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14 20:31:45

김광수(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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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다람쥐라고 불렸던 리즈 시절 헌데 이때도 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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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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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수석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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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015시즌 스프링 캠프에서 정근우, 김태균의 주루를 지도하고 있는 장면. 정근우보다도 작다.
이름 김광수(金光洙 / Kwang-soo Kim)
생년월일 1959년 1월 3일
출신지 경기도 광주시
학력 서울효제초 - 선린중 - 선린상고 - 건국대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농협 야구단 (1981)
OB 베어스 (1982~1992)
지도자 OB 베어스 1군 수비코치 (1993~1997)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00~2003)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04~2011)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7)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8)
두산 베어스 감독대행 (2011)
고양 원더스 수석코치 (2012~201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코치 (2015)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2015~2017)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2016.5.5~5.19.) [1]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2]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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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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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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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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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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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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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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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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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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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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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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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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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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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역대 주장
이종도
(1985~1987)
김광수
(1988~1990)
김형석
(1991)

1. 소개2. 선수 시절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시절
3.1. OB / 두산 베어스 시절
3.1.1. 2011년
3.2. 고양 원더스 시절3.3. 한화 이글스 시절
3.3.1. 2015년3.3.2. 2016년3.3.3. 2017년
4. 기타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

2. 선수 시절

1988년 9월 6일부터 1989년 7월 18일까지 당시로는 2루수 부분 최고인 63경기 무실책을 기록할 정도로 수비 기본기가 좋은 2루수였다. 타석에서는 타율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2016년 현재 4000타석 이상 기록한 선수 중 볼넷/삼진 비율이 1위일 정도로 선구안이 좋았다.[3] 2번 타순에서 능수능란한 번트와 밀어치기 등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으로 중심 타선의 타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며 2번 타자로서의 전형을 제시했다. 덤으로 발도 빨랐다. 실업 시절에 도루왕을 차지한 바도 있다. 그래서 현역시절 별명이 날다람쥐. 은퇴하기 1년 전인 1991년에 50도루를 기록, 당시 이순철과 도루왕 경쟁을 할 정도였으니. 1980년대 초중반 OB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숨은 실력자였다.

85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9홈런을 쳤는데, 이게 동시에 당해년도 OB 팀 내 1위의 성적이기도 했다. 투수력은 삼성 못지 않았으나 결코 그들과 비등할 수 없었던 성적 이면에는 OB의 물방망이가 있었는데, 이를 대변하는 듯한 성적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베어스 구단 역사상 정식경기 1호 안타의 주인공이다. 1982년 3월 2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의 경기에서 첫 타석 때 2루타를 쳤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1982 OB 베어스 47 103 0.272 28 2 0 1 14 10 6 14
1983 84 233 0.223 52 8 2 1 23 17 2 17
1984 100 325 0.265 86 18
(6위)
2 2 21 38 23
(5위)
34
1985 105 384 0.255 98 17 0 9 40 57
(10위)
13 51
1986 78 274 0.248 68 7 3 0 25 39 10 44
1987 104 382 0.243 93 12 0 1 41 52 22
(5위)
59
1988 108 397 0.262 104 20
(5위)
1 6 40 63
(5위)
25
(3위)
51
1989 98 309 0.226 8 6 3 1 25 30 16 49
1990 112 380 0.266 101 11 1 4 30 47 14 50
1991 126 430 0.226 97 9 0 1 30 53 50
(2위)
47
1992 84 240 0.267 64 6 1 1 17 28 8 27
통산(11시즌) 1046 3457 0.248 859 116 13 27 306 434 189 443

3. 지도자 시절

3.1. OB / 두산 베어스 시절

199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앞서 얘기했듯 은퇴 뒤에도 코치로서 OB/두산 프랜차이즈를 지켰다. 1997 시즌 후 해임되는 흑역사가 있었지만, 2000년에 베어스로 돌아와서 수비코치, 작전코치 등을 거쳐 김경문 감독이 감독직을 시작한 2004년부터 수석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오오오. 진정한 철밥통(?) 그런데 모 팀의 무능한 철밥통으로 굳어진 코치들과는 달리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현재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산의 현재 팀 컬러인 발야구물 샐틈없는 수비의 기초는 바로 김광수 코치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3루 코치박스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또한 선수들과 친화력이 상당히 좋은 코치이다.[4] 그리고 은퇴 이후 자신의 모교인 선린인터넷고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때 인연으로 만난 내야수 손시헌은 김광수 코치의 도움으로 동의대학교 입학과 두산으로 입단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

하지만 장난치는 모습을 보이는것에는 대단히 엄격한 편이라 KIA 외야수 이용규가 두산 덕아웃에서 배트 가져가는 장난을 쳤을때 불러세워서는 대로일갈을 해버렸다. 이때 이용규의 얼어붙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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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예의바른 주요단신 자세한 내막은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주요단신은 2013 시즌 끝나고 FA를 통해, 김광수 코치는 김성근 감독의 요청으로 각각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3.1.1. 2011년

임태훈금지어급 스캔들로 팀 분위기가 급 다운되어 어수선했던 2011년 6월 13일에 김경문 감독이 자진 사퇴함에 따라 두산 베어스의 감독대행이 되었다. 일단 급하게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지만 팀을 잘 추스르고 제 궤도에 올려 놓아서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기 폭풍같은 연패 때문에 까이고 있는데, 선수기용에 있어서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나 수비나 주루 쪽이 좋은 선수를 우선으로 기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그것도 좋긴 하지만 타격이 좋은 선수를 수비나 주루가 안 좋다고 뒷전으로 돌리고 수비와 주루에만 집착한다고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두산 팬들은 아직 김광수는 감독감이 아니다. 라고 확신하는 듯. 게다가 부진했던 타 투수들을 대신해 1군에서 조금씩 각성 중이던 노경은불펜에서 너무 굴린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해 노경은은 44경기에 등판하여 데뷔 후 1군 경기를 많이 소화했지만, 9월 중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검사한 결과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되어 재활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KILL라인 시절부터 혹사를 당했던 정재훈 역시 이 때도 계속 어깨 피로가 누적되어서 후에 문제가 터졌다는 추측이 대세다. 자연스런 노쇠화라 생각한 팬들도 있었지만 2015년 롯데 2군에서 몸을 만들고 와서 2016년에 부활하면서 혹사설이 정설.

8월 10일 경기에서는 의미없는 김현수 대타 작전으로 대타를 낸 자신이 오히려 뻘줌한 상황을 연출해 내서 뜬금없는 예능감을 뽐냈다. 야구 팬들 모두 어이없어하는 분위기...

어쨌거나 두산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1년을 5위로 마감하며 PS 진출에 실패했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것인 만큼 막장가도를 달리던 팀을 수습했다는 공 정도는 있을 듯.

어쨌든 새 시즌을 맞이하여 두산 베어스의 차기 감독으로도 손색없을 정도였으나 후반기에 보여 준 부정적인 모습, 그리고 팀을 일신해 버리겠다는 프런트의 의지가 겹쳐 재계약은 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김인식 - 김경문으로 이어지는 두산 감독 라인에서의 참모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

3.2. 고양 원더스 시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1년 시즌을 마치고 두산 코치직을 전격 사퇴했다. 두산 베어스의 신임 감독으로 김진욱 불펜코치가 선임됨에 따라 지난 2000년 이후 12년 만에 친정팀을 떠나며 그의 행보가 어디로 가나 주목받았다.

2011년 12월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3년간 팀을 이끌었다.

2014년 고양 원더스가 해체됨으로써 원더스의 수많은 선수, 코치진들이 무직 신세가 되어버렸고 김광수 코치 역시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버렸다. 허나 김광수 코치의 능력이 야구계에 널리 알려진 만큼 빠른 시간내에 프로야구에 복귀할것으로 보이며 의 감독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상 프로 지도자 경력이 많은 김광수 코치가 2015 시즌에 감독으로 영입되어 정식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3.3. 한화 이글스 시절

3.3.1. 2015년

2014년 10월 27일,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 감독 취임 발표 이틀 후,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한화에서는 수석코치와 3루 주루코치를 겸하고 있는데, 2015년 시즌 후 팬들의 평은 상당히 엇갈린다. 후반기 5위 싸움을 하게 되면서 홈베이스 싸움을 종종 벌이게 되는데, 결정적인 주루 미스로 끝내기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몇 번 나왔으며 특히 10월 1일 넥센전에서 내야 땅볼에 2루주자에게 풍차돌리기를 시전하면서 평가를 많이 깎아먹었지만 시즌 전체적인 총평은 KBO 리그 기준으로는 평균 이상의 주루코치라는 평이다. 특히 국가대표팀 주루코치로 참여해 괜찮은 실적을 올린 데다가, 2016 시즌에 김광수 코치 대신 3루에 서게 된 바바 토시후미 코치가 최악의 실적을 보여주면서 오죽했으면 이종범, 김민재보다 못하다는 소릴 들었다 김광수 코치가 재평가를 받았다.

시즌이 끝나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의 주루코치로 선임되어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3.3.2. 2016년

한화 이글스의 허수아비 감독대행 김성근의 아바타로 밝혀져

2016년부터는 기존 3루 주루코치 자리를 일본인 코치 바바 토사후미에게 역임하고 김성근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 역할만 하게 된다.

2016년 5월 5일, 김성근 감독이 허리디스크로 수술대에 오름에 따라 감독 대행을 맡아 풀뿌리까지 뽑혀버린 한화 이글스를 이끌게 된다. 김광수 본인에게는 지난 2011년 두산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두 번째로 맡는 감독대행.[5] 몇 경기도 치르지 않았지만 한화 팬들은 김성근이 여전히 운영하는 듯 한 운영을 한다는 평을 내리며, 김성근과 같이 한화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아우성이다.

감독 대행을 맡아도 여전히 김성근과 쌍벽을 이루는 백정짓을 저지르며 욕을 먹던 중, 5월 12일 뜬금없이 선발요원인 알렉스 마에스트리를 중간계투로 투입했다. 5월 7일 kt전 4일 휴식후 나왔기는 하지만 재작년 128경기 체제에서 9개구단 체제 한구단이 가끔 3연전 휴식을 취하는 체제라면 모를까 [6] 최근 야구가 144경기 체제임을 감안하면 이것은 명백한 백정 짓이다. 거기다가 결과도 좋지 못하며 한화NC에 1:12의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왜 두산이 이 백정 사람을 정식감독으로 임명하지 않고 김진욱을 감독으로 임명했는지 답이 나온다.

그의 운용 방법이 감독대행 이전의 김성근 감독과 여전히 같은 방법이라, 전화를 통해 원격으로 김성근 감독의 지시를 받아 이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리모콘 물론 실제로는 경기장 내에 전자기기가 반입 금지되어 있으므로 그런 방식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사실 위에 나오는 김진욱 드립이 웃기는 것이 정작 두산 감독대행 시절에 김광수 코치는 노경은 혹사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백정질을 하지는 않았다.[7] 정민태 투수코치가 넥센과 롯데에서 혹사로 욕을 좀 더 많이 먹었지만 역시 이런 짓을 해본 적은 없는 인물인 것은 마찬가지. 백번 양보해서 퀵후크라면 몰라도 로저스 땡겨쓰기(!), 심수창 마구잡이 기용, 마에스트리 불펜행 후 강판 등 일련의 굵직한 사건들을 감독대행이 전권을 가지고 저질렀다고 보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결국 팬들은 리모콘 드립을 치거나 아빠 낙하산 타고 들어온 모 코치가 실권을 쥐고 있다는 추측을 했고 관련 기사가 뜨면서 후자보다는 전자에 힘이 실리는 상황.

물론 정민태 투수코치도 마찬가지이지만 본인의 야구관과 별도로 현 상황에서 자기 소신을 전혀 펼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기에 한화 팬들은 정민태와 손잡고 나가라고 욕하고 있다. 차라리 정민태 코치의 경우 넥센과 롯데를 말아먹고 실업자 신세인 것을 김성근 감독이 구제해준 것이나 다름없고 나이도 어리기에 약간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김 감독대행의 경우 잔뼈가 굵은 야구인이라는 점에서 현 상황에 대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김광수 대행은 고양 원더스부터 함께 했다는 점에서 데럴 마데이의 혹사부터 방관해온 것이 사실이기에 좋지 않게 보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3.3.3. 2017년

시즌 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의 주루코치로 발탁되었다.

5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사의를 표명한 후 감독대행을 맡게 될 예정이었으나, 김광수 코치 역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 기타

프로야구 원년부터 OB 베어스에서 뛰었고 베어스 프랜차이즈를 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었던[8] 사실상의 베어스의 정신적 지주였다. 고양 원더스를 거쳐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별명은 지붕뚫고 하이킥의 등장인물의 별명을 본따 쾅수코치라고 불렸다.[9]

포지션은 2루수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2루수로 김성래, 김인식등과 경쟁관계였다. 수비형 2루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칭송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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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성근 감독의 허리 수술로 잠시 감독대행을 맡았다.[2] 82년 우승은 우승반지가 생기기전이지만 훗날 2011년에 베어스 구단에서 직접 우승멤버들을 초청해서 우승반지 수여식을 가졌으므로 우승반지라고 해도 무방하다[3] 3000타석으로 좁히면 장효조가 1위[4]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112300054_0.jpg WBSC 프리미어 12 우승 이후 선수들끼리 셀카를 찍을 때 친히 같이 찍으셨다. 그리고 비범한 피스 손동작(...) 래퍼 쾅수![5] 다만 이번에는 김성근 감독이 지난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처럼 사퇴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실적에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6] 2013시즌 가끔 마무리 알바 나왔던 양현종이 전반기 완벽함+후반기 부상+부진으로 완전히 시즌을 말아먹었던 것을 되돌아보자.[7] 그리고 김 감독대행의 단점으로 꼽히던 수비적 야구는 김진욱 감독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성향을 보여줬다. 김진욱 감독에 대한 호평은 어디까지나 투수육성에서 나온다.[8] 1997시즌후 해임, 1998, 1999년은 KBS에서 해설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2000년에 다시 복직했다.[9] 단 감독대행을 맡기 전까지만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