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5 16:28:10

송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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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호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4번
우용득(1993~1995) 송주호(2007) 조원태(201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번
유용목(2005~2007) 송주호(2008~2010) 김헌곤(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50번
양훈(2005~2012) 송주호(2013~2014) 양훈(2015~2015.4.8)
한화 이글스 등번호 59번
서균(2014) 송주호(2015) 노태형(2016)
한화 이글스 등번호 9번
추승우(2009~2015) 송주호(2016~2018) 이동훈(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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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송주호(宋周浩 / Ju-ho Song)
생년월일 1988년 7월 11일 (만 [age(1988-07-11)]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서울효제초 - 서울중앙중 - 서울중앙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7년 신고선수 입단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7~2010)
고양 원더스 (2013)
한화 이글스 (2013~2018)
등장곡 프로듀스 101 - PICK ME
응원가 ABBA - Ring, Ring[1]

1. 소개2. 선수 생활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2.2. 고양 원더스 시절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3년2.3.2. 2014년2.3.3. 2015년2.3.4. 2016년2.3.5. 2017년2.3.6. 2018년
3. 방출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원래는 내야수였으나 현역으로 제대한 후 고양 원더스를 거치면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얘 쓰자고 KIA로 트레이드 시킨 선수가 바로 오준혁, 노수광이다. 삼성이 버린 선수는 주워쓰면 안되는데, 야수 중에서 송주호가 그 예시를 맡고 있다. 참고로 국내 투수[2] 중에서는 배영수가 맡았으나 17시즌 최다 이닝[3]을 소화해 어느 정도 이 예시에서 벗어났다.[4]

2. 선수 생활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7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삼성 라이온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원 포지션이었던 2루수를 포함해 3루수유격수를 맡았으나 KBO 퓨처스리그에서 매년 타율이 2할 중반대에 그쳤고, 볼넷/삼진 비율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니어서 삼성의 두터운 선수층을 뚫지 못한 채, 단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010년 시즌 후 방출당했다.

이후 중앙고등학교 시절에 감독으로 함께했고 SK 와이번스에 있던 계형철 코치의 추천으로 입단 테스트를 받아 마무리캠프까지 동행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김성근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이적하지 못했다.

2.2. 고양 원더스 시절

이적에 실패하자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팀을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현역으로 입대했다. 프로 팀은 당연히 같은 나이의 선수면 미필보다 군필 선수 내지 군면제 선수를 선호하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차출된 곳이 특전사[5]. 특전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병은 특전사로 차출되어도 전투병이 아닌 행정병이나 지원병으로 가는데, 그래도 공수훈련은 똑같이 받는다. 특전사 차출 이후 야구 다했다는 생각에 중대장에게 청원을 넣었더니 중대장이 특별히 야구장비 일체의 반입 허가와 자유시간 중 자체 훈련을 허락했다고.

이후 2012년 9월, 휴가 기간을 이용해 고양 원더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이 때 감독은 2년 전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에서 송주호를 낙마시킨 김성근. 그러나 2년 전과 달리 김성근의 입장도 프로 구단의 1군 감독에서 독립 야구단 감독으로 바뀌었던지라, 그리고 송주호 본인도 열심히 훈련을 한 덕분인지 최종적으로 합격 통보. 연말에 특전사에서 제대한 후 정식으로 팀에 합류했다.

팀에 합류한 후 김성근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했다. 김성근 감독이 본 송주호의 주력이 빨라 외야의 타구 처리에 용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리고 경기가 없는 날에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밥먹는 시간 빼고 외야 펑고를 시켰다고. 결국 이 외야수 전향으로 프로 1군에 데뷔하게 되었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3년

2013년 이정훈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의 추천으로 5월 31일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다. 동시에 2013 시즌 고양 원더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6]

2013시즌 한화의 상태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외야는 김응용대전 야구장 외야펜스 공사로 외야필드가 넓어진 반면, 외야자원들은 타격 때문에 쓰는 발 느린 거포, 억지로 외야 전향시켰다 폭망한 빅뱃 1루수, 수비범위가 무지 좁은 중견수,부상으로 뒤늦게 합류한 최고령 리딩 히터, 유리몸이라 끝내 시즌 중 은퇴한 선수, 끝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 등등이라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한화 이글스로서는 어떻게든 수비범위가 넓어 안정적으로 외야를 봐줄 자원이 한 명이라도 필요했기에, 이미 군필이고 주력이 좋아 수비범위가 넓은 송주호를 영입했던 것.

그리고 빈약하기 그지 없는 한화 외야의 벽을 뚫으며 1달만에 1군에 진입. 2군에서는 겨우 15경기동안 56타수 12안타 3타점 0.214에 장타는 2루타 하나가 전부로 타격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워낙 한화 1군 외야수비가 헬인데다가 대주자 자원인 이학준이 주전 내야수가 되어 가는데다(…), 또다른 대주자 자원인 하주석도 2군에서 삽을 푸는 중이어서 대주자 자원으로서의 필요성이 있었다.

결국 6월 28일 대주자로 프로 1군 첫 경기, 7월 9일에는 첫 1군 선발로 출장하기에 이른다. 대주자 출장에서는 확실히 빠른 발을 보여주었고, 7월 9일~11일 두산전에서 이틀 연속 안타를 쳐내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7월 11에는 한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번트안타를 치며 상대 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흔들었고, 이 번트안타가 결국 2아웃 이후 송광민의 만루홈런으로 연결되며 결승득점을 올렸다.

그 후 영 좋지 못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다가, 9월 20일 대전 SK전에서 10회 말에 선두타자로 나서 이재영을 상대로 기습 번트를 댔다. 한상훈의 희생 번트로 2루까지 간 건 좋은데, 정범모의 타석에서 3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잡혔다. 상대의 실책으로 간신히 이겼지만 까였고,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왼손 손가락 인대 파열로 10월 초에 수술을 한다고 한다.

2.3.2. 2014년

2014 시즌에는 2군 스프링 캠프에도 참가하였고 현재 이정훈 감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악바리키드 중 한명으로 한화 2군의 톱타자로 성장하고 있다.

결과는 KBO 퓨처스리그 도루왕... 이정도면 대주자대수비로 쓸 만 한데 9월달 엔트리 확장 즈음에야 콜업됐다.

2013년과 2014년 초에는 발만 빠른 대주자의 모습을 보였으나 엔트리 확장으로 올라온 이후에는 중견수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화 이글스에서 수비부담이 큰 중견수를, 그것도 펠릭스 피에라는 특급 수비수를 대신하여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빠른 발은 물론이고 송구도 전에 비해 훨씬 정확해진 모습이며 어깨는 평균 이상. 대체 서산시2군 훈련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

시즌 후 김성근이 한화의 감독으로 새로 부임하자 굉장히 반겼다고 한다.

2.3.3. 2015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송주호/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4. 2016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송주호/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ops .266

도저히 프로선수라고 볼 수 없는 식물 of 식물.

2.3.5. 2017년

시즌을 앞두고 육성선수로 전환되어 줄곧 2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시즌이 진행되면서 김원석, 이용규, 최진행 등 주전 외야수들이 단체로 부상에 시달리자 이 틈을 타서 1군에 슬그머니 올라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2군에서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상황. 더욱이 고양 원더스 시절부터 그를 총애했던 김성근 감독 또한 경질되었기에 엄청난 각성을 하지 않는 이상 1군 무대를 밟을 일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7월 17일 현재 타율 .299 OPS .773으로 작년이나 재작년과 달리 2군 본즈조차 되지 못하는 모습. 이대로라면 그냥 선수 커리어 자체가 여기서 끝날 수도 있는 상태다. 결국 이전 시즌들과 달리 2017년에는 1군 무대를 단 1번도 밟지 못한 채로 시즌을 마쳤다.

2.3.6. 2018년

김성근 재임 시절에는 나올 때마다 양아들로 불리면서 온갖 비판에 시달렸고, 2017년 김성근이라는 방패막이 사라지자 1군 무대를 아예 밟지도 못하면서 시즌이 끝난 뒤 방출이 유력했으나, 의외로 새로운 감독이 들어온 뒤 이뤄진 한화 선수단 정리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단 백창수, 김민하, 김지수[7] 등 새로운 외야수들 또한 가세했고, 후반기에는 가능성을 보여줬던 장운호까지 전역했기 때문에 넘어야 할 경쟁자들은 여전히 많다. 그나마 퓨처스리그 도루왕을 차지하는 것으로 증명된 준족을 이용해서 대주자로나마 1군 무대를 밟는 것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2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조차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4월 한 달 동안 퓨처스리그 경기 출장도 전혀 없는 상황. 이대로라면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제 방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라고도 할 수 있을 듯. 그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장민석이 5월 3일 웨이버 공시되면서 송주호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이럼에도 송주호가 웨이버 공시되지 않은 이유는 육성선수 신분이라 그를 방출한다고 해서 정식 선수 등록 자리가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3군 경기에서는 보이고 있다. 부상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6월 17일에야 2군에 등록되었지만, 1군까지 올라오지는 못한 채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결국 시즌 후 2018년 10월 25일 방출 통보를 받았다.

3. 방출 이후

은퇴를 결심한 듯하다.

2월 26일 개인 페이스북에 세종 송주호 아카데미 회원을 모집한다는 이 올라왔다.

4. 플레이 스타일

퓨처스리그 도루왕 출신인 만큼 주력은 좋은 편이다. 다만 2군 기준이라는게... 1군 기준으로는 발만 빠른 평균 이하의 주자라고 하는데, 주루 플레이에서 민폐는 되지 않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8]

타격은 KBO 리그 전체 외야수들 중 최악. 거포도 아닌 똑딱이가 볼삼비가 최진행보다 못할 정도.[9] 장타력, 컨택이 모두 없다시피 하다. 2014년엔 2군에서 3할, 2015년엔 4할을 쳤으니 2군 수준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수비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임하지만, 다이빙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낙구판단 능력이 떨어지며, 이 탓에 다이빙캐치를 많이 시도해도 십중팔구 빠트리지만, 그나마 잘 잡히는 날엔 잘 잡힌다. 다이빙 캐치가 아닌 경우에는 좋은 어깨와의 조합으로 상당히 좋은 수비를 한다.

어깨는 강견이지만[10] 송구가 상당히 부정확하다.

간단히 말하면 주루, 송구는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타격, 파워, 수비 면에서는 가진 게 하나도 없다. 그나마 주력과 송구라도 있는 것이 다행인가

어떻게 보면 한화 팬들에게 억울하게 욕을 먹는 점도 있는데, 선수 본인만 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지만 재능이 2% 모자라기에 2군 이치로라도 1군에서는 무장점 선수인 것이다. 하지만 이걸 감독이 어떤 야구 외적 이유가 있든 단순히 타자 보는 눈이 동태눈이라서든간에 무리하게 기용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아왔다.[11] 제아무리 팬이라도 감독 때문에 선수 본인에게 2군에서도 일부러 못하라고는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어쨌든 송주호를 쓰려고 전임 감독이 노수광, 오준혁을 KIA로 보내고 좌타 대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의 이종환을 데려온 면도 있기에 한화 팬들의 시선은 더욱 차갑다. 이 와중에 유창식 치운 거 하난 잘했다만 불혹의 나이에 자기관리 잘해서 박수받을 자격이 있지만 내야 백업으로 쓰면 딱인 선수를 엉뚱한 유격수 주전으로 기용해서 한화 팬들의 주적이 되어버린 또다른 양아들 권용관과도 비슷하다. 결국 선수들보다는 감독의 선수 보는 눈과 용병술 문제라는 것. 실제로 하주석, 강경학은 수비 면에서 권용관과 큰 능력 차가 없었고 장민석과 송주호 역시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호타준족 테임즈도 보살로 잡아본 적 있는 장민석이 우위.[12]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7 삼성 1군 기록 없음
2008
2009
20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한화 28 31 .129 4 0 0 0 0 5 0 2 .129 .182
2014 17 22 .136 3 0 0 0 2 5 1 4 .136 .269
2015 121 140 .200 28 6 0 1 9 18 6 8 .264 .243
2016 33 47 .106 5 0 0 0 1 3 0 3 .106 .160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KBO 통산
(4시즌)
199 240 .167 40 6 0 1 12 31 7 17 .204 .222


[1] 안! 타! 한화의 송주호~~! 송!주!호! X2[2] 외인 투수 중에는 알프레도 피가로가 대표적이다.[3] 그러나 고작 128이닝이라 규정 이닝은 못 채웠다.[4] 공교롭게도 2명 다 한화 이글스에서 전임 감독이 중용했다(...).[5] 심지어 707특수임무대대였다.[6] 같은 날 팀 동료 4명은 신생팀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7] 단 이들 중 백창수는 오히려 내야에서 더 뛰어난 수비력을 보이면서 사실상 백업 1루수 역할로 굳어졌고, 김지수는 군 복무 중이다가 9월에야 한화에 합류했으며, 김민하도 2015년 입은 손목 부상으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송주호에게 이들을 뛰어넘고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을 정도의 월등한 강점이 없다는 점이지만.[8] 뭔 소리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루 플레이는 그냥 뜀박질이 다가 아니다. 주루 센스나 작전 수행 능력이 좋아야 하는데, 송주호는 발만 빠르지 나머지 두 가지는 갖추지 못하였다. 즉 주력만 빠르고 주루가 안 된다는 것. 비슷한 유형으로 KIA 타이거즈 소속의 신종길이 있다. 평가는 스피드는 이대형이랑 대등하다고 야구 관계자들이 언급하지만, 뇌주루와 잦은 주루사, 그리고 낮은 도루 성공률 등으로 인해 기아 팬들은 이미 신종길이 발이 빠르다는 평을 잊은 지 오래다.[9] 그나마 최진행은 15시즌부터 선구안이 어느정도 잡힌듯 하다.[10] 영 좋지 않은 여론 때문에 다소 가려진 부분이 있는데, 실제 어깨는 편견 없이 보면 평균 이상이다. 2016 시범경기에서 2루타성 좌전 안타를 친 문규현을 송구로 2루에서 잡아낸 적이 있다.[11] 그래도 이쪽은 18시즌 시작 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1,000경기나 출장했으니 아주 가치가 없는 선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12]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에 송주호와 매우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있었다. 바로 하야사카 케이스케. 발만 빠르고 타율도 낮고 선구안도 안 좋고 장타력도 없으며 주루 센스 역시 나쁜 편이었던 선수였다. 실제 하야사카가 거의 주전급으로 활약했던 2009년 성적이랑 송주호의 통산 성적을 보면 매우 흡사하다. 여담으로 하야사카는 2009년을 제외하면 1군에 거의 못 올라오고 대주자 요원으로만 전전하다가 33살의 나이로 은퇴해야 했다. 송주호가 현재 한국 나이로 31살이니 실력의 변화 없이 이대로 간다면 짧으면 1년, 길어야 2~3년 내로 정리될 수도 있다. 2017년부터 박종훈 단장을 필두로 한 프런트가 김성근의 색채를 지우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