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1-24 08:25:31

한국실업야구

한국의 야구 리그
구분 명칭
프로 1군 KBO 리그
2군 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 남부리그
독립 한국독립야구리그
KIBA 드림 리그 /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
실업 한국실업야구
아마추어 사회인 KBO 챌린저스 / 권역별 지역대회
여성부 한국여자야구대회
학생 · 유소년 대학 한국대학야구
대학야구 주말리그 & 패넌트레이스 / 전국대회 / 대통령기 / 협회장배
고교 고교야구 주말리그
대통령배 / 봉황대기 / 청룡기 / 황금사자기 / 협회장기 / 명문고 야구열전
중학 대통령기 중학야구대회 외 2개대회
초등 박찬호기 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외 3개대회
리틀야구 리틀야구 주니어부/리틀야구 리틀부


1. 개요2. 역사3. 참가했던 팀4. 역대 대회5. 과거 관련 대회6. 역대 참가팀7. 역대 코리안시리즈 우승팀/준우승팀

1. 개요

본래 실업야구란 직장을 다니는 전문선수와 비전문선수들의 야구지만, 이미 1960년대에 국내 실업리그는 해당 회사의 소속으로 활약하는 전문선수들만의 야구였다.[1] 프로선수들과의 차이는 해당 기업에 신분을 갖고 있다는 것. 요컨대 은행팀에 있던 선수는 은퇴하고 은행의 대리로 일하게 된다. 1980년대 이전에는 프로야구리그가 없었기때문에 실업야구가 프로야구의 역할을 맡았지만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로 좀더 급여수준이 높은 프로야구로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고, 대중매체들도 프로야구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실업야구의 인기와 인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인기가 팍 식었다해도 은퇴 후 직장이 있다는 것이 안정적이라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부러 실업팀에 입단하는 선수도 있었다. 어떤 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2]

2014년 이후 실업야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가, 2017년 12월 13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용 회장에 의해 부활이 공식 발표된다. 그러나 여전히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2. 역사

한국실업야구/역사 문서 참조.

실업야구의 모태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 참가했던 팀

실업리그에는 연고지가 확정된 정회원과, 지역연고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구단인 준회원으로 나누었다.

여담으로 시민야구단은 프로축구에서 말하는 시민구단과는 다른 개념인데,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고 월급도 지급하는 시민구단과 달리 지자체에서는 장소만 제공해주고 구단 운영은 한국실업야구연맹에서, 선수들의 월급은 각 기업에서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정회원
구미시민야구단 논산시민야구단 보은 블루웨이브 부천시민야구단 청주시민야구단
준회원
원주시민야구단 울산시민야구단 군산시민야구단

4. 역대 대회

  • 한국실업야구연맹이 출범한 이후인 2010년부터 기재합니다.
2010년 지식경제부장관배 제 1회 전국실업야구 선수권대회
2011년 에티하드 항공 2011 실업야구 춘계리그
동양강철 2011 실업야구 하계리그
대전일보 2011 실업야구 추계리그
MSP에너지 2011 실업야구 챔피언쉽
2012년 충청권 종합야구선수권 대회
동양강철 2012 실업야구리그
2014년 제1회 KBO총재배 직장인 야구대회
2015년 KBO기 전국 직장인 야구대회 [3]
  • 폐지된 대회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더 자세한 내용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

5. 과거 관련 대회

대회 명 존속기간
대통령배쟁탈 전국실업야구 리그전 1960년 ~ 2002년
백호기쟁탈 종합야구선수권대회[4] 1955년 ~ 2008년
부산시장기쟁탈 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74년 ~ 1982년
서라벌기쟁탈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79년 ~ 1996년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83년 ~ 2002년

6. 역대 참가팀

7. 역대 코리안시리즈 우승팀/준우승팀



[1] 다만 소속팀에 따라 오전근무는 형식상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2]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성공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극 소수 였기 때문에, 차라리 좋아하는 야구를 하다가, 가늘고 길게 가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90년대 후반 imf사태 이전 까지는 평생직장이 보장되던 시절이기도 해서 그렇기도 했다.[3] 우승팀 : 대전도시공사 야구단[4] 경향신문, 대한야구협회주최인 대회였다. 1998년부터는 경향신문이 주최를 포기하여 백호기라는 이름이 사라지면서 종합선수권대회로 변경. 이후 프로야구 2군 팀들을 끌어들여 활성화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2008년을 끝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