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17:57:45

김진성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이인인 코미디언 지하철에 대한 내용은 김진성(코미디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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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시즌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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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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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김진성(2012~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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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55
김진성(金珍成 / Kim Jin-Sung)
생년월일 1985년 3월 7일 ([age(1985-03-08)]세)
신체 186cm, 92kg
출신지 경기도 성남시
출신학교 서울인헌초 - 성남중 - 성남서고[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2차 6라운드 (전체 42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5~2006)
넥센 히어로즈 (2009~2011)
NC 다이노스 (2012~ )
등장곡 LUNA SEA- TONIGHT
연봉 1억 6,000만 원 (20%↓, 2020년)

1. 소개2. 아마추어 시절3. 프로 경력4. 투구 스타일5. 여담6. 연도별 성적

1. 소개

NC 다이노스 소속의 우완투수. 2010년대 중반 NC의 필승조 불펜 콰르텟 단디 4의 일원으로 임창민, 원종현, 임정호 등의 투수들과 함께 NC가 창단 이래 빠르게 리그 상위권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한 투수이다.

2. 아마추어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서울고에서 2학년때까지 야구를 했다. 2학년때는 활약이 좋았는데 감독이 교체되면서 코치를 따라 성남서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팔꿈치 부상을 입고 등판을 아예 하지 못했고, 1년 유급도 하게 된다.[2]

2004년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2차 6순위(전체 42순위) 지명을 받았다.[3] 허나 1년 유급을 하는 바람에 실제 입단은 2005년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패스트볼만 던지고 변화구는 전혀 던지지 않았다. 고교 2학년 때 구속 140km/h를 꾸준히 넘겼고, SK에서도 2학년 때의 활약을 보고 지명했다고 본인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3. 프로 경력

3.1.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5030923392712572_9176.jpg

하지만 프로에 와서도 이 팔꿈치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이 부상 때문에 1군 기록 없이 2006년에 첫번째 방출을 겪었다.

2011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팔꿈치 이상이 있었지만, 재활 센터에 등록할 50만원이 없어서 재활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동네 헬스장에서 재활하는 그야말로 안습한 상황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이후 경찰청 입단테스트에 떨어져 공익근무요원로 군 문제를 해결한 후[4], 2009년 입단 테스트에 응시해서 넥센 히어로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무려 3년을 신고선수로 있었지만, 끝내 1군 기회를 잡지 못했고 엔트리에 이름만 있다가 2011년 6월 7일 넥센 히어로즈에서 조재호, 강병우, 박민주 등이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을 때 같은 시기에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어 선수생활 두번째 방출을 겪었다.[5][6] 때마침 새롭게 창단하는 NC 다이노스의 공개 테스트에 응시, (당시 모습 사진, YTN 뉴스 인터뷰[7]), 극적으로 합격하면서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잦은 부상 속에서도 구속이 145km/h에 이를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프로의 기회를 다시 잡은 듯.

3.3. NC 다이노스 시절

2012년 KBO 퓨처스리그에서는 NC 다이노스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총 49경기에 나와 46.1이닝 4승 1패 20세이브 1홀드 ERA 2.14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특히 20세이브는 역대 퓨처스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이다.

3.3.1. 2013 시즌

이를 바탕으로 NC 다이노스의 1군 리그 참가 때 비로소 1군 무대를 밟게 됐다. 첫 1군 시즌인 2013 시즌에도 마무리 보직을 받아 4월 13일 SK 와이번스전에서 팀의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동점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맞는 등 부진한 투구를 보이면서 결국 마무리 보직은 이민호에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민호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선발 투수인 이재학이 잠시 마무리를 맡기도 했지만만 이재학 역시 부진해 돌고 돌아 손민한이 마무리를 맡는 등 NC는 1군 첫 시즌부터 마무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후 간간히 계투로 등판하였다.

3.3.2.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김진성_2014_1.jpg

지난 해의 실패를 딛고 NC 다이노스의 마무리 투수로서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진출의 주축 선수가 되었다. 최종 성적은 58경기에 출전하여 48.1이닝 3승 3패 1홀드 25세이브 ERA 4.10.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팀의 첫 20세이브 투수가 되었고, 데뷔 10년 만에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3.3.3. 2015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부상으로 이탈하고 복귀한 뒤에는 임창민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겨줬다. 부상을 당한 이후에도 이닝 소화가 많았던지라 마냥 뭐라할 수는 없지만, 피홈런이 많아졌다는 게 흠. 시즌 성적은 59경기 3승 4패 12홀드 5세이브 66이닝 18볼넷 70K ERA 4.50.

3.3.4. 2016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무려 84.1이닝이나 소화했음에도 4.48의 ERA와 1.13의 WHIP를 기록하면서 2015 시즌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순수 구원 투수로서 100탈삼진을 찍으며 엄청난 구위를 선보였다. 그러나 승부처마다 터지는 피홈런과 함께 포스트시즌에서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록과 팬들이 받은 인상이 전혀 다른 시즌이 되어버렸다.

3.3.5. 2017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9경기 89.2이닝 10승 6패 15홀드 27볼넷 98K ERA 3.61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특히 구원 투수로서 10승을 기록하며 8년 만에 구원 1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89.2이닝이라는 2017 시즌 한미일 통틀어 순수 구원 최다 이닝을 기록할만큼 엄청난 혹사를 당하기도 했다.

3.3.6.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지난 3년간 엄청난 혹사를 당한 것이 결국 처참한 성적으로 돌아왔다. 50경기 45.1이닝 3승 2패 5홀드 19볼넷 38K에 그쳤고, ERA는 7.15에 달하며 김진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까지 치솟고 말았다.

3.3.7. 2019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성/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분명히 지난해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하락세 이전의 구위를 찾지는 못했다. 시즌 성적은 42경기 42이닝 1승 2패 5홀드 39피안타 6피홈런 15볼넷 35K ERA 4.29.

3.3.8. 2020 시즌

2월 2일, 스프링캠프 훈련 이틀 만에 돌연 귀국했다. 지난해 연봉 협상에서 3,000만 원이 삭감된 것에 이어 이번에도 2억 원에서 4,000만 원이 삭감된 1억 6,000만 원에 계약했다는 것이 그 이유. 도장을 찍은 다음 날 갑자기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겠다면서 장동철 운영팀장 및 이동욱 감독과 면담했고, 이후 귀국을 결정했다고 한다.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때는 지난해보다 성적이 나아졌는데도 4천만 원을 삭감하는 것은 너무 짠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2018 시즌 후 7점대 ERA를 찍고도 2억을 맞춰줬는데 필승조도 아닌 4점대 불펜에게 1억 6천이면 충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으로 갈렸지만 그 이후로는 대체로 김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우선 팀 내 투수조 최고참 중 한 명이 연봉 불만 때문에 1군 전지훈련에서 이탈해 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 것이 팬들에게 상당한 실망을 안겨주었고, 본인이 그 삭감안에 어찌됐건 도장을 찍고 끝난 일인데 그게 속상하다고 다음 날 갑자기 전지훈련지를 떠나는 선택을 한 것도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9 시즌 개막 직전 한용덕 감독과의 갈등을 일으킨 이후 뜬금없는 트레이드 요청으로 팀 자체로 무기한 참가활동정지 징계 처분을 받은 이용규처럼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쨌건 팀 허락을 맡고 귀국한 것인지라 징계를 줄 명분도 없다. 그러나 이용규보다 상황은 좋지 않은데, 현재 김진성의 팀 내 입지나 기량은 당시 이용규보다 낮다. 이용규는 심각한 한화의 외야 뎁스 때문에 한용덕 감독과 참된 약속 찍고 복귀를 했지만 김진성은 양적으로 보강된 NC의 젊은 불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동욱 감독을 제외한 코칭스태프진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호준 코치는 이 사태에 대해 연봉 협상에 있어서 구단이 제시하는 어떠한 금액도 선수는 만족하기 어렵다면서, "구단이 선수에게 했던 아쉬움보다 기회를 준 고마움을 앞세운다면 이런 갈등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 "선수가 손해 본다는 생각보다 팀에 고마웠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만약 김진성이 귀국 전 자신을 찾아왔다면 그런 내용으로 설득했을 건데 그러지를 않았다면서 김진성 본인이 코치에게 말하지도 않고 귀국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본인도 여론을 의식했는지 "구단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지만 당연히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에 남은 구단과 선수들은 캠프 분위기는 좋고, 김진성의 귀국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화일보 정세영 기자의 개인방송인 뭐니볼 TV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그것도 아닌 모양. 그래도 이동욱 감독은 김진성을 전력 구상에서 제외하지 않았으며뭐라고? 필요한 선수라고 언급했으며, 다른 선수도 마음을 빨리 추스르고 다시 캠프에 복귀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4. 투구 스타일

파일:김진성포크볼.gif
김진성의 포크볼

최고구속 148km/h에 평균은 140km/h 초중반의, 불펜투수로써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구속의 포심 패스트볼을 가진 투수이다. 그러나 2회의 팔꿈치 수술 경력, 그로 인한 험난했던 재활과정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악력과 강견의 소유자이며 구속 이상으로 회전이 좋은, 무거운 공을 던진다. 구위로 찍어 누르는 소위 말하는 돌직구형 투수. 변화구로는 최일언 투수코치에게 전수받은 포크볼을 필두로 한 다양한 구종을 구사할 수 있다.[8] 말하자면 구속에 비해 강한 패스트볼떨어지는 공의 조합으로 탈삼진을 노리는 전형적인 파워피처로 실제로 통산 K/9가 9를 넘는다. 위기상황에서 강한 면모도 갖추고 있어 마무리로 뛰었던 2014 시즌에는 유독 터프세이브를 많이 올렸던 바 있으며 무사만루같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불려나와서 얕은 플라이와 연속삼진으로 선행주자를 지워버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약점은 제구에 기복이 있다는 것과 멘탈. 팔동작으로 강약조절을 잘 못하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투구를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제구가 높은 편이고, 컨디션에 따라 스플리터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몰리는 날이면 필연적으로 큰 장타를 맞는다. 이렇게 포크볼이 가운데로 몰려서 홈런을 맞는 모습은 2015~2016시즌 김진성에게 NC 팬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모습 중 하나일 정도다.[9] 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놓은 상태에서는 나름대로 타자를 요리할 줄 아는 투수이지만 볼카운트가 불리할 때는 타자를 그대로 거르거나 볼넷을 허용하는 비율이 높다. 거기다 플레이 중 페이스가 항상 심하게 긴장한 상태라는 것도 많은 팬들이 지적하는 단점. 앞서 말한 위기에 강하다는 것도 선행주자가 있는 경우 구원등판 했을 때의 이야기고, 본인이 연속출루를 허용하거나 할 경우에는 대체로 무너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풀릴 때에는 체감상 아웃카운트의 태반이 삼진일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결정적인 한방을 허용하는 타입이다. 아무래도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사람들의 특성상 팬들은 후자를 더 주목하게 되므로 기록에 비해 팬들에게 많이 까이기도 했던 선수이다.[10] 그러니까 삼진 아니면 장타를 허용하는 투수.

연투 시 성적도 괜찮은 편이라 많은 경기에 등판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기량보다는 김경문 감독의 고질적 불펜 혹사를 우려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상황의 원종현과 함께 예전 두산 불펜투수들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적잖이 샀고, 결국 2018 시즌 임창민, 원종현, 김진성이 모두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단디 4 문서 참고.

5. 여담

  • 경기 시작 전 전체 훈련과 별도로 2시간 30분 정도 미리 운동을 시작하는 루틴이 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며, 최근에는 나이 때문인지 악력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덕아웃이나 불펜에서 공을 계속해서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별명은 2014 시즌에 귀신같이 세이브를 챙기는 활약으로 인해서 귀족 마무리, 황제 마무리, 황제 폐하라고 불렸으며 중간계투로 옮긴 2015 시즌 이후부터는 엔갤 한정으로 부진할 땐 찐따, 호투를 할 때는 일찐이라 불린다. 다만 찐따도 엔갤에서 비하의 의미보다는 '찐따성' 같은 표현처럼 애칭으로 불린다.
파일:고압산소치료기.jpg
  • 2015년 부상당한 그의 재활을 위해 구단에서 고압산소치료기란 의료기기를 들여왔다. 일명 ‘산소탱크’로 불리는 이 기계로 산소를 쐬면 적혈구가 증가하고 백혈구가 감소하여 피로 회복이 빨라지는 효과가 있어서 선수들에게 인기폭발이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셈이며 김진성 본인도 이 기계 덕분에 복귀가 2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파일:김진성_2017.jpg
  • 강민호에게 굉장히 강하다. 2019년까지 21타석에서 3안타 1홈런을 맞았지만 무려 11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피OPS는 0.516.
  • 잠실 야구장에서도 상당히 강한데 2014~2019년 사이 잠실에서의 평균자책점이 2.30이다. 특히 2016 시즌에는 0점대일 정도. 잠실 야구장이 외야가 넓고 투수 친화적인 것과 구위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합쳐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하다.
  • 2015 시즌이 끝난 후 결혼했고 지금은 아들이 있다.
  • 어떤 야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선수. 어렵게 운동하고 있는 후배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롤 모델이 된다면 좋겠다"는 겸손한 대답을 남겼다.
  • 2017년부터 모교인 성남중 후배들에게 야구용품을 지원하는 선행을 하고 있다. 글러브, 언더셔츠, 배팅 장갑 등 600만원 상당의 물품들을 매년 기부하고 있다.2017년2018년2019년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SK 1군 기록 없음
20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히어로즈 1군 기록 없음
2010 넥센
20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NC 1군 기록 없음(NC 1군 미참가)
2013 33 34 1 2 2 0 0.333 4.76 32 5 19 28 20 18 1.44
2014 58 48⅓ 3 3 25
(4위)
1 0.500 4.10 40 4 28 52 25 22 1.37
2015 59 66 3 4 5 12 0.429 4.50 59 14 19 70 35 33 1.17
2016 69
(4위)
84⅓ 6 8 1 14 0.429 4.48 79 15 18 100 44 42 1.13
2017 69
(5위)
89⅔ 10 6 0 15 0.625 3.61 72 13 32 98 38 36 1.10
2018 50 45⅓ 3 2 0 5 0.600 7.15 56 13 22 38 38 36 1.65
2019 42 42 1 2 0 5 0.333 4.29 39 6 17 35 25 20 1.29
KBO 통산
(7시즌)
380 409⅔ 27 27 33 52 0.500 4.55 377 70 151 421 225 207 1.26


[1] 서울고에서 전학.[2] 본사 블로그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프로 진출과 대학 진학을 놓고 학교와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프로 데뷔 후 두각을 나타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그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3] 동기가 윤희상, 정우람이다.[4] 아래 포크볼 관련 글의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공익근무할 때 3~4시간 자고 아르바이트를 뛰었다고 한다.[5] 본인이 답이 안보이는 강진 2군 생활에 지쳐서 방출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당시 넥센의 강진 2군은 말 그대로 바닷가에 컨테이너 몇 개 갖다 놓고 끼니마다 식대 2천원짜리 밥먹이던 그야말로 답이 없는 유배지였다. 당연히 제대로 된 재활은 꿈도 못 꾸는 상황. 부상으로 다쳤던 팔꿈치가 제대로 재활이 안돼서 3년동안 제대로 투구를 못하고 있었다.[6] 당시 정명원 2군 투수코치가 김진성을 안타까워해서 NC 다이노스에 입단 테스트를 보라고 추천해 줬다고 한다.[7] 1분 14초에 잠깐 나온다.[8] 포크볼을 포함한 스플리터 계열 변화구 비중은 마무리를 맡았던 2014 시즌 이래로 25% 안팎의 비율로 던지다 2017 시즌 40.5%로 구사율이 확 뛰었고, 2018 시즌 47.3%, 2019 시즌 36.5%를 기록했다. 또다른 변화구인 슬라이더는 꾸준히 15% 안팎의 비율로 섞어 던지고 있다.[9] 2015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했다가 복귀한 이후로 피홈런이 급증했으며, 이는 다음 시즌까지도 이어졌다.[10] 특히 2016 시즌 후반기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11] 다른 한 명은 최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