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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건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61223143820146_249.jpg
SK 와이번스 시절.
이름 추성건 (秋性建)
생년월일 1970년 8월 5일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서울고-건국대
포지션 1루수, 3루수, 우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1차 지명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3~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지도자경력 자양중학교 야구부 감독 (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40번
팀 창단 추성건(2000) 김지완(2002~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이민호(2000) 추성건(2001) 송재익(2002~200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OB-두산 베어스 시절2.3. SK 와이번스 시절
3. 지도자 경력4. 트리비아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OB-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던 전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고등학교 출신으로 건국대학교(1989학번)에 입학, 이후 괴물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건국대학교 (1989학번) 재학 당시 주장으로 뛰었고, 장재중, 이종범, 이영우 등의 쟁쟁한 선수들을 이끌었다. 1992년에는 미칠듯한 캐리로 인해 팀이 전/후기 대학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는 데 일조, 자신은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의 영예를 누렸다. 당시 일간지에도 많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 내야수로 발탁되었으나 국대팀은 올림픽 본선에 올라가지 못했다.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지명회의는 유난히 대박 선수들이 많이 나왔는데,[1] 당시 그리고 지금도 같이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쓰고 있던 LG 트윈스OB 베어스는 초고교급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을 먼저 지명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허나 LG가 주사위 룰렛에서 이겨 OB보다 먼저 선점을 치게 되고, 바로 앞에서 이상훈을 빼앗긴 OB는 하는 수 없이 대학리그에서 괴물 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추성건을 지명하였다.[2]

2.2. OB-두산 베어스 시절

추성건은 나름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 정작 기대에 너무 못 미치는 활약을 보여줬다. 첫해 86경기에 출전해 .218의 타율을 기록, 그 이듬해에는 71경기에 출장해 타율 .236을 기록했다.

아마추어에서는 최강 타자였지만, 프로리그에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게 주 요인인데, 이유가 뭐냐면 나무배트에 적응을 못했다. 알루미늄 배트에 최적화되어 있다 보니 막상 나무배트를 쓰게 되자 파워가 나오지 않았고, 부상 확률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타격폼을 개조해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강혁과 실패 이유가 똑같다. 그 외에도 주변의 강한 관심에 의한 심적 부담감 등이 겹쳐 프로야구에 적응을 잘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4년에는 OB 베어스 항명파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시즌 시범경기에서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개막전에서 부상을 입고 재활을 하느라 많이 출전하지 못했고, 복귀했는데 당일 또 부상(...)[3] 유리몸 확정 결국 그해 군입대를 하여 1998년에 제대하였다. 하지만 그 시즌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999년 시즌에서는 부상으로 3경기밖에 나오지 못한 채 방출, SK 와이번스로 이적한다[4] .

2.3. SK 와이번스 시절

2000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추성건은 84경기에 출장해 타율 .302를 기록, 나름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팀 내 최고 출루율을 찍기도 했으며(얼마 후에 브리또가 가져갔다.), 64안타에 29타점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STATIZ에 따르면 2000년 SK 선수공헌도는 5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리고 최다출장 최태원은 6위

2001년 시즌에는 우익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 부상을 입고,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나이는 32세로 상당히 젊은 편.[5]

3. 지도자 경력

추가바람.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와 중국 세미프로리그의 타격 인스트럭터 등을 한 적이 있으나 연도가 명확하지 않다.

프로에서 인상깊었던 일을 보여주지 못해서 프로야구팀 코치로 발탁되지 않고 아마추어팀을 전전하고 있지만, 한때 중국 세미프로리그의 광둥 레오파스에서 인스트럭터로도 뛰었다. 당시 천쥔이, 리유카이, 지아더롱, 쟝홍보 등의 선수들을 길렀고, 위 4명은 나중에 2008 베이징 올림픽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 야구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히익 국가대표를 4명이나

한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허도환안치홍을 키워내기도 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있어보인다.

2013년부터 자양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완전한 자율야구를 추구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지도 철학을 보여 주는 인터뷰

4. 트리비아

  • 이종범과 동기이다. 같은 건국대학교 89학번으로 4년 내내 룸메이트를 한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 야구를 여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매우 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라고. 때문에 시작이 너무 늦어 시키는 행동밖에 할줄 몰랐고 때문에 스스로 할줄 아는게 없었던걸 프로 적응 실패 이유로 꼽기도 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OB 베어스 86 124 .218 27 1 0 4 19 22 4 27 .323 .353
1994 71 140 .236 33 7 2 5 16 28 9 17 .421 .319
1995 36 37 .216 8 1 1 1 3 8 5 9 .378 .370
1996 군 복무
1997
1998 88 47 .149 7 0 1 0 9 4 0 2 .191 .184
1999 두산 베어스 3 0 .000 0 0 0 0 0 0 1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6] SK 와이번스 84 212 .302 64 8 0 6 29 28 2 33 .425 .393
2001 23 34 .235 8 1 0 1 7 6 1 4 .353 .308
통산 (7시즌) 391 594 .247 147 18 4 17 74 96 22 92 .377 .346


[1] 1차에서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등의 초대박 선수들이 무려 4명이나(!) 나왔으며, 2차에서도 최태원, 박충식, 마해영 등의 대박 선수들이 나왔다. 참고로 여기서 OB 베어스만 유일하게 죽을 쒔다. 안습.[2] 그런데도 1차 지명이다. 당시 추성건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을듯.[3] 참고로 김성한 은퇴경기였다고 한다.[4] 1999년 시즌 뒤 방출 후 쌍방울 레이더스 유니폼을 입었으나 이 팀이 다음 해 1월 해체된 뒤 그 주축 선수들을 필두로 창단된 SK로 이적했다[5] 이 때문에 LG 트윈스에 재임중이던 김성근 감독이 입단 제의를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6] 커리어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