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02 11:15:43

고동진(야구선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6600>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2020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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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한화 이글스 선수 시절
한화 이글스 No.80
고동진(高東鎭 / Dong-jin Ko)
생년월일 1980년 4월 1일 (만 [age(1980-04-01)]세)
출신지 대전광역시 대덕구
학력 대전중리초 - 한밭중 - 대전고 - 성균관대
포지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1]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0년 2차 4라운드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4~2016)
지도자 한화 이글스 2군 주루코치 (2017)
한화 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7~ )
응원가 메칸더 V 오프닝[2][3]
2006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최영필(한화 이글스) 고동진(한화 이글스) 류현진(한화 이글스)
파일:HanwhaEagles_Brandlogo1.png 한화 이글스 역대 주장
김태균
(2013)
고동진
(2014)
김태균
(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45번
전경일 고동진(2004) 서민욱(2005~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24번
김장백(2001~2004) 고동진(2005~2008) 신민기(2009)
한화 이글스 등번호 56번
오선진(2008~2010) 고동진(2011~2014) 최우석(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24번
박준혁(2014) 고동진(2015~2016) 박준혁(2017)

1. 개요2. 프로 선수 시절
2.1. 데뷔 후 군 복무 전까지2.2. 2011 ~ 2012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2.5. 2015 시즌2.6. 2016 시즌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시절5. 연도별 주요 성적6. 기타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자 현재는 한화 이글스의 코치.

한화의 어중간한 외야수 모음인 김고추정이의 일원이자 별명은 고동학생, 고봉사. 고등어, God옹진

2. 프로 선수 시절

2.1. 데뷔 후 군 복무 전까지

대전 출신 토박이로 중학교 2학년때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자신의 뛰어난 운동신경을 감지(?)하고 야구부가 있는 한밭중학교로 전학해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본래 2000년도 드래프트 때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기로 했지만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입단은 2004년도로 미루어졌다. 2004년 시즌, 공수주를 겸비한 깜짝 신인의 등장에 1번 타자의 재림에 목말라 하는 한화 이글스의 팬들을 들뜨게 했다. 데뷔 첫해 타율 0.317을 기록했으니 기대가 클만도. 하지만 그 이후엔 전술한 대로 로또 수준의 타격 능력을 보이며 팬들의 애만 태웠다(...).[4]

그놈의 수비 능력은 여전히 요상(?)하게 상대팀 아웃카운트를 늘렸지만, 그놈의 타격 능력 또한 소속팀의 아웃카운트를 늘려서 여전히 팬들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다. 오죽하면 고동진이 4타수에 2안타를 친 경기가 있은 직후 야구 관련 게시판과 응원 게시판에는 내가 고동진이 4타수 2안타를 친 것을 보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이 나올까.

그렇게 잉여짓을 하는 와중에도, 2007년 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오승환으로부터 뜬금포를 친적도 있다.[5] 이범호의 홈런에 이은 확인 사살로, 한화 이글스의 플레이오프행을 결정지은 홈런. 큰 경기에 강한 사나이? 그 이후로 한화 이글스는 가을 야구는 고사하고, LG 트윈스6668587667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중(…). 1년 더 채우면 신기록

결국 2008 시즌이 끝나고 한상훈과 비슷한 시기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고, 소집 해제 후 2011 시즌을 맞이했다.

2.2. 2011 ~ 2012 시즌

군복무 이전 김인식 前 감독의 무한 믿음으로 무한 기용되어 성장 기회는 확실히 보장받았지만, 그에 준하는 성장은 하지 못했다는 평가. 다행히 공익 제대후 팀 선수층이 얇은 덕에 준주전급으로 기용이 되었으나,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참 답이 없다. 정말 수비 실력만큼 타격 능력도 있었으면 팬들은 기뻐 날뛰겠지만 현실은...

2011년 4월 한동안은 선발 출장하며 중견수를 봤지만 역시 타격때문에 2군으로 강등. 그러다가 다시 6월 9일 1군 복귀하여 선발 출장했는데, 홈런 1개와 안타 2개로 뜬금없이(!) 폭발하며 한화의 4:1 승리에 한몫하였다. 게다가 8⅔이닝 동안 호투한 양훈이 수훈 선수로 꼽힐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6월 9일 수훈 선수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에 한화팬들은 역시 카림 가르시아의 외야 합류에 의한 외야경쟁에서 밥줄이 짤릴 위기에 놓이자 고동진의 운동신경이 각성 한것 아니냐는 반 우스개성 이야기도 들리는중.

2011년 6월 17일에는 두산과의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2사 만루의 상황에서 최준석의 잘맞은 타구를 놀라운 호수비로 잡아냈다. 고동진의 호수비가 없었다면 이후 나온 가르시아의 끝내기 홈런도 없을 뻔했다. 영상 이 날의 숨은 MVP. 이 장면은 2011 칰갤 어워드 올해의 수비상을 수상했다.

2011년 8월 11일 삼성과의 경기, 9회초 3:1로 앞선 상황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갑자기 뜬금없는 솔로 홈런을 작렬! 그리고 그것이 팀의 3,000번째 홈런이 되면서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11 시즌 기록은 97경기 195타수 49안타 3홈런 3도루 타율 .251로, 공익근무를 하고 돌아온걸 감안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해줬다. 하지만 여전히 삼진이 많다

2012년 5월 11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7:1로 지던 5회말 2사 만루에서 이여상의 대타로 나와서 롯데 선발 투수 고원준을 상대로 팀의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대타 만루홈런을 쳤다! KBO 역대 38번째 대타 만루홈런. 고동진은 이날 3타수 1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하여 타율을 .278까지 끌어 올렸고, 팀은 명경기 끝에 7:0의 스코어를 9:15로 만들고 역전승했다.

2012년 9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최종전이었던 홈경기에서 1번 타자로 선발 출장, 6회 시즌 3호 결승 2점 홈런을 작렬시키며 팀의 8:6 역전승을 견인했다. 유독 삼성전에 강한(타율 .420) 모습으로, 특히 배영수와의 승부에서는 배영수의 머리 위에서 노는 듯한 무서움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시즌 내내 준수한 타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주루사가 잦고 클러치 상황에서 큰 활약이 드물고, 무엇보다도 팀 성적이 좋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2012 시즌 기록은 110경기 281타수 76안타 3홈런 8도루 타율 .270로, 데뷔 시즌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엔 경찰 야구단에서 퓨처스리그를 씹어먹은 정현석이 제대해 팀에 복귀한다

2012 시즌 종료 후 무릎 수술을 결정했다. 무릎 연골의 마모로 인한 만성적인 통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2.3. 2013 시즌

2013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한화는 개막 13연패를 찍으며 개막전 최대 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갖가지 원인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외야 수비의 불안정 또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시즌 초 최진행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지명타자로 기용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지명타자로 기용될 예정이었던 김태완을 우익수로 돌려써야 했다. 허나 김태완은 애초에 1루수 수비만 가능했던 내야수였고, 김질주보다 느리다고 평가받는 그의 다리는 총알같이 날아가는 타구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다 잔뜩 기대받던 정현석 역시 방망이는 그렇다 쳐도 수비에서는 입대 전보다 퇴보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으니...

팀 사정이 이 지경으로 몰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고동진을 그리워하는 한화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 타격은 몰라도 수비만큼은 김태완보단 낫겠지 아니야 지금이라면 타격도... 다행히 무릎 수술 후 순조롭게 재활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으며, 실전 경기에는 5월쯤에 돌아올 수 있을듯.

팀 사정상 예정보다 이른 4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8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복귀전을 가졌다. 첫 타석에서는 좌익수 앞 안타를 쳤으나 2루까지 오버런하다가 아웃. 허나 이후에도 희생번트를 성공시키고 볼넷 하나와 안타 하나를 추가하며 활약했다. 무릎 수술을 받고 돌아와서 첫 경기를 치른 것을 감안하면 빼어난 활약이었고, 덕분에 우타일색이었던 한화의 타선을 조금 더 짜임새있게 만들 수 있었다. 경기는 9:3으로 한화의 완승. 한화팬들은 부디 빠른 복귀로 인해 탈나지 말고 성공적으로 1군에 안착해 주기를 바랬다.

시즌 내내 주로 1번타자, 중견수로 출장했으며, 타격에서는 9월전까지는 기대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활약이라 보였으나, 중견수로 합류한 뒤에는 비교적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비가 사람다워지는데(...) 공헌했다. 다만 타격 이외에 아쉬운 점은, 1번타자로서 필요한 주루능력이 무릎 수술덕에 퇴보하여 주루사라든가 특히 도루부분에서 4개의 도루를 기록한데 비해 도루자가 8개를 기록했다.

9월 들어서는 가을이라 그런지 작년과 마찬가지로 다시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데 9월 12일 기준으로 9월 타율이 5할이다. 진정한 가을남자 포스트시즌 한정으로 임대료 줘야할 것 같다

그리고 데뷔 10년만에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6] 기록은 93경기 .272 85안타 31타점 1홈런 34볼넷 54삼진 11병살 2실책 .350 .327 .677.

1달을 날려먹고 부상에서 덜 회복된 채로 복귀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좋은 성적.

12월 7일 신부 박다은 양과 결혼에 골인했다.

2.4. 2014 시즌

시즌 전, 김태균으로부터 주장직을 넘겨받게 되었다. 이용규가 수술후 몸상태를 회복하는 동안 외야의 중심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연봉협상에서 2,000만원 상승한 1억원에 도장을 찍으며, 억대 연봉으로 재진입했다.

3월 30일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을 상대로 정말 뜬금없이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한 점 차로 쫓기던 상황에서 도망가는, 한 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귀중한 홈런이었다.

4월 10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좌익수 겸 5번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9회초 3:3 동점 상황에서 결승 헛스윙(...)을 기록했다. 2-2카운트 상황에서 상대투수 김진성의 낮은 공에 배트가 그대로 돌아갔는데, 포수 허준이 포일을 범한 것. 1루에 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낫아웃 출루는 되지 않았고, 아무튼 팀은 4:3으로 승리했다.

4월 19일 LG 트윈스전에서 7:7 동점이던 10회말에 이용규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본인의 프로 첫 끝내기 안타이기도 하다. 이 때 덕아웃에서 번트 싸인이 났는데, 싸인 전달 과정에서 미스가 난 상황에서 나온 안타여서 번트요? 저 고동진인데요 드립이 탄생했다.

4월 20일 LG 트윈스전에서 정찬헌정근우 사구 사건 때 주장으로써 가장 앞장서서 달려나가다가 마운드 앞에서 슬라이딩을 가장하며 넘어지는 바람에 소소한 웃음을 줬다. 사실 LG선수들을 위협하기 위해 카포에라를 쓴거라 카더라

5월 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박종윤의 장타성 타구를 잡아내고 빠르게 내야로 송구하여 1루 주자 루이스 히메네스를 아웃시키며 경기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에는 타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내리막을 타면서 결국 2군으로 내려갔고, 한상훈김태균이 주장 대행을 맡아야 했다.

2.5. 2015 시즌

6월 13일 대전 LG 전에서 1군에 콜업되었다. 이날 대타로 나와 첫 타석에서는 아웃으로 물러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 팬들은 별 기대를 안했는데... 그 다음 타석에서는 3타점 싹쓸이 2루타를, 세 번째 타석에서는 1타점 적시 2루타로 총 4타점을 올렸다! 덕분에 중계창은 순식간에 찬양 모드로 돌변, 갓동진이라면서 칭송칰송합니다를했다(...).[7] 동시에 최진행을 빼고 고동진을 대타로 쓰신 갓돇님의 혜안에 감탄했다는...

6월 17일 대전 SK전 7:6상황 9회 말 무사 1루 주자 최진행이 있는 상황에서, 상대 투수 정우람과의 승부에서 1구 번트 파울(그것도 볼에)을 한뒤 김성근 감독은 여의치 않으면 타격을 하라는 지시를 했으나, 2구에 다시 번트를 대 투수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이때 번트를 댄 2구 역시 볼이었다. 그 다음 타자가 김태완-정범모-권용관이었는데 정범모와 권용관의 타격을 감안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플레이었다. 이후, 김태완이 안타를 쳐서 1사 1, 2루가 되었지만 두 타자 연속으로 아웃이 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 번트 때문에 번트 특타라도 받았는지 7월 21일 kt 전에서 선발출장하며 8회 희생 번트를 잘 대서 득점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날 전체적으로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올라온건지 타석마다 치기는 다 쳤다. 단지 4회엔 단타를 쳤지만 2루 가던 이종환을 죽여버렸고, 2회, 7회엔 그냥 플라이 아웃. 4회 땐 그래도 정근우가 3루까지 가줬기 때문에 득점으로만 이어졌으면 좀 더 고평가받았겠지만, 후속 타자 강경학이 투수 앞 땅볼로 죽어버리는 통에 득점은 실패해서 그냥 이종환 죽인것만 남아버렸다(...). 그래도 이전까지 꽉 막혀서 답답했던 것에 비해 나름대로 자잘한 활약을 해줘서 이렇게라도 꾸준히 해주길 팬들은 기대중. 인데 예년의 기록을 보면 여전히 불안하다

7월 28일 신인 포수 지성준을 1군으로 올리고 내신 고동진을 내렸다. 이로서 한화는 엔트리에 포수만 조인성, 정범모, 지성준 3인이 되었는데, 어느 포지션이고 꾸준히 믿고 쓸 선수가 없어 게속 돌려막기식으로 엔트리를 짜야하는 한화의 얇은 선수층을 잘 보여주고 있다.

8월 16일 주현상, 장운호가 2군으로 내려가고 대신 고동진과 제이크 폭스를 1군으로 올렸다. 이날 한화는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를 올리고도 5:6으로 역전패했는데, 9회 가운데 점수를 내준 2회와 8회 모두 고동진의 구린 낙구 지점 판단과 송구 판단이 빌미가 되어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주자 1루에서 중전 안타를 맞았는데 1루 주자가 3루까지 안착하는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결국 8회 김성근 감독은 빡쳤는지 송주호와 교체했는데, 이때 TV 카메라에 잡힌 표정이 정말 좋지 않아서 남은 시즌 험난한 날들이 이어질 듯 하다. 마찬가지로 한화 팬들도 대폭발해서 이날 부진했던 이놈 저놈과 다같이 사이좋게 은퇴나 하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결국 진짜 은퇴했다

12월 1일 난데 없이 고동진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서 설렌 한화 팬들은 그 고동진이 삼성 계열사 사장인 것을 보고 시무룩했다 한다.

2.6. 2016 시즌

2016년 7월 29일 소리소문없이 웨이버 공시되었고, 대신 내야수 임익준육성선수에서 정식선수로 전환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외야 수비능력은 일단 보통. 어깨부상으로 대전고시절 일찍 타자로 전향을 했지만 투수 출신답게 강견이다. 하지만 타구판단능력은 발전이 없어서... 고교-대학시절 주로 1루수를 봤다곤 해도, 프로 전향 이후론 쭉 우익수, 중견수로 나오고 있는데 아직도 타구판단이 구려서 뻗어나가는 라이너 타구인데도 앞으로 스타트를 끊었다가 역동작 걸려서 위태위태한 상황을 종종 만든다. 그야말로 팬들의 똥줄 제대로 태우는 수비능력.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강견이기 때문에 한화에서 홈승부로 주자를 잡아낼수 있는 극소수의 외야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요상한(?) 수비능력을 가진 그가 한상훈, 신경현, 유원상과 같이 한화를 망하게 한 4인방 한고신유로 찍혔었으니, 그 이유는 바로 한숨이 터져나오는 타격능력. 몰아치기에는 상당히 능해서 잘맞는 날은 이치로가 부럽지 않은 컨택을 보여주지만(그 날이 오면 3안타도 우습게 친다), 그 날이 지나가면 2군 선수만도 못한 타격을 보여준다. 그래서 별명이 고치로(잘 치는 날), 고봉사(못치는 날. 즉 주로 불리는 별명)로 극과 극.[8][9]

타석 대비 몸에 맞는 공이 많은 선수 중 하나이다. 그래서 공을 잘 못 고르는 데 비해선 출루율이 그럭저럭 나오는 편이다. 이 이유는 기본적으로 배터박스에서 플레이트에 가깝게 붙어 있고, 웬만한 공은 안 피하고 다 몸으로 때우는 편이기 때문이다. 2005년~2007년 3시즌 동안 몸에 맞은 공이 무려 44개.

데뷔 후 김인식 감독 체제에선 주로 2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나, 소집해제 이후엔 컨택 능력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는 클린업 트리오(...)에 기용되기도 했었다.

발이 빨라 한때는 깜짝 1번 타자로도 종종 나왔었다. 주루가 특기인 선수 치고 도루 수가 많진 않았지만, 당시의 한화가 도루를 잘 안하는 팀이어서 그런지 고동진의 도루능력은 팀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편이었다.[10] 하지만 군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는 본인의 도루 수가 급감하였고, 정근우, 이용규 등 정말로 주루센스가 좋은 타자들이 팀에 합류하면서 이는 옛말이 되었다.

4. 지도자 시절

2017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2군 주루코치로 합류되었다.

그 후 김성근 감독의 경질 이후의 이상군 대행 체재의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그가 1군으로 올라온 후 한화 타선이 터지고 있다. 코동진 당신은....도대체... God 옹진이라 하더라 2군 코치로 있는 동안 김태연, 정경운, 김인환 등의 타격이 일취월장한 이력이 같이 언급되며 '사실 코치로는 능력자가 아니냐'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2군에 있을 당시엔 타격코치가 아닌 주루 코치를 맡았고, 1군에 합류한 이후에도 타격'보조'코치 보직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토템 기능을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드립에 가깝다.

사실 보직이동이 되면서 고동진이 1군 타격 보조코치로 올라오자 모두가 의아해 했었다. 현역 시절의 기록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으며 지도자 시절도 굉장히 짧았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현역 때처럼 되고 싶냐며 멘탈 케어해주는 코치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린다(...). 나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갓동진의 오답노트... 물론 6월에 와서 kt의 팀 방어율이 5점대 초중반으로 폭등해버린 상태고 표본도 적으니 재미로 받아들이자.

참고로 6월 14일(고동진 코치 1군 합류 이후) 각 팀의 홈런 수는 다음과 같으며,
구단 홈런 개수
한화 23개
SK 16개
롯데 13개
KIA 10개
삼성 10개
넥센 10개
로사리오 10개
LG 9개
NC 9개
kt 6개
두산 5개

그리고 2017년 7월 1일 경기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다.
고동진 코치 합류 홈런 개수
이전 61경기 40홈런
이후 16경기 38홈런

8월 27일을 기점으로 3루 주루코치를 맡았다.

이러한 활약 아닌 활약 덕분인지 2018년 11명의 코치가 해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1군 코치로서 살아 남았다.

한용덕, 강인권, 장종훈, 송진우와 마찬가지로 한화의 프랜차이즈 선수 물론 레벨은 앞에 비해서 좀 많이 떨어지지만 중 한 명이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모습이다.

2018시즌부터는 1루 주루코치를 맡는다. 그리고 정규시즌 3위를 확정짓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고동진 역시 대전에서 태어나고 한평생 한화에서 지내온 선수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한화 51 161 .317 51 12 0 5 19 27 8 14 .484 .371
2005 94 250 .200 50 14 0 3 11 42 11 39 .292 .308
2006 120 370 .241 89 14 2 4 29 40 16 33 .322 .303
2007 124 394 .249 98 8 5
(3위)
1 37 68 10 66 .302 .357
2008 31 87 .218 19 5 0 0 5 14 2 6 .276 .269
2009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0
2011 97 195 .251 49 9 0 3 19 31 3 20 .344 .321
2012 110 281 .270 76 12 0 3 29 32 8 43 .345 .367
2013 93 312 .272 85 14 0 1 31 31 4 40 .327 .350
2014 73 187 .241 45 5 0 1 14 21 0 20 .283 .310
2015 27 59 .169 10 4 0 0 7 5 0 6 .237 .247
2016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0시즌)
820 2296 .249 572 97 7 21 201 311 62 287 .325 .331

6. 기타


[1] 주로 좌익수우익수로 나왔으며, 중견수는 아주 가끔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수비란 것을 뭔지 모르는 외야수와 고동진이 중견수로 나온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지만 당시에는...[2] 고동진~ 고동진~ 고동진~ 안타! 날려버려 날려버려 고!동!진!x4[3] 용덕한이 두산 시절 쓰던 응원가도 이와 같은 원곡이다.[4] 데뷔 시즌 당시에도 볼삼비를 보면 매우 좋지 않았다. 0.2...[5]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지만 2005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도 4:3으로 이기고 있을 때 솔로 홈런을 친 적도 있다.[6] 이전 최고 성적은 12년의 110경기 76안타 3홈런 29타점 38볼넷 48삼진인데, 경기수는 많으나 타수는 13년보다 적다.[7] 2루타 하나는 좌투수를 상대로 쳤다.[8] 혹자는 고동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하루 몰아쳐서 일주일 타율 관리하고 일주일 몰아쳐서 한달 타율 관리하고 한달 몰아쳐서 시즌 타율 관리하는 녀석.[9] 심지어 이런 소리까지도 나온다. 첫 타석 결과를 보고 그 날이 어떤 모드인지(...) 짐작이 가능하다는 것. 이게 괜한 헛소리가 아닌 게, 실제로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날은 십중팔구 멀티히트이고 3안타 경기도 자주 나오는데, 첫 타석에 안 맞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당한 건 첫 타석이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이면 그것마저도 경기 내내 나오는 경우가 있다(...).[10] 그 무렵엔 이영우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라, 진짜 도루 할만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