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18 18:06:54

김용달

파일:/image/073/2013/01/29/2013012901001180300059751_59_20130129094913.jpg
KIA 타이거즈 타격코치 시절. 나지완에게 빠따를 때리는 타격기술을 코칭하는 모습.
이름 김용달(金龍達)
생년월일 1956년 5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의성군
학력 대구인지초-대구중앙중-대광고-중앙대
포지션 포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소속팀 한국전력 (1979~1981)
MBC 청룡 (1982~1988)
지도자 경력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1990~1999)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2000~2006)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7~2009)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2)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4)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1982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용달(MBC 청룡) 신경식(OB 베어스)
MBC 청룡-LG 트윈스 등번호 3번
프로 개막 김용달(1982~1988) 김선진(1990~1994)
KIA 타이거즈 2군 역대 감독
한대화
(2013)
김용달
(2014)
정회열
(2015~2017)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이후5. 트리비아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MBC 청룡 소속의 1루수이자 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현 KBO 육성위원.

포지션은 포수 또는 1루수. 현역 시절에는 강타자도 아니었고 교타자도 아닌 평범한 타자였다. 그래도 원년 3할은 쳤다.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김용달편

2. 선수 경력

파일:/image/382/2012/06/07/46814093.2_1_20120607071110.jpg

1979년에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들어와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프로 원년인 1982년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이때는 오로지 수비율만으로 시상할 때였다.[1]

3. 지도자 경력

3.1. LG 트윈스 1기 시절

은퇴 후, 1990년 LG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여담으로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김선진과 1루에서 포옹하는 1루코치가 바로 김용달이다.

이 시절의 업적은 이종열, 박종호의 스위치히터 전환, 김재현의 20-20달성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이병규는 1999년 시즌에 자신이 30-30을 달성하고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던건 김용달의 권유로 타격폼을 바꾸고, 배트 무게를 늘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이라는 언급을 했다.

3.2. 현대 유니콘스 시절

파일:/image/382/2012/06/07/46814098.2_2_20120607071110.jpg

그러다 199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광은이 감독이 되자 팀에서 쫓겨났고[2], 대광고 2년 선배인 김재박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의 1군 타격코치로 입단하였다.

이 시절 박재홍, 심정수, 박경완, 이숭용 등으로 이뤄진 훌륭한 타선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높은 출루율과 공을 끝까지 보는 타격이론을 앞세워 김무관, 박흥식, 황병일 등과 함께 프로야구의 4대 타격코치라 불다. 그래서 잘 나갈때는 용달매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용달차로 불린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된 후 이광환 감독이 LG의 감독에서 물러나자 2군 감독 역할[3]을 하던 김용수와 함께 LG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LG의 선택은 1군 외야수비코치였던 금지어였고...

3.3. LG 트윈스 2기 시절

파일:external/cfs9.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I0NjAzMEBmczkudGlzdG9yeS5jb206L2F0dGFjaC8yLzI0MS5qcGc%3D.jpg

2006년 시즌이 종료된 후 김재박 감독과 함께 LG의 새 감독 후보에도 올랐으나, 또 다시 김재박에게 밀려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박을 따라 LG 타격코치로 이적하였는데 이는 김시진현대 유니콘스의 차기 감독을 놓고 또 경쟁하였으나 김시진에게 또 밀려서 감독이 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쟁자였고, 본인보다 두 살 어렸던 김시진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기에 부담을 느꼈었기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더군다나 LG에서 잘린 김용달을 받아준 이가 김재박이었고.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코칭스킬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국 코치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에 맞게 잡아늘이는 코칭스킬로 선수의 특성이나 신체적 조건, 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타격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붙이며 악명이 높아졌다.

그의 타격이론은 변화구가 휘기 전에 때리는 방식. 타자의 중심을 앞에다 둔다. 이게 일반적으로는 이상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슬러거가 안 나온다.[4] 장타는 타자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겨놓고 때려야 잘 나온다. 심정수가 예외적인데, 이 선수는 일단 다른 선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인데다, OB-두산 시절부터 이미 완성형 타자였기에 넘어가자. 게다가 심정수도 바뀐 폼에 적응하다 몸이 망가졌다.

게다가 한국야구도 21세기 이후로 점차 선진화되면서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보다는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포크에 투수들의 선호도가 몰려갔는데, 이런 구종을 공략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다 놓고 때려내는 게 효율적. 즉, 타격중심을 앞에 두려하는 김용달의 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았다.[5]

원래 그 타격폼이 맞았던 선수는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선수는... 게다가 선수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자기 교수법을 강요해서 기아로 이적한 김상현이 간접적으로 디스한적도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손대도 전혀 답이 없다고 디스했던 이성열은 두산에 와서 2010년에 24홈런을 터트렸고, 넥센 히어로즈로 건너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에게도 똑같은 폼을 강요해 박병신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결국 위 3명은 모두 LG를 떠난 이후 잠재력이 폭발했다. 또한 박용택이 2009년 타격왕을 차지한 이유도 김용달의 코칭을 따르지 않고 본인 소신껏 타격을 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박병호도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코치님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타격폼 수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라며 대놓고 김용달을 디스했다.[6]

결국 LG 시절 거포 유망주들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 유망주들이 타 팀에 가서 터져버린 탓에 거품이 완전히 걷히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LG 출신 선수들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보다 전이었던 현대 시절에는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 전환 및 자신의 타격폼으로 고치기를 강요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다.

다만 김용달이 아주 무능력자는 아닌 것이, 이대형의 개선과 박종호, 이종열의 양손타자 전환 등이 그가 이룬 업적이다. 그나마도 박종호와 이종열은 90년대에 성공한 케이스이지, 07~09 시즌의 결과물은 이대형이 유일하다.

교타자들과는 궁합이 맞지만 풀스윙을 하는 장타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김용달의 문제점은 그가 양상문마냥 끝장나게 무능한 코치라서라기보다는[7], 시대의 변화에 무력한 것과 그런 타격 스타일을 선수에 상관없이 천편일률 적으로 강요하는 탓에 타자를 심하게 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퇴물

3.4.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dimg.donga.com/46215796.8.jpg

2012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에서 김용달 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한화에 오면서 최진행고동진을 관심있게 봤다고 했으며 그들을 중점적으로 손봤다고 했다.

김용달 코치를 영입한 이후 잠시 최진행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기도 했지만, 이후 장타가 사라지면서 심각하게 부진했다. 반면 고동진은 무난한 시즌을 보냈으며, 오선진의 경우 김용달의 영입과 동시기에 맞물려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한화에 와서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고작 4개월 반정도밖에 안 있었다.), 한화 타자들도 다소 애매한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다만, 한화에 있는 기간 동안 오선진을 사람으로 만들어놨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그리고 오선진은 13년 깨끗하게 망하고 군대행 2012년 시즌 후 한화 이글스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3.5. KIA 타이거즈 시절

2012년 10월 16일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KIA팬들은 안 그래도 장타 보기 힘든 김기아 타선에는 최악의 조합 아니냐며 걱정하였다. 그래도 이건열보단 낫겠지

3.5.1. 2013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용달/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2. 2014년

결국 2014 시즌부터는 1군 메인 타격코치 직무를 이명수 코치에게 넘겼고, 2군 총괄코치(2군 감독 임무 수행)를 맡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남부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등 2군 감독으로써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군 감독으로서의 능력마저 그 한대화나 김용달이나 도찐개찐.

KIA 팬들 사이에서는 무능력자 감독인 선동열은 물론이고, 역시 무능력한 코치들인 한대화, 김정수, 백인호, 이명수와 더불어 하루빨리 잘리길 고대했다. 마침내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고, 팬들의 바람대로 시즌 후 2군 총괄직에서 사퇴했다.

4. 이후

2015년부터 KBO 육성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5. 트리비아

  • 2015년부터 서울대 교양과목 야구에 강의를 한다. 서울대 내 각종 야구동아리에서는 잘 가르치기로 평판이 좋다. 저학번 때 수강하고 나서 청강 또 청강하라 카더라 그리고 애꿎은 정의윤을 극딜하셨다. 그리고 정의윤은 터졌다. 기요하라는 야잘알, 김용달은 야알못
  • 2010년부터 IPSN에서 해설을 맡았으나, 완성된 문장을 내뱉질 못하는 참담한 수준의 해설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야구인 출신의 해설위원 중 말주변이 없는 해설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용달 위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그 백인천, 이광권, 김상훈에 버금간다는 평이 나올 정도. 덕택에 조용하던 IPSN 게시판이 김용달 해설위원의 퇴출을 원하는 게시물들로 도배되기도 했다 게다가, LG전 중계에서는 노골적으로 LG편을 드는 편파해설을 하여 더 미움 받았다. LG와 대결중인 상대팀의 홈런에 대해 "아, 저런 홈런은 전혀 의미가 없는 홈런이에요"라며 까대기도..
  • 이사만루 게임빌 시전에 슈퍼스타카드 혹은 (1982)골글이면서 스탯이 개극혐이신 덕분에 용달차니 어쩌니 하면서 대차게 까였다.
  • 2012년 자신의 이름을 건 타격 이론서 '용달매직의 타격비법'을 출간했다. 이후 2015년 KBO 육성위원이 되었다.
  • 현대 유니콘스 타격코치 시절 70경기 턱걸이 3할 14홈런 51타점을 마크한 클리프 브룸바와의 재계약을 구단에서 굉장히 망설였다고 하나 "제가 한 번 가르쳐서 써보겠습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재계약했고 이듬해 브룸바는 MVP급 성적을 기록한다. 그 당시 용병을 가르쳐서 써보겠다고 한 코치는 김용달이 최초라고.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1982 MBC 청룡 68 168 0.315 53 10 0 5 23 29 2 19
1983 48 83 0.217 18 2 0 1 8 7 1 7
1984 57 94 0.298 28 5 4 1 14 9 1 15
1985 71 142 0.232 33 9 0 3 14 15 3 21
1986 24 43 0.209 9 0 0 1 4 3 0 8
1987 31 42 0.286 12 2 0 1 8 3 0 7
1988 14 18 0.000 0 0 0 0 0 0 0 2
KBO 통산(7시즌) 313 590 0.259 153 28 4 12 71 66 7 79


[1] 이사만루2014 KBO에서 슈퍼스타 카드가 출시될 때, 골든글러브 전적 덕분에 82 김용달 슈스도 출시되었는데, 상급 스타만도 못한 성능, 6성이라는 낮은 등급으로 나왔다. 게다가 중급선수카드나 최상급 선수카드 등에서 96 박경완과 같이 가끔씩 등장하는 의외의 흔함 때문에 이사만루 유저 한정 네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2] 이광은 시절에 김대진이 타격코치로 왔고, 동시에 LG 1군 타격코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거의 20년째 안 깨지고 있으며, 김용달 본인도 포함되었다.[3] 공식적으로 03 LG는 2군 감독이 없었다. 책임코치 보직을 두었는데, 당시 책임코치가 김용수.[4] 감독은 X-존까지 설치해가며 팀의 장타를 늘리려고 했는데 정작 타격코치는 단타 위주의 코칭을 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인 것이다.[5] 김용달과 정반대의 코칭스킬을 갖고 있는 코치가 황병일.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 놓고 때려내는 방식을 주문하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6] 그 문제의 타격코치로도 서용빈, 윤덕규도 있긴하나, 당시 메인타격코치가 김용달인지라, 김용달이 유력하다.[7] 다만 양상문은 90년대 롯데에서 이룬 성과가 없지 않다. 또한 롯데 투수코치 시절(2010)도 김수완과 이재곤의 폭망으로 인해서 재평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