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2 16:29:58

김해님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6600>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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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M_SUN.jpg
한화 이글스 No.72
김해님(金해님 / Hae-nim Kim)
생년월일 1975년 2월 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학력 홍릉초 - 청량중 - 한서고 - 인하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9라운드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7~2007)
지도자 성남고등학교 투수코치 (2008~2009)
서울 해치 투수코치 (2010)
경북고등학교 투수코치 (2011~2013)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7)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7~2019.6.24)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19.6.24~ )
프런트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 (2013~2016)

1. 개요2. 프로 생활3. 지도자 시절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image/001/2005/04/24/kp1_2050424p1165.jpg
김태양 김달님은 없나요 이태양은 있어요

한화 이글스투수이자, 現 한화 이글스 불펜코치.

한서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한화 이글스 역대 최악의 흉작이라는 1997년 드래프트에서 2차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2007년까지 10여 년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만 활약했다.

140㎞/h 초반의 최고 구속과 커브로 맞춰 잡는 투수였기 때문에 크게 돋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소금같은 역할을 해 주었던 좋은 선수였다.

여담으로 한서고 야구부 출신 중에서 프로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1][2]

2. 프로 생활

파일:1515687296977.jpg

1997년 프로 입단 첫 해부터 가능성을 보이며 중간계투로 1군에서 활약했다. 이 시즌 성적은 41경기 60⅓이닝 3승 2패 1세이브 ERA 3.73. 1998, 1999년에도 중간계투로 계속 등판했으나 성적은 방어율 5점대, 4점대로 그렇게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1999년 한화 이글스첫 우승 때 유일하게 쓸 만한 중간계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에 최악의 방어율인 7.86을 기록하며 군입대를 결심했다. 2000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해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전역했는데 말년 때 살이 엄청 붙어 운동 능력이 확연하게 떨어졌고, 속구 구속도 130km/h대에 머물며 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3년에는 1군에 콜업되지 못했고, 2004년 정말 열심히 운동한 끝에 싱커를 익혔고 구속도 140km/h 중반대로 끌어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이 시즌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고, 2004년 5월 26일 5⅓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다. 이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부정 선수로 출장을 했다. 이 때에 주심과 기록원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종료 후 적발.

2005년에 선발로 큰 활약을 보이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비록 10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 시즌 성적은 1군 32경기 128⅓이닝 ERA 4.28. 이 활약을 바탕으로 준 플레이오프의 선발로 나서기도 했었다.[3]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지연규의 투혼이 돋보였던 5차전에 등판하여 삼성의 젊은 중간계투진과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2007년에는 13경기 14이닝에 그치며 별 기회를 받지 못했고 시즌 후 32세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방출되며 은퇴하였다.[4]

여담으로 성적과는 별개로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한화 팬들에게 인상적이었던 선수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2008년부터 성남고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일본 독립 리그 팀인 코리아 해치의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코리아 해치가 공중분해된 후에는 빙그레/한화 선수 출신인 강정길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던 경북고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스카우트로 재임했다.

하지만 롯데 스카우트 시절은 그야말로 악평 일색. 2014년 드래프트 때는 부산고 3학년 때 단 1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한 김재열(지명 당시 이름은 김태석)을 2차 7순위로 지명했고[5] 2015년 드래프트텍사스 레인저스에서부터 제대로 던지지도 못했던 투수 안태경을 2차 1순위로 지명하여 날려먹고,[6]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즉전감 해외파 출신이라며 코리아 해치에서 뛰던 일본 독립리그 출신 석지형[7]을 뽑지 않나, 2016년 드래프트에서는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실력을 보지도 않고 좌완을 무려 7명 뽑지를 않나.. 그 농사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있다.[8]

2016 시즌 후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9년 만에 친정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중 김성근 사임 이후 김성근 사단이 모두 나가면서 1군 불펜코치로 승급되었다.

2019년 5월 7일 SK행복드림구장 SK 와이번스 3차전 원정경기에서 열린 경기 도중에 홈 팀인 그라운드 키퍼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일요신문의 단독 취재로 뒤늦게 들통났다. 이후 엠스플뉴스도 이어서 보도되었다. 상황은 이렇게 되었다.

김해님 코치는 "3루 측 불펜 문앞에 있었는데 이동이 불편했고 경기를 보기도 어려워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키퍼도 자기가 할 일이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감정 싸움이 일어났다"라며 한화 이글스 구단은 다음날 5월 8일 사과를 했으며 클린베이스볼센터에 곧바로 신고했다고.. . 한편 건물에 가두고 폭행했다는 데는 강력 부인했다. 멱살을 잡은 상황에서 팬들이 보고 있어 몸싸움 도중 통로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한편 SK 와이번스 관계자는 “당일 운영팀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확인에 들어갔더니 당사자들끼리 이야기가 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합의가 됐다고 안 상태였다”고 확인하면서 “해당 아르바이트생은 지금도 계속 같은 임무를 하고 있다. 해당 학생이 언론에 제보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라운드 키퍼인 5월 31일 경기전 피해를 입은 아르바이트생은 "기사에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고 싶었고, 사건이 끝났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5회말 그라운드 카를 불펜 문 쪽에 대기시켰다. 그 때 코치님이 투구하고 있는 투수들의 공에 맞을 수 있다고 비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2아웃이 되면 알려주기로 했고,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2아웃이 된 뒤 투수가 피칭을 하다가 손에서 글러브를 뺀 순간, 다시 문 앞으로 갔다. 이후 시비가 붙었다. 하지만 기사에 나온 것 처럼 난 욕을 한 적이 없다. 거친 말은 맞지만, 오해로 인해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멱살을 잡았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코치를 잡은 것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5월 31일 열린 KBO 상벌위에서 경고를 받았다.

[엠스플 이슈] ‘코치의 알바생 폭행 사건’, 한화 단장 “합의했는데 무슨 경위서?” - 엠스플뉴스
[스포츠타임 현장] 김해님 코치 폭행 시비, “폭행은 사실, 8일 오전에 합의” - 스포티비뉴스
[SC이슈추적] '불펜 폭행 사건' 피해자 "사건 알리기 싫어 이미 합의, 악감정 없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7 한화 이글스 41 60⅓ 3 2 1 0 3.73 43 32 36 1.16
1998 35 60⅓ 2 1 0 0 5.07 60 35 34 1.44
1999 41 92⅓ 3 5 3 0 4.87 93 41 70 1.41
2000 26 36⅔ 1 1 0 1 7.85 53 19 25 1.86
200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2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23 90⅓ 5 3 0 3 5.58 109 45 43 1.61
2005 32 128⅓ 6 8 1 2 4.28 152 40 61 1.42
2006 36 55 1 3 0 4 4.58 67 16 23 1.47
2007 13 14 0 0 0 0 1.93 12 7 7 1.21
KBO 통산(8시즌) 247 537⅓ 21 23 5 10 4.84 589 235 299 1.45

5. 관련 문서




[1] 한서고 야구부는 경기도 고양시에 자체 야구장까지 보유할 정도로 재단의 투자가 강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학교였다. 김해님 이전에는 창단 초기 에이스였던 김민국이 그나마 가장 많이 뛴 축에 속한다.[2] 이후 어렵게 스카웃해 왔던 오승환, 채병용 등이 각각 경기고신일고로 전학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투자에 비해 성적이 나지 않으면서 재단의 관심이 점점 식어버린 가운데 2005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해민이 신일고로 전학했다. 유일한 현역 선수였던 홍명찬마저 2015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어 한서고 졸업생 출신 선수는 더 이상 남지 않게 됐다.[3] 3차전에 선발로 출장했는데 1이닝 2실점하고 물러났다. 이후 등판한 최영필이 7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은 승리했다.[4] 이 시절 김인식 한화 감독에게 찍혔다는 카더라가 있다.[5] 김재열은 입단 후 2년 동안 2군 기록이 없었고, 이후로도 참담한 성적을 낸 채 2017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 물론 서진용처럼 고교 별로 안던진 투수를 포텐을 보고 상위 지명하기도 하지만, 그걸 정확히 파악해내는게 스카우트의 일이고 실패 시의 책임과 비난은 당연하다.[6] 같은 해외 리턴파 장필준을 고를수 있었음에도 거르고 뽑은건데, 장필준이 삼성 불펜진의 핵심이 된 반면 안태경은 3년도 못 써먹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다. 아마 안태경이 부산고 당시 1차지명 후보로 꼽히다 미국행을 했던 선수였기에 당시의 포텐을 믿고 뽑았겠지만, 현재 폼을 파악하지못한 처사임엔 틀림없다.[7] 김해님과 코리아 해치 코치 시절 같이 있었던 인연으로 뽑았다는 말이 있다. 결국 뽑은 지 2년 만에 폐기급으로 취급받고(2군 등판 단 1경기) 방출당했다.[8] 여담으로 항상 충청권 출신이 한 명씩 포함되게 뽑아서 지역 챙기기, 비밀 독수리란 비난도 있었으나, 김해님은 정작 서울 출신에 서울 한서고등학교를 나왔다. 학력만으로는 대전고북일고같은 곳과 아무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