영하였고 dj TAKAwac도 이 코나미 스쿨의 사운드학과 1기생이었다고 한다.

2. 코나미의 오너 코즈키 가문

초창기는 코즈키 카게마사, 나카무라 요시노부, 미야사코 타츠오 세명이서 같은 지분을 가지고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구조였다. 이후 나카무라와 미야사코가 코나미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코즈키 카게마사가 코나미를 차지하게 된다.[13]

코나미 주주현황을 보면 알겠지만 코나미라는 회사 자체가 사실상 코나미의 창업 가문중 하나인 코즈키 가문이 소유한 회사나 마찬가지, 코즈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코나미 주식들은 '코즈키' 이라는 이름을 달고있는 회사와 재단으로 분산되어있다. 코즈키 가문 본인들은 직접적으로 코나미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지만 그 대신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와 재단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코나미 주식을 보유하는 것. 코나미 정도의 기업에서 저 지분율이면 실질적으로 코즈키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이 회사 최대주주의 명의도 現 오너인 코즈키 카게마사가 회장이고, 코즈키 회장의 아들이자 코나미의 차세대 오너인 코즈키 타쿠야(차남)[14]가 지주회사의 사장으로 있는 코즈키 재벌이다.#

지배구조가 캡콤과 대비되는데 캡콤의 경우에는 최대주주는 츠지모토 가문 소유의 회사를 올려놓고 10대 대주주 명단에 츠지모토 가문 구성원을 올려놓는 방식을 통해 오너 가문이 자사(自社)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여 지배한다면 코나미의 경우에는 10대 대주주의 명단에는 코즈키 가문의 구성원이 없는 대신 코즈키 가문이 소유한 회사와 재단을 대주주 명단에 올려놓고 가문에서 소유한 재단과 회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코나미를 지배하고 있다. 사내이사 7명 중 4명도 코즈키 가문 사람들이다.

3. 게임성에 관하여

경쟁 제작사들에 비하면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게임 이름만 대면 제작사가 자동으로 연상이 될 정도의) 메이저 타이틀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또한 악마성 시리즈, 위닝일레븐 시리즈, BEMANI 시리즈 등 장수 시리즈의 대부분은 시리즈가 흐르면서 다른 제작사들에 비해 유난히 우려먹기라는 비아냥을 사는 편. 실제로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매체가 CD로 변하자 어펜드 디스크 방식으로 게임 소프트를 판매하는 것을 채택해서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어팬드 디스크의 특성상 메인 키디스크가 없으면 어펜드디스크는 쓸모가 없어지니 말 다했다. 다만 가격면에서는 일반 소프트의 절반정도 수준으로 판매했다.

이처럼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부족한 대형 제작사인데도 불구하고 코나미가 업계에서 살아남는 이유는 무시무시한 기획력에 있다. 코나미는 세가, 타이토와 함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별의 별 장르를 다 개척하는 회사였으며 세가와 타이토는 과도한 도전정신으로 게임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지만 코나미는 기존의 장르에 다른 장르를 더해서 안정적인 게임성을 가진 게임들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초창기 대전액션게임이얼 쿵푸, 횡스크롤 슈팅의 바이블인 그라디우스 시리즈, 잠입액션을 유행시킨 메탈기어 시리즈 [15], 리듬게임 장르를 개척한 비트매니아[16], 그 뒤를 이어 완전히 새로운 2세대 리듬게임의 장을 연 유비트 시리즈리플렉 비트 시리즈, 미연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그리고 러브플러스까지 코나미의 히트작은 대부분 그 독창성으로 게이머들을 어필하였다. 그러나 후속작들의 게임성이 전작과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우려먹기 논쟁이 나온다는 점에서 기획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부재가 코나미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80년대 코나미는 게임기의 하드웨어 성능을 풀로 발휘한 게임들을 자주 만들었고[17], 90년대 초에는 닌자 거북이, 심슨 가족, X-MEN, 타이니 툰, 아스테릭스, 버키 오 헤어, 에일리언 2 등 인기있는 서양 판권물들을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의 형식으로 게임화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고전게임들을 논할 때 마다 어떤 장르이든 간에 코나미 게임들은 절대로 빠지지 않으며 80, 90년대에 MSX, 패미컴, X68000 등의 고전 콘솔기, 퍼스컴으로 게임을 즐겨온 레트로 게이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는 편이다.

과거에는 상상하하좌우좌우BA와 같은식의 여러가지 비밀커맨드를 게임내에 숨겨두었는데 이를 코나미 커맨드라 하며, 이는 하하상상우좌우좌같은 식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일단은 상상하하좌우좌우를 코나미 커맨드라 부른다.또 573을 코나미 넘버라고 부른다.(5=코 7=나 3=미) 웬만한 코나미 게임에서 573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것도 이러한 이유.[18] 심지어는 한국에 정식발매된 코나미 게임의 패키지 뒷면에 써있는 고객지원센터 전화번호에도 573이 들어가 있다(...).[19]e-AMUSEMENT 사이트주소에도 573이 들어가 있다.#[20]

독특한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든 것으로도 유명. 이 점들이 폭발한 곳이 바로 파로디우스 시리즈다. 현대에 비해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들에 관대했던 시대배경까지 맞물려서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떠올리기 힘들 듯한 센스를 발휘했다. 파워프로군 포켓, 러브플러스 같은 예시를 보면 여전한 것 같기도...

다만, 이래저래 대전액션게임과는 굉장히 인연이 없는 회사이다. 90년대 중반에는 아케이드 시장에서 당시 가장 환상적인 그래픽을 자랑하던 MODEL3를 버로우시킬 거라며 내 놓은 코브라 기판으로 <파이팅 우슈>란 게임이 나왔으나 묻혔고,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무희>라는 게임을 내 놓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코브라 기판과 함께 시장에서 사라졌다. 실제로 두 게임 다 게임성은 그럭저럭. 간간이 코나미에서도 갖가지 기종으로 대전액션 게임이 발매되어 일부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히트를 노리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기억되는 게임이 없다. 2D대전격투는 드라군 마이트에서 맥이 끊겼으며, 악마성 드라큘라 저지먼트 역시 전례대로 말아먹었다. 철권 2를 본따서 만든 게임인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 역시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에 말아먹었는데 하필이면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가 나온 그 해에 철권 3가 나왔다. 비교가 안될 수밖에 없었으며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는 캐릭터성이 뛰어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철권 3에게 압살당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4. 사업 확장

코나미는 음반 사업, 피트니스 클럽, 생수 사업[21], 야구 구단 스폰싱 등 "게임으로 벌어들인 돈을 부업으로 다 까먹는다"는 소문이 흘러다닐 정도로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는 회사로 유명하다. 심지어 90년대 중반에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펀드와 메탈기어 솔리드 펀드 등의 펀드 사업까지 벌였을 정도.

도키메키 메모리얼 펀드의 경우 사업설명회 장소에서 '키라메키 고교'의 교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시중을 들었다거나, 10주 이상 투자한 사람은 엔딩 스탭롤에 이름을 넣어주는 등등의 화제거리를 낳았으며[22] 메탈기어 솔리드 펀드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 펀드에 투자한 사람에게는 시판되지 않은 특별 패키징의 메탈기어 솔리드 패키지를 증정하였다. 그러나 펀드 자체의 수익률은 좋지 않았던 모양으로 증언에 따르면 10을 넣으면 8을 날려먹었다. 아마도 코나미가 뭔가 요술(?)을 부린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아무튼 이 일로 벌어들인 건 원한이었다. 코나미 본사의 주식을 샀다면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올라갈 가능성은 있는데 이건 주식이 아니라 게임제작에 투자하라 그 자체였다. 도대체 '돈을 투자하면 몇 배로 벌어주는 사업이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하는 사기꾼들과 다를게 뭐가 있는가?

음반 사업 역시 (80년대의 코나미 구형파구락부에서 시작된) 자사의 풍부한 게임음악 컨텐츠 및 BEMANI 시리즈 리듬게임 음악 컨텐츠에서 그치지 않고, 성우들의 가창 앨범도 역시 코나미 음반사업부에서 낸 것이 많으며 소속 성우들도 여럿 있었다.[23] 코우다 마리코 등이 이 케이스였으며, 탄게 사쿠라라는 거물 역시 그녀의 가창 앨범이 코나미쪽 음반사업부에서 꽤 많이 나왔었다. 다만 어느샌가 탄게의 가창음반들은 러브플러스가 나올때까지 코나미 계열 음반사에서 나오지 않았었다.[24] 또한 2000년대 중반에는 573 레코드라는 일반 음악을 위한 레이블도 연 적이 있지만 어느새 흐지부지되어버린듯 하다.(...) 이때 573 레코드쪽으로 음반을 낸 가수들중에는 일본의 랩퍼인 DABO 등이 있었다.[25]

이 가운데 유희왕의 경우 코나미 혼자서 애니, 게임, 카드, 팬북, 팬아트, 피규어 등 별별 관련 상품을 2차 창작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다 만들어 팔아먹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안다. 때문에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몰락해 버렸고(아래 참조), 결국엔 현재는 2차 창작에 대해서 클레임을 걸지 않는 편.

파칭코파치슬롯 사업에도 KPE라는 이름으로 손을 대고 있는데, 그 중 매지컬 할로윈 시리즈는 대단히 유명하다[26]. 비트매니아 IIDX의 흑역사 중 하나인 비트매니아 파치슬롯을 만든 경력도 있다(...). 2005년에는 Konami Gaming, Inc을 설립 미국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카지노 사업을 진출했다. 도박산업의 고수익으로 게임산업이 취미고 카지노와 파칭코가 주업으로 순익이 엄청나다는 소문도 있지만 연간 재무보고서를 보면 카지노 사업부인 Gaming & Systems 와 파칭코 사업부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체의 10% 내외를 각각 차지 할 뿐이고 게임 사업부인 Digital Entertainment가 매출과 순익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 심지어 2013년 파칭코 사업부는 적자를 보았을 정도로 도박산업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다.

5. 게임 사업에서의 철수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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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의 2015년 사업 계획[번역...]

코나미는 이미 92년에 코나미의 히트 게임들을 개발한 유명 개발자들이 차례로 회사를 떠난 뒤에 모여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전력이 있었는데[28], 결국 악마성 시리즈의 프로듀서 이가라시 코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프로듀서 마츠이 테츠야#, 메탈기어 시리즈의 프로듀서 코지마 히데오 #, 러브 플러스의 프로듀서 우치다 아키라# 등의 이름이 차례로 파내어지면서 불안감을 자아냈다.

특히 코지마 방출 이후로, 트위터에서는 전세계적으로 #fucKonami라는 안티 코나미 해시태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캡콤과 비슷하게 단순히 투자대비 이윤이 적은 콘솔 게임 사업을 접고 소셜 게임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였고, 이에 관련된 새 CEO 발표도 있있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2010년에 런칭한 모바일 게임 드래곤 콜렉션이 적은 개발비에 비해서 기대 이상의 히트를 친것에 반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개발비가 투자됐음에도 러브 플러스 시리즈나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 등의 기존 비 모바일 타이틀이 매출이 점점 줄어들자[29] 경영진과 주주의 관심이 콘솔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현상을 보인 것. 이에 팬들은 사실상 코나미가 콘솔 사업을 접고, 저투자 고효율이 나오는 모바일 소셜게임에 집중할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코나미의 콘솔게임 팬들은 씁쓸하겠지만 사실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손해만 보는 애물단지를 계속 끌고갈 이유가 없고. 업계의 대세가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과 무조건 비난할 수 없을 만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이 쪽도 모모타로 전철 시리즈를 원작자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모바일로 내놓으려다가 분노한 원작자가 폭탄 발언까지 하며 코나미와의 관계를 아예 쫑내버리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태. 참고로 아케이드 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코나미의 아케이드 게임들은 2014년 들어서 대부분 저예산으로 책정한 상태다. 이쪽도 나오키 마에다가 퇴사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상태.

지금은 수정된 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코나미의 초기 설립자 중 한명인 '코'에 해당되는 코즈키 카게마사는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게임꾼이라고 불릴까봐 게임 업계 사람들과도 친하지 않으며 (게임의) 이미지가 안 좋다고 생각해서 아들에게도 직업을 숨기고 다녔고 피트니스 분야에 진출했을 때 경영회의에서 죽 늘어앉은 간부들을 앞에 두고 '나는 겨우 게임 이외의 사업을 손에 넣었다"며 감격해 하는 등 게임 산업을 멸시한다는 문장이 있다.[30] 아예 코나미의 요직은 거의 오너가문인 코즈키 가문 쪽 사람들로 채워진지 오래여서 장기적으로 코나미가 게임 산업 자체에서 아예 철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덤으로 이 기사를 보면 왠만한 블랙기업 뺨치는 수준으로 회사 상황이 이런데 개발자들의 게임 개발 의욕이 있는게 신기할 수준 # 빠찡코, 파치슬롯하고 카지노까지 하면서 고작 비디오 게임을 혐오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듯.

거기에 당신이 코나미에서 일하면, 빅 브라더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라는 내부 관계자의 고발기사가 떴는데, 이런 회사에서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신기한 수준.

결론적으로, 코나미의 피트니스 클럽 사업도 의외로 잘되고 있고, 일본 프로스포츠 라이센스 독점에, 가장 중요한 파칭코 사업, 그리고 카지노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일본에 만약 카지노가 합법화 되면 수혜 1순위가 될거라는 등[31]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코나미가 게임 산업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유희왕이나 위닝일레븐, BEMANI 시리즈등의 알짜 브랜드 등이 남아 있고 모바일 게임사업이 꽤 잘되고 있으므로 아직까지는 완전한 게임시장 철수는 없을 듯 하다. 다만 돈이 안되는 아케이드, 콘솔 부분의 개발 파트는 최대한 정리하고 모바일로 기존 브랜드의 뽕을 뽑아 매출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즉, 적어도 신규 대작 게임을 기대하긴 힘들거라는게 보통의 반응.

그러나 2015년 8월 6일, 코나미는 자사에서 발매한 상당수 모바일 게임들의 서비스를 중지하고 애플 앱스토어에서 내린다는 공지를 냈다.# 이는 코나미가 모바일 게임 사업에서 철수할 예정이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iOS 9 에 대응시킬 개발인력이 없어서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물론 후자라고 해도 해당 부서에 예산과 인력을 할당하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코나미는 더이상 게임에 리소스를 집중할 의사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행히 인앱구매자가 많은 편인 유비트 플러스리플렉 비트 플러스는 서비스를 계속 하고 있지만 최근 코나미의 행보를 보면 이 게임들 역시 앞날은 불투명하다.[32]

또한, 사일런트 힐즈 P.T. 를 중단한 시점에서, 2015년 8월 사일런트 힐이 파칭코로 돌아와서 # 위에서 언급된 알짜브랜드들도 매우 염려되는 상황이다.

결국 2015년 9월 18일, 해외 외신들이 코나미가 '위닝일레븐'(PES) 시리즈를 제외한 모든 AAA 게임 타이틀의 개발을 전면 중단한다는 루머가 도는 상황이라는 뉴스를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벤 기사

2016년 6월, 메탈 기어 솔리드 : 스네이크 이터의 리마스터랍시고 결국 파칭코로 나와 많은 팬들이 코나미에 대해 더욱 더 큰 비난을 대차게 가하였다.

6. 비판

코나미/비판 문서 참조.

요약하자면 지나친 라이센스 중시로 인한 2차 창작물 탄압, 과도한 특허 독점 논란으로 여러 병크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빅 브라더에 맞먹는 악명높은 블랙기업으로 일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7. 관련 작품

90년대에 냈던 4인 플레이 가능 게임의 대부분은 3P측 캐릭터가 우대받는 경향이 강했다. (☆)

코나미 항목의 게임은, 아케이드 게임과 콘솔 게임을 나뉘어서 분류하도록 하겠다.

8. 개발 자회사, 개발자

9. 관련 항목



[1] 회사측에서 정립한 창립일은 1973년 3월 19일.[2] 즈키 카게마사, 카무라 요시노부, 야사코 타츠오.[3] 동명의 비디오게임 조상중 한분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다.[4] 다만 좀 넓게 보면 안쓰는 게임기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유희왕 OCG 듀얼 터미널. 이쪽은 자체 카드를 쓴다.[5] 원래는 mycal 그룹 계열의 체인이었는데, 경영난으로 그룹이 해체되고 그중 피트니스클럽 분야가 코나미로 넘어간것.[6] 피트니스클럽에서 자사의 게임 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이용하고 있다.[7] 수원지가 북알프스라고 광고하는 물건이다. 다만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려우며 코나미 스포츠클럽 체인 및 롯폰기 코나미 본사 사옥 인근 자판기에서만 구할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Beatmania IIDX의 악곡인 Biometrics Warrior와는 관련이 있을거라는 농담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8]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전용 페이지.[9] 축빠들에게도 익숙한 회사인데, J리그 선수와 팀 정보 라이센싱을 독점 보유하고 있었으며 J리그 공식 스폰서를 오랫동안 맡아 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FMFIFA 시리즈에는 J리그가 없었다.[10] 단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카사카에 속한다. 미드타운은 롯폰기 힐즈 둘째가라면 서러운 롯폰기 최고의 주상복합시설 중 하나이며 코나미뿐만 아니라 후지필름 본사, 미츠이부동산, CISCO 일본지사 등 쟁쟁한 기업들이 입주한 지역이다.[11] 즉 코나미스타일은 원래대로 온라인 쇼핑몰만 남은 셈이 되었다.[12] 한때 일본 기업이라 일본어 표기인 コナミ를 따르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 하에 고나미라고 등록된 적도 있었다.[13] 세간에 밝혀지진 않았지만 코즈키와 나머지 둘의 사이는 그닥 좋지만은 않은 모양인지 회사 연혁에는 코즈키 카게마사가 코나미를 설립했다고 기제되어 있으며 나카무라와 미야사코의 이름이 쏙 빠져있다.[14] 2012년, 아버지로부터 지주회사의 사장직을 양도받았다.[15] 유명세때문의 최초의 잠입 게임이라고 착각받지만, 사실 게임계에서 최초의 잠입 요소를 사용한건 캐슬 울펜슈타인이다(울펜슈타인 3D의 원작). 물론 일본 최초나 콘솔 최초라고 하면 얼추 맞지만...[16] 이쪽도 기초 아이디어는 이미 1996년부터 존재했기에 엄밀히 말하면 최초는 아니다. 그러나 최초로 뮤직 시뮬레이션 게임(현재 리듬게임이라 불리우는 그것)의 기반을 만들어놓은건 사실이다[17] 특히 코나미는 MSX 시장에 애착을 보였는데 별도의 사운드칩인 SCC를 발매하여 MSX의 열약한 사운드 스펙에서 아름다운 음색을 들을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스페이스 맨보우와 같은 게임들에서는 MSX 2에서 16비트 게임기에서나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패미컴콘트라그라디우스, 슈퍼패미컴AXELAY 등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닌텐도 계열의 게임기로 아케이드 원작보다 뛰어난 게임성으로 이식하여 이른바 '초월이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18] 예를 들면 코나미의 슈팅게임들의 초기 최고점수가 57300점이라든가...[19] 코나미 코리아 철수 이후 유니아나의 코나미 게임 고객지원센터 전화번호에도 들어간다.[20] 사이트주소를 보면 중간에 573이 들어가있는게 보인다.[21] 2016년에는 수소수까지 팔기 시작했다고한다(...)[22] 근데 웃긴건 조금 투자가 아니라 기본 투자가 10주였다.10주 미만은 퇴장이라는 뜻이었다.[23]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성공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것 같다.[24] 탄게와 코나미, 혹은 코나미쪽에서 음반을 취입한 성우들과 코나미측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실치 않음[25] 컴필레이션 앨범 한정. 비트매니아 IIDX 가정용 9th, 10th에 CS 전용곡으로 실린 판권곡 극히 일부가 573 레코드로 나온 가수들의 노래를 편집해서 게임용으로 수록한 것.[26] 팝픈뮤직 과 마찬가지로, 공식 설정집이 나왔다.[번역...] "코지마 히데오 엿먹이기", "메탈기어 시리즈 엿먹이기", "사일런트 힐 엿먹이기", "엿먹이기", "엿먹어라"(...).[28] 심지어 캡콤 초기 성공의 주역인 오카모토 요시키 역시 코나미에서 영입된 사람이다.[29] 러브 플러스는 NEW 러브 플러스에서 KOTY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말아먹었고 MGS 시리즈는 정확히는 망하진 않았지만 4편이 엄청난 제작비 대비 4~600만장 밖에 팔리지 못해서 재미를 별로 보지 못한게 문제인듯 하다[30] 한국에선 게임규제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일본에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진 않았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게임회사에 취직을 하면 그다지 좋은 시선으로 안 봤었다. 코즈키 회장의 저 발언 역시 당시 일본에서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31] 이쪽은 가능성이 높지않지만 2020 도쿄 올림픽의 유치로 들어올 외자유치를 위해 카지노를 합법화 할지도 모른다는 썰이 제법 돌고 있다.[32] 다만. 오락실에 하루종일 박혀 살 수 없는 중~고수급 유저들은 어지간해선 이걸 사서 채보를 연습하기 때문에.. 코나미가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닫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락실 이외의 장소에서 채보를 연습할 길이 사라지면 그 리듬 게임은 하드코어 유저와 일반 유저의 격차가 까마득하게 벌어지면서 망한다(..) 펌프를 예로 들어보면. 유튜브도 없던 이 당시 고스트 패턴으로 풀콤 찍어대던 중고딩들의 실력은 인터넷으로 얻어다 인쇄해 외운 채보에서 많은 부분이 나왔다. 특히 펌프는 라이프 게이지를 소실하면 끝까지 플레이를 보장할 수 없는 게임이기까지 했으므로..[33] 국내에서 구경해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6인플레이 기판일때 한정. 3P가 울버린이다(!!!)[34] 특이하게도 일본에선 발매가 안됐다.[35] 2015년 3월 '메탈기어 포탈'로 개편.[36] 2015년 12월 15일 퇴사. 그리고 바로 다음날 코지마 프로덕션을 재설립하고 소니와 파트너쉽을 체결하여 코나미에게 제대로 통수를 먹이고 떠났다.[37] 2014년 3월 퇴사.[38] 그라디우스 시리즈의 아버지. 나의 그라디우스[39] 2015년 3월 15일에 퇴사했다.[40] 上田 英生. AXELAY의 메인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AXELAY의 개발 이후에 참여한 게임의 스태프롤에는 'AXELAY.UEDA' 또는 'H.’AXELAY’.UEDA' 로 표기되었다. 스파크스터 이후에는 'H.’SPARK’.UEDA' 로 표기,) 슈퍼패미컴스파크스터의 메인프로그램, X68000판 악마성 드라큘라의 메인프로그램&디렉터를 담당하였으며, 플레이스테이션 & 세가 새턴으로 발매된 그라디우스 디럭스 팩, 사라만다 디럭스 팩,극상 파로디우스다! 디럭스 팩, 나왔다 트윈비 얏호! 디럭스 팩의 개발&이식을 담당하였다. (이 시점부터 'H.’DELUXE’UEDA'로 표기)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X68000판 악마성 드라큘라 개발후기 코멘트 X68000판 악마성드라큘라 인터뷰(영문) 플레이스테이션 판 ≪그라디우스 디럭스팩≫ 개발후기 코멘트 세가새턴 판 ≪극상 파로디우스다! 디럭스팩≫ 개발후기 코멘트 사라만다 디럭스팩≫의 개발후기 코멘트(영문)[41] 萩原 徹. 악마성 드라큘라 X 피의 윤회의 디렉터(동시에 프로그램도 담당했다).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에서는 프로듀서&디렉터로 게임의 개발을 지휘 하였다(마찬가지로 프로그램도 담당). 이 때의 IGA는 어시스턴트 디렉터, 시나리오&프로그램 담당이었다.)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97년 월하의 야상곡 개발자 인터뷰(영문)[42] 松井 直樹. 코나미MSX개발팀 소속으로 그라디우스 2를 만들었으며, MSX판 그라디우스 시리즈를 이끌었던 개발자. 메탈기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것은 이 사람에 의한것 이라는 설이 있다.(이 시절의 코지마 히데오는 기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사까지 결심했다고 한다.) 그를 다룬 외국의 메탈기어 팬사이트의 리뷰 MSX판 스내쳐에서는 수퍼바이저로 참여했으며, MSX개발팀의 해체후에는 게임보이판 네메시스, 모터크로스 매니악스(여기에 대해서는 확인바람)등의 게임디자인에 관여하였다. 하드 록헤비 메탈을 좋아해서 사내(社內)밴드 '메탈슬레이브' 에서 보컬&사이드기타을 담당하였다. 이상, 일본 그라디우스wiki를 참고.[43] 中里 伸也. 콘트라 시리즈의 프로듀서겸 디렉터(콘트라 스피리츠에서 부터 계속). 그 외 담당한 게임은 로켓나이트 어드벤처즈(디렉터) 등이 있다.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콘트라 시리즈 개발코멘트[44] 関 貞策. 그라디우스 외전의 디렉터(기획과 그래픽디자인을 담당하였다). 코나미의 메가드라이브 게임인 뱀파이어 킬러(게임)(스태프롤에는 'BUNMIN'명의로 표기)와 (미국과 유럽에서만 발매된)애니매니악스의 개발에 관여하였다. 현재는 퇴사.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그라디우스 외전 개발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