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22:05:12

가득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3123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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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7 이승엽 [[틀:두산 베어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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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조웅천 · 71 이도형 · 80 김진수 · 82 권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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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재활군
72 조경택 · 74 조인성 · 90 가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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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이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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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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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7 2008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0번}}}
김도형
(1990~1991)
가득염
(1992~2006)
문규현
(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30번
조중근
(2004~2006)
<colbgcolor=#ff6600><colcolor=#fff> 가득염
(2007~2010)
신정익
(2011~2013)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2번}}}
한문연
(2003~2010)
가득염
(2011~2012)
김성현
(2014)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김경원
(2012)
가득염
(2013~2015)
공필성
(2016~2018)
{{{#ffffff [[kt wiz|kt wiz]] 등번호 76번}}}
윤형배
(2014~2015)
가득염
(20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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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가득염
(2019~2020)
양영동
(2021~)
두산 베어스 등번호 90번
고영민
(2019~2023)
가득염
(2024~)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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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득염 두산.webp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두산 베어스 No.90
가득염
賈得焰 | Ka Deuk-yeom
출생 1969년 10월 1일 ([age(1969-10-01)]세)
충청남도 서산군[1][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전대동초 - 충남중 - 대전고 - 동국대
신체 184cm, 81kg, B형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2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2006)
SK 와이번스 (2007~2010)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재활코치 (2011)[3]
롯데 자이언츠 1군 불펜코치 (2011~2012)[4]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3)
두산 베어스 2군 불펜코치 (2014)[5]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4~2015)[6]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5)[7]
두산 베어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5)[8]
kt wiz 1군 불펜코치 (2016~2017)
kt wiz 2군 투수코치 (2018)[9]
kt wiz 1군 투수코치 (2018)[10]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19)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20)
두산 베어스 잔류·재활군 투수코치 (2024~)
등장곡 SK 시절: 장우혁 - 진짜 남자
파일:두산 베어스 홈 심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롯데 자이언츠 -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약한 전 야구 선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의 코치.

2. 선수 경력

1992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2006년까지 꾸준히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여 2010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데뷔 후 2년차까지만 해도 거의 패전처리 수준이었으나 1993 시즌을 마치고 하와이 윈터 리그에 다녀온 후 기량이 한 단계 스텝업하여 1994년은 무려 162이닝을 던지며 풀 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했고, 1995년은 선발 중간 마무리 등 보직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롯데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94년 압도적으로 1위를 치닫고 있던 LG와의 잠실 원정경기에서 정삼흠과 맞대결하며 8회까지 0:0이라는 투수전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 백미. 해당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롯데가 승리했지만 가득염은 아쉽게 ND로 기록되었다.

짧은 전성기 이후 1996년부터는 성적이 그리 신통한 편이 아니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1이닝씩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짧게 던지는 투구 위주라 통산 성적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 없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롯데에서 활약하며 좌타자 전문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개념을 KBO 리그에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통찮은 성적 탓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가득炎. 강상수와 함께 롯데 불펜진에서 불꽃을 던지는 남자 취급을 받았다.[11]

그래도 투수진이 부족했던 롯데의 팀 사정상 꾸준히 1군에서 등판해 왔고, 투수진의 맏형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6년 5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통산 600경기 등판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6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선수로는 받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코치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선수로 더 뛰고 싶어했던 가득염은 롯데의 코치 제안을 거절하고 방출을 요청하며 15년 동안 뛰어온 롯데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2007 시즌부터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베테랑 좌완 불펜투수라는 점이 베테랑을 좋아하고 불펜야구, 좌우놀이를 즐겨하는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에 꼭 들어맞아 좌완 원포인트로 중용되었는데, 좌완 원포인트라는 보직이 위기상황에 등판하는 특성상 위기에도 겁먹지 않는 강한 멘탈과 노련함이 중시되는 역할인지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가득염에게는 딱 어울리는 자리였고, 덕분에 2006년에 비해 등판횟수가 대폭 늘어나고 방어율은 내려가며 선수생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었다.

2007 시즌 동안 쏠쏠하게 좌타자 상대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였고,[12] 한국시리즈에서 6차전 모두 출장했고 코나미컵에서 중국전을 빼고 전부 출장하여 17타수 1피안타라는 기록을 세운 걸 보면 사람의 동기부여와 분위기 쇄신의 위력을 알 수 있다.

2008년에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좌완 원포인트로 중용되어 SK 벌떼 불펜의 일원으로 2연패에 공헌했다. 2009년부터는 역시 41세라는 많은 나이를 이길 수 없어 성적이 떨어졌고, 201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현역 선수 시절에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도 아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무척이나 운이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한 구단에서 15시즌 동안 뛰면서 험난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 왔지만, 이후 SK로 이적한 뒤 팀이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가득염 본인도 말년에 우승반지 2개를 획득하는 등[13]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이어온 표본으로 꼽히는 선수.

600경기 출전 당시 본인 스스로 40세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비록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지는 못했지만, SK 와이번스에서 41세까지 야구 선수 커리어를 이어 나갔으며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SK 현역 시절이었던 2007년 8월 30일 수원 현대전에 등판하여 조웅천에 이어서 KBO 리그에서는 두번째로 프로 통산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38살 가득염 700경기 등판, 16년 쌓은 ‘노장의 공든탑’

KBO 등록 선수 중에서 최동원윤근영과 함께 역대 최고 타율인 10할을 기록하였다. 2008년 5월 27일 광주 KIA전에서 유동훈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한 것이 유일한 타격 기록이다. (1타수 1안타)
파일:attachment/가득염/15.gif
바로 이 장면.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39세 29일)이기도 하다.

송진우의 은퇴로 2010년 등록선수 중 구대성과 함께 최고령 선수가 되었으며, 2010 시즌을 마친 후 구단과 김성근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19년에 걸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은퇴에 따라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타이틀은 1970년 8월생인 이종범에게 넘어갔다.

통산 성적은 800경기(프로 통산 3번째) 출장, 36승 49패 78홀드, 방어율 4.57.

프로 마지막 경기에 8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지만, 언론과 중계진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14]

3. 지도자 경력

3.1. 롯데 자이언츠

은퇴 후 곧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 제의를 받아들이며 2011년부터는 친정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보직은 당초 2군 투수코치 겸 재활코치로 확정됐다가 2011년 5월부터 1군으로 올라와 불펜코치를 맡았다.

팬들의 평가는 꽤나 좋았다. 계투진의 안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고, 조원우 외야 수비코치, 카츠자키 트레이닝 코치, 주형광 투수코치와 함께 롯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SK 와이번스에 몸담은 시절 김성근 감독의 불펜 관리법을 배워 왔다는 평을 받는다. 2012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양떼 불펜이 노예질로 구르면서도 최후까지 큰 붕괴 없이 유지된 걸 봐서는, 아주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불펜에서의 연습 투구에서의 투구 수를 많이 줄이고, 하프 피칭으로 대체하거나 어느 정도 던지면 아예 공을 뺏는 등 불펜 관리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2012 시즌 종료 후 양승호 감독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득염 코치 역시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롯데를 떠나게 되었다.

3.2. 두산 베어스 1기

결국 2012년 시즌 종료 후 조원우 코치와 함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옮겼다.# 보직은 롯데 시절과 마찬가지로 1군 불펜코치.

한편 가득염이 롯데 코치 시절 평가가 좋았다 보니 두산 팬들은 몇 년간 안정을 찾지 못한 불펜의 안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반면 롯데 팬들은 유능한 코치를 타팀에 내줬다며 아까워하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런데 두산 베어스 불펜의 상황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 보이지만 2012년보다는 나은 편.

2014 시즌에는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가 8월에 1군 불펜코치로 다시 올라왔다.

그 뒤 2015년 6월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반대 급부로 올라온 사람은 한용덕. 팬들은 한용덕이 온 것을 환영했지만, 권명철이 여전히 1군 불펜코치를 지키고 있는지라, 차라리 가득염을 1군에 남기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권명철이 봉와직염에 걸려서 대타로 올라온 적은 있다.

3.3. kt wiz

2016 시즌을 앞두고 kt wiz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욱 감독이 부임한 2017년에도 코치 자리를 유지했다. 두 사람은 과거 두산 시절에도 감독-불펜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적 있다.

2018년에는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가, 6월 18일부로 정명원과 자리를 맞바꿔 1군 투수코치로 올라왔다. 그러나 시즌 후 김진욱 감독 사퇴와 동시에 코칭스태프 개편 과정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다.

3.4. LG 트윈스

kt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종범, 김호, 김재걸, 유동훈, 최일언 등과 함께 LG 트윈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LG에서의 보직은 2군 투수코치.

시즌 전 2군 캠프에서 제구가 불안했던 이우찬의 제구를 잡는데 성공하여 1군에서 불펜과 선발로 보탬이 되게 하는 등 LG팬들에게서 평가는 좋은 편이었다.

2020년에는 1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인 투수코치인 최일언, 그리고 김현욱과 함께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 류중일 감독이 물러나고 류지현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3.5. 두산 베어스 2기

2023년 12월 12일 두산 베어스가 가득염을 코치로 영입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로서 3년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지난 2015년 이후 8년만에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보직은 잔류군 투수코치.

4. 플레이 스타일

파일:가득염롯데시절.gif 파일:가득염투구폼.gif
롯데 시절(2000) SK 시절(2008)

초구나 아웃피치로 포심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며 승부구로는 몸쪽 공을 많이 사용하는 편. SK 시절에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140km 안팎을 왔다갔다 했으며 가끔씩 커터와 슬라이더, 스플리터를 사용하기도 했다.

5. 기타

  • 정우람, 류택현, 조웅천과 함께 역대 KBO 투수 중 8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이며, 상술한 세 투수에 이어 통산 경기 출전수 4위의 기록을 가지고있다.
  • 현역 시절에는 늘 등번호 30번을 달았다. 롯데 신인 시절부터 쭉 30번을 고집했고, 말년에 SK로 이적한 뒤에도 은퇴할 때까지 30번을 달았다.
  • 워낙 희귀한 성씨인 데다가 이름도 특이하다 보니 이를 소재로 한 유머가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주유소에서 기름 가득염'이 있고 여기서 더 나아가 롯데 선수들의 이름을 합친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도 존재한다.[16] 이전에는 롯데 시절에 유래한 가가 가가 드립이 유명해진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나이에 비해 꽤나 동안이다. 1969년생으로 세는 나이로 42세까지 선수 생활을 했을 정도로 선수 생활을 꽤 오래 한 반면 얼굴은 상당히 앳되어 보이는 편이어서 일부 라이트 팬들이 가득염의 나이를 듣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같은 해에 은퇴한 양준혁, 구대성과 동갑인데 이 두 사람에 비하면 꽤나 젊어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은퇴 후 코치가 된 뒤에도 선수들과 같이 찍힌 사진을 보면 코치인지 선수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현역 시절 동안 외모를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
  •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운영진에 가득염의 친척이 있다 혹은 뇌물을 줬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독 스탯을 좋게 받아 진리카드의 대명사로 손꼽혔었다. 다만 나중에는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가득염도 얄짤없이 스탯이 깎였다.
  • 컴투스 프로야구 2012에서 한때 레전드 카드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레전드 선수로 나왔나 하는 반응이 있었다. 결국 KIA 이강철 카드로 교체되었었다. 그러나 2013에서 업데이트에서 갑자기 부활해버렸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글씨는 리그 10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2 롯데 자이언츠 15 30⅓ 1 0 0 0 6.82 30 21 16
1993 25 52 1 5 0 0 3.29 43 26 37
1994 27 162 8 14 0 0 4.28 160 71 83
1995 39 96⅔ 7 4 3 0 4.10 79 49 7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롯데 자이언츠 26 50⅓ 1 1 0 0 3.93 49 27 27
1997 41 41 1 4 1 0 5.71 50 21 24
1998 27 52⅓ 2 2 1 0 4.13 48 22 30
1999 48 49⅓ 1 2 1 0 4.38 52 17 34
2000 39 48⅔ 1 2 0 2 5.18 48 23 37
2001 58
(5위)
50⅔ 1 3 2 9
(4위)
4.26 60 19 42
2002 50 25⅔ 0 2 0 8 5.61 34 11 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롯데 자이언츠 81
(2위)
35⅔ 1 1 1 13
(4위)
5.80 32 13 29
2004 65 40⅓ 3 3 0 12 4.91 40 23 25
2005 35 23 0 0 1 2 3.52 18 5 21
2006 63
(5위)
26⅔ 3 3 0 11 5.06 23 14 2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7 SK 와이번스 67
(5위)
40⅓ 1 0 0 12 4.02 35 17 21
2008 60
(5위)
32⅔ 4 3 1 8 5.51 42 12 24
2009 13 8 0 0 0 0 6.75 7 5 3
2010 21 16⅓ 0 0 0 1 4.41 14 10 12
KBO 통산(19시즌) 800 882 36 49 11 78 4.57 864 406 574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4년 2완투 0완봉
KBO 통산 2완투 0완봉

7. 관련 문서


[1] 현재 태안군 영역.[2] 학교는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다녔다.[3] ~5월 1일[4] 5월 2일~[5] ~8월 10일[6] 2014년 8월 11일~2015년 6월 2일[7] 6월 3일~6월 7일[8] 6월 8일~[9] ~6월 17일[10] 6월 18일~[11] 사실 이름의 끝 글자도 바로 불꽃 염()이다. 거기에다가 가운데 글자인 '득'자는 얻을 득()..[12] 이 때 지명타자/소멸사례에도 나오지만, 조웅천이 한 타자 잡은 후에 좌타자가 나오는데 그 뒤의 타자들까지 조웅천이 던지게 하기 위해서 조웅천을 잠깐 좌익수에 보내고 그 사이에 가득염이 등판한 사례도 있었다.[13] 롯데 신인 시절이던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우승했으나 가득염 본인은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14] 허구연이 800게임 출전이라고 말하긴 했다.[15] 가도쿠라 겐의 경우 KBO에는 카도쿠라로 등록이 되어 있어 해당되지 않는다.[16] 노승욱의 은퇴 이후로 다소 잊혀진 감이 있지만, 풀버전에는 '지나가던 노승 욱하며 하는 말'이 앞에 붙는다.[17] 나이는 가득염보다 10살 위다.[18] 거기다 한선교 의원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농구연맹의 총재를 맡았다. 사실 한선교 의원은 아나운서 시절부터 장내 아나운서를 맡는 등 농구에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