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1:22:25

이대호

이대호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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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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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윤석 · 5 황진수 · 6 문규현 · 7 신본기 · 10 이대호 · 12 이찬건
· 13 배성근 · 17 채태인 · 25 한동희 · 36 전병우 · 52 김동한 · 54 강로한
· 57 고승민 · 63 박정현 · 68 신용수 · 69 윌슨 · 92 김동규 · 00 최승훈 · 03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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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수상 경력 및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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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4 2015

수상 기록(KBO)
2010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6, 2007, 2011, 201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2010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201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2005, 2008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2006, 2010, 2011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2010,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
2006, 2010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2006, 2010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2010년 한국프로야구 득점왕
2006, 2007, 2010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2010,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2006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2006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수상 기록(NPB)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1루수 부문
2015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지명타자 부문
2015년 일본시리즈 MVP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점왕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5 2,119안타[1] 2017년 현역

보유 기록
최다 연속 경기 홈런 9경기[2]
타격 7관왕[3]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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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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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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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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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틀:롯데 자이언츠 주장|{{{#FFFFFF '''롯데 자이언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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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982~1994 1995 1996 1997 1998
? 한영준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1999 2000 2001 2002 2003
박정태 마해영 조경환 강상수 박현승
2004 2005 2006 2007 2008~2010
김대익 염종석 손인호 손민한 조성환
2011 2012 2013 2014 2015
홍성흔 김사율 조성환 박준서 최준석
2016 2017~2018 2019~ 현재
강민호 이대호 손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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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마해영(1995~2000) 이대호(2001~2004) 권민성(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0번
권오현(2003~2004) 이대호(2005~2011) 하준호(2014~2015)
황재균(2016) 이대호(2017~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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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
파일:0a7234_71564_m.png
롯데 자이언츠 No.10
이대호(李大浩 / Dae-Ho Lee)
생년월일 1982년 6월 21일 ([age(1982-06-21)]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본관 전주 이씨
학력 부산수영초 - 대동중 - 경남고 - (영남사이버대)
신체 194cm, 130kg A형
포지션 투수1루수[4], 3루수[5], 지명타자[6]
투타 우투우타
등번호 64 (2001)
49 (2001 ~ 2004)
10 (2005 ~ 2011, 2013 ~ 현재)[7]
25 (2012)[8]
프로입단 2001년 롯데 1라운드 4순위 지명[9]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1~2011)
오릭스 버팔로즈 (2012~201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2015)
시애틀 매리너스 (2016)
롯데 자이언츠 (2017~)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19~)
등장곡 해리 벨라폰테 -《Day-O》[10]
- 《Ay-Oh》[11]
체리필터 - 《오리 날다》[12]
응원가 오릭스 시절 : 이승엽의 오릭스시절 응원가의 재탕.[13][14]
현재 : 사라 본《A Lover's Concerto》[15]
자우림《하하하쏭》[16]
가족 형 이차호(1979년 생)[17], 아내 신혜정, 딸 이예서(2012년 생)[18], 아들 이예승(2016년 생)
종교 불교(대한불교 조계종), 법명: 삼소(三笑)
연봉 25억원[19] (FA, 2019년)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3.2. 수비3.3. 주루
4.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5. 김태균과의 평행이론6. 별명7. 기타8. 연도별 성적

1. 개요

▲ 이대호 응원가

오릭스 버팔로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이자, 現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며, 명실상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이다. 한국인 타자로서는 최초로 한국 - 일본 - 미국 세 나라의 1군 리그에서 활약한 업적이 있으며, 별명으로는 조선의 4번타자, 거인의 자존심 등이 있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36.media.tumblr.com/tumblr_o5desl8xC01sqk8veo7_r1_1280.jpg
파일:_P2.jpg
이대호/선수 경력 문서로.

3. 플레이 스타일

"193센티미터의 키와 12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다. 승부처에서 반드시 피해가야 할 유일한 타자. 중요한 상황에서 강하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했고 타점 찬스를 즐긴다. 다리를 높이 들기 때문에 배트 스피드가 느려 보이지만 95마일이 안 되는 속구는 문제없이 공략한다. 한 번 속은 구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대처도 잘 한다. 사이드암 투수가 약점. 한국에서는 평균 이하의 사이드암 투수라도 이대호를 잘 잡아냈다. 둔하지만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 1루 수비도 해낸다."
사도스키 리포트에서

사도스키는 단 8문장만으로 이대호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 가장 정확하고 핵심을 찌르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20] 하지만 이대호 본인은 자신이 결코 사이드암 투수에게 약한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이드암 투수의 볼도 곧잘 쳤다고 TV프로그램에서 말한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이드암 투수에게 약하게 보이는 것은 정대현 선수에게 지독하리만치 당하다 보니 그 임팩트가 커서 그렇게 보일뿐이라는것. 실제로 언더 사이드암 유형의 투수에게 통산 타율은 3할1푼3리로 약한편은 아니다. 다만 장타율이 5푼이나 낮아질 정도로 언더핸드 사이드암 투수에게 장타를 칠 확률이 떨어지기에 우완 좌완 투수에 비하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리포트가 백프로 맞는건 아니기에 평균 이하의 사이드암에게는 약하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이면 약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대호의 또 다른 강점으로는 겉보기랑 달리 몸이 엄청나게 유연하기 때문에 부상을 입지 않는다. 그의 나이가 어언 40을 향해 가고 있고, 커리어 내내 지타만 한 게 아니라 1루는 물론 가끔 3루 수비까지 봤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금강불괴 중에서도 금강불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이후 모든 경기에서 사실상 풀 시즌을 뛰었으며, 체력 안배 차원에서 결장한 경기를 빼면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대호를 부상시켰던 백골퍼가 얼마나 굉장한(?) 인물백정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3.1. 타격

이대호는 진짜... 덩치만 보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몸매인데, 그렇게 치는 게 부드러워요. 그런데 걔가 3루수 수비까지 보니 엄청난 거지.
양준혁, 1박 2일 광역시 특집에서.

일본 커리어 통산 베스트 나인 2회. 일본에 진출한 역대 선수중 베스트 나인을 한번이라도 수상받은 선수는 백인천과 이대호를 제외하면 없다. 2012년~2015년 퍼시픽리그 4년 모두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타석 1위, 타율 4위, 홈런 3위, 안타 2위, 타점 2위, OPS 1위(출루율 3위, 장타율 1위), wOBA 2위, WRC+ 2위, OPS+ 2위.

전형적인 거포라기보다는 중장거리 교타자로 분류하는 편이 많다. 그의 타격 메커니즘은 슬러거와 전혀 다르며, 양준혁이나 김동주에 비교되고 있다. 고타율의 컨택형 타자이지만 워낙 힘이 좋아서 장타가 양산되는 것. 이승엽처럼 공을 띄우는 능력이 타고났다든지, 타구의 탄도가 박병호처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코스의 공에 대응해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춰냄으로써 질 좋은 라인드라이브를 생산해내는 타자. 하지만 거포로 봐도 무방. 현재 비슷한 유형의 타자로는 최준석[21] 이나 김태균이 있지만 최준석은 이대호에 견줄 커리어가 되지 못한다. 김태균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한데, 일단 KBO리그 기록만 보자면 비율/누적 골고루 김태균이 우위지만,[22] (국내에서의 커리어 관련해서도 이대호는 김태균보다 포텐이 늦게 터진 것이 한 몫 했다. 즉, 초반 몇 시즌 동안의 김태균이 상당히 압도적 우위를 보이다 어느 순간 비등비등해진 후 이대호가 역전의 기미를 보일 때 즈음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대호가 '전성기' 포스를 보여준 것은 9연속 홈런을 때려낸 시즌 전후 정도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록상 국내 커리어는 김태균이 우위이다) 이대호는 NPB, MLB등 상위리그에서 1군 멤버로 활약했기에, 야구 전체 커리어만 놓고 보면 이대호를 위로 볼 수 밖에 없다. 김태균도 NPB에서 활약한 적이 있지만, NPB에서의 성적을 비교하는건 이대호에게 실례.

KBO 리그 유일의 트리플 크라운 2회가 증명하듯, 2006~2007년 연속으로 3할 3푼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타격과, 2006년부터 크게 성장한 컨택트 능력을 바탕으로 정말 승부하기 어려운 타자 중 하나이다. 실제로 MBC ESPN(현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8개 구단 선수를 상대로 "9회말 2사 만루,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자는?"에 19표로 1위로 꼽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8~2009 시즌에는 2006~2007시즌의 '이대호와 여덟난장이'급의 괴물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도루(0개)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다시금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가 되었다.[23]

KBO 타격의 신(神) 장효조도 일찌감치 그의 실력을 예견했었다. 2004년 백인천에게 무릎이 아작나고 재활 후 2004년 사직구장에서 장효조(당시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터였다)가 이대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스포츠 조선 정현석 기자가 '이대호가 대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하자 장효조는 눈이 둥그래지며 "정 기자, 아직 야구 볼 줄 모르는구먼. 저 거구에 저 정도로 유연한 선수는 정말 보기 드물어요. 저 큰 몸으로도 3루 수비를 해내잖아. 두고 봐요. 우리나라 최고 거포가 될 거야." 타격의 신의 눈은 정확했고 이 말을 확인하는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본인도 자신을 홈런 타자라고 인식하지 않고 교타자 내지 장거리 타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매우 타당한 생각인데 그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2008~2009시즌을 살펴보면 홈런을 의식해 스윙이 어퍼스윙으로 변했고 밀어치기보다 당겨치기가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대호는 홈런을 의식하면 오히려 성적이 나빠졌는데, KBO 역사에서 전무후무함은 물론이고 커리어 평균보다 훨씬 많은 홈런을 기록했던 2010년은 결혼 후 심리적 안정감과 체력 관리가 잘 되어 타구 비거리가 5~10m 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투수로 시작한 데다가 백인천의 삽질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 손해를 봐서 한국프로야구 커리어 통산 스탯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이대호가 대폭발한 2006년 이후로 통계시점을 잡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2000년대 후반 5년으로 한정할 경우 통산 타율 3위(0.325), 홈런 1위(142), 타점 1위(492), OPS 2위(0.983)[24], WAR 1위(28.46)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이승엽이 KBO 리그를 대표한다면 후반은 이대호가 KBO 리그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간으로 한정하여 타자들의 순위를 매겨보면 이대호는 출장경기수, 타율, 장타율, OPS, 안타, 타점, 홈런, 득점, 루타에서 1위이며, 출루율은 2위, 볼넷은 3위로, 고타율에 선구안도 나쁘지 않고 잘못 걸리면 넘겨버리는 타자가 큰 부상 없이 꼬박꼬박 출장하기까지 하니, 2011년도까지는 이대호는 투수에게 그냥 악몽 그 자체였었다. #

선구안은 나쁘지 않지만 은근 베드볼히터로 자기가 원하는 코스에 오면 볼도 쳐야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를 상대하는 투수들에게는 또다른 위협인데, 워낙 거구인데다가 유연성이 좋아 리치가 매우 길어 스트라이크 존에서 떨어지는 볼도 곧잘 걷어내서 안타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0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 정재훈을 상대로 친 결승 쓰리런 홈런. 정재훈이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포크볼을 제대로 구사했음에도 그것을 걷어올려 잠실구장 우중간을 넘기는 쓰리런을 만들어 냈다.

위에 서술했듯이 거구이면서 유연성이 탁월하여 고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로 KBO의 우타 빅뱃 계보를 김동주로부터, 국가대표 야구팀의 타선 중심을 이승엽으로부터 잇고 있다. 물론 우타 빅뱃과 국가대표 4번 자리를 놓고 끝까지 경쟁하던 경쟁자가 있긴 했지만... [25]

김태균과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로, KBO에서 뛸 때의 전체적인 커리어 스탯을 비교하면 처음에는 투수였던 데다가 부상과 적응으로 초반에 고생한 이대호에 비해 데뷔 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김태균이 누적 스탯상 우위에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리그를 지배했던 2006, 2007, 2010 시즌이 워낙 임팩트가 크고, 밑에도 써있듯 2000년대 후반부터 보면 이대호의 우위. 김태균의 일본 리그 시절이 꽤나 처참했던데에 비해 이대호는 2012년에는 타점 1위, 홈런 2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2013년 시즌도 3할 타율에 20+홈런을 기록하고 이승엽의 일본 커리어를 뛰어넘어버린 현 시점에서는 일부 한화팬을 제외한 어떠한 야구팬도 이 둘을 더 이상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 시점에서의 두 선수의 누적 스탯이나 비율 스탯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이는 wRC+, wOBA 등의 세이버 스탯으로 놓고 봐도 큰 차이가 없다.

3.2. 수비

둔해보이는 체구 때문에 매우 저평가를 받지만, 실상은 기본기가 매우 충실한 야수이다.

단점은 3루 수비시 매번 롯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던 좁은 수비 범위. 박기혁이 대신 잡아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이 수비부분이 과거 이대호의 MLB 진출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지워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전성기를 MLB가 아닌 NPB로 진출해서 보내게 됐던 원인이다. 물론 이후에 MLB에 진출했을때는 1루수비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 1년밖에 버티지 못했던 이유는 본인의 플래툰 거절과 주루능력이 0에 가깝다는 것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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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본 부산사람인 이대호가 어째서 서남 방언을 쓰는지는 묻지 말자[26]

파일:영원히 고통받는 롯데 유격.jpg
627 대첩 당시. 이때가 11회초였다. 공을 잡으러 가는 유격수는 신본기. 왜 죄다 엘꼴라시코요?

사실 송구나 정면 타구 대처는 수준급이고 전진 수비도 생각하는 것만큼 둔하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좌우 한발 범위를 자랑하는 좌우 수비범위. 실제로 황재균이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 온 뒤 처음 출장한 경기에서 평범한 수비를 펼쳤음에도 롯데팬들은 슈퍼플레이를 본 양 신기해 했다.

2010시즌 1루수 붙박이로 결정되었으나, 3루수를 맡을 예정이었던 정보명의 부상으로 다시 3루수로 나섰다. 이때 롯데의 내야수들을 다 테스트 해보았으나, 결국 이대호의 3루 수비가 가장 나았다.

물론 다른 팀의 3루수들에 비하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대호의 수비범위는 수준 이하로 좁다. 이는 그 공간을 대신 커버해야 하는 유격수에게 엄청난 수비부담으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야기된 내야수비의 불안정은 팀 전체의 수비 리듬과 투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3루를 제외하면 있을 곳이 1루와 지명타자밖에 없는데 지명타자는 이미 홍성흔[27]이 리그 최강의 수위타자로서 버티고 있으니 1루 밖에 선택지가 안 나왔다.

이대호의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 3루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대호 이외에 마땅한 3루수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멀리 갈 것 없이 2007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롯데의 3루수 기록을 보면 이대호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28] 그리고 이범호를 잡지 못한 이상 단기간에 정상적인 수준의 3루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는 이대호를 3루수로 기용해 온 것. 그리고 이대호가 3루수를 맡음으로 인해 왼손잡이라서 1루 수비밖에 안되는 박종윤을 1루수에 돌리거나 블래스 신드롬으로 내야 송구에 문제가 있는 김주찬을 1루에 세워 공격력 강화를 꾀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문제의 악의 근원은 그동안 뽑은 유망주 중에서 제대로 된 3루수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키워내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 롯데의 무능한 코치진들이라고 할 수 있다.[29] 결국 2010년 황재균을 사 오고 나서야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참고로 1루를 볼 때는 그런 대로 수비도 잘 하고, 포구는 수준급이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내야수들이 송구할 때 겨냥하기 좋다 즉, 야수들에게 확실한 타게팅을 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형저메의 경우 역시 높이 뜨는 악송구 등에도 196cm라는 큰 키로 잘 대처할 수 있는 점 등 1루수가 체격이 크면 유리한 점도 많다. 수비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었으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2014년 지명타자 전업 전까지 대부분 1루수로 경기를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수준은 갖췄음을 입증했다.
파일:pB23dyS.gif

메이저 진출에서도 주루와 함께 약점으로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팀에서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고 메이저에서도 통할 수비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대호의 활약을 보고 아까워하는 팀도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주루와는 달리 1루 수비가 약하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메이저에서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는 모습

파일:1720955.png

파일:이대호수비범위_2017.gif
그리고 2017년 들어와서는 이 문단 맨 위의 수비범위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열심히 뛰는 2루수는 용병 앤디 번즈. [30]

2018년 들어서는 최악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때는 발이 느린 것을 민첩성과 유연성으로 커버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것마저 둔해져서 더이상 좋은 수비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 2018년부터 채태인이 입단하고 나서부터는 둘이 번갈아가면서 1루수를 보고 있으나 채태인이 경기후반 대타로 나오는 일이 많아서 여전히 1루수로 선발 출장하고 있다. 채태인이 선발 출장하는 날이면 지명타자로 나온다.

3.3. 주루

주루는 평균 이하. '중견수 키를 넘기는 단타' , '우중간(좌중간)을 가르는 단타' , '펜스맞히는 단타' 같은 다소 황당한 장면을 제법 자주 보여 준다. 물론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거포형 타자들이 자주 보여 주는 모습이긴 하다.

게다가 코스가 라인 쪽으로 붙거나 외야수들 사이를 정확히 가르지 않는 한 펜스 직격이나 원바운드 후 펜스를 맞추는 타구는 투바운드 이상 혹은 구르는 타구보다 타구속도가 빨라서, 외야수가 어지간히 어버버하지 않는 한 진루하기 어렵다. 특히 펜스 직격타구 같은 경우에는 치는 사람도 홈런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서 설렁설렁 걸으니 더더욱. 게다가 사직구장의 펜스 높이는 국내 제일이다. 고로 8회 이후로 1~2점 차로 점수차가 적게 날 때 이대호가 출루하면 발 빠른 대주자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 타점이 줄어드는 셈이니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이 '좀 빨리 들어와라'고 하면 "어쨌든 살았다 아이가"라고 받아쳤다나.

발이 확실히 느리긴 한데, 몸이 대책없이 불기 전인 2007 시즌까지는 그래도 간혹 가다가 도루를 시도했고 종종 성공하기도 했다. 밑에도 서술되어 있고 홍성흔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홍성흔에게 포수 미트를 놓게 한 대사건 중 하나가 이대호의 도루 성공이었기도 했고, 2007시즌 5월에는 괜히 도루하다가 부상당해서 봄데모드 재현에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의 체형으로 변한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는 이대호의 도루시도는 올스타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그런데 2011 시즌에는 2개 성공했고, 2017년 8월에는 6년만에 도루에 성공하면서 통산 10개를 기록하고 있다.

오릭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동시에 유일하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부분이 느린 발. 이대호가 진루하더라도 홈으로 불러들여줄 수 있을만큼 팀의 타격이 좋지 않은지라 차라리 이대호의 타순을 7번 정도로 조정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로, 그냥 홈런을 때려버리면 돼지.

그래도 주루로 인해 부상한 적은 없고, [31] 애초에 언제 뛸지 아무도 모를때 뛰다보니 주루사가 적다. 의외로 주루센스가 좋은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당장 이 이야기가 나온게 일본이다. 주루센스 관련기사

메이저 진출에서도 수비와 함께 약점이라고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 때문인지 무려 20kg이나 감량했고, 죽기 살기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32] 단타에 1루에서 3루까지 달리는 등 놀라운 주루플레이를 보여주었고 2루타 4개를 치는 등 주루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노력과는 별개로 250타석 출전에 bsr - 3.9의 메이저 최하급 주루는 여전한 약점으로 평가된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본선 라운드가 열리기 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연습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한 적도 있다. 이유는 이종욱이 볼에 맞아 교체해야했는데 외야 요원을 다 써 마땅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 실책으로 한번에 홈으로 들어온 적이있다.



홈스틸 장면


사실 이대호의 100m 기록은 14초대로, 평범한 성인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상위권이고 120kg에 육박하는 거구들 사이에서는 최정상급 스프린터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빠르면 100m를 11초대로 들어오는 다른 야구선수들을 기준으로 하면 한없이 느린 주자인 것이다. 이대호의 덩치 때문에 일반인보다도 한참 느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대호는 살만 많은 게 아니라 근육도 많기 때문에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참고로 미국의 스탯캐스트가 달리기 속도(Baserunning Sprint Speed) 순위를 발표하였다. 2016 시즌 이대호는 24.2 ft / sec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7번째 최악의 속도임이 증명되었다. # 메이저리그에서 대호 뒤에 6명이나 있다고? 푸 홀 스

역시나 주루는 답이 없음을 보여주는 2018시즌 5월 31일 사직에서 엘지 트윈스와의 경기. 9회말 엘지 3루수가 이대호의 타구를 한번에 잡지 못해서 세이프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했으나 너무나 여유롭게(....) 1루에서 아웃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라이언 사도스키2013 WBC를 앞두고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에 제공한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이대호 부분만 발췌.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며 일본 무대 첫 해에도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다. 미국에 진출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센티미터의 키와 12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다. 승부처에서 반드시 피해가야 할 유일한 타자. 중요한 상황에서 강하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했고 타점 찬스를 즐긴다. 다리를 높이 들기 때문에 배트 스피드가 느려 보이지만 95마일이 안 되는 속구는 문제없이 공략한다. 한 번 속은 구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대처도 잘 한다. 사이드암 투수가 약점. 한국에서는 평균 이하의 사이드암 투수라도 이대호를 잘 잡아냈다.[33][34][35] 둔하지만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 1루 수비도 해낸다.
외야수들이 뒤로 멀리 물러나야 한다. 타구를 앞에만 떨어뜨리면 단타로 막을 수 있다. 내야수들은 보통 위치.

5. 김태균과의 평행이론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라이벌 구도이자 친구 사이인 김태균과 이대호가 사이클이 같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 이대호가 절정의 타격감과 장타력을 보일 때 치고 올라갈 김태균이 볼넷만 고르다가 김멀뚱이 되거나, 김태균이 알버트 푸홀스 모드 발동하여 스탯을 쌓고 있을때 이대호는 치라는 홈런은 못 치고 안타나 똑딱거린다던지…. 이는 두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
  • 2001년
    김태균이 고졸 신인으로 4번 타자까지 맡으며 규정타석은 미달이지만 3할과 20홈런을 치며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이대호는 막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시점이었고, 시즌 막판 1군에 등록되어 간신히 나왔다.[36]
  • 2002년
    김태균이 소포모어 징크스로 타율이 .255까지 떨어지며 허우적댈 동안 이대호는 어떻게든 나와서 0.278에 8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 2003~2005년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떨 백골프때문에 이대호는 무릎 부상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인해 2003년 타율 0.243에 그쳤고 이후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며 어찌어찌 기회를 잡으며 두 자릿수 홈런 이상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타율은 2할 초중반대를 오가는 등 공갈포 기질을 보이며 양상문의 양아들이냐며 욕을 먹은 반면, 김태균은 3년 연속 타율 3할대, 출루율 4할대, 장타율 5할대에 각각 31, 23, 23홈런으로 맹활약하고 2005년에는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이대호의 흑역사이자 두 라이벌간 격차가 극명했던 3년.
  • 2006~2007년
    독하게 단련하고 나타난 이대호가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포함해 3할 3푼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김태균은 2할 9푼으로 타율이 떨어지고 홈런도 반토막이 났다. 본격적인 이대호 역전시기.[37] 그러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나간 것은 김태균이었고,[38] 그 덕분에 김태균은 병역 혜택을 먼저 받게 되었다. 다만 이대호는 2006년 시즌 종료 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나갔으나 대표팀은 도하 참사로 인해 동메달에 그쳤고, 이로 인해 이대호는 점점 병역 문제에 대한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 2008년
    초반 타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여름부터 축 처진 이대호에 비해 김태균은 그해 홈런왕에 오른데다가 도루, 최다안타 빼고 다 5위 안에 들어갈 맹활약으로 다시금 이대호를 제꼈다. 그러나 중요 이벤트였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맹타를 휘두를 동안 김태균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39] 이대호도 이 때의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면제 획득.
  • 2009년
    이대호가 제리 로이스터감독의 지시로 3루에 들어가면서 수비로 고생하고 손바닥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3할을 못 치는 동안, 김태균은 2008년 겨울 푹 쉬고 FA로이드까지 마시며 2009 WBC를 폭격하고 3할 3푼의 맹똑딱질로 시즌을 마감한 뒤 지바 롯데와 3년 7억 엔이라는 계약까지 맺으며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다만 김태균은 시즌 초 뇌진탕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 2010년
    이대호가 KBO를 폭격하며 타격 7관왕에 등극하는 등 한국에서 돼마왕이 된 동안 김태균은 일본 데뷔 첫 해부터 20홈런을 넘기긴 했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체력 부침이 심해지며 2할 초중반대 타율과 삼진 2위, 병살 1위에 득점권 타율 꼴찌라는 부진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감.
  • 2011년
    이대호는 이번에도 타격 분야 3관왕에[40] 올랐고 시즌 후 오릭스와 2년 7억 엔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일본으로 건너간 대신 김태균은 동일본 대지진 여파와 부상 등으로 인해 얼마 안 되어 2군으로 사라졌고 시즌 중 충격의 중도퇴단을 선언, 귀국해 친정 팀 한화에 복귀했다.
  • 2012년
    반대로 이대호가 일본에서 투신타저에 고생하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은 4할 5푼을 쳤다. 그러나 6월, 이대호가 타점 1위에 등극하는 등 날아다니는 동안 김태균은 부상과 극악의 빠따질로 타율과 출장경기 수가 같이 떨어졌다. 또 이대호가 잘하다가 8월 극심한 부진에 빠지는 동안 김태균은 4할을 유지하며 4할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대호가 부활하자 김태균의 타율은 .365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는 일본 타점왕을, 김태균은 투고타저 시즌에 고타율로 한국 타격왕을 차지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즌으로 볼 수 있겠다.
  • 2013년
    이대호는 전년도에 비해 홈런과 타점은 그대로였으나 타율은 3할로 마무리하며 시즌 후 소프트뱅크와 3년 20억 엔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린 반면, 김태균은 부상과 부진 등으로 인해 팀과 본인의 안습한 사정을 버텨내지 못하며 겨우 10 홈런을 치면서 장타력이 하락. 다만 출루율 1위 OPS 4위를 기록하며 최정상 타자임은 확인 했다.
  • 2014년
    이대호가 많은 기대속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였고 세자릿수 안타와 타율 3할을 기록하였지만, 그래도 까이는 동안 김태균은 비록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의 성격이 강하다고는 하나 타격왕 경쟁까지 하면서 상당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둘의 평행이론은 비단 타격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는데, 이대호의 경우 FA 신청으로 오릭스팬들과 소뱅팬들은 물론이오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온갖 비아냥[41]을 당하면서 팬심이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데 반해서,[42] 김태균은 비록 한화 한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홈팀 팬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또 반대로 소프트뱅크는 우승했고 한화는 꼴등했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수준. 김태균은 타율2위 출루율 1위. 이대호는 일본 퍼시픽리그 타율 6위 장타율 9위 OPS 10위.
  • 2015년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OPS 4위(0.892)를 기록했다. 김태균은 출루율 2위, OPS 5위. 아무래도 2015년에는 평행이론이 폐기될 줄 알았는데 이대호가 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일본시리즈 MVP와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고 시즌 후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까지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의 맹타를 휘둘렀다. 김태균은 한화가 여전히 못해서 가을 야구를 꿈꿀수도 없었다.
  • 2016년
    이대호는 스플릿 계약에서 경쟁자들을 뚫고 메이저리거가 된 한편 김태균은 초반에 4년 84억이라는 대형 FA 계약을 맺고도 수비와 타격 모두 최악으로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5월을 기점으로 이대호는 플래툰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10홈런을 기록하고, 김태균은 장효조를 넘어 통산 출루율 1위에 등극하는 등 올해도 평행이론이 통하지 않는 듯 하다가 이대호가 후반기에 가며 죽을 쑤며 마이너리그까지 떨어졌던 반면 김태균은 타율 2위, 출루율 1위 OPS 3위의 호성적을 기록하고 한 시즌 300출루라는 대기록까지 덤으로 세웠다. 참고로 이대호의 메이저 최종성적은 WAR 0.3 평범한 1군 백업 이었다(WAR은 플래툰이다보니 낮을 수밖에 없다).
  • 2017년
    이대호가 롯데로 4년 150억이라는 파격적 계약을 맺고 한국의 롯데로 돌아오면서 다시금 라이벌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이후 고척돔 참사에서 클린업을 맡아서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시즌 초반에는 이대호는 4할 이상을 쳐대며 타격 부문 선두권에 오르고, 김태균은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을 86경기까지 갱신하는데 성공하며 오랜만에 두 선수가 다 잘하는 싸이클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6월 이후 이대호는 찬스마다 삼진 혹은 병살타를 치며 욕을 먹었고, 김태균 역시 출루 기록이 끊기자마자 슬럼프에 빠져버리며 친구답게 서로 똑같이 누가누가 못하나 대결하며 나쁜 쪽으로도 싸이클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대호는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는데, 김태균은 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하며 평행이론을 다시 입증 중이다. 최종성적은 김태균은 wRC+ 142.9 이대호는 132.2를 기록. 다만 이대호는 142경기, 김태균은 94경기 출장에 그쳤다.
  • 2018년
    이대호가 역대급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할동안 김태균은 나름대로 괜찮게 활약 중이었다. 이대호가 올라오고 김태균은 큰 하락 없이 꾸준히 스탯을 쌓고 있었으나... 이대호가 미친듯이 타점을 쌓을 동안 김태균은 미친듯이 부상이나 쌓았다.(...) 김태균이 부상에 계속 허덕일동안 이대호는 4번타자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줬다. 정작 포스트시즌에 진출한팀은 한화이글스. 묘하게 소속팀 성적들도 정 반대다.[43]
  •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은 이대호의 딸 이름이 효린이고, 김태균의 딸 이름도 효린이다. 두 효린 어린이는 모두 신묘년 토끼띠 생이라는 것까지 같다. 다만 이효린 양은 2018년 이예서로 개명했다.

6. 별명

  • 통통한 체격으로 인해 언론에서 흔히 쓰는 별명은 빅보이이지만[44] 일반적으로는 이름을 살짝 바꾼 돼호, 혹은 거기서 조금 더 바꾼 돼랑이(돼지+호랑이. 이대호의 호를 虎라고 봐서) 등등으로 불린다. 간혹 이대호가 부진하면 바로 돼지로 격하. 밑에 나올 부산우유 CF 때문에 우유돼지 추가. 반면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롯데 선수들끼리만 사용하던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MBC ESPN 중계를 통하여 알려졌다. 저 뜻이 뭔가 하면, 만인을 설 기게 하는 포의 둥이...2007년도에 이대호를 제외한 롯데 타선이 부진할 때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고 부른 것이 '공주'의 원조인듯.# 또 가끔씩 나오는 호수비에 대한 경탄의 의미로 수비요정이라고 불릴 때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끔.
  • 이대호의 여러 별명 중 조선의 4번타자는 언론에서도 자주 쓰일 정도로 공식화되었다. 물론 실제 응원에서 자주 쓰이는 문구이며, 최훈의 베이징 올림픽 야구 카툰 정리 편에서 대중화했다.
    '조선의 xxx' 라는 표현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등장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06 도하 참사 당시 이대호가 홀로 대표팀에서 분투했고 네티즌들이 별명을 붙여는 줘야 겠는데 '대한민국 4번타자', '국민타자' 라는 별명은 이승엽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에 붙이지 못하고 명성황후의 대사에서 따와 조선의 4번타자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45] 예전에는 인터뷰에서 이대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꼽았는데 논란거리가 된 이후로는 저 별명을 거북해하는 듯 하다.
    그 외에도 영화 YMCA 야구단에서 비롯된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인 송강호의 풍채(...)가 이대호와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도쿄 대첩에서 역전타를 치면서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이 평소 야구를 안보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는데, 현대 한국에서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북한이나 일제시대 한반도의 명칭(조선/조센)과 연관이 되다보니 이들 중 몇몇은 '대한민국의 4번타자'라고 수정하라며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별명은 확실히 북한이나 일제시대 조선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 한편 야갤 유행어로는 "이게 사람이야 이대호야"가 있다. 일본에 간 이후 오릭스 팬으로부터 이대포라고 불리는듯.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자 이데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 오릭스가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여서 한국처럼 많이 이야기되고 있진 않지만 나름 이대호의 덩치에 관한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일본방송 "우치무라사마즈" 에서 풋살을 할때 덩치 큰 AD가 도와주러 나왔는데 그걸 본 오오타케 카즈키가 "너 이대호냐? 오릭스의 거포."라는 드립을 쳤고 빵 터트렸다. 그리고 그 AD는 끝날 때까지 이대호 AD로 불린건 덤.
  • 비득점권에서 홈런을 자주 때려 2ch에서 붙혀준 별명 '비득점권의 악마' 추가.
  • 네이버에서 '이대호'를 치면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심지어 본인도 저 말을 알고 있었다. 양승호 감독이 롯데 감독 시절, 롯데 프런트에서 라인업에 간섭하려고 하자 "이런 식이라면 나 내일 경기에 1번 이대호 2번 홍성흔 3번 강민호 4번 문규현 쓴다고."라고 일갈하기도 했다고 한다[46]. 출처
  • 그리고 2011년 11월 13일 열린 부산고 VS 경남고 라이벌 매치 투수로 나와서 투심 패스트볼을 선보이자 돼덕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대호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등심패스트볼이라고 명명했다. 또 그의 공에 걸리는 테일링은 돼일링, 공이 떨어지면 PORK[47]이라고 불린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B%2593%25B1%25EC%258B%25AC%2520%25ED%258C%25A8%25EC%258A%25A4%25ED%258A%25B8%25EB%25B3%25BC.gif 돼일링 걸린 등심 패스트볼

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pork%25EB%25B3%25BC.gif Pork볼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130.jpg 그날 던진 구속이 130km/h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파일:external/www.gasengi.com/22826744e0a8c8ddf1473c36c401f71e_kVAeiPYIA9p.jpg
  • 미국에 간 이후 DH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의 약자와 일치해서 생긴 별명인데, 홈런을 배달해준다고. 꽤 센스있는 별명이다.

파일:치타호.png
  • 2018년 초 이대호와 롯데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한 어그로가 꼴갤문학으로 인간 이대호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꼴갤에서 인기를 모았었는데, 그 중 "이대호는 다른 경주견들이 먼저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치타" 로 비유하며 비꼰 글이 역으로 이대호가 성적 반전을 이루면서 성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치타호라는 별명이 붙은 이대호를 비롯해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는 선수들에게 이 치타 드립이 성행하게 되었다.

파일:야구주머니.png
  • 2018년 4월 중반 이후 완벽하게 살아나자 야구주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덤으로 4월 말 이후 듀브론트도 살아나자 삼진주머니 소리를 들었다.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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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체근력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하다. SBS의 모 예능방송에서 600KG의 레그프레스를 워밍업용으로 가볍게 반복해 보였다. 이때 경악하는 이승기,육성재,양세형의 반응에 이 정도는 야구선수들은 다 하는 정도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육성재 역시 손의 악력이 62kg이 넘게 측정될만큼 약골이 아니지만 이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심지어 이전에 500KG으로 워밍업을 한 직후였다. 이승기 역시 이에 도전했지만 200KG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이대호의 하체근력은 아무리 낮게 보아도 이승기의 최소한 3배는 훌쩍 넘는 셈.여담이지만 20~30년째 온종일 생일,성탄절,명절 연휴 마지막날까지 헬스장에서 새벽3시까지 살다시피 하는 김종국마저 레그프레스는 210kg이 한계이다.연예계에도 400kg의 레그프레스를 100회씩 미는 박진영이나380kg을 가볍게 밀었던 이정진,강호동 등이 있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인기 종목의 전문 운동 선수와 일반인,연예인의 차이는 비교도할수없을정도로 하늘과 땅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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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식 프로필에는 194cm, 100kg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1년 입단 당시이고 지금 현재는 어느 누가 봐도 120kg을 너끈히 넘는다. 만약 192cm, 100kg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 혹은 마해영과 같다. 같은 팀의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 이재곤이 191cm에 96kg으로 공식 프로필상 4kg 차이지만 누가 봐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차이다. 2009년 올스타전 하루 전 부산에서 있었던 슬러거 이벤트에서 팬들의 질문에 127kg라고 밝힌 바 있으며,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10대 1 인터뷰 기사에서 몸무게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총 20개의 질문 중 3개가 몸무게 및 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개중에는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보는데 왜 살 안 뺌?"이라는 질문도 있었다. 2012년에는 125kg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듯. 의외로 의식하고 있는지 KBS 다큐멘터리 촬영 때 오릭스에서 낸 기사에 130kg라고 적혀있자 "저 125kg임. 확실히 체크해 주세요 OK?"라고 일어로 구단 직원에게 항변하기도 했다. 정말 많이 나갔을 때는 150kg까지 나갔었다고.. 현재 구단 공식 프로필에는 130kg이라 나와있다.
파일:attachment/이대호/2.jpg
  • 그의 체중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짤. 이러한 체중변화는 이대호가 열심히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는 유력한 지표이기도 하다. 강병철 감독이 옆에 사람 붙여가며 영남 알프스 등산시킨 06~07시즌이나 소프트뱅크 마지막해나 메이저리그 도전때같이 일신할 필요가 있을때는 독하게 살을 뺏었고 김태균에게 역전당한 08시즌이나 1루수 전체 5위로 로사리오, 스크럭스, 러프, 오재일에게 밀린 17시즌에는 살이 엄청나게 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2016년에도 시즌 전과 초반에는 체중감량을 하며 나타나 칭찬받았지만 후반기에 부진하고 체중으 다시 불어났다. 근데 불어나도 유연함으로 정말 잘치는 선수.
  • 부산우유 전속 광고 모델을 맡고 있다. 위에 썼듯이 이 광고 때문에 우유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산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부산우유 라디오 CF에서는 노래까지 부른다!

  • 2016년 3월부터 현대증권의 모델로 활동 중이다.
  • 2009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 특별 출연. 특별 출연한 야구 선수들 중 유일하게 대사가 있다! 다른 선수들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여러분'이라고 뭉뚱그려 나오는데 이대호 혼자 따로 배역으로 나온다. 배역은 이대호 선수 역 영화 내에서도 4번 타자 주제에 병살타나 치고 있다며 까고 있는 설경구를 향해 "마, 딱 봐놨어 니...딱 거 있어라 니능...딱 거 있어!!"라는 대사를 친다. 이 대사 뒤에 '니는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어!!!'도 있었다는데, 이미지를 생각해 편집되었다고...[48] 장원준은 이 신을 찍다 달려나오다 넘어져 유일한 NG를 낸 사람이 됐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설경구가 너무 했다기 보다는, 사직 야구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에 가깝다. 설경구처럼 그물까지 뚫고 들어가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그 와중에 까메오로 한명재 캐스터와 허구연 해설위원이 캐스팅되었는데 퀄리티가 MBC SPORTS+ 야구 중계다. 장원준은 덤. 이때 이대호는 '아 연기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슛 들어가보니 설경구가 정말로 사직구장에서 술마시고 욕하는 아재들처럼 레알스런 연기로 순간 이대호의 뚜껑을 열어버렸고, 열이 확 받아 진심으로 대사를 치며 한 번에 OK 사인을 받았다고 술회. 나중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설경구를 볼 때까지도 분이 안 풀렸다나... 그리고, 이 영화 캐스팅 롤에 올라가면서 출연료도 천만원 받았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평가하길 '상대 배우의 감정까지 끌어올려주는 명배우'라고 설경구를 평가했다.
  • 2009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 "천만 관객 동원 배우다"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말하고 나서 멋쩍은 듯 한숨을 쉬는 거 보면 자신이 생각한 건 아니고 대본에 있었던 듯 하지만, 절친한 개그맨 이동엽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종종 저 말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즈음 거대 캐릭터 풍선이 만들어졌다.#
  • 2009년 12월 26일, 신혜정 씨와 결혼하였다. # 시즌 중에 사직구장 전광판을 이용해서 영상 메시지를 날리고, 이어 3만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이대호가 부상으로 신음할 때 정성껏 간호해주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해 준 사람으로, 2001년 롯데 선수단이 임수혁선수 돕기 일일 호프를 했을 때 만났다. 2001년 무릎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할 때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당시 여자친구이던 와이프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신혜정 씨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시험 기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며, 7시간의 장시간 수술 뒤 이대호가 1L 소변통을 가득 채웠는데 아무 내색 없이 받아서 치워줬다고. 처음에는 '이대호가 너무 크다'며 싫어했으나 적극적인 구애에 곧 사귀기 시작,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2010년 이대호의 포스를 보면 신혜정 씨의 공헌이 큰 듯하다. 이대호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듯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용됐다고 해 달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 아래 서술한 대로 넉넉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며 꿈도 가족끼리 외식 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소박. 그래서인지 아내와 딸이 야구장을 찾으면 꼭 홈런이나 타점이 나오는 활약을 한다고. 그에 비해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형 이차호 씨가 야구장을 찾으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 아예 보러 가지 않는다고.
  • 여담으로 2010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도루는 왜 못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100m를 15초 대에 달려서 도루를 못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49] 그리고 홈런을 많이 쳐서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해당 영상 참고로 이대호의 선수 생활 통산 도루는 10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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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초등학교 시절. 맨 왼쪽 3번을 달고 있는 아이가 추신수, 왼쪽에서 4번째에 있는 얼굴만 보이는 이대호, 맨 오른쪽의 25번이 이우민(개명 전 이름 이승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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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사진을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체격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신수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야구를 위해 수영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교실에 갔더니 웬 고등학생이 뒷줄에 앉아 있더라고... 감독한테 말했더니 꼭 데려오라고 구박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야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한편 이대호 본인은 바로 아래 서술할 불우한 가정 형편 때문에, 당시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정태를 외삼촌으로 둔 추신수가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 마지막 주먹다짐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른 야구 부원이 6학년에게 맞고 오자, 찾아가서 코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팼던 것이었다고 한다. 워낙 큰 덩치 탓에 중학생 이후로는 감히 싸움을 걸어오는 또래가 없었다고.
  • 큰 덩치만 보면 누가 봐도 잘 사는 집안에서 잘 먹고 큰 듯하나, 어린 시절이 꽤 불우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할머니가 홀로 키워줬다고 한다. 추신수의 권유로 이대호가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삼촌들이 모여서 가족 회의를 했고, 그 끝에 "야구 선수가 되도록 한 번 밀어 줘 보자."로 결론. 이후 삼촌들이 사직 야구장에 많이 데려갔다고 한다. 학창 시절 이대호는 야구 선수로 대성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릴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경남고 2학년 때 그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1년 뒤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2억 원이 조금 넘는 거금을 계약금으로 받고도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그리고 이대호가 프로에 입단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친어머니가 다시 같이 살자고 전화도 왔었다고 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운동 선수의 체격은 선수 어머니의 신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대호의 경우는 어머니의 키가 169cm였다고 한다. 이대호의 나이, 즉 어머니의 연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큰 체격[50]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교 재학 중 부모님 같았던 할머니를 여읜 후에는 형인 이차호 씨가 이대호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3살 터울의 형은 할머니를 덜 고생시켜드리고 싶어, 우수한 학업 성적에도 불구하고 빨리 취업을 하기 위해 공고에 진학해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고, 이대호가 프로 지명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군 전역 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이대호가 속한 스포츠 매니지먼트 그룹인 O2 S&M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여담이지만 이대호의 형 이름이 '이차호'로, 원래 뜻으로 따지면 이차호가 첫째이니 차호가 '대호'라는 이름을 갖고, 이대호가 둘째이니 '차호'라는 이름을 받아야 하는데, 할머니가 호적 등록 과정에서 한자를 헷갈려 이 둘의 이름을 뒤바꿔 버리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자 코치였던 박계원이 이대호의 학창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92년 당시 박계원의 지인이 수영초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수영초를 찾은 박계원이 이대호의 불우한 사정을 듣고 야구장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행 활동이 많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오프 시즌마다 자비로 구입한 연탄을 팬클럽, 동료들과 함께 달동네 독거노인들에 직접 방문하여 배달하고, 독거노인들을 직접 목욕시키거나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려고 그런다고. 특히 연탄 배달은 2006년부터 시작해서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2017년에도 연탄 봉사에 나서며 12년째 매년 겨울 연탄 봉사를 하고 있다.
  • 2010년의 몬스터 시즌을 바탕으로, 마구마구 2010년 KBO 카드 업데이트를 통해 첫 출시부터 엘리트 카드로 나온 최초의 현역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마구마구는 2006년부터 매년 해당 시즌 성적을 반영한 새 선수들을 내놓는데, 07 리오스를 제외한 2006~2013년에 나온 모든 선수들은 처음 나올 땐 레어 카드였다. 그러나 2014년에 지속적인 엘리트 카드 추가 패치를 통해서 현재는 엘리트 카드가 있는 현역 선수들이 적지 않고, 첫 출시부터 엘리트인 경우도 많아졌다. (박병호, 강정호, 유한준, 강민호 등)
  • <1박 2일>의 6대 광역시 특집에 부산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 갑작스러운 섭외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친화력이 높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게 남들에게 다가서기 힘들어 하는 이대호와 이승기 모두 쉽게 친해져 거의 의형제급의 친한 사이가 되어 헤어졌다. 이 와중에 이대호는 복불복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으며, 예의 황금 배트를 노리고 오는 도둑이 있을까봐 불안해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는 복불복으로 짝퉁 방망이 갖다 놨습니다. 부산 시내 은행이 100개가 넘으니까 복불복으로~"라고 드립치는 등 예능감을 터트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이승기가 "우리가 <무릎팍도사>보다 먼저 나가는 거야?"라고 했다는 후문. 녹화는 12월 8일에 마쳤고 1월 초에 방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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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찜질 중이신 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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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교다리 이대호
  • 그리고 2011년 1월 12일 밤에 무릎팍도사 이대호편이 방송됐다. 고민은 "이 우승을 못 해요." 강호동과 쿵쿵따를 하거나 '좀 알고 질문을 하셔야죠~'라고 하는 등 예능감을 적절히 뽐냈다. 이대호의 술회에 따르면 소속 팀이 우승했을 때(고등학교 1학년) 후보 선수라 우승컵 잠깐 만지고 끝났고,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때(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활약한 대회) 우승하자마자 도핑 테스트에 랜덤으로 걸려 환호도 못 지르고 끌려갔다고. 그리고 이대호의 고민은 결국 무릎팍도사도 발을 뺌으로 인해서 사상 최초로 무릎팍도사가 해결해주지 못한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2014년 시즌에 이 퍼시픽리그 우승과 2014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드디어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이듬해에는 한 술 더 떠서 2015년 일본시리즈 MVP도 먹었다....
  • 2011년에 개봉한 영화인 <위험한 상견례>에선 롯데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 어린이'가 등장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말. 실제 모습과 아역 배우의 씽크로율이 상당하다.
  • <응답하라 1997>의 8화에 '경남고 투수 이대호'가 등장한다. 스카우팅을 위해 경남고를 방문한 성동일이, 이대호에게 좋은 투수의 자질이 보인다며, 경남고 감독에게 이대호를 투수로 키울 것을 강추하는 에피소드가 짧게 지나간다.
  • 2011 MVP 시상식때 2표 받았지만 특유의 능글거림을 뽐냈다. %
  • 2012년 9월에 이대호의 사촌동생 이병호가 <슈퍼스타 K 4>에 지역 예선에 출전하여 만만치 않은 가창력을 보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슈퍼위크에 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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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 라커룸에 나이트 삐끼가 준 명함을 꽂은 적도 있다. 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런 듯.
  • 2012년 10월 31일, 모든 야구 게임에서 이대호의 이름이 이태산으로 바뀌었다. 단 나는 야구감독이다에서 "장거포"로 이름이 바뀌는 등 예외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매우 일찍 바뀌었다. 2013년 초에는 이대호의 이름이 돌아왔다.
  • 별명은 이돼호, 돼퍼소닉[52], 찐돼[53], 짭돼[54]
  • 2012년 11월 4일 이대호의 일본 진출 첫 시즌을 되돌아보는 KBS 스페셜이 방영되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1시간 짜리 이대호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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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대호의 딸 효린 양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이대호 판박이네." "부산 내에서 길을 잃으면 누가 봐도 사직 야구장으로 데려갈 정도로 닮았다."
  • 2012년 12월 11일에는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다. 몰래 온 손님으로는 최준석이 출연했는데, 최준석이 훨씬 웃겼다. 서로 훈훈한 모습 보이며 잘 마무리.
  •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안드레 이디어가 류현진이 다저스에서 뛰기 시작한 2013년부터 맹활약을 펼치면 이대호의 이름을 딴 이디호라고 별명으로 칭송받고 있다. 반대로 못하면 이디형이라고 까였다.
  • 류현진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한참 갑론을박이 많았을 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이대호와 함께 롯데에서 클린업을 이루던 홍성흔은 팀과 상의하되 1살이라도 젊을 때 갈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 이대호처럼 FA를 얻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한 다른 야구 관계자나 선수로는 이종범이 있고, 홍성흔과 비슷한 의견을 낸 건 김병현, 박찬호, 봉중근 등 메이저리그에서 몸을 담은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최종적으로 류현진은 후자쪽 주장을 한 인물들의 의견처럼 포스팅을 통해 진출했다.
  • 컴투스 프로야구 2012년 피처폰 초기 버전에서는 이대호가 나온 적이 있었다. 초기 버전 출시 시기가 2011년 시즌 최후반이었다. 다만 업데이트로 인해 바뀌어버렸지만.
  • 이승엽이 은퇴 후 싸전드 소리를 들으며 매스컴에 노출 될 때마다 댓글이 싸인 드립으로 가득하고, 나지완, 이범호 등의 팬 서비스가 지상파 뉴스까지 타게 되자, 본인도 이에 의식을 했는지 2017년 들어서는 싸인 및 팬서비스를 곧잘 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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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직 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2차례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55] 그것도 2007,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기록했다. 날아간 것은 2010년의 홈런이 더 멀리 날아갔으나, 시즌 40호 홈런이라는 사실과 함께 9경기 연속 홈런에 묻혀 버렸다고. 사직구장 바깥에 가면 당시 홈런의 낙하 지점에 이를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 "카라 얘기하니까 갑자기 카레가 먹고 싶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 이에 야구 팬들은 앞뒤를 뒤집어서 카레 얘기하니까 카라가...라는 식으로 섹드립을 치기도 했다.
  • 일본 활동을 하면서도 고기를 먹기 위해 한국 불판을 챙겨 갔다고 한다. 일본 불판은 작아서 고기를 굽는 데 애로 사항이 있다나..##
  • 이대호가 미국에 뛰는 사이 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해야갤 등 일부 커뮤니티에선 이를 놓고 노리고 원정출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대호와 아내의 집안 사정이 익히 알려져 있는데다 원정 출산 관련 법은 진즉 개정되어 조금만 찾아보면 아니란 게 드러났던지라 금방 수그러들었다. 미국에 간 2016년 시즌이 끝나고 1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원정출산 의도는 애초에 없었다고 결론내려졌다.
  •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 정훈이 이대호를 많이 따르는 편이며 굉장히 친한 편이라고 한다. 아직 무명이던 시절에는 이대호의 타격폼을 보고 스윙연습을 했다고 하며, 원정을 갈 때면 룸메이트로 함께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대호가 다시 롯데로 돌아왔을 때도 정훈의 공이 가장 컸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런 훈훈한(?) 장면들을 찍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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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내 2루수로 활동했던 앤디 번즈 가 이대호의 엄청나게좁은 수비범위로 인해 1루-2루 사이 모든 수비를 다하는 광활한 수비 범위를 갖게 되었다(...) 지못미 이젠 적응됐는지 이대호가 잡을 파울 플라이도 당연하듯이 잡으러 간다...라기보단 번즈가 관종 수준이라 자기 주위에 오는 플라이볼은 무조건 자기가 잡으려 콜을 한다. 이 잡을만한 공도 자기가 콜해서 놓치는 경우도 가끔 있다.
  • 2018년 1월 21일 집사부일체의 사부로 SBS에 나왔다. 현역 선수답게 출연진들을 신나게 굴리는 모습이 나왔다. 등장부터 출연진들을 양산시의 백운암으로 불러서 강제 등산을 하게 했다. 이대호가 훈련을 한 곳이라고 한다. 이후 하산해서는 양산 시내의 헬스장에서 또 체력 훈련을 시켰다. 이 때문에 출연진들은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2018 시즌 개막 이후 이대호가 부진하자 자기나 열심히 해라, 보여주기 식이었다, 연예인병 걸렸다, 연예인들 괴롭히지 말고 야구나 잘해라며 욕을 먹었다. 또한 3월 24일 일찍 시작된 개막전에 시작하자마자 팀의 연패가 지속되고 최하위 (현재 10위)가 머물자 타격도 안 되고 홈런도 안되고 타격 페이스가 안되니 지난 3월 31일 NC와 5-10으로 팀이 또 패배하자 (7연패 기준) 홈구장 퇴근길에 어떤 팬이 치킨박스를 던져 등에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나 그 이후 바로 각성. 2018시즌 타율 0.333, 37홈런, 125타점을 때리며 롯데의 든든한 기둥역할을 해주었다.이 후로 이대호가 부진할 때면 치킨 박스를 던지면 깨어난다는 농담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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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첩에서 역전 안타를 친 후 [57]

* 2006년 재능이 만개한 이후로 어지간한 국가대항전엔 꼬박꼬박 불려나갔고 나가는 대회마다 괜찮은 성적을 올린, 역대 국가대표 선수중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의 보유자이다. 2017 WBC까지 기준으로 41경기 133타수 43안타(.323) 7홈런 41타점. 나가는 대회마다 최소한 평타 이상은 했는데 꼭 나가는 대회마다 무슨 일이 있어서 파묻힌 케이스[58]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2018 아시안게임은 출전하지 않았고 아마 국가대표 커리어는 이대로 마감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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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기한 집사부일체 출연 당시 밝힌 사실로, 매년 겨울훈련 기간인 11월~12월 두 달간은 고기 두점에 샐러드, 견과류로만 이루어진 간소한 식단을 짜서 체중관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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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엄격하게 준수하는듯. 다만 시즌 중에는 두 달간 못 먹은것까지 다 합쳐 먹어서 다시 살이 찐다 카더라

8.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 성적.
역대 기록
년도팀명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사사구장타율출루율
2001 롯데 6 8 .500 4 0 0 0 1 0 0 1 .500 .556
2002 74 255 .278 71 19 0 8 32 27 1 26 .447 .345
년도팀명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사사구장타율출루율
2003 롯데 54 152 .243 37 6 0 4 13 8 0 19 .362 .328
2004 132 444 .248 110 26 0 20 68 52 4 58 .441 .331
2005 126 447 .266 119 16 2 21 80
(5위)
53 1 62 .452 .354
2006 122 443 .336
(1위)
149
(2위)
26
(4위)
0 26
(1위)
88
(1위)
55
(5위)
0 71 .571
(1위)
.409
(4위)
2007 121 415 .335
(3위)
139
(4위)
29 1 29
(2위)
87
(2위)
79
(3위)
1 94 .600
(1위)
.453
(3위)
2008 122 435 .301 131 23 0 18 94
(3위)
73 0 80 .478 .400
2009 133 478 .293 140 28 1 28
(4위)
100
(3위)
73 0 67 .531 .377
2010 127 478 .364
(1위)
174
(1위)
13 0 44
(1위)
133
(1위)
99
(1위)
0 71 .667
(1위)
.444
(1위)
2011 133 493 .357
(1위)
176
(1위)
26
(3위)
1 27
(2위)
113
(2위)
76 2 71 .578
(2위)
.433
(1위)
년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오릭스 144 525 .286 150
(5위)
25 2 24
(2위)
91
(1위)
54 0 71 .478
(2위)
.356
(4위)
2013 141 521 .303 158 27 0 24 91
(5위)
60 0 70 .493 .384
년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4소프트
뱅크
144 566 .300 170
(2위)
30
(5위)
0 19 68 60 0 56 .454 .362
2015 141 510 .282 144 30 0 31
(5위)
98
(4위)
68 0 71 .524
(4위)
.368
년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6 SEA 104 292 .253 74 9 0 14 49 33 0 25 .428 .312
년도팀명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사사구장타율출루율
2017롯데 142 540 .320 173 13 0 34
(5위)
111 73 1 65 .533 .391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8롯데 143 542 .334 181
(3위)
30 0 37 125
(2위)
81 0 57 .594 .395
KBO 통산(13시즌) 1435 5130 .313 1604 247 5 296 1045 765 10 726 .536 .395
NPB 통산(4시즌) 570 2122 .293 622 112 2 98 348 242 0 268 .486 .370
MLB 통산(1시즌) 104 292 .253 74 9 0 14 49 33 0 25 .428 .312
개인 통산(17시즌) 2109 7544 .305 2300 368 7 408 1442 1040 10 1019 .518 .384

[1] 韓 1423+日 622+美 74, 진행중[2] 2010년 8월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회초 김희걸을 상대로 비거리 125m짜리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시즌 38호 홈런이자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3] 도루부문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도루부문은 마지막까지 김주찬이대형이 경합을 하며 롯데의 타격 주요부문 전관왕을 저지하며 타이틀을 가져갔다.[4] 2001~2004시즌, 2006~2007시즌, 2011시즌, 2017시즌[5] 2005시즌, 2008~2010시즌. 타격 7관왕을 했던 2010시즌에 3루수를 봤다. 2011년 이후로도 가끔 3루수를 본다. 2018년도에도 팀의 공격력을 강화하기위해 가끔씩 선발출장한다.[6] 예전에도 간간히 출전했으나 2018시즌부터는 채태인 의 영입으로 인해 사실상 고정 지명타자.[7] 등번호 10번은 이대호를 상징하는 번호이며 수영초 야구부 시절부터, 롯데 자이언츠-오릭스 버팔로스-소프트뱅크 호크스-시애틀 매리너스 그가 몸담았던 모든 팀에서 10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물론 대표팀에서도 10번을 달고 활약했다.[8] 할머니 오분이 여사의 이름에서 따온 등번호이다. 원래 10번과 52번 둘 중 하나를 달려고 했으나 10번은 내야수 오비키 게이지가 달고 있었고 52번은 이후에 한국에 오는 이 분이 달고 있었기 때문에 52번을 뒤집어 25번으로 달게 되었다. 이후 2013년 오비키 게이지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하면서 다시 10번을 달았다.[9] 신규창단한 SK 와이번스가 2차지명 1라운드에서 3명을 지명하는 어드밴티지를 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체 2번으로 지명. 이대호를 거르고 지명한 김희걸과 이제는 지도자인 김동건 등이 프로에서 성공했다고 보기엔 힘들기에 SK 입장에선 속쓰릴 만한 선택.[10] 등장곡 사용이 중지된 현재도 팬들이 육성으로 '대-호'를 외친다. 또한 응원가로도 사용이 된다.[11] 조단장이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본 것인지 2019 시즌 영화에 나온 퀸의 Ay-Oh 버전으로 대-호를 외친다.[12] 2017년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야나기타 유키가 이 노래를 등장곡으로 쓰는 모습이 잡혔다. 이대호랑 친해서 그의 응원곡을 따라 쓴 듯.[13] 멜로디는 그대로고 가사만 바뀌었다. 그래도 국내에서도 롯데시절의 응원가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이대호의 활약상 덕분에 일본에서도 듣기 좋은 응원가라는 평을 얻고있다.[14] A:イデホ イデホ コウ! コウ! コウ パイティ! イギョラー イギョラー イデホ イギョラー イギョラー イデホ(이대호 이대호 고 고 파이팅! 이겨라 이겨라 이대호 이겨라 이겨라 이대호!)/B:築き上げたそのキャリアで チャカラ カンセエ チョラ イデホ 規格外のその巨体で 会心の一撃飛ばせ(쌓아 올린 그 커리어로 자 가라 강하게 쳐라 이대호 규격외의 그 몸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려라) A->B->응원 콜->B를 반복했다.[15] 오~ 롯데 이대호 오오~롯데 이대호~오. 오~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워오오워오워오(x2)[16] 라라라라 라라라~ 홈!런! 이!대!호!(x4)[17] 이대호의 에이전트이기도 하다.[18] 개명하기 전 이름은 이효린으로, 이대호의 절친인 김태균의 따님과 같은 이름이었다.[19] 2019시즌 연봉 1위[20] 도루능력이 없는 것과 주루능력이 평균 이하라는 것은 193cm의 키와 120kg이 넘는 체중에도 불구하고, 가 대신한다.[21] 2010 시즌이나 이대호가 없던 2014, 2015 시즌 꽤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그리고 그분에게 골든글러브를 압수당했다 임팩트로는 밀리지 않는다. 물론 커리어는...[22] 단일 시즌 임팩트는 타격 3관왕, 7관왕 등을 기록한 이대호를 더 쳐주나, KBO 통산 기록으로 보면 김태균이 근소하게 우위[23] 그런데 만약 이대형이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기아의 부처가 된 선수가 도루왕을 차지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1개 차이었고. 그렇다면 타격 주요 8개 타이틀이 모두 롯데 소속 선수가 될뻔 했다. 사실 도루 외의 다른 타격부분도 대부분 홍성흔이 2위였고, 이대호가 없었다면 홍성흔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을 시즌이다(...). 이 시절 롯데의 괴물같은 타선의 흔적.[24] 1위는 로베르토 페타지니인데 이 분은 2시즌 기록(2008~2009 시즌).[25] 이대호는 딱히 부동의 4번 타자 자리에 있던 타자는 아니었다. 이대호의 옆에는 늘 김태균이 따라붙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격차가 꽤 있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는 김태균과 이대호의 경쟁은 몹시 치열했다. 그래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대호로 기울어졌다고 볼 수 있다[26] 실제로 말 할때 억양 들어보면 전형적 부산 사람 말투다.[27] 다만, 홍성흔이 포수 출신이라 발은 느린 편이다. 통산 병살 1위가 이를 증명한다.[28] 물론 2007시즌의 이원석에두아르도 리오스가 있었으나 둘 다 공격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이원석도 홍성흔 FA 영입에 따른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이적.[29] 내야수 자원으로 지명한 전준우는 결국 중견수로 전환했고, 이제는 올스타 3루수로 올라선 김민성은 롯데 시절에 주로 2루수나 유격수로 나왔다. 에두아르도 리오스이원석은 수비는 괜찮아도 타격이 안 돼 타선 운용에 어려움을 줬다.[30] 다만 위의 수비 장면은 이대호의 발로는 잡을 수 없는 타구에 가깝다. 1루의 주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1루 베이스에 가까이 붙는 수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31] 2007년 4월 두산과의 잠실 경기에서 도루 도중 어께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여 팀의 초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바 있다...[32] KBO 리그 복귀 이후 욕을 먹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33] 사도스키 리포트에서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관계로만 보면 거의 유일하게 틀린 부분이다. 이대호는 KBO에서의 전성기 동안 사이드암/언더핸드 상대 타율이 3할이 넘는다. 정대현이 이대호의 천적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대호가 다른 잠수함 투수에 강한데 정대현에게만 약하기 때문이다.[34] 2010년 이대호의 사이드암/언더핸드 타출장은 0.389 0.484 0.611 이고, 시즌전체 성적(0.364 0.444 0.667)과 비교하면 장타를 적게 쳤을 뿐 매우 강했다. 심지어 정대현과의 맞대결을 제외한 성적은 4할5푼에 출루율은 5할이 넘는다.[35] 게다가 정대현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먹튀와 잦은 부상으로 많이 희석된 감이 있지만, 사실 정대현은 KBO 불펜투수 중 탑급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만이 아니라 통산 성적이 그렇다![36] 펠릭스 호세참교육을 시전하고 잔여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37] 이시기가 엄청난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 조정스탯으로 비교할 경우 김태균은 이 시기 평소보다 부진하지 않았다. wRC+ 수치로 보면 김태균은 한국리그 커리어 평균 155.6에 비해 2006년 161.1, 2007년 159로 오히려 평균보다 더 잘한 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2006년 191.8, 2007년 194.7을 기록한 이대호가 미쳤을 뿐. 참고로 2007년의 이대호는 타격 7관왕을 기록한 2010년의 이대호보다 wRC+가 더 높다.[38] WBC가 2006년 정규시즌 전에 3월에 열렸기 때문. 막상 1루수 자원에 이승엽, 최희섭이 있어서 김태균도 꼴랑 4타석 나왔다.[39] 당시 병역 문제를 해결한 김태균과 달리 병역 문제가 걸려있었던 이대호를 뽑았고 더불어 대표팀 1루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던 이승엽까지 뽑으며 포지션 중복을 이유로 김태균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때 이대호가 각성이후 최악의 부진을 맞으며 팀에서도 타순이 6번까지 밀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병역문제 때문에 억지로 뽑았다는 논란이 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대호를 3루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 실제로 김동주가 쉬는 경기에 3루를 보기도 했고 이대호가 대회내내 워낙 잘쳐서 대회이후 큰 논란은 없었다.[40] 타율, 안타, 출루율 1위.[41] 안타치면 똑딱거린다고 까이고, 홈런을 치면 솔로홈런이라고 까이고, 멀티 히트를 쳐도 주자 없다고 까인다. 심지어는 출루를 해도 후속타자들 타점 올리는데 방해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근데 다 팩트[42] 다만 이것은 해외로 나간 선수들에 대한 국내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딱히 등을 돌리니 마니 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전의 팀 팬이 아니고선 바로 비아냥이 나오기 때문. 그리고 이전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들을 생각해보면 어떤지 답이 바로 나온다.[43] 롯데가 8888577을 찍을동안 한화는 우승권은 아니더라도 나름 포스트시즌 단골팀이었는데, 2008년 로이스터매직으로 롯데가 암흑기를 깨자 한화의 5886899678이 시작되었다. 17시즌과 18시즌의 성적도 서로 정 반대.[44]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인데도 여전히 '보이'이다(...)[45] 윤학길이 현역시절 '고독한 황제'가 아닌 '고독한 황태자'란 별명이 붙은 것도 '황제'인 최동원이 건재했기에 롯데 팬들이 자기 팀 에이스임에도 차마 1인자와 연관된 별명을 붙일 수 없어 황'태자'를 붙였는 데 같은 맥락인 듯.[46] 사실 이대호는 1번을 해도 문제 없는 선수다. 현대 야구는 전통적인 스피드형 1번보단 출루율이 높은 1번을 더 선호하기 때문[47] 포크볼은 Forkball이다.[48]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저 대사 이후에 마 니는.. 이후에 목소리가 안나옴을 알 수 있다.[49] 순경 공채에 지원한 대한민국 남성의 100m 달리기 평균 기록이 15초 중반대인 걸 감안하면 이대호의 주력은 일반인 기준으로 평균 이상이다. 오히려 그 덩치에 이 정도 주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프로 선수들의 운동 능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50] https://www.google.co.kr/amp/m.yna.co.kr/amp/kr/contents/%3fcid=AKR20160726054000009. 2014년 기준, 한국여성 평균키는 162.3cm으로 이대호 어머니의 키는 현재 한국여성의 평균키보다 상당히 크다. 여성의 키 편차가 남성의 키 편차보다 작은걸 감안하면 더욱 크다.[51] 여담으로 저때 투수는 김진우.[52] 등치에 비해 빨리 뛰어 안착할 때 불림[53] 잘 할 때[54] 못 할 때[55] 1차례 이상 기록한 선수는 2011시즌에 당시 LG 소속이었던 조인성과 2014시즌의 황재균, 2015시즌 최준석, 댄 블랙, 이승엽이 장외 홈런을 쳤다.[56] 잘못된 경제효과 계산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연히 말도 안 된다.[57] WBSC 프리미어 12도쿄 대첩에서 역전 안타를 친 당시의 사진. 오른쪽에 서있는 선수는 나카타 쇼.[58] 2006년은 타율 4할을 넘기고 2홈런 10타점을 기록했지만 도하 참사(야구), 2008 올림픽은 .360 3홈런이었지만 준결승, 결승의 이승엽에 묻혔고, 2009 WBC는 출루율 4할대를 찍고도 .278의 타율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으며, 2010 아시안게임은 .368 1홈런이었지만 추신수에 묻혔고, 2013 WBC는 타율.455를 찍고도 대회탈락으로 묻혔다. 다만 2015년 프리미어12는 .222 1홈런으로 부진했지만 준결승전의 결정적인 역전타로 주목받았고 역으로 2017 WBC때는 다같이 못했지만 이대호 본인도 정말 더럽게 못했기에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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