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4:26:38

허민(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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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제43대
허민
제44대
장종오
<colbgcolor=#010103><colcolor=#fff,#fafafa> 원더홀딩스 대표
허민
Hur Min
파일:sports.news.naver.comnews.nhnoid=421&aid=0003751863.jpg
출생 1976년 3월 17일 ([age(1976-03-17)]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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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업인
학력 대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 / 학사)[1]
버클리 음악대학 (학사)
포지션 투수
소속팀 락랜드 볼더스 (2013~2015)
프런트 고양 원더스 구단주 (2011~2014)
키움 히어로즈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2019~2022)
경력 네오플 CEO (2001~2008)
위메프 대표이사 (2010~2013)
위메프 최대주주
원더홀딩스 최대주주
원더피플 대표
넥슨 외부 고문

1. 개요2. 상세3. 기업 활동
3.1. 네오플3.2. 원더홀딩스3.3. 나무인터넷3.4. 위메프3.5. 원더피플3.6. 원더엔젤스3.7. 소셜-모바일 게임 투자3.8. 넥슨
4. 야구계 경력
4.1. 학창시절4.2. 고양 원더스 창단4.3. 고양 원더스 해체4.4. 너클볼 투수가 되다4.5. 미국 독립리그 입단4.6. 신인 2차 지명 참가4.7.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5.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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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2. 상세

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네오플의 창립자이다. 네오플을 넥슨에 매각한 뒤에는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라는 소셜 커머스 기업을 창업하였다. 지금은 위메프의 모기업인 원더홀딩스의 최대주주이자, 게임회사 원더피플의 대표를 맡고 있다.

또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해 3년간 운영했으며, 이후 주식회사 서울히어로즈의 운영에 참여해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직을 맡았다. 히어로즈의 최대 주주이자 구단 운영의 실권을 갖고 있던 이장석이 횡령 사건으로 KBO로부터 영구 실격된 후, 히어로즈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직을 맡게 되었으나 이후 히어로즈 운영의 실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평판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2022년 연임을 포기하면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기업 활동과 야구계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참고로 넥슨을 퇴사했을 당시에는 주식을 모두 팔아먹은 삽질을 저지른 것도 있다. 기업 활동 부분은 위메프를 제외하면 거의 베일에 가려 있지만, 비교적 외부에 노출이 많은 야구단 운영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1999년에는 서울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당시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외부활동이 많지 않아 던전앤 파이터위메프를 창업한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편이다.

3. 기업 활동

대학생 시절 사업을 시작했다가 크게 망하는 바람에 15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게 되었다. 그래서 야구도 접었다고 그 상황에서 네오플을 창업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법도 한데,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3.1. 네오플

2001년 게임회사 네오플을 창업했다. 캔디바, 던전앤파이터 등을 성공시키며 성공 가도를 걷게 되었다.

2008년 돌연 네오플을 넥슨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3,800억원대로 알려졌다. 그만한 인수 대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김정주에게 은행 대출을 받아오라고 일갈했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매각 후 작곡을 공부하겠다며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3.2. 원더홀딩스

2009년 지주회사 원더홀딩스를 창업했다.

원더홀딩스 산하에 '위메프', '원더피플', 에이스톰 등이 설립되었다.

2019년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부터 3,5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로써, 2015년 1,000억원을 투자했던 NXC의 총 투자금은 4,500억원이 되었다.

3.3. 나무인터넷

2010년 10월 나무인터넷을 설립투자했다. 위메프를 지배하는 기업이며, 허민이 소유하고 있다. 나무위키와는 관련이 없는 기업이다.

3.4. 위메프

2010년 5월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의 대표가 되었다. 허민의 친구들이 시작한 회사인데, 허민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허민이 자금을 댔고 대표도 하게 됐다.# 2012년까지 본인이 대표이사를 맡으며 소유와 경영까지 혼자 책임지다가 2013년 7월 별도의 대표이사를 선임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위메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1인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3.5. 원더피플

2010년에 원더피플을 창업했다. 원더홀딩스 산하의 게임개발 업체로, 2018년 모바일게임 아레나M을 출시했다.

2015년 불거진 위메프 갑질 채용 논란 때, 원더피플에서 허민에게 직접 갑질 면접을 봤던 사람의 경험담이 인터넷 언론에 소개가 화제가 되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주)위메프 법무팀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해당 기사를 삭제할 것을 댓글로 요청했고 이후 관련 기사가 모두 삭제되었다. #

2022년 12월 29일, 허민 대표가 원더피플 임직원들이 모인 종무식에서​ '2월까지만 월급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이후 원더피플을 폐업할 수도 있다. 현재 매우 힘든 상황으로 매각처를 알아보고 있으나,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 #

2023년 8월 21일 원더피플의 게임 슈퍼 피플 2가 악평과 함께 빠른 서비스 종료를 맞이하게 되었다.

3.6. 원더엔젤스

2011년 4월 허민이 50억원을 출자하여 만든 벤처캐피탈 회사. 허민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류제일이 임원으로 참여했다.

2012년 위메프가 경영난에 봉착했을 때 30억원을 투자했다가 회수했으나 편법 지원 논란이 일었다.

2013년 12월 창투사 라이선스를 반납하고 회사를 청산했다. 담당하던 벤처 투자 업무는 지주회사인 원더홀딩스로 이관되었다.

3.7. 소셜-모바일 게임 투자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모바일 게임이 흥함에 따라 이쪽 분야 벤처 회사들에 대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과거 네오플을 매각하여 3,000억원대의 자산가로 통하는 만큼 그는 모바일 업계를 좌우하는 큰 손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바일 게임 개발사 신타지아, 클라프 등에 투자를 했고 경영에도 직접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타지아는 당시 소셜 게임으로 드물게 야구를 소재로 한 '베이스볼 히어로즈'를 개발하기도 했다.

3.8. 넥슨

2019년 9월 넥슨 김정주의 요청으로 외부 고문으로 영입되어 넥슨의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있다. # 허민의 영입에 대해서 넥슨 직원들의 분위기는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넥슨 매각이 사실상 무산된 이후 8년 동안 질질 끌던 페리아 연대기 개발중단, 네오플 산하 스튜디오 해산, G-STAR 불참 선언에 박지원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와 정상원 부사장도 회사를 떠난 마당에 넥슨 출신이 아닌 허민의 영입은 사실상 김정주 회장이 넥슨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허민에게 맡기는 게 아니냐는 것. 허민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러 오는게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이미 넥슨에서 부는 칼바람을 게이머들도 아는 판에 그 말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많은 게이머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허민이 고문으로 오고 2020년 이후 공개된 게임들을 보면 BM은 기존 넥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지만 게임 개발 측면에 있어서는 기성 게임회사들 중에서 가장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넥슨이 허민을 영입하기 위해 허민이 보유한 원더홀딩스에 3,5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오자마자 시행한 파격적인 구조조정 이외에도 던파의 개발사이자 허민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네오플로부터 운영자금 및 투자재원 명목으로 4,000억원을 차입하고 사내 게임품평회에 참가하여 개발작들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

엔씨는 리니지 유일신앙에 빠져나오지 못하며 개발력이 퇴화되었고 넷마블은 고유IP를 만들지 못 하며 모바일게임만 내는 가운데 넥슨은 던파/메이플/피파/리니지라이크에서 핵과금러를 유입시키고 신작게임들은 과금장벽을 낮추고 게임성을 강화되어서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다. 영업맨 출신인 김택진과 달리 게임성 보는 눈은 확실한 편이다.

다만, 허민 본인이 넥슨 다른 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주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받아낸 합작 프로젝트이며 본인과 넥슨의 콜라보 작품이라고 언플을 했던 니트로의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부진하여 해당 게임 팬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거기다 데브캣의 마비노기 모바일은 나올 기약이 안 보이면서 실패한 투자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허민을 비롯한 내부인사들과 어느정도 체질개선을 하는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허민이 전반적으로 깊게 관여한 카트라이더는 원작을 서비스 종료시키는 악수와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대실패로 인해 넥슨 산하 니트로스튜디오가 돈 먹는 하마가 되자 엄청난 손실을 내면서 넥슨이 허민과 관계를 끊으려 한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니트로 스튜디오의 지분은 허민의 원더홀딩스와 넥슨이 1:1로 나눠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넥슨 측에서 디렉터 교체를 감행하고 24년 초에 지분을 100% 인수하였다. 이에 대해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의 실패에 대한 책임의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보는 여론이 우세하다.[2]

4. 야구계 경력

4.1. 학창시절

대동고등학교 재학중 학교 대표 야구팀 투수로 뛰었다고 한다. 다만 대동고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으며[3], 본인도 동일한 내용을 직접 밝혔다. 쉽게 말해 프로 선수나 대학 진학을 지망하는 야구부는 없고, 동아리 야구부만 있었다는 얘기. 이 때 과도하게 투구 연습을 하다가 관절와순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 부상은 나중에 기업인 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허민의 야구 실력은 아마추어치고는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허민의 아버지 또한 부산고등학교에서 선수로 뛰었다고 하는데[4], 이 영향을 받은 것인지 허민도 대동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날마다 야구를 했다. 포지션은 투수. 하지만 2학년 때 과도한 연습으로 인해 관절와순 진단을 받고, 투수를 중단하고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후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서울대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다. (서울대학교 야구부도 일반적으로 취미 활동으로 간주된다.) 학업때문에 실질적인 야구부 활동은 한 달 정도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그룹사운드 연합 활동으로 전자기타를 치기도 했다.

4.2. 고양 원더스 창단

네오플 등에서 번 수익으로 2011년 9월 독립리그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창단했다. #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인이 합작하여 독립구단을 창설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허민 대표는 야구단 운영에 필요한 경비 및 선수단 지원을 맡는다고 한다.

2011년 야인으로 있던 김성근을 감독으로 영입하며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당시에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던 김성근의 팬덤 노리타들에 의해 엄청나게 미화되게 되었다.

심지어 재계약조차도 노리타들이 사실을 날조하여 찬양했다. 김성근이 원더스 말고는 영입 제의가 온 곳이 없었고 때문에 오갈데 없어서 재계약한 것인데, 노리타들은 마치 김성근이 허민 구단주의 따뜻한 배려 때문에 프로 제의를 마다하고 원더스에 남은 것처럼 날조해서 묘사했다. 아래는 김성근이 재평가되기 전 본 문서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2012년 계약에서 '프로구단이 감독으로 원한다면 조건 없이 보낸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기존 김성근 감독이 있었던 프론트와의 마찰을 빚었던 것과는 달리 허민 구단주는 '동반자'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김성근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2014년까지 원더스의 감독으로 남는다는 계약을 맺은 것이 화제가 되었다.

4.3. 고양 원더스 해체

2014년 9월 11일 돌연 고양 원더스를 해체했다. 2015년 고양 원더스의 실상이 재조명됨에 따라[5] 김성근과 함께 고양 원더스를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관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고양 원더스 때문에 기업운영에서 보여주던 여러 무리수가 묻혔고, 고양 원더스도 마치 언더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자선을 사업하는 것처럼 언플하고 있었으나 실제는 이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해체 이듬해 고양 원더스 출신 선수들의 2015년 1군 성적>

최다출장: 121경기 송주호 (한화 이글스)
최다홈런: 4홈런 신성현 (한화 이글스)
최고타율: 0.429[6] 김선민 (kt wiz)

34명 중 8명이 1군에 데뷔했다는 건 한 해에 프로야구에 지명되는 아마야구 선수들의 비중에 비해서도 23.5%의 성공율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 야수에만 몰려 있다는 점과 입단 이후의 성적이 별로라는 점은 아쉬운 점이며 이 때문에 사실상 실패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원더스 천민이라는 멸칭으로까지 부를정도. LG에서 근성있는 플레이로 깊은 인상을 남긴 황목치승과 한화에서 뛰던 송주호가 그나마 널리 알려진 고양 원더스 출신이었다. 2024년 현재, 앞서 서술된 8명중 대다수가 방출되거나 은퇴했으며 현재는 아무도 없다. 그나마 2023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신성현만 남아있었다.[7][8]

4.4. 너클볼 투수가 되다

기업인 활동으로 돈을 벌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고등학교때 입은 어깨 관절와순 부상을 치료받는 일이었다고 한다. 헌데 조치가 너무 늦어서였는지 치료후에도 속구 구속이 최대 110km/h 정도에 머물었고, 이 상태에서 선수 생활을 하려면 너클볼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해 필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을 배웠다고 한다.

4.5. 미국 독립리그 입단

2013년 8월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리그에 속해있는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했다고 한다. 공식 프로필상 등록된 주무기는 너클볼이라고 한다.[9] 입단 기사

2013년 9월 2일 뉴어크 베어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며 데뷔전을 치뤘다. 데뷔 성적은 3이닝 5실점. 데뷔전 기사

데뷔한 지 1년이 약간 안 된 2014년 5월 27일에 2014 시즌 첫등판을 통해 승리투수가 되었다. 퀘벡 캐피탈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32명의 타자를 상대로 6이닝 6실점(6자책), 10피안타 4볼넷 1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baseball reference 기록에 따르면 허민의 통산성적은 2013~2015년 까지 총 3시즌 뛰었으며 4경기 17이닝 1승 2패 방어율 12.18 로 기록되어있다. 더 신기한건 허민이 2014년 캔암리그 락랜드 볼더스 팀의 우승 멤버(...)라는 것이다.

4.6. 신인 2차 지명 참가

2019년도 KBO 신인 2차지명에 참가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에 일부 몹쓸 야구팬들자신들의 우상을 성심성의껏 지원해줘서 덕담을 남겼고 일부 야구팬들도 도전 정신은 대단하다는 댓글도 조금이나마 보였지만, 고양 원더스의 거품이 이미 걷힌 지 오래고 아직 진행 중인 위메프의 문제들 때문에 전반적인 반응은 썩 좋지 않다. 가뜩이나 이대은, 이학주 등 최대어들이 많은데다가 본인의 나이가 43세에다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희소한 구종인 너클볼정도인데 도대체 어느 구단이 40세이상 되는 선수에 미국 독립리그에 3년간 4경기 뛰고 평자책 12점대 투수를 소중한 드래프트권 1장을 소모하여 지명할 리도 없다. 2014시즌에 독립리그 우승때문에 김칫국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지명될 가능성은 거의 0퍼센트인데다가 육성선수로 들어가도 1군에 데뷔를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인 와중에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트라이아웃에 불참한다고 하는 걸 봐서는 진정으로 도전하는 자세는 아니다. 결국 예상대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4.7.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그러던 와중에 키움 히어로즈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차라리 구단 인수를 하는 게 낫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으나 독립야구 구단 운영을 하면서 온갖 문제점을 드러냈던 그가 프로야구단을 제대로 굴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 더군다나 그의 자산 규모는 프로야구단을 꾸준히 운영할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인수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 측에서 매각할 생각이 없어서 거절당한 것으로 밝허졌다. 과거 현대 유니콘스 인수도 타진한 적 있었으나, 역시나 거절당했다.

공식적인 직함은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지만 실질적 구단주인 이장석이 퇴출됐고 구단 이사회가 구단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대신 관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구단주나 다름이 없다.

애리조나에서 캠프 중인 자신의 구단 캠프에 방문하여 히어로즈 청백전에 깜짝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3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어찌보면 야구를 좋아하니까 프로 선수들과 붙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야빠들은 하고싶은 것을 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서 부럽다는 반응. 그러나 구단이 직접 선수단에게 요청하여 청백전에 참가한 것과 키움 히어로즈 사외이사라는 직위를 가졌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군대로 치면 사단장님이 와서 병사들과 축구대결 하는건데 타 구단 선수가 아닌이상 누가 구단이사님에게 전력으로 상대하겠냐"며 비웃는 반응들도 있다. 그리고 허민 본인도 2이닝 던지고 나서 이제 본인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던지고 나면 무릎이 피곤해서 만약 투구를 한다면 연습전만 할 수 있을것 같다고 인터뷰 했다.

그러나 이후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의 직책을 달고 사실상 구단주 행세를 하면서 여러 월권행위를 하였음이 밝혀져 야구계에서의 그의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논란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이 때문에 팬들에게는 이장석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주적이 되었으며 SNS에 허민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위의 깜짝 등판도 갑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월권행위 논란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고, 복귀한 이후에는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가 2021년에 구단에 한 일은 하송 대표가 위메프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사내이사 겸직 금지 조항을 피하기 위해 키움 히어로즈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허홍 전 NHN서비스 대표이사를 신임 구단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 뿐이다.

이후 2022년 2월 28일 SBS 8시 뉴스에서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정확히는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되었고, 본인이 연임을 원치 않아 팀을 떠난 것. 3년간의 임기 동안 여러 구설수에 휘말린 것을 볼 때, 허민이 앞으로 야구계에 다시 진입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2022년 9월 8일 1군 선수단 버스를 사비로 교체해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래서 여전히 이장석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히어로즈 구단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어찌 되었든 본인이 이사회 의장직을 때려치자마자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5. 논란

5.1. 기업

2015년 위메프 갑질 채용 사태로 구설에 올랐다.

5.2. 야구

5.2.1. 고양 원더스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구단주가 되었으며, 특히 당시 스포츠계의 홍위병으로 불리던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던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여 김성근을 추종하는 세력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돌연 구단을 해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고양 원더스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고양 원더스(2011) 문서 참조.

5.2.2. 키움 히어로즈

그 문제 있는 임은주를 단장으로 선임한 것부터 시작하여, 여러 논란을 만들었다.

2019년 6월 20일 허민 이사회 의장이 일부 선수를 대상으로 라이브 피칭을 시도했다. 구단은 선수들의 자발적 참여라고 해명했으나 변명이라는 시선이 많다. 참고로 키움 히어로즈는 2019 시즌 KBO 10개 구단 중 관중 순위 꼴찌를 기록하는 등 관중 감소세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부적절한 처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2019년 6월 19일 SBS는 이달 초 2군 훈련장을 방문해 훈련이 끝난 2군 선수들을 야구장에 남아 있으라고 지시한 후 직접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선수들과 캐치볼을 하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자신의 공을 쳐보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로 인해 선수들은 1시간 넘게 퇴근이 미뤄졌다. 퇴근하는 선수들 붙잡고 캐치볼…"계약 위반"

2019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키움 히어로즈의 대표이사가 교체되었는데 허민의 측근인 하송이 새로운 대표이사가 되었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이장석의 측근들이 몰락했는데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손혁 감독이 선임된 것. 항간에는 이장석 색채 지우기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한 언론사의 취재결과 허민이 손혁 코치를 수석코치로 써달라고 요구한 것을 장정석 감독이 거부한게 재계약 불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항간에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허민이 히어로즈 인수를 위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냐는 견해가 많다. 일단 구단 발표에서는 이장석이 장정석의 계약에 관여했다는 녹취가 발견되어 옥중경영이 문제되어 재계약을 안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나, 장정석 감독은 단순히 안부만 물었다고 밝혀서 논란이 있다.

2020시즌 시작 후 사실상 허민이 꽂아넣은 것과 다름없는 손혁 감독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덩달아 까이고 있다. 이장석은 구단을 제 잇속 챙기는데 이용하기는 했어도 선수 보는 안목이나 트레이드 같은 팀 운영상의 식견은 어느 정도 있으나 허민은 이장석이랑 다를 바가 없는 인물이면서 야구단을 운영할 능력까지도 없다는 비판을 받는 중이다. 게다가 이장석은 자신이 임명한 염경엽, 장정석 감독이 성적이라도 좋게 냈지만, 손혁 감독의 지도력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를 두고 인맥 야구의 실패라는 평을 받고 있다. 허민이 처음 데려왔던 임은주도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였으며, 임은주는 야구에 대해서 완전히 문외한인 것으로 드러났다.[10] 결국 허민 스스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구단이나 허민 본인에게나 서로 윈-윈일 것이다. 이미 키움 팬들은 허민, 하송, 손혁을 금지어로 지정해놓고, 매일 매일 나가라고 혀갤과 공홈을 달구고 있다.

그런데, 2020년 10월 8일 손혁 감독을 자진 사임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했다. 문제는 손혁 감독의 경질 이후에 터졌는데, 구단 내부에서 그동안의 실태에 대한 폭로가 나온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부산 원정 도중에 서울로 손혁 감독을 불러내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투수 운용, 번트, 대타 등 감독이 관리해야할 작전에까지 개입하여 그것에 대한 모든 책임은 손혁 감독에게 돌렸고 게다가 자진 사퇴 형식으로 경질까지 해버린 것이 폭로되며 한순간에 손혁을 향했던 비난의 화살이 모두 허민에게 향하게 되었다.[11]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동안 손혁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경기 운용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위에서 개입한 대로 경기를 운용하였으며 모든 비난은 감독인 자신이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해당 기사에는 구단 최고위층이라는 익명을 썼지만, 10월 12일 스포츠한국 기사에서 허민이 맞다고 확인되었다.

심지어 같은 날 SBS의 보도에 따르면 허민은 2군 선수들 뿐만 아니라 1군 선수들과도 '야구 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허민은 자신의 취임 축하를 위해 1군선수들을 위메프 본사로 불러냈고, 2군 선수들과의 야구 놀이도 심각한 문제인 상황에 1군 선수들을 동원해 2군 선수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너클볼을 받고, 캐치볼을 하는 등 키움 히어로즈 구단을 자신의 놀이터로 여긴 정황이 드러났다. 이 보도가 사실이면 허민은 당장 사외이사고 무엇이고 나가는 것이 정상이다.

일부에서는 몇몇 야구인들(특히 이순철)이 허민을 비판하고 나선 것을 야구인들의 밥그릇 지키기 차원일 뿐이라고 폄하하지만 이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단견일 뿐이다.

앞서 고양 원더스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미루어보건대, 허민은 야구단을 경영할 능력은 안된다. 독립야구단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는데, 프로 구단을 인수했다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허민은 네오플 시절부터 경영 능력 비판을 받아왔었을 정도로 경영 능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위메프만 해도 여러 논란에 시달렸고, 키움 히어로즈에서도 경영권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외이사인 주제에 이장석과 홍성은의 경영권 분쟁을 틈타 갑질을 해댄 것이 유명해져 경영 능력은 늘 까였다. 이는 허민이 야구를 얼마나 모르는지 보여준 셈이다.

허민이나 이장석이나 둘 다 나쁜 놈인 건 맞다. 하지만, 이장석은 나쁜 놈이긴 해도, 무능하게 운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12], 키움 팬들은 분노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태. 고양 히어로즈의 2군 문제도 허민이 본격적으로 팀 운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2020년에 불거지면서 비판의 불똥이 허민에게 쏠리고 있다.

그리고 손혁 사퇴 후 팀은 5위까지 추락하면서 언론은 연일 히어로즈와 허민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는 중이며, 팬들 또한 팀을 더 이상 망치지 말고 당장 나가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결국 KBO까지 나서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만약 허민이 손혁 감독 사퇴에 관여한게 드러나면 야구규약 위반이라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SBS 보도에 따르면, KBO의 조사에서 2018년 말 이장석 측과 허민 측 간에 모종의 금전적 거래가 있었고, 이장석이 횡령해서 변제해야할 45억을 허민 측이 보내줬다고 나온다. 허민은 현금이 부족한 이장석에게 45억을 주거나 빌려줘서 변제 해야할 돈을 마련해줬고, 그 대가 혹은 담보로 이장석이 감옥에 있는 3년간 구단 운영권을 쥐었다는 것. 즉, 허민은 돈을 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구단주 놀이를 했다고 보면 된다.[13] 이처럼 구단주도 아니면서 구단주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장석의 묵인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허민의 의아한 행보가 설명이 된다.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은 이영미 기자의 기사에서 손혁의 경질은 이장석의 의지였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박동희유튜브 영상을 통해 허민은 잘못이 없고 측근들이 잘못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허민 관련 기사들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당연히 싸늘하다.

2020년 12월 23일, 징계 발표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연기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초 KBO 상벌위원회의 결정은 법리에 따른 증거 불충분 그리고 KBO 규약의 한계를 이유로 엄중 경고였으나 이를 들은 정운찬 총재가 이에 동의하지 않아 미뤄졌다. #

2020년 12월 28일 오후 5시 40분 2개월 직무정지와 구단에게는 엄중경고가 내려졌다. 팬들은 당연히 솜방망이 징계라면서 분노하는 분위기. 하지만 허민은 이 솜방망이 징계마저도 불복하고 KBO를 향해 법정대응을 선언하면서 징계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이런 키움 히어로즈의 불복선언에 KBO 측은 꼬우면 리그 떠나서 직접 리그를 만들라는 뉘앙스의 꽤나 강한 언행을 보였다.[14] 이 일로 인해 가뜩이나 안 좋았던 여론이 일구회와 선수협까지 나서서 비판을 하는 등, 급격히 악화되자 결국 불복선언을 철회했다. #

이후에는 딱히 사고 없이 지내다가 징계가 끝난 뒤 조용히 복귀했고, 이장석이 출소한 이후 허민 본인과 이장석의 구단 지분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었으나 예상 외로 조용히 지나갔다. 애초에 허민은 구단 지분이 없기 때문에 이장석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남은 임기를 수행하다가 허홍 대표이사와 함께 팀을 떠났다.


[1] 1995년 입학 당시에는 학부제의 전단계로 공업화학·섬유고분자·화학공학과군(群)이었다. 1998년 섬유고분자공학과를 제외한 공업화학과와 화학공학과가 합쳐 응용화학부가 되었고 허민은 2002년 졸업했다. 2005년 이후로는 화학생물공학부가 되었다.[2] 실제로 허민과 류제일이 니트로스튜디오에서 물러난 뒤, 서재우 단독 체제로 바뀐 게임은 RISE 업데이트를 통해 죽어가는 게임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저층을 끌어모으고 있다.[3] 같은 재단 내의 대동중학교(부산)은 야구부가 있으며 대표적인 졸업생으로 채태인, 장민석, 장원준, 정우람 등이 있다.[4] 이후의 정확한 이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허민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의 아버지는 프로야구 출범 당시에는 이미 은퇴한 뒤였을 가능성이 높다.[5] 엄밀히 말하면 해체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묵살당했던 내용들이다. 자세한 사항은 고양 원더스(2011)/평가 문서로.[6] 35타수 15안타로 당연히 규정타석에서 한참 미달이다.[7] 그러나 그 신성현마저도 부진이 계속되자 두산으로 트레이드 되고 거기서도 영 시원치 않은 성적에다가 적지않은 나이로 방출 위기에 쳐했다.[8] 얼핏 보면 원더스 출신으로 제일 나아보이는 신성현이 그래도 뭔가 한 거 같지만 사실은 거의 한게 없다. 프로에 7년이나 있는 동안 93안타밖에 못 쳤다. 남들은 후보선수 생활 하다가 실력이 올라와서 주전 1년만 해도 100안타 정도치는 경우는 즐비한데 7년이 1군 100안타도 못 가는 성적이라는건 사실상 그냥 7년 내내 계속 2군 선수였다는 뜻이다. 그나마도 김성근이 한화에 있을때나 억지로 실력에 비해 더 기회를 받아서 좀 한 거고 두산에서는 그냥 2군 붙박이급 커리어였다.[9]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너클볼러 필 니크로를 직접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관련 기사[10]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이 진 이유가 "투수 교체 타이밍 때문"이라는 대답에 임은주를 선임한 배경이라고 한다.[11] 해당 기사가 그동안 키움 구단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온 엠스플뉴스의 기사라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후 다른 매체들 및 야구인들이 속속 허민 비판에 가담하고 있다.[12] 이장석도 자칭 팬클럽에게 혜택을 주는 실책들을 저지르긴 했다. 그런데 허민은 그것은 괜찮게 보일 정도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이장석은 돈 벌려고 어떻게든 구단 성적을 위해 노력은 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13] 좋은 구단주 역할을 했으면 모를까, 구단에 대한 지원이라고는 위메프 광고도 안 붙여주고 그냥 안마기 지원한 것 밖에 없다.[14] 물론 말이 그렇지 현실적으로 키움 히어로즈가 KBO에서 탈퇴해 별도의 리그를 만들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순간 키움 팬들은 모두 알버트 벨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