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15:39:27

T-오카다

T-오카다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0019><tablebgcolor=#000019>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오릭스 버팔로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ec1c24 {{{#!folding [ 한큐 브레이브스 ]
{{{#555555,#aaaaaa
<tablewidth=100%>
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나가이케 아츠시
(長池徳士)
미즈타니 타카시
(水谷孝)
히라바야시 지로
(平林二郎)
와타나베 카즈오
(渡辺一夫)
야마다 히사시
(山田久志)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미와타 카츠토시
(三輪田勝利)
코마츠 켄지
(小松健二)
와타나베 히로키
(渡辺弘基)
이시다 마코토
(石田真)
에가와 스구루(6)[1]
(江川卓)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야마구치 타카시
(山口高志)
스미토모 카즈야(6)
(住友一哉)
사토 요시노리
(佐藤義則)
마츠모토 쇼지
(松本正志)
세키구치 토모유키(1)
(関口朋幸)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키노시타 토모히로(1)
(木下智裕)
카와무라 카즈아키(6)
(川村一明)
야마오키 유키히코(1)
(山沖之彦)
에노키다 켄이치로(1)
(榎田健一郎)
노나카 테츠히로(1)
(野中徹博)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2]
시라이 타카유키
(白井孝幸)
이시이 히로시(1)
(石井宏)
타카기 코지(1)
(高木晃次)
이토 아츠노리(2)
(伊藤敦規)
사카이 츠토무(2)
(酒井勉)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c74b {{{#!folding [ 오릭스 브레이브스 - 블루웨이브 ]
{{{#555555,#aaaaaa
1989년 ~ 2004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사토 카즈히로(1)
(佐藤和弘)
하세가와 시게토시
(長谷川滋利)
타구치 소(2)
(田口壮)
코바야시 히로시(1)
(小林宏)
히라이 마사후미
(平井正史)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카세 토시히로
(嘉㔟敏弘)
이마무라 후미아키(1)
(今村文昭)
스기모토 유우(3)
(杉本友)
카와구치 토모야(2)
(川口知哉)
아라카키 나기사(6)
(新垣渚)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야마구치 카즈오(3)
(山口和男)
우츠미 테츠야(6)
(内海哲也)
오가와 유스케(3)
(小川裕介)
카토 다이스케(3)
(加藤大輔)
카토 타츠오
(歌藤達夫)
히라노 케이이치(3)
(平野恵一)
2004년
카네코 치히로(3)
(金子千尋)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9e751f {{{#!folding [ 오릭스 버팔로즈 ]
{{{#555555,#aaaaaa
2005년 ~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T-오카다(1)(4)
(T-岡田)
노부에 다이스케(1)(4)
(延江大輔)
니와 마사야(1)(4)
(丹羽将弥)
카이 타쿠야[3]
(甲斐拓哉)
후루카와 슈이치
(古川秀一)
히라노 요시히사(3)(5)
(平野佳寿)
코마츠 사토시(3)(5)
(小松聖)
코바야시 켄지(1)(5)
(小林賢司)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고토 슌타(1)[4]
(後藤駿太)
아다치 료이치(1)
(安達了一)
마츠바 타카히로(1)
(松葉貴大)
요시다 카즈마사
(吉田一将)
야마사키 사치야
(山﨑福也)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요시다 마사타카
(吉田正尚)
야마오카 타이스케
(山岡泰輔)
타지마 다이키(2)
(田嶋大樹)
오타 료(1)
(太田椋)
미야기 히로야(1)
(宮城大弥)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야마시타 슌페이타(1)
(山下舜平大)
무쿠노키 렌
(椋木蓮)
소타니 류헤이
(曽谷龍平)
요코야마 세이야
(横山聖哉)
}}}}}}}}}}}} ||
(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중복 지명 당첨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4) 고교생 드래프트
(5)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6) 지명 후 미입단

[1]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아니면 입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다른 팀의 지명을 모두 거부했다. 1973년에는 한큐에 지명되었으나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1977년에는 크라운라이터(現 세이부)의 지명을 거부, 1978년에는 한신의 지명을 거부하고 이른바 '공백의 1일'사건을 일으켰으나 일본야구기구의 중재로 결국 코바야시 시게루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하여 쿄진에 입단하게 된다.[2] 다이에와 마찬가지로 시즌은 한큐로 치렀으나, 시즌 직후 매각되어 드래프트는 오릭스로 참가했다.[3] 투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포수와는 음이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그 쪽은 「甲斐拓也」[4] 1라운드 복수 지명 추첨에서 무려 3번이나 떨어지고 나서 지명한 선수(...) 2022년까지 뛰다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여담으로 이 해 오릭스가 1라운드에서 순차적으로 지명한 복수지명 선수는 오이시 타츠야(세이부)-이시미네 쇼타(롯데)-야마다 테츠토(야쿠르트).
킨테츠의 1라운드 지명선수는 틀: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1라운드 지명선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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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우승 엠블럼 V5.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22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0년 퍼시픽리그 최다 홈런
2009년
나카무라 타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48홈런
T-오카다
(오릭스 버팔로즈)
33홈런
2011년
나카무라 타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48홈런
}}} ||
파일:230609 T-오카다.jpg
T-오카다
T-岡田 / T-Okada
본명 오카다 타카히로
(岡田貴弘 / Takahiro Okada)
생년월일 1988년 2월 9일 ([age(1988-02-09)]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사카부 스이타시
신체 187cm, 100kg
포지션 좌익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 (2006~2024)
SNS 인스타그램
등장곡 케츠메이시 - カーニバル
응원가 통상 버전: 자작곡[1]
1. 개요2. 프로 입문 전3. 프로 입문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연도별 기록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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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PB 야구선수.

2. 프로 입문 전

고교 시절부터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이름을 떨쳤다.

중학교 때는 연습경기에서 비거리 140m의 장외홈런을 쳐내는 파워로 진로를 주목받았고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2]

그리고 1학년 여름부터 팀의 4번타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중심타자로 맹활약하더니 2학년 여름에 열린 하계 오사카 대회에선 2경기에 걸쳐 5연타석 고의사구를 당하거나 5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는 등의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3학년 여름엔 오사카 대회 준결승전에서 라이벌 오사카 토인 고등학교의 나카타 쇼로부터 쓰리런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코시엔 대회 출전경험은 없었지만 고교 통산 55홈런을 기록해 55라는 숫자[3]에다 150km/h에 달할 정도로 빠른 배트 스피드, 건장한 신체조건으로 차세대 마츠이 히데키로 대접받았고 이에 매스컴으로부터 오사카의 옛 명칭인 나니와+마츠이의 애칭인 고질라를 따온 '나니와의 고질라(浪速のゴジラ)'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당시 최고의 고교생 투수로 유명했던 츠지우치 타카노부와의 교섭권을 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경합을 벌이다 끝내 놓친 오릭스 버팔로즈가 대체 1순위로 오카다를 지명하여 입단했다.[4]

당시 오릭스엔 이미 등번호 55번을 타나카 유키라는 투수가 달고 있었지만 오카다 본인의 요청으로 타나카가 등번호를 22번으로 바꾸고, 오카다가 55번을 양보받게 되었다.

3. 프로 입문

데뷔 시즌인 2006시즌엔 2군 리그에서 주로 1루수로 출장하면서 타율 2할 4푼 5리 5홈런 27타점이라는 고졸 신인 야수로서는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시즌 후반에 1군에 승격이 되면서 데뷔 첫 안타를 뽑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리그 최다 수준의 삼진과 엉성한 수비력이 발목을 잡으면서 2007~2008시즌엔 1군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2군에서 숙성을 거쳐야만 했다. 2008년 스즈키 이치로와 합동 트레이닝을 가졌을 땐 이치로가 그를 장래의 4번타자감이라고 평가하면서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비슷하다는 립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2009시즌엔 드디어 각성을 한 것인지, 2군에서 타율 2할 9푼 5리, 21홈런, 59타점의 성적으로 웨스턴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석권했고 그 기세로 교류전 기간 도중 주전 1루수이던 알렉스 카브레라의 부상을 틈타 1군 진입에 성공했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 다시 1군 진입에 성공했고 타율 0.158이라는 공갈포스러운 타율을 기록했지만 7개의 홈런을 때려내 다음 시즌 대폭발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버팔로스의 스타 용병이던 터피 로즈가 팀을 떠나고 이듬해 전지훈련때는 차기 외야 주전으로 기대를 모으던 오제 히로유키가 사망하면서 본의 아니게 1루 뿐만 아니라 좌익수 자리까지 생기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오릭스의 신임 감독으로 오카다 아키노부가 취임했다 오카다 감독은 장래의 4번타자인 오카다 다카히로와 성씨가 같은 것에 대해 까다롭다는 이유로 오카다 다카히로에 등록명 변경을 제안했고, 구단 홈페이지와 휴대용 사이트에서 약 7000명의 팬들을 상대로 앙케이트를 실시했다. 등록명은 감독과의 상의를 거친 끝에 'T-오카다(T-岡田)'로 결정되었다. 등록명의 T는 이름인 타카히로의 첫 글자 겸 T-REX의 T에서 따왔다.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6a3c18e9.jpg
이 당시엔 머리에 T자 스크래치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등록명을 바꾼 2010시즌에 타격 코치의 조언으로 노스텝으로 타격폼을 바꾼 것이 정확도와 파워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경이적인 페이스로 홈런을 생산하더니 교류전 MVP를 수상한 것은 물론, 시즌 최종 129경기에 출장해 33홈런을 때려내면서 오 사다하루 이후 48년 만에 22세에 홈런왕을 거머쥔 선수가 되었다.

2011시즌엔 개막전 4번 타자라는 중책을 맡았으나 저반발력 공인구의 여파인지 들쑥날쑥한 활약을 보이며 타점은 팀내 최다인 85타점을 기록했지만 홈런 숫자는 전해의 반토막인 16개에 그치고 말았다. 이해에 박찬호, 이승엽 등 한국 선수들의 영입으로 오릭스 버팔로스에 대해 한국 팬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부진할 적엔 특유의 공갈포스러운 모습으로 한국에서 이승엽의 별명에서 따온 티슨요프, 티오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여담으로 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한 다르빗슈 유에게서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 2013년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각각 103, 58경기 출장에 그쳤다. 당연히 성적도 초라해서, 이대호, 이토이 요시오, 아롬 발디리스를 받쳐줄 것이란 기대에 못 미치는 2012년 10홈런 56타점, 2013년 4홈런 18타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4년에는 별 부상 없이 이토이 요시오, 윌리 모 페냐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3경기 .269 24홈런 75타점 OPS .824.

2015년에는 타율은 .280로 전년도와 대비해 상승하였으나 11개의 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쳤다. 타점은 51개.

2016년에는 장타력이 되살아났고 시즌 중반까지 3할을 넘는 고타율까지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노리는 듯 싶었으나, 조금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284 20홈런 76타점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이토이와 더불어 막장 오릭스 타선에서 사람 구실을 해준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시즌 종료 후 3년 계약을 맺어 당분간 FA 시장에 나오지 않고 오릭스에 남게 되었다.

2017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지만, 후쿠라 준이치 감독의 이상한 기용으로 어느 한 타순에 자리잡지 못하고 1번부터 7번까지 수많은 타순을 오갔다. 중심타선을 대신 차지한 스테판 로메로, 크리스 머레로 등의 외국인 타자들이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는 못했지만 실력의 편린을 보여준 거포 유망주 요시다 마사타카 등이 분전했고 오카다 본인도 괜찮은 활약을 이어갔으나 오릭스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최종성적은 143경기(시즌 전경기 출장), 타율 .266 출루율 .374 장타율 .488(OPS .862) 31홈런 68타점. 홈런은 파리그 공동 3위, 타점은 10위, 장타율은 7위를 기록했다. 위에서 말했듯 여러 타순을 오간 기용 때문에 타점 수에서 조금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30홈런을 넘기며 그 해 일본인 타자로서는[5] 최다홈런을 치는 준수한 활약을 해줬다. 다만 팀은 만년 비인기에 B클래스 단골인 오릭스여서 그마저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2018년엔 아예 부상과 그에 따른 타격부진으로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했고, 개막 후 금방 1군으로 승격되었지만 여전히 부진을 거듭하면서 결국 97시합 출장, 타율 .225에 13홈런 43타점으로 규정타석도 못 채우고 성적도 전년도보다 더 떨어져버린 폭망한 시즌으로 마무리지었다.

2019년엔 20시합 타율 .120 1홈런 2타점이란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완전히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9월 초에는 방출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가 올라오기까지 했으나 그래도 투수친화구장인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30홈런을 칠 정도로 파워가 있었던 타자고 나이도 30대 초반이라 아직은 몇 년 더 뛸 만하기에 타 팀 이적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고 결국 방출을 면하고 연장계약을 맺었다. 한편으로 여름 코시엔 기간 때 그의 모교인 리세이샤 고등학교가 창단 이후 첫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하자 이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2020년 초반에는 3할 타율을 치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개막 직후에는 07년 다카하시 요시노부마냥 높은 출루율을 살려 1번(+ 외국인타자 로드리게스를 '강한 2번'으로 두는) 으로 나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5번으로 기용되는 등 방향성 없는 기용(...)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테이블 세터를 맡는 무네, 오오시로 등이 쓰레기같은 타격을 계속하면 또 테이블 세터로 올라갈 지도... 2020년 최종성적은 100시합에서 타/출/장 0.256/0.340/0.457, 16홈런 55타점이다.

2021년에는 115시합에 출전해 타/출/장 0.241/0.322/0.434, 17홈런 63타점을 기록했다. 규정타석에 미달했고 비율스탯도 떨어졌지만 찬스에서 그럭저럭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25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우승 이후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한 2006년부터 팀이 늘 하위권을 맴돌았던 경험이 오늘의 원동력이 됐다고 술회했다.

2022년에는 시범경기 도중 부상을 당한 여파로 2군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팀은 극적으로 퍼시픽리그 2연패를 달성했으나 본인은 36경기 출장에 그쳤고, 성적도 타율 .149 1홈런 10타점으로 19년도보다 아주 살짝 나은 수준에 그쳤다.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 대타로 출전해 8회 추격하는 적시타를 때렸고, 2차전엔 선발출장했으나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더이상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이후 팀이 1무 후 4연승으로 야쿠르트에게 복수하며 대망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세이부에서 FA로 영입해온 모리 토모야의 인적보상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세이부는 장이를 데려갔다.

2023년도 거의 백업으로만 출장했고, 2024년 역시 1군에서 무홈런으로 부진하며 거의 2군에 있다가 9월 8일 은퇴를 선언하였다. 오릭스가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탈락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아다치 료이치, 오다 유야와 함께 은퇴경기를 치렀고 1안타를 치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19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극단적인 풀 히터로 파워가 좋지만 선구안이 떨어지고 컨택 능력도 리그 평균 정도를 오고가는 공갈포에 가까운 유형의 선수. 이 점을 의식했는지 2014년부터는 무조건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출루와 타점 생산에 중점을 둔다고 하였으나 출루율이 눈곱만큼 좋아진 것 밖에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2017년에는 볼넷을 평년의 두 배인 83개를 얻기는 했으나 삼진이 평년의 1.5배 이상인 141개를 기록하면서 삼진왕에 등극한 건 물론 오랜만에 30홈런을 치고도 70타점도 못 넘기는 공갈포스런 모습을 보였다. 물론 타점이 적었던 이유는 상단에 나오듯 후쿠라 준이치 감독이 오카다의 부진을 고친답시고 오카다의 타순을 고정시키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댔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사실 오카다의 제일 큰 문제는 기복이다. 10년째 주전으로 뛰는 정통 슬러거가 20홈런을 넘긴 해가 4년, 30홈런을 넘긴 해가 2년밖에 없고 22세에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그 시즌이 커리어 하이다. 그나마 한국 나이 32세로 아직 몇 년은 더 뛸 수 있기에 더 큰 성장은 어려워도 기복을 줄이면 대타자로 기록에 남을 수 있는 타자였으나, 아쉽게도 기복을 줄이지 못한 채 홈런 타자로써는 아쉬운 누적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수비는 1루, 코너 외야밖에 못 보는데 신인 시절에는 블랙홀 그 자체였으나 경험이 쌓인 뒤엔 나름 괜찮아져서 현재는 1루수 골든글러브도 수상하고 세이버 지표상으로는 좌익수 수비에서 괜찮은 수비를 기록할 정도로 좋아졌다. 물론 포지션이 포지션이라 수비로 먹고살 순 없던 게 문제.

주루는 거구라서 느려보이지만 중간급은 간다. 또한 주루 플레이를 성실히 하기 때문에 도루는 못해도 주루 자체는 괜찮은 편.

5. 여담

호쾌한 스윙 탓에 국내 한정 별명은 티슨요프 혹은 티오푼이였다.

6. 연도별 기록

파일:NPB 로고.svg T-오카다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9e751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WAR
2006

3 6 1 0 0 0 0 0 0 0 3 .167 .167 .167 .333 -0.1
2009 43 157 22 2 0 7 18 13 0 13 59 .158 .250 .324 .574 -0.9
2010 129 520 131 31 2 33 70 96 0 49 136 .284 .358 .575 .933 4
2011 134 550 128 26 0 16 61 85 4 39 116 .260 .331 .411 .742 3
2012 103 404 106 22 0 10 46 56 4 22 81 .280 .327 .418 .745 2.5
2013 58 207 42 10 1 4 17 18 2 15 42 .222 .280 .349 .630 -0.4
2014 130 533 127 28 0 24 67 75 4 37 107 .269 .343 .481 .824 1.3
2015 105 416 109 19 2 11 44 51 2 17 80 .280 .317 .424 .740 1.7
2016 123 513 129 25 0 20 56 76 5 47 105 .284 .357 .471 .828 2.4
2017 143 593 134 19 0 31 77 68 2 83 141 .266 .374 .488 .862 3.1
2018 97 333 67 11 0 13 31 43 2 31 82 .225 .300 .393 .693 0.1
2019 20 56 6 0 0 1 4 2 0 6 19 .120 .214 .180 .394 -0.7
2020 100 377 84 18 0 16 36 55 5 40 87 .256 .340 .457 .797 0.8
2021 115 407 86 16 1 17 45 63 2 35 86 .241 .322 .434 .756 1.3
2022 36 95 13 4 0 1 1 10 0 7 28 .149 .211 .230 .440 -0.7
2023 20 42 7 0 0 0 3 4 0 2 9 .179 .214 .179 .393 -0.3
NPB 통산
(16시즌)
1359 5209 1192 231 6 204 576 715 32 443 1181 .257 .330 .441 .771 17.1

7. 관련 문서




[1] T! Homerun King! T! T! T-Rex! 遠く遠く派手に飛ばせ浪速の轟砲 岡田岡田 かっ飛ばせ貴弘(티! 홈런왕! 티! 티! 티렉스! 멀리 멀리 화려하게 날려라 나니와의 굉포 오카다 오카다 날려버려 타카히로)[2] 참고로 리세이샤는 오사카부에서 매년 오사카 토인 고등학교와 함께 코시엔 대회 진출을 노리는 야구명문교이다. 오카다의 후배로 야마다 테츠토가 있다.[3] 이후 오릭스에서 마츠이 히데키처럼 등번호도 55번을 받았다. 이는 블라디미르 발렌틴 이전에 오 사다하루가 갖고 있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서 따온 것.[4] 츠지우치는 고등학교 시절 혹사의 여파로 입단 후 8년 동안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1군 마운드를 밟지도 못한 채 은퇴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교섭권을 놓친 오릭스가 오히려 대체 지명으로 대박을 친 셈.[5] T-오카다보다 상위 클래스의 타자들은 더러 있지만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다 테츠토 등은 WBC 후유증으로 상당한 슬럼프를 겪었고 스즈키 세이야, 야나기타 유키 등은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으며 나카무라 타케야 같은 베테랑들도 노쇠화로 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