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9-22 00:10:20

플레이스테이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SIE의 게임기 브랜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대해서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4세대 ◀◀ 5세대 게임기 ▶▶ 6세대
4.5세대 포함
가정용
FM TOWNS 마티 3DO 아타리 재규어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PC-FX 애플 피핀 닌텐도 64
휴대용
버추얼 보이 R-Zone Game.com 게임보이 컬러
네오지오 포켓 · 컬러 원더스완 · 컬러

파일:플레이스테이션.jpg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folding 펼치기/접기가정용
파일:플레이스테이션1.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2.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3.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4.png 파일:ps4_pro_logo.jpg
휴대용 VR
파일: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비타.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VR.jpg
}}}||
파일:플레이스테이션1.png
개발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제조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출시일 파일:일본 국기.png 1994년 12월 3일
파일:미국 국기.png 1995년 9월 9일
파일:유럽 연합 깃발.png 1995년 9월 2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3월[1]
생산
종료일
2005년 3월 31일
가격 파일:미국 국기.png $299 → $199 → $149
→ $129 → $99 → $49[2]
파일:일본 국기.png ¥39,980 → ¥29,800
→ ¥24,800 → ¥19,800
→ ¥18,000 → ¥15,000
→ ¥9,800[3]

파일:attachment/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jpg
1. 설명2. 역사3. 사양4. 특징5. 발매된 게임6. 포켓 스테이션
6.1. 사양6.2. 대응 게임
7. PS one8. 기타

1. 설명

닌텐도의 실수로 태어난, 닌텐도 천하를 무너뜨린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첫 게임기이자 첫 거치형 게임기이다. 1994년 12월 3일, 일본에 처음 출시되어 2005년까지 판매되었고, 한국에는 카마엔터테인먼트를 통해 1997년 3월에 정식 출시되었다.[4] 총 판매량은 1억 249만대. 경쟁 기기는 닌텐도 64세가 새턴이다.

약칭은 PS, 플스 등으로 흔히 불리며 게임 매거진 혼자서 프레스라는 약칭을 사용했지만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약칭은 "프레스테(プレステ)"[5]. 일본에서는 노는 역이란 뜻인 "아소부에키(遊ぶ駅)"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플스"나 "노는역"이라고 부른다. 뜻의 유래는 워크스테이션에 놀이(Play)이다. 영어권에서는 PS, PS1, PSX.[6]

파일:external/img1.wikia.nocookie.net/PlayStation_1_Logo.png
PS1의 로고.


PS1의 시동화면. 많은 플레이스테이션 팬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플레이스테이션 4의 테마에 PS1의 시동음이 들어갔다! Playstation Store에서 받을 수 있다.(PS4용이고, PS4 본체에서 받거나 PC등에서 웹으로 접속해 미리 구매(무료)할 수 있다.)

2. 역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NES-CD_add-on.jpg
슈퍼 패미컴 용 플레이 스테이션의 컨셉아트
탄생의 배경은 경쟁사인 닌텐도와 관련이 있는데, 당시 닌텐도에서는 슈퍼 패미컴의 다음 세대 게임기를 준비해야 한 무렵이고 슈퍼 패미컴CD 드라이브 부속기기(메가 CD 같은)를 개발하고자 소니 전자와 협력하고 있었다. 이 때 개발중이던 슈퍼 패미컴용 CD 드라이브에 닌텐도에서 붙인 코드네임이 바로 플레이 스테이션.[7] 당시의 닌텐도에서는 슈퍼 패미컴용 롬 카트리지를 독점으로 생산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소니 전자 측에서 CD 기반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 권리를 보유하기를 바라자 닌텐도는 수익 감소를 우려했다. 1991년 6월 1일, 시카고의 여름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서 소니에서 슈퍼 패미컴 호환 카트리지 및 CD-ROM 확장 기기이던 슈퍼 패미컴 CD-ROM 시스템, 플레이 스테이션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에 소니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당시 CD-ROM 관련 소니의 라이벌이던 필립스와 계약을 체결했음을 발표했다. #[8] 그 바람에 소니 전자와의 계약은 백지화가 되었다.[9]

계약이 엎어진 것에 화가 난 소니 그룹에서는 닌텐도 다음으로 점유율이 높던 세가에 차세대 게임기를 공동 설계하려고 했다. 1991년에 소니에서는 세가에 CD의 라이선스를 줬고, 세가에서 메가 CD를 출시해 친분을 쌓고 있었다. 소니에서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 톰 칼린스키에게 접촉해, 차세대 게임기 하드웨어 시스템 사양과 하드웨어 판매 손실 분담, 수익 분배에 대한 온건한 계약 조건[10]을 제안했고, 칼린스키 사장은 이를 듣고 제안서를 작성해 이사회에 공동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세가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과 이사회에서 "바보 같은 생각이로군. 소니는 하드웨어를 만들 줄도 모르고, 소프트웨어도 만들 줄도 모르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하도록 하고 싶어하는가?"라며 자체 개발로 선회하면서 이것도 실패.# 결국 분노한 소니에서는 1993년 11월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개발 중단된 슈퍼 패미컴용 CD 드라이브를 마개조하여 자체 콘솔을 제작하였는데, 이게 플레이스테이션이다.[11] 만약에 닌텐도와 소니의 계약이 정상적으로 체결되었거나, 세가에서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SCE(현 SIE는 설립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플레이스테이션은 슈퍼 패미컴의 주변기기 또는 세가의 차세대 기기가 되었을 것이며, 전설의 괴작으로 악명높은 호텔 마리오젤다의 전설 CD-i 시리즈 역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게임 시장의 모습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확률이 높고, 닌텐도에서는 현재의 닌텐도와 SIE의 역할을 대신 맡고 세가는 마이크로소프트 정도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수한 서드 파티를 뒤에 업고 세가 새턴 다음으로, 닌텐도 64보다 빠르게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가 새턴닌텐도 64와 정말 피 터지게 경쟁했다. SCE, 세가 둘 다 닌텐도 64가 나오기에 앞서 상대를 끝장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95년 12월까지만 해도 닌텐도에서도 "N64 천천히 발매해도 금방 따라잡겠지."라고 판단했을 정도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초기부터 1995년 12월까지는 게임계에서 별 것 아닌 존재였다. 첫 100만 대, 200만 대 판매를 달성한 것도 세가 새턴이다.

하지만 듀얼 CPU를 비롯하여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에 비해, 매우 간단한 구조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생산 단가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가격 인하 공세를 펼쳤다. 1994년 11월 22일, 세가에서 세가 새턴을 44,800 엔으로 출시하자, SCE에서는 12월 3일에 플레이스테이션을 39,800 엔으로 출시했다. 1996년까지 세가 새턴은 일본 시장에서 20,000 엔에서 가격 인하를 더 할 수 없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1996년까지 19,800 엔으로 인하했으며, 이듬해에는 18,000 엔으로 인하했다. 북미 시장에서도 새턴의 시장 선점을 위해 E3 1995 게임쇼의 세가 컨퍼런스에서 $399 가격으로 즉시 발매를 발표한 때, SCE 측에서는 컨퍼런스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299로 발매한다고 발표해 청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12] 이듬해 E3 1996 게임쇼에서는 SCE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199로 즉시 내리면서, 세가 새턴은 생산 단가면에서 확연히 불리했음에도 가격 인하를 해야 했다. 개발 환경면에서도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보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우세를 점했기 때문에, 게임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닌텐도 64는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상당히 큰 폭으로 높지만, 경쟁 기종인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보다 1년 6~7개월이나 늦게 출시해 세가와 SCE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데다가, 저장 매체로 롬 카트리지를 고집하면서 그 당시 게임의 대용량화 추세를 맞추는 게 불가능해졌다. 스퀘어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6 발매 직후부터 파이널 판타지 7을 3D 기반 RPG로 기획하고 있었으나[13], 빈약한 용량의 롬 카트리지로는 택도 없기 때문에 이는 스퀘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14][15]

그리고 SCE에서는 이 틈을 타 소니 그룹의 출자를 통한 파이널 판타지 7 닌텐도 투자금 변제 및 스퀘어의 라이선스 비용 최혜 대우, 일본 내 스퀘어 독자 유통망을 통한 게임 판매를 인정하면서[16], 1996년 1월 12일에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으로의 이적을 발표했고, 그 이후 파이널 판타지 7의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17] 파이널 판타지 7 발매 이전인 1996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승리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지고 있었지만 파이널 판타지 7가 대히트를 치면서 닌텐도까지 넘어서는데 성공하였고, 판매 대수 면에서 2위인 닌텐도 64와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거치형 콘솔 시장을 정복했다.

E3 1997 게임쇼 2달 전에 소니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북미 시장 가격을 $149로 또 내렸고, E3 1997에서 세가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패배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파일:external/nintendoeverything.com/snes-cd.jpg
닌텐도와 협약 시절의 프로토타입이 발견되었다. 다만, 기기에 닌텐도의 로고가 일절 없고 PlayStation이라는 표기 방식과 폰트도 이후 SCE에서 발매된 버전과 같다는 점을 볼 때 계약이 결렬된 직후에 새로 설립된 SCE에서 마개조를 시작한 버전으로 보인다.

2016년 7월에 이 기기의 구조 및 스펙이 밝혀졌다! 참고 본체에 별도로 추가된 CPU나 램 등의 칩은 없고, 대신에 함께 유출된 팩에 CD 구동 펌웨어가 들어있는 롬과 CD-ROM에서 게임을 로드하기 위한 확장메모리 2Mbit(256KB), 게임 세이브용 64Kbit(8KB), 그리고 세이브 데이터 보존용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곳을 참고하자.

3. 사양

CPU 소니/LSI logic Coreware CW33300 커스텀 32비트 33.8MHz (MIPS I R3000A 호환)[18]
GPU 소니 커스텀 32비트 GPU 53.2MHz[19]
사운드 소니 커스텀 16비트 SPU[20]
메모리 메인 메모리 : 2MB EDO DRAM
비디오 메모리 : 1MB 16MHz VRAM[21]
사운드 메모리 : 512KB EDO DRAM
CD-ROM 버퍼 : 128KB
미디어 CD-ROM 2배속
단자 입출력 콘트롤러×2
MEMORY CARD×2
AV MULTI OUT×1
S-VIDEO OUT×1[22]
AV 다이렉트 OUT×1[23]
병렬 포트×1[24]
직렬 포트×1[25]
규격 260㎜×185㎜×45㎜, 1.5㎏
193㎜×144㎜×38㎜, 550g(PS one)

4. 특징

  • 게임 데이터의 세이브를 위해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한 메모리 카드를 기본으로 채용하었다.(물론 별매도 가능.) 이전 세대의 슈퍼 패미컴에도 롬팩 카트리지에 SRAM을 내장해 게임 데이터 세이브를 지원하거나 아스키에서 만든 터보 파일 등의 주변기기가 있지만, SRAM은 건전지를 이용한 탓에 전원이 끊어지면 데이터가 사라진다는 한계가 있고, 터보 파일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주변기기라서 몇몇 마니아들 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역시 SRAM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기였다. 이에 비하면 메모리 카드는 절대로 세이브가 날아가지 않는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 물론, 사고가 나거나 정말 오래 사용하거나 하면 날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카드 사이에서 얼마든지 세이브를 옮길 수 있으므로 훨씬 안정적이고, 세이브를 옮길수 있어서 편리한 점이 매우 많다. 그러나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이상한 던전 같은 게임에서는 "강제 세이브"라는 전통이 무너지게 되었다.
  • 이 메모리 카드의 용량은 128KB(1Mbit)이고 가격은 1800엔이었기 때문에 역사상 모든 저장 매체를 통틀어서 저장 용량 대비 가격이 가장 비싼 매체였다. 블럭 단위로 게임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1 블럭의 용량은 8KB였다. 그 중 1개의 블럭은 메모리 카드 내부 관리용으로 시스템에 의해 예약돼 있기 때문에, 총 15개의 블럭을 게임 저장용으로 쓸 수 있었다. 게임에 따라 1~2개의 블럭을 사용했다.
  • 시대를 먼저 내다보고 3D 기능에 집중하여 시대를 선도했다. 실제로 워크스테이션급 성능이라는 말도 세일즈 포인트였고 성능도 가장 우수했다. 세가 새턴도 개발사의 역량만 받쳐 준다면 PS급의 3D 게임이 가능하지만, 만들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한 게임의 비율은 적은 편이다. 거기다 안정적으로 사용한 게임은 훨씬 더 적다. 그래서 남코스퀘어가 PS 진영으로 온건가? [26]
  • 반면 메모리 용량이 딸리고 확장도 불가능한 관계로[27]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적으로 더 다양한 2D 이펙트 기능을 가지고 있고 처리속도도 더 빠른데다 확장 메모리를 이용하여 스프라이트 데이터를 추가로 불러들이는 것이 가능한 새턴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CD-ROM의 로딩시간도 있다 보니 슈퍼패미컴 게임도 그대로 이식하지 못하고 로딩이 추가 되었으며, 메모리 용량 문제 때문에 프레임 삭제로 떡칠된 캡콤이나 SNK, 코나미의 인기 2D 아케이드 게임들은 PS 이식판이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28]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3D에 있었기에 이런 약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처럼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시도한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29] 또한 3D기술을 접목시킨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과 같은 뛰어난 게임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때문에 '2D가 강한 새턴'에 다운 이식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초기에는 단순히 십자 버튼만 있는 패드가 기본이었으나 닌텐도에서 닌텐도 64용 아날로그 스틱과 진동팩 등을 내놓고 크게 호평을 받자 이걸 카피해서 아날로그 패드를 내놓았고, 1997년 이후 기능을 개선해서 듀얼쇼크를 내놓았다. 아날로그의 조작감은 떨어져도 양 손에 서로 다른 진동을 전해주는 듀얼쇼크 자체는 그야말로 쇼크 그 자체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SX-Original-Controller.jpg 파일:external/78a1d47705030f69b72d46d8ea6bb2560dd0f6e7474bf3a1cd14e6a9a8aa685f.jpg
초대 패드 듀얼쇼크
  • CD-ROM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최대 용량은 650~700 MB[30]. 덕분에 을 기반으로 한 슈퍼 패미컴이나 닌텐도 64에선 거의 못하는 음성이나 동영상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PC 엔진/메가 드라이브는 확장구조로 CD 롬을 지원하며, CD를 기본으로 지원하는 기기가 있지만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대중화된 것. CD 롬 관련 비용이 내려진 것도 한 몫했다. 덕분에 SFC 후기에 1만엔을 넘어간 게임가격이 5800엔 수준으로 낮아지는데에도 공헌했다. 심지어 CD-ROM을 몇 장씩 쓰는 게임도 등장했다.
  • CD는 검은색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CD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 본체는 주로 각종 단자를 제거하는 형식으로 계속적인 비용 절감형 리비전이 가해져 1000번부터 시작하여 9000번까지 새로운 모델이 발매되었다. 가격이 낮아진 만큼 새로운 옵션을(듀얼쇼크 등) 기본적으로 추가 해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최종적으로 TV 입력 단자와 확장 단자가 사라졌다. 또한 공정 개선으로 후기 기종에서 오브젝트나 이펙트가 좀 더 나은 경우도 있다고….
  • 소니타이머를 증명하듯이 동시대기인 세가 새턴에 비해 내구도가 낮다. 이는 렌즈가 플라스틱 재질에다가, 열을 발산하는 내장 전원부 가까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용할 경우 플라스틱에 변형이 가해져 리딩 에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5000번 이하의 구형 기종은 모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렌즈 유닛 위치를 변경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모로 세우거나 스탠드를 이용한 직각 거치, 심지어는 뒤집기까지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 개발자용 기종으로 연구소나 개발사급에만 판매한[31] 디버깅스테이션이 있으며 이 쪽은 코드프리에다가 동시에 4개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8MB 메모리를 사용한다는 이점이 있다. 기체가 푸른색을 띠고 있어 일명 블루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불렸다. 이 디버깅스테이션으로 개발한 게임은 완벽한 개별의 게임으로써 구동이 가능하다.
    또한 개발자 양성을 위해 한 때 넷 야로제 프로젝트를 진행, 검은색 무광 도색이 된 넷 야로제 플레이스테이션을 소니 본사를 통해 직접 판매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서류를 구비해서 국가별 소니 본사에 제출하면 심사 후 구매가 가능했으며 본체뿐만이 아니라 개발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등까지 별도로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에 자비가 없었다. 디버깅스테이션과 비교해봤을 때 넷 야로제의 차이점은 일반 가정용과 동일한 2MB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액세스카드로 메모리 카드 슬롯을 하나 사용하기 때문에 개발환경에서는 메모리 카드를 1개 밖에 쓸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또한 넷 야로제로 개발한 게임은 반드시 부트 CD와 병행해야만 구동이 가능하다.
    컴링크 카드와 액션 리플레이를 이용하면 일반 플레이스테이션로도 게임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당연히 프로페셔널이나 넷 야로제에 비하면 많은 제약이 따랐다. 현재 디버깅스테이션은 유니크, 넷 야로제는 레어급 아이템이 된 상태.
파일:external/lorezan.free.fr/dtlh1000+pad.jpg 파일:external/strefapsx.pl/net_yaroze_00.jpg
디버깅스테이션 넷 야로제
  • 기본 개발 언어는 C이나, 신기하게도 C++ 코드를 컴파일러에 넣어도 정상 컴파일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소니에 문의하자 '이상하네요 우리도 컴파일러 제작의뢰할 때 사양이 그냥 C였는데...'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5. 발매된 게임

6. 포켓 스테이션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50px.png
이 문단은 포켓스테이션(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파일:pocketstation.jpg
포켓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용 휴대용 게임기 형태의 메모리 카드이다. 1999년 1월 23일에 출시됐다. 2002년에 단종됐으며 대략 500만개를 판매했다. 대응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의 경우 플레이스테이션으로부터 전송받은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배터리 소모가 매우 빠른것이 단점이다.

6.1. 사양

CPU ARM7T 32비트 33.8MHz CPU
메모리 2KB SRAM
스토리지 128KB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 32×32 흑백 LCD
사운드 10비트 PCM
통신 적외선 양방향 통신
스위치 5개의 입력 버튼과 1개의 리셋 버튼
배터리 CR2032 리튬 버튼 배터리(3V, 225mAh)
규격 64㎜×42㎜×13.5㎜, 30g

6.2. 대응 게임

7. PS one

파일:attachment/psone.jpg
PSone

2000년 7월 7일[국내] 소니에서 PS one을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동일한 성능에 크기를 1/3로 줄인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2005년 3월에 전 플레이스테이션 모델이 생산 중단될 때까지 2815만대를 팔았다. 일본에 491만대, 북미 지방에 1270만대, 유럽에 1126만대를 팔았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다르게 PS one에서는 리셋 버튼이 사라진게 특징이다. PS one을 리셋하기 위해서는 전원 버튼을 껐다 켜는 방법 밖에 없었다. 또 전원 버튼에 RESET이라고 써 있기도 했다. 또한 전원부가 외부로 빠져, 어댑터를 통해 연결됐다.

주변기기로 아예 부착용 화면[33]과 스피커가 같이 발매되었으며, 휴대용 플레이를 위한 차량용 시거잭 전원부까지 발매되었다.

8. 기타

플스 CD를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CD 플레이어에 악영향을 끼치는 관계로 1번 트랙에는 음악 트랙으로 경고 메시지[34]같은 걸 넣었는데, 몇몇 작품같은 경우에서는 이 점을 노려서 꽤나 재미있는 경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역습의 샤아 PS판을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아무로와 샤아가 투닥거릴 때 나나이가 말리던 중 카미유가 나와서 제타 건담 마지막의 명대사를 날리면서 종료된다.(참고)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소니의 노력도 있었다.
초기 플레이스테이션 모델은 별도의 복사칩 없이도 불법복사 CD를 돌리기 위해서 볼펜스프링이니 황금축이니 하는것을 기기사이에 끼우고 CD 인식시간의 헛점 사이를 노리는 스왑스타일의 복돌꼼수가 성행했다.[35] 그러나 모델이 개량되면서 그 방법은 막히고, 플레이스테이션에 복사 CD를 달수있도록 정품인식을 우회하는 개조칩(모드칩)이 생겼는데 막 생길때만해도 CD 복사기술은 대중적이지 않았고, 칩도 조악해서 오히려 멀쩡한 플스를 날려먹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모드칩 초창중기인 철권 2시절부터 모드칩을 다는 복돌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보따리상과 용팔이들 사이에 담합한 직수제품 창렬장사가 큰 요인을 차지했다.[36]

그러다가 모드칩도 안정화되면서 복사시디를 개나소나 돌리기 시작했을때, 소니측에서는 개량을 시키면서 모드칩 달은 플스는 복사시디 인식을 고자로 하는 식으로 모드칩과 인식방지간의 술래잡기로 들어선다.

PS 말기에 접어든 1998년경에 모드칩을 깐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몇몇 복사방지 루틴이 강화된 당시 막 나온 신작게임의 복사 CD를 돌리려면

파일:external/consolecopyworld.com/protected.jpg
일본판
강제종료되었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일:external/372dc2d663d8448c3d774612e78e59ba60fca9243dbf4360e4a1595c466250da.jpg
북미판
소프트웨어가 종료되었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888-780-7690으로 전화해주십시오.


이러한 화면이 보통 떴다.[37]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조치에 불과해서 이것도 복사업자들에 의해서 뚫리는것은 시간 문제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복사방지루틴의 선구자로 알려진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는 불과 1주일도 안되어서 용팔이 복사업자에 의해 뚫렸고(...) 파판8도 한동안 애를 먹긴 했으나 결국 용팔이 및 중국/대만 업자들에 따라 뚫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부 게임데이터의 포맷이 다른 파일이 되어있어서 정품과 게임데이터 구성이 다소 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도 초반에 MM(Multi-Mode)3칩의 등장으로 위의 이야기는 옛말이 되버렸다...

파일:external/www.superufo.com/ps-x-change.gif
아예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동작하는 PS-X Change2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모드칩에 밀려 알려지진 않은듯 하다(...)

에뮬레이터 등으로 돌리면 N64나 새턴보다 잘 돌아간다. 에뮬레이션의 특성상 게임마다 속도가 천차만별이며, 비교적 요구사양이 낮은 블러디 로어 시리즈, 철권부터 높은 요구사양의 MGS까지 다양하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나 버스트 어 무브같은 일부 리듬게임은 에뮬레이팅 시의 취약점이 되곤 하는 입력 지연에 민감해 PS3/PSP의 공식 PS 에뮬레이팅에서도 꼭 박자가 어긋나기 때문에 해당 게임을 플레이할 때 PS 실기가 필요하다.

여담으로 1999년에 나온 광고가 매우 괴랄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이 느껴질 수 있으므로 링크로 대체. 어딘가 묘하게 뒤틀려 보이는 얼굴을 한 소녀가 나오는 광고이다. 아래의 내용을 대충 해석하자면 내가 못하는 걸 남들이 대신 이뤄주거나 내가 뒤쳐지는걸 신경쓰지 말고 게임이나 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즐겨보자는 뜻.

Let me tell you what bugs me of the human endeavor
사람의 노력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말해줄게
I’ve never been a human in question, have you?
나는 여태 이 질문에 의문을 갖는 인간을 본적이 없어, 넌 어때?
Mankind went to the moon
인류는 달에 착륙했지만
I don’t even know where Grimsby is
난 그림스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 [38]
Forget progress by proxy
그런 진보따윈 대체품으로 망각해버리고
Land on your own moon
너만의 달에 착륙하러 떠나봐
It’s no longer about what they can achieve, out there on your behalf
남들이 너 대신 불가능한걸 이뤄주는걸 지켜보지 마.
But what we can experience
대신 우리는 경험할 수 있어
Up here and of our own time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바로 여기서
And it’s called mental wealth
정신적 부유함을 말이야.

링크
배경에 이상한 잡음이 깔려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CF 감독이 영국의 비주얼아티스트인 크리스 커닝햄이다.[39]

영국의 채널 BBC의 프로그램인 닥터후에 나오는 조연 미키가 비행선 조작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배웠다고 한다(...).

후기 시리즈로 플레이스테이션 2, 플레이스테이션 3, 플레이스테이션 4가 나오면서 첫번째 플레이스테이션인 이 기기는 종종 플레이스테이션1, 약칭 PS1로 불린다.[40]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하면 시리즈 전체를 부르는 것으로 알기도.

아케이드 호환 기판으로는 SYSTEM 1X 시리즈와 타이토 FX 시스템, 소니 ZN 기판이 있다. 몇몇 비마니 시리즈에 쓰인 시스템 573 기판도 이쪽 기반.


[1] 카마엔터테인먼트에서 SCE의 정식 라이센스를 받진 못했지만 해외 유통상을 통해 수입해 판매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밀수 제품 판매가 성행하고 있었고(1995년 여름부터 이미 용산에서 밀수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기사), 너무 비싼 가격으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에 SCEK에서 PS one을 판매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시대가 되기도 했거니와, 플레이스테이션 2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가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극소량만 판매됐다.[2] 1996년 5월 16일 → 1997년 3월 3일 → 1998년 8월 30일 → 1999년 8월 23일 → 2002년 5월 15일에 인하했다. 2000년 9월 19일 PS one을 $99에 출시하기도 했다.[3] 1995년 7월 21일 → 1996년 3월 28일 → 1996년 6월 22일 → 1996년 11월 15일 → 1997년 11월 13일 → 1998년 12월 1일 → 2001년 9월 12일에 인하했다. 2000년 7월 7일 PS one을 ¥15,000에 출시하기도 했다.[4] 구닥동쪽 댓글을 보면 유통자체는 순정으로 되어있는데 소매점에서 모드칩을 장착하여 판매했다고 한다.[5] 세가 새턴과의 경쟁구도 시절, 새턴 진영에서 이걸 두고 일회용을 가리키는 츠카이스테(使い捨て/쓰고 버려)를 빗대어 플레이하고 버리는(プレ捨て) 일회용 게임기라면서 깐 적이 있다. 이에 대해 SCE진영에서는 '열폭하는 것 자체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쿨하게 무시했다[6] 코드네임. 같은 이름의 플레이스테이션 2 기반의 비디오 레코더가 따로 있는데, 이는 일본에만 발매되었다.[7] 닌텐도 슈퍼 패미컴을 위한 소니 전자의 CD-ROM 부속기기는 '플레이' 한 칸 띄우고 '스테이션'임에 유의하자.[8] 그러나 필립스에서 만든 CD 드라이브 부속기기는 발매 직전 닌텐도에서 그만두어 만들던 건 출시 못하면서 약간 남은 것이 CD-i로 이어졌다.[9] 더욱 간단하게는, 닌텐도에서 자사의 적을 자사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소니에서 원래부터 게임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닌텐도와의 계약을 통해 기술을 얻어가려다가 닌텐도에서 그것을 눈치채고 계약을 파기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낭설일 가능성이 높다. 소니 그룹 대부분의 핵심 임원들은 닌텐도와의 협력이 엎어진 뒤에도 쿠다라기 켄이 오가 노리오 소니 사장을 설득하기 전까지 게임기 사업 자체를 전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처[10] 세가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세가에서, 소니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소니에서 전부 갖는 것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게임 관련 세가의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수했으므로 세가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11] 이때 쿠다라기 켄이 당시 소니 그룹의 회장이던 오가 노리오에게 게임기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오가 회장은 망설임 없이 "진행하시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출처[12] 이 때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서는 1995년 3월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95년 9월 2일 토요일(Saturday → Saturnday)에 발매할 계획이라고 인터뷰를 했지만, 세가 본사에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먼저 시장 선점을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베스트바이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점에 미리 공지도 하지 않고 발매한 병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미국 소매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유는 북미 시장의 세가 게임기는 1995년까지는 제네시스(메가 드라이브)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가 새턴의 높은 개발 난이도에 따른 동시 발매작의 부족으로 시장 선점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이는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13] 스퀘어에서는 SGI 오닉스와 인디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해서 만든 'Final Fantasy VI : The Interactive CG Game'이라는 3D 데모 영상을 SIGGRAPH 1995에 출품한 적이 있다.[14] 롬 카트리지는 이름 그대로 현재의 Mask ROM과 흡사한 구조이나 당시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술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용량화가 힘들어 현재까지도 거치형 게임기에서는 광학 디스크가 저장장치로 사용되고 있다.[15] 사실 이 문제는 닌텐도 슈퍼 패미컴아타리 재규어 들어오면서 불거진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회사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압축 해제 확장칩들을 롬 카트리지에 내장해 발매하기도 했다. 닌텐도에서도 S-DD1이라는 압축 해제 확장칩을 개발하기도 했고, 이 칩은 대표적으로 스타 오션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 알파에 내장됐다. 용량을 키울 수는 있으나 네오지오의 카트리지처럼 슈퍼패미컴의 본체만큼 커지고, 두꺼워지고, 비싸진다. 실제로 네오지오 게임의 경우 하나에 30만원 이상이었다.[16] 이것으로 SCE와 스퀘어의 합자회사인 디지큐브라는 기업이 1996년 2월에 설립됐다. 처음에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유통했으나 책, 굿즈, 음악 등의 유통으로 넓혀갔다. 2003년에 파산했는데, 스퀘어와 에닉스 합병 직전 에닉스와의 중복 사업부문을 정리하기 위해 파산시켰다는 후문이 있다.[17] 이로 인해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은 크게 화를 내며 다시는 닌텐도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퀘어에서는 한동안 휴대용 게임을 원더스완에 내야만 했고, 당연히 판매량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이 관계는 2002년까지 지속되다 "스퀘어와는 계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약을 검토할 여지도 없다. 장래적으로도 가능성은 낮다."라는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의 발언을 계기로 화해하면서(없다가 아니라 낮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야마우치 회장의 직설적인 언행을 감안해 보면 예전과 달리 계기만 생긴다면 계약할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로소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그 이후의 엄청난 판매량을 보인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낼 수 있었다.[18] CPU와 코프로세서(Control Processor)외에 지오메트리 연산용 Geometry Transformation Engine이 장착됐다. 텍스처 매핑시 최대 초당 18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고, 1/60초간 최대 4000개의 8×8 스프라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MJPEG와 H.261 비디오 디코더 기능을 수행하는 MDEC도 장착됐다.[19] 렌더링 및 스프라이트 프로세서. 해상도 256×224에서 최대 640×480까지 지원한다. 그 밖에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20] 최대 2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kHz 16비트 ADPCM 및 PCM, MIDI 지원.[21] VRAM은 비디오 메모리의 준말이 아닌 1980년대 중반에 IBM에서 개발한 DRAM 규격들의 하나인 VRAM을 가리킨다. 5500번대 이후부터는 더 빠른 83MHz, 100MHz SGRAM이 장착됐다. PS one은 GPU에 SGRAM을 내장시켰다.[22] 첫 출시 형번인 1000번에만 존재[23]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24]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 5500번대, 7000번대[25] PS one 제외 모든 모델[26] 마냥 농담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 남코 같은 경우에는 이미 SCE와 협업을 약속했고, 철권 시리즈를 비롯한 자사 아케이드의 3D 게임 자체를 플레이스테이션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추가비용이 드는 세가 새턴을 볼 필요가 없었고, 스퀘어 같은 경우에도 3D 기능이 좋은 PS의 장래성이나 소니에서 제시한 엄청난 혜택을 보고 파이널 판타지 7의 PS 진영 참가를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회사는 닌텐도서드파티들에 대한 횡포로 인해 닌텐도와 큰 불화를 겪고 있었다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반다이 남코스퀘어 항목 참조.[27] 메인 2 MB, 비디오 램 1 MB. 세가 새턴은 메인 램 2 MB, 비디오 램이 1.5 MB인데다가 더해서 확장램팩으로 1~4 MB를 더할 수 있다.[28] 캡콤의 배리어블 시리즈 이식판은 플스의 메모리로 캐릭터 네 명분의 데이터를 동시에 담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태그 시스템이 삭제됐다.[29] 특히 원래 2D 스프라이트로 되어 있는 타격 이펙트를 3D로 교체한 건 참신한 시도로 손꼽힌다. 덕분에 메모리 용량이 좀 널널해질 수 있게 됐다. 또한 뒤로 걷는 모션을 앞으로 걷는 모션과 똑같이 만든 장기에프 등을 제외하면 프레임 삭제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30] 원래 CD-ROM은 650 MB 규격으로 나왔으나 이후 트랙을 좀더 촘촘하게 배치하여 기록 용량을 50 MB 더 올린 규격이 새로 나왔다. 이 두 규격은 드라이브 교체 없이 호환이 가능하므로 PS에서도 무난하게 700 MB CD 인식이 되었다.[31] 그나마도 가격이 그 때 그 때 라이선스에 따라 요동치던….[국내] 2002년 2월 22일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불법복제 디스크때문에 프리 코드라는 유언비어가 돌았으나 후속 기종과 같은 NTSC-J였다.[33] 플레이스테이션 2, 3 본체에 연결해도 화면 출력이 가능하다.[34] 사실 이 요소의 원조는 PC 엔진 CD이다.[35] 하지만 이렇게 하면 기기가 고장나는 문제점이 생겼다.[36] 사실 철권2 이후로도 정품시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매장 입장에서는 정품팔고 중고장사 하는 쪽이 훨씬 더 돈이 되었고 유저들 입장에서도 여전히 복제품이 꺼림칙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철권2는 아는사람만 알던 복돌cd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 계기에 가까울뿐이다. 국내 정품 콘솔계가 정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이보다 1년뒤에 벌어진 IMF 사태로 게임 판매가가 아닌 수입원가부터가 한순간에 두세배로 뛰어버리자 도저히 정품생활을 유지할수 없게 되면서 복사의 전성시대가 열린다.[37] 이러한 화면이 뜨게 되어있는 복사방지방식이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8.[38] 잉글랜드 링컨셔 주에 있는 도시다[39] 에이펙스 트윈과도 긴밀히 작업한 경력이 있다. 문서 참고. CF모델은 피오나 맥클레인 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실제 외모는 CF 같이 괴이한 외모는 아니고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외모이다. 그녀의 실제 외모와 배우 이력. 이 사진이 모든것을 말해준다.[40] 북미에서는 PSX로도 불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PS2기반의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인 PSX가 나와버려서 혼동이 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