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05:05:05

가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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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염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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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7 200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0번
김도형(1990~1991) 가득염(1992~2006) 문규현(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30번
조중근(2004~2006) 가득염(2007~2010) 신정익(2011~201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2번
한문연(2003~2010) 가득염(2011~2012) 김성현(2014~2015)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김경원(2012) 가득염(2013~2015) 공필성(2016~2018)
KT 위즈 등번호 76번
윤형배(2014~2015) 가득염(2016~2018)
LG 트윈스 등번호 78번
김일경(2017~2018) 가득염(2019~)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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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01101180018_V.jpg
SK 와이번스 현역 시절.
LG 트윈스 No.78
가득염(賈得焰 / Duek-Yeom Ka)
생년월일 1969년 10월 1일 ([age(1968-10-01)]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전광역시 동구
학력 대전대동초 - 충남중 - 대전고 - 동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2년 2차 1라운드 (롯데 자이언츠)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2006)
SK 와이번스 (2007~2010)
지도자 경력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재활코치 (2011)
롯데 자이언츠 1군 불펜코치 (2012)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3)
두산 베어스 2군 불펜코치 (2014)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4~2015)
두산 베어스 2군 불펜코치 (2015)
kt wiz 2군 투수코치 (2016)
kt wiz 1군 불펜코치 (2017)
kt wiz 2군 투수코치 (2018~2018.6.18)
kt wiz 1군 투수코치 (2018.6.18~2018)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19 ~)
등장곡 SK 시절: 장우혁 - 진짜남자

1. 소개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4. 지도자 경력5. 트리비아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롯데 자이언츠 -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약한 전 야구 선수. 사용하던 등번호는 30번.

역대 등록 선수 중에서 가나다순으로 정렬하면 가내영 다음으로 등록된 선수.[1]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류택현, 조웅천과 함께 역대 KBO투수들 중 8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이며, 상술한 두 투수에 이어 통산 경기 출전수 3위의 기록을 가지고있다.

2. 플레이 스타일

초구나 아웃피치로 직구를 주로 던지며 승부구로는 몸쪽공을 많이 사용하는 편. SK 시절에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140km 안팎을 왔다갔다 했으며 가끔씩 컷 패스트볼과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을 사용하기도 했다.

3. 선수 경력

1992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2006년까지 꾸준히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여 2010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데뷔 후 2년차까지만 해도 거의 패전처리 수준이었으나 1993 시즌을 마치고 하와이 윈터 리그에 다녀온 후 기량이 한 단계 스텝업하여 1994년은 무려 162이닝을 던지며 풀 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했고, 1995년은 선발 중간 마무리 등 보직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롯데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94년 압도적으로 1위를 치닫고 있던 LG와의 잠실 원정경기에서 정삼흠과 맞대결하며 8회까지 0:0이라는 투수전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 백미. 해당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롯데가 승리했지만 가득염은 아쉽게 노 디시전을 기록했다.

1996년부터는 성적이 그리 신통한 편이 아니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1이닝씩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짧게 던지는 투구 위주라 통산 성적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 없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롯데에서 활약하며 좌타자 전문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개념을 KBO 리그에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통찮은 성적 탓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가득炎. 강상수와 함께 롯데 불펜진에서 불꽃을 던지는 남자 취급을 받았다.[2]

2006년 시즌 이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했지만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선수로는 받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코치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득염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SK 와이번스에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3]

2007 시즌 동안 쏠쏠하게 좌타자 상대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였고[4], 한국시리즈와 코나미컵에서 중국전을 빼고 전부 출장하여 17타수 1피안타라는 기록을 세운 걸 보면 사람의 동기부여와 분위기 쇄신의 위력을 알 수 있다.

현역 선수 시절에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도 아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무척이나 운이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한 구단에서 14년 동안 뛰면서 험난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 왔지만, 데뷔 시즌인 1992년에 롯데에서 우승을 맛보고 이적 후 SK에서 2시즌 연속으로 우승을 맛봤다는 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이어온 표본으로 꼽히는 선수.

이름 갖고 놀려먹는 개드립 중에 (주유소에서 기름) 가득염이 있고 여기서 더 나아가 롯데 선수들의 이름을 합친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도 존재한다. 노승욱의 은퇴 이후로 다소 잊혀진 감이 있지만, 풀버전에는 '지나가던 노승 욱하며 하는 말'이 앞에 붙는다.

한화 이글스 외야수 제이 데이비스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로 가득염을 꼽았다고 한다.

600경기 출전 당시 본인 스스로 40세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비록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지는 못했지만, SK 와이번스에서 40세까지 야구 선수 커리어를 이어 나갔으며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SK와이번스 현역 시절이었던 2007년 8월 30일 현대전에 등판하여 조웅천에 이어서 KBO리그에서는 두 번째로 프로 통산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38살 가득염 700경기 등판, 16년 쌓은 ‘노장의 공든탑’

KBO 등록 선수 중에서 최동원윤근영과 함께 역대 최고 타율인 10할을 기록하였다. 2008년 5월 27일 KIA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한 것이 유일한 타격 기록이다. (1타수 1안타).
파일:attachment/가득염/15.gif
바로 이 장면. 유동훈 의문의 1패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39세 29일)이기도 하다.

송진우의 은퇴로 2010년 등록선수 중 구대성과 함께 최고령 선수가 되었으며, 2010 시즌을 마친 후 구단과 김성근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19년에 걸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은퇴에 따라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타이틀은 1970년 8월 생인 이종범에게 넘어갔다.

통산 성적은 800경기(프로 통산 3번째) 출장, 36승 49패 78홀드, 방어율 4.57.

그런데 왜인지 프로 마지막 경기에 8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는데도 언론과 중계진의 언급이 거의 없었다.[5]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롯데 자이언츠의 2군 투수/재활코치로 선임되어 복귀했으며, 2012년에는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코치를 맡았다. 롯데 중간계투진의 안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고, 조원우 외야 수비코치, 카츠자키 트레이닝 코치, 주형광 투수코치와 함께 롯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SK에 몸담은 시절에 김성근 감독의 불펜 관리법을 배워 왔다는 평을 받는다. 2012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양떼 불펜이 노예질로 구르면서도 최후까지 큰 붕괴 없이 유지된 걸 봐서는, 아주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불펜에서의 연습 투구에서의 투구 수를 많이 줄이고, 하프 피칭으로 대체하거나 어느 정도 던지면 아예 공을 뺏는 등 불펜 관리가 많이 달라졌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여 친정 팀에 복귀하게 된 홍성흔과 조원우 외야수비 코치와 함께 두산 베어스로 팀을 옮겼다.[6] # 두산 베어스 팬들은 몇 년간 안정을 찾지 못한 두산 베어스 불펜의 안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리고 2013년 롯데 자이언츠 불펜은.... 그런데 두산 베어스 불펜의 상황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지만 2012년보다는 나은 편. 2014 시즌에는 2군으로 갔다가, 2014년 8월 1군 불펜코치로 다시 올라왔다.

그 뒤 2015년 6월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반대 급부로 올라온 사람은 한용덕. 팬들은 한용덕이 온 것을 환영했지만, 권명철이 여전히 1군 불펜코치를 지키고 있는지라, 차라리 가득염을 1군에 남기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권명철이 봉와직염에 걸려서 대타로 올라온 적은 있다.

시즌 후 kt wiz의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2017 시즌에는 1군 불펜코치로 있었다.

2018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고, 2019년에 LG 트윈스와 계약했다. LG에서의 보직은 2군 투수코치.

시즌 전 2군 캠프에서 제구가 불안했던 이우찬의 제구를 잡는데 성공하여 1군에서 불펜과 선발로 보탬이 되게 하는 등 LG팬들에게서 평가는 좋은 편이다.

5. 트리비아

  • 워낙 희귀한 성씨여서, 이름을 소재로 한 유머가 많다. 위의 주유소 관련도 있고, 고향인 부산 사투리로 "쟤 성씨가 가씨라며?"를 "가가 가가가?"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
  • 아나운서, 방송인 출신의 새누리당 국회의원한선교와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다.[7] 그런데 한선교는 야구보다 농구[8]에 관심이 훨씬 많아 보여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질 지는 미지수다.
  •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운영진에 가득염의 친척이 있다 혹은 뇌물을 줬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독 스탯을 좋게 받아 진리카드의 대명사로 손꼽혔었다. 다만 나중에는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가득염도 얄짤없이 스탯이 깎였다.
  • 컴투스 프로야구 2012에서 한때 레전드 카드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레전드 선수로 나왔나 하는 반응이 있었다. 결국 KIA 이강철 카드로 교체되었었다. 그러나 2013에서 업데이트에서 갑자기 부활해버렸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2 롯데 자이언츠 15 30⅓ 1 0 0 0 6.82 30 21 16
1993 25 52 1 5 0 0 3.29 43 26 37
1994 27 162[9] 8 14 0 0 4.28 160 71 83
1995 39 96⅔ 7 4 3 0 4.10 79 49 7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롯데 자이언츠 26 50⅓ 1 1 0 0 3.93 49 27 27
1997 41 41 1 4 1 0 5.71 50 21 24
1998 27 52⅓ 2 2 1 0 4.13 48 22 30
1999 48 49⅓ 1 2 1 0 4.38 52 17 34
2000 39 48⅔ 1 2 0 2 5.18 48 23 37
2001 58
(5위)
50⅔ 1 3 2 9
(4위)
4.26 60 19 42
2002 50 25⅔ 0 2 0 8 5.61 34 11 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롯데 자이언츠 81
(2위)
35⅔ 1 1 1 13
(4위)
5.80 32 13 29
2004 65 40⅓ 3 3 0 12 4.91 40 23 25
2005 35 23 0 0 1 2 3.52 18 5 21
2006 63
(5위)
26⅔ 3 3 0 11 5.06 23 14 2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7 SK 와이번스 67
(5위)
40⅓ 1 0 0 12 4.02 35 17 21
2008 60
(5위)
32⅔ 4 3 1 8 5.51 42 12 24
2009 13 8 0 0 0 0 6.75 7 5 3
2010 21 16⅓ 0 0 0 1 4.41 14 10 12
KBO 통산(19시즌) 800
(3위)
882 36 49 11 78
(9위)
4.57 864 406 574


[1] 가도쿠라 겐의 경우 KBO에는 카도쿠라로 등록이 되어 있어 해당되지 않는다.[2] 사실 이름의 끝 글자도 바로 불꽃 염()이다. 거기에다가 가운데 글자인 '득'자는 얻을 득()..방화범 득템[3] 그리고 코치직을 제안한 롯데 자이언츠에는 은퇴한 후 2011년에 2군 투수/재활코치로 돌아오게 되었다.[4] 이 때 지명타자/소멸사례에도 나오지만, 조웅천이 한 타자 잡은 후에 좌타자가 나오는데 그 뒤의 타자들까지 조웅천이 던지게 하기 위해서 조웅천을 잠깐 좌익수에 보내고 그 사이에 가득염이 등판한 사례도 있었다.[5] 허구연이 800게임 출전이라고 말하긴 했다.[6] 홍성흔이 먼저 두산에 가고 가득염이 뒤따라 왔다.[7] 나이는 가득염보다 10살 위다.[8] 거기다 한선교 의원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농구연맹의 총재를 맡았다. 사실 한선교 의원은 아나운서 시절부터 장내 아나운서를 맡는 등 농구에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다.[9] 2완투 기록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