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3 07:58:54

김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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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72
김해님(金해님 / Hae-nim Kim)[1]
생년월일 1975년 2월 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학력 홍릉초 - 청량중 - 한서고 - 인하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9라운드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7~2007)
지도자 성남고등학교 투수코치 (2008~2009)
서울 해치 투수코치 (2010)
경북고등학교 투수코치 (2011~2013)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7)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7~)
프런트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 (2013~2016)

1. 개요2. 프로 생활3. 지도자 시절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김태양 김달님은 없나요 이태양은 있어요

한화 이글스투수이자, 現 한화 이글스 불펜코치.

한서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한화 이글스 역대 최악의 흉작이라는 1997년 드래프트에서 2차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2007년까지 10여 년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만 활약했다.

140㎞/h 초반의 최고 구속과 커브로 맞춰 잡는 투수였기 때문에 크게 돋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소금같은 역할을 해 주었던 좋은 선수였다.

여담으로 한서고 야구부 출신 중에서 프로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2][3]

2. 프로 생활

1997년 프로 입단 첫 해부터 가능성을 보이며 중간계투로 1군에서 활약했다. 이 시즌 성적은 41경기 60⅓이닝 3승 2패 1세이브 ERA 3.73. 1998, 1999년에도 중간계투로 계속 등판했으나 성적은 방어율 5점대, 4점대로 그렇게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1999년 한화 이글스첫 우승 때 유일하게 쓸 만한 중간계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에 최악의 방어율인 7.86을 기록하며 군입대를 결심했다. 2000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해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전역했는데 말년 때 살이 엄청 붙어 운동 능력이 확연하게 떨어졌고, 속구 구속도 130km/h대에 머물며 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3년에는 1군에 콜업되지 못했고, 2004년 정말 열심히 운동한 끝에 싱커를 익혔고 구속도 140km/h 중반대로 끌어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이 시즌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고, 2004년 5월 26일 5⅓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다. 이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부정 선수로 출장을 했다. 이 때에 주심과 기록원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종료 후 적발.

2005년에 선발로 큰 활약을 보이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비록 10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 시즌 성적은 1군 32경기 128⅓이닝 ERA 4.28. 이 활약을 바탕으로 준 플레이오프의 선발로 나서기도 했었다.[4]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지연규의 투혼이 돋보였던 5차전에 등판하여 삼성의 젊은 중간계투진과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2007년에는 13경기 14이닝에 그치며 별 기회를 받지 못했고 시즌 후 32세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방출되며 은퇴하였다.[5]

여담으로 성적과는 별개로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한화 팬들에게 인상적이었던 선수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2008년부터 성남고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일본 독립 리그 팀인 코리아 해치의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코리아 해치가 공중분해된 후에는 빙그레/한화 선수 출신인 강정길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던 경북고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스카우트로 재임했다.

하지만 롯데 스카우트 시절은 그야말로 악평 일색. 2014년 드래프트 때는 3학년 때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김재열(지명 당시는 김태석)을 2차 7순위로 지명했고[6] 2015년 드래프트장필준을 거르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부터 제대로 던지지도 못했던 투수 안태경 픽으로 2차 1순위 지명권을 날려먹고,[7]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즉전감 해외파 출신이라며 뽑은 선수가 코리아 해치에서 뛰던 일본 독립리그 출신 석지형[8]이지 않나, 2016년 드래프트에서는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실력을 보지도 않고 좌완을 무려 7명을 뽑지를 않나, 3학년 때 한 이닝도 던지지 않은 성남고 투수 배제성을 하드웨어만 보고 2015 드래프트 때 뽑았고[9], 항상 스카우트한 선수 중에 충청권 출신이 한 명씩 포함되게 뽑아서 지역 챙기기라느니[10] 비밀 독수리라느니 엄청난 욕을 먹었다.

2016 시즌 후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9년 만에 친정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중 김성근 사임 이후 김성근 사단이 모두 나가면서 1군 불펜코치로 승급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7 한화 이글스 41 60⅓ 3 2 1 0 3.73 43 32 36 1.16
1998 35 60⅓ 2 1 0 0 5.07 60 35 34 1.44
1999 41 92⅓ 3 5 3 0 4.87 93 41 70 1.41
2000 26 36⅔ 1 1 0 1 7.85 53 19 25 1.86
200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2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23 90⅓ 5 3 0 3 5.58 109 45 43 1.61
2005 32 128⅓ 6 8 1 2 4.28 152 40 61 1.42
2006 36 55 1 3 0 4 4.58 67 16 23 1.47
2007 13 14 0 0 0 0 1.93 12 7 7 1.21
KBO 통산(8시즌) 247 537⅓ 21 23 5 10 4.84 589 235 299 1.45


[1] 당연히 해님은 한글 이름이다.[2] 한서고 야구부는 경기도 고양시에 자체 야구장까지 보유할 정도로 재단의 투자가 강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학교였다. 김해님 이전에는 창단 초기 에이스였던 김민국이 그나마 가장 많이 뛴 축에 속한다.[3] 이후 어렵게 스카웃해 왔던 오승환, 채병용 등이 각각 경기고신일고로 전학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투자에 비해 성적이 나지 않으면서 재단의 관심이 점점 식어버린 가운데 2005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해민이 신일고로 전학했다. 유일한 현역 선수였던 홍명찬마저 2015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어 한서고 졸업생 출신 선수는 더 이상 남지 않게 됐다.[4] 3차전에 선발로 출장했는데 1이닝 2실점하고 물러났다. 이후 등판한 최영필이 7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은 승리했다.[5] 이 시절 김인식 한화 감독에게 찍혔다는 카더라가 있다.[6] 김재열은 입단 후 2년 동안 2군 기록이 없었고, 이후로도 참담한 성적을 낸 채 2017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7] 2017년 장필준이 삼성 불펜진의 희망으로 떠오른 반면, 안태경은 3년도 못 써먹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다.[8] 김해님과 코리아 해치 코치 시절 같이 있었던 인연으로 뽑았다는 말이 있다. 결국 뽑은 지 2년 만에 폐기급으로 취급받고(2군 등판 단 1경기) 방출당했다.[9] 결국 배제성은 2017년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 시범경기에서 최대성급의 제구를 보여 준 뒤 오태곤 트레이드에 끼어서 kt wiz트레이드되어 패전조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가끔 불을 질러도 패전조 중에선 그나마 사람 노릇을 하는 중.[10] 하지만 김해님은 정작 서울 출신이고, 서울에 있는 한서고등학교를 나왔다. 애초에 학력만으로는 대전고북일고같은 곳과 아무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