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8 15:50:43

소니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소니'로 알려진 게임 Sonny에 대한 내용은 Sonny(게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 파일:소니 로고.png소니
ソニー | SONY
}}}
기업명 정식: ソニー株式会社
영어: Sony Corporation
한글: 소니주식회사
국가 일본 파일:일본 국기.png (다국적 기업)
업종명 가전제품, 반도체 제조업, 금융, 엔터테인먼트
설립일 1946년 5월 7일 ([age(1946-05-07)]주년)
본사 도쿄도 미나토구 코난1초메 7-1 소니시티
설립자 모리타 아키오, 이부카 마사루
대표자 요시다 켄이치로 (사장 겸 CEO)
임원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대표집행역 사장 겸 CEO
요시다 켄이치로
대표집행역 전무 CFO
토토키 히로키
집행역 전무
이시즈카 시게키[1] (IP&S·MC사업)
타카기 이치로[2] (HE&S·생산·물류)
카츠모토 토오루[3] (R&D 플랫폼)
}}}}}}
시가총액 86조 8,999억원 (2019년 10월 10일 기준)[4]
링크 파일:소니 로고.png 공식 홈페이지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wiki style="color:#000000"
{{{#!folding [ 그 외 정보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 margin-top:-6px; margin-bottom:-5px; word-break: keep-all"
상장 여부 상장기업 (TYO·NYSE)
종목코드 TYO: 6758
NYSE: SNE
이전 기업명 도쿄 통신 공업 주식회사 (1946-1957)
자본금 8,742억엔 (2019.03)
총매출 8조 6,657억엔 (2019.03)
영업이익 8,942억엔 (2019.03)
순이익 9,163억엔 (2019.03)
총자산 20조 9,815억엔 (2019.03)
총자본 3조 7,463억엔 (2019.03)
직원 수 114,400명 (2019)
본사 위치

}}}}}}}}} ||
1. 개요2. 역사
2.1. 창업기2.2. 전성기2.3. 침체기2.4. 부흥기
3. 사옥4. 사업분야5. 지분구조6. 슬로건7. 한국법인8. 주요 자회사9. 관련 제품 및 브랜드10. 관련 인물11. 비판/사건사고12. 관련 문서

1. 개요

소니 70주년 기념영상
Sony's 70th Anniversary "New Story, New Sony."
소니(ソニー)는 1946년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다국적기업이자 브랜드이다.

현재는 넓은 의미로 지주회사격인 소니주식회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소니그룹을 가리키며, 좁은 의미로는 단순하게 일본의 소니주식회사 자체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20세기 중후반 전 세계를 휩쓸던 일본 전자산업을 상징하는 이름이였고, 현재는 사업분야를 복합 엔터테인먼트와 금융기업으로 확장시킨 상태다. 일본의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인 1946년 설립된 회사이기 때문에 파나소닉, 미쓰비시전기, 히타치, 도시바 등 동업종의 다른 일본 대기업과 다르게 전범기업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5]

전성기에는 디자인으로 먹고 사는 브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디자인 쪽에 정평이 나있었지만[6] 2천년대 후반부터는 애플이 그 명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모양새이며 오히려 디자인 측면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모습도 보인다. PSP GO라든지 엑스페리아 XZ 이후의 모델이라든지 또한 "소니 쪽에서 나오는 루머는 항상 진실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미묘하게 비밀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이미지가 있다.

왜색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한국에서 소니는 메이드 인 재팬의 대명사 역할을 하며 큰 거부감없이 거론되어왔고 소니빠들도 수십년동안 양지에서 활동해온 편이다.[7] 당장 이 소니 문서만 보더라도 나무위키의 일본 기업 문서 중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삼성전자 문서와도 맞먹는 양을 자랑한다. 심지어 소니 역대 CEO들 문서도 작성되어 있다.

2. 역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7F7F7 0%, #FFFFFF 20%, #FFFFFF 80%, #F7F7F7)"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2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타몬 마에다
(1946~1951)
이부카 마사루
(1951~1976)
모리타 아키오
(1976~1994)
오가 노리오
(1982~1995)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데이 노부유키
(1995~2005)
하워드 스트링거
(2005~2012)
히라이 카즈오
(2012~2018)
요시다 켄이치로
(2018~)
}}} }}}}}}||

파일:external/image.enuri.gscdn.com/SONY%20Logo%20History_Final.jpg
소니 로고 변천의 역사[8]

파일:external/cache.gawker.com/Sony-Timeline-HD2.jpg

2.1. 창업기

파일:external/drop.ndtv.com/morita.jpg
파일:external/freddalzell.files.wordpress.com/sony-morita-and-ibuka.jpg
창업자는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이다. 1946년 초 일부가 무너진 도쿄의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한것이 소니 그룹의 시초다. 설립 당시의 직원도 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40년대 말 최초로 생산한 제품은 전기밥솥이었다.

원래 사명은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였는데, '도츠코'(東通工)란 기괴한 브랜드 네임으로는 세계 시장을 두드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1956년에 소니로 바꾼 것이다.[9] 이는 짧고 쉽고 산뜻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도 똑같이 읽힌다'는 훌륭한 브랜드 마케팅의 사례로 꼽힌다. 언어학적으로 볼때 CV+CV형[10]이라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 가능한 단어이다.[11] 어원은 sound나 sonic의 어원인 라틴어 ‘sonus’와, ‘sonny’의 합성어라고 한다. 원래 사명을 sonny라고 하려다가 '손니'라는 발음 그대로 읽으면 일어로 손실 손해라는 말과 가깝기에 n자 하나를 빼고 지금의 SONY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워크맨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에도 미국인들이 토요타일본 기업[12]이지만 소니는 미국 기업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13] 정보 과거 미국에서 노키아가 일본기업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던 일처럼 의외로 흔한 사례이기도 하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미국에 수출하기 이전의 극초창기의 주력 사업은 패전 이전에 일제 당국에 의해 봉인당한 단파라디오를 패전 후 정상화시키는 복구수리작업과 방송국 납품용 녹음기 제작이었다고한다.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인 모리타 아키오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것이라 예측하였다. 따라서 미국에서 먹히면 전 세계에서도 먹힐것이라 예상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일장기가 없다는 것을 본 모리타는 5번가에 일장기를 걸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결국 1962년 맨해튼 5번가에 소니 쇼룸을 열고 일장기를 걸게 된다.

파일:external/www.sony.net/8ido18000008pqp0.gif
1960년대 초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의 소니 전광판

2.2. 전성기

1957년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가 들어간 포켓사이즈 휴대용 라디오 생산을 시작으로 1960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트랜지스터 텔레비전을 개발하였고[14] 1968년 출시한 트리니트론 텔레비전은 이후 약 30년 간 프리미엄 TV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73년 트리니트론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1979년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워크맨을, 1981년에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했고[15], 1982년에는 필립스사와 함께 CD라는 새로운 저장매체 포맷을 발표하였으며, 1984년에는 디스크맨, 1985년에는 핸디캠을 출시하여 세계 일류 전자기업의 이미지를 굳혔다. 1991년에는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하기도 했다.

파일:sony 1979.jpg
1979년 소니와 필립스가 CD 공동개발을 결정할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필립스 오디오 부문의 조프 반 튈뷔르흐 필립스 오디오 부문 대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참고

1987년 한창 전성기때 소니의 CEO였던 오가 노리오는 "이젠 기술력은 다 고만고만하고 하긴 당시에는 내가 제일 잘나가 상태였으니[16] 앞으로는 기계 안에 들어갈 콘텐츠로 승부해야한다"고 생각하여 실제 제품의 기획·생산·마케팅 보다는 콘텐츠 미디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린다.[17] 1988년 CBS 레코드를 인수하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1989년에는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여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18] 비디오 게임 시장에도 진출하는데 1993년 자회사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1994년 12월에 플레이스테이션을 발표했다. 또한 온라인 게임에도 비교적 일찍 진출해 1995년에는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에버퀘스트 같은 걸작을 내기도 했다. 플래닛사이드 같은 실험성 강한 작품도 냈고 MMO 계열에선 대부분의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19] 이러한 80~90년대의 소니의 행보는 21세기들어 콘텐츠와 미디어 산업이 중요해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틀린 행보는 아니었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1995년에 심각한 부채로 되돌아오게 된다.[20]

아날로그 시대의 소니는 아이팟아이폰을 내놓으며 디지털 시대의 혁신을 주도했던 전성기의 애플과 비슷한 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link. 포브스지가 발표한 세계 IT 기업 순위에서 1980년 5위, 1990년 6위,[21] 2000년 11위를 기록하였고,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브랜드 가치 순위에 20위권에 포함되었다.

2.3. 침체기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 CEO[22]가 취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소니는 여전히 최고의 전자기업이었다. 소니의 트리니트론워크맨은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었다. 따라서 이데이 CEO는 다가오는 시대에 디지털 기술이 가전과 오락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1995년 2000여명 소니의 간부들이 모인 앞에서 이데이 CEO는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 전략을 발표한다. 이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과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 전략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과 함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전략으로 평가 받는다. 디지털 드림 키즈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라고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신세대를 뜻하며 그들의 꿈을 만족시킬 독창적이고 재치있는 상품을 만들어 나가자고 이데이 CEO는 주장했다. 이데이 CEO는 3단계 전략을 통해 디지털 드림 키즈를 구체화했는데 바로 1단계 "Connect", 2단계 "Synergy", 3단계 "Hub"였다.

1단계 Connect는 콘텐츠, 유통, 기기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소비자들을 쉽고 편리하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1995년 이데이 CEO는 소니의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의 방대한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켜 인터넷과 케이블 tv로 연결하였고 별도의 인터넷 접속회사인 소네트도 설립하였다. 또한 위성 TV인 스카이 퍼펙트 서비스도 실시하고 애플아이튠즈 스토어보다 먼저 프레스 플레이라는 온라인 음악 상점도 개설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에버퀘스트등을 개발하고 온라인으로 다운받을수 있도록 했다. 1996년 이데이 CEO는 1단계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디지털 콘텐츠를 더욱 원할하게 연결하는데 컴퓨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여 VAIO 브랜드로 유명한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였고 i.LINK를 개발하여 제품을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단계와 3단계 계획도 준비했는데, 2단계 Synergy 계획은 소니의 제품이 서로 연결되면 소비자가 소니의 제품을 사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소니의 제품들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계획이고 3단계 Hub 계획은 전 세계 각 가정을 소니 제품으로 하나의 디지털 허브로 만드는 계획이다. 여기까지 계획이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이데이 CEO는 TV, 각종 전자기기, 컴퓨터 등을 소니의 콘텐츠와 연결하여 하나의 홈네트워크가 되어 다양한 수익 모델이 창출될 것으로 보았고,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 계획은 1단계에서 끝나게 되는데, 이데이 CEO는 소니 제품을 서로 연결하면 소비자들이 인기있는 소니의 제품을 구매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판매가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이와 달랐다. 소니는 제품들을 서로 연결할때 하나의 소니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하여 독자적인 포맷을 고집하였다. 예를 들어 소니 TV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만 연결할 수 있었고 소니 멀티미디어기기는 소니 제품끼리만 연결될 수 있었다. 독자적인 포맷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소니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소니의 제품을 사야만 했다. 당시 소니는 기술적으로 1등 기업이었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소니는 혁신적이었던 제품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니의 둘레 안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적인 소니의 태도는 베타맥스의 실패에서 예견되었던 것처럼 전자시장에서 소니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점차 소니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래 기술 변화를 예측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이데이 CEO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면서 미리 대비하려고 했고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가서 오히려 다가오는 기술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것이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산업에서 실패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자기기를 모두 연결한다는 발상 자체는 디지털 드림 키즈가 발표되고 약 20년 후에 IoT로 현실화되긴 했다.

이데이 CEO가 창사 이래 사활을 걸고 베가(WEGA), 바이오(VAIO)[23]등을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디지털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아 소니의 봄은 짧았고[24] 결국 이러한 영향은 계속되어 2003년 4월 소니 쇼크 사태[25]가 일어나게 된다. 너무 시대를 앞서서 투자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놓치게 된 사례 소니 쇼크 사태 이후 소니가 과거 전성기 때의 혁신적인 모습과 창의성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전자산업 분야에서의 브랜드 가치도 하락하게 되었다.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 전자산업이 시대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쇠퇴하기 시작한다.

2003년, 전 제품라인을 아우르는 프리미엄 브랜드 소니 퀄리아 (QUALIA)를 발표했으나, 개념을 상실한 가격으로 일반 사용자와 매니아층 양쪽에서 외면을 받으면서 결국 2005년 퀄리아 사업을 접게 되었다. 특히 브라운관TV를 84만엔, 200만화소짜리 똑딱이디카를 38만엔 받고 팔아먹은 건 두고두고 까일만한 일.[26] 하지만 야심찬 사업답게 몇몇 제품, 특히 헤드폰같은 경우 품질면에서는 최상급이었기때문에 지금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는 한다.[27]

소니는 아무래도 '세계 제일의 제품이라는 명성'만 꽉 잡고 있으면 세계 시장에서 쉽게 물건이 팔려나갈거라 생각했겠지만, 삼성과 LG의 능동적인 현지 마케팅에 밀려 제3세계 시장들도 빠르게 뺏겨버렸다.

특히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인 인도에서 삼성, LG에게 완패를 당한게 소니로서는 가장 뼈아픈 패착 중 하나.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도 '인도 시장 깔보고 재고품이나 팔았더니 죄다 그걸 알아차려서 자기 나라 깔본다며 소니에 대한 인지도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며 후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만 해도 인도에선 소니를 가전제품의 대명사로 인식[28]했으나 후발주자인 삼성과 LG가 인도 진출을 위해 최신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가정부나 하인들이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몰래 빼먹는게 흔한 탓에 이를 막기 위해 냉장고에 열쇠구멍을 달아 잠금장치를 설치하거나, 인기가 있는 크리켓 선수를 광고모델로 쓰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에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한다.

반면 인도 시장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조차 세우지 않고 '그냥 적당히만 하면 알아서 사줄거란' 안일한 인식을 가졌던 소니는 서서히 밀리기 시작해 이젠 전자제품 양판점에 가보면 소니 TV는 삼성, LG의 TV에 밀려 구석탱이에 쳐박혀 듣보잡 취급을 당할 정도. 2006년 NHK가 직접 인도에 가서 가전제품(세탁기, 에어컨, TV, 오디오 주요 제품 종합) 인지도를 조사하니 LG가 압도적으로 1위(33%)를 차지했고, 소니는 삼성, 비디오콘(인도 가전제품업체), 필립스, 히타치보다 뒤쳐진 6위를 차지했으며, 뭄바이델리 여러 곳에 있는 가전제품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제품은 LG와 삼성 제품들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니는 구석에 처박혀있거나 관련 제품도 적었다.

이데이의 뒤를 이어 소니의 CEO를 맡게된 하워드 스트링거는 전자산업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와 무리한 콘텐츠 산업의 사업확대로 주력인 전자산업의 위기를 가속화 시켰다. 스트링거는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차례로 접으면서 콘텐츠 산업을 강화시키려 했다. 물론 콘텐츠 사업도 중요하긴하다. 하지만 스트링거는 소니가 근본적으로 전자분야가 중심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로봇사업을 시작으로 소니의 핵심 산업인 전자 부문에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있었는데 이는 과거 혁신적인 제품들을 개발했던 연구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29]

결국 소니의 상징이였던 기술을 저버리고 이데이처럼 콘텐츠를 포함한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스트링거는 결국 소니가 워크맨과 트리니트론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스트링거는 소니의 상징이였던 창업지 고텐야마 본사와 공장건물, 유럽본사 건물과 베를린 소니센터[30]를 차례로 매각시키면서 기업의 정체성을 흐리게 했다고 과거 전 소니의 CEO였던 오가 노리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31]

스트링거는 2009년 CES에서 "소비자는 어느 회사의 제품이라도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호환성이 있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픈 테크놀로지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하며 독창적인 제품 개발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확히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소니의 콘텐츠가 들어갈수 있다면 파나소닉 제품이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소니의 제품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삼성 tv에 PSNow 서비스를 시작했다.[32] 스트링거의 체제에서 소니는 전자부분의 명성과 휼륭한 인력,[33] 오랫동안 쌓아온 혁신적인 기술들을 잃게 된다.

이 두명의 CEO를 거치며 소니는 IT 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가 빠르게 추락하게 되었고, 여러 사업부들이 적자 상태에 빠지며 위기를 맞이 하게 된다.

파일:소니 TV 점유율.png

가전산업의 꽃이라 불리우는 TV 사업에서 과거 트리니트론과 베가(WEGA)의 명성을 잇는 디지털 시장의 새로운 브랜드 "브라비아(BRAVIA)"를 2005년 공개하였으나 1년도 안되어 삼성전자에게 세계 TV 시장의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이후 2009년에는 LG에게도 밀리며 3위권으로 추락하였다.

파일:external/image.zdnet.co.kr/RAVlTzrikMkHHWMMtXSa.jpg
뜬금포, 4차원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공장이 침수되어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3억엔과 라디오 3만대를 기부한다는 모양.

엔고와 가격, 기술 경쟁력 저하로 인하여 여느 일본 가전업체와 마찬가지로, 소니도 2012년 1월 기준으로 2천억엔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관련기사)

최근 실적 악화로 인하여 2005년부터 연임해오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해임되고 주주총회에서 신임된 하라이 사장이 소니 회장(CEO)로 취임할 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파일:attachment/소니/sxut.jpg
지금은 역전된 걸 넘어 TV부문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1위다.[34] 특히나 UHD TV 시장의 경우 유럽과 북미지역 1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삼성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2013년 7월 이후 4개월만에 시장점유율을 왕창 뺏기고 말았다.

파나소닉과 샤프와 다르게 소니는 나름대의 매니아층(충성스러운 고객 집단)이 존재하고 현재에도 방송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방송용 카메라와 스튜디오용 헤드폰)를 지니고 있으며, 디카용 CMOS 이미지 센서와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의 주요 공급업체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이미 전성기때 영화, 음악, 엔터테인먼트, 금융 분야로 사업분야를 다각화하여 생각보다 그리 쉽게 도산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2012년 11월 말, 국제 신용평사가 피치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하며 주가와 가치가 동반폭락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소니가 과거에 안주하는 동안 삼성과 LG가 추월한게 결정적인 문제이다. 2014년 1월 27일에는 무디스도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했다.

현재 중고 게임 사용을 막는 기술 특허를 준비하여 많은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다행히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파일:attachment/sony_revenue_and_profit.gif
2012년~2013년도 회계자료를 보면 소니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는데 매출 기준으로는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의 전자 부문이 70% 가까이 차지하나 영업이익에서 전자 부분은 줄줄이 적자를 보고 소니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금융 부문의 수익이며 그 외 영화, 음악 부문에서도 약간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나마도 2013년도 2분기에 영화사업 부문이 적자나서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2013년 1월 17일, 미국 맨해튼에 있는 미국 법인 건물을 11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게 미국 법인 폐쇄는 아니고 세들어 있는 형식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또한 2013년 2월 28일, 도쿄의 사옥 중 하나인 '소니시티 오사키'빌딩을 1천 110억엔(1조 3천억원)에 매각했다. 소니시티 오사키빌딩은 2011년 3월에 완공된 25층짜리 건물로서, 소니 도쿄 본사 건물과도 가까운 도쿄도 시나가와구에 있다. 이 빌딩에는 소니의 TV 및 오디오 사업부 임직원 5천여 명이 근무 중인데, 이들은 앞으로 세들어 사는 형태로 근무하게 된다. (기사)

이렇게 기업이 소유한 본사 건물을 매각하고 세들어 사는 경영 방법이 있는데 이건 정말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가난해진 기업들이 쓰는 방법이다. 즉 일시적으로 빌딩을 매각하여 현금유동성을 올린 다음 재정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인수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일시적인 스팀팩 수준의 대처법이며 세를 계속 내야 하므로 재정 상태가 확 나아지지 않는 이상 기업에 부담이 점점 커지게 된다.

2013년 10월 17일 현재 카메라 부분을 위주로 개발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러리스 풀프레임이다. 바디 가격만 1499달러와 1999달러라서 충격과 공포를 안기고 있다. 다만 화소가 기본 풀프레임에서 D800E급과 비슷한 화소를 자랑하고 있다. 굳이 DSLR처럼 큰걸 쓸필요가 없어진다. 특히 캐논의 6D와 70D에 갈 유저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35] 하이브리드 카메라는 무려 고정 2.8조리개 줌렌즈로 나왔다.

엑스박스 원과 경쟁구도인 플레이스테이션 4가 발매 첫날에 100만대 판매를 달성하며 PS3과 달리 순항 중이다. 발매 2주만에 판매량 210만 대를 돌파했다. 1대를 팔 때마다 300달러의 손해가 났던 PS3와 달리 이번 PS4는 18달러가 남는다고 한다. (기사)

2014년 1월 27일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에서 투자적격등급 최하위의 Baa3에서 투자주의등급인 B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숫자 높아졌다고 좋아할거 아니다. a가 줄었으니 나빠진거다. 주력 분야인 TV, PC 등의 가전제품 분야의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타격이 크다. (기사)

2014년 들어 PC 부분 사업을 전부 매각했다.

2009~2011년 회계연도에서 줄줄이 적자를 보다가 2012년 회계연도에서 430억엔의 흑자를 보았으나 다시 2013년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에서 연결 손익이 1300억엔 적자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년만에 한국에 공식 출시한 2014년 상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엑스페리아 Z2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다. 예약 판매는 1차 까지만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2차까지도 진행 됐으며 SKT도 KT에서 진행한 예약 판매가 잘되는 것을 보고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물론 모두 완판되었다. 예약 판매가 끝나고 일반 판매가 진행 중인데, 일부 문서를 보면 4~5월 생산분에서 유격 문제가 많다는 정보가 있으므로 구입시 확인하고 유의할 것, 방수폰인데 유격때문에 침수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그로부터 2세대 후에 나온 엑스페리아 Z3 Plus는 스냅드래곤 810을 탑재해 발열로 욕을 먹고 있다.

또한 국내 렌즈교환식 카메라 점유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벤트도 진행중이다. (링크)

2014년 7월 28일, 실적 악화로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본사 건물의 토지를 자회사인 소니생명보험에 528억엔에 매각하기로 결정되었다. 2014년 9월 17일 소니는 2014년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의 실적 전망을 기존의 500억엔 순손실에서 2300억엔 순손실로 수정하면서 상장 56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을 하지 않으며 1000명 규모의 감원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9월 17일 소니 상장 56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 배당을 하지 않았고 18일 소니의 주가는 13% 폭락해 도쿄 증권거래소가 일시적으로 거래를 중지 시켰다.

2014년 10월 21일 해지펀드 써드포인트의 대니얼 로브가 소니 주식 7%를 전량 매각했다. 소니 계열사중에 그럭저럭 이익이 나는 소니 엔터테인먼트를 분리시켜 가전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회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넣어와서 분사보다는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현 경영진(히라이 CEO)의 의견충돌이 있었고 결국 포기하고 매각.

2014년 11월, 추수감사절 기간에 소니 픽처스디 인터뷰 관련 해킹을 당해 약 5억달러 (5천억원) 수준의 피해를 보았으며 매각설이 나올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2015년 2월 19일, 소니의 일등공신 브랜드인 워크맨도 분사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소니의 유일한 하드웨어 생산품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이미지 솔루션 관련 제품 위주가 될 것이며 그 외에는 음악과 영화같은 미디어 관련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One Sony 정책의 실패 이후 히라이 소니가 추구하는 새 정책의 일환이다. 이때 시점까지도 분사되었던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2017년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분사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올림푸스와 함께 의료산업(소니 올림푸스 메디칼 솔루션)(소니 라이프 케어), 국제 교육 산업 (소니 글로벌 에듀케이션) 부동산 산업 (소니 리얼 에스테이트) , 드론 산업(에어로센스)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소니가 강점을 나타내는 분야인 이미지 센서 투자를 적극 감행했다.

2015년 4월 30일의 연결실적발표에서, 2014년도의 매상고는 8조 2,159억엔, 영업이익은 685억엔, 순손실은 1,260억엔의 적자로. 전년도의 1,284억엔의 손실에서 약간 개선되었음을 발표했다. 최초 예상했던 500억엔의 적자보다는 크지만, 예상치로 수정했던 2,000억엔의 적자보다는 월등한 수치여서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이런 실적 개선에는 이미징 센서,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엔저가 큰 역할을 했고 특히 TV의 매출이 크게 회복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히라이가 직접 '소니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힌 모바일 분야에서 무려 2,204억 엔의 적자를 기록해서 모바일 부문 매각설이 나돌았다.

2.4. 부흥기

파일:20190614_152551.jpg
소니의 시가총액 변화 출처
2015년 10월 29일 발표한 회계연도 2분기 (2015년 7~9월) 발표에서 순이익 336억엔, 영업이익 880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회계연도 상반기 (4월~9월)로 잡으면 순이익이 1159억엔으로, 전년 동기(1091억엔 적자) 대비 흑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 상반기 기준으로 무려 5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또한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소폭 감소한 3조7007억엔, 영업이익은 1849억엔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파나소닉(1113억엔)이나 히타치(975억엔)의 상반기 이익보다 많은것으로, 이대로라면 2015년에는 3년 만에 연간 기준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니의 이러한 흑자 전환은 드론에까지 사용되며 수요가 급증한 영상센서(259억엔)와 게임기(239억엔) 분야에서 대대적인 흑자를 달성했기 때문이며, 카메라 부문 수익도 전년 동기 대비 29%나 늘어나는 등 주요 수익원에서 짭짤한 수익을 낸 것이 크다. 즉 기존의 특화 산업에서 더욱 큰 이익을 낸 것이며, 이는 지속적 수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치중된 일본 기업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 모바일은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심화로 여전히 2분기 기준 206억엔 적자를 기록하여, 적자의 폭은 줄었으나 여전히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다만 소니 모바일의 토토키 사장이 2017년 회계분기 (2016년) 에서의 흑자 전환을 자신했고, 신형 엑스페리아 Z5 패밀리의 평가도 좋은 편이어서, 마냥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특히 소니는 타사와는 달리, PC 부문을 매각하여 전망이 어두운 손실보는 부문을 정리했고, 차후 모바일 시장의 성장가능성을 소니도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철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4월 28일 소니는 2015년 회계 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의 연결 당기순이익을 발표했는데, 1,477억엔(한화로 1조 5737억)을 기록해 5년 만에 흑자가 났다. 디지털카메라와 TV 사업부, 플레이스테이션(PS)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자부문이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매출은 8조1,057억엔로 직전 회계연도 대비 1% 줄어들었는데, 이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사업부의 매출 20%가 쪼그라든 게 매출 하락의 원인이 됐다. 또한 모바일 사업부는 614억엔 적자를 냈지만, 작년에 비해서 영업손실이 1561억엔(1조 6,632억)이나 줄어들었다. 장기적으로 모바일에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며, 단기적 손실을 그룹 차원에서 안고 갈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

2016년 6월 분기 실적이 발표 되었는데, 구마모토 지진으로 인해 영업이익은 지난해 7.8억 달러에 비해서 크게 하락하였지만 MC 사업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최종적으로 2.05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전체 매출은 지진으로 인한 영향으로 지난해에 비해 11% 하락한 156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소니의 MC 사업부 역시 매출이 33% 하락한 18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플래그십 시장에 집중한 결과 4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였다. 이미징 센서 부문은 11.8억 달러의 매출과 73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게임과 네트워크 부문은 4.26억 달러의 영업이익과 3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리고 홈 엔터테인먼트 부분에서는 소니가 플래그십 TV 라인업에 집중하고 영업비용을 절감한 결과 매출은 하락하였지만,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85.3% 상승한 1.97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7년 소니의 2분기 매출은 2조6천억엔으로 당초 예상했던 1조8천억엔을 크게 넘어섰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 늘었다. 영업이익은 2천40억엔으로 예상치 1천356억엔보다 앞섰고 전년대비 346% 증가했다. 소니는 2017 회계연도 전체 영업이익을 6천300억엔으로 예상했다. 이 예측대로 소니 영업이익이 6천300억엔을 기록한다면 이는 소니가 1998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성공적인 첫출시로 세웠던 영업이익 최고치 5천260억엔을 경신한 것이다. 이번 실적호조는 이미지 센서 사업과 게임기 사업의 약진과 TV및 모바일 사업의 이익률 증가 때문이다. 소니는 2분기 게임과 네트워크 서비스 사업의 영업매출을 4천332억엔 올려 전년대비 35.4%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548억엔으로 188.3% 증가했다. 소니 반도체 사업은 2분기 영업이익이 494억엔으로 1년전 영업손실 19억엔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에 소니 주가는 이날 2.7% 가량 상승했다.# 특히 부진했던 TV 부문 사업은 초고화질 TV 등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 주력해 이익률을 빠르게 높이고 있으며 OLED TV 판매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 2분기 매출은 16.9% 증가했고, 대당 150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TV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36.1%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36] 또한 반도체와 게임 부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4가 2분기에만 420만대가 판매되는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게임·네트워크 서비스 부문 매출은 4332억엔(약 4조2600억원), 영업이익은 548억엔(약 5390억원)에 달했다. 이미지 센서를 포함한 반도체 부문 매출은 2284억엔(약 2조2460억원)를 기록하였고, TV를 포함한 홈 엔터테인먼트와 사운드 부문 매출은 3009억엔(약 2조9560억원), 영업이익은 244억엔(약 2400억원)를 기록했다. 이미지 센서, 게임기 그리고 프리미엄급 TV의 판매 호조가 이익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보험 및 영화, 음악부문에서도 수익을 거두는 등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018년 4월 27일에 발표된 소니의 2017년도의 영업이익은 무려 7,349억엔을 기록. 당초 예상했던 6,300억엔을 상회하는 것이 되었으며, 1998년 이래 최대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었다. 매상고 역시 전년 동기대비 12.4% 증가한 8조 5,440억엔. 특히 G&NS 분야와 HE&S 분야가 각각 1조 9,438억엔, 1조 2,227억엔의 매상고를 기록한 것이 큰 영향이었다. G&NS 분야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4의 판매가 상승세를 멈추지 않는 것과, 네트워크 (PSN) 판매를 포함하는 소프트웨어의 판매 증대의 영향. HE&S 분야는, 4K OLED 브라비아 등 고부가가치 모델에의 시프트에 따른 제품 믹스의 개선이 큰 영향이 되었다. 또, 사양세로 말해지는 IP&S 분야에서도 매상도와 영업이익이 동시 증가. 고부가가치에 포커스를 두는 전략이 옳았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작년도에서 805억엔의 대폭 손실을 기록한 영화분야도 441억엔의 흑자에 시프트, Fate/Grand Order의 호조에 따라, 음악분야 역시 전년 대비 24% 증가한 8,000억엔의 매상고와 1,278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히라이 카즈오 사장이 취임한 때인 2012년과 비교해보면 완전 부활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히라이 사장은 정크 등급까지 내몰렸던 소니를 완전 부활이라는 기적에 이끌고 요시다 켄이치로 사장에게 뒤를 맡기며 경영 일선에서 떠났다.

그렇지만 MC 분야는 다시 소니의 걱정이 되었다. 고정자산의 감손손실 313억엔의 계상에 따라, 전년도에 흑자 전환했던 영업이익이 다시 276억엔의 적자에 돌아선 것인데 이에 따라 소니는 '18년도의 스마트폰 판매대수를 축소, 다시 슬금슬금 늘어난 염가형 모델을 정리할 예정에 있다.

2018년, 보유하고 있던 스포티파이 지분 절반을 소각했다. 2019년 CES에서 요시다 켄이치로 CEO는 소니가 '창조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면서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소니의 최우선순위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소니 픽처스가 매각되리라는 예상은 일단 수그러들었다.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를 종합 컨텐츠 플랫폼으로 키워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2007년에 설립했던 소니의 자체 OTT 서비스 '크래클'은 미국의 미디어 기업에 매각됐다.

2019년 4월에 발표된 2018년의 영업이익은 8,942억엔(9조 3천억원)으로 다시 최대치를 경신했다. 특히 G&NS분야에서만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고 픽쳐스와 뮤직도 각각 5천7백억원과 2조 4천억원의 이익을 기록하면서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확인시켜줬다. 그 반면 MC 분야는 약 1조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는데, 소니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했더라면 영업이익 10조원을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영향때문인지는 몰라도 2019년 4월 MC사업부는 타 사업부로 통폐합되었고 동아시아와 유럽시장에만 집중한다는 보도가 나왔다.그런데 엑스페리아 1의 한국 발매는 무산 같이 발표된 2019년 영업이익 예상치는 8,100억엔으로 전년대비 약 9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PS4의 판매고가 이미 정점을 찍어 매출이 둔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PS5 출시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대 최고 영업이익 연속 경신과 수익다변화 성공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답이 안나오는 MC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전히 소니의 큰 숙제로 남았다.

2019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플레이스테이션 나우, 이미지센서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다방면의 협력을 합의했다.

2019년도 일사분기(2019년 4월 1일~6월 30일)의 영업이익이 과거 최고를 갱신했다. 매상고는 전년 동기대비 1% 감소한 1조 9,257억엔. 영업이익은 동기대비 18% (359억엔) 증가한 2,309억엔으로, 과거 최고를 갱신했다. 세전이익은 동기대비 26% (811억엔) 감소한 2,310억엔. 순이익은 동기대비 33% (743억엔) 감소한 1,521억엔이다. 매상고 감소에는 전년도에 월드컵 상전이 있었던 AV 기기를 포함하는 일렉트로닉스 프로덕트&솔루션 (EP&) 분야의 부진이 영향을 끼쳤다. 영업이익의 증가에는 이미지 센서 등의 이미징&센싱 솔루션 (I&SS) 분야의 대폭 증익이 기여했다.

3. 사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ony_old_headquarters_in_Gotenyama%2C_Oct_2005.jpg
소니의 옛 고텐야마 초대 본사의 모습
2006년 매각되어 현재는 철거됐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이전까지 소니는 조그만 사무소를 빌려서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이전에는 무너진 백화점에서 시작했다. 이 건물 이후부터 자체적인 본사건물을 가지게 된다. 이는 매우 의미가 깊은데 이 건물을 완공한 이후에 소니의 전성기가 찾아와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대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거의 소니의 창업 성지와 같은 곳 소니의 골수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해 매각되어 사라졌다.
파일:external/33986d2dfdaa45140fe384bbd2ed0a60e8659d8a4d95d42fb8dc214b204a12a6.jpg
1990년 완공해 2005년까지 사용된 소니의 시나가와 본사[37]
파일:external/www.apfn.org/img.jpg
당시 본사 간판의 모습
소니의 1990년대 한창 전성기때부터 쇠퇴기 초반까지[38] 사용했던 건물이다. 소니의 워크맨 디자인이 반영된 건물이다. 당시 소니를 방문한 삼성전자 직원은 이 본사 건물과 소니 직원을 보고 사원과 사제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고. 소니 직원들은 NS 빌딩이라고 불렀으며 주변의 건물 10채가 모두 소니 소유로 당시 시나가와 본사 지역은 "소니 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소니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때 고텐야마와 시나가와에는 7000명 이상의 임직원이 근무했다. 지금은 의료기기 사업에 종사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1000명을 밑돈다. 2014년 말까지 ‘소니역사자료관’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과 토지가 매각대상에 포함되면서 소니 타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NS 빌딩과 토지는 자회사 소니 생명보험에게 매각한 상태다.
파일:external/www.bdqnxh.com/15591V044-0.jpg
200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미나토구 현재 본사. 소니시티라고 한다.[39]
파일:external/www.ohmygeek.net/Sony-HQ.jpg
본사 간판의 모습
이전의 시나가와 본사가 소니의 기업 규모에 맞지 않게 매우 작았는데 이는 소니의 각 사업부들이 독자적인 본사를 갖고 있었고 서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시나가와 본사의 크기보다 소니 아메리카의 뉴욕 본사(뉴욕 소니빌딩)의 크기가 더욱 컸다. 따라서 통합적인 기업운영과 노후화된 이전 본사 건물의 대체를 위해서 2006년 현재 미나토구 통합 본사로 이전하고 소니시티로 이름을 지었다.
파일:external/www.blogcdn.com/photo1.jpg
소니 오사키 테크놀리지 센터 (현재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 본사)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을 개발했던 오사키 공장과 연구소가 있던 곳으로 현재 건물을 신축하여 테크놀리지 센터가 되었다. 현재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가 사용하고 있으며 소니 TV 사업의 중심지다. 2013년 경영 악화로 인하여 닛폰빌딩펀드와 한 개인 투자자에게 1천110억엔(1조3천억원)에 매각했다. 향후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는 이 건물을 임차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Sony_Building_by_David_Shankbone_crop.jpg
미국 뉴욕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본사(前 소니 아메리카 본사)
2002년 미국 AT&T로부터 사들여 미국 소니의 중심지로 사용되었으나 2013년 체트리트 부동산 컨소시엄에 11억(약 1조1천600억원)달러에 매각했다. 2016년 2월까지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건물 1층에는 소니 스타일 매장과 소니 원더 과학 기술관(Sony Wonder Technology Lab)이 있었다. 2016년 4월 13억달러에 아랍계 자본인 올랴얀 그룹의 첼스필드 파트너스에 매각되면서 소니 빌딩이란 명칭도 사라지고, 현재 550 매디슨 애비뉴로 550 Madison Avenue 빌딩 명칭이 변경되었다. 1층에 위치했던 소니 원더 과학 기술관은 2016년 1월 29일에 폐관했다. 2018년 현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만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파일:external/www.pacificbuildinggroup.com/Sony-Headquarters-1.jpg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북미 소니 전자 본사[40]
파일:external/www.sonyrumors.net/Sony-Canada-Building.jpg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소니 캐나다의 본사
파일:external/blog.jnilbo.com/uy1.jpg
독일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에 위치한 소니센터[41][42]
파일:external/www.thewrap.com/Sony-Pictures-office.jpg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에 위치한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본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CEA_Headquarters_%2830344821315%29.jpg
미국 캘리포니아 샌머테이오에 위치한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본사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10088707716_73a15ca189_b.jpg
스웨덴 룬드에 위치한 소니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유럽 지사 [43]

4. 사업분야

소니와 파나소닉 사이의 각축전이 심했던 시절에는 소니는 동일본(간토)을 대표하는 기업, 파나소닉은 서일본(간사이)을 대표하는 기업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는 물론 흑색가전 특히 AV기기 분야에 한정.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들을 많이 판매하기 때문에 생산하는 제품 숫자가 삼성전자보다 더 많다는 말이 있으며, 냉장고세탁기같은 백색가전은 만들지 않는다. 일본에서 전통적인 백색가전의 강자라면 나쇼날(파나소닉)이 있고 그 외에는 도시바, 히타치, 산요[44], 샤프가 있다.

기업이념을 보면, 소니의 기업이념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서양회사와 비슷하지만, 파나소닉의 기업이념은 집단주의, 책임, 협동 등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일본회사의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전자기업들에게 결여되어있는 소프트파워를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45] 전성기 소니의 세계적인 위상은 지금의 애플에 비견된다.

그런 평가에 걸맞게 소니는 2019년 현재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음악, 모바일/비디오 게임 등의 미디어 컨텐츠와 그것들을 제작, 플레이할 수 있는 카메라, TV, 음향장비, 스마트폰, 콘솔 등의 하드웨어 기기들을 동시에 생산, 공급, 유통할 수 있는 기업이다.

이것이 다른 기업들과 가장 크게 차이나는 유일한 부분이 되었다. 엑스페리아 X1PSP에 번들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가 딸려오는 것이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제작진들이 소니 TV 광고에 나와서 브라비아의 색표현력이 얼마나 제작과정에서 도움을 줬는지 극찬하는 쇼가 가능한게 이 덕분이다. 물론 소니가 전자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부터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는 측면도 있다. 소니의 수익구조를 봐도 2018년 기준 엔터테인먼트 분야[46]가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가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나름대로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는 한계도 존재한다.

초창기부터 미국 시장에 집중하기도 했을 뿐더러 이제는 해외 컨텐츠 시장에서의 거물이 되었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소니를 이야기할때는 일본 컨텐츠 시장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덕에 일본 국내 컨텐츠에 대한 유통 지배력을 높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이와 별개로 일본 대중문화의 유행 자체가 전반적으로 크게 퇴보해버려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러브레터, 모닝구무스메, 꽃보다 남자 등 해외에서도 잘나가던 일본 컨텐츠들의 유행, 즉 '일류 열풍'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곳은 이쪽에 투자를 선제적으로 해온 소니였다. 하지만 일본의 대중문화가 침체된 사이 비슷한 영역에서 급속한 질적, 양적인 성장을 이룬 한류때문에 사실상 투자한 만큼 건지지 못한거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역시 소니가 많이 투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현 시점에서는 그나마 유일한 '쿨 재팬'의 사례로 꼽을 수 있지만 업계가 특정 매니아층 위주로 흘러가면서 서브컬처의 이미지가 더욱 강해진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본 컨텐츠에 한정된 문제점을 제외하더라도 소니가 디즈니같은 컨텐츠 제국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소니는 워너브라더스유니버설에도 밀리고 있고 특히 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가 각각 디즈니AT&T에 인수되면서 더더욱 체급차이가 벌어진데다가[47] 애플, 넷플릭스까지 자체 스튜디오를 차리고 컨텐츠 확보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소니가 가졌던 다양한 사업분야라는 차별성도 희미해지고 있다. 소니가 걸었던 길을 미국의 공룡 IT기업들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소니를 벤치마킹한 애플 정도에 불과했지만[48], 구글게임 산업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아마존아마존 에코킨들 등 전자기기를 출시했고 아마존 프라임으로 오리지널 컨텐츠를 자체 제작, 배포하고 있으며, 애플애플 TV+라는 자체 컨텐츠 공급서비스를 런칭한 것도 모자라 애플카드로 금융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이들 기업들은 소니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유능한 임원들을 스카우트해가고 있으며 애플의 경우 단기간에 컨텐츠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소니 픽쳐스의 인수까지 검토한다는 루머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요약하면 소니가 선구적인 발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낸 것은 맞으나 성공을 거뒀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4.1. 엔터테인먼트

4.1.1.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소니 픽처스 문서 참고.

4.1.2. 음악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재팬 문서 참고.

4.1.3. 게임

파일:PlayStation logo white.png
{{{#!wiki style="color:#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 margin-top:-6px; margin-bottom:-5px; word-break: keep-all"
가정용
파일:플레이스테이션1.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2.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3.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4.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4 프로.png
플레이스테이션 5개발 중
휴대용 VR
파일: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비타.png 파일:PSVR_Logo.png
}}}}}}}}}||

파일:external/www.3chfa.com/Sony%20PlayStation%20(1994).jpg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문서 참고.

소니의 게임산업의 시작인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가 주축이다. 2014년 플레이스테이션 나우클라우드 게이밍 사업을 시작했으며 2016년에는 포워드웍스를 설립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15년 MMORPG 게임을 만들던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49]를 매각해서 현재 PC게임 시장에서는 발을 뺀 상태이다.

2019년 5월 20일에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이라는 영화/TV 스튜디오를 설립해서 앞으로 SIE의 게임들을 영상화할 것을 발표했다. 링크 배급은 소니의 영화 계열사인 소니 픽처스가 맡는다.

게임 분야는 금융 분야와 함께 소니가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다. 2016년 1분기에는 G&NS 분야가 소니 영업이익 전체의 78%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4.2. 전자제품

4.2.1. 텔레비전

파일:external/www.slashgear.com/sony1_Trinitron.jpg
소니의 트리니트론 TV. 소니 TV 전성기의 상징적인 브랜드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ewly_released_Bravia.jpg
2005년 공개된 브라비아 (BRAVIA) 소니의 TV 서브 브랜드. 개발과 제조는 2014년 분사된 소니 비주얼프로덕트에서 담당하고 있다.

파일:external/www.sony.co.in/bravia-fb-1200x630.jpg
2014년 출시된 4K 브라비아 TV


브라비아 광고 영상 (2005)[50] 영상에 나오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이다.


브라비아 OLED TV “Desert Water” 광고 영상 (2019)

1968년 발매된 트리니트론으로 소니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명실상부한 전 세계 TV 시장의 최고 강자였다. 당시 섀도우 마스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트리니트론으로 미국의 RCA를 물리치고 TV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다.[51] 트리니트론은 많은 부분에 응용되어 휴대용 TV시장(워치맨), 모니터 시장, 대형 전광판 (점보트론)부문에서도 최고 강자였다. 70~90년대에는 디스플레이의 대명사는 소니의 트리니트론이었던 셈. 1998년에는 평면 트리니트론 베가(WEGA)를 공개하며 만년 4위라는 별칭을 얻었던 일본시장에서 1위를 먹은적이 있다.[52] 베가는 최초로 TV자체에서 SD급 방송 신호 화질을 HD급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DRC[53] 가 탑재되어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54] 음극선관 시대의 트리니트론은 소니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였고 다른 업체들은 소니의 특허가 만료되어 기술공개가 되기 이전까지 이 기술을 따라하지도 못했고[55] 기술이 공개된 이후에도 소니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트리니트론과 같은 음극선관 방식의 텔레비전이 PDPLCD텔레비전에 점차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소니는 절대적인 강자인 음극선관 TV를 한동안 집중하면서 FED디스플레이와 OLED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투자를 진행했다. 또한 1994년 단행했던 음극선관 TV설비 대규모 투자[56]로 인하여 LCD와 PDP의 개발에 투자할 여럭이 부족해지게 되고 시기도 놓치게 되었다. 당시 소니가 트리니트론 음극선관 TV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LCD와 PDP는 개발 초기 단계였고 오히려 트리니트론의 화질이 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트리니트론 기술을 발전시켜오고 세계 1위를 지켜오던 소니로써는 무리하게 LCD나 PDP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보다 더욱 신기술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투자하려 했고(과거 트리니트론으로 기술적 우위를 차지했던 것처럼), 이에 따라 FED와 OLED가 소니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분야로 선정되고, FED 디스플레이는 2006년 필드에미션테크놀러지(FET)를 설립하여 개발을 이어나가게 되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발이 완전히 중단되게 되며 2009년 FET도 해산되게 된다. 현재 FED 기술은 아예 시장에서 사장되어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전 세계 TV 시장에서 입지가 작아지는 상황속에서도 소니의 경영진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A³ 기술연구소를 폐쇄하고[57]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는 기술진들의 대규모 이탈을 불러오게 되며 후에 한국의 전자업체의 추월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새로운 액정 텔레비전 브랜드 브라비아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TV점유율은 계속 하락하여 2005년 1분기 점유율 11.6%로 마지막으로 세계 TV시장 1위자리를 차지한 후 2006년부터 삼성전자에게 1위자리를 내주었으며 2010년도 이후부터는 LG전자에도 밀리며 3위권으로 추락하였다,[58] 소니는 삼성과 합작회사인 S-LCD에서 LCD TV패널을 공급받았으나 2011년 지분을 모두 삼성전자에게 매각하였다. 일본에 있는 LCD 인력은 히타치, 도시바 등 다른 일본 가전기업들의 인력과 함께 '재팬디스플레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그쪽으로 분사시켰다.[59]

OLED의 경우 2007년 세계 최초 OLED TV인 11인치 'XEL-1'을 공개하였으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그 뒤로 정식 후속모델은 출시하지 않고 시제품만 계속 공개했다.[60] 악조건 속에서도 소니는 2013년 대만의 액정기업인 AUO와 공동개발을 통해 세계 최초 4K OLED TV[61]의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의지를 불살랐지만, 결국에는 라이벌인 파나소닉과 서로의 OLED 사업부서를 통합하고 2015년 JOLED라는 합작회사로 분사시키면서 OLED 패널 양산을 포기하게 이른다.

이렇게 차세대 디스플레이 양산에 연이어 실패하고 기존 음극선관도 빠르게 LCD와 PDP에 따라잡히면서 소니 TV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소니 TV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추락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회사보다도 먼저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1990년대부터 다른 기업은 LCD, PDP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한 단계 높은 기술을 추구하며 FED, OLED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소니 TV의 굴욕

소니 TV사업부는 2003년 이후로 계속 적자를 내면서 일본 내 직영 TV공장(소니 EMCS 소유) 생산을 중단하였고,[62] 2010년부터 세계 각지에 있는 TV 생산시설을 중국공장으로 통합을 진행했다. 2014년, 소니는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TV사업부를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로 분사시키며 소니 안팤으로 충격을 주었으며, 동시기에 한국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그렇지만 분사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지속한 결과 UHD TV의 판매 호조로 11년만에 흑자에 돌아서게 되었다. 기술개발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서, 기존의 DRC기술의 후속 기술로 2004년 공개했던 '트릴루미너스 디스플레이'를 계속 발전시키며 2013년에는 QD비전이라는 미국 기업과의 제휴로 퀀텀닷 기술도 적용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세계 최초로 QD-LCD, 다시 말해 '퀀텀닷 기술을 적용한 LCD TV'[63]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링크 즉, 삼성의 'QLED TV'보다 한 발 빨랐던 것. 이 당시 QD비전과 소니가 채택한 기술은 LED 패키지 내부에 퀀텀닷을 직접 장착하는 '온 엣지' 방식으로 삼성 등이 이후 채택한 필름 방식의 '온 서피스'보다 난이도가 높았지만, 곧바로 발열에 따른 열화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소니 TV들은 이 방식을 쓰지 않고 있다. 참고로 QD비전을 삼성이 2016년에 7천만불을 주고 사들였기 때문에 소니가 갖고 있던 양자점 관련 특허는 현재 삼성도 소유하고 있다.

그 이후 2016년 LG와 대형 OLED 패널 구매 계약을 맺고 2017년 2분기에 브라비아 A1 시리즈로 OLED TV 시장으로 복귀하면서 소니의 TV 매출액은 16.9% 증가했고,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2006년 따라잡힌 이래 처음으로 삼성을 추월했다. 2017년 3분기 기준으로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 1위는 SONY, 2위는 LG, 그리고 3위가 삼성이며, 4분기에도 소니가 1위를 수성했다. 이에 삼성은 다른 조사기관의 자료를 들어가며 이례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계속된 삼성의 거센 항의에 따라 해당 조사기관이 점유율 집계방식을 변경하였고 2018년 1분기부터는 삼성이 1위를 탈환하기는 했지만 소니가 가전 시장에서 감을 되찾았다는 평이 많다. 2019년 5월에는 96인치 8K TV 신제품을 10만달러에 출시했던 삼성이 소니의 경쟁 모델의 발매 예고가격을 의식해서 출시 한 달여만에 소니의 가격과 비슷하게 약 3만달러를 인하한 7만달러로 정정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링크[64]

OLED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마이크로 LED 시장에도 가장 먼저 진출했다. 2012년에 FHD 화질의 Crystal LED Display로 마이크로 LED의 가능성을 시험한것에 이어,[65] 2018년 기준으로 업계 최소인 30µm까지 소형화와 함께 CLEDIS 시스템으로 세계 최초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학계에서도 mLED의 기술력은 소니가 세계 최고라고 보는 입장. 2018년 120인치 모델을 전시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CLEDIS 시스템의 시연을 하고 있다. 0.4 평방미터 넓이의 디스플레이 유닛들을 조립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사이즈의 패널도 만들 수 있기에 영화관 스크린이나 사이니지 납품을 우선적으로 진행중이다. 시세이도스바루가 클레디스 시스템을 채용하는 등 B2B 판매도 순조롭다는 모양. 이 분야에서의 주 경쟁자는 역시나 삼성전자가 있으며 애플도 오래전부터 자체 개발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2019년 9월, 일반인(?)이 살 수 있는 상용 모델을 출시했는데 가격은 146인치 FHD 모델 기준 500만 달러에 달한다.

4.2.2. 음향기기

파일:external/www.walkman-archive.com/sony%20tps-l2_21.jpg
Sony Walkman TPS-L2

파일:external/droidsoft.fr/Sony-NW-ZX2-.jpg
Sony NW-ZX2

파일:external/phpschool.com/G3B4NXHiFfwdQbYR5wMYlXq6Rof.jpg
MDR-1ADAC


h.ear go TVC


WH-1000XM3 TVC

소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사업 분야[66]이다.

종합 전자기업으로는 드물게도 음향 업계에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67] 특히 초창기에는 워크맨[68], CDP로 황제의 자리에 등극했다.[69]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서 참조. 특히 CDP 같은 경우 90년대 초반에 나온 모델이 요즘 것에 꿀리지 않는 음향을 자랑할 정도이다. 이 외에 노이즈 캔슬링[70]이라든가 CD 고정 기능[71] 본격 도입 등 음향기기 쪽으로는 네임드이다. 그 밖에도 이른바 찍찍이라고 하는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72], 디지털 보이스레코더[73], 휴대용 라디오, 탁상용 오디오도 아직도 꽤 쓸만하다.

오디오 전성 시대의 앰프, 튜너, 턴테이블 데크, CDP 성능도 아주 좋다. 소니 개발진 특유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타사에 비해 소니만의 컨셉을 담아 내어 제작하였고, 당시 전성기 시기였던 회사의 지원 아래 특주한 부품들을 많이 사용해 물량 투입을 많이 한 아주 훌륭한 소니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물량 투입이 문제가 되어 수리비가 많이 나오거나 소니 특주품의 호환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등의 단점이 있다.

파일:external/e860150864b0f16f45179ffbe86c01973606b4eff1a5e7d5c68f28ebca7b8f1c.jpg
소니의 유명한 이어폰으로는 MDR-E888이 있다. 무려 16년 간 생산되었다.

이쯤이면 장수만세이다. 내구성은 말이 많지만 소리 하나는 기가 막힌 제품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이어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픈형 이어폰 입문기로 최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다만 좋은 해상도와 달리 공간감은 그다지 좋지 못하며, 저음역에서 퍼지는 듯한 음색도 호불호가 갈린다. 단단하고 청량감있기보다, 부드럽고 따뜻하여 듣기에 편안하다. 2012년 태국홍수로 인해 e888 생산라인이 위기에 처하면서 드디어 단종되었다. 역시 단종을 밥먹듯이 하는 소니 이로써 오픈형 이어폰 최장수 떡밥은 끝났다.[74]

편의점에서 파는 몇천 원짜리부터 시작해서 수백만 원대의 고급 리시버까지의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었으며, 2010년 이어폰, 헤드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음향기기 브랜드로서는 Beats와 함께 한국내 인지도가 가장 높다. 특히 콩이어폰이란 이름으로 2005년에 출시된 MDR-E10LP은 값이 저렴하여 국민이어폰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예전엔 지하철 같은 데 가보면 그 이어폰 착용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75] 그 이어폰의 줄 재질은 처음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2009년경부터 개선된 듯하다. 현재는 MDR-E10LP가 단종되고 소형화, 색상을 보다 다양화한 MDR-E9LP가 판매 중이다.

실제로 소니 이어폰, 헤드폰은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평균 이상의 소리를 내준다. 다만 그만큼 짝퉁이 많으니 정품을 꼭 확인하자.[76] 스튜디오용 헤드폰으로도 자주 선택받는다. MDR-V6, MDR-7506과 MDR-CD900ST가 대표 기종이다. 한편 2010년 이후 소니가 매우 공격적으로 고급 이어폰 시장에 나서고 있다. 2년 사이에 여러 종류의 고급 기종을 내놓은걸 보면... 흠좀무. 근데 시장 1위 탈환은 이미 무리가 된 것 같다. 이쪽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미 오픈형 이어폰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는지라 인이어 타입을 노려야 하는데 소니가 인어어 타입에 신경쓰지 않는 동안 미국쪽 회사들이 강하게 치고 간지라...

2012년 시즌을 맞이하여 소니는 인이어 이어폰과 헤드폰에서 주목할 만한 신 제품군을 발표하였는데, 이어폰에서는 소니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시장의 대세 유닛인 밸런스드 아마처(BA)를 독자 개발하여 탑재한 XBA 시리즈를, 헤드폰에서는 아래의 소니 뮤직과 전자부문이 협력하에 헤드폰인 MDR-1R을 발표하였다. XBA 시리즈의 경우 고음 트위터의 성능과 음색이 문제시되기도 하였으나 과감한 가격 정책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보급형 모델인 XBA-1은 한국 시장에서 BA를 사용한 소니의 최첨단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5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이어폰에 금액을 투자하려는 입문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MDR-1R의 경우 하이파이적인 음색과 편안안 착용감으로 헤드폰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게시판 및 리뷰 사이트에서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MDR-1R의 개발자는 아까 말한 그 전설의 E888를 개발한 그 사람. 1R기반으로 노이즈 캔슬링이 추가된 헤드폰도 있는데 1R보다 좋다.?! 유닛사이즈도 50mm로 1R보다 10mm크다. 2013년에는 중고음 재생에는 BA를, 저음에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이어폰(XBA-H1, H2, H3) 제품군을 출시하였으며 가격대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2014년에는 MDR-1R의 후속 기종인 MDR-1A를 내놓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플래그십 2종을 출시하였다. 또한 2018년에는 MDR-1A의 후속 기종인 MDR-1AM2를 내놓았다.

유선만이 아니라 블루투스 헤드폰/이어폰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소니는 자체 개발한 무선 오디오코덱인 LDAC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MDR-1A의 블루투스 파생형인 MDR-1ABT를 출시했고, 하반기에는 히어온, 히어인, 히어인 노이즈캔슬링 등의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h.ear(일명 아이유 헤드폰/이어폰) 시리즈를 출시했다. 2016년엔 히어온의 무선/노캔 파생형인 히어온 와이어리스 NC와 히어인의 무선형인 히어인 와이어리스를 출시했다. MDR-1000X 등 플래그십 헤드폰 제품군에도 신경을 써왔는데 2018년 출시한 WH-1000XM3는 최강의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무선/블루투스 스피커 쪽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기준 28%로 무선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 2014년 출시한 SRS-X1, X2, X3, X5, X7, X9에 이어 2015년엔 상품성을 개선한 SRS-X11, X33, X55, X77, X88, X99를 출시했다.[77] 2016년엔 기존에 있던 헤드폰 라인업인 엑스트라 베이스(XB)의 블루투스 스피커 SRS-XB2, XB3와 h.ear 시리즈의 블루투스 스피커 히어고가 동시에 출시 되었다. 고급형 거치형 모델 SRS-ZR5, ZR7도 출시했다.

애플이 소니에게 음향기술 제휴를 하자고 한적이 있지만 소니가 거절했다거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견제를 위해 제휴를 할려고 했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2010년 즈음에 돌던 루머였는데, 그 후 애플과 MS는 자사 음향기기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소니와 이쪽 분야에서 경쟁관계가 되었다.

2015년 들어 갑자기 멀쩡한 제품 잘만들던 소니가 돌연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역대급 어그로를 이끌어낼 소식이다.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기 보단 SD카드 재고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사실 소니는 오래전부터 음향분야에서 덕력을 뽐내던 기업으로 알려져온 기업이다.

하이레졸루션 오디오 워크맨인 ZX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경쟁 기종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리버의 아스탤앤컨이 일본 시장에서 선전하자 맞불을 놓을 목적인듯 하다. 다만 그 광고 내용이 황금귀들이 하던 주장들이랑 맞먹는 것들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SD카드 도료드립 등) 이 또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상당한 어그로를 끌 것이라 예상된다. 100NW-ZX100의 공식 제품 설명 제품의 상세설명을 살펴보자. 이게 정말 대기업이 제품 선전할때 쓸 문구인가 싶은 것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고음부가 다소 약하다든가, 강철은 저음이 강렬하고 고음이 구리보다 작다든가, 황동은 저음이 웅장하다든가

이제는 돈 욕심이 제대로 오른건지 MDR-1A에서 그동안 오디오 회사들 사이에서 터부시 되던 고급케이블을 대놓고 콜라보레이션 까지 하면서 팔고 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소니에 대한 악영향이 크리라 예상된다. 이 때문에 소니를 소니 교주님으로 부른다 카더라

파일:external/m1.awokcdn.com/c023d8d21d524c8ab11c135dcc9dd130.png
Xplōd라고 불리는 소니의 차량용 오디오 브랜드도 있다.

네트워크 워크맨 및 일부 헤드폰/이어폰(말레이시아산)은 소니 말레이시아 직영공장에서, 라디오와 보이스레코더 및 일부 MP3P(중국산)는 일본 도와다오디오사의 중국공장에서, 탁상용 카세트와 일부 헤드폰/이어폰(중국산), (액티브) 스피커는 중국 Daidong-Zegna사(참조)에서, 일부 헤드폰/이어폰(태국산)은 소니 태국 직영공장에서 생산된다.

2017년 후반기 출시 제품부터 음향기기 모델명 앞부분의 작명 방식이 바뀌었다.
  • 2017년 9월 이전
    • BA 이어폰: XBA
    • 기타 모든 이어폰/헤드폰: MDR
  • 2017년 9월 이후
    • 유선 헤드폰: MDR
    • XBA 시리즈: XBA
    • 유선 커널형 이어폰: IER(In-EaR)
    • 무선 헤드폰: WH(Wireless Headphone)
    • 무선 이어폰: WI(Wireless In-ear)
    • 코드리스 이어폰: WF(Wireless codeFree)
    • 커스텀 이어폰: XJE(X Just Ear)

4.2.3. 카메라

파일:SONY_white.png
소니 디지털 카메라
알파 마운트E 마운트 사이버샷
DSLRSLT렌즈바디 (APS-C / 풀프레임)렌즈 (FE / E)RXHX

파일:external/www.chip.de/02-bfa1a833caeac650.jpg
Sony Alpha 7 II

파일:external/www.techgoondu.com/image007.jpg


α시리즈와 RX시리즈, QX시리즈, 사이버샷 시리즈가 있다. 렌즈교환형 카메라 시스템인 α시리즈는 2017년 기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1위를 차지하고있다.

참고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회사는 코닥이지만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시킨 회사는 소니다. 1981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디지털 카메라인 마비카 시리즈를 발매한다. 당시 저장장치는 지금 보면 우습게도 3.5인치 플로피디스크...

80년대에는 마그네틱 비디오 카메라의 약칭인 마비카라는 브랜드로, 90년대부터는 사이버샷이란 서브 브랜드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 있고, 제품 대부분에 유명한 독일 칼 자이스 렌즈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가전 회사란 이미지가 강해 전문가들에겐 같은 일본의 니콘, 캐논, 올림푸스 같은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이어져 온 광학 기기 전문 회사 제품에 인지도에서 한참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탄탄한 설계기술로 이름이 높던 미놀타의 카메라 사업부문을 2006년 고스란히 인수하고 기존의 칼 자이스 렌즈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DSLR에 도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이후 기존 DSLR의 단점인 움직이는 거울을 고정식의 반투명 거울로 대체한 DSLT 시리즈를 내놓아 니콘과 캐논의 파이를 조금씩 뺏기 시작해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의 양대산맥인 캐논니콘의 아성을 넘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2010년 이후 미러리스 방식의 NEX시리즈와 DSLT방식의 히트로 인해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의 파나소닉과 올림푸스를 제치고 니콘마저 넘어서고, 미러리스 덕분에 판매가 줄어든 DSLR을 살리고자 카메라시장의 선두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최악의 성능을 보여준 미리러스(EOS-M)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DSLR로 돌리려는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캐논마저 넘보더니, 2014년 1/4분기 이후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였다. 특히 2013년에 출시된 첫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2016년 현재에도 어느 회사에서도 만들지 않았거니와[78] 고급렌즈들도 서서히 늘려가고 있다. 한마디로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거듭나고 있다.[79] 물론 전체적인 시스템을 따지면 여전히 밀리지만 미러리스가 차세대 카메라이고 기술발전에 따라 미러리스도 많이 발전되는 반면 DSLR은 여전히 이젠 발전할 만한 부분이 없거니와 오히려 미러리스가 앞서가는 만큼 미러리스를 선두하고 있는 소니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마이크로 포서드 진영은 APS-C 타입의 센서를 장착한 소니의 제품들과 충성고객이 많아 그럭저럭 판매량이 나오는 삼성의 미러리스 제품들에 밀려 도태되는 중이며(하지만 삼성이 카메라 사업부 철수를 선언하면서 더 이상 삼성에서 카메라를 생산 안 한다.) 컴팩트 카메라 부문에서는 소니의 RX-100 시리즈가 연달아 히트하며 하이엔드 디카 중의 왕좌를 차지해 캐논과 니콘의 도전을 받는 챔피언의 위치에 고수하고 있다. 또한, 소니의 이면조사 방식의 센서는 디지털카메라를 넘어 고급형 차량용 블랙박스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앞다투어 채택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스마트폰의 대부분은 소니의 센서를 사용한다고 봐도 된다. 이 부분은 반도체 문단을 참고.

SIPS라는 VIP 케어제도가 있다. 더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4.2.4. 캠코더 및 방송영상장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deo_8_1985.jpg
1985년 발매한 첫 핸디캠 CCD-M8

파일:external/corporate.visuals-switzerland.net/sony-pmw-150-xdcam-handheld-camcorder.jpg
소니의 전문가용 캠코더

소니의 방송장비 사업은 상당히 이른 1958년부터 시작하였다. 1958년 당시의 주력 방송장비는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방송장비 사업부는 아츠키 테크놀로지 센터 (카나가와현 아츠키시)에 있다. 현재 전자제조업에서 몇 안되는 소니가 1위를 차지하는 분야 중에 하나다. 소니의 방송장비는 일본의 코사이 테크 (시즈오카현 코사이시 소재)에서 생산된다. 컨슈머 제품과 달리 일본 생산을 고집하는 건 방송장비 특성상 높은 품질과 신뢰성이 요구되기 때문. 1985년 최초의 가정용 캠코더 CCD-V8을 출시했으며 같은해 공개된 CCD-M8이 핸디캠 상표를 단 최초의 캠코더다.

캠코더 및 방송장비는 전통적으로 소니가 앞서나가고 있는 분야로 특히 휴대용 방송 카메라, 소비자용 캠코더 분야는 전세계 1위로 경쟁자가 거의 없을 정도며[80] 2017년 현재 방송용 캠코더, 가정용 비디오 캠코더(핸디캠, Handycam)의 전통적인 강호로 불린다. 방송용, 특히 휴대용 방송 캠코더는 그냥 알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독점에 가까운 상태고, 테이프 포맷으로서 소니 베타캠 라인이 사실상 표준이며 제품으로도 업계 1위며, 방송용 카메라 중에서 3D에 꽤 빨리 열을 내고 있다. 스튜디오용 방송 카메라도 소니가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으나 최근에는 캐논 등 다른 회사의 점유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영화 아바타를 제작할때 소니에게 직접 카메라 제작을 의뢰하여 캐머런 감독 전용 시네알타(CineAlta) F23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만 영화용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는 시네알타(CineAlta)라는 전문브랜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레드, 독일의 아리 등이 워낙 강세여서 쉽게 기를 펴지는 못하고 있다.[81] 소니는 카메라와 레코더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것을 고안하고 캠코더를 만들어냈으며, 캠코더 자체의 용어가 소니의 직원들이 만들어낸 상표라고 한다. 처음에는 캠코더를 상표로 사용했으나 이후 보통명사화되자 소비자용 부분에서는 1985년 핸디캠 브랜드를 소개하였다.

이후에도 계속 이 분야를 선도하여 1995년에는 세계 최초 DV 형식 캠코더 CCD-VX1000를 공개했으며, 1999년에는 최초의 디지털 방식의 캠코더 TRV310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 HDV1080i 호환형 캠코더 HDR-FX1를 출시하며 캠코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캠코더는 소니가 설계부터 모든 부품생산 그리고 완제품 생산까지 일원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82] 최근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캠코더 시장이 축소되자 소니는 프로젝터 기능을 포함한 캠코더를 내놓는 등 제품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UCC를 겨냥한 블로기 브랜드도 런칭 중이다. 다만, 방송장비 시장은 원래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분야이니 소니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 주는 분야이며, 최근 방송장비 시장이 전면 디지털화 및 4K(UHD)로 전환하면서 수익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액션캠에도 뛰어들고 있는데이미 선점하고 있는 고프로에 비해서는 2등라인이었다 한국에서 고프로를 뛰어넘는 시장 과반수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015년 CES에서 세계 최초의 4K 액션캠을 발표하며 입지를 굳히는 중이다. 과거 액션캠 업계를 독점하고 있던 고프로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후발주자인 소니는 액션캠 업계에 늦게 뛰어든 것에 비해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하여 선두주자인 고프로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깎아먹고, 그 동안 쌓아온 카메라 이미지 센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샤오미 등의 후발주자를 따돌리는 중이다. 고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력이니만큼 고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격까지도 갖추고 있지만 돈값을 한다는 게 중론. 소니의 액션캠에 관한 것은 소니 액션캠 문서 참조.

샤오미의 액션캠은 출시 당시에는 엄청난 가성비로 주목을 끌었지만 샤오미의 카메라 기술력과 노하우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적지 않게 발견되어, 지금은 돈을 더 주더라도 고프로나 소니 액션캠을 구매하라는 분위기다. 샤오미의 액션캠에 관한 것은 샤오미 Yi 액션캠 항목 참고.

캠코더 이외에도 비디오 믹서, VCR 나 모니터 제품도 유명하다. 가격은 매우 고가이지만 안정성과 성능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많이 사용한다. VCR로는 아날로그 시절의 베타캠과 디지털 베다캠이 유명하다. 가정용 장비에서는 저화질이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보급되었던 VHS규격에 밀려났지만 고화질을 필요로 하는 방송 분야에서는 많이 사용되었다. 이후 규격으로는 HD급의 녹화가 가능한 HDCAM이 있다.

전문가용 모니터도 유명하다. 특히 BVM시리즈 모니터는 트리니트론 CRT를 적용했기 때문에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최고의 화질로 유명해서 방송국에서의 퇴역 이후에도 일부 고전게임 동호인 사이에서도 평가가 높은 제품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부분 LCD 모델로 교체되었지만 CRT모니터 중 HD급 모델 일부는 아직도 방송국에서 사용한다. 최근에는 OLED를 적용한 신제품을 주력으로 생산, 홍보하고 있다. 이런 전문가용 모니터에 들어가는 패널은 TV, 스마트폰 등과 달리 소니가 일본 공장에서 직접 한땀한땀 주문생산하고 있다.

파일:external/688234e24ba7a329334dbdb3042a9617aa4eb8d0071c792e33d36db7e8e7eacf.jpg
이 전문가용 모니터로 의료시장에도 진출했다. 사진은 소니의 4K OLED 의료용 모니터. 이 분야의 또다른 전통의 강호인 EIZO와 경쟁하고 있다. 현재는 올림푸스와 함께 의료산업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상태이다.[83] 참고로 소니가 내놓는 이런 전문가용 모니터들은 돈 많은 사람이건 관련 직종종사자이건 상관없이 '개인'을 대상으로 판매하기보다는 방송국, 영화 스튜디오, 대형병원 등지에 팔거나 임대를 해주는 것이라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정도냐면 24인치짜리 모니터 하나에 한화로 1천만원은 우습게 넘어간다(!)애플이 이거보고 배웠나보다

전문가용 음향기기도 제조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젠하이저, 슈어, 하만같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넘사벽급으로 유명하다. 음향쪽은 마이크는 젠하이저나 슈어, 믹서나 프로세서는 스튜더, DBX, 렉시콘같은 하만계열을 많이 사용한다. 주로 소니는 방송 음향쪽을 공략하는 편.

파일:external/aa8356c13ef7c4addf6189917f283fdbf4ad73a8d1b0ea812e29620e373b580e.jpg
소니의 LcoS 프로젝터
파일:external/3027cade9d975515fc561c0b2b23a474ed9dd3c849a170aad28c63ff23668f42.jpg
소니 영화상영용 프로젝터

프로젝터와 영사기와같은 기업용 테크놀러지를 포함하는 부문에서도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DCP 영사시스템용 4K 이상급 프로젝터는 영사기 전문 브랜드인 크리스티사의 프로젝터와 소니의 프로젝터가 양분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핵심 부속인 4K 지원 DLP 칩을 생산량의 한계로 이 두업체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84][85] 대형 스크린에서의 선명도, 시스템 안정성과 호환성, 가격적 메리트에서 소니의 강점이 매우 크기 때문. 굳이 단점이 있다면 밝기가 약간 어두운 편이라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화면이 희미하게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국내에서 4K DCP로 상영하는 극장은 거의 대부분 소니 프로젝터를 체택하고있으며 가장 빠르게 4K 전환을 완료한 메가박스는 일부 라이션스관(주인이 따로 있고 이름만 빌려주는 극장)을 제외한 전 상영관을 모조리 소니 프로젝터 시스템으로 깔았다고 한다. 신세계 센텀시티에 위치한 CGV스타리움관도 이것을 사용하는데, 스크린 크기가 크고 아름답다보니 밝기문제로 두개를 구매해 겹쳐서 사용한다고 한다.

4.2.5. 스마트폰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소니 엑스페리아 문서 참고.

4.2.6. 로봇

소니는 과거 갖고 있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 전자업체보다 로봇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1999년 세계 최초의 애완견 로봇인 아이보 시리즈를 공개하였다. 2003년에는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의 달리는 휴머노이드인 큐리오도 공개되었다.

2006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로봇 사업이 중단되어 아이보 등의 제품들도 모두 단종되었다. 그러나 2017년 아이보 신모델을 공개하면서 로봇 사업에 재진출했다.

4.2.7. 반도체

반도체 자회사인 소니 세미컨덕터에서 CMOS(이미지 센서)를 생산하며, 2018년 매출 기준 점유율 49.5%로 세계 1위이다. 원가 후려치기로 유명한 애플iPhone 4까지의 옴니비전이나 도시바의 센서 대신 iPhone 4s에 처음으로 채택한 이래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아이폰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이며, 삼성전자도 2019년까지 플래그십 제품들에 여전히 소니의 센서를 사용하고 있었으나[86] 2020년부터는 자사의 센서로 대체할 예정이다.

소니는 기업상대로 반도체를 공급하는데에 주력하는 '반도체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카메라 등 자사제품에 쓰이던 것이었으나, 2009년 본격적인 상품화를 위해 '엑스모어(Exmor)'[87]라는 브랜드로 CMOS 모델들을 통합하였다. 삼성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2017년 '아이소셀(ISOCELL)'이라는 브랜드로 자사의 이미지 센서들을 통합하였다.

2017년 1조 8천억원의 영업이익이 이미지센서에서 발생하는 등 소니에게 있어 금융, 게임 부문과 함께 효자 사업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까지처럼 타 경쟁자들의 추격을 계속 따돌릴 수만 있으면 앞으로의 시장 전망은 밝다. 이미지 센서는 말 그대로 기계의 눈이나 다름없고,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 드론 등 미래산업 전반에서 필수불가결한 부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2018년부터 막대한 투자와 함께 DRAM 라인까지 전환해가면서 추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4.2.8. 기타

파일:external/img13.deviantart.net/my_first_sony_by_must_destroy_monsta.jpg


My First Sony 광고 영상

1980년대 소니 아메리카에서는 북미 지역에 My First Sony라는 소니 제품을 모티브로한 유아용 장난감을 발매하기도 했다.더 많은 차세대 공대생을 배출하도록 돕는 장난감 제품 표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색깔을 넣은 플라스틱과 몇 가지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을 빼고는 실제 제품과 차이가 없었고 작동도 했다. 국내에서도 1990년 인켈에서 수입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없던일이 되어버렸다. 이 제품들에는 공통적으로 AVLS(Automatic Volume Limiter System) 이 달려 있어 청각을 보호한다. 당시 신문기사

파일:external/www.bloter.net/sony_clie.jpg
2000년에는 Palm OS를 탑재한 클리에라는 브랜드의 PDA를 발매했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VTv51%2B9iL._SX300_.jpg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일로(mylo, My Life Online)라고 불리우는 개인용 통신기기 제품을 발매하기도 했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지원했지만 전화나 메세지는 지원하지 않았다.(단 스카이프, 이메일등 인터넷을 사용하는 통신은 가능) 처음에 발매했을때는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아이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파일:external/www.gadgetreview.com/sony-prs-700-touchscreen-ereader.jpg
소니 리더라는 전자책 브랜드도 있는데 전자 종이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전자책 단말기를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소니였다. 하지만 적자 누적으로 인해 전자책 시장에서는 사실상 철수했고 A4 종이 사이즈의 전문가용 전자책 단말인 디지털 페이퍼를 발매하고 있다. 무려 600달러에 달하는 가격과 제한된 기능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10인치 기준 약 240그램에 불과한 무게와 실제 노트를 쓰는 것과 유사한 필기감 등이 장점이라고 한다.

파일:external/www.virtual-reality-shop.co.uk/Sony-PLM-A35-Glasstron-2.jpg
소니 글래스트론

파일:external/www.valuewalk.com/Sony-SmartEyeglass.jpg
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

창의적인 기술 개발을 중시하는 사내 분위기에 따라 소니 글래스트론으로 불리우는 HMD사업에 1992년부터 진출했다. 글래스트론이란 명칭은 사라졌으나 현재도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2014년에는 스마트 안경인 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라는 제품도 발매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salestores.com/ICFC218BLACK.jpg
소니 드림머신이라는 알람 시계 라디오도 유명하다. 1950년대 부터 발매된 ICF시리즈를 모태로 한 진정한 소니의 역사를 함께한 브랜드.[88]

파일:external/i.kinja-img.com/18s00s1ll629cjpg.jpg
파일:external/www.gogi.in/Sony-Micro-Vault-Click.jpg
Micro vault이라는 저장장치 브랜드도 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영화나 일본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는편.
4.2.8.1. 2차 전지
파일:external/www.sonyenergy-devices.co.jp/img_corporation_02.jpg
소니에서 생산했던 리튬이온 배터리

파일:external/techielobang.com/CP-V3-USB-Portable-Charger.jpg
일반 소비자에게는 Cycle Energy라고 불리우는 충전지나 외장 배터리 등도 유명했다.[89]

소니의 2차전지(배터리) 사업은 1975년 미국의 Union Carbide Corp사와 합작으로 설립되어 시작되었다. 1986년 소니에서 모두 지분을 인수한후 소니 에너지텍 주식회사가 되었다. 2차 전지 분야에서도 소니는 위에 서술된 워크맨, 트리니트론처럼 혁신적인 일을 해내게 되는데, 1990년 리튬이온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양산했기[90] 때문이다. 이후 2000년대 초 산요가 추월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리튬이온전지 생산기업이었으나 2006년 소니 리튬이온 배터리의 중대한 결함(소위 노트북 배터리 폭발 결함)으로 전 세계 IT 기업으로 납품된 960만개의 제품을 리콜하면서 그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세계 4위권으로 추락하였다. 이후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했다.[91] 배터리 폭발과 같은 중대한 결함이 있었으나 당시 소니 배터리의 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였다고 한다. 이후 소니 배터리는 용량을 늘리기보다는 안정성을 늘리는 보수적인 설계방향으로 선회했고, 그래서 엑스페리아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용량은 타사 경쟁기종 대비 적은 편이다. 그리고 훗날 삼성은 반대로 밀도를 높여서 용량을 키우다가 대형사고를 한번 치게 된다. 사고 후에도 애플 등에 계속 납품하는 등 사업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일본에서는 산요를 인수한 파나소닉이 강자로 떠올랐고 삼성SDI, LG화학 등의 한국 메이커들, 그리고 중국산 배터리 제조사들이 본격적으로 치고 들어오면서는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이후 폭발가능성이 있는 리튬이온전지를 대체할 전고체 2차전지의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까지 양산을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기존 코발트산 리튬 대신에 소니는 유황 화합물을 양극으로 채택하였고 유황 화합물이 녹아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해질을 참가하여 충방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니의 재무상황이 악화되고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2016년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주식회사의 리튬이온, 알칼리 전지 사업부를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과 싱가포르에 있는 배터리 공장 등 관련 자산, 인력을 모두 넘긴다는 조건이다. 거래 금액은 175억엔(1,864억 1175만원 정도). 두 회사는 오는 10월까지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하고, 2017년 3월까지는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2017년 9월 거래가 마무리되었다. 링크 기술개발, 생산부서가 아닌 마케팅, 소매 판매 사업부는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에 그대로 남아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OEM 제품 판매를 계속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삼성은 위에 언급된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를 낸 후 갤럭시 S8부터는 안정성을 고려해 기존의 공급사인 삼성SDI에 더해 소니의 배터리를 채택했다. 마침 소니가 무라타에 사업양도를 막 시작했던 때에 이런 일이 터진거라 업계에서는 사고가 조금만 일찍 터졌거나 매각이 약간만 지연됐더라면 소니 배터리사업부의 인수자가 삼성이 됐을 것이란 소리가 돌았다고. 양도가 완료되고 나서는 당연히 무라타가 이어받아 계속 납품해왔으나 2019년 갤럭시 노트10부터는 해당 물량이 LG화학으로 대체되었다.
4.2.8.2. PC[92]
파일:external/o.aolcdn.com/?url=http%3A%2Fwww.blogcdn.com%2Fwww.engadget.com%2Fmedia%2F2012%2F06%2Fsony-vaio-z-series-spring-2012-445-tall.jpg
소니 시절 마지막 바이오 Z (2011년형)

파일:external/static.frazpc.pl/27893bc9ec5679f8.gif
2003년 발매된 바이오 X505의 모습 당시에 혁신적으로 앏아 2008년의 맥북 에어와 두께로 맞짱을 뜰 정도다.하지만 배터리가 있는 힌지 부분은 엄청 두껍다


소니 시절 바이오 Z (2011년형) 광고

VAIO(바이오)라고 불리는 소니의 컴퓨터 제품은 1996년에 첫 발매되었다.(일본에서는 1997년 발매) 이전에 소니는 1980년대부터 NEWS라고 불리우는 워크스테이션을 발매하고 1990년 PTC-500이라는 16비트 Palmtop PC를 만든 전적도 있었고, 애플의 파워북의 개발과 생산에도 깊게 관여 했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자체적으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따라 당시 이데이 노부유키 CEO의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에 일환으로 1995년 PC 시장에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노트북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데스크탑 기종도 포괄한다.[93] 노트북 시장에서 후발주자인데도 불구하고 고급화, 특성화 전략으로 일본 시장에서 한때 1위를 먹은 적이 있었으며 이후로 전 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주요 업체로 부상했다. 소니 바이오 노트북은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스펙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고급 노트북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94]

2001년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소니 사장이던 안도 쿠니타케와 골프회동을 하면서 VAIO 노트북에 Mac OS를 탑재한 모델을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VAIO에 맥 OS를 깔아서 구동하는 것을 직접 그자리에서 시연도 해줬다고. 그런데 한창 VAIO의 성공에 취해있던 소니는 애플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애플 맥북을 위시한 고급 노트북 시장의 트렌드를 쫒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덕에 예전의 명성을 잃었고, 결국 일본 생산 시설을 포함한 PC 사업 부분을 다 매각해 버림으로써 소니는 컴퓨터 사업과 연을 끊었다. 매각 이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니/노트북 제품목록VAIO 문서 참조.

AS센터가 각 지방마다 있는데 제주도는 AS센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 수리가 안된다고 한다.
4.2.8.3. 전용 규격 집착
이 회사는 특이하게 독자적으로 자기네 전용 규격을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며, 자사 제품에는 무조건 자기네가 만든 규격의 미디어를 주로 탑재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게 잘 풀리면 돈방석에 앉지만 잘 안 풀리면….

파일:external/www.minidisc.org/sony_mzr55.jpg
Sony MD 레코더 MZ-R55

대표적인 것이 베타맥스하고 UMD, 그리고 MD 플레이어. 베타맥스VHS에게 발리고[95], UMD는 정말 소니만 사용하는 표준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미니 디스크는 1990년대 말 일본에서는 꽤 쓰였고 샤프, 파나소닉 등 여러 회사에서 만들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외에도 더 있다. i LINK, 메모리스틱이며, 여러가지 등등.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전용 표준이나 실패작들은 수확 체증 법칙으로 인한, 시장 선점의 실패 및 그에 걸맞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대부분. 독자 규격 제품 자체는 성능이 특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회사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같다.

그리고 소니가 내세운 표준매체 관리 전략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도 중요하게 지적받는 실패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용 플레이어 독점 정책이기도 했지만 정책 중에 성인용 컨텐츠 진입 불가 정책이 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성인물 제작자들이 베타맥스를 포기하고 VHS로 성인물을 제작해 전세계로 판매했다. 베타맥스VHS에 밀린 것은 사실상 이것이 가장 큰 원인. 소니는 뉴미디어의 가장 위력적인 전파 수단은 성인용 컨텐츠라는 것을 간과했다.[96] 이것을 교훈삼아 훗날 소니가 앞장선 규격 중에 표준으로 선정된 블루레이 역시 성인용으로는 출시할 수 없다고 공개적인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성인물 제작에 대해서 아무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어 보급을 망치는 일을 피했다.

파일:external/monitor.net.ru/memst_161.jpg
메모리스틱의 경우는 플래시 메모리류 제품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초기에 비싼 가격으로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였는데, 사실 소니는 시장 선점의 기회가 있었다. PS2의 저장 매체로 메모리스틱이 검토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보다 훨씬 크고 비싸고 용량 적고 게임 데이터 저장 이외에는 쓸 수 없는 PS2 전용 메모리 카드가 채택되었다. 이는 SCE와 다른 계열사간의 관계가 안 좋아서 그랬다고...[97] 만약 PS2의 저장매체로 메모리스틱이 사용됐다면 아마 지금 모든 디카는 SD카드가 아니라 메모리스틱을 사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98]

파일:external/farm8.staticflickr.com/6572286971_bb72a3bf16_z.jpg
이외에 대표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PS Vita의 경우 UMD의 실패를 교훈삼아 표준규격을 도입하는가 했는데, 또다시 비타만의 독자규격을 무려 세가지(!)나 탑재하고 돌아왔다. 오로지 PS Vita에서만 쓰이는 전용 충전포트와 마이크로 SD카드보다 아주 약간 더 작은 비타 전용 메모리카드, UMD 슬롯을 제거하고 도입한 SD카드만한 비타 전용 카트리지다. 상기 이미지의 맨 왼쪽부터 비타용 게임 카트리지, SD카드, 비타 전용 메모리 스틱, MicroSD다. 그나마 충전포트의 경우 2세대가 나오면서 표준규격인 마이크로USB로 바뀌었다. 사실 게임 카트리지의 경우 표준규격으로 만들면 불법 복제에 취약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독자규격이라고 깔 건 못 되지만 문제는 전용 메모리카드이다. 성능은 MicroSD에 비해 떨어지는 주제에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 심지어 1세대 기기는 저 비싼 메모리카드를 안 사면 세이브 데이터 저장조차 불가능했으며 2세대부터는 내장메모리를 1기가 탑재하여 세이브는 가능해졌지만 용량이 큰 게임 업데이트는 메모리카드를 안 사면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반면 이러한 표준매체 관리 전략을 쓰지 않은 매체는 대부분 성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발표한 3.5인치 플로피디스크이며, CD, DVD 매체 역시 성공사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의 힘으로 블루레이HD-DVD를 제치고 업계 표준이 되어 버렸다.[99][100]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대의 현대인들은 1테라(1,000기가) 하드가 6만원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101] CD나 DVD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1테라짜리 내장/외장 하드 하나블루레이의 고용량 규격 중 하나인 BDXL 표준형 100GB 미디어 한 장보다 가격이 저렴하거나 비슷하다.

또한 워크맨 전용 통신포트인 WM-PORT라는 독자규격도 있으나 2019년 드디어 버리고 USB 타입C를 탑재한 워크맨을 발매한다고 한다.

그 외에는 필립스와 공동개발한 NFC 기술의 소니 독자 표준인 FeliCa가 일본과 일부 아시아 지역 한정으로는 범용규격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에서 발매되는 스마트폰들에는 거의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나오며 2017년 이후 출시되는 iPhone에는 전세계 모델에 공통으로 탑재된다.

4.3. 금융

일본싱가포르에서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를 주축으로 하는 금융업과 보험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리타 아키오가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때 금융회사들의 마천루 건물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79년 미국 푸르덴셜 생명과 합작으로 소니 생명보험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소니의 금융업 진출이 시작됐다. 1998년 소니 손해보험, 2001년 인터넷은행인 소니 은행이 설립되고 2004년 설립된 감독회사 및 지주회사인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로 금융 사업이 재편되면서, 금융부분이 소니 사업의 주요 부분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일본 주요 금융기업 중 하나이고, 소니가 2000년대의 한창 힘든 시절을 넘길 수 있게 해준 자금줄이기도 했다.

4.4. 소프트웨어

2003년 미국의 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해 '소니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Sony Creative Software)'를 설립했다. 유명한 제품으로는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소니 베가스, 음원 편집 프로그램인 'Sound Forge' 등이 있었는데 2016년 'MAGIX Software'라는 독일 기업이 대부분의 제품군을 인수해서 이제는 소니 기기가 대상인 '카탈리스트(Catalyst)'라는 제품군만을 판매하고 있다.

5. 지분구조

2018년 3월 31일 기준 소유자별 지분율 현황이다. 절반이상의 지분은 일본기업과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소유자 지분율
외국인(기관/개인) 57.5%
일본 내 금융기관 22.9%
일본인 개인 외 16.3%
일본 내 일반법인 1.4%
일본 내 증권회사 1.9%
2018년 3월 31일 기준 대주주는 다음과 같다.

1. Citibank as Depositary Bank for Depositary Receipt Holders(씨티그룹)[102] - 9.0%
2.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日本トラスティ・サービス信託銀行)[103] - 6.0%
3.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日本マスタートラスト信託銀行)[104] - 5.8%
4. JPMorgan Chase Bank(JP모건 체이스은행)[105] - 5.0%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이 그렇듯이 특정 대주주가 소유하는게 아닌 일본의 은행, 신탁은행, 기관들이 소수의 지분을 고루 소유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6. 슬로건

소니의 회사 슬로건은 1982년부터 시작되어 여러 광고나 로고 밑에 사용되고 있다. 현재의 슬로건은 BE MOVED이다.

파일:external/cf.juggle-images.com/it-s-a-sony-logo-primary.jpg
1982 - It's a Sony[106]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92d19851.jpg
1995 - Digital Dream Kids[107]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_you_dream_in_sony.jpg
1998 - Do you dream in Sony?

2002 - Ubiquitous Value Network

파일:external/4.bp.blogspot.com/Screen+Shot+2014-04-23+at+18.04.24.png
2005 - like.no.other

파일:external/av.watch.impress.co.jp/sony3.jpg
2005 - Sony United[108]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ony_make.believe_logo_%28Other%29.svg.png
2009 - make.believe[109]


make.believe 소개 영상

파일:external/ihatetomatoes.net/img_be-moved-sony.jpg
2013 - BE MOVED[110]


BE MOVED 소개 영상

7. 한국법인

한국에 있는 소니 관련 법인은 소니코리아, 한국소니전자,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식회사극장배급지점 등이 있다.

여기서 소니코리아와 한국소니전자는 네덜란드의 Sony Overseas Holdings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일본의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가 100%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네덜란드의 SBME Holdings가 100%를,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미국의 Sony Pictures Releasing International이 소유하고 있어, 각 회사간에 지분 연결고리는 없다. 다만, 소니코리아가 홈페이지에서 패밀리 컴퍼니로 소개하고 있다. #

7.1. 소니코리아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 파일:소니 로고.png소니코리아
ソニーコリア | SONY KOREA
}}}
업종명 가전제품 및 부품도매업
설립일 1990년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제금융로 10 서울국제금융센터 24층
대표자 오쿠라 키쿠오
모기업 소니[111]
링크 공식 홈페이지 | 공식 온라인몰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소니 아이유.png

소니의 한국 현지법인으로 컨슈머 제품 및 비즈니스 제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기사 또한 부품 및 소재 판매에서도 적지 않게 매출을 올리는 모양. 1990년에[112] 소니 인터내셔널 코리아로 설립되었고 1992년에 남대문 시장 앞에 있던 어느 빌딩 맨 위 간판으로 소니라고 영어로 큼직하게 달아서 홍보하기도 했으나 일본 기업이 그렇게 숭례문 근처에 이름 내세우는 건 별로 안 좋다는 여론이 있어서 두달도 안가 급히 내렸던 일화가 있다. 그러다가 2000년 4월에 사명(社名)을 소니코리아로 바꾸었다.

하지만 A/S쪽은 별로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고... 소니코리아 A/S센터에 맡기면 십중팔구 부품이 없어서 일본에서 공수해와야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게 기본 2주 이상 걸린다. 특히 일본 내수모델이나 라디오 등 소형 음향기기(특히 단파라디오나 일본내수용 포켓탑 라디오)는 거의 100%다. 그래도 국내 도입 기종이 아니면 부품 수입도 안하려는 파나소닉 코리아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었다. 일례로, 국내에 정발된적이 없는 소니 단파라디오를 수리해줬다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엑스페리아 제품의 경우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출시되었지만 해외에서 구매한 모바일은 수리는 커녕 접수조차 되지가 않는다. 현재는 해당 정책이 바뀌어서 정발 기종이 아니면 수리를 안해준다고 한다 (소니코리아 상담전화).

그리고 무상AS 기간이 끝나면 충공깽한 수리비가 청구된다. 예를 들어, 16만원짜리 블루투스 헤드셋의 나사 하나가 빠졌는데 9만원이 청구된다거나, 19만원짜리 보이스레코더의 내장배터리 교체비용이 9만원이 나온다거나, 분해 수리가 불가능하고 무조건 교환만 가능한 20만원짜리 스마트밴드 톡의 코어모듈 교체비가 18만원이라던지, 타사의 경우 20만원대 초반이 나오는 스마트폰 메인보드 수리비가 혼자서 30만원대 중반인 등 사소한 고장의 경우, 기사가 해당 제품을 점검한 뒤 "그냥 쓰시든지 아니면 차라리 새것을 사시든지 하라"고 충고를 해줄 정도. 타사의 경우 기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대개 부품 수급이 원활치 못한 경우 말고는 거의 없다.

단, 이어폰 쪽은 상황이 좀 다르다. 타사는 초기 불량을 제외하면 무상 A/S 라는 걸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소니는 대부분 제품에서 2년 보증을 실시하고 있다.[113] 정품 스티커와 영수증을 보관한 상태로 외관에 문제만 없으면 단선 등의 문제는 택배비까지 내지 않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 단순하게 이어폰만 신품으로 딸랑 보내주는게 아닌 새 이어폰 박스채로 보내준다. 결정적으로 소비자가 느끼기에 좌우 밸런스가 불균형 하다 라고 느낀 경우에도 교환이 가능하다. 만약 재고가 없거나 단종된 경우 동급의 신형 제품 혹은 약간 상위기종을 선택하게 해주거나, 환불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색이 두가지 이상인 경우 색상의 변경까지도 가능하다. 타회사들은 대부분 동일 모델 동일 색상으로만 교환해주지만 소니는 색상도 바꿀 수 있다. 초기 불량이 아니라 몇 달을 쓴 제품일지라도 아니 1년 11개월 28일을 쓴 제품일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미개봉 신품을 박스나 포장 그대로 보내준다. 참고로 고가형 해드폰은 부품교환이 가능해 수리비 폭탄을 맞거나 무상수리 받거나 둘중 하나이니 주의할 것.

메모리카드나 USB 시리즈의 경우 5년, 2년 이런식으로 보증기간이 잡혀져 있으며, 이어폰 수리처럼 영수증이 있다면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다만 일부제품은 영수증 없이도 되기야 한다.) 다만 메모리 같은 경우에는 수리가 아닌 교환 방식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날라간다. 그래서 수리 접수시, 데이터 포맷 관련하여 동의를 얻고 진행한다.

휴대전화 A/S는 심각하다. 방문수리가 가능한 센터 중 메인 모델인 Z 시리즈, X 시리즈를 A/S 할 수 있도록 방수폰 수리 장비를 갖춘 곳이 압구정과 부산 단 두 곳뿐이었으나, 2019년 한국 모바일 사업 축소 이후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지고 무조건 여의도 본사에 위치한 택배 전담 센터로 택배수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엑스페리아 Z3 출시 당시까지는 TG서비스 용산센터에서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나, 그 지역 이름과 비슷한 정신을 심히 계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용산에 비해 친절했던 압구정 지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압구정 지점은 사람이 미어터졌다. 2019년 현재 소니코리아의 홈페이지에서는 전국 AS가 가능한 것으로 표시되지만, 이는 다 훼이크로, 이전까지 수리를 진행했던 압구정점과 서면점을 포함한 모든 소니코리아 서비스센터나 TG서비스에 제품을 접수하면, 전술한 여의도 본사 소재 접수대행 전담 센터나 해외 수리공장으로 보내서 수리해준다. 홈페이지에서는 SK텔레콤 A/S 센터도 이용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자급제폰 특성상 TG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 다만 전국 A/S가 불가능한 문제는 순전히 방수폰 수리 장비가 없기 때문이기에, 방수가 되지 않는 기종[114]은 타지에서도 수리가 가능하다. 다만 부품 재고를 항시 준비해두고 있는 곳은 여의도 본사뿐이기 때문에, 타지에서는 접수 즉시 부품을 주문하게 되며, 수리 기간은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그래서 보통 현장수리가 아닌 접수대행을 권유받는다. 단순 접수대행점인 셈. 접수를 타지 센터에서 맡기고 수령은 자택으로 할 수 있는지는 추가바람.

또한 보통 다른 휴대폰 제조사는 보통 무상으로 처리해주는 사항이 유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매우 잦으며, 단말기 가격은 국내 폰에 비해 싸지만, A/S 비용과 소요 기간은 하늘을 찌른다. 상술했다시피 부품 수급 사정이 열악해서, 메인보드와 액정 동시 교체에 최대 2주가 소요된다. 거의 한국 엑스페리아 사용자들은 소니라서, 디자인이 좋아서, 작아서 산 사람들이 많은데, A/S를 받은 후 득도하여 다음에는 삼성이나 애플로 다시 넘어가거나, 아예 A/S는 포기하고 고장나면 새로 산다는 정신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 부분은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괜찮게 서비스를 받았다는 사람도 많이 있는 편. 사실 우리나라에서 전반적으로 외국계 제조사의 서비스 퀄리티는 좋지 않다.

요즘은 콘솔게임기[115] 음향기기(이어폰, 스피커, 헤드폰), 카메라의 A/S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2013년 1월 1일, 소니 모바일의 한국 법인이었던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흡수 통합했다. 2013년 7월 31일, 물류를 담당하는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의 한국 법인인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 코리아를 흡수 통합한다는 소식이 떴다.# 소니 서플라이체인 솔루션즈 코리아는 원래 삼성전자와 소니가 2004년 합작한 LCD 생산법인인 'S-LCD'의 물량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인데, 두 회사가 2011년말 합작사업을 청산하게 되자 소니 본사 측에서도 경영 효율화를 위해 굳이 별도 법인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최근들어 스타 마케팅에 상당히 열을 올리는 추세다. 제일 성공한 사례가 바로 아이유의 MDR라인업 모델기용이다. 광고에 출연시키고 발표회에 출연시키는데[116] 그치지 않고 드라마와 차기 앨범 티저에까지 제품을 PPL하여 젋은 층에서 인지도를 향상시키는데 제법 성공했다. 그때문에 고마웠던 것인지 2019년 현재까지도 아이유를 모델로 유지하고 있으며 종종 아이유 유명 팬 블로그 등을 통해 자사 제품과 아이유의 사진이 들어간 다이어리를 비롯한 각종 답례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엑스페리아도 스타 마케팅을 많이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소니스토어 오프라인 매장은 원래는 명동점, 압구정점, 코엑스점이 있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동점과 코엑스점이 정리되면서 한 동안은 압구정점만 남아 있었으나 2017년에 강남역 근처에 강남점을 개장하였고, 남대문시장 근처에도 남대문점을 개장하였다. 다만 수리는 강남점에서는 접수대행조차 해주지 않으니 주의. 압구정점이 멀지 않으니 직접 가는 것이 좋다.

신제품 발표회 때마다 식사 대접을 후하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카메라 발표회의 경우 카메라 테스트 겸 식사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간식거리가 아닌 고급 요리가 항상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카메라 뿐만 아니라 워크맨, 엑스페리아 등 타 제품군의 발표회도 예외는 아닌데, 항간에는 "외식사업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소니코리아도 이 이야기를 모르는게 아니라서, 발표회에서도 농담처럼 언급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18년 9월 20일날 열렸던 MDR-1000XM3 런칭 행사는 동대문의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열렸고 후한 식사대접을 했다.

7.2. 한국소니전자

역시 소니의 한국법인으로서 한국소니전자는 소니코리아와는 별도로 설립된 법인이다. 일본 소니가 1972년 한국에 설립한 제조공장인 한국동양통신공업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시초. 1992년에 10월에 한국동양통신공업과 1973년 설립된 한국SOWA가 합병되면서 한국소니전자로 사명을 변경한다. 본사 및 사업장은 마산자유무역에 위치해 있다.[117] 소니코리아가 수입, 유통을 담당한다면 한국소니전자는 생산 및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CD와DVD의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장치인 광픽업(Optical Pick-up) 등 광학장치와 반도체 부품 등을 주로 생산한다. 단, 한국소니전자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소니코리아가 유통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경까지는 소니 이어폰을 생산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생산된 소니이어폰 중에서 한국제는 여기서 생산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소니의 오디오 역사에서 전설이라고 말해지는 나게노 코지 수석 음향 아키텍트[118]가 과거에 근무한 일이 있다. 현재는 생산만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설계 및 개발까지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영어로는 Sony Electronics of Korea라고 표기한다. 소니그룹내에서는 한국소니전자라는 말 보다는 'SEK'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소니코리아를 부를 때는 'SOK'이다.

7.3.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한국에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하드웨어 및 게임 소프트웨어를 유통하기 위해 세워진 법인으로, 줄여서 'SIEK' 라고 쓴다. 한국에 진출한 소니 중 유일하게 일본 소니에서 직접 세운 회사다.[119]

자세한 내용은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문서 참조.

7.4.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자세한 내용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참고.

7.5.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자세한 내용은 소니 픽처스 코리아 참고.

8. 주요 자회사

주요 자회사 목록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소니 주식회사(지주회사)
    • 소니 EMCS(제품 개발 및 일본내 생산 총괄, 일본 내 A/S 담당)
    • 소니 마케팅 (일본 내 소니 컨슈머 부문 마케팅 담당)
    •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 (물류)
    •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모바일)
    • 소니 아메리카
      • 소니 일렉트로닉스 (전자제품)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음악)
        • 컬럼비아 레코드
        • 에픽 레코드
        • RCA 레코드
        • 좀바 레이블 그룹
          • 아리스타 레코드
          • 라페이스 레코드
          • 자이브 레코드
        • Legacy Recordings
        • Sony Music Nashville
        • Provident Music Group
        • RED Distribution
        • Syco Music
        • Sony Music International Companies
        • Sony Masterworks
        • 소니 뮤직 마케팅(SMM, Sony Music Marketing)
        • 소니 뮤직 한국(SMEK, Sony Music Entertainment Korea)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SPE)(영화, TV)
    •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월드와이드 스튜디오(SIE, 게임)
    • 소니 뮤직 일본(SMEJ, Sony Music Entertainment Japan)
      • 소니 뮤직 레이블즈(SML, Sony Music Labels)
        • 소니 뮤직 레코드(SR, Sonic Music Records)
        • 소니 뮤직 엔타테인먼트 레코드(SER, Sony Music Entertainment Records)
        • 소니 뮤직 어소시에이티드 레코드(ASR, Sonic Music Associated Records
        • 에픽 레코드 재팬(ES, EPIC Records Japan) - 에픽 레코드의 일본 회사
        • DefSTAR Records(DEF)
        • Ariola Japan(AOJ) - 舊 BMG Japan
        • 오거스타 레코드 - 오피스 오거스타 소속 아티스트 전용 레이블
        • Little Tokyo - 오다 카즈마사 개인 레이블
        • 큔 뮤직(Ki/oon Music)(KS)
        • 비일상 레코드 - 히토리에 자체 레이블
        • Sony Music Artists(SMA)
        • SACRA MUSIC
        • 뉴컴
        • 스티즈라보 뮤직
        • 뮤직 레인 (Music Ray'n)
        • 뮤직 타블로이드
        • 빌리지 뮤직
      • 애니플렉스 그룹 - 소니 픽처스 일본과 소니 뮤직 일본이 반반씩 출자해 세워졌으나 나중에 소니 뮤직 일본의 완전한 자회사가 된다. 지분의 100%가 소니 뮤직 일본소유.
        • 애니플렉스
        • 애니플렉스 플러스
        • 애니플렉스 모바일
        • 애니플렉스 오브 아메리카 - 애니플렉스 미국법인.
        • A-1 Pictures - 위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애니플렉스의 출자로 만들어졌으며, 지분의 100%가 애니플렉스 소유다.
      • 소니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츠 - 주로 캐릭터 라이센스를 담당하는 회사이다.
    • 소니 픽처스 일본(SPEJ)
    •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금융)
      • 소니 생명
      • 소니 손해보험
      • 소니 은행
      • 소니 라이프 에이코 생명
      • 소니 라이프 케어
    • 소니 글로벌 에듀케이션 (교육) - 2014년 설립된 소니의 신생 자회사. 새로운 교육 인프라를 선도한다고는 하는데...
    • 소넷트 (투자) - 알게 모르게 소니의 자금 동원에 도움이 되는 회사. 최근에는 통신사업도 시작했다.
    • 소니 올림푸스 메디컬 솔루션즈 (의료) - 소니의 전자기술과 올림푸스의 광학기술이 합쳐지면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회사. 의료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소니가 올림푸스의 주식 상당수를 취득해 대주주에 등극하는 단계까지 갔지만, 최근 주식을 전량 JP모건에 매각했다. 다만 이것이 합작회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듯.
    •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 (구 소니 주식회사 TV 사업부)
    • 소니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소
    • 소니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 코퍼레이션 - 소니 뮤직의 음반 제조 회사
    • 소니 옵티악 - 외장 ODD를 제조하는 회사 2013년에 사업 종료
    • 소니 세미컨덕터 (반도체)
    •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코퍼레이션 (2차 전지)
    • 소니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제작)
    • 소니 비디오&사운드 프로덕트 (구 소니 주식회사 오디오 사업부) - 워크맨과 MDR 등 소니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오디오 사업부도, 히라이 CEO의 분사화 정책으로 신회사가 설립되었다.
    •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 (구 소니 주식회사 이미징 프로덕트 사업부) - 2017년 4월부터 업무를 개시할 예정인 신회사. 소니의 컨슈머&프로페셔널 이미징 사업부가 분사된것으로,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의 출범과 함께 소니 그룹의 주요 사업은 모두 분사화된다.
    • 소니 홈 엔터테인멘트&사운드 (구 소니 비디오&사운드 프로덕트, 소니 비쥬얼 프로덕트) - 2019년 4월 1일부터 소니 비쥬얼 프로덕트와 소니 비디오&사운드 프로덕트가 통합되어, 신회사로 발족한다. 대표이사 사장은 원 소니 비디오&사운드 프로덕트 사장의 타카기 이치로.

9. 관련 제품 및 브랜드

10. 관련 인물

11. 비판/사건사고

  • 소니의 지역활동'(Sony for Communities)이라고 쓰인 소니의 판넬에 그려진 세계지도에서 한국이 누락되었고 이걸 아는 사람들에게 비난반고 있다. 사건은 2008년이었고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일이지만, 2017년 시점에서 뒤늦게 발굴되어 까이는 중.링크
  • 2012년 YouTube 조회 부정 문제 기사
  • 2015년 소니 코리아 스텔스 마케팅 기사

12. 관련 문서



[1]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2] 소니 홈 엔터테인멘트&사운드 프로덕트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3]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 주식회사 대표이사 부사장.[4] 7조 8052억엔. 일본 기업 6위[5] 다만 창업자 2명 모두 일본군 해군 장교 출신으로, 태평양전쟁 복무 중 만나게 된 인연이 동업까지 이어진 것이다. 창업 자금은 집안 대대로 양조업을 하던 모리타가 조달했다고 한다. 소니는 도쿄의 조그마한 단파라디오 수리점(정확히는 통신연구소)으로 시작된 기업이다.[6] 1990년대까지는 주로 중후한 느낌을 주는 검정색, 간간히 파란색 계통을 선호했고 이후에는 한때 회색빛이 진하게 도는 은색을 자주 사용하는 등 컨셉이 명확한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업계에선 디자인이라하면 소니는 절대 빼놓지 않았으며, 실제로 디자인 관련 상을 휩쓸기도 했다.[7] 대조적으로 과거 토요타 등 일제 자동차를 모는 차주들은 그리 곱지않은 시선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현재에도 차주끼리 시비가 붙어 감정이 격해지면 일본차라면서 꼬투리를 잡는 일이 종종 벌어질 정도.[8] 보통 전자기업들이 최소 한두번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글씨체의 로고타입으로 바꾸는데 비해 소니의 경우는 50년대부터 디테일한 부분만 바뀐 로고타입이다. 굳이 이런 회사를 찾자면 히타치나 파나소닉 정도. 그런데 거기는 아예 회사이름을 갈았잖아? 자회사였던 아이와가 80년대 이후 두번씩이나 이전과는 180도 다른 글씨체로 바꾼 것과 대조적이다.[9] 비슷한 이유로 마쓰시타전기(松下電氣)가 7, 80년대에 수출용 제품에 파나소닉(Panasonic)이라는 상표를 달았으며, 2008년에는 회사이름을 아예 파나소닉으로 바꾸기도 했다. 물론 후지쯔(富士通 Fujitsu)같이 뜻과 발음이 어렵건 말건 그냥 밀고 나가는 기업도 있다. 그나마 후지쯔는 후지 라는 구미에서 잘 알려진 이름이 들어있어 나은 편이다. 더 복잡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전범기업 이미지까지 있는 MITSUBISHI도 구미한정 이름변경 없이 그대로 MITSUBISHI(三菱)이다.[10] C는 Consonant(자음), V는 Vowel(모음)을 뜻한다.[11] 발상이 비슷한 사례가 코닥필름. 설립자인 조지 이스트먼은 코닥이라는 이름이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하기 쉽다고 하여 이 이름으로 회사를 냈다. ??:コダック...[12] 때문에 당시 일본 제품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렉서스라는 고품격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13] 1990년대 중순부터 "소니는 일본 기업입니다."라고 홍보를 했더니만 해외에서 반응은 그랬냐? 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니도 이젠 일본 기업으로 알든지 말든지 포기했다. 소니 픽처스가 배급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극중에도 '소니가 일본 거(일본 기업)'이라는 대사가 포함되기도 하였다.[14] 이 시점에서부터 RCAGE 등 기존의 진공관 가전의 강자들이 밀려나기 시작했고, 이후 30여년 간 소니의 기술적 우위를 따라잡지 못했다. 때문에 나중에 어려워져서 여러 사업을 정리할때도 적자를 보던 TV는 끝까지 버리지 않았을만큼 소니에게는 각별한 존재이다.[15]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는 코닥에서 만들었다.[16] 이 당시만 하더라도 가전제품의 대명사라고 하면 소니가 대표적인 트레이드마크였다. 전 세계 가정에 소니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을 정도였으며, 당시에 제작된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가전제품의 대부분은 소니였다.[17] 오가 노리오 항목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오가 노리오는 음악가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가전기기들(특히 음향기기)의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그가 은퇴 후 벌인 일이 자신이 와병 중에 요양했던 가루이자와에 음악회당을 건립한 것이었다.[18] 당시에 미국인들은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본이 미국의 문화까지 잠식한다고 경계했다. 컬럼비아 픽처스 문서 참고.[19]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담당하던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는 소니의 경영난으로 2015년 콜럼버스 노바에게 매각되어 데이브레이크 게임 컴퍼니로 변경되었다.[20] 1991년 8000억엔에 가깝던 잉여금이 1994년 말 2400억엔까지 줄어들었으며 소니의 부채 규모는 1조 500억엔까지 증가했다.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 CEO는 취임하자마자 자회사에서 뛰어난 회계능력을 발휘하던 이바 타모츠를 CFO(최고 재무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앞에 도산이라는 거대한 폭포가 있다"라고 위기감을 주었으며 이바 타모츠의 노력으로 2000년 부채 규모를 현저히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부채 상환률은 높였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는 줄어들면서 이후 전자기업으로서의 위상은 추락하게 된다. 삼성이 열심히 쫓아온 것도 있고[21] 당시 애플은 19위, 삼성전자가 21위를 기록했다. 그 당시 1위는 IBM.[22] 당시 일본에서 이례적으로 혁신적인 CEO로 평가받던 인물로 포춘지가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1995년 당시에는 혁신적으로 평가 받았던 디지털 개혁안을 내놓고 아이보OLED 등과 같은 신기술과 콘텐츠 산업에 많이 투자했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어 결과적으로 보았을때 현재 소니에게 악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디지털 개혁안은 이데이 노부유키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23] 소니는 컴퓨터 시장에 NEC, 후지쯔, 샤프(소위 일본의 컴퓨터 빅3)보다 진출을 늦게 했다.[24] 이데이 CEO는 1996년 바이오 사업을 준비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컴퓨터 OS를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가 오기 직전 몰락하고 있던 애플을 인수하려고 하기도 했다. 당시 이사진들의 반응이 "쓰러져가는 회사 인수해서 뭐하려고"라고 였다고. 만약 애플이 소니로 인수되었으면 현재 IT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니가 자회사끼리 서로 사이가 좋지않은걸 보면 오히려 손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소니가 본격적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거꾸로 애플이 소니를 인수할 것이라는 루머도 나오게 된다.[25] 도쿄증시의 소니 주가가 3만엔 선에서 5백엔 대로 폭락한 사태. 소니의 주가는 2003년 4월 25일부터 같은 해 4월 27일까지의 이틀 사이에 모두 27%가 빠지면서 시가총액중 8,950억엔(약 10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는 소니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국의 다른 전자업체에게까지 도미노로 영향을 주었다. 이때 이후로 소니의 주가는 7천엔 이상으로 올라본 적이 없으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사태 이후부터 2017년까지 4천엔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26] 일반 전자기업이라면 변명거리도 없이 까일만한 일이지만 소니는 이때 그때까지 쌓아놓은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명품 전자기업으로 나가보려고 했던 것이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하는 것은 맞다. 스메그나 밀레같은 명품 빌트인 가전업체에 가성비를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문제는 가격 책정이 해도해도 너무했을 뿐만 아니라 LCD, PDP TV와 아이팟같은 MP3 플레이어가 팔리고 있는 시기에 브라운관 TV나 MD 플레이어같이 한 세대씩 뒤떨어지는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현재 기준으로 비유하면 아무리 최상급 품질을 갖춘 '명품' 피처폰이 초고가로 발매된다고 해봤자 팔릴 리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소니가 얼마나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혀서 자만했는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27] LG전자가 2015년 '초프리미엄 가전브랜드'를 내걸고 런칭한 LG 시그니처가 소니 퀄리아를 참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28] 시골 마을에서도 라디오, 카세트, TV, 심지어 소니가 생산하지 않았던 다른 회사의 세탁기까지 죄다 소니라고 불릴 정도로 가전제품에 대한 상징은 곧 소니였다.[29] 이중에서 소니의 TV 및 액정 연구소였던 A3 연구소를 폐쇄한 것은 지금까지도 소니의 발목을 잡고있다.[30] 여기를 한때 대한민국의 국민연금공단이 가지고 있었다. 2010년 6월에 5억 7천만 유로에 사서 7년 뒤인 2017년 10월에 11억 유로에 팔았다. 시세차익이 7천억 가량 된다.[31] 오가 사장은 옛 소니의 본사건물인 고텐야마의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 소니의 정신이 깃든 곳이 사라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때 소니 샐러리맨들의 상징이었던 시나가와구 고텐야마 지역에는 소니의 60년대 본사건물, 공장건물, 90년대 본사건물과 테크놀로지 센터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매각되어 소니 역사 홍보관만 남아있다. 소니라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긴 오가 노리오 전 CEO가 2011년 사망하면서 창업자로부터 내려온 소니의 기업 정체성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본에 존재한다.[32] 다만 2019년, 애플이 삼성, 소니 등의 타사 TV에 아이튠스애플TV 어플리케이션을 탑재하면서 소니의 이 당시 전략이 아주 생뚱맞은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자사 하드웨어와 독자 생태계에 종속되는 것의 한계를 애플 역시 체감하고 있는 것. 하지만 애플이 2019년 기준으로 욕을 좀 많이 먹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업계 최고의 모바일AP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기술력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소니는 스트링거 체제에서 안그래도 간당간당해져가던 기술력 우위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큰 차이가 있다.[33] 이때 인력의 상당수가 삼성으로 이직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라면 삼성의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한데는 소니의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로 스트링거 체제 말기인 2011년 삼성과 합작한 S-LCD의 지분이 삼성에게 전부 매각되면서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핵심 기술을 알고 있는 일부 연구원들이 삼성으로 이직을 했고 이후 삼성 TV의 화질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의 삼성디스플레이는 S-LCD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삼성에 다니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삼성 쪽으로 많이 이직을 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삼성 이직 루머는 사실 같다. 그리고 소니 모바일 쪽 출신 직원들이 삼성에 이직을 해서 갤럭시 S6를 제작했다는 루머가 있다.[34] 2위는 LG전자이다. 사실 많이 앞선 삼성과는 달리 소니랑 2등라인을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이다. 흠좀무한 사실은 그 외 파나소닉, 샤프 등 한국, 일본 기업을 다 합치면 전 세계 TV점유율의 70% 이상을 양국 기업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전제품의 꽃이라는 TV분야를 말이다.[35] 물론 큰 이유가 따로 있긴 하다. 여러 옵션과 그로 인해 좋은 인터페이스.[36] LG전자 32.2%, 삼성전자 23%[37] 도쿄도 시나가와구 키타시나가와6초메 7-35[38] 이 문서에서는 소니 쇠퇴기의 시작을 '2003년 소니 쇼크 사태'를 기준으로 한다.[39] 도쿄도 미나토구 코난1초메 7-1[40] 북미 지역 소니 생산시설의 관리 및 제품 품질 관리 등을 담당하는 소니 아메리카의 자회사이다.[41] 소니 사무실 방면으로 찍은 사진이라 소니센터의 상징인 지붕이 보이지 않는다. 파일:1280px-Sony_Center_Berlin.jpg 지붕의 디자인은 일본의 후지산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헬무트 얀이다. 한국의 가든파이브에서 지붕 디자인 모방 논란이 있었다.[42] 2000년 7월에 개관한 소니 유럽 본사 및 종합문화센터이다. 2008년 매각했지만(2017년까지 빌딩 소유주는 대한민국 국민연금공단, 그래서 소니센터 표지판에는 한글로 '소니센터에 오신걸 환영합니다'하면서 밑에 국민연금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2017년에 매각했다. 인근에는 한국 문화원과 한국 문화원에서 설치한 통일정이란 정자가 있다. 아직 소니 사무실(일부는 영국 등으로 이전)과 소니 매장은 남아있다.[43] 과거 소니 에릭슨 본사였으며 후신인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의 연구개발센터였다.[44] 지금은 파나소닉, 중국하이얼로 나뉘어 흡수됐다.[45] 파나소닉도 소니를 따라한다며 1990년 유니버설 그룹을 인수했지만 기업 문화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갈등을 빚었고 막대한 손실이 이어지면서 5년만에 토해냈다.[46] 참고로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지배구조는 매우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먼저 소니 뮤직 재팬은 소니의 직접 자회사이지만 소니 뮤직은 소니의 미국 법인인 소니아메리카의 자회사이다. 즉 소니 뮤직과 소니 뮤직 재팬은 수직적인 지분관계가 아닌 별개의 기업인 셈. 반면에 소니 픽처스는 미국에 본사가 있고 일본 법인으로 소니 픽처스 재팬을 둔다. SIE는 2016년의 조직개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47] 디즈니야 말할 것도 없으며 타임워너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 유니버설은 미국 최대 인터넷 회선기업인 컴캐스트가 모회사이다.[48] 스티브 잡스부터가 소니의 열렬한 추종자였어서 그런지 애플은 소니와 상당히 유사한 전략으로 성장했다.[49] 이 회사에서 제작한 것이 바로 에버퀘스트. 현 MMORPG의 기본 개념인 탱딜힐과 어그로 개념을 처음 만든 선구자적인 게임이었다.[50] 2006년, 칸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서 가전 부분(Home Electronics&Audion-Visual)과 최고 음악 부분(Best Use of Music)에서 황금 사자상(Gold Lion)을 수상, 2006년 6월에 런던에서 열리는 Midsummer Awards에서 그 해 가장 우수한 작품에게 주어지는 Grand Prix 상을 수상했다.[51] RCA사는 소니에게 주도권을 내준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86년 부도를 맞고 64억 달러에 GE에 인수되었다. 현재 북미 지역에만 사업을 진행하는 브랜드로 전락했다.[52] 일본 TV 시장에서 소니가 1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타 전자회사간의 경쟁이 너무 심하고 파나소닉의 막강한 유통력으로 2등라인이었다. 타 일본 업체들은 1960년대 이전부터 컬러 TV를 공개했으나 소니는 그보다도 늦은 68년이 되어서야 트리니트론을 공개하여 시장진입이 늦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트리니트론의 성능이 입증되어 TV수상기 최초로 1973년 에미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샤프 등 일본 회사들이 위기에 빠지고 파나소닉이 PDP에서 철수하고 TV사업을 축소하면서 프리미엄 TV 위주로 재편한 소니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53] 2004년에 소니와 삼성이 크로스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였을때 삼성측에서 가장 원하던 소니의 특허 중에 하나가 DRC였다. 소니측에서 차별화 특허로 계약 대상에서 제외시키느라 엄청 고생했다는 후문.[54] 베가는 사실 소니가 인수한 독일의 전자회사 이름이다.[55] 들어가는 부품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56] 미국 및 멕시코 제 2 공장 신축 및 폴란드 공장 설비 증대와 같은 전 세계 지역의 투자이다.[57] DRC와 액정기술을 연구하던 소니의 최첨단 기술 연구소중 하나다. 연구소장인 곤도 테츠지로는 소니를 퇴사하면서 "더이상 소니는 기술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곤도 테츠지로는 당시 쿠다라기 켄과 함께 소니의 제 2의 이단아로 불리던 인물로 소니에서 가장 많은 특허수를 보유한 뛰어난 연구자였다. 곤도는 20여명의 부하직원과 함께 퇴사해서 아이큐브드라는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었고 DRC를 뛰어넘는 ICC기술을 만들어서 도시바나 샤프등에게 판매하고 있다.[58] 2010년 일본 시장에서는 다시 만년 4위로 돌아갔다.[59] 이 회사는 대형패널이 아니라 스마트폰용 패널을 생산했지만 OLED 패널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2019년 대만-중국 컨소시엄에 인수됐다.[60] OLED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데다가 정상 제품을 생산하려면 불량품도 정상 제품만큼 나와서 상용화하기 어려웠다. 삼성이나 LG는 이런 낮은 수율에도 불구하고 일단 투자를 집행하고 양산을 시작해서 3장 찍어서 2장 버리는 한이 있어도 서서히 수율을 높여나간 결과 성공을 거머쥔 것이다. 예를 들어서 LG는 2013년부터 OLED 대형패널 양산을 시작했는데 2018년 말에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성공했다. 소니 또한 대형화 단계까지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에 대형 패널을 양산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소니에게 먼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08년 소니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하워드 스트링거 CEO가 대규모 연구 인력을 감축하고 개발중지를 선언하는 바람에 놓치게 되었다.[61] 8K OLED는 LG디스플레이가 2018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62] 2009년 일본 내 4개 공장을 폐쇄했으며, 남아있는 건 아이치 현 이나자와시의 공장 하나 뿐이다.[63] 왜 소니가 이 기술을 'QLED'라고 부르지 않았는지는 QLED 문서에 설명되어있는 명칭논란을 참고.[64] 발매 즉시 정가의 30%를 인하해버리는 것은 중저가 제품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 논란이 되었다. 물론 애초에 8K는 인간의 눈으로 구별이 어렵고 대응하는 컨텐츠도 부족해 LG전자파나소닉은 초기 진입조차 망설였던 시장이고, 그래서 삼성도 10만달러라는 상징적인 가격을 책정했던 것으로 보인다.[65] 이때에는 mLED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칩의 크기가 630um이었기 때문.[66] 소니의 출발은 단파라디오 수리업이었고, 초창기 주력 상품들이 음향기기(방송국 납품용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라디오)였다.[67] 그나마 가장 근접한 사례를 꼽으면 소니와 CD를 공동개발하기도 한 네덜란드필립스가 있다. 인수합병에 의한 사례까지 포함할 경우 2016년 하만 카돈을 인수하면서 음향업계에 진출한 삼성전자도 있다.[68] 세계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알아주었으나 독일 발명가의 제품을 표절했다고 알려지면서 소니가 백기를 들며 합의한 일로 망신당해야 했다. 워크맨 문서 참조[69] 초반기의 주력 상품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이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인기 상품으로 등극하기까지는 영업사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데 서류가방을 끼고 명함을 뿌리며 공손히 인사하는 일본 영업맨의 전설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후일,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성공을 발판으로 뉴욕 한복판에 전시관을 내는 소니를 보고 미국의 현지 일본 영업사원들이 모두 모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70] 그나마 2011년에 출시된 MP3에서 죄다 빠졌다. 하치만 A 시리즈만 A30부터 다시 노이즈 캔슬링이 들어갔다.[71] CD놓는 곳에 작은 갈퀴를 달아 CD를 고정시켜 CDP를 흔들어도 튀는 현상이 없다.[72]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까지 어학용으로 꽤 많이 쓰였다. 지금은 아예 단종된 상태이다.[73] 이중에 후덜덜한 가격의 고급 기종이 있다. 다만 저음이 아쉽게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74] 오픈형 이어폰이 사양세가 된 현재로서는 e888의 16년 기록이 영영 안깨질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이어폰 중 최장수 모델은 1991년에 출시된 에티모틱 리서치의 ER4이다.[75] 요즘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의 스마트폰 번들 이어폰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76] 소니코리아 정품은 가장 저가형인 MDR-E9LP를 제외하면 이어폰/헤드폰 전 라인업에 정품 스티커가 붙어있다.[77] LDAC 때문에 2015년 이후 출시된 소니의 무선 스피커는 대부분 aptX를 지원하지 않는다.[78] 예외로 라이카가 있지만 가격이나 구조나 전혀 다르다.[79] 캐논과 니콘외엔 어느 회사에서도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올라간 회사가 없다.[80] 방송장비 및 캠코더 시장에서 경쟁자는 JVC, 파나소닉, 캐논, 히타치 정도가 있다. 방송영상장비 시장은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하다.[81] 그러나 독일의 아리는 영화촬영용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센서를 소니의 것을 사용한다.[82] 단 카메라 렌즈는 제외. 영화 쪽에서는 아리의 렌즈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문가용 스튜디오 카메라의 렌즈는 캐논, 소비자용 캠코더의 렌즈는 독일의 칼 자이즈와 소니의 G렌즈를 사용하고 있다.[83] 올림푸스의 내시경기술과 소니의 이미지 센서 기술을 결합하여 내시경 카메라등을 개발 및 발매하고 있다.[84] 소니의 프로젝터는 자사가 개발한 SXRD라는 LCoS 패널을 사용한다. TI사의 DMD와는 경쟁관계라고 봐야 한다. 출처[85] 초기 DCI 호환 DLP영사기 메이커는 크리스티, 바코, NEC 3사였다. 이 시절엔 DLP는 2K(2048x1080)뿐이었고 SXRD를 채용한 소니만이 4K를 지원했다.[86] 여담으로 2019년 발표된 소니의 스마트폰 모델인 엑스페리아 1에는 메인 카메라를 제외한 전면과 보조카메라들에 최초로 삼성의 아이소셀 센서를 탑재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라는 소리도 있고 엑스페리아 1에 들어가는 소니만의 독자규격인 시네마와이드 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삼성에게 공급받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는 소리도 있다.[87] Exmor"는 "Exceed" (이상), "Express" (표현), "Experience" (경험 · 체험)등의 머리 글자 "EX "와 조금 더 앞 을 의미하는 "More"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88] 시계 라디오의 경우 과거에 파나소닉이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도 만들었었다.[89] AA/AAA형 충전지의 경우 2016년 이후 생산품 기준으로 FDK Twicell[122]에서 생산중.[90] 양산은 일본의 화학회사 아사히 카세이와 함께 했다.[91] 2011년에는 소니가 배터리 사업을 접을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루머에 그쳤었다.[92] 2014년에 PC사업을 매각했다. 이후는 소니와 별개의 독립회사인 바이오주식회사에서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니는 일본판매에서만 협력해주고있다. 소니는 바이오주식회사의 5%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93] 단 매각된 이후부터는 데스크탑 부문은 정리되었다.[94] 사실 중국 생산품도 웬만한 국산 노트북보다 스펙 대비 성능이 괜찮을 정도였다. 물론 2011년에 마지막으로 출시된 플래그십 모델인 Z시리즈는 일본 생산이었다. 문제는 그 넘사벽이 성능/디자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넘사벽이었다는 것이다.[95] 베타맥스VHS는 그 유명한 사회학 이론 '경로 의존법칙'의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다.[96] 한 예로,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었을 때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다름아닌 검열삭제였다. 이와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IT보급에 큰 영향을 준 3대 요소로 스타크래프트, PC방, 이 사람의 동영상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97] 초기 SCE는 다른 소니 계열사들에게 굉장히 무시당했다고 한다. 애들 게임기나 만든다고. 물론 플레이스테이션은 대히트를 치고 그외 나머지 사업들은 죄 말아먹은 후에는 상황 역전.[98] 소니 계열사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도록 되어 있다. 경쟁을 통한 성장을 기대한 것 같은데 현재는 이것이 독이 되어 서로 자폭하는 모양새(...).[99] 물론 CD, DVD, 블루레이 모두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100] HD-DVD가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이미 CD류의 광매체 시대가 지나버린 것을 안 도시바 진영에서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긴하다.[101] 2011 태국 홍수로 하드 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지만, 반사이익은 블루레이가 아닌 SSD가 먹었다.[102] Citibank 명의의 ADR(미국주식예탁증서)형태의 주권이다.[103] 신탁계좌이다.[104] 신탁계좌이다.[105] 해외기관투자가의 소유주식을 해당 은행명으로 보관하는것이다.[106] 소니의 황금기때 내건 슬로건. 소니 제품에 대한 세계 제일의 자부심이 있던 80년대~90년대 중반 광고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이 슬로건을 사용했다. 이 슬로건과 마크도 함께 사용되었는데 창업자인 모리타가 직접 디자인 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출시되어 2015년 현재에도 발매중인 일부 스테디셀러들의 종이박스에 It's a Sony 마크가 붙어있다. 이 마크가 붙은 제품은 모리타/이부카 시절의 DNA가 흐른다고 볼 수 있다. 1997년까지 첫 발매된 소니 제품의 박스에는 이 마크가 붙어있었다.[107] 당시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CEO가 디지털 시대로의 사업체제 전환을 목표로 내건 슬로건.[108]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CEO가 전자와 엔터테인먼트가 하나의 연합과도 같은 소니를 구상하면서 내건 슬로건.[109] make"와 "believe"사이에 마침표(".")가 없으면 "make believe"가 되는데, 이 뜻은 ~인 체 하다라는 의미다.[110] 히라이 카즈오의 One Sony에 따라 바뀐 것이다. 미국 소니 캠페인은 스크롤 애니메이션으로 소개 하고 있다. 클릭시 국가를 미국으로 설정.[111] 정확히는 네덜란드 Sony Overseas Holdings[112] 소니 이외의 다른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 지사는 수입 다변화 정책이 폐지된 1999년 이후에나 설립되었으니 소니쪽이 좀 이른 편. 그 이전에는 국내 총판이 공식 수입업체 역할을 했었다. 소니코리아 설립 이전에는 인켈이 소니 워크맨 공식 수입업체였다.[113] 다만 2차전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1년 보증이다.[114] 엑스페리아 C3, 엑스페리아 E1엑스페리아 레이 이전 기종.[115] 이 쪽은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에서 담당한다.[116] 소니 코리아에 있는 직원이 말하길 아이유 자신이 직접 와서 했다고 한다. 아이유는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해서 굳이 꼭 자신이 참석할 필요 없는 행사라도 곧잘 가주곤 한다고 한다. 아이유와 같이 일했던 많은 유명 인사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117] 후일 화신그룹 계열이었던 화신전자에서 수입되었으나, 문제는 이 회사가 친일파계열이었다는 것이다.[118] MDR-R10, MDR-1R 등 소니의 유명 헤드폰을 다수 개발했다.[119] 나머진 미국이나 네덜란드 법인으로 우회해 들어와있다.[120] 예전에 미국의 기업가였는데, 당시 그의 남동생 로브 스트링거가 소니 뮤직 레이블 그룹의 의장이 되면서 소니쪽에서 관심이 생겨서 일했는데, 지금은 이사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121] 스티브 잡스는 소니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