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1-22 03:00:47

플레이스테이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SIE의 게임기 브랜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대해서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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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플레이스테이션.jpg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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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플레이스테이션1.png
개발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제조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출시일 파일:일본 국기.png 1994년 12월 3일
파일:미국 국기.png 1995년 9월 9일
파일:유럽 연합 깃발.png 1995년 9월 2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3월[1]
생산
종료일
2005년 3월 31일
가격 파일:미국 국기.png $299 → $199 → $149
→ $129 → $99 → $49[2]
파일:일본 국기.png ¥39,980 → ¥29,800
→ ¥24,800 → ¥19,800
→ ¥18,000 → ¥15,000
→ ¥9,800[3]

파일:attachment/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jpg
1. 설명2. 역사
2.1. 개발2.2. 출시 이후
2.2.1. 차세대 게임기 전쟁2.2.2. 게임 가격 공세
2.3. 기타
3. 사양4. 특징5. 발매된 게임6. 포켓 스테이션
6.1. 사양6.2. 대응 게임
7. PS one8. 기타9. 관련 문서

1. 설명

닌텐도의 실수로 태어난, 닌텐도 천하를 무너뜨린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첫 게임기이자 첫 거치형 게임기이다. 1994년 12월 3일, 일본에 처음 출시되어 2005년까지 판매되었고, 한국에는 카마엔터테인먼트를 통해 1997년 3월에 정식 출시되었다.[4] 총 판매량은 1억 249만대. 경쟁 기기는 닌텐도 64세가 새턴이다.

약칭은 PS, 플스 등으로 흔히 불리며 게임 매거진 혼자서 프레스라는 약칭을 사용했지만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약칭은 "프레스테(プレステ)"[5]. 일본에서는 노는 역이란 뜻인 "아소부에키(遊ぶ駅)"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플스"나 "노는역"이라고 부른다. 뜻의 유래는 워크스테이션에 놀이(Play)이다. 영어권에서는 PS, PS1, PSX.[6]

파일:external/img1.wikia.nocookie.net/PlayStation_1_Logo.png
PS1의 로고.


PS1의 시동화면. 많은 플레이스테이션 팬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플레이스테이션 4의 테마에 PS1의 시동음이 들어갔다! Playstation Store에서 받을 수 있다.(PS4용이고, PS4 본체에서 받거나 PC등에서 웹으로 접속해 미리 구매(무료)할 수 있다.)

2. 역사

2.1. 개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NES-CD_add-on.jpg
슈퍼 패미컴 용 플레이 스테이션의 컨셉아트
탄생의 배경은 경쟁사인 닌텐도와 관련이 있는데, 1989년 당시 닌텐도에서는 슈퍼 패미컴의 다음 세대 게임기를 준비해야 한 무렵이고 1989년 10월부터 슈퍼 패미컴CD 드라이브 부속기기(메가 CD 같은)를 개발하고자 소니 전자와 협력하고 있었다. 이 때 개발중이던 슈퍼 패미컴용 CD 드라이브에 닌텐도에서 붙인 코드네임이 바로 플레이 스테이션.[7] 당시의 닌텐도에서는 슈퍼 패미컴용 롬 카트리지를 독점으로 생산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소니 전자 측에서 CD 기반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 권리를 보유하기를 바라자 닌텐도는 수익 감소를 우려했다. 실제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아라카와 미노루는 미국 시장에서 CD-ROM이 들어간 멀티미디어 PC가 약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위기감을 느껴,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에게 찾아가 소니와의 제휴를 중지하도록 설득했다. 1991년 6월 1일, 시카고의 여름 가전 박람회(CES)에서 소니에서 슈퍼 패미컴 호환 카트리지 및 CD-ROM 확장 기기이던 슈퍼 패미컴 CD-ROM 시스템, 플레이 스테이션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에 소니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당시 CD-ROM 관련 소니의 라이벌이던 필립스와 계약을 체결했음을 발표했다. #[8][9] 닌텐도와 필립스의 계약은 CES의 발표 며칠 전에 이미 소니전자의 CD-i 사업 부서를 통해 소니 그룹에게는 알려졌음이 훗날 밝혀졌으나, 당시 닌텐도와의 협약을 준비하던 소니 측 책임자였던 쿠타라기 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가 뉴스 기사를 통해 그 사실을 접하게 됐다. 소니 그룹은 항의했지만 닌텐도는 “계약은 살아있어 소니가 '슈퍼 패미컴 CD-ROM 어댑터'를 발매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닌텐도는 다른 규격을 채용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화가난 소니 그룹에서는 닌텐도 다음으로 점유율이 높던 세가에 차세대 게임기를 공동 설계하려고 했다. 1991년에 소니에서는 세가에 CD의 라이선스를 줬고, 세가에서 메가 CD를 출시해 친분을 쌓고 있었다. 소니에서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 토머스 칼린스키에게 접촉해, 차세대 게임기 하드웨어 시스템 사양과 하드웨어 판매 손실 분담, 수익 분배에 대한 온건한 계약 조건[10]을 제안했고, 칼린스키 사장은 이를 듣고 제안서를 작성해 이사회에 공동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세가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과 이사회에서 "바보 같은 생각이로군. 소니는 하드웨어를 만들 줄도 모르고, 소프트웨어도 만들 줄도 모르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하도록 하고 싶어하는가?"라며 자체 개발로 선회하면서 이것도 실패.#

1992년 6월 24일 게임기의 사업의 진퇴를 결정할 소니 그룹 최고 경영회의에 나타난 쿠타라기 켄은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도 좋습니까? 소니는 평생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我々は本当にこのまま引き下がってもいいのですか。ソニーは一生笑いものですよ。)"라고 발언하며, 고화질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가정용 게임기의 시험 제작기는 거의 완성되어 있고, 전용 고성능 반도체 칩도 개발할 계획이며 이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과 비교해 리얼하고 박력있는 영상을 본 사용자들이 반드시 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원 전원의 반대에도 오가 노리오 사장이 진행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게임기를 만들기로 결정하는데 이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이다.[11]

닌텐도와 소니 두 회사는 슈퍼 패미컴의 PCM 음원칩을 거래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관계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협상을 지속한 결과 1992년 말에 슈퍼 패미컴의 게임을 플레이 스테이션에 이식할 수 있는 권리도 줬으나 수익의 대부분은 닌텐도가 갖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소니가 독자적인 3D 게임기를 만들기로 계획한 것은 1993년 초부터였다. SCE가 반도체 설계 업체인 LSI logics와 CPU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1993년 봄이었기 때문이다.

소니에서는 서드 파티를 모으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게임 업체 등 관련 기업을 돌았지만 “좋은 하드웨어인 것은 알겠지만 게임기 사업은 삼가는 것이 좋다"던가 “300만대를 팔면 고려해보겠다”는둥 냉대를 받았다. 당시에 남코가 최초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의 참여하기로 하며 SCE와 밀월 관계를 갖게 된다. SCE는 플레이스테이션 시스템 라이센스를 남코에게 내줬으며, 남코는 이를 기반으로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 11을 개발했고, 이 기판으로 철권, 철권 2, 소울 엣지 등을 개발했다. 이에 대해 당시 SCE의 초대 회장이었던 마루야마 시게오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300만대 보급 전망이 있다면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주저하는 가운데, 남코만이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을 줬다." 며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이런 게임 회사들의 분위기에 전환점이 되는 기회가 발생하는데 1993년 10월 세가에서 출시한 버추어 파이터의 대성공이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 훗날 SCE 초대 회장이며 그룹의 이사였던 마루야마 시게오나 초대 사장이었던 토쿠나카 테루히사는 플레이스테이션 성공에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의 성공 덕분이 있음을 언론이나 서적을 통해 회고하고 있다. 1993년 8월, 31회 오락기기 박람회[12]에서 첫 시연회를 가졌을 때 게임 회사들에게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1993년 10월 28일, SCE는 플레이스테이션 시연회를 가졌다. 이 시연회에서 쿠타라기 켄은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로토타입으로 3D 데모를 시연했는데 아래의 동영상이었다.



이 데모가 게임 회사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을뿐 아니라, 150만엔이라는 저렴한 개발 장비 가격, 프로그래머의 개발 부담을 덜기 위해 라이브러리 구축을 통한 개발자 지원 등을 통해 SCE는 1994년 여름까지 플레이스테이션에 게임을 내놓기로 계약한 서드파티 게임 회사를 200곳 넘게 확보할 수 있었다.

2.2. 출시 이후

2.2.1. 차세대 게임기 전쟁

우수한 서드 파티를 뒤에 업고 세가 새턴 다음으로, 닌텐도 64보다 빠르게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가 새턴닌텐도 64와 정말 피 터지게 경쟁했다. SCE, 세가 둘 다 닌텐도 64가 나오기에 앞서 상대를 끝장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95년까지만 해도 닌텐도에서도 "닌텐도 64를 천천히 발매해도 금방 따라잡겠지."라고 판단했을 정도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출시부터 이듬해인 1995년까지는 게임계에서 별 것 아닌 존재였다. 첫 100만 대, 200만 대 판매를 달성한 것도 세가 새턴이다. 주요 게임 언론들은 이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차세대 게임기 전쟁이라 불렀는데 이 단어는 당시 SCE의 마케팅 총괄 부장이었던 사에키 마사시가 만들어낸 단어였다.

하지만 듀얼 CPU를 비롯하여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에 비해, 매우 간단한 구조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생산 단가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당시 적자 행진중이었던 소니 그룹의 임원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하 공세를 펼쳤다. 1994년 11월 22일, 세가에서는 세가 새턴을 49,800엔에 출시했고, 출시 6개월간 5,000엔 인하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SCE에서는 12월 3일에 플레이스테이션을 39,800엔에 출시했다. 1996년까지 세가 새턴은 일본 시장에서 20,000엔에서 가격 인하를 더 할 수 없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1996년에 19,800엔까지 인하했으며, 이듬해에는 18,000엔으로 인하했다. 북미 시장에서도 새턴의 시장 선점을 위해 E3 1995 게임쇼의 세가 컨퍼런스에서 $399의 가격으로 즉시 발매를 발표했을 때, SCE 측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세가 새턴보다는 조금 늦게 출시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299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해 청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13][14] 이듬해 E3 1996 게임쇼에서는 SCE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199로 즉시 내리면서, 세가 새턴은 생산 단가면에서 확연히 불리했음에도 가격 인하를 해야 했다. 개발 환경면에서도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보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우세를 점했기 때문에, 게임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닌텐도 64는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상당히 큰 폭으로 높지만, 경쟁 기종인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보다 1년 6~7개월이나 늦게 출시해 세가와 SCE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데다가, 저장 매체로 롬 카트리지를 고집하면서 그 당시 게임의 대용량화 추세를 맞추는 게 불가능해졌다. 스퀘어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6 발매 직후부터 파이널 판타지 7을 3D 기반 RPG로 기획하고 있었으나[15], 빈약한 용량의 롬 카트리지로는 택도 없기 때문에 이는 스퀘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16][17]

그리고 SCE에서는 이 틈을 타 소니 그룹의 출자를 통한 파이널 판타지 7 닌텐도 투자금 변제 및 스퀘어의 라이선스 비용 최혜 대우, 일본 내 스퀘어 독자 유통망을 통한 게임 판매를 인정하면서[18], 1996년 1월 12일에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으로의 이적을 발표했고, 그 이후 파이널 판타지 7의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19] 파이널 판타지 7 발매 이전인 1996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승리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지고 있었지만 파이널 판타지 7가 대히트를 치면서 닌텐도까지 넘어서는데 성공하였고, 판매 대수 면에서 2위인 닌텐도 64와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거치형 콘솔 시장을 정복했다.

E3 1997 게임쇼 2달 전에 소니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북미 시장 가격을 $149로 또 내렸고, E3 1997에서 세가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패배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2.2.2. 게임 가격 공세

SCE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은 당시 CD-ROM 매체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당시 CD-ROM을 매체로 한 게임기는 PC 엔진을 시발점으로 메가 CD, 3DO, 아타리 재규어등 많았음에도 게임기 판매로서는 상업적으로 모두 실패했었다. 그러나 소니는 CD-ROM의 장점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롬 카트리지는 반도체로 이뤄진 기판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생산 단가가 비쌌으며, 이는 게임 회사들에게 고스란히 로열티 부담으로 돌아왔다. 또한 반복 생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판매 부진시를 대비한 보험료도 게임 회사들에게 받고 있었다. 또한 닌텐도는 1980년대부터 우호적인 도매상 연합이었던 초심회를 통해 유통까지 틀어쥐고 있는 상태였다. 게임 회사들에게 이렇게 청구된 비용들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게임 가격이 1만엔이 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이후이며 슈퍼 패미컴의 황혼기였던 1995년 당시 인기작이었던 크로노 트리거, 택틱스 오우거, 로맨싱 사가 3, 드래곤 퀘스트 6 전부 출시가가 11,400엔이었다. 이런 높은 가격은 중고 게임 매매 시장을 거대하게 만들어, 큰 인기가 정작 게임 회사에게 이익으로 환원되지 못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에 비해 CD-ROM은 기술적으로 롬 카트리지에 비해 용량도 우월했지만 생산 단가면에서도 비교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며 반복 생산이 용이했다. 그리고 소니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음악 CD-ROM을 오랫동안 유통한 경험이 있었다. 이 유통 구조와 노하우는 SCE에 그대로 이식됐다. SCE가 도매업체 역할을 해 소매점들과 직접 게임 공급 계약을 맺었고, 소매점의 추가 주문시 6일 내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게임 회사들에게는 파격적인 로열티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SCE는 게임 가격에서도 가격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경쟁 게임기였던 세가 새턴의 동시 발매작인 버추어 파이터가 8,800엔, 미스트가 7,800엔에 출시된 반면, 플레이스테이션 동시 발매 게임이었던 릿지 레이서를 비롯해 투신전, 철권 등의 초기 게임들은 대부분 5,800엔에 출시됐다. 세가도 SCE의 게임 가격 공세로 인해 바로 이후에 출시된 클락워크 나이트나 데이토나 USA 등의 게임들은 비슷한 가격에 출시해야 했다. 또한 SCE의 게임 가격 공세에 시달려 1995년부터 부진을 면치 못했던 닌텐도 역시 1996년초 게임 가격을 7,800엔으로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거대해진 중고 게임 매매 시장에 대한 대책으로 출시한지 일정 시간 지난 게임은 염가판을 출시했다. 당시 SCE에 재직했으며 아크 더 래드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아카가와 료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 요소로 이 게임 가격 혁명을 꼽고 있다.

아래의 비교표를 통해 게임 가격의 극명한 변화를 알 수 있다.
슈퍼 패미컴 플레이스테이션
드래곤 퀘스트 6 (11,400엔) 드래곤 퀘스트 7 (7,800엔)
파이널 판타지 6 (11,400엔) 파이널 판타지 7 (6,800엔)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10,900엔)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5,800엔)

하지만 SCE의 유통 방식에 문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게임의 초도 물량을 게임기 회사가 정하는 관례는 SCE도 여전했다. 이에 반발했던 워프사의 이노 켄지는 에너미 제로 사건을 터트렸다. 자세한 것은 D의 식탁 항목을 참고할 것. 이 사건 이후로 SCE는 초도 물량 출하량을 제작사에게 일임하게 됐다. 97년부터는 SCE가 아닌 코나미, 스퀘어를 비롯한 게임 대기업들을 선두로 자체 유통도 시작됐다.

또한 SCE는 어느 소매점에서도 같은 가격에 게임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정가 판매를 목표로 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 소매점에 정가로 판매하도록 압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 그리고 1998년 1월 20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배제 권고 명령이 떨어졌다. SCE는 해당 혐의를 부인했지만 2001년 8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 심결에서 사실이 인정됐고, 동년 11월 20일에 결국 SCE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배제 권고를 수락했다.

2.3. 기타

파일:external/nintendoeverything.com/snes-cd.jpg
닌텐도와 협약 시절의 프로토타입이 발견되었다. 다만, 기기에 닌텐도의 로고가 일절 없고 PlayStation이라는 표기 방식과 폰트도 이후 SCE에서 발매된 버전과 같다는 점을 볼 때 계약이 결렬된 직후에 새로 설립된 SCE에서 마개조를 시작한 버전으로 보인다.

2016년 7월에 이 기기의 구조 및 스펙이 밝혀졌다! 참고 본체에 별도로 추가된 CPU나 램 등의 칩은 없고, 대신에 함께 유출된 팩에 CD 구동 펌웨어가 들어있는 롬과 CD-ROM에서 게임을 로드하기 위한 확장메모리 2Mbit(256KB), 게임 세이브용 64Kbit(8KB), 그리고 세이브 데이터 보존용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곳을 참고하자.

3. 사양

CPU 소니/LSI logic Coreware CW33300 커스텀 32비트 33.8MHz (MIPS I R3000A 호환)[20]
GPU 소니 커스텀 32비트 GPU 53.2MHz[21]
사운드 소니 커스텀 16비트 SPU[22]
메모리 메인 메모리 : 2MB EDO DRAM
비디오 메모리 : 1MB 16MHz VRAM[23]
사운드 메모리 : 512KB EDO DRAM
CD-ROM 버퍼 : 128KB
미디어 CD-ROM 2배속
단자 입출력 콘트롤러×2
MEMORY CARD×2
AV MULTI OUT×1
S-VIDEO OUT×1[24]
AV 다이렉트 OUT×1[25]
병렬 포트×1[26]
직렬 포트×1[27]
규격 260㎜×185㎜×45㎜, 1.5㎏
193㎜×144㎜×38㎜, 550g(PS one)

4. 특징

  • 게임 데이터의 세이브를 위해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한 메모리 카드를 기본으로 채용하었다.(물론 별매도 가능.) 이전 세대의 슈퍼 패미컴에도 롬팩 카트리지에 SRAM을 내장해 게임 데이터 세이브를 지원하거나 아스키에서 만든 터보 파일 등의 주변기기가 있지만, SRAM은 건전지를 이용한 탓에 전원이 끊어지면 데이터가 사라진다는 한계가 있고, 터보 파일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주변기기라서 몇몇 마니아들 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역시 SRAM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기였다. 이에 비하면 메모리 카드는 절대로 세이브가 날아가지 않는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 물론, 사고가 나거나 정말 오래 사용하거나 하면 날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카드 사이에서 얼마든지 세이브를 옮길 수 있으므로 훨씬 안정적이고, 세이브를 옮길수 있어서 편리한 점이 매우 많다. 그러나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이상한 던전 같은 게임에서는 "강제 세이브"라는 전통이 무너지게 되었다.
  • 이 메모리 카드의 용량은 128KB(1Mbit)이고 가격은 1800엔이었기 때문에 역사상 모든 저장 매체를 통틀어서 저장 용량 대비 가격이 가장 비싼 매체였다. 블럭 단위로 게임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1 블럭의 용량은 8KB였다. 그 중 1개의 블럭은 메모리 카드 내부 관리용으로 시스템에 의해 예약돼 있기 때문에, 총 15개의 블럭을 게임 저장용으로 쓸 수 있었다. 게임에 따라 1~2개의 블럭을 사용했다.
  • 시대를 먼저 내다보고 3D 기능에 집중하여 시대를 선도했다. 실제로 워크스테이션급 성능이라는 말도 세일즈 포인트였고 성능도 가장 우수했다. 세가 새턴도 개발사의 역량만 받쳐 준다면 PS급의 3D 게임이 가능하지만, 만들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한 게임의 비율은 적은 편이다. 거기다 안정적으로 사용한 게임은 훨씬 더 적다. 이것 때문에 남코스퀘어가 PS 진영으로 온건가 싶다. [28]
  • 반면 메모리 용량이 딸리고 확장도 불가능한 관계로[29]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적으로 더 다양한 2D 이펙트 기능을 가지고 있고 처리속도도 더 빠른데다 확장 메모리를 이용하여 스프라이트 데이터를 추가로 불러들이는 것이 가능한 새턴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CD-ROM의 로딩시간도 있다 보니 슈퍼패미컴 게임도 그대로 이식하지 못하고 로딩이 추가 되었으며, 메모리 용량 문제 때문에 프레임 삭제로 떡칠된 캡콤이나 SNK, 코나미의 인기 2D 아케이드 게임들은 PS 이식판이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30]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3D에 있었기에 이런 약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처럼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시도한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31] 또한 3D기술을 접목시킨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과 같은 뛰어난 게임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때문에 '2D가 강한 새턴'에 다운 이식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초기에는 단순히 십자 버튼만 있는 패드가 기본이었으나 닌텐도에서 닌텐도 64용 아날로그 스틱과 진동팩 등을 내놓고 크게 호평을 받자 이걸 카피해서 아날로그 패드를 내놓았고, 1997년 이후 기능을 개선해서 듀얼쇼크를 내놓았다. 아날로그의 조작감은 떨어져도 양 손에 서로 다른 진동을 전해주는 듀얼쇼크 자체는 그야말로 쇼크 그 자체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SX-Original-Controller.jpg 파일:external/78a1d47705030f69b72d46d8ea6bb2560dd0f6e7474bf3a1cd14e6a9a8aa685f.jpg
초대 패드 듀얼쇼크
  • CD-ROM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최대 용량은 650~700 MB[32]. 덕분에 을 기반으로 한 슈퍼 패미컴이나 닌텐도 64에선 거의 못하는 음성이나 동영상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PC 엔진/메가 드라이브는 확장구조로 CD 롬을 지원하며, CD를 기본으로 지원하는 기기가 있지만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대중화된 것. CD 롬 관련 비용이 내려진 것도 한 몫했다. 덕분에 SFC 후기에 1만엔을 넘어간 게임가격이 5800엔 수준으로 낮아지는데에도 공헌했다. 심지어 CD-ROM을 몇 장씩 쓰는 게임도 등장했다.
  • CD는 검은색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CD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33]
  • 본체는 주로 각종 단자를 제거하는 형식으로 계속적인 비용 절감형 리비전이 가해져 1000번부터 시작하여 9000번까지 새로운 모델이 발매되었다. 가격이 낮아진 만큼 새로운 옵션을(듀얼쇼크 등) 기본적으로 추가 해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최종적으로 TV 입력 단자와 확장 단자가 사라졌다. 또한 공정 개선으로 후기 기종에서 오브젝트나 이펙트가 좀 더 나은 경우도 있다고….
  • 소니타이머를 증명하듯이 디스크 인식률이 점점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렌즈를 움직이기 위한 레일이 플라스틱 재질인데다 전원부와 가까이 위치하여 쉽게 마모되기 때문이다. 렌즈 양쪽의 레일이 모두 플라스틱인데, 한쪽 레일에 더 많은 하중이 걸려 더 빨리 마모된다. 마모가 진행됨에 따라 렌즈가 기울어져 점차 디스크 인식률이 떨어지는데, 초기에는 동영상 씬에서 스킵되는 정도의 증상을 보이고 심해지면 아예 디스크 인식을 하지 못하게 된다. 5000번 이하의 구형 기종은 모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레일을 금속 및 나일론 재질로 변경하고 렌즈 유닛 위치를 변경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게임기를 세로로 세우거나 뒤집으면 수평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시적으로 인식률이 개선된다. 본체를 분해할 수 있는 유저들은 마모된 렌즈 레일에 얇은 철판을 붙이거나 레일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커터나이프 날을 붙여 해결하기도 했다.
  • 개발자용 기종으로 연구소나 개발사급에만 판매한[34] 디버깅스테이션이 있으며 이 쪽은 코드프리에다가 동시에 4개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8MB 메모리를 사용한다는 이점이 있다. 기체가 푸른색을 띠고 있어 일명 블루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불렸다. 이 디버깅스테이션으로 개발한 게임은 완벽한 개별의 게임으로써 구동이 가능하다.
    또한 개발자 양성을 위해 한 때 넷 야로제 프로젝트를 진행, 검은색 무광 도색이 된 넷 야로제 플레이스테이션을 소니 본사를 통해 직접 판매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서류를 구비해서 국가별 소니 본사에 제출하면 심사 후 구매가 가능했으며 본체뿐만이 아니라 개발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등까지 별도로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에 자비가 없었다. 디버깅스테이션과 비교해봤을 때 넷 야로제의 차이점은 일반 가정용과 동일한 2MB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액세스카드로 메모리 카드 슬롯을 하나 사용하기 때문에 개발환경에서는 메모리 카드를 1개 밖에 쓸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또한 넷 야로제로 개발한 게임은 반드시 부트 CD와 병행해야만 구동이 가능하다.
    컴링크 카드와 액션 리플레이를 이용하면 일반 플레이스테이션로도 게임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당연히 프로페셔널이나 넷 야로제에 비하면 많은 제약이 따랐다. 현재 디버깅스테이션은 유니크, 넷 야로제는 레어급 아이템이 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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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깅스테이션 넷 야로제
  • 기본 개발 언어는 C이나, 신기하게도 C++ 코드를 컴파일러에 넣어도 정상 컴파일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소니에 문의하자 '이상하네요 우리도 컴파일러 제작의뢰할 때 사양이 그냥 C였는데...'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5. 발매된 게임

6. 포켓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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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단은 포켓스테이션(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파일:pocketstation.jpg
포켓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용 휴대용 게임기 형태의 메모리 카드이다. 1999년 1월 23일에 출시됐다. 2002년에 단종됐으며 대략 500만개를 판매했다. 대응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의 경우 플레이스테이션으로부터 전송받은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배터리 소모가 매우 빠른것이 단점이다.

6.1. 사양

CPU ARM7T 32비트 33.8MHz CPU
메모리 2KB SRAM
스토리지 128KB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 32×32 흑백 LCD
사운드 10비트 PCM
통신 적외선 양방향 통신
스위치 5개의 입력 버튼과 1개의 리셋 버튼
배터리 CR2032 리튬 버튼 배터리(3V, 225mAh)
규격 64㎜×42㎜×13.5㎜, 30g

6.2. 대응 게임

7. PS one

파일:attachment/psone.jpg
PSone

2000년 7월 7일[국내] 소니에서 PS one을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동일한 성능에 크기를 1/3로 줄인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2005년 3월에 전 플레이스테이션 모델이 생산 중단될 때까지 2815만대를 팔았다. 일본에 491만대, 북미 지방에 1270만대, 유럽에 1126만대를 팔았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다르게 PS one에서는 리셋 버튼이 사라진게 특징이다. PS one을 리셋하기 위해서는 전원 버튼을 껐다 켜는 방법 밖에 없었다. 또 전원 버튼에 RESET이라고 써 있기도 했다. 또한 전원부가 외부로 빠져, 어댑터를 통해 연결됐다.

주변기기로 아예 부착용 화면[36]과 스피커가 같이 발매되었으며, 휴대용 플레이를 위한 차량용 시거잭 전원부까지 발매되었다.

8. 기타

플스 CD를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CD 플레이어에 악영향을 끼치는 관계로 1번 트랙에는 음악 트랙으로 경고 메시지[37]같은 걸 넣었는데, 몇몇 작품같은 경우에서는 이 점을 노려서 꽤나 재미있는 경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역습의 샤아 PS판을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아무로와 샤아가 투닥거릴 때 나나이가 말리던 중 카미유가 나와서 제타 건담 마지막의 명대사를 날리면서 종료된다.(참고)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소니의 노력도 있었다.
초기 플레이스테이션 모델은 별도의 복사칩 없이도 불법복사 CD를 돌리기 위해서 볼펜스프링이니 황금축이니 하는것을 기기사이에 끼우고 CD 인식시간의 헛점 사이를 노리는 스왑스타일의 복돌꼼수가 성행했다.[38] 그러나 모델이 개량되면서 그 방법은 막히고, 플레이스테이션에 복사 CD를 달수있도록 정품인식을 우회하는 개조칩(모드칩)이 생겼는데 막 생길때만해도 CD 복사기술은 대중적이지 않았고, 칩도 조악해서 오히려 멀쩡한 플스를 날려먹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모드칩 초창중기인 철권 2시절부터 모드칩을 다는 복돌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보따리상과 용팔이들 사이에 담합한 직수제품 창렬장사가 큰 요인을 차지했다.[39]

그러다가 모드칩도 안정화되면서 복사시디를 개나소나 돌리기 시작했을때, 소니측에서는 개량을 시키면서 모드칩 달은 플스는 복사시디 인식을 고자로 하는 식으로 모드칩과 인식방지간의 술래잡기로 들어선다.

PS 말기에 접어든 1998년경에 모드칩을 깐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몇몇 복사방지 루틴이 강화된 당시 막 나온 신작게임의 복사 CD를 돌리려면

파일:external/consolecopyworld.com/protected.jpg
일본판
강제종료되었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일:external/372dc2d663d8448c3d774612e78e59ba60fca9243dbf4360e4a1595c466250da.jpg
북미판
소프트웨어가 종료되었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888-780-7690으로 전화해주십시오.


이러한 화면이 보통 떴다.[40]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조치에 불과해서 이것도 복사업자들에 의해서 뚫리는것은 시간 문제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복사방지루틴의 선구자로 알려진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는 불과 1주일도 안되어서 용팔이 복사업자에 의해 뚫렸고(...) 파판8도 한동안 애를 먹긴 했으나 결국 용팔이 및 중국/대만 업자들에 따라 뚫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부 게임데이터의 포맷이 다른 파일이 되어있어서 정품과 게임데이터 구성이 다소 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도 초반에 MM(Multi-Mode)3칩의 등장으로 위의 이야기는 옛말이 되버렸다...

파일:external/www.superufo.com/ps-x-change.gif
아예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동작하는 PS-X Change2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모드칩에 밀려 알려지진 않은듯 하다(...)

에뮬레이터 등으로 돌리면 N64나 새턴보다 잘 돌아간다. 에뮬레이션의 특성상 게임마다 속도가 천차만별이며, 비교적 요구사양이 낮은 블러디 로어 시리즈, 철권부터 높은 요구사양의 MGS까지 다양하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나 버스트 어 무브같은 일부 리듬게임은 에뮬레이팅 시의 취약점이 되곤 하는 입력 지연에 민감해 PS3/PSP의 공식 PS 에뮬레이팅에서도 꼭 박자가 어긋나기 때문에 해당 게임을 플레이할 때 PS 실기가 필요하다.

여담으로 1999년에 나온 광고가 매우 괴랄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이 느껴질 수 있으므로 링크로 대체. 어딘가 묘하게 뒤틀려 보이는 얼굴을 한 소녀가 나오는 광고이다. 아래의 내용을 대충 해석하자면 내가 못하는 걸 남들이 대신 이뤄주거나 내가 뒤쳐지는걸 신경쓰지 말고 게임이나 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즐겨보자는 뜻.

Let me tell you what bugs me of the human endeavor
사람의 노력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말해줄게
I’ve never been a human in question, have you?
나는 여태 이 질문에 의문을 갖는 인간을 본적이 없어, 넌 어때?
Mankind went to the moon
인류는 달에 착륙했지만
I don’t even know where Grimsby is
난 그림스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 [41]
Forget progress by proxy
그런 진보따윈 대체품으로 망각해버리고
Land on your own moon
너만의 달에 착륙하러 떠나봐
It’s no longer about what they can achieve, out there on your behalf
남들이 너 대신 불가능한걸 이뤄주는걸 지켜보지 마.
But what we can experience
대신 우리는 경험할 수 있어
Up here and of our own time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바로 여기서
And it’s called mental wealth
정신적 부유함을 말이야.

링크
배경에 이상한 잡음이 깔려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CF 감독이 영국의 비주얼아티스트인 크리스 커닝햄이다.[42]

영국의 채널 BBC의 프로그램인 닥터후에 나오는 조연 미키가 비행선 조작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배웠다고 한다(...).

후기 시리즈로 플레이스테이션 2, 플레이스테이션 3, 플레이스테이션 4가 나오면서 첫번째 플레이스테이션인 이 기기는 종종 플레이스테이션1, 약칭 PS1로 불린다.[43]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하면 시리즈 전체를 부르는 것으로 알기도.

아케이드 호환 기판으로는 SYSTEM 1X 시리즈와 타이토 FX 시스템, 소니 ZN 기판이 있다. 몇몇 비마니 시리즈에 쓰인 시스템 573 기판도 이쪽 기반.

9. 관련 문서


[1] 카마엔터테인먼트에서 SCE의 정식 라이센스를 받진 못했지만 해외 유통상을 통해 수입해 판매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밀수 제품 판매가 성행하고 있었고(1995년 여름부터 이미 용산에서 밀수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기사), 너무 비싼 가격으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에 SCEK에서 PS one을 판매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시대가 되기도 했거니와, 플레이스테이션 2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가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극소량만 판매됐다.[2] 1996년 5월 16일 → 1997년 3월 3일 → 1998년 8월 30일 → 1999년 8월 23일 → 2002년 5월 15일에 인하했다. 2000년 9월 19일 PS one을 $99에 출시하기도 했다.[3] 1995년 7월 21일 → 1996년 3월 28일 → 1996년 6월 22일 → 1996년 11월 15일 → 1997년 11월 13일 → 1998년 12월 1일 → 2001년 9월 12일에 인하했다. 2000년 7월 7일 PS one을 ¥15,000에 출시하기도 했다.[4] 구닥동쪽 댓글을 보면 유통자체는 순정으로 되어있는데 소매점에서 모드칩을 장착하여 판매했다고 한다.[5] 세가 새턴과의 경쟁구도 시절, 새턴 진영에서 이걸 두고 일회용을 가리키는 츠카이스테(使い捨て/쓰고 버려)를 빗대어 플레이하고 버리는(プレ捨て) 일회용 게임기라면서 깐 적이 있다. 이에 대해 SCE진영에서는 '열폭하는 것 자체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쿨하게 무시했다[6] 코드네임. 같은 이름의 플레이스테이션 2 기반의 비디오 레코더가 따로 있는데, 이는 일본에만 발매되었다.[7] 닌텐도 슈퍼 패미컴을 위한 소니 전자의 CD-ROM 부속기기는 '플레이' 한 칸 띄우고 '스테이션'임에 유의하자.[8] 그러나 필립스에서 만든 CD 드라이브 부속기기는 발매 직전 닌텐도에서 그만두어 만들던 건 출시 못하면서 약간 남은 것이 CD-i로 이어졌다.[9] 더욱 간단하게는, 닌텐도에서 자사의 적을 자사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소니에서 원래부터 게임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닌텐도와의 계약을 통해 기술을 얻어가려다가 닌텐도에서 그것을 눈치채고 계약을 파기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낭설일 가능성이 높다. 소니 그룹 대부분의 핵심 임원들은 닌텐도와의 협력이 엎어진 뒤에도 쿠타라기 켄이 오가 노리오 소니 사장을 설득하기 전까지 게임기 사업 자체를 전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0] 세가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세가에서, 소니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소니에서 전부 갖는 것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게임 관련 세가의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수했으므로 세가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11] 출처: SONY의 선율(나의 이력서), 오가 노리오, 출처 2[12] Amusement Machine Show. 현재의 Japan Amusement Expo이다.[13] 소니의 1995년 E3 키노트는 올라프 올라프슨의 25분 남짓 플레이스테이션 발표 도중, 당시 SCEA의 사장이었던 스티브 레이스를 등장시켜 299만 얘기하고 사라지는 장면으로 유명하다.#[14] 이 때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토머스 칼린스키는 1995년 3월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95년 9월 2일 토요일(Saturday → Saturnday)에 발매할 계획이라고 인터뷰를 했지만, 세가 본사에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먼저 시장 선점을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베스트바이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점에 미리 공지도 하지 않고 발매한 병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미국 소매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유는 북미 시장의 세가 게임기는 1995년까지는 제네시스(메가 드라이브)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가 새턴의 높은 개발 난이도에 따른 동시 발매작의 부족으로 시장 선점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이는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15] 스퀘어에서는 SGI 오닉스와 인디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해서 만든 'Final Fantasy VI : The Interactive CG Game'이라는 3D 데모 영상을 SIGGRAPH 1995에 출품한 적이 있다.[16] 롬 카트리지는 이름 그대로 현재의 Mask ROM과 흡사한 구조이나 당시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술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용량화가 힘들어 현재까지도 거치형 게임기에서는 광학 디스크가 저장장치로 사용되고 있다.[17] 사실 이 문제는 닌텐도 슈퍼 패미컴아타리 재규어 들어오면서 불거진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회사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압축 해제 확장칩들을 롬 카트리지에 내장해 발매하기도 했다. 닌텐도에서도 S-DD1이라는 압축 해제 확장칩을 개발하기도 했고, 이 칩은 대표적으로 스타 오션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 알파에 내장됐다. 용량을 키울 수는 있으나 네오지오의 카트리지처럼 슈퍼패미컴의 본체만큼 커지고, 두꺼워지고, 비싸진다. 실제로 네오지오 게임의 경우 하나에 30만원 이상이었다.[18] 이것으로 SCE와 스퀘어의 합자회사인 디지큐브라는 기업이 1996년 2월에 설립됐다. 처음에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유통했으나 책, 굿즈, 음악 등의 유통으로 넓혀갔다. 2003년에 파산했는데, 스퀘어와 에닉스 합병 직전 에닉스와의 중복 사업부문을 정리하기 위해 파산시켰다는 후문이 있다.[19] 이로 인해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은 크게 화를 내며 다시는 닌텐도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퀘어에서는 한동안 휴대용 게임을 원더스완에 내야만 했고, 당연히 판매량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이 관계는 2002년까지 지속되다 "스퀘어와는 계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약을 검토할 여지도 없다. 장래적으로도 가능성은 낮다."라는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의 발언을 계기로 화해하면서(없다가 아니라 낮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야마우치 회장의 직설적인 언행을 감안해 보면 예전과 달리 계기만 생긴다면 계약할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로소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그 이후의 엄청난 판매량을 보인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낼 수 있었다.[20] CPU와 코프로세서(Control Processor)외에 지오메트리 연산용 Geometry Transformation Engine이 장착됐다. 텍스처 매핑시 최대 초당 18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고, 1/60초간 최대 4000개의 8×8 스프라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MJPEG와 H.261 비디오 디코더 기능을 수행하는 MDEC도 장착됐다.[21] 렌더링 및 스프라이트 프로세서. 해상도 256×224에서 최대 640×480까지 지원한다. 그 밖에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22] 최대 2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kHz 16비트 ADPCM 및 PCM, MIDI 지원.[23] VRAM은 비디오 메모리의 준말이 아닌 1980년대 중반에 IBM에서 개발한 DRAM 규격들의 하나인 VRAM을 가리킨다. 5500번대 이후부터는 더 빠른 83MHz, 100MHz SGRAM이 장착됐다. PS one은 GPU에 SGRAM을 내장시켰다.[24] 첫 출시 형번인 1000번에만 존재[25]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26]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 5500번대, 7000번대[27] PS one 제외 모든 모델[28] 남코 같은 경우에는 이미 SCE와 협업을 약속했고, 철권 시리즈를 비롯한 자사 아케이드의 3D 게임 자체를 플레이스테이션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추가비용이 드는 세가 새턴을 볼 필요가 없었고, 스퀘어 같은 경우에도 3D 기능이 좋은 PS의 장래성이나 소니에서 제시한 엄청난 혜택을 보고 파이널 판타지 7의 PS 진영 참가를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회사는 닌텐도서드파티들에 대한 횡포로 인해 닌텐도와 큰 불화를 겪고 있었다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반다이 남코스퀘어 항목 참조.[29] 메인 2 MB, 비디오 램 1 MB. 세가 새턴은 메인 램 2 MB, 비디오 램이 1.5 MB인데다가 더해서 확장램팩으로 1~4 MB를 더할 수 있다.[30] 캡콤의 배리어블 시리즈 이식판은 플스의 메모리로 캐릭터 네 명분의 데이터를 동시에 담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태그 시스템이 삭제됐다.[31] 특히 원래 2D 스프라이트로 되어 있는 타격 이펙트를 3D로 교체한 건 참신한 시도로 손꼽힌다. 덕분에 메모리 용량이 좀 널널해질 수 있게 됐다. 또한 뒤로 걷는 모션을 앞으로 걷는 모션과 똑같이 만든 장기에프 등을 제외하면 프레임 삭제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32] 원래 CD-ROM은 650 MB 규격으로 나왔으나 이후 트랙을 좀더 촘촘하게 배치하여 기록 용량을 50 MB 더 올린 규격이 새로 나왔다. 이 두 규격은 드라이브 교체 없이 호환이 가능하므로 PS에서도 무난하게 700 MB CD 인식이 되었다.[33] 그래서 초대 플레이스테이션 CD는 정품과 짝퉁을 구분하기 쉽다.애초에 짝퉁이 퍼져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34] 그나마도 가격이 그 때 그 때 라이선스에 따라 요동치던….[국내] 2002년 2월 22일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불법복제 디스크때문에 프리 코드라는 유언비어가 돌았으나 후속 기종과 같은 NTSC-J였다.[36] 플레이스테이션 2, 3 본체에 연결해도 화면 출력이 가능하다.[37] 사실 이 요소의 원조는 PC 엔진 CD이다.[38] 하지만 이렇게 하면 기기가 고장나는 문제점이 생겼다.[39] 사실 철권2 이후로도 정품시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매장 입장에서는 정품팔고 중고장사 하는 쪽이 훨씬 더 돈이 되었고 유저들 입장에서도 여전히 복제품이 꺼림칙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철권2는 아는사람만 알던 복돌cd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 계기에 가까울뿐이다. 국내 정품 콘솔계가 정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이보다 1년뒤에 벌어진 IMF 사태로 게임 판매가가 아닌 수입원가부터가 한순간에 두세배로 뛰어버리자 도저히 정품생활을 유지할수 없게 되면서 복사의 전성시대가 열린다.[40] 이러한 화면이 뜨게 되어있는 복사방지방식이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8.[41] 잉글랜드 링컨셔 주에 있는 도시다[42] 에이펙스 트윈과도 긴밀히 작업한 경력이 있다. 문서 참고. CF모델은 피오나 맥클레인 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실제 외모는 CF 같이 괴이한 외모는 아니고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외모이다. 그녀의 실제 외모와 배우 이력. 이 사진이 모든것을 말해준다.[43] 북미에서는 PSX로도 불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PS2기반의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인 PSX가 나와버려서 혼동이 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