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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 경찰 야구단 | |||
현재 참가 구단 |
<colbgcolor=#000000><colcolor=#fff> 고양 원더스 | |
Goyang Wonders | |
창단 | 2011년 9월 15일 ([age(2011-09-15)]주년) |
창단식 | 2011년 11월 11일 ([age(2011-11-11)]주년) |
해체 | 2014년 9월 11일 ([age(2014-09-11)]주년) |
구단명 | ㈜원더홀딩스 |
연고지 | 경기도 고양시 |
연고지 변천 | 경기도 고양시 (2011~2014) |
구단명 변천 | 고양 원더스(2011~2014) |
운영 법인 | 유한회사원더홀딩스[1] (2011~2014) |
홈구장 | 고양 야구장 (1,200석) |
해체 당시의 구단프런트 (2014년) | |
구단주 | 허민 |
사장 | 이종한 |
단장 | 하송 |
감독 | 김성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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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이스북현재는 사라진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 연고지는 경기도 고양시였으며, 고양시와 ㈜원더홀딩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약을 함으로써 창단되었다. 2014년 9월 11일 해산을 발표하고 사라졌다.
2. 특징
고양종합운동장 부속야구장인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2012년부터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팀들과 경기를 가진다. 총 48경기를 치렀고, 모두 번외경기라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KBO에서 심판위원이나 기록원을 배치하는 등의 지원을 해주었다. 2014년에는 교류전이 90경기로 늘어났다.월급이 나왔던 구단으로 당초 2천만원 선[2]이라고 알려졌으나 2011년 12월 18일자 KBS1 취재파일4321 방송 및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수 연봉은 1천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2천만원으로 연봉을 맞추려 했는데 다른 프로구단들이 자기 팀 연습생들이 원더스의 연봉 수준을 보고 팀에서 이탈해 버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딴지를 걸어 연봉을 낮추게 되었다는 풍문이 나돌았는데, 신뢰성은 제로다. 상식적으로 돈 천만원 때문에 프로 1군 무대를 포기하고 제 발로 독립구단으로 간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풍문이 퍼질 정도로 당시 원더스에 대한 거품은 심했다.
아무런 수익구조가 없는 구단임에도 프로 2군보다 더 좋은 숙소, 식사[3], 야구용품이 제공되고 다수의 코칭 스태프, 최대 7명에 달하는 용병, 3년 15억에 달하는 감독 연봉 등으로 예산이 30~40억에 달해 기존 2군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별다른 수익 구조가 없는 구단으로서는 굉장히 방만한 경영으로 3년만에 문을 닫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4]
3. 목적
갈 곳 없는 방출 선수,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신인 등 재기를 꿈꾸는 선수를 맹훈련을 통하여 프로 수준에 맞추어 1군 무대로 보내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감독 김성근은 인터뷰에 따르면 각 구단이 요청만 한다면 곧바로 보내줄 수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도 보내줬다. 프로 구단에서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데려가는 데에 생길 수 있는 장벽을 조금이라도 없애려는 취지로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선수와 연봉 계약만 체결하면 되며 이적료는 내지 않아도 되었다.물론 이건 표면적인 거고, 뒷사정을 살펴보면 돈은 충분히 벌어 사실상 인생을 즐기는 단계였던 구단주 허민이 자신의 이미지 포장 겸 야구계 진출용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뒤에 마저 적겠지만 야신 이미지에 가려져 있었을뿐 원더스의 운영은 과도한 외인 혹사와 방만한 경영 등, 육성이라는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일 투성이었다.
4. 구단 구성 과정
감독 선임에 앞서 김광수 전 두산 베어스 감독대행이 수석코치로 선임되었고, 2011년 11월에는 김광수 수석코치의 주도하에 공개 선수모집을 통하여 선수를 뽑았다. 12월에는 감독으로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선임됨과 동시에 신경식 두산 타격코치, 박상열 전 SK 투수코치, 곽채진 신일고 코치[5], 코우노 타카유키 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종합코치, 조청희 전 한화 이글스 트레이너를 영입했고, 2012년 1월에 추가로 일본 독립리그팀인 에히메 만다린 파이어리츠의 코치를 맡았던 오키 야스시[6]를 배터리 코치로 영입하며 여타 프로팀의 1군 코칭스태프 못지 않은 코치진을 구성하게 되었다.2012년 2월에는 일본인 투수 코바야시 료칸[7]을 영입했다. 김성근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팀의 전력 보강차원 및 경기에 이김으로써 기존 원더스 소속 선수들에게도 이기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으나 뒤에 나오는 것처럼 현실은 달랐다. 뒤이어 영입한 타일러 럼스덴은 미국 마이너리그와 대만에서 활동했고, 센디 레알은 200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42경기에 등판한 적이 있지만 그 후에는 마이너리그, 미국 독립리그, 멕시칸리그를 거쳤다.
5. 해체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2014년 9월 11일 해체를 통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링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2~3개월치 월급을 더 지급하고, 프로구단 입단 테스트를 위한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밝혔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계가 고양 원더스를 버렸다"라면서 강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관련 기사 댓글란을 보면 알겠지만 KBO와 기존 구단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히 강하게 유지되었다. 고양 원더스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양 원더스에 대한 비판은 작게나마 꾸준히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뻘소리 치부되었던 터였다.해체 직후 하송단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KBO의 퓨처스리그 참가 거부가 해체의 이유는 아니었다고 밝힘에 따라[8] 실질적으로 또 다른 이유로 인해 해체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분분했다. 10구단 출범으로 허민의 야구계 진출이 사실상 완전히 물 건너간 상황에서 위메프 문제가 나옴에 따라,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만든 구단인데 그 이미지마저 구겨지자 미련 없이 접어버렸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조금 더 후에 나온 기사에선, 어차피 2군으로 진입했어도 비용이 워낙 많이 드는 구조 상 어차피 해체될 것이고, 고양 원더스의 기형적인 비용 구조 탓에 독립리그 설립을 고려하던 지자체도 고양 원더스를 분석하다 다 손을 떼고 있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나왔다. 원더스의 비극, 독립리그 구상은 표류 중 그 비용이란것도 감독, 코치 인건비와 많은 수의 용병에 대부분이 들어가고, 오히려 선수들 연봉 비용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와 과연 고양 원더스가 정말로 선수 육성 목적이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구단을 이렇게 괴상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협회에서 받아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관련 기사 거기다 창단 협약식을 보도한 몇몇 언론의 기사에는 3년간 5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는 글귀가 있어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3년 내에 고양 원더스가 프로 진입이 안 된다면 미련 없이 접을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의견도 있었다.
고양 원더스 해산 이후 고양에 자리잡은 NC 다이노스 2군 구단 고양 다이노스는 2군 최초 유료 입장객을 받는 등 원더스 식의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심보영 고양 다이노스 사업팀장은 "그 동안 퓨처스 리그 경기는 공짜라는 생각이 팬과 구단 모두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러나 3000원(어른 기준)을 받으면서 대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드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많이 참여해 주셔서 팬과 제휴사 모두 만족해 했다"고 설명했다.
6. 운영 당시 논란
- 2013년부터 경기 일정을 두고 KBO 측과 갈등을 빚었다. 퓨처스리그 정식 팀이 될 문제를 두고 논란이 거세진 상황에서 또 2012년처럼 번외 경기만 할 예정이다. 여러가지 대응책으로 3군 리그로 별도 경기를 가진다는 기획도 나오고 있다.
- 10번째 구단으로 참가하게 되는 KT가 코칭스태프 선임과정에서 고양 원더스와 김성근 감독에게 상의도 없이 무단으로 고양 원더스 코칭스태프를 빼가 논란을 빚었다. 상의를 하고 정중히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요청했다면 모를까 말도 없이 빼갔으니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 입장에서는 KBO와의 갈등도 그렇고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KT는 그 외에도 다른 팀들의 코칭스태프들에게도 접근해 빼가는 시도를 하여 역시 논란을 빚었다. 3월이면 구단들이 정규시즌을 위해 한참 준비하느라 바쁜데 이런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비판들이 크다. 관련기사
7. 평가
자세한 내용은 고양 원더스(2011)/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8. 해체 당시 코칭스태프
등번호 | 이름 | 직책 | 부임년도 | 선수 시절 포지션 |
38 | 김성근 | 감독 | 2012 | 투수 |
47 | 이상훈 | 투수코치 | 2013 | 투수 |
70 | 이시미네 카즈히코 | 타격·수비코치 | 2013 | 외야수 |
71 | 아베 오사무 | 타격코치 | 2013 | 외야수 |
72 | 박상열 | 투수코치 | 2012 | 투수 |
74 | 야마나카 키요시 | 배터리코치 | 2013 | 포수 |
77 | 김광수 | 수석코치 | 2012 | 내야수 |
80 | 박철우 | 타격코치 | 2013 | 내야수 |
강성인 | 트레이닝 코치 | 2013 | 내야수 | |
홍남일[10][11] | 트레이닝 코치 | 2013 | 내야수 |
9. 해체 당시 선수단
프로팀 활동 경력이 있는 선수는 프로 경력을, 그외에는 입단 전 소속팀을 기준으로 기재한다.9.1. 투수
등번호 | 이름 | 입단년도 | 투타 | 이전 경력 |
11 | 최향남 | 2014 | 우투우타 | 영흥고-해태(1990~1996)-LG(1997~2002)-KIA(2004~2005)-버팔로 바이슨스(2006) -롯데(2007~2008)-앨버커키 아이소톱스(2009~2010)-롯데(2011)-KIA(2012~2013) |
12 | 왕민수 | 2012 | 우투우타 | 군산상고-호원대 |
15 | 박병우 | 2013 | 우투우타 | 제물포고 |
16 | 홍성혁 | 2014 | 우언우타 | 효천고-동의대 중퇴 |
20 | 데럴 마데이[12] | 2014 | 우투우타 | 미국 마이너리그 |
21 | 루이스 곤잘레스 | 2013 | 좌투좌타 | 미국 마이너리그-슝디 엘리펀츠-요코하마 |
29 | 최민국 | 2014 | 우투우타 | 진흥고[13] |
30 | 오시리스 마토스 | 2013 | 우투우타 | 미국 마이너리그-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
35 | 신정윤 | 2014 | 우투우타 | 유신고-세계사이버대 중퇴-넥센(2013) |
45 | 김재현 | 2013 | 우투우타 | 공주고-대불대 |
51 | 김수경 | 2014 | 우투우타 | 인천고-현대(1998~2007)-넥센(2008-2012) |
55 | 강우찬[14] | 2013 | 우투우타 | 장충고-중앙대 |
63 | 박성범 | 2013 | 우투우타 | 제물포고-송원대 |
64 | 김장우 | 2012 | 우투우타 | 야탑고-경희대 중퇴 |
66 | 김승현[15] | 2014 | 우투우타 | 동성고-홍익대-코리아해치-KIA(2013) |
99 | 디오니스 소리아노[16] | 2013 | 좌투좌타 | 광동 레오파즈-히로시마 도요 카프-퉁이 라이온즈[17] |
-- | 막시모 넬손[18][19][20] | 2014 | 우투우타 | 주니치 드래곤즈 |
9.2. 포수
등번호 | 이름 | 입단연도 | 투타 | 이전 경력 |
25 | 김호연[21] | 2014 | 우투우타 | 선린인터넷고-넥센(2011) |
27 | 김지호 | 2014 | 우투좌타 | 공주고-호원대-삼성(2009~2010) |
32 | 정규식[22] | 2014 | 우투좌타 | 교토국제고-오사카가쿠인대 |
37 | 홍권민 | 2014 | 우투우타 | 원주고[23] |
42 | 김정남 | 2014 | 우투좌타 | 청원고-성균관대-SK(2009~2011) |
9.3. 내야수
등번호 | 이름 | 입단연도 | 투타 | 이전 경력 |
2 | 안형권 | 2012 | 우투양타 | 미국 세인트토마스고 |
3 | 김남훈 | 2013 | 우투우타 | 경주고-강릉영동대 |
6 | 김선민 | 2014 | 우투우타 | 대구고-삼성(2010~2011) |
7 | 정유철 | 2014 | 우투양타 | 선린인터넷고-계명대 |
13 | 이성엽 | 2013 | 우투좌타 | 상원고-강릉영동대-경찰-NC(2012) |
31 | 이강혁 | 2014 | 우투좌타 | 대구고-삼성(2010) |
50 | 신성현 | 2014 | 우투우타 | 교토국제고-히로시마(2009~2013) |
62 | 박선호 | 2013 | 우투우타 | 청원고-호원대 |
9.4. 외야수
등번호 | 이름 | 입단연도 | 투타 | 이전 경력 |
4 | 이용균 | 2014 | 우투우타 | 청원고-홍익대 |
10 | 이병용[24] | 2013 | 우투우타 | 서울고-삼성(2007) |
14 | 오무열 | 2014 | 우투우타 | 휘문고 |
33 | 최승원 | 2013 | 우투우타 | 동성고-고려대 |
39 | 채기영 | 2014 | 우투좌타 | 선린인터넷고 |
49 | 설재훈[25] | 2012 | 우투우타 | 진흥고-서울해치 |
65 | 임도현 | 2014 | 우투우타 | 경동고-원광대-LG(2008~2013) |
9.5. 올드 멤버
선수단 개편이 상당히 잦았고 중도 탈락하는 인원도 많았다. 사유는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지 못했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거나, 군 입대를 준비하거나 등이다. 퇴단은 주로 시즌 도중에 이뤄졌다. 천만원에 불과한 연봉에 안정적이지 못한 팀 운영에 미래를 맡기기 어려워서였던 듯하다. 2014년에 퓨처스리그 교류전이 전년도 48경기에서 90경기로 대폭 늘어나긴 했지만 밑에 퇴단자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도 탈락자는 지속적으로 나왔다.2012년 4월 14일 KBO 소속 구단들이 유예기간을 들어 정영일과 남윤성의 퓨처스리그 출전을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KBO는 5월 4일 두 선수의 퓨처스리그 출전 불가 결정을 내렸다. KBO에서는 해외파 낙오자들이 독립구단을 발판삼아 유예기간을 넘긴다면 에이전트의 탈을 쓴 브로커들이 이를 무기삼아 고교 선수들의 무차별 미국행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김성근은 독립리그 팀에게만 지나치게 제한을 가하는 독소조항이라며 입을 털었고 그게 또 그 당시에는 잘 먹혔던게 불편한 진실이다.
해외파 복귀 선수들의 2군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짐에 따라[26] 정영일은 어쩔 수 없이 원더스를 떠나 공백기를 거쳐 일본 독립리그에서 반년을 뛰었고(실전 등판은 4경기뿐이었지만), 2014년 신인지명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27]
남윤성은 2013년 3월에 조용히 퇴단했으며 7월에 군에 입대했다가 2016년 8월 SK의 지명을 받았다.
그 외에 퇴단한 선수들 명단은 아래 참조.
- 2012년 퇴단
- 2013년 퇴단
- 2014년 퇴단
10. 명예의 전당
고양 원더스의 창단 취지가 프로무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의 기량을 키워 프로무대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던 만큼, 프로에 복귀·진출한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으로 기린다. 물론 이 중에는 프로 경력이 전혀 없는 선수도 있다. 다만 선수들의 프로행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신중론도 약하지만 조금씩 제기되었다. 프로로 간 선수들이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살리지 못한다면 프로로 간 의미가 약해진다는 것. 이들 대부분이 프로로 아예 가지 못했거나 기존 팀들에서도 2군 급이라 도태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2014년 6월 9일 네이버 라디오볼에 언급된 고양 원더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당시 10번째 구단인 KT를 제외하고 가장 사람을 많이 보내어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 대해 알아본 구단은 삼성 라이온즈였다고 한다.
이름 | 입단연도 | 포지션 | 투타 | 이전 경력 | 프로 복귀/진출 팀 | 프로 복귀/진출 일자 |
이희성 | 2012 | 투수 | 좌투좌타 | 대구고-성균관대-넥센 | LG | 2012.7.10 |
김영관[53] | 2012 | 내야수 | 우투우타 | 선린인터넷고-한양대 | LG | 2012.8.21 |
강하승 | 2012 | 외야수 | 우투우타 | 진흥고-동국대 | KIA | 2012.8.22[54] |
안태영 | 2012 | 외야수 | 우투좌타 | 선린인터넷고-삼성 | 넥센 | 2012.8.24[55] |
홍재용 | 2012 | 내야수 | 우투우타 | 강릉고-단국대 | 두산 | 2012.9.7[56] |
김용성 | 2013 | 투수 | 우투우타 | 덕수정보고-두산 | NC | 2013.5.31[57] |
이승재 | 2012 | 포수 | 우투우타 | 마산고-경희대-롯데 | NC | 2013.5.31[58] |
윤병호 | 2012 | 외야수 | 우투우타 | 세광고-대불대(중퇴) | NC | 2013.5.31 |
이원재 | 2012 | 외야수 | 우투좌타 | 청원고-호원대 | NC | 2013.5.31[59] |
송주호 | 2013 | 외야수 | 우투좌타 | 중앙고-삼성 | 한화 | 2013.5.31 |
김정록 | 2012 | 내야수 | 우투좌타 | 선린인터넷고-일본 키비국제대 | 넥센 | 2013.6.7 |
오현민 | 2013 | 투수 | 우투우타 | 선린인터넷고-동국대-경찰-NC | KT | 2013.9.23[60] |
채선관 | 2013 | 투수 | 우투우타 | 광주일고-한양대-상무 | KT | 2013.9.23 |
김종민 | 2012 | 포수 | 우투우타 | 대전고-단국대-넥센 | KT | 2013.9.23 |
황목치승 | 2013 | 내야수 | 우투우타 | 교토국제고-아세아대 | LG | 2013.10.2. |
오두철 | 2012 | 포수 | 우투우타 | 교토국제고-오사카대(중퇴)-서울해치 | KIA | 2013.11.2. |
여정호 | 2013 | 투수 | 좌투좌타 | 개성고-제주한라대-동국대-NC | 두산 | 2013.11.8.[61] |
김동호 | 2013 | 투수 | 우투우타 | 대구고-영남대-한화 | 삼성 | 2014.5.5. |
김성한 | 2013 | 투수 | 우투우타 | 인창고-제주산업정보대 | 삼성 | 2014.5.5. |
최현정 | 2014 | 투수 | 좌투좌타 | 대전고-두산-넥센 | KIA | 2014.6.20. |
이용욱 | 2013 | 외야수 | 우투좌타 | 부경고-대불대 | 삼성 | 2014.7.2.[62] |
김진곤 | 2013 | 외야수 | 우투좌타 | 동산고-제주산업정보대-SK | KT | 2014.7.24. |
원더스가 해체된 후 2014년 9월 22일에 롯데 자이언츠가 외야수 이병용과 내야수 안형권을, 넥센 히어로즈가 외야수 오무열, 포수 김호연을, KT 위즈가 내야수 김선민을 영입했고, 김성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 한화도 12월 16일 투수 신정윤, 내야수 정유철, 외야수 채기영을, 2015년 5월엔 신성현을 데려왔다. 그 외에 NC가 포수 김지호를, SK가 투수 김민형과 외야수 설재훈을 데려갔다. 이들 영입은 고양 원더스 해체 이후의 일이므로 명예의 전당에는 표기하지 않는다.
결론을 내리면 고양 원더스 출신으로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거의 없다.
2017년 기준 1군 무대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기회를 받은 선수는 안태영과 황목치승, 신성현, 김종민, 김진곤, 김지성[64], 윤병호 정도가 끝이며 그들도 1군에서 살아남을 실력은 안된다는게 백일하에 드러났다. 안태영은 프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방출, 황목치승은 백업으로 한 시즌 50경기도 못나오는 수준이며 그나마도 스탯을 보면 안쓰느니만 못하다. 결국 2017시즌 종료 후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은퇴했다. 김종민은 포수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한 NC가 아니었으면 쓸 생각도 안했을 자원으로 200타석 넘게 기회를 부여받은 2016 시즌에는 OPS 0.590에 WAR -0.28 찍었다. NC 시절인 2017 시즌에는 이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2018 시즌 말미에 웨이버 공시가 된 뒤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김진곤 역시 2군만 폭격하고 있지 1군에서는 대수비/대주자 용 이상 되지 못하고 선발로 나올때마다 폭풍삼진이나 당하고 있으며 김지성은 김주형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비도 못하고 타격도 못하고 주루도 못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윤병호도 김경문 감독에게 나름 기회를 받았으나 타격 성적이 처참하며 결국 2018시즌 종료 직전 웨이버 공시되었다. 가장 나은 평가를 들었던 신성현도 두산에서 그 동안의 거품이 다 벗겨졌다. 그외 이희성, 이승재, 송주호 만이 1군 무대를 잠깐 맛보았을 뿐이며 정식 지명을 받고 입단한 정규식은 퓨처스리그에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전역을 코 앞에 두고 방출되었다. 그 외의 나머지 선수들은 2군이나 3군에 머물러 있다 방출되는 수순을 밟았다. 특히 강하승과 여정호는 입단 1년여만에 방출되어 이럴 거면 왜 데려갔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연습생으로 잠깐 발만 걸쳤다가 퇴단한 수십 명의 선수들까지 거쳐도 조용호가 2017 시즌에 두 달 정도 반짝 주전을 먹다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온 뒤에는 대주자나 하고 있는 게 끝이다. 남윤성과 정영일도 해외파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대는 많이 받았지만 정영일은 패전처리로나 1군에 올라올락 말락, 남윤성은 2018시즌에야 겨우 1군 무대를 밟았다.
김성근이 한화에서 전무후무할 구시대적 운용을 해 그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우세해지면서 고양 원더스 출신으로 1군에 진출한 선수들까지 천민으로 불리며 도매금으로 혹평을 받는 실정이다. 프로에서 뛸 실력이 못되는데 김성근의 후광 덕분에 과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주장. 대표적인 사례가 송주호와 신성현, 김동은[65]. 오히려 입단 직후에 원더스의 강훈련을 못 버티고 떠난 조용호가 이들보다 1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에 몸담았다가 방출되거나, 프로에 미지명 된 경우는 선수 개개인의 선천적인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고 단기간의 많은 연습량으로 그 역량을 키울 수 없다. 야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 반복 연습으로 만들어 내기것은 한계가 있고, 어느 부분 타고 나는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실제로 프로에 미지명 된 후 육성선수로 입단해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들을 보면 고교나 대학에서 국가대표에 선발된 경험이 있거나, 아마추어 시기에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66]
2024 시즌 기준 KBO 리그에 남아 있는 원더스 출신 선수는 조용호와 김건국 둘 뿐이다. 기존 프로 팀 경력이 없는 순수 원더스 출신 선수인 조용호는 원더스 출신 선수 중 가장 기록이 좋으나, 고양 원더스 창단 초기에 잠깐 있다가 부상으로 퇴단한 선수라 거의 대부분의 팬들이 고양 원더스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김건국은 2021 시즌을 끝으로 롯데에서 방출된 뒤 완전히 은퇴한 것으로 보였으나 2023년에 KIA에 입단하면서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외에 정말 순수하게 원더스를 거쳐서 1군에서 생존이라도 한 선수는 대타나 1루수 백업으로 나오는 이원재 정도였지만 그도 2021시즌 말미에 방출되었다. 고양 원더스를 거쳐 간 선수 중 가장 네임드인 정영일은 그냥 거쳐갔을 뿐 원더스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도 없는 선수다. 그리고 아마추어에서 혹사로 프로 입단 초기에 손해를 봤을 뿐, 재능은 충분히 인정받았던 선수라 경우가 좀 다르다. SK에서는 2018년에 필승조의 한 축으로서 팀 우승에 기여했지만 그 뒤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2021시즌 정규리그 종료 직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오래 버텼던 신성현도 2023년 8월 22일 은퇴를 결정했다. 신성현은 1군과 2군을 왕복하는 선수라 성공한 선수라고 보기 어려우며, 그나마도 아마 시절에는 나름 일본프로야구 정식 지명도 받았을 만큼 꽤 기대치가 있던 선수였다. 즉 기대치보다 오히려 못 큰 거지 원더스를 통해 성장했다기에는 어려운 선수.
11. 역대 성적
<rowcolor=#373a3c,#212121> 연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2012 | 48 | 20 | 7 | 21 | 0.488 |
2013 | 48 | 27 | 6 | 15 | 0.643 |
2014 | 80 | 43 | 12 | 25 | 0.632 |
통산 3시즌 | 176 | 90 | 25 | 61 | 0.596 |
12. 기타
- 허민 대표의 첫 회사였던 네오플의 모토가 We make wonders였다. 그리고 허민 대표는 고양 Wonders를 만들었다. 신야구에 존재했던 가상의 야구단도 네오플 Wonders였다. 허민이 원더스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하는 듯하다.
13. 관련 항목
[1] 별도 독립화 없이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했다.[2] 참고로 이는 프로야구 최저연봉선이다. 프로축구는 종전 1200만원이었으나 이게 너무나도 적어서 결국 리그 승부조작이 벌어졌다는 비난과 지적이 있자 2400만원으로 올렸다.[3] 박동희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얼마나 식사가 좋았는지 고양 원정을 갈 경우 상대 2군 코칭스텝과 상대 선수들이 식사를 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4] 당시 독립야구단이라는 것의 존재자체가 생소했고, 8개 구단은 고양원더스라는 팀을 아마추어로 취급했기 때문에, 2군/3군이긴 하지만 프로선수인 자신의 선수들이 그런 수준 낮은 시합을 하는데 시간과 체력을 쓰기 원하지 않았다. 고양원더스로서는 진지한 시도라는 것을 보이고자 규모에 비해 큰 예산이 사용되었다[5] 2012년말 언북중학교 감독으로 옮겼다.[6] 외야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해 포수와 내야수를 거친 멀티플레이어였다.[7] 1998년 일본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MLB 산하 트리플 A팀 캘거리 바이퍼즈, 대만리그 슝디 엘리펀츠, 멕시코리그 엔서나나 마린스 등 4개국에서 야구를 한 경험이 있다.[8]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게, 맞다고 한다면 그 동안 밝힌 고양 원더스를 창단한 계기를 부정하는 꼴이며 더 나아가 불순한 의도로 창단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요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해체 이유조차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9] 박동희의 기사 역시 고양 원더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2014년 해체 당시의 기사라 다른 기자들과 논조가 다를 게 없고 고양 원더스를 비호하는 내용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한다.[10] 강성인, 홍남일 트레이닝 코치는 SK의 재활 시스템의 핵심이던 코치들이며 본래는 병원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김 감독의 부름을 받고 원더스행을 결정했다.[11] 이 두 코치는 결국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 이글스의 트레이닝 코치로 부임했다.[12] 91김성길, 01신윤호, 09전병두, 15권혁, 15송창식, 15박정진을 능가하는 혹사를 김성근에게 당했던 외국인 투수. 선발 투수임에도 3~4일 정도만 쉰 후 등판할 정도로 굴려졌다. 2016년부터는 화성 히어로즈의 투수 인스트럭터로 부임했다.[13] 이후 인천재능대학교에 진학후 201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14] 강민구에서 개명[15] 김재호에서 개명[16] 특이하게 카프 아카데미를 통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진출한 케이스이다. 중국야구리그와 독립 리그를 거쳐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육성선수로 들어갔다. 2년 간 18경기 11선발 3승 4패 ERA 4.08을 기록하고 방출. 그 후 대만프로야구와 원더스를 거쳐 원더스 퇴단 이후에서는 도미니카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2015년까지 뛰었다. 2015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출전한 이후 은퇴한 건지 팀을 못 구한 건지 기록이 없다.[17] 그러나 계약만 하고 1/2군 공식경기 출전 없이 바로 방출.[18] 마이너리그 유망주 30위에 들어갈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으나, 루키 리그에서 뛰던 도중 비자 발급을 위해 위장결혼 알바를 한 것이 걸려서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이스라엘프로야구를 거쳐 NPB에 진출하였다. NPB에서 5년간 뛰었는데 커리어하이였던 2011년은 31경기 10승 14패 ERA 2.54로 에이스급 용병으로 맹 활약했었다. 그러나 2012년에 부상으로 꼴랑 6경기에서 0승 1패 1홀드 ERA 7.15를 찍고 방출당한 후(팀에선 2011년에 잘 했으니 처음에는 기회를 주려 했으나, 부상이 하필 어깨였고 의사의 결론이 다시는 이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다였기 때문에 내보냈다.) 원더스에 왔다.NPB에서 1년 100만달러까지 돈을 벌던 선수가 원더스라니... 원더스 퇴단 이후에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2017년 현재까지 뛰는 중이다.[19] 여담으로 넬슨은 주니치 입단도 테스트를 거쳐 할 정도로 밑바닥에서 시작했는데, 입단 테스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을 통보받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서 며칠을 굶었으니 당장 밥 한 끼만 사달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결국 테스트를 보러 간 주니치의 모리 시게카즈 코치가 바로 햄버거와 핫도그를 사줬다고.[20] 여담으로 2013년 두산 베어스가 켈빈 히메네스의 대체 용병으로 영입 테스트를 봤던 선수가 바로 이 선수다. 결국 계약을 하지 못했고 그러고 데려온 용병이 개릿 올슨이다.[21] 2012년 초 퇴단했다(군 입대 때문인 듯) 2014년 재입단.[22] 2015년도 신인 2차지명에서 LG 트윈스에 2차 4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왜 그 전에는 프로 팀들이 데려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외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나왔기 때문에 규약에 따라 신인 2차지명을 먼져 거쳐야 했기 때문. 황목치승도 이런 이유로 전년도에 2차지명에 응했으나 지명받지 못했고 뒤에 LG가 신고선수로 데려갔던 것이다.[23] 2015년 제주관광대 입학, 2017년 계명대 편입.[24] 삼성에 있을 때는 투수였다.[25] 2012년 9월 퇴단했다가 2013년 봄에 재입단.[26] 2015년 말 있었던 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소속이었던 김선기의 상무 입대를 계기로 KBO는 2016년 1월 12일 열린 이사회에서 고등학교 이상 재학 후 국내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외국으로 나갔던 복귀 해외파들의 퓨처스리그 출전을 불허하기로 공식 결정했다.[27]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거나 원더스의 훈련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신인지명 후 정영일 본인이 '김성근 감독의 훈련량 자체는 버틸만 했지만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져서 이대호의 큰형인 이차호 씨의 주선을 통해 일본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28] 김응민의 형.[29] 송호대 야구부 해체 후 제주관광대 편입[30] 2013년 제주국제대 편입, 2015년 한화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31] 2012년 강릉영동대 입학[32] 전 두산 외야수 이승엽[33] 2014년 SK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34] 2012년 세계사이버대 유급[35] 2015년 연천 미라클에 입단했으나 이내 퇴단.[36] 2012년 말 넥센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2013시즌 도중 퇴단.[37] 나용훈은 군복무를 위해서 원더스를 나왔다고 하는데 이전 소속팀이었던 한화와 군복무 후 다시 입단하기로 합의했다는 설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군 입대를 2013년 말에 했으며 군 복무가 끝났을 즈음인 2016년이 됐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복귀는 무산된 듯.[38] 190cm 105kg라는 훌륭한 체격을 가진 포수로 중앙대를 졸업하고 2006년, SK 와이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2006년 말, 방출되었다. 이 인연으로 고양 원더스의 감독인 김성근과는 2006년 마무리 캠프때 함께 훈련한 적도 있다고. SK 방출 이후에는 리틀야구단,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다 아내의 권유로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고, 이후 좋은 신체 조건과 타격 실력으로 인해 김성근 감독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큰 체구로 인해 수비가 많이 불안해 결국 퇴단하게 되었다고. 2018년부터 서울 신월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39] 2015년 세한대 4학년으로 복학했다.(졸업 유예)[40] 군 복무를 위해 원더스를 나왔다. 2012년 말 상무 서류전형에는 합격했지만 최종합격에는 실패. 2014년 삼성 라이온즈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2015년 시즌 중 방출됐다. 2018년부터 고양 위너스에서 뛰고 있으며 이름도 김태성으로 개명했다.[41] 원더스를 떠나 대만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스로 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6시즌 동안 55경기 4승 4패 ERA 6.63을 찍었고, 타자로도 56경기에 나와 .200의 타율과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현재 대만야구를 떠났고, 중남미 야구조차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은퇴했을듯.물론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기록을 볼 수 없는 유럽, 니카라과, 파나마 리그에서 뛸수도 있지만[42] 메이저 경험은 42경기 1승 1패 ERA 4.44였다. 메이저 커리어가 끝난 후 도미니카와 멕시코 등을 떠돌았고 고양 원더스 퇴단 이후 기록이 없다.[43] 2013년 제주관광대 입학. 현행 대한야구협회 선수등록 규정상 군팀을 제외한 프로팀에 속했던 선수는 다시 아마추어에서 뛸 수 없게 되어 있으나, 독립리그는 프로 리그로 간주하지 않기에 대학 입학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연천 미라클에 합류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퇴단했다.[44] 메이저를 밟지 못한 선수. 2011년 때는 슝디 엘리펀츠에서 뛰었으며, 원더스 퇴단 이후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스에서 뛰었다. 현재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은퇴한 듯.물론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기록이 안 남는 듣보 리그에서 뛸수도 있다[45] 2014년 인천재능대 입학.[46] 퇴단 후 kt wiz 트라이아웃에 합격했으나 2014 퓨처스리그 개막 직전 퇴단.[47] 퇴단 후 kt wiz 트라이아웃에 응했으나 탈락.[48]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6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NPB 1군을 한 번도 밟지 못하고 방출당해 미국과 일본의 독립 리그를 거쳤다가 대만프로야구로 진출했다. 그러나 대만에서도 첫 해에는 에이스였지만 재계약 이후 털리면서 방출당하며 멕시코로 갔다가 멕시칸리그에서는 식중독에 걸려서 폼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중도에 방출당했다. 고양 원더스를 끝으로 은퇴.[49] 광주일고 출신 투수로,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들의 삶을 비춘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산업체에서 일하며 전기기능사 시험을 준비중인 모습으로 나왔다. 무릎 인대 부상으로 퇴단.[50] A+ 이상 올라가지 못했던 초 무명 선수였다. 구속은 150대 중반이었으나 막장 제구로 인해서 한국행을 결정하였으나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고, 퇴단 이후 2015년까지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고 은퇴하였다.[51] 메이저리그 기록은 5시즌 66경기 6승 3패 4홀드 ERA 4.34. 2007년에서 2010년까지 4년 동안 메이저에서 뛰었으나 살아남지 못하고 2011년 일본으로 가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46경기 2승 2패 2세이브 6홀드에 ERA 2.45를 찍으며 수준급 불펜으로 활약하였으나 시즌이 끝나고 방출당했다. 2012년 미국으로 돌아가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3경기 뛰었으나 그 후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한국행. 그러나 KBO 리그의 프로팀에 가지 못하고 원더스에서 좀 뛰다가 멕시칸 리그와 독립 리그를 거쳐 2017년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와서 메이저 재승격을 노리고 있다. 그래도 원더스 에서 영입한 용병 중에서는 커리어가 괜찮은 편이다.[52] AAA까지밖에 오르지 못한 순수 마이너리거. 미국 본토 태생이라 그런지 도미니카나 푸에르토리코 리그 등에도 가지 않았으며 고양 원더스 이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53] 2015시즌 종료 후 김지성으로 개명.[54] 2013년 정식으로 KIA 유니폼을 입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55] 2015시즌 종료 후 방출.[56] 야구 시즌이 거의 다 끝날 쯤에 입단해 정식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는 건 2013 시즌부터.[57] 2013년 11월 22일 실시된 2차 드래프트 때 KT로 이적. 2014년 6월 17일 김건국으로 개명했다.[58] 2015시즌 개막 직전 은퇴.[59] 2014시즌 퓨처스리그 종료 후 구단 홈페이지에 군 입대 및 재활 선수 항목으로 이동했으나 2015년 7월 중 제외, 2016시즌 도중 팀에 복귀.[60] 2015시즌 도중 댄 블랙에게 등번호를 넘겨준 뒤 방출되었다.[61] 2014시즌 종료 후 방출. 여승철로 개명 후 2016년 초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원래 시즌 개막 전 선수단에서는 이름이 없었지만 4월 중 퓨처스리그 경기에 출장하면서 한화에 입단한 게 알려졌다. 그러나 구단 홈페이지의 선수 명단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62] 2015시즌 종료 후 방출.[63] 김지성은 KIA에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64] 2017 시즌 한정. 그 전까지는 1군 구경도 거의 못했다.[65] 이 사람은 개명 전 이름이 김선민이라서 김천민이라고 불렸다(...)[66] 김현수는 고교 시절에 청소년 국가대표에 이영민 타격상까지 받은 적이 있고, 박해민도 대학 졸업반 시절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야구 월드컵에 출전한 바 있으며, 서건창은 고교 1학년 시절에 전국대회에서 괜찮은 성적을 냈고, 손시헌도 대학 시절에 팀을 전국대회로 이끈바 있다.[67] 부연설명을 하자면 명예의 전당은 당연히 입성한 전설 중의 전설이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너클볼러이다. 너클볼러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300승 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