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1-17 20:52:15

드림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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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 tv일체형 모델 cx-1이 후에 발매되었다.

1. 개요2. 사양3. 상세
3.1. 소니와의 관련성3.2. XBOX와의 관련성
4. 역사
4.1. 발매 전4.2. 발매 직후, 초기4.3. 중반4.4. 후반
5. 후대의 평가6. 기타7. 발매된 게임
7.1. SEGA7.2. 타회사7.3. 미출시

1. 개요

시장에서는 실패한 콘솔, 그렇지만 당대 게임기 중 가장 성공적인 콘솔.

세가에서 세가 새턴의 차세대기로 발매한 게임기. 1998년 11월 27일 일본에서 가장 먼저 발매되었다.

전 세계에 913만대를 판매했으며, 일본은 249만대, 북미는 464만대, 유럽에서는 163만대, 기타 아시아 국가에서는 37만대를 판매했다.

2. 사양

CPU 히타치 SH-4 SH7750 32bit 200MHz[1]
GPU NEC PowerVR2 CLX2 100MHz[2]
메모리 메인 메모리 : 16MB 100MHz SDRAM[3]
VRAM : 8MB 100MHz SDRAM[4]
사운드 프로세서 메모리 : 2MB 67MHz SDRAM[5]
사운드 야마하 AICA Processor 67MHz(수퍼 인텔리전트 사운드 프로세서)[6]
네트워크 33.6kbps 모뎀
미디어 GD-ROM 12배속
데이터 세이브 VMS(Visual Memory System)

3. 상세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은 D의 식탁, 에너미 제로 등을 제작했던 이노 켄지[7]가 지어준 이름이며, Dream(꿈)과 Broadcast(방송)의 합성어로 '꿈을 방송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부르는 약칭은 도리캬스(ドリキャス). 우리와는 줄이는 패턴이 약간 다르다.

탄생부터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연관성을 빼 놓을 수가 없다. 플레이스테이션의 3D 지원 때문에 고배를 마셔야 했던 탓인지 3D 성능은 새턴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2D의 강점 역시 이어받아 발매 당시엔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최초로 모뎀을 내장한 게임기이며[8], 전용 웹 브라우저나 온라인 기능 등을 지원했던 것도 특징.



구조는 아케이드 게임 기판인 NAOMI의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다. 드림캐스트가 NAOMI의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 된 까닭은, 원래 아케이드 게임을 집에서라는, 세가에서 그동안 이루어 내려고 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서로 간에 상호이식을 위해 이런 구조가 된 것이다.

개발 당시에는 막강한 성능으로 여러 모로 큰 기대를 모았으며, 특히 베르세르크(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같은 이름의 게임이 사상 처음으로 발매되면서 이후 게임들이 대거 개발될 거라며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등장했을 때 세가타 산시로의 바통을 이어받은 듯한 광고모델로 실제 세가 전무였던 유카와 전무를 내세우면서 광고 캠페인에 들어갔는데, "세가 새턴 해라!"라는 튼튼한 이미지와는 달리 특유의 찌질함 덕분에 기존 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못 끌어냈지만 대중적으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드림캐스트가 화제를 몰고 오는 것을 본 소니는 이러한 맥을 죽이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 2는 드림캐스트보다 10배 이상의 폴리곤 능력이 있고 성능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는 식의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했고[9] 이 전략이 먹혀서 드림캐스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억누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되고 나서 보니 드림캐스트와 비교해 게임 개발은 말도 안 되게 어려웠고, 드림캐스트보다 출력 부위의 퀄리티가 떨어져서 TV상에 표시되는 화상의 텍스처와 색감이 데이터보다 떨어져 보이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10] 심지어 동시대 발표된 콘솔 중 가장 비싼 콘솔인데 DC급의 부품은 써야 되는거 아니냐는 비난도 들었다.

또한 그 당시 아타리 7800, 메가드라이브 이후로 구현에 성공한 플레이스테이션 2의 하위 호환 기능[11]이 가능하다는 초반 마케팅도 상당히 먹혔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이머들이 드림캐스트라는 다른 회사의 게임기를 사기보다는 일단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서 플레이스테이션 호환기능을 이용하여 집에 갖고 있는 게임들을 플레이 하면서 앞으로 나올 플레이스테이션 2의 대작 게임을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심지어 그나마 드림캐스트에서 높은 판매량을 보인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의 경우에도 게이머들이 '바이오하자드는 원래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랜차이즈였으니 당연히 후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식되겠지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같은 반응을 보여서 원래 예상 판매량의 절반밖에 판매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플빠들 중에서는 이미 바이오하자드세가 새턴, 바이오하자드 2닌텐도 64로 발매된 적이 있다는 건 둘째치고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원래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랜차이즈였는데 다른 기종으로 독점 발매하다니 이건 배신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다. 이 같은 전개는 훗날 게임큐브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독점으로 발매될 때에도 다시 한 번 똑같이 발생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되었다[12]

원래 DVD를 넣으려다 포기한 것도 결국 악재로 작용했는데, 나중에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건 DVD 플레이어예요."라는 핑계로 구입한 경우도 많았지만 드캐는... 그리고 이 DVD 전략의 무서움은 용량에 있다. GD롬이 1.2GB 안팎인 반면 DVD는 기본이 4.7GB로, 미디어 자체가 넣을 수 있는 볼륨에서 차이가 나는 것.(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드캐판과 PS2판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PS2 초기까지만해도 4.7GB를 다 쓰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PS3대 와서야 4.7GB를 다 쓰는 게임들이 나오면서 PS2는 PS3 초중반까지 살아남는 장수만세를 달성한다(이때는 블루레이가 기본이 25GB였으나, 경쟁기였던 엑스박스 360이 기본으로 DVD를 쓰고 대신 25GB 용량따위는 하드디스크로 극복 해버리면서 PS3를 털어버린다).

사실 소니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에 큰 기대를 걸고 시작하지 않았다. 소니 전자도 아닌 일개 사업부인 SCE(현 SIE)에서 제작했고, '무슨 그룹의 기대작' 이런 건 아니었단 소리.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후 6년 동안 플레이스테이션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일으켰고, 플레이스테이션의 후속기라는 이름을 잘 활용하면 소니 자체에 큰 이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하위 호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한 하드웨어 설계, 당시 소니의 주력이자 잘만 이용하면 떼돈을 벌 가능성이 높은 DVD를 게임기에 탑재한 소니의 큰 도박이 성공하여 드림캐스트에게 큰 독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2를 구입한 사람들은 발매 초기 빈약했던 타이틀보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매트릭스 DVD 타이틀과 같이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13]

결국 2001년 3월,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동시에 드림캐스트에 대한 생산 및 지원 중단을 선언하였고 이렇게 드림캐스트는 세가가 만든 마지막 가정용 콘솔이 되었다.

이게 드캐 문서야 플스 문서야[14]

삼성에서 드림캐스트 정발 계획이 있었으나, 전작인 삼성 새턴(한국판 세가 새턴)의 실패와 IMF의 여파로 이 계획이 철회되었고 현대[15]에서도 정발할려고 했다가 취소되었다. [16]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도 포기한 5개월 뒤 2001년 8월 11일(수정 바람) 국내에 정발된 적이 있다. 수입은 (주)JAKO에서 담당했고, 유통은 GRI, 용산 총판은 SLK에서 했다고 하지만 북미판 기기[17]를 들였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18]해당 기사[19]

3.1. 소니와의 관련성

재미있는 점을 보면, 다양한 멀티 플레이어 기능을 홍보한 세가 새턴이 3D 게임을 노리고 제대로 된 게임기로만 만든 플레이스테이션에[20] 패배했다면, 정반대로 제대로 된 게임기로 만든 드림캐스트[21]가 DVD 기능을 넣은 PS2에 그대로 처참하게 밀렸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세가 새턴이 시대를 너무 앞선 탓에 드림캐스트 까지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대성공한 PS의 후속 기종의 등장으로 서드파티 제작사들이 드림캐스트용 게임 발매를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로 들어서자 상당한 소프트웨어의 부재에 시달렸고, 그 상황을 세가에서 커버하려 했기 때문에 한달에 레이싱, 액션, 퍼즐 같이 몇개나 되는 게임을 세가 브랜드로 발매하는 등의 사투를 벌였다. 발매 리스트를 보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그래도 발매된 소프트를 보면 세가의 하드인 만큼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 소울 칼리버, 플라즈마 스워드, CAPCOM VS SNK 2,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쉔무, 소닉 어드벤처, 스페이스 채널5, 크레이지 택시, 젯 셋 라디오 등 걸작이라 칭하는 타이틀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이미 게임기 자체가 묻히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하위호환과 보다 향상된 성능으로 등장한 소니의 PS2와 겨루기에는 역부족이었고,[22] 그 별난 이름처럼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꿈을 안은 채 가라앉고 만다.

그리고 이 기기의 실패로 세가는 가정용 게임콘솔 사업에서는 완전히 철수, 오락실 기판과 소프트만 만드는 회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나마 기존 구매자들에게 유상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2007년 9월 28일부터 세가 새턴과 함께 그마저도 중단, 이제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2001년 3월 하드웨어 생산이 완전히 중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몇 편씩 소프트웨어가 발매되었다. 심지어는 발매 중단된지 6년뒤인 2007년 2월에도 타이틀이 발매되었으며, 이로부터 7년후인 2014년 3월에도 정식 라이센스는 받지 않았지만 인디게임이 발매되었다. 세가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마지막 게임인 '카라스'는 2007년 3월 출시.

3.2. XBOX와의 관련성

컴퓨터와 유사한 하드웨어와 윈도우 CE를 탑재해 엑스박스의 선조급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엑스박스 패드의 트리거도 드림캐스트 패드를 계승한 제품이고, 은근 드림캐스트의 후속작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세가가 하는 걸 보고 답답해서 MS가 엑박을 만들었다는 농담도 있다.

실제로 엑스박스 개발에 드림캐스트 개발진들이 참여 혹은 피드백을 했으며, 드림캐스트로 발매 예정인 세가의 작품들이 드림캐스트 단종 후 플렛폼을 엑스박스로 옮겨서 발매되었다는 점, 엑스박스에 드림캐스트 하위 호환까지 고려했다는 이야기[23]가 있는걸 보면 엑스박스가 드림캐스트의 정신적 후속기라고 봐도 무방하다.(정작 세가 인수는 MS가 안하고 사미가 해버렸지만...)

사실 하드웨어의 아키텍쳐는 괴악한 지금까지의 세가 게임기의 모습을 탈피해서, 상당히 합리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최종적으로 추가파츠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메가드라이브나 보조 프로세서로 떡칠을 한 세가 새턴와 비교하면 상식적인 구조다. 만일 세가가 드림캐스트의 후속기를 발매할 수 있었다면 그 이후의 물건은 하위호환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본래 세가는 나오미의 게임을 드림캐스트 이외의 게임기에 이식할 것은 전제로 하지 않고 게임기와 나오미를 설계했기에, 나오미 기판은 드캐 이외의 게임기의 이식에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드캐의 몰락이후 타사의 게임기에 게임을 이식하기가 꽤 어려웠고, 이후에 기판을 생산할 때에는 타사의 게임기로 이식하기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4. 역사

4.1. 발매 전

세가 새턴은 일본에선 초반 잘 나갔던 기세와는 달리 중반, 파이널 판타지 7의 발매로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고, 북미에선 초반부터 아예 플레이스테이션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이 기색이 확실해지자 세가에서는 1997년부터 차기 콘솔을 준비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을 누르기 위해 자신들의 하드웨어 노하우와 과거의 실패 경험 등을 이용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콘솔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제 갓 시장에 진입한 초보인 소니와는 달리 거의 20년 가까이 콘솔을 만들어 왔던 노하우를 총 집합해 보자는 것.

세가 새턴의 괴팍한 구조로 인해 얻은 교훈으로, 콘솔의 구조를 최대한 쉽게 만들고 소프트웨어계에서 거의 레전설급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아 Windows CE를 드림캐스트에 맞춰 바꾸고, 다이렉트X를 통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다, 당시 개발자들 사이에선 드림캐스트는 말도 안되게 개발이 쉬운 기종으로, 이는 곧 드림캐스트의 서드파티를 끌어당기는 요인이 되었으며 루머에 따르면 에픽은 언리얼 엔진을 드림캐스트에 이식하는 작업을 단 1달만에 하기도 했다고 한다...[24] 거기에 새턴의 호환 기판인 STVMODEL1MODEL2의 힘에 밀려 아케이드와의 연동이 잘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 나오미를 적극 밀어주기 시작했다.

1997년 5월, E3에서 세가는 세가 새턴의 충격적인 실패로 인해 "세가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 이른다. 그리고 동시에 게이머들 사이에 급속히 루머가 퍼져 나갔는데. 세가가 나오미라는 이름의 아케이드 보드를 제작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블랙 벨트와 듀랄이란 개발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3dfx부두 밴쉬와 파워PC CPU가 들어간 블랙 벨트, 히타치의 CPU와 NECPowerVR2 기반의 듀랄. 이 와중에 1997년 4월, 3dfx의 기업 공개 과정에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계획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세가의 분노를 사게 된다. 결국 세가는 3Dfx와 관계를 끊고 같은 해 9월, 언론에 공개한 것은 듀랄에 기반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결과로 3Dfx는 부당한 계약 파기 및 불공정 경쟁, 기밀 횡령 등을 주장하면서, 1997년 9월 2일 세가와 NEC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에 1억 5천 5백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1998년 8월, 법원에서는 3Dfx의 손을 들어주면서 세가에게 블랙 벨트 관련 3Dfx의 모든 지적 재산권과 영업 기밀 및 비밀 정보들을 3Dfx에게 반환하고 1050만 달러를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세가는 이 명령을 받아들이면서 소송이 끝나게 된다.

그 해 10월 경, 세가는 비디오 게임 관계자들에게만 드림캐스트를 카타나라는 이름으로 시연했는데, 이 당시 시연했던 게임이 MODEL3 기판으로 제작되었던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 스커드 레이싱이었다.[25] 이 때 기술 시연이 꽤 잘 됐었고, 쉬운 개발 환경이 꽤 먹혀들어 캡콤, 남코 등의 굵직한 회사들이 연달아 개발 의사를 밝히게 된다.

이후 사람 얼굴 모델링의 시연도 했는데, 이 얼굴 모델링의 모델이 된 인물은 당시 세가 부사장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26]



1998년 3월, 도쿄게임쇼에서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고 나타났다. 이는 세가의 차세대 기종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정이 된 순간이였으며, 동시에 첫 게임으로 D의 식탁의 후속작인 D2가 발표 되었다. 그 해 5월, 세가의 드림캐스트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1000명이 참가했고, 120곳의 서드파티가 개발 의사를 표현한 이 기자 회견은 드림캐스트의 미래를 아주 밝게 비추어줬다.

4.2. 발매 직후, 초기

1998년 11월, 일본에서 드림캐스트가 발매된다. 드림캐스트는 발매 당시 준비해놓은 15만대의 물량을 발매 당일 매진시켰고, 오히려 급한건 세가 자신으로 NEC가 PowerVR의 수율 문제로 물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기까지 했다. 물론 동발 타이틀인 버추어 파이터 3tb 등의 이식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런 문제따위 정말 가벼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드림캐스트는 파죽지세로 팔려나갔다. 뛰어난 성능에도 매우 저렴한 가격[27], 그 어느 경쟁 기종이 나오더라도 드림캐스트를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드림캐스트는 소니에게 있어서 재앙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1999년 3월 2일, 도쿄에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미팅 1999를 통해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실기가 공개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컨셉만을 스리슬쩍 보여주는 이 행사에 비디오 게임 관계자가 1500명정도 모일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이때 드림캐스트는 한창 보급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고 본격적으로 미국 런칭도 준비하는 등 무척 잘 나가고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맥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소니는 이때 DVD 비디오 재생 기능과 PS1과의 하위호환 기능을 처음으로 공개하고[28] 이 밖에도 이모션 엔진, 200억엔의 개발비, 테크 데모 영상[29], 천만 단위의 폴리곤 등의 과장된 스펙을 소개하자 세가는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일본에선 발매된지 6개월만인 1999년 6월, 드림캐스트의 정가를 1만엔 인하해 19,900엔에 판매하는 초강수를 두었다.[30]

그리고 1999년 9월 9일 북미 시장에 드림캐스트를 $199의 가격으로 출시한다.[31] 북미 런칭 또한 당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동시 발매 게임 중 소울 칼리버와 NFL2K, 그리고 새턴에서는 발매도 못한 북미 게이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차기 소닉 게임이었던 소닉 어드벤처의 반응이 좋아 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1999년 연말까지 북미에 150만대를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도 반응이 좋아 1999년 연말까지 50만대를 판매한다. 이 때만 해도 드림캐스트는 세가를 부활시키고 세가가 그토록 염원하던 콘솔 시장 1위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소니 역시 이에 대항해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게임기명과 일본 출시일을 공개하고, 1999년 9월 가을 도쿄 게임쇼에 플레이 가능한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2000[32]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전시했다.

세가는 1999년 연말 시장에 모든걸 걸기 위해 D2, 쉔무 등의 대작을 차례차례 발매하기 시작한다.

4.3. 중반

하지만 1999년 연말 시장에 나타난 D2쉔무는 기존 드림캐스트 사용자들만 샀고, 콘솔 판매량 견인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특히 70억엔의 개발비를 들였던 쉔무의 실패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일조를 하게된다.

결국 세가의 본래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1999년 중순쯤에는 게임들의 높은 판매량으로 시장 1위에 진입했어야 했지만 그저 그런 가속만 붙은채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의 정면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플레이스테이션 2의 가격인 $299와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한 $199라는 가격, 게임기로서의 성능, 게임 개발의 간편함 등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 비해 거의 압도적이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만 해도 '플레이스테이션 2를 드림캐스트가 이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코어 게이머들과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여전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2000년 3월 4일, SCE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했다. 그로 부터 6일 후인 2000년 3월 10일 GDC에서 거대 공룡 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게임기 출시를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뒤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4.4. 후반

세가는 드림캐스트 포기 발언을 한 2001년 전까지, 드림캐스트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왔다. 크레이지 택시, 젯 셋 라디오, NFL 2K1, 판타지 스타 온라인 등 대작 소프트들의 잇달은 발매, 온라인 서비스 세가넷[33] 가입시 드림캐스트 무료 증정(!!!), $149로 가격 인하 등 플레이스테이션 2를 상대로 그야말로 극한의 벼랑끝 정책을 펼쳤다. 싼 값에 기기를 파는 대신 소프트를 많이 팔아 이득을 남기려는 정책이었지만 오히려 손해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2가 드림캐스트보다 9배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다. 결국 세가는 마지막 승부처로 북미 시장에 올인을 하기 시작한다.

2000년 10월 26일, 플레이스테이션 2가 북미에서 발매됐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는 2000년 내내 공급 부족 및 게임 타이틀 부족을 겪게 됐으며 세가는 2000년 연말 시즌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0년 연말 시즌이 되자 북미 게임 유저들은 드림캐스트를 구입하는 것보다는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또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타이틀 부족 문제 역시 하위호환 기능을 이용해 기존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돌리거나 DVD를 보는 선택을 한다. 심지어는 2000년 연말 시즌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는 드림캐스트도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을 리모델링한 PS one이었다.

세가는 뭘 해도 더 이상 게임기 시장에서는 가망이 없다는걸 인식하게 되고 2001년 1월 31일, 드림캐스트를 끝으로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동시에 2001년 3월 31일 드림캐스트 생산 중단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창고에 쌓인, 도소매점에 풀린 드림캐스트는 순식간에 악성 재고가 됐는데 약 200만대로 추산됐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1월 31일부터 미국에서는 $99, 일본에서는 ¥9,900로 인하됐고, 2001년 11월 21일에는 다시 $49로 인하해 재고를 전부 소진시켰다.

이 여파로 세가의 재무 상태의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1년 2월 1일 오오카와 이사오 CSK 회장은 사재 850억엔을 세가에 출연할 계획을 밝혔고, 인터뷰 다음달인 3월 16일 심부전으로 별세하면서 고인의 유지대로 전액 증여했다. 모기업 CSK에서도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 증자로 1000억엔 이상 세가에 자본을 수혈해야 했다. 또한 이 때문에 2001년 세가 종업원의 약 1/3 정도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5. 후대의 평가

세가가 만든 하드웨어 중 SC-3000/SG-1000 다음으로 가장 정상적이다.[34] 세가새턴 - 엑스박스를 이어주는 게임기이기는 하지만 메가드라이브 - 세가새턴으로 이어지는 라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오히려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 2의 과도기를 채워주는 플레이스테이션 1.5와도 같은 느낌이다. 드림캐스트가 실패한 이유로 세가의 말도 안되는 마케팅 능력이 꼽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세가는 드림캐스트의 마케팅에 있어서는 중박 이상을 쳐줬던 편이다.

특히 북미 런칭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이끌었던 기세는 가히 화룡점정. 하지만 메가드라이브 - 세가새턴에서 이어진 세가의 연이은 실수들이 드림캐스트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이 실수들로 인해 세가에 쌓인 안좋은 이미지들이 드림캐스트의 발목까지 잡아버린 셈.

다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것은 홍보의 문제라기 보다는 회사의 문제였다. 크게 성장을 해야 할 시점에서 자잘한 악재들이 터지면서 주춤주춤주춤을 하다가 플레이스테이션 2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가 수요예측실패로 인한 드림캐스트 매진 사태, 드림캐스트 매진 사태에 대한 사과라고 하면서 가격을 인하해서 이전 구매자를 엿 먹였던 것, 초기 게임기 구조상의 문제로 인해서 게임을 구동시키면 GD를 갈아버린다는 이야기[35] 등이 초기부터 연이어 터졌다. 이후에도 세가는 온갖 뻘짓과 언플 미스, 데스크림존 OX으로 대표되는 출시작 관리 실패, 서드파티 부족[36], 쉔무로 대표되는 자사게임 수익성 문제 등 드림캐스트의 실패요인에 대한 분석은 인터넷상에도 엄청나게 돌아다닌다.

또한 드림캐스트 게임기의 디자인은 지금봐도 세련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코타쿠에서는 외형이 멋졌던 역사속 게임기 10선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구성도 다른 콘솔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한다.



WIRED지에서 실험을 했는데, 높은곳에서 떨어뜨리고 음료를 뿌려도 멀쩡했다는것. 단 메인보드가... 근데 게임큐브는 권총탄도 가볍게 막고 엑스박스는 기관총도 막잖아? 안될거야 아마 그리고 소울칼리버 시리즈, 쉔무등의 게임을 배출해내 서양에서는 아직도 매니아층이 많으며, 단종한지 15년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는 드림캐스트 2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정도라고 한다. 드림캐스트 HD 실제로도 관련된 떡밥이 나올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들썩이는 편인데, 정작 세가는 이 지옥도에 다시 발을 들일 마음은 없는듯.

6. 기타

  • 컴퓨터용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VGA-BOX라는 것이 발매되었는데, 상당히 좋은 화질을 보여주어 게이머들의 호평을 받았다. 즉 드림캐스트는 이후 HD를 위시한 고화질 게임기의 원조급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예 이걸 지원하지 않는 게임도 몇 몇 있고, 물론 당시에는 와이드 비율을 가진 모니터가 드물기는 했지만 와이드 화면을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 모니터에 연결하면 와이드 화면 옵션을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 AVGN의 말에 따르면 세가가 만든 하드 중 최초로 제대로 된 물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대신 컨트롤러를 행동으로 깠다 씨맨에피소드에서 드림캐스트에 타임머신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이 기기의 심볼 때문에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일본에서는 드림캐스코, 대한민국에서는 바보드캐유령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원작자도 노렸다고 했다. 흠좀무.
  • 드림캐스트의 패드는 방향키가 십자키인데 1994년에 닌텐도의 십자키 특허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어클레임 저팬/타이토에서 발매한 드림케스트용 소프트 '스피릿 오브 스피드 1937'은 공식 판매량 87장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공식적으로 드림캐스트용으로 나온 마지막 게임은 2007년에 발매된 카라스이다. NG: DEV.TEAM이라는 독일의 아마추어 2D 게임 제작그룹에서 지금도 꾸준히 네오지오로 제작한 자신들의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포팅하여 판매하고는 있는데, 정식 퍼블리싱은 아니다.
  • EA에서는 드림캐스트용 게임을 단 한 개도 제작하거나 발매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EA는 (어찌 보면) 북미시장에서 드림캐스트를 실패하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사유는 드림캐스트로 발매되는 스포츠게임들의 EA의 독점발매권을 요청했기 때문. 그러나 세가는 북미시장의 드림캐스트 성공을 위해 스포츠 게임 전문 회사였던 비주얼 컨셉츠를 인수하는데 이미 천만 달러 이상 투자한 이후였다. 당연히 세가는 거부했다.[37] WiiWii U, PS Vita에서도 이유는 다르지만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38]
  • 요상하게도 당시 일본시장에 음반 CD로 나온 규격인 MIL-CD[39]를 지원했는데, 이 CD로 인해 드림캐스트의 복사가 제대로 뚫렸다. 하지만 GD의 1.2GB 용량에 비해 MIL-CD란 물건은 800MB밖에 되지 않아 복사는 제대로 되지 못했다.[40] 게임큐브와 같이 거의 복사를 완벽하게 막은 물건. 후에 이 MIL-CD 규격을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가 나왔지만, 이때는 이미 2002년, 플레이스테이션2의 세상이 된지 오래였다. 다만 립을 뜨는 사람이 적절하게 2CD로 나눠서 하던가 하는 방식으로 뚫리게 된 건 마찬가지. 아무튼 CD장수가 늘어나면 단가(?)가 올라가 마진이 안남기 때문에 대부분의 해적판이 세가가가의 경우처럼 동영상과 음성을 삭제해서 용량을 줄여서 시장에 내다팔았다. 참고로 게임큐브는 복사를 돌리려면 상판을 아예 뜯어야 한다. 참고글
  • 안드로이드로는 2013년 12월에 reicast라는 에뮬레이터가 나왔다. 듀얼코어 이상, ICS 이상의 기기에서는 꽤나 잘 돌아간다고. 다만 아직 텍스쳐가 깨지는 문제라던가, 전화오거나 화면끄는 상황에서 다시 게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있다.
  • 세가의 명운이 걸려있던 기기였던만큼 다방면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었다. 특히 축구계에서는 유럽의 빅 리그마다 드림캐스트를 가슴에 새긴 팀이 하나씩은 있었을 정도였다.[41]
  • 드림캐스트의 홍보와 관련된 상징적 인물하면 단연 유카와 전무이다. 하지만, 저런 중년 아저씨 말고 아이돌 그룹을 동원한 홍보도 있었다. 바로 드림캐스트 홍보 아이돌 체킷코. 한국내 게임팬덤에서는 그게 뭔가요 먹는건가요 싶을 정도로 듣보이지만, 이 체킷코를 기획한 인물은 당시 세가의 사외이사로 있었던 아키모토 야스시, 참고로 유카와 전무 CF를 기획한 것도 이 사람이다. 전설적 아이돌 오냥코클럽의 프로듀서이다. 체킷코는 전체적으로 오냥코클럽의 성공전략을 따라간 모델이었으나 망했다. 드림캐스트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서 사라진 것처럼, 모닝구 무스메라는 커다란 조류에 밀려버린 것. 하지만 이 체킷코 프로젝트에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세가에 100억엔이나 투자받았고,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함구해왔다. 그러나 이 체킷코 전용 방송 말미에는 언제나 아키모토 야스시 사무소 협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는 것이 함정. 결과적으로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야말로 먹튀를 한 셈이었고, 이후 아키모토는 전혀 다른 컨셉으로 프로듀스한 아이돌그룹이 제작되니, 이 그룹이 바로 AKB48이다.
  • 게임라인 만화에서도 당시 게임기들의 싸움을 다룬 적이 있다. 여기에 드림캐스트도 있었다.
  • 여담이지만 블랙핑크 '휘파람' 뮤직비디오 초반부에 SNES와 같이 컨트롤러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 드림캐스트의 로고는 NTSC 지역[43]에서는 일본에서 복(福)을 상징하는 주황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나, PAL 지역[44]은 파란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한다. 관련 사진 인트로 영상 이는 독일[45]의 기업인 티볼라 퍼블리싱이 이미 똑같은 모양의 로고를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어 분쟁을 피하기 위해 색상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 CERO 이전 일본 게임 심의는 자체 검열 시스템으로 돌아갔던지라 느슨한 편이었는데, 드림캐스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느슨한 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드림캐스트 발매 초창기에 나온 게임들 중에는 지금 발매되기 곤란한 꽤나 수위 높은 게임들이 있다. D2데스피리아가 대표적.

7. 발매된 게임

7.1. SEGA

7.2. 타회사

7.3. 미출시



[1] 250nm 공정. 부동 소수점 연산 성능은 1.4GFLOPs/s. 128bit CPU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Hitachi SH-4가 FPU에서 최대 128비트 벡터 연산(32비트 4차원 행렬)이 가능해 생긴 오해이다. Hitachi SH-4는 레지스터, CPU 내부 버스폭, 메모리 주소 버스가 전부 32비트인 32비트 CPU이다.[2] NEC에서 250nm 공정으로 생산했으며 픽셀 필레이트 성능은 100Mpixel/s이다.[3]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4]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 GPU에 내장됐다.[5] 메모리 대역폭은 267MB/s[6] 사운드 처리 관련 ARM7DI 기반 프로세서 내장. 최대 6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kHz. 16bit PCM, ADPCM, YAMAHA XG MIDI 지원[7] 원래 이노 켄지는 세가빠로 유명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너무도 사무적이었던 소니에 비하면 세가는 인간적이어서 좋았다고.[8] 사실 모뎀을 가장 먼저 내장한 게임기는 애플 피핀 이지만, 몇만대밖에 못팔고 망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내장형이 아닌, 별도로 구입해 장착해야 하는 게임기는 이미 여러 개 있었으며, 세가의 전작인 메가드라이브세가 새턴도 이에 포함된다.[9] 물론 PS2의 성능이 전체적으로 드림캐스트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홍보한 만큼은 아니었다. 이것조차도 사실 PS2는 드림캐스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텍스처 압축, 비디오 메모리 용량 문제로 트루 컬러 텍스처 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플레이스테이션 2의 표준 텍스처 컬러는 8비트, 즉 256색이다) 플레이스테이션 2 후반기의 게임도 텍스처 부분은 드림캐스트에 비해 떨어진다.[10] 후기형에서 컴포넌트 단자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이마저도 지원되지 않는 게임이 꽤 된다.[11] 슈퍼 패미컴에 넣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 이 시도는 결국 슈퍼 패미컴의 고속 연산 능력이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12] 똑같이 게임큐브 독점이었던 바이오하자드바이오하자드 제로는 HD 리마스터가 나오기 전에는 진짜 게임큐브 독점이었다.[13] 사실 PS2 초창기 때도 킬러 타이틀이 존재하지 않았던건 아니다. 이미 플스2가 발매되었던 극초기에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킬러 타이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였고, 2001년 초기에는 귀무자가 예상치 못한 흥행을 기록하면서 PS2를 견인해주었다.[14] 사실 새턴부터의 세가 콘솔 사업의 역사는 플스의 역사와 많은 연관이 있다.[15] 참고로 현대는 이전까지 닌텐도의 콘솔을 정발했다. 닌텐도 64까지 발매했다.[16] 다만 현대에서 수입하려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게임기가 아닌 사원용 인터넷 단말기였다. 하지만 무려 80만대(..)나 수입한다고 밝혔기에 당시 잡지사들은 온갖 설레발들을 쳤다.[17] 기기를 220v로 변환하지 않고 110v로 발매하는 등 성의가 없었다고 한다.[18] 이유는 홍보는 저기있는 기사하나만 찾을수있으며 전매상들이 이미 들여와서 팔고 있어서 메리트가 떨어졌다. 게다가 1년 후에는 라이벌인 플레이스테이션 2가 정발되었으니 안봐도 비디오 였던 셈. 이때문에 정발이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19] 더욱 놀라운 점은 삼성전기라는 곳에서 아케이드 사업목적으로 수입한 북미판 드림캐스트가 중고나라에 올라와있었는데 벌크제품이였다고...[20] 플레이스테이션은 음악 CD나 비디오 CD가 돌아가지 않는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후기 기종인 1997년에 나온 5500번대 이후 기종에 한해서 음악 CD만 돌아갈 뿐이다.[21] 아주 단순한 수준의 음악 CD, 비디오 CD, MIL-CD의 포맷만 지원한다.[22] 특히 2001년 6월을 기점으로 하여 파이널 판타지 10GTA 3, 메탈기어 솔리드 2와 같은 서드파티 대작들이 PS2 독점으로 발매되면서 PS2는 엄청난 성장세를 갖게 된다. 그리고 데빌 메이 크라이와 같은 새로운 프랜차이즈 독점 타이틀들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면서 PS2는 더 큰 힘을 받게 된다.[23] 실제로 2000년 오오카와 이사오 당시 CSK 및 세가 겸임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빌 게이츠를 찾아가 세가의 관련 자산을 모두 제공할테니, 드림캐스트 게임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와 호환되게 해달라고 말했다. 드림캐스트 사업을 접더라도 드림캐스트 유저들을 자연스럽게 엑스박스로 마이그레이션 시켜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엑스박스의 드림캐스트 게임 인터넷 지원에 대해 빌 게이츠 회장이 거절하면서 물 건너 가고 말았다. 드림캐스트 게임의 인터넷 비용 부담 문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24] 이 때문에 드림캐스트의 본체에는 Windows CE의 로고가 박혀있다. 드림캐스트가 엑스박스의 전신이라 보는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 DirectX 덕분에 세가가 지원 중단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드림캐스트를 통해 동인 게임이 제작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착각하기 쉬운데, 일반적으로 드림캐스트는 본체에 OS를 내장하고 있지 않다. OS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면서 읽어들여 구동되는 구조이고, 따라서 개발사가 OS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여서 모든 게임 소프트웨어가 Windows CE를 사용한게 아니다. 세가 게임의 경우 세가의 자체 API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성능도 세가 API를 사용하는 경우에 더 잘 나왔다고 한다. 당장 나오미 기판으로 만든 게임들이 Windows CE를 썼을리가...[25] 하지만 쉔무 개발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드림캐스트용은 개발이 취소되었다.[26] 드캐 말기에 세가팬을 울린 걸작이자 선더포스 시리즈 역적 대장 센스가 빛난 세가가가에서는 인명 한자중 入을 人으로 바꿔서 히토마지리라고 나온다(...).[27] 처음 발매 가격이 29,800엔으로 전 세대 기종인 세가새턴이 44,800엔, 플레이스테이션이 39,800엔에 런칭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헉 소리 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28] 이는 그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능으로 인식되었으나, 나중에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29] 이 날 공개된 테크 데모 중 파이널 판타지 8의 무도회 영상은 세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발매한지 한 달도 안된 대히트친 게임의 CG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것은 트릭으로 덜렁 둘이서만 춤추는 장면인뿐인지라 별 거 아닌거였지만...[30] 생산 단가가 절감되지 않은 채로 그냥 가격을 인하한 것이기 때문에 대당 10000엔의 손해를 봤다. 게임 판매로 인한 라이선스 수입과 자사 게임 판매로 벌충하려는 것이 세가의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31] 그 때 드림캐스트의 광고 모토가 '9/9/99 for $199'이었다.[32] 그러나 정작 폴리포니 디지털의 개발자, 야마우치 카즈노리의 반대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이듬해 그란 투리스모 3: A-spec으로 발매된다.[33] 보통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나 XBOX LIVE, 닌텐도 네트워크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34] 간혹 저 자리에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이 쪽은 롬카드와 롬팩으로 동시 구동하는 주제에 확장용으로 카드 슬롯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나가리이다. 카드 슬롯에 3D 셔터글라스 안경이나 YM2413이나 키보드 꽂는 거 본 사람?[35] 이 때문에 후기 모델에서는, GD삽입 부분에 고무 스폰지를 넣어서 접촉면을 띄우고, 먼지 흡착을 했다. 이 고무 모양이 수염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소위 수염 드캐이다.[36] 특히 EA가 참가하지 않은 점이 북미 시장에서 큰 패착이 되었다.[37] 훗날 사미가 세가를 인수하면서 비주얼 컨셉츠를 테이크 투 인터렉티브에 되팔아버린다. 이 비주얼 컨셉츠라는 회사는 현재의 2K 게임즈가 된다.[38] EA에 따르면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39] CDP에 넣으면 그냥 음악 CD지만, MIL-CD 규격을 지원하는 기기에 넣으면 뮤직 비디오가 함께 나온다.[40] 롬파일이 셀프부팅을 지원해야되며 용량을 맞추기 위해서 영상/음성 데이터를 저용량으로 인코딩하거나 빼야되며 디스크 저글러라는 디스크 툴로 구워주면 된다.[41] EPL아스날 FC, 라 리가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 리그앙(당시명은 르 샹피오나)의 AS 생테티엔 등.[42] 그만큼 단종된지 15년 가까이 되는 아직까지도 드림캐스트발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다.[43]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 일본, 미국 등이 있다.[44] 대표적인 나라가 유럽 지역과 호주 등이 있다.[45] 참고로 독일은 PAL 지역이다.[46] 세가 토이 제작. 그래픽은 PS용으로 나온 다른 도라에몽 게임보다 훌륭함.[47] 처음에는 세가 직영 온라인 쇼핑몰인 세가 다이렉트롤 통한 한정판매였지만 세가 팬들의 성원끝에 일반판으로도 출시.[48] AVGN이 처음으로 리뷰한 드림캐스트 게임인 만큼 괴작 반열에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쌍방향 대화 등의 참신한 시도 덕분에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명작 반열에 들기도 하는 특이한 게임. 드림캐스트 게임 가운데 최고 판매량을 찍었으며, PS2로 이식되기도 하였다. 본작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사람도 2015년 현재까지 많고, AVGN도 리뷰에서 이 애완동물이 우연히도 빈정대는 병X이지만 게임 자체는 상당히 참신한 게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49] 세가넷에 연결해야만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전용 대전 게임. 단 세작품밖에 존재하지 않는 일본산 FPS이며, 게임 플레이 자체는 전뇌전기 버추얼 온의 인간 스킨판같은 느낌이다.[50] 드캐 칩을 지원해준 NEC의 자회사로 드캐 말기 숱한 에로게를 전연령 이식한 회사이기도 하다. 정작 센티그라 시리즈는 망했지만...[51] 건담 vs 시리즈의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난투슈팅형 게임. 이 작품의 컨셉은 헤비메탈 지오매트릭스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