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6 21:50:33

MBC 청룡

1. MBC 청룡 프로야구단
1.1. 소개1.2. 홈구장1.3. 역대 엠블럼1.4. 창단에서 매각까지1.5. 역대 프런트
1.5.1. 구단 담당이사1.5.2. 사장1.5.3. 단장
1.6. 유명 선수들1.7. 기타1.8. 유니폼1.9. 역대 성적
2. 1번 항목을 소재로 한 노래

1. MBC 청룡 프로야구단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gif[1]
MBC 청룡
MBC Chungyong / MBC Blue Dragons
창단년도 1982년 1월 26일[2]
매각년도 1990년 1월 18일[3]
모기업 문화방송
연고지 서울특별시(1982~1989)[4]
홈구장 동대문야구장(1982년)
잠실 야구장(1982년~1989년)[5]
구단명 변천사 MBC 청룡(1982~1989)
LG 트윈스(1990~ )

1.1. 소개

MBC 청룡 - LG 트윈스 프랜차이즈 역사
한국프로야구 출범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럭키금성그룹 인수)

1982년 서울을 연고로 하여 창단된 한국프로야구 구단. LG 트윈스의 전신이며, 모기업은 MBC로 방송사 주도의 프로구단이라는 의의가 있다.[6] 또한 한국프로야구 출범을 주도한 팀이기도 하다.[7] 팀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리그 창설 당시부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창단한 팀이다. 축구와 농구, 배구는 리그 창설시에는 서울 연고팀이 없었고 이후 창단하거나 타 지역에서 이전시켰다.

1.2. 홈구장

창단 초기에는 동대문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다가,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게되었다. 정확히는 세계선수권대회때문에 임시 홈구장을 사용한것. 이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도원야구장을 쓰지 못하고 춘천 등에서 경기한것과 같은 이유이다. 당시 세계선수권대회의 경기장은 잠실, 동대문, 숭의야구장이었다.

1.3. 역대 엠블럼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gif 파일:MBC_청룡_구_엠블럼_2기.png
1982~1985 1986~1989

맨 위 항목의 엠블럼은 1982년 출범당시 디자인이며 1986년에 청룡 문양 형태의 엠블렘으로 변경되었다. 폰트 역시 1986년 MBC CI 변경에 맞춰 이른바 문화방송체로 변경되었으며 이 서체는 당시 유니폼의 선수들 이름에까지 사용된다.[8]

1.4. 창단에서 매각까지

초대 감독은 백인천으로, 프로야구 원년에 한국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감독 겸 선수'로 활동했다.[9] 또한 백인천은 1989시즌이 끝난 후 다시 MBC의 감독으로 선출되어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 즉 MBC 청룡의 처음과 마지막 감독이라는 소리.[10]

프로야구 원년에는 화려한 멤버를 앞세운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프로야구 공식 개막전이 MBC 청룡 대 삼성 라이온즈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팀이 시즌 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기에 그런 대진을 짠 것. 이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이 나오면서 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이 해 청룡은 우승에 실패한다.

1983년엔 김동엽 감독을 사령탑에 앉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나, 선수들이 리그 우승 보너스 문제로 불만을 가져 거의 태업하다시피 하며 패퇴한다. 그 이후 거의 리그의 하위권을 도맡아 했다.

1985년 법인화 후 1986년에 신인왕 김건우와 구원왕 김용수의 황금계투를 앞세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뻔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엔 김건우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하면서 팀은 에이스를 잃게 되고 1988년과 1989년까지 암흑기를 맞는다. 결국 지속되는 성적부진으로 홍보효과가 떨어지면서[11] 매각순위 1순위가 되었고 결국 럭키금성 그룹에 매각된다. 이 과정에서 럭키금성 그룹은 야구단 운영권만 넘겨받았고 MBC 청룡은 존속법인으로 1993년 6월까지 유지되디가 MBC 아카데미에 흡수되었다.

수도에 있는 야구구단+경기호황시대에 맞춰 급격한 수익을 얻고 있던 방송국이라는 메리트가 있었지만 실상은 운영이 개판 of 개판이었다. 우선 KBO 규약에 프로야구팀은 '자본금 2억 이상의 상법상의 주식회사'여야 한다는 규약이 있었는데, 다른 5개 팀은 이미 창단년도인 1982년에 맞춰 주식회사로 전환시킨 상태였지만 MBC 혼자만 1985년까지 밍기적 대다 겨우 독립법인화 되었다.

애초에 MBC 청룡은 3S정책으로 대표되는 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방송사가 참가해야 프로야구가 활성화된다는 이해관계를 통해 창단된 팀[12]이라는 한계가 있었던 데다가 MBC는 공식적으로 딱히 누구의 소유권이 있는 기업[13]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독은 '사장'이 모셔온 전문가라는 인식도 못 받았던 데다 그냥 '특정 부서의 長' 정도로만 여겨지는 바람에[14] 야구 좀 본다 싶은 사람들이 개나소나 다 운영에 대해 태클을 걸었다고 한다.

일례로 백인천 감독은 윗선에 전지훈련 때 쓸 배트와 공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공은 일단 1다스만 쓰고 있어라. 모자라면 그때그때 보급해 주겠다. 배트도 한두 자루 서로 돌려가며 쓰면 될 것 아니냐.' 라는, 지금 와서 보면 웃음도 안나오는 개소리를 답변이라고 내놓았다. 이런 집단에서 야구단을 제대로 운영할 리가 있나.... 당시에도 고교야구와 중학교 야구에서도 개인배트를 썼었고 훈련할 때 공 몇 박스씩 쌓아두고 훈련했다.

거기다 선수단의 파워도 다른 구단에 비해 센 편이었는데, 선수단의 항의에 의해 감독이 잘려나간 게 3번이었다. 좋은 성적을 냈던 김동엽은 1983년엔 이해창의 내부 고발, 1987년엔 선수단 투표로 인해 해고당했고, 1989년도 감독인 배성서[15]정삼흠 항명사건 등 불화 끝에 퇴진했다.

연고지, 홈구장, 기존 MBC 청룡의 팬과 MBC 청룡이 점유하고 있던 모든 권리가 인수 과정에서 그대로 LG 트윈스로 이어졌다. 선수들의 기록도 MBC-LG를 이어서 기록한다.

1.5. 역대 프런트

1.5.1. 구단 담당이사

  • 김기주 (1982~1985)

1.5.2. 사장

1985년 법인화 후 사장제가 신설되었다.
  • 이수정 (1985~1987)
  • 이은명 (1987~1988) - 이후 대전MBC 사장 역임
  • 양성연 (1988)
  • 이명석 (1988~1989) - 이후 대구MBC 사장 역임
  • 이건영 (1989~1990) - LG 트윈스로 팀명이 바뀐 후 구단 고문으로 있다가 MBC로 복귀해 청주MBC 사장 역임

1.5.3. 단장

  • 조광식 (1982/1989~1990)
  • 고처황 (1982~1983)
  • 이증 (1983~1988) - 이후 울산MBC 사장 역임.
  • 심규성 단장대행 (1988~1989) - 이후 울산MBC 사장 역임.

1.6. 유명 선수들

백인천, 이종도, 하기룡, 김재박, 이해창, 이광은, 김용수, 정삼흠, 김태원, 김건우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활약하였으며, 1990년에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되고, LG 트윈스로 이어지게 된다.
파일:MBCbluedragon41.png
MBC 청룡
No.41 김용수
파일:attachment/백인천/백인천4할.png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31008233549123.jpg
MBC 청룡
No.2 백인천 No.5 이종도
파일:external/static.inven.co.kr/94490842.png 파일:정삼흠.jpg
MBC 청룡
No.34 하기룡 No.1 정삼흠
파일:external/blog.koreadaily.com/28063624_2.jpg 파일:attachment/김건우/김건우1.png
MBC 청룡
No.1 이해창 No.28 김건우
파일:김상훈 김재박 이광은.jpg
MBC 청룡
No.9 김상훈 No.7 김재박 No.33 이광은
파일:attachment/2005021412105111001.jpg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151605344_ddddd.jpg
MBC 청룡
No.27/42 심재원 No.20 박흥식
파일:MBC 청룡 이길환.jpg
No.11 이길환
No.24 김기범 No.32 신언호
No.35 김태원
파일:external/www.interview365.com/20087239583265361.jpg
No.38 김동엽

1.7. 기타

파일:청룡 트윈스.png
트윈스의 시작, 청룡
  • 원래 이 팀의 이름은 MBC 드래곤즈가 될 뻔했다. 이유인즉슨 창단 직전에 팀명 공모를 했는데 '드래곤즈'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그러나 당시 정서상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웃나라 리그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팀이 있다는 이유로 드래곤즈 대신 '청룡'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16] 더불어 이 당시 MBC의 사옥이 있던 중구 정동[17] 이 과거부터 '용마루'라고 불렸다는 점 때문에 팀 이름으로 '청룡'이 선정됐다고 한다. 그에 대한 배경 설명.
  • 팀 자체의 승률을 떠나서 드래곤 간지 때문에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그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팀이기도 했다. 나일론으로 만든 싸구려 청룡 윈드 브레이커를 국딩들한테 자주 무료배포했던 이유도 있다.
  • 당연하지만 문화방송에서는 MBC 청룡 경기를 무지하게 자주 중계해주었다. 그래서 MBC는 KBS에 비해 1980년대 프로야구 중계 영상자료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 덕에 자회사인 엠스플에서 1980년대 프로야구 프로그램을 때만 나면 잘 틀어준다.
  • MBC가 중계할 때는 'MBC 청룡'이라는 풀네임을 자유롭게 언급했지만 KBS가 중계할 때에는 그냥 '서울 청룡'이라는 식으로 명명했다.[18] 공통적인 것은 '청룡'이라는 명칭이 강조됐다는 점. 더불어 연고지인 서울을 적극적으로 많이 내세웠는데, 원정 유니폼 가슴에 '서울'을 한글과 영문으로 박았는가 하면, MBC의 M과 서울의 S를 겹친 캡로고를 썼다.
  • 역대 한국 프로야구 팀명 중에서 유일하게 팀명(스폰서명 제외)이 영어가 아닌 한문인 팀이기도 하다. 다만 당대에는 프로야구를 제외하면 딱히 특이한 사항은 아니었다. 민속씨름의 경우에는 1990년대 말 이전까지는 팀 이름에 영어나 외래어를 일절 쓰지 않았고, 프로축구의 경우에는 팀 이름에 영어나 외래어를 쓴 팀과 순우리말, 한문을 쓴 팀이 혼재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양 원비, 현대 코끼리, 삼익가구 사자, 부산조흥상호신용금고 호랑이, 국민은행 까치, 현대 호랑이, 유공 코끼리, 럭키금성 황소, 일화 천마 등이 있었다. 이후로는 민속씨름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프로축구는 지역명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용례가 되고, 팀 이름에 FCXX로 짓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줄어들었지만 WKBL의 춘천 우리은행 한새와 V리그의 서울 우리카드 한새가 있었다. 이후 두 팀 모두 위비로 팀명이 바뀌었다.
  • 자사 야구팀이라 그런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온 야구광 캐릭터가 응원하는 팀으로도 나온적 있다. 심지어 MBC 내부의 직장인 야구단 명칭도 MBC 청룡이라고 한다.
  • 1982년 4월 15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1경기 7실책을 저질러 KBO 흑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었다. 이 흑역사는 32년 후 SK 와이번스에 의해 희석된다.
  • LG 트윈스구단은 MBC 청룡 관련 이벤트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개별적으로 청룡 유니폼[19]을 구입하여 직관하러 오는 팬이 아직도 상당수 있으며, MBC 청룡의 흔적은 사라진 지 28년이 지난 2018년 현재도 잠실야구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983년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 1983년 한국시리즈에 나갔는데 이 한국시리즈가 MBC/LG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다.
  • 서울특별시라는 최대 규모의 연고지와 서울 출신의 많은 스타들을 보유했으나, LG로 바뀌는 1990년까지 포스트시즌은 1983년 단 1회에 그쳤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무 4패로 패했기 때문에 MBC-LG 프랜차이즈의 한국시리즈 첫 승은 1990년 삼성전 1차전이다.
  • KBO 사상 최초로 몰수패를 당한 구단이다.
  • KBO 사상 최초로 '부정선수' 투입 사례를 만들었던 구단이기도 하다. 1983년 5월 17일 대 롯데전 경기의 9회말 2아웃 상태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유승안 선수 대신 조호 선수를 대주자로 투입시켰고, 와중에 다음 타자였던 김정수의 안타로 진루까지 한 상황에서 조호 선수가 25명 출전선수 명단에 없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부정선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렇다 할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심판은 그냥 쿨하게 아웃을 선언했다. 9회말 2아웃이었으므로 경기는 그 자리에서 끝나버렸다.
  • 원년 개막전과는 인연이 깊던 팀으로 만루홈런 친 타자(이종도), 만루홈런 맞았던 투수(이선희), 최초로 삼진당한 타자(천보성)까지 전부 MBC/LG를 거쳐갔다.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기업간의 라이벌 의식으로 트레이드가 2000년대까지 거의 없었지만 MBC 시절에는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 2018년 현재까지 프로야구 팀에서 둘밖에 없는 단수팀이다. 2014년까지는 유일했으나 2015년에 kt wiz가 창단하였다.

1.8. 유니폼

유니폼 변천사는 여기로.

1.9.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MBC 청룡
19823위/6팀[20] 3위 80463400.575
19831위/6팀[21] 준우승 100554320.561
19844위/6팀[22] 4위 100514810.515
19855위/6팀[23] 5위 110446510.404
19863위/7팀[24] 3위 108594180.590
19875위/7팀[25] 5위 108505170.495
19886위/7팀[26] 6위 108406440.385
19896위/7팀 6위 120496740.423
LG 트윈스
1990 1위/7팀 우승 120714900.592
1991 6위/8팀6위126537210.425
1992 7위/8팀7위126537030.433
1993 4위/8팀 4위126665730.536
19941위/8팀 우승 126814500.643
19952위/8팀3위126744840.603
19967위/8팀7위126507150.417
19972위/8팀 준우승 126735120.587
19983위/8팀 준우승 126636210.504
1999매3위/4팀[27] 3위132617010.466
20001위/4팀[28]4위133676330.515
20016위/8팀6위133586780.464
20024위/8팀 준우승 133666160.520
20036위/8팀6위133607120.458
20046위/8팀6위133597040.457
20056위/8팀6위126547110.432
20068위/8팀8위126477540.385
20075위/8팀5위126586260.483
20088위/8팀8위126468000.365
20097위/8팀7위133547540.406
20106위/8팀6위133577150.429
20116위/8팀6위133597220.450
20127위/8팀7위133577240.442
20132위/9팀3위128745400.578
20144위/9팀3위128626420.492
20159위/10팀9위144647820.451
20164위/10팀3위144717120.500
20176위/10팀6위144697230.489
20188위/10팀8위144687510.476
2019*위/10팀 *위
2020*위/10팀 *위
KBO 통산 36시즌 V2 4483 2121 2257 105 0.484

2. 1번 항목을 소재로 한 노래

락밴드 타카피의 경쾌한 펑크 록이다. 노래 가사에 MBC 청룡의 OB(김재박, 이종도, 하기룡, 유승안[29])가 언급된다.


MBC 청룡은 어디로
우승 한번 못하고 어디로 사라졌는가
딱 달라 붙는 파란 유니폼
우리 청룡을 찾아주세요

김재박은 정말 빨랐지 이종도는 정말 잘 쳤어
끈질긴 투지와 근성으로 무장한 우린 MBC 청룡 (가자~)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누구 본 사람 여기 있나요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기룡은 정말 잘 던져 (잘 던져~)
유승안이는 정말 잘 받지 (정말로 잘 받지~)
끈질긴 투지와 근성으로 무장한 우린 MBC 청룡 (가자~)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누구 본 사람 여기 있나요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린 지금 어디로 가나

어쩐지 이 노래는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주제가 상통하는 듯하다.[30]


[1]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사용한 로고.[2] 법인설립은 1985년 8월에 이뤄졌다.[3] 단 야구단만 매각되었고, 법인은 존속하여, 1991년 6월에 MBC 아카데미로 사명을 바꾸었다. MBC 아카데미 홈페이지에는, 자체 역사를 1985년 MBC 청룡의 법인설립을 시작으로 잡고 있다.[4] OB 베어스보다도 먼저 서울에 터를 잡은 최초의 서울 연고 구단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LG 트윈스 팬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5] 세계야구선수권대회로 인해 1982 시즌 초에는 사용하지 못하고 1982 시즌 말미부터 사용했다. 이후 LG 트윈스로 이어진다.[6] 이와 비슷한 구단으로 실업-프로농구의 SBS 스타즈(현 안양 KGC인삼공사)가 있었고, MBC가 게임채널을 운영하며 e스포츠에 발을 들여놓을 때 MBC GAME HERO라는 구단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 2010년대에 내팽겨쳤지만.[7] 네이버 스포츠 박동희 칼럼 매거진S 하일성-허구연 대담 "마이크가 나를 불렀다." #[8] 아래 유명선수들 항목의 김용수 사진에 MBC 청룡 시절 유니폼 뒷모습을 볼 수 있다.[9] 코치 겸 선수는 몇 명 더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선수로 출장한 것은 몇 타석 안 돼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 백인천은 삼미로 이적했을 때 코치 겸 선수였다.[10] 거기에 더해 백인천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무이한 4할 타자이기도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초대 타율왕.[11] 경영난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당시 MBC 매출이 서울올림픽과 경기호황에 따라 매년 급속히 늘어 수백억 원의 흑자를 내고 있던 상황이었다.(애시당초 당시엔 광고판매율이 거의 100%에 달하던 상황이었다.) 1989년에 벌어졌다던 MBC의 총파업도 경영난 때문이 아닌, 오히려 민주화 이후 공정언론보도를 쟁취하기 위한 파업이었다.[12] 한국프로농구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생긴 팀이 있었다. 바로 안양 SBS 스타즈. 다만 SBS는 이미 실업농구 시절부터 팀을 운영했다는 점에서 MBC 청룡과 다르다.[13] 당시의 뉴스 프로그램들을 보면 믿겨지지 않겠지만 일단 당시 MBC가 공식적으로 KBS(88년 이후에는 방송문화진흥원)가 지분의 다수를 차지한 (준)공영방송이었기 때문. 딱히 주인이 없다는 점은 후에 창단된 kt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전문가나 팬들이 불안해하기도 했다.[14] 즉, 높으신 분들 시선으로 봤을 땐 인사부장, 운영부장, 영업부장 정도로만 봤다고 생각하면 쉽다.[15] 빙그레 이글스 초대 감독이었다.[16] 실제로 그런 인연으로, 1982년 MBC청룡 창단시절부터 주니치 드래곤즈는 자매결연 구단이었으며, 이후 이 팀의 후신인 LG 트윈스와도 자매결연 구단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17] 1970년대 경향신문MBC가 한 식구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쓰던 사옥이다.[18] SBS는 MBC 청룡이 LG 트윈스로 바뀐 이후에 생겼기에(1991년 개국) 청룡 경기를 단 한 번도 중계한 적이 없다.[19] 1986-89 유니폼이 대부분이다.[20] 전기 3위, 후기 3위[21] 전기 3위, 후기 1위[22] 전기 3위, 후기 3위[23] 전기 5위, 후기 6위[24] 전기 4위, 후기 3위[25] 전기 5위, 후기 4위[26] 전기 7위, 후기 6위[27] 전체 6위[28] 전체 4위[29] 유승안은 MBC 청룡의 창단 멤버긴 하지만 정작 MBC에서 뛴 건 2시즌뿐이었고 보통은 빙그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평가받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에서 언급되는 건 이후 MBC의 역사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만한 포수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심재원은 이미 롯데에서 우승을 맛본 선수였고, 김동수가 혜성같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MBC 간판이 내려간 뒤였다.[30] 삼미는 성적이 형편없었고, 그것을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고,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는다'라며 '느림의 미학' 비슷하게 서술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