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7:40:44

한국실업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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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현황3. 역사4. 대회
4.1. 역대 대회4.2. 과거 관련 대회
5. 참가 구단
5.1. 현재5.2. 역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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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래 실업야구란 직장을 다니는 전문 선수와 비전문 선수의 야구지만 이미 1960년대에 국내 실업 리그는 해당 회사의 소속으로 활약하는 전문 선수만의 야구였다.[1] 프로 선수와의 차이는 해당 기업에 신분을 갖고 있다는 것. 요컨대 은행 구단에 있던 선수는 은퇴하고 은행의 대리로 일하게 된다.[2]

1980년대 이전에는 프로 야구 리그가 없었기 때문에 실업 야구가 프로 야구의 역할을 맡았지만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로 좀더 급여 수준이 높은 프로야구로 선수가 대거 빠져나갔고, 대중 매체들도 프로야구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실업야구의 인기와 인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인기가 팍 식었다 해도 은퇴 후 직장이 있다는 것이 안정적이라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부러 실업 구단에 입단하는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80년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전 우익수였던 백재우가 있다. 백재우는 전주고-원광대를 거쳐 해태 1차 지명을 받았으나 해태 입단 대신 한전에서 오랜 기간 강타자로 활약했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성공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극소수였기 때문에 차라리 좋아하는 야구를 하다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선수도 많았다. 1990년대 후반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이전까지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일단 입사만 하면 망하지 않는 이상 평생 직장이 보장되던 시절이기도 해서 그렇기도 했다. 물론 평생 직장 개념이 공무원과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사라지면서 실업야구의 인기는 급속하게 식어갔다.

프로야구와 실업야구가 모두 존재하던 시기에는 프로-아마추어 양측 간의 갈등도 심했는데 1997년 이전에는 대한야구협회가 프로야구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아마야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할 수 없도록 했고 그 연장선상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상무 입대도 불허하던 강경책을 썼다. 초창기 프로야구가 툭하면 선수 병역 비리와 이중 계약 파동으로 몸살을 앓았던 이유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프로와 아마의 갈등이 해소되던 1998년부터 프로 출신도 상무 야구단 입대가 가능해졌다.

2. 현황

2002년 모든 실업 야구단이 해체되면서 한국에서 실업야구라는 체제는 소멸됐다. 이에 야구계는 지속적으로 실업야구 부활을 시도했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부활을 시도하였으나 2012년 이후로 공식 대회가 없는 상황이다. 2017년 12월 13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용 회장에 의해 부활이 공식 발표되어 2019년 12월 신규 야구단 창단을 통해 2020년 다시 공식 대회를 열었으나 이후 모든 대회가 취소되어 2023년 현재는 다시 도약에 실패한 상황이다.

2010년대 이후 실업 야구는 사실상 실업 야구의 이름을 빌린 독립 야구에 불과한 실정으로 독립 리그인 독립야구단 경기도리그에 비해 규모나 조직력이 약하다. 천안 메티스의 경우 KBO 챌린저스 직장인 야구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사회인야구팀 기반으로 창단했다. 실업야구는 본래 기업에 소속되어 급여를 받는 직원이어야 하나 이름과는 다르게 현재 현대제철을 제외한 기업들의 참여가 없다.

2022년 초 다시 한 번 부활을 시도하여 아래 나열된 실업야구단들 위주로 2023년 한국실업독립야구리그를 발족하기로 결의했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흐지부지된 상태다. 이후에도 K2 한국실업야구리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2024시즌 선수모집을 알리는 내용이 나오며(오늘부터 아마야구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게재됨) 여전히 부활의 여지를 주고 있지만 계획이 계속 수정되고 있고 참가 팀의 면면도 바뀌고 있어 정상 진행 여부는 회의적이다.

3.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실업야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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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회

4.1. 역대 대회

  • 한국실업야구연맹이 출범한 이후인 2009년부터 기재합니다.
2009년 제1회 실업야구선수권대회
제1회 한-일 실업야구 친선 교류전
2010년 지식경제부장관배 제1회 전국실업야구 선수권대회
2011년 에티하드 항공 2011 실업야구 춘계리그
동양강철 2011 실업야구 하계리그
대전일보 2011 실업야구 추계리그
MSP에너지 2011 실업야구 챔피언쉽
2012년 충청권 종합야구선수권 대회
동양강철 2012 실업야구리그
2020년 2020년 천안시야구소프트볼협회장배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4.2. 과거 관련 대회

대회명 존속 기간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백호기) 1955년~2008년
대통령배쟁탈 전국실업야구 리그전 1960년~2002년
부산시장기쟁탈 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74년~1982년
서라벌기쟁탈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79년~1996년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1983년~2002년

5. 참가 구단

5.1. 현재

5.2. 역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실업야구/역대 참가 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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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다만 소속 구단에 따라 오전 근무는 형식상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2] 은행 구단에서 뛰던 선수들은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김응룡 감독이 이 당시 돈 세는 업무 담당이라 돈 세는 데는 도가 텄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전 한국은행, 한국산업은행, 기업은행 모두 남자농구단을 가지고 있었고 상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제일은행 등은 여자농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3] 2019년 창단[4] 2019년에 창단했으나 끝내 사실상 와해되며 인천 지역으로는 새로이 팀이 생기게 된다.[5] 당초에는 계양 비추온즈로 참가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