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0 18:22:31

정삼흠


파일:정삼흠.jpg 파일:external/news.donga.com/32049650.3.jpg
이름 정삼흠(鄭三欽)
생년월일 1961년 11월 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고성군
학력 명지고-고려대 (중퇴)[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85년 1차지명 3순위(MBC)
소속팀 포항제철 (1984)
MBC 청룡-LG 트윈스 (1985~1996)
지도자 경력 LG 트윈스 투수코치(1997~2003)
장쑤 호프스타즈 총괄코치(2016~2017)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0 1994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MBC 청룡 시절2.3. LG 트윈스 시절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KBO 리그 선수. 포지션은 투수. 야간 경기에 강해서 "부엉이"라는 별명이 있다. 안경 쓴 게 부엉이 닮았다고 붙여졌다는 말도 있는데 나름 닮았다.

LG 트윈스가 "신바람 야구"를 이끌며 리즈 시절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의 에이스로, 뒤늦게 터진 김태원, 신인 이상훈[2], 소방수 김용수와 함께 LG의 마운드를 이끌었다. 최고 145km/h 내외의 빠른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었지만 전성기 때에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완급 조절에도 능한 모습을 보였다.

특유의 심리전과 체인지 오브 페이스 덕분에 90년대의 두뇌파 에이스 하면 빠질 수 없는 투수이기도 하다. 장호연-양상문 이후 KBO 아이큐 피쳐의 대표주자.[3]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지금은 야구부가 존재하지 않는 명지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4] 문제는 명지고 야구부가 당시 고등학교 야구부들 중에서는 약체였다는 것. 그래서 고려대학교(경제학과 1981학번,중퇴)로 진학하고 난 뒤 투타를 오가며 열심히 뛰었음에도 선동열-안언학-한영준 등의 더 힘세고 강했던 유망주급 동기들에 묻혔다. (..)[5]

거기다 이미 들어와 있던 선배들, 그리고 그 뒤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도 치이던 정삼흠은 팔꿈치 부상으로 신음해야 했고, 이것은 정삼흠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정삼흠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1981학번,중퇴)를 중퇴하고 1984년 일종의 파견 형식으로 한국실업야구포항제철에 입단해 실업 신인왕을 수상하고 1985년 드래프트에서 MBC 청룡에 입단하게 된다.

2.2. MBC 청룡 시절

첫 해에 선발과 계투를 겸업한 정삼흠은 무려 192이닝을 소화한다. 고려대 동기인 선동열과의 취중 대결도 이 때 벌어졌는데, 전날 둘이서 술을 왕창 마신 다음[6] 취한 상태로 등판. 그리고 그 결과 정삼흠은 7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고, 선동열은 완봉승 (..) ..무 무서운 남자! “새벽까지 아무리 먹여도 다음 날 보면 싱싱하니, 결국 나만 망가졌지 뭐.”- 정삼흠의 회고#

1988년 시즌 종료 후 새로 취임한 배성서 감독이 강압적인 스파르타 훈련을 강행하자[7] 이에 반발해서 여기가 공산당입니까?라는 공개 발언으로 항명하기도 했다.[8] 이런 하극상 때문에 1989년은 시즌 후반부가 되어서야 겨우 출장했을 정도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배성서 감독은 선수단과의 갈등과 성적 부진으로 시즌 종료 후 백인천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다만, 1989년 9월 24일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동대문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세이브를 거뒀는데, 당시 선발승을 거뒀던 김태원은 이 날 열린 동대문야구장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2.3. LG 트윈스 시절

파일: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jpg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은 팀을 "LG 트윈스"로 바꾸었고, 백인천이 선수들의 지지를 받으며 첫 감독이 되었다. 백인천은 정삼흠에게 고정 마무리 투수 자리를 주었고, 8승 23세이브를 거두며 기대에 보답했다. 그리고 첫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2차전(연장 끝에 10회말 밀어내기승)을 제외한 나머지 3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마지막 4차전에서 삼성의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우승의 순간을 마운드에서 함께 했던 것도 정삼흠이었다.

파일:LG4인방.jpg
왼쪽부터 정삼흠, 노찬엽, 김용수, 김상훈

그 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연속으로 두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선발의 한 축으로 뛰다, 나이가 들어 부진하자 1996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의 최다패 기록을 경신한다. 후문으로는 사실 2-3년 더 뛸수 있었는데, 이후의 감독직을 노리고 코치경력을 쌓기 위해 일찍 은퇴했다고 한다. 코치를 거부하고 현역을 연장하려던 김용수와는 대조적인 부분.

통산 성적은 12시즌 106승 121패 47세이브 1,894.2이닝 ERA 3.62 50완투 11완봉승.

3. 지도자 경력

현역에서 깨끗하게 물러난 정삼흠에게 LG 트윈스는 코치직을 제안했고, 정삼흠은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트윈스가 기대한 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한 채 LG를 떠나게 되었다.[9] 당시 외야수로 잘 뛰던 심재학에게 투수 전향을 꼬드겨서 커리어를 망친 것도 코치 정삼흠이다! 물론 천보성감독의 지시가 있긴 했지만. 심재학 항목 참조.

2004년에는 SUPER ACTION에서 일본프로야구 해설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신일고, 부천고 감독을 지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선수 스카우트와 관련한 비리 문제로 구속되었던 일로 인해 사실상 지도자로 다시 서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2012년 12월 현재 성남 분당구 야탑동의 한 야구교습센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자세한 상황은 해당 지역 주민의 추가바람.

2016년 10월 현재 중국야구리그 장쑤(江蘇) 천마팀에서 총괄코치로 활동 중이며 내년에 4년 정식계약을 체결하기로 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7년 5월 초 팀 운영과 성적을 둘러싼 장쑤성 측과의 시각차가 주요 원인으로 인해 퇴임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5 MBC 청룡 41 192⅔ 9 12 5 0 3.13 169 84 99
1986 18 52⅔ 1 2 1 0 4.61 57 38 21
1987 33
(4위)
195⅓ 6 13 2 0 2.86 171 80 85
(5위)
1988 27 139⅔ 5 16 0 0 5.67 163 75 43
1989 21 100⅔ 5 7 3 0 3.67 92 51 3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0 LG 트윈스 55 168⅓ 8 9 23
(2위)
0 2.78 133 66 85
1991 39 180⅔ 12 15 8 0 4.18 176 59 114
1992 46
(2위)
180⅓ 14 11 5 0 4.04 172 79 128
(5위)
1993 30 198⅔
(2위)
15
(2위)
11 0 0 2.99 184 64 93
1994 27 186⅓ 15
(5위)
8 0 0 2.95 173 54 76
1995 26 163 8 9 0 0 3.81 154 72 82
1996 25 136⅓ 8 8 0 0 4.29 139 68 76
통산 12시즌 388 1,894⅔
(6위)
106 121 47 0 3.62 1783 790 939

[1] 경제학과 1981학번,1983년 까지 이후 중퇴[2] 두 선수와의 공통점이 있다면 LG시절 장발로 마운드에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3] 기자들과 훌라를 쳤는데 계속 이기자 기자들이 서로 짜고 쳤는데, 거기서도 이기자 기자들이 두뇌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일화가 있다(...)[4] 보통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이 초~중학교 때부터 야구에만 몰두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삼흠의 경우는 대단히 늦은 편이다.[5] 나중에 정삼흠이 프로에서 나름 활약하자, 고려대학교 고위 관계자가 야구팀 코칭스텝에 "저런 재목감을 왜 4년간 썩힌거냐?"며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6] MBC 청룡 감독선동열의 컨디션을 영 좋지 않게 만드려고 지시했다고 하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인과 관계가 제대로 확인된 건 아니니, 설레발은 금물.[7] 참고로 배성서 감독은 이현세의 만화 외인구단에 나오는 캐릭터인 손병호 감독의 실제 모델이다.[8]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있는데, 김재박, 이광은, 신언호 등 고참 선수들이 배성서 감독의 강압적인 훈련을 꺼려했고, 당시 주장이던 김재박은 배성서가 자신의 대학 시절 스승이었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신진급인 만만한 정삼흠을 사주하여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는 카더라도 있다.[9] 2003년 김재현이 음주측정 거부로 입건 되었을때 김재현의 차량에 같이 동승했었는데,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시즌 후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