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30 20:32:27

김영신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강원 FC 소속의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김영신(축구선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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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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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54번
김유동(1984) 김영신(1985~1996)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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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영신.jpg

파일:김영신_선동열.jpg
국가대표 시절 선동열(좌측)과 함께 찍은 사진.
두산 베어스 No.54
김영신(金榮伸 / Young-Shin Kim)
생몰년도 1961년 11월 9일 ~ 1986년 8월 15일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상문고 - 동국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1차지명 (OB 베어스)
소속팀 OB 베어스(1985~1986)

1. 소개2. 생애3. 사망4. 트리비아

1. 소개

전직 KBO 리그 선수이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영구결번이 된 인물.

2. 생애

아마추어 선수 시절 1984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포수로 출전하는 등 유망주로 손꼽혔다. 상문고와 동국대를 거쳐, 1985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김경문조범현 등 주전 포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3. 사망

1986년 8월 15일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1]한강 하류에서 웬 익사체 하나가 떠내려 오는 것을 부근 경계 초소의 초병이 발견하였다. 경찰 수사 결과 익사체의 신원은 김영신으로 판명, 성적 부진을 비관하여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 자살로 결론 지었고, OB 베어스 측은 김영신의 영결식을 치르고 그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김영신의 등번호 54번을 영구결번 처리 하였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사례다. 주전 경쟁에 밀리며 자신의 성적과 신세를 비관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선수.

파일:김영신_기사.jpg
김영신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어 있는 시대였다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그 당시에는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시절[2]이었고, 이루어진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 팀 간 트레이드 활성화의 필요성을 김영신의 사례에서 일깨워 준 사건.

4. 트리비아

  • 현역 시절 팀 선배인 투수 박상열[3]과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1985년 여름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 경기 후 박상열이 득남 턱을 낸다며 숙소인 수성관광호텔 에서 동료들끼리 한잔 하다가 술이 다 떨어지자 근처의 수성못 포장마차에서 2차로 또 진탕 들이부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김영신이 박상열과 거나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박상열이 수성못에서 수영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고, 김영신이 수영 못한다고 하자 박상열은 "내가 해병대 출신이다. 물에 빠지면 건져줄께" 라는 통에 결국 김영신은 박상열과 수성못에 뛰어들었지만 김영신은 절반도 못 가 돌아왔다. 그런데 물에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박상열이 나올 생각을 않자 김영신은 큰일났다 싶어 숙소로 뛰어가 김성근 감독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선수단은 발칵 뒤집혀 밤새도록 수성못 주변에서 박상열을 애타게 찾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하려던 차에 자기 방이 아닌 계형철의 방 침대 밑에 곯아떨어져 있던 박상열이 발견되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김성근박상열을 2군으로 내려버리면서 박상열 수성못 익사사건(?)은 일단락 되었다.[4] 그러나 1년 후 김영신은 스스로 한강에 몸을 던졌고...

[1]고양시 일산서구[2] 당시에 트레이드는 구단이 선수에게 보복적으로 하는 것이 많았다. 유명한 최동원, 김용철 - 장효조, 김시진 트레이드.[3]고양 원더스, 한화 이글스 코치. 김성근 감독의 최측근으로 유명하다.[4] 그 와중에 외야수 윤동균이 무단 외출을 했다는 사실도 들통나는 바람에(물론 100% 무단은 아니고 수석 코치이던 최주억에게 "대구의 친척을 만나고 오겠다"고 보고했지만 분위기가 워낙 살벌했는지라 최코치도 해명을 못할 상황이었다), 벌금 110만원을 두들겨 맞는 변을 당했다(...)[5] 기증하라는 댓글이 많지만, 작성자의 아버지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라 힘들 거라고 댓글을 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