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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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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시즌 일람
프로야구 출범 1982년 시즌 1983년 시즌
기간 1982년 3월 27일 ~ 1982년 10월 12일
참가팀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이상 6개팀.

1. 개요
1.1.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원년 개막전
2. 2차지명 드래프트3. 신인 드래프트4. 정규시즌 최종순위5.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5.1. 정규 시즌 기록 1위
5.1.1. 타자, 공격5.1.2. 투수, 수비
6. 포스트시즌7. 다른 시즌 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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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야구선수권대회 개막식

1982년에 열린 프로야구 원년 시즌.

팀당 80경기씩 240경기가 열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와 함께 시작된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첫 선발은 이길환, 첫 타자는 천보성이었으며, 제1구를 친 것이 내야 플라이로 아웃된 것이 역사적인 첫 개막전의 첫 승부였다. 첫 안타와 타점은 삼성의 이만수가, 첫 홈런도 이만수가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MBC의 이종도가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MBC가 첫 승을 기록했고[1] 첫 승리투수는 유종겸이었다.

원년답게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는데 OB의 박철순이 22연승을 거두고, MBC의 백인천이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해태의 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3할 타율에 13홈런, 10승을 기록[2]하는 등의 진기록이 세워졌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해당 문서 내용에서 보듯 국가대표 출신 한 명 없는 철저히 무명 선수들로만 구성된 약체 팀으로[3] 1982년 1할대 승률이라는 세계 야구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다.(...)

1.1.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원년 개막전

한국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1982.3.27(토) 14:30, 서울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삼성 황규봉 2 3 0 0 1 1 0 0 0 0 7
MBC 이길환 0 1 0 1 1 1 3 0 0 4 11

이날 경기는 MBC TVKBS 1TV가 동시에 생중계했다.

원년 개막전의 매치업은 당시 최고의 팜으로 불렸던 대구·경북팜의 우월함을 앞세워 당대 최고의 스타군단으로 군림하던 삼성 라이온즈와 일본에서 타격왕을 거머쥐었던 백인천 감독 겸 선수를 앞세운 서울 연고팀 MBC 청룡으로 정해졌다.

이날 경기 시구는 전술했다시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했는데 이 당시 대통령의 그라운드 입장 장면을 보면 같이 들어오는 유니폼 차림의 선수들이 어딘가 모르게 매우 어색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진짜 선수가 아니라 대통령경호실 소속 경호관이었다.[4]

이 경기는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의 압도적 우세였다. 1회초 함학수의 타구를 MBC 1루수 김용윤이 놓치면서 2사 2루가 됐고 다음 타자 이만수가 좌익선상으로 흐르는 2루타를 터뜨리며 선취 득점에 성공한다. 이 2루타는 KBO 리그 통산 1호 안타 겸 1호 장타 겸 1호 타점 기록이 됐고 함학수KBO 리그 통산 1호 득점자가 됐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송진호가 친 뜬공 타구를 MBC 유격수 정영기가 놓치면서 2루에 있던 이만수가 득점해 2:0으로 앞서간다.

2회에도 선두타자 김한근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정구왕이 우익수 키를 넘는 3루타를 터뜨리며 3:0이 됐고 배대웅의 후속타로 한 점을 더 달아나 4:0이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에서 함학수가 친 내야 땅볼을 MBC 2루수 조호가 악송구한 사이 배대웅이 홈으로 들어와 무려 5:0이 된다. 물론 MBC도 추격에 들어갔는데 2회말 2아웃 1, 3루 상황에서 정영기가 우전 적시타를 치며 한 점을 추격했고 4회에도 1점을 내 야금야금 추격하게 된다.

5:2 상황이 된 5회초 공격 때 선두타자로 이만수가 볼카운트 3B-1S 상황에서 MBC 투수 유종겸의 몸쪽 높은 볼을 그대로 당겨쳐 서울운동장 야구장 좌측 담장을 넘는 솔로 홈런을 터뜨린다.[5] 이로써 이만수KBO 리그 통산 1호 안타, 1호 장타(2루타), 1호 홈런, 1호 타점을 한 경기에 기록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보유자가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MBC가 맹렬히 추격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5회에 1점을 더 낸 MBC는 6회말 선두타자 백인천이 초구를 받아쳐 중월 담장을 넘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3점차로 바짝 뒤를 쫓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7회. 2아웃 후 송영운이 출루한 후 김용달이 안타를 터뜨리며 2아웃 1, 3루 상황이 됐다. 타석에 들어선 이는 실업야구의 강타자였던 유승안. 유승안황규봉의 초구를 그대로 밀어쳐 우측 담장을 넘는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렸다. 7회 7:7 동률을 이룬 양 팀은 8회와 9회를 득점 없이 보내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연장 10회말 공격에 들어선 MBC는 선두타자 김인식몸에 맞는 볼을 맞고 나가면서 역전주자를 내게 된다. 이어진 대타 김봉기는 삼진을 당했지만 다음 타자 김용달이 좌전안타를 쳤는데 이때 김인식이 1루에서 3루까지 전력질주하는 공격적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다. 상황은 1아웃 2, 3루. 타석에는 7회 동점 쓰리런의 주인공 유승안. 외야 플라이만 쳐도 경기는 MBC가 이기기 때문에 삼성의 이선희-이만수 배터리는 유승안을 거르고 만루를 채운 뒤 다음 타자와 승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삼성 배터리는 작전대로 3볼까지 스트레이트로 볼을 뺐는데...

난데없이 유승안이 네 번째 공을 쳐버리더니 이 볼이 투수 앞 땅볼이 됐다. 치는 순간 홈으로 들어온 김인식은 태그아웃(...). 김인식은 홈에 들어오는 순간 손가락질을 하며 "아! 왜 친거야 진짜"라고 푸념을 하며 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말하길 유승안이 그 상황에서 볼을 쳐버린 것은 개막전 MVP에게 주어지는 경품이었던 오토바이에 눈이 멀어서 그랬다고(...). 그래서 상황은 2아웃 1, 3루. 다음 타자는 6회 솔로 홈런을 친 백인천. 삼성 배터리는 백인천도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고의사구로 그를 거르고 다음 타자인 이종도와 승부하기로 했다.

2아웃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종도는 2B-0S 상황에서 한가운데에서 몸쪽으로 살짝 빠진 공을 그대로 당겨쳐 좌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한다. 이 만루홈런에 힘입어 MBC가 11:7로 승리를 거두게 됐고 승장이 된 백인천 감독은 언론 인터뷰 때 일본에서 당했던 서러움이 폭발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승부를 바탕으로 한국프로야구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2. 2차지명 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82년/드래프트
프로야구 출범이 결정되고 개막을 앞둔 1982년 초에 대다수의 팀이 선수 영입을 마쳤으나, 팀간 전력 불균등 등의 이유로 1982년 2월 13일연고지에 관계 없는 2차 지명을 실시했다. OB 베어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5개팀만 지명했다.

3. 신인 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83년/신인드래프트

4. 정규시즌 최종순위

순위 경기수 무승부 게임차 승률
전기리그
1 OB 베어스 40 29 11 0 - 0.725
2 삼성 라이온즈 40 26 14 0 3.0 0.650
3 MBC 청룡 40 22 18 0 7.0 0.550
4 해태 타이거즈 40 20 20 0 9.0 0.500
5 롯데 자이언츠 40 13 27 0 16.0 0.325
6 삼미 슈퍼스타즈 40 10 30 0 19.0 0.250
후기리그
1 삼성 라이온즈 40 28 12 0 - 0.700
2 OB 베어스 40 27 13 0 1.0 0.675
3 MBC 청룡 40 24 16 0 4.0 0.600
4 해태 타이거즈 40 18 22 0 10.0 0.450
4 롯데 자이언츠 40 18 22 0 10.0 0.450
6 삼미 슈퍼스타즈 40 5 35 0 23.0 0.125

원년 KS에는 비화 아닌 비화가 있다. 아래는 유명 야구기자였던 고 이종남 기자의 저서에 실린 내용이다.

전기리그 우승팀 OB 베어스는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 9월 29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와의 경기에 박철순을 내보냈고,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무승부를 거두면 삼성의 남은 1경기 여부에 따라 결정) 후기리그 우승과 동시에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우승은 전, 후기 통합우승으로 OB의 몫이었다. 즉 OB는 이기기만 하면 1985년 통합우승을 이룬 삼성보다 먼저 통합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프로 첫 해부터 최대의 하이라이트인 한국 시리즈가 사라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껄끄럽게 생각하던 KBO의 난데없는 개입으로 이날 경기는 연장 12회 접전 끝에 2:1로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1:1로 맞서던 이날 경기에서 9회말이 종료된 시간은 밤 10시 30분으로 당시 규정상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삼성이 MBC를 이겨서 동률이 되지 않는한 OB의 전, 후기 통합우승이 결정될 상황이었지만 당시 경기 감독관으로 현장에 있던 이호헌 KBO 사무차장이 "밤 10시 30분 이후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은 서울에만 국한되는 로컬 룰" 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권해석을 내세우며 탈법적(?)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그 결과 삼성이 이김으로써 최소 동률 1위를 확보해 두었고 그리고 마지막 MBC와의 경기도 이기면서 후기리그 단독 우승은 삼성이 차지했다.

다만 이는 이종남 기자의 착각임이 확실한게, 참고기사1참고기사2 당시 기사를 보면 서울시 정책 상 10시에 진행중인 이닝까지만 조명을 허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KBO 규정 상 시간제한 없는 15이닝 무승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적용된 로컬룰이 맞다.[6]

전, 후기리그의 순위는 1,2위가 서로 뒤바뀐 것을 제외하면 변화가 없었다. 다만 특이사항이라면 그 삼미가 후기리그에서 고작 5승을 거뒀다는 점 정도.(...)

OB는 삼미에 16전 전승을 거두었다.

5.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5.1. 정규 시즌 기록 1위

이하 실제로 수상이 이루어지는 1위 타이틀은 굵게 표시한다.

5.1.1. 타자, 공격

타이틀 성명 소속팀 기록 비고
수위 타자 백인천 MBC 청룡 .412 역대 최초이자 최후 4할타율
최다 안타 백인천 MBC 청룡 103안타
홈런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22개
타점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69타점
도루 김일권 해태 타이거즈 53개
득점 김봉연
백인천
해태 타이거즈
MBC 청룡
55득점
출루율 백인천 MBC 청룡 .497
장타율 백인천 MBC 청룡 .740
사사구 정학수 롯데 자이언츠 59개 볼넷 53개, 몸에 맞는 공 6개
몸에 맞는 공 김인식 MBC 청룡 18개
피삼진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55개
병살타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13개

5.1.2. 투수, 수비

타이틀 성명 소속팀 기록 비고
다승 박철순 OB 베어스 24승
탈삼진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141K
세이브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박철순 OB 베어스 1.84
승률 박철순 OB 베어스 .857 시즌 24승 4패
이닝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232⅓이닝
경기등판 김재현
황규봉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47경기
피홈런 감사용 삼미 슈퍼스타즈 25개
피안타 김재현 삼미 슈퍼스타즈 268개
사사구 허용 인호봉 삼미 슈퍼스타즈 115개 볼넷 96개, 몸에 맞는 공 19개
패전 김재현
노상수
삼미 슈퍼스타즈
롯데 자이언츠
19패
몸에 맞는 공 허용 인호봉 삼미 슈퍼스타즈 19개
실책(야수) 유지훤 OB 베어스 25개
실책(팀)
폭투(투수) 김재현
하기룡
이광권
이상윤
삼미 슈퍼스타즈
MBC 청룡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6개

6. 포스트시즌

19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전기 1위 OB 베어스와 후기 1위 삼성 라이온즈간에 한국시리즈가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1982년 한국시리즈 문서 참조. 프로야구 원년의 패권은 OB 베어스가 잡았다. 특히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OB의 김유동이 개막전의 만루홈런을 맞은 이선희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하며[7]원년을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다.

7. 다른 시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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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이 바로 한국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개막전 굿바이 만루포.'[2] 69타점으로 타점 1위까지 먹었다(...).[3]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임호균과 김진우가 세계선수권 때문에 프로 입단이 1년 늦춰진 상태였고, 팀내 좌완투수가 없어서 계열사(삼미특수강) 직장야구팀에서 뛰던 감사용(실업팀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뿐 엄연히 전문 선수였다.)을 영입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고교 시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는 이하룡을 훈련 태도 불성실을 이유로 시즌 개막 전에 내쫓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4] 이날 시구 플레이볼 콜을 한 심판은 KBO 3대 심판위원장인 김광철 심판인데 원래는 심판번호 1번이던 김옥경 심판이 개막전 구심으로 배정된 상태였다. 김옥경 심판이 개막전 구심에서 빠진 것은 사연이 있다. 김옥경 심판은 개막전을 며칠 앞두고 지인들과 술을 먹다가 술김에 "내가 개막전 구심인데 그날 시구를 대통령이 한다"는 말을 발설했고 이것을 들은 기관원들이 김 심판을 끌고 가 심문했다는 썰이 전해진다. 지금도 대통령의 동선을 사전에 누출하는 것은 코로 설렁탕을 흡입할 일인데 서슬퍼런 당시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김옥경 심판이 빠지고 심판번호 2번이던 김광철 심판이 개막전 구심으로 마스크를 썼다고 전해진다.[5] 당시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첫 홈런을 친 이만수에게 최고급 피아노를 선물로 줬다고 한다.[6] 1982년 한국시리즈참고[7] 이 때문에 한동안 만루홈런으로 동터서 만루홈런으로 해 저물었다 란 유행어가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