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0 00:25:37

이상목

이상목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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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1번
결번 이상목(1990~1993) 김경호(1995~199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4번
박선일(1989~1993) 이상목(1993~1998) 최호원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정경훈(1996~1997) 이상목(1998~2002) 조규수(2003~200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조규수(2002) 이상목(2003) 박정진(2004)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김영수(2000~2003) 이상목(2004) 이정민(2005~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변인재(2004) 이상목(2005~2007) 이웅한(2008~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
제이미 브라운(2006~2007) 이상목(2008) 백정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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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상목 이도형.png
영광의 한화 이글스시절, 이도형과 함께.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60408182157001.jpg
망해버린 롯데 자이언츠시절.
파일:/image/111/2008/07/17/1214543050228_1.jpg
선수생활의 시작과 끝이였던 삼성 라이온즈시절.
이름 이상목(李相睦)
생년월일 1971년 4월 2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출신학교 대구수창초-경복중-성광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1990~1993)
한화 이글스(1993~2003)
롯데 자이언츠(2004~2007)
삼성 라이온즈(2008)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주요 성적5. 트리비아

1. 개요

포크볼의 황태자[1]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투수.

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14105532309.jpg
당시 빼빼마른 프로 데뷔시절

원래는 삼성 출신(1990년 삼성 데뷔)이며 1993년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삼성에서의 성적은 승패없이 23이닝 소화, ERA 4.70을 기록하였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03년 2인자.png
또 다른 무관의 투수왕

이후 빙그레-한화에 몸담은 동안 전성기를 누렸었다. 1994년 첫 승을 신고하였다.

1996년 아쉽게 9승으로 10승은 실패하였지만 탈삼진 TOP 5에 랭크 되었었다.

1999년에는 한화에서 우승 경력이 있다. 이 해 성적은 14승 8패 ERA 4.20.[2][3][4][5]

이후 부상으로 3년 간 드러누웠다가 2003년에는 15승, 평균자책점 3.55로, 정민태와 다승 경쟁을 하기도 했으나, 17승과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기록한 정민태에게 골든 글러브와 다승왕 모두 빼앗긴다. 그러나 이후 정민태는... 이 때가 그의 야구인생 커리어 하이였다.#

한화에서의 최종성적은 72승[6] 88패 ERA 4.43을 기록하면서 롯데로 이적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시절

파일:external/file2.cbs.co.kr/26162746000_61000010.jpg
이때부터 롯데의 FA 잔혹사가 시작되고...
이상목은 뭐 2006년에 12승이라도 했지, 정수근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3 시즌 종료 뒤 4년 총액 22억 원의 FA 계약으로 큰 연봉을 받고 정수근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지만,[7] FA 이적 첫 시즌인 2004년 3승 9패로 시원하게 시즌 말아먹고 향후 밑에 서술할 DDSM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2005년과 2006년에는 몸값에는 못 미쳐도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여 주지만(특히 2006년은 12승) FA계약 마지막 해인 2007년 1승으로 정말로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FA계약 4년 동안 22승 28패로 승당 1억 꼴.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2014년까지 역대 외부 영입 투수 FA 가운데 가장 성공작이다. 진짜다(...). 2013년 FA 시장부터 낀 어마어마한 거품 탓에 꼴랑 1억만으로 1승씩이나 해줄 수 있는 외부영입 투수 FA는 더 이상 없을 지 모른다 오오 가성비의 제왕 이상목 결국 손승락이 와서야 투수 FA 잔혹사를 해결한다.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는 재계약 포기. 결국 자신의 고향 팀이자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로 연봉 1억원에 이적했다.

2.4. 삼성 라이온즈 2기 시절

파일:삼상목.png
은퇴직전 마지막 생명줄을 잡고...[8]

2008년 8월 2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막아 타선의 도움 덕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9]

사실 통산 99승, 2008 시즌 5승[10]을 하기 까지만 하더라도 100승을 눈앞에 뒀으나 몇번의 아홉수에 무릎을 끓었지만 선동열 감독의 믿음으로 2008 후반기에서 시작된 첫 경기인 히어로즈전에서 승리해 8전 9기 끝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참으로 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인지, 성준이 못다 한 100승을 그가 올렸다. 만일 히어로즈전마저 승리하지 못했다면 평생 100승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11] 이것으로 인해 삼성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한 또 하나의 반전을 쓰며 조건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의 포크볼을 볼 수 없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회에 5실점했었는데, 시즌 종료 후 그것 때문에 방출한 데다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피칭을 할 수 없어서 은퇴했다는 점이 기정사실일 듯. 다행인 점은 친정 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것과, 그 시즌을 6승으로 장식한 점.[12] 무엇보다 100승을 찍었다는 것.

통산 성적은 439경기 100승 122패 25세이브 1,830⅔이닝 1,231K ERA 4.30

통산 성적만 놓고 보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고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그의 주무기는 바로 낙차 큰 포크볼이다. 포크의 왕자, KBO 역대 최강의 포크볼러 로 불릴 만큼 대한민국에서 포크볼 활용을 잘 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동양인은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다'라는 야구계의 속설이 있었는데[13], 그 속설을 일본에서 타파한 선수는 노모 히데오였으며, 대한민국에서 타파한 선수는 바로 이 선수. 이상목이였다.[14][15]

최고 구속은 약 145km/h 정도. 그리고 포크 외에도 싱커,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등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다. 마구마구 보고와서 너클볼도 던질 줄 안다 주장하는 촏잉은 없길 바란다

또 BB/9(9이닝을 던졌을 때 볼넷 허용 개수)는 2.00으로, 역대 4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제구력을 자랑했다. 제구가 되는 포크의 무서움이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볼넷이 역대급으로 적은 건 제구력이 뛰어나다기보다 원체 투구 스타일이 볼넷 내주느니 안타 맞는다는 식으로 공격적이다 보니 나온 기록으로, 구종 자체는 다양했지만 포크볼 외에는 위력이 평균에서 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긁히는 날엔 1,2선발 안 부러운 이닝이터였지만, 포크볼 커맨드가 안 되는 날은 끝도 없이 연타를 허용하는 등 피칭의 기복이 꽤 있던 투수였기 때문에 통산 기록에서 손해를 좀 본 케이스.

4.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삼성 9 23 0 0 0 - - 4.70 21 1 15 6 15 12 1.57
1991 1군 기록 없음
19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빙그레 16 46⅔ 0 2 2 - 0.000 4.82 50 5 16 22 26 25 1.37
1994 한화 37 128 5 8 5 - 0.385 4.01 127 14 34 77 60 57 1.23
1995 32 134⅓ 7 8 5 - 0.467 3.75 129 12 40 112 60 56 1.24
1996 33 174⅔ 9 13 2 - 0.409 3.97 176 10 46 156
(5위)
92
(1위)
77
(4위)
1.24
1997 38 138 6 10 0 - 0.375 4.30 150 19
(4위)
41 101 76 66 1.35
1998 38 174⅔ 9 17 2 - 0.346 4.84 198
(1위)
23
(1위)
41 145 104
(1위)
94
(1위)
1.35
1999 31 172 14 8 2 - 0.636 4.29 161 26
(4위)
37 140 86 82 1.11
2000 1 1 0 0 0 0 - 0.00 2 0 0 1 0 0 2.00
2001 40 101 7 8 5 3 0.467 4.90 125 12 34 69 69 55 1.53
2002 30 62 0 7 3 2 0.000 6.10 70 13 16 47 43 42 1.32
2003 33 185⅓
(3위)
15
(2위)
7 1 1 0.682 3.54
(5위)
203
(1위)
18
(공동 4위)
33 118 78 73 1.2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롯데 19 87⅔ 3 9 0 0 0.250 5.03 112 16 23 51 58 49 1.46
2005 17 101⅓ 6 7 0 0 0.462 3.02 88 8 23 69 35 34 1.03
2006 23 138⅔ 12 8 0 0 0.600 3.25 132 17
(공동 4위)
28 50 63 50 1.12
2007 11 37⅔ 1 4 0 0 0.200 6.69 56 4 14 14 30 28 1.8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삼성 31 124⅔ 6 6 0 1 0.500 5.34 152 8 38 53 79 74 1.45
KBO 통산
(17시즌)
439 1830⅔ 100 122 27 7 0.450 4.30 1952 206
(공동 5위)
479 1231 974 874 1.29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한화 이글스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KBO 통산
(1시즌)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5. 트리비아

  • 별명은 DDSM, 대런 드라이포트 상목이다. 즉, 롯데에서의 먹튀를 뜻하는 별명. 2008시즌에는 투수 내에서의 고참을 뜻하는 '상목이 형님', 모기햄이 있으며 상목신 혹은 상먹신, 디디상목이 있다.
  • 여담이지만 삼성에서 마지막으로 뛸 때의 29번은 김시진(전 롯데 감독)이 현역 시절 썼던 등번호이다. 2009년부터 백정현이 사용하고 있다.
  • 2009년 8월 26일 그의 100승 1주년인 대구 경기에서 삼성은 롯데를 10:1로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같은 29번인 백정현은 등판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8월 27일 백정현은 구원 등판해서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 2009년 김현욱 코치가 운영 중인 카페에서 김현욱의 댓글을 보면 그가 은퇴 후 무엇을 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신문 기사로 들린 소식으로는 사회인 야구 쪽에 몸담고 있다고 한다. 정경훈의 소개로 탑건설 마에스트로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로 뛰면서 동작구 대방동에 야구 교실을 열어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야구 지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리그를 초토화시키는 에이스로 거듭났다(...).#
  • 이후엔 다시 사회인 야구 동호회인 <호투맹타> 팀을 새롭게 창단, 2010년 첫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IB Sports 해설위원으로 현재 활동중인 이여상과 회사원,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들이 활동하는 모임이다. 관련기사
  • 영화 해운대에서 이대호설경구에게 돼지새끼라고 욕먹은 그 경기에서 1루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으로 짤막하게 한 컷 나왔다. 나도 천만배우

[1] 아래에 서술된 내용이지만 포크볼을 잘던져 슬라이더는 선동열, 커브는 최동원, 포크는 이상목이라는 말이 있다.[2] 이때 한화의 3선발로 활약했다. 한화의 그 해 우승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선발로 18승으로 커리어 하이였던 정민철(18승), 2선발로 부활한 송진우(15승), 그리고 이상목 이렇게 강력한 3선발이 등판했을 때는 전력을 다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돌려막았다.[3] 그리고 계투 중 미더운 사람은 마무리 구대성밖에 없었다. 나머지 중간계투들은 ERA 5점대는 기본이요 6점대, 7점대까지 가는 막장 평균자책점으로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면 팀 사정상 선발 중간계투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출장해 91이닝을 던진 25세의 영건, 김해님 정도(4.87)[4] 그래서 앞의 3선발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먹고 내려가면, 믿음직스럽지 못한 불펜진들이 실점을 불사하고 1~2이닝쯤 소화하면 구대성이 남은 이닝을 처리하는 식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제이 데이비스, 댄 로마이어, 장종훈, 이영우, 송지만 등 강렬한 타선으로 미리 상대 선발을 털기도 조지기도 하였다.[5] 어쨌든 그렇게 승률 6할이면 우승도 넘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명 3승 2패 전략으로 결국 우승. 그러나 이 시즌 승률은 .554였고, 승률 6할을 넘긴 팀은 한 팀도 없었다.[6] 개인 통산 100승중 72%를 한화서 기록한셈.[7] 여담으로 이 때 보상선수가 지금 KIA 타이거즈에 있는 신종길이다. 신종길이 한화로 보상선수 이적했던 시즌에 사이클링히트까지 치면서 롯팬들은 뒷 목을 잡게 되었다.[8] 사진 상황이 당시 선동열 감독이 조진호와 이상목을 후보로 두고 결국 이상목을 4선발로 낙점하였는데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상황이였다.[9] 이는 프로 데뷔 19시즌 만에 100승을 달성한 것으로, 최다 시즌 100승 달성자라는 심히 아스트랄한 기록을 세운다. 그래도 달성한 게 어디야... 성준처럼 딱 3승 남겨놓고 은퇴한 케이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달성하지 못한 거보단 나았다(...).[10] 이 5승을 할 때까지는 사실상 팀 내 에이스였다.[11] 물론 그가 한화에 있었을 때에는 한화의 암흑기였던지라 승수 손해를 본 적이 많았다.[12] 2007 시즌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이다.[13] 포크볼 등은 손가락이 길어야 유리한데,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손가락이 짧아서라는 이유.[14] 이상목의 손가락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한다.[15] 그러나 사실 포크볼이라는 구질 자체가 유래는 미국이지만 가다듬고 발전시킨 곳은 일본이다. 미국 쪽에서는 포크볼은 잘 안던지고 스플리터를 주로 구사하는데, 이쪽 역시 손가락이 잘 벌어지고 길수록 구사가 쉽고 무브먼트도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