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10:01:38

하워드 스트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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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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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제6대 대표이사 사장
하워드 스트링거
Howard Stringer
파일:Howard-Stinger-speaker-keynote-speeches-sony-e1444123134309.jpg
<colbgcolor=#000> 이름 하워드 스트링거 (Howard Stringer)
출생 1942년 2월 19일 ([age(1942-02-19)]세)
웨일스 카디프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복수국적)
직책 소니 대표이사 및 사장 (2005년 ~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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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부모 아버지 해리 스트링거, 어머니 마리 스트링거
배우자 아내 제니퍼 패터슨
자녀 불명
신체 185cm
학력 온들 스쿨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 (사학 / 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 (근대사학 / 석사)
종교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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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소니에 합류하다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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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즈 출신의 기업인. 소니 제6대 CEO.

소니 최초의 외국인 CEO였으나, 기술을 무시하고 무리한 콘텐츠 사업 확장으로 소니의 추락을 가속화시킨 소니 역사상 최악의 CEO다.

2. 생애

1942년 영국 웨일스에서 영국 공군 부사관과 학교 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5년 미국으로 이민하였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다.

미국인 국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현대사로 학사를 받았고 근대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CBS에서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사장으로 있었다. 하워드 스트링거는 프로듀서로서의 재능이 뛰어나 CBS 리포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31개의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CBS 이브닝 뉴스의 프로듀서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1993년 NBC의 간판 스타였던 데이비드 레터맨을 CBS로 영입해 영원히 굳건할 것만 같았던 NBC의 심야 프로그램 라인업에 영원한 라이벌 체제를 구축하는 지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에서도 알수 있는 것 처럼 하워드 스트링거는 콘텐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업계의 거물이었다. 현재까지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CEO를 맡고 있는 동생 로브 스트링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역시 소니 픽쳐스나 소니 뮤직의 경영을 맡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CBS 레코드[1] 출신이었던 로브와 다르게, 하워드는 CBS 본류 출신이라는것. CBS에서는 그것이 어드밴티지였겠지만, 소니에서는 역으로 작용했다.

3. 소니에 합류하다

소니는 이데이 노부유키 CEO의 전략에 따라 디지털 미디어 산업에 진출했고 따라서 이 산업에 정통한 인물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1997년 전 CBS 사장이였던 하워드 스트링거를 소니에 영입했다. CBS에서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당시에 바닥을 기던 CBS 네트워크를 한 시즌 만에 1위로 만든 전력이 장점으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하워드 스트링거는 소니 아메리카에서 소니 필름 엔터테인먼트, 소니 필름 텔레비전을 총괄했고 이후에는 소니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선임되게 된다. 2005년에는 소니의 최고 경영자로 선출되었다.

하워드 스트링거가 CEO로 선출된 이면에는 전 CEO였던 이데이 노부유키를 대체할 일본인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이데이 노부유키는 일본 기업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CEO로 평가받았는데 복잡한 사안의 핵심을 단번에 간파했으며, 무엇보다도 전자 기기와 영화·오락 등 콘텐츠 간 융합을 역설하는 그는 '대담하게 비전을 설정하고', '창의적'이었다.

일본인 경영자들을 능력은 없으면서 사내 정치로 고위직에 오른 '정치꾼' 정도로 폄하하던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도 그에 대해서 만큼은 남다른 존경심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단지 이데이가 실패했던 것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대로 현실에 접목시키지 못해 오히려 시대에 뒤쳐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2003년에 소니 쇼크라는 소니 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 사태가 나타나면서 이데이에 대한 주주들의 미련이 사라지게 된다. 이후 8명의 사외이사들의 만장일치로 이데이 CEO가 사임하게 되었으나 이데이 만한 인물이 일본인에게서 나타나지 않자 이사진들은 이데이와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하워드 스트링거를 CEO로 선임하게 된 것이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로 불리며 주주들의 기대를 받았고 하워드는 이데이가 실패했던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을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하워드는 콘텐츠에는 정통했지만 기술 그리고 일본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이였다. 즉, 이데이와 비슷하긴 하지만 소니를 이해하지 못함이라는 단점이 하나 더 추가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무리하게 금융 및 인터넷 사업에 투자해 이데이 때보다 더욱 소니의 역량이 분산되었는데 정작 이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하여 소니의 핵심인 전자 기기 사업 부문에서 대량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한 단기적인 손실을 줄여보고자 전임 이데이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미래의 핵심 사업들(로봇 사업, OLED 등)을 중지시켰다.[2]

결국 소니는 미래의 OLED 시대에서 주도권과 점유율을 경쟁사들에게 모조리 내주고 마는 등, 장기적으로 소니를 나락에 몰아넣었다. 이렇게 스트링거 CEO는 전임 CEO가 소홀히 한 전자 기기 사업을 다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더욱 전자 기기 사업에서 손을 놓았다.

그래도 콘텐츠 산업의 성과와 단기적인 전자 기기 사업 부문의 회복으로 2007년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인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역대 최악의 위기들이 찾아왔다.

심지어 이 위기 때 안 그래도 인력이 감축됐던 전자 기기 사업 부문의 많은 인력을 또 감축하는 행보를 보였고, 이것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던 전자 기기 사업의 숨통을 끊어버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2012년 소니의 CEO에서 퇴진하였고 후임으로는 히라이 카즈오가 선임되었다. 이후 2014년까지 소니의 이사회 의장이였으나 그해 퇴임하여 경영에서 은퇴하였고 앞으로 사회 공헌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한다.

4. 여담

반면 그의 동생 로브 스트링거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을 맡고 있어 소니 그룹에 남아있다.

로브 스트링거의 회장 취임은 하워드의 후광(七光)이나 낙하산 인사(天下り)와는 거리가 멀었다. 로브 스트링거는 경력을 CBS 레코드에서 시작했고, CBS 레코드를 소니가 매수한 이후로도 에픽 레코드, 소니 뮤직 UK 등 소니 뮤직의 계열사에서 보냈다. 특히 스트링거 가문다운 프로듀스 능력이 발휘된 것이 원 디렉션이나 아델과의 계약을 성사한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로브 스트링거는 2017년에 유니버설 뮤직 출신이었던 더그 모리스의 후임으로 소니 뮤직 엔터테인멘트 사장에 취임, 2019년에는 소니 뮤직 그룹 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1] 1991년에 소니가 매수하여 콜롬비아 레코드와 통합.[2] 결국 2010년 후반이 되어서야 소니는 다시 로봇 및 로봇 인공지능 개발에 다시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