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3 01:26:58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A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2_250.png 경북고등학교 파일:r542oyv.gif 김해고등학교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6_r1_250.png 대구고등학교 파일:ES9qlOs.jpg 마산고등학교
파일:external/65.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5_r1_250.png 물금고등학교 파일:QiXxmjQ.jpg 상원고등학교 파일:f4zaGZt.png 용마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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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야구부
(慶北高等學校 野球部)

(Kyeongbuk High School)
창단 1920년 5월 11일~1959년[1]
1965년~현재
소속 리그 대구경북권
감독 이준호
연고구단 삼성 라이온즈
우승 기록 [2] 21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6회(1967, 68, 70, 71, 72, 74) 2회(1975, 82) 3회(1979, 85, 2016)
청룡기7회(1967, 68, 71, 74, 75, 81, 93) 3회(1947, 72, 78) 2회(1976, 82)
황금사자기4회(1968, 71, 79, 81) - 3회(1984, 92, 2010)
봉황대기4회(1971, 75, 81, 2015) 3회(1987, 97, 2008) 2회(1989, 2007)
협회장기 - - -
1967년, 1968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967년 대회 창설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1967년, 1968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산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196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1970년, 1971년, 197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197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197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7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971년 대회 창설 경북고등학교 배명고등학교
197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1974년, 197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97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부산상업고등학교
197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198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8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198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99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공주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201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휘문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1. 개요2. 연혁
2.1. 1920년대~1950년대2.2. 1960년대~1970년대 : 사상 최강의 야구부2.3. 1980년대~1990년대 : 침체기2.4. 2000년대 이후
3. 출신 선수

1. 개요

명실상부한 고교야구의 명문팀 중 하나로, 명성에 걸맞게 프로 출범 후 거의 매년 프로선수를 배출하는 야구부로, 우승횟수 기준으로 전국 고교 야구부 중 가장 뛰어난 역대 성적을 자랑한다.

참고로 모교인 경북고등학교가 경고라는 약칭으로 불리기 때문에 대구 경북지역에서는[3] 경고 야구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2. 연혁

2.1. 1920년대~1950년대

경북고 야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대구고등보통학교 시절(약칭 대구고보)인 1920년까지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5월 11일에 일본인 교사 센게 다카노부(千家 尊宜)와 스에노브 이치로(未延 一郞)가 주도해서 야구부가 처음 탄생했다. 당시 창단 선수진은 김명갑, 배소업, 손관성(孫觀星), 이규현(李圭鉉), 이상오(李相旿), 이원복(李元福), 이희철(李熙徹), 주덕근(朱德根), 차희순(車喜淳), 최경희(崔慶熙), 편무조(片茂祚) 등으로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이 시기 창단된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1928년 대구춘계쟁패전 4강 진출[4]이 당시 주요 대회에서 낸 유일한 성과였다. 대구상업고시엔 조선 예선 결승을 밥먹듯이 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성적.

해방 이후에는 한동안 이름을 드러내지 않다가 1956년 제11회 청룡기에 참가, 1957년에는 제 12회 청룡기와 제11회 전국지구대표고교쟁패전에 참가, 이중 전국지구대표고교쟁패전에서는 에이스 김창영(金昌永)을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9월 23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동산고에 3:2로 패배하며 우승 트로피 수여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 기세를 몰아 제38회 전국체전 고교부에 경북지역 대표로 참여, 4강까지 진출했지만 경기지역 대표였던 인천고에 6-3로 패배하며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1959년은 경북고 야구부에는 치욕의 역사로 볼수 있다. 제 14회 청룡기에서는 동산고의 고순선(高順先)에게 26명의 타자가 단 한개의 안타를 뽑지 못하며 한국 야구 역사상 3번째 노히트 노런[5]을, 제13회 전국지구별 초청 전국고교야구쟁패전에서 인천고의 이선덕(李善德)에게 35타자가 단 한개의 안타를 치지 못하며 한국 야구 역사상 4번째 노히트 노런[6]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런 모습에 "인문계 고교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폐부되기에 이른다.

2.2. 1960년대~1970년대 : 사상 최강의 야구부

그러던 중 1965년 다시 재창단 되면서 다시 기지개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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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식

임신근, 남우식, 황규봉이선희 등 에이스가 이끈 시기는 경북고의 황금기였다. 이들과 함께 뺄 수 없는 인물이 삼성 라이온즈 초대 감독으로도 알려진 서영무로, 1974년까지 경북고 감독을 맡으면서 13번의 우승을 함께 했다.

임신근은 고교 2학년 때인 1967년에 대통령배,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고교 3학년 때인 1968년에는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까지 모든 중앙대회[7]를 제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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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의 경북고

임신근이 졸업한 후 1971년 고교 3학년인 투수 남우식천보성, 배대웅, 정현발 등 타자들이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8], 화랑대기, 문교부 장관기 등 6개 대회를 제패했다. 여기서 화랑대기와 문교부 장관기를 뺀 4개 대회만 치더라도, 역대 고교야구 팀 중 중앙대회 4개 대회를 제패한 건 전무후무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지역연합 6개팀과 붙어서 6경기 모두 등판, 6경기 모두 승리하였다. 즉, 고시엔 올스타팀에게 6전 전승을 했는데, 이때 일본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일본의 사사키 회장이 직접 찾아와 매년 교환경기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 이를 계기로 이후 정기적으로 한일고교 교환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당시 경북고 야구부가 우승했을 때 대구의 군부대에서 오픈카를 빌려줘 야구부가 대구 시내에서 행진하곤 했는데, 우승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점점 군부대에서 오픈카를 빌려주기를 꺼렸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경북고가 지는 걸 보기 위해 고교야구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1971년 경북고는 고교야구 역대 최강팀으로 손꼽힐 정도로 강한 팀이었다. 특급에이스였던 남우식은 한양대학교를 거쳐 실업야구 팀인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한 후 1980년에 은퇴했고, 동기들과 달리 프로에는 진출하지 않아 현 시점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롯데그룹에 입사해 푸르밀의 대표이사직까지 승진했다.

남우식 등이 졸업한 후에는 황규봉과 이선희가 나왔다. 둘다 팀을 대표할만한 에이스 투수였지만 당시 황규봉이 주로 등판하고 이선희는 1루수로 나온 적이 많았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임신근과 남우식의 시절과 달리 전국적으로 고교야구 붐이 일면서 선린상고나 군산상고 등의 팀이 떠올랐고, 어느 팀이라도 전국대회 우승을 확신하기 어렵던 시절이어서 경북고는 대통령배 우승과 청룡기 준우승에 그쳤다.

황규봉과 이선희의 시절이 지난 후에는 1975년 성낙수가 팀을 이끌었고, 청룡기와 봉황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최고투수가 됐다.

2.3. 1980년대~1990년대 : 침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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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1981년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 3개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후 경북고는 기나긴 침체에 시달렸다. 성준, 김성래, 김동재, 류중일[9] 등 뛰어난 선수는 많았지만 전국대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대 이후 경북고가 예전만큼 성적을 못 내는 이유는 대구 지역 경제의 성장이 점점 지체되면서 대구 지역 선수층도 점점 얇아져 갔고, 또한 같은 지역내의 상원고대구고도 경북고 못지 않게 성장하면서 경북고가 예전만큼 막강한 전력을 꾸리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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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1993년 고교 2학년이던 이승엽이 투타에서 맹활약하는 가운데, 고교 3학년 강동우와 김수관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1981년 이후 12년만에 청룡기에서 우승해 고교야구 팀 중 최초로 전국대회 20회 우승을 달성했다.

1997년 김일엽의 호투로 봉황대기에서 준우승했지만 또다시 몇 년간은 8강에 진출하는 데에서 만족해야 했다.

2.4. 200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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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2000년대 초반에는 대구권 3개 고교 중에서 약체였던 대구고가 우수한 중학교 선수들을 몽땅 스카웃[10]해가면서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는 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안방에서 펼쳐지는 대붕기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7년 봉황대기에서 박지훈의 호투로 4강에 올랐고, 2008년 봉황대기에서는 유격수 김상수 와 호투를 반복한 투수 이상민의 활약에 힘입어 준우승을 했다.

2012년 경북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야구 고등부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4강전 당시 투수는 경북고 2학년 박세웅북일고 3학년 송주영, 윤형배의 대결이였는데, 8회까지 5대 4로 앞서있다가 9회 1점을 더 내주고 결국 경기는 승부치기까지 이어졌다. 경북고가 절호의 기회를 얻었었으나 좌익수의 호수비로 득점하지 못하고, 반면 북일고는 득점에 성공하여 동메달에 만족했어야 했다.

2015년 3월 부산에서 열린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구상원고에 13:11로 역전패를 당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이 대회에서 곽경문의 홈런쇼가 펼쳐져 많은 야구인과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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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기 결승전 후 박세진(우수투수상)과 최충연(MVP)
2015년 첫 메이져 대회인 봉황대기에서는 막강한 원투펀치인 최충연[11]- 박세진[12]에 2학년 거포 곽경문[13]에 1학년 내야수 배지환[14] 등의 활약이 더해지며 결승에서 장충고를 10:1로 크게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봉황대기 우승은 34년만이며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은 22년만에 달성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제96회 전국체전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용마고에게 8-3으로 패배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박세진과 최충연 두 선수 모두 전국구 투수였기에 삼성은 누구를 1차지명할지 고민하다가 최충연을 지명하였고, 그 뒤 kt가 박세진을 1차지명했다.

2016년 약체라 평가받았지만 부산에서 열린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준우승의 성과를 냈다. 경남고에 6:2로 패배하여 이 대회 연속 2위를 차지했다. 또한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배재고, 전주고, 장충고를 꺾었지만 4강에서 동산고에게 7:4로 패배했다.

2017년에는 유격수 배지환의 활약으로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8강에 진출했으나 각각 배명고마산용마고에 무릎을 꿇었다.

2018년 황금사자기에는 원태인이 신일고와의 16강전에서 104구를 던지는 바람에 결승에 올라가도 더는 나오지 못하는 핸디캡을 안게 됐고 결국 8강전에서 접전 끝에 경기고에게 패했다.

3. 출신 선수[15]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임신근 투수,외야수 1982년 창단멤버[16] 한일은행-삼성(1982)
조창수 외야수 - 한일은행-실업롯데
남우식 투수 - 한양대-실업롯데
배대웅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기업은행-포철-삼성(1982~1986)
손상대 포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7)
정현발 외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6)-청보/태평양(1987~1988)
천보성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4)
이선희 투수 1982년 창단멤버 농협-포철-삼성(1982~1984)-MBC(1985~1987)
함학수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기업은행-포철-삼성(1982~1987)
황규봉 투수 1982년 창단멤버 고려대-한국화장품-삼성(1982~1986)
서정환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건국대-포철-삼성(1982)-해태(1983~1989)
정진호 내야수 1983년 1차 연세대-한국전력-경리단-삼성(1983~1986)-청보(1987)-태평양(1988~1990)
손상득 포수 1982년 창단멤버 고려대-포철-삼성(1982~1988)
박정환 포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포철-삼성(1982~1992)
성낙수 투수 1982년 창단멤버 경희대-포철-삼성(1982~1985)-빙그레(1986)
김근석 내야수 1983년 1차 지명 고려대-삼성(1983~1988)-청보/태평양(1987~1988)
김동재 내야수 1983년 1차 지명 연세대-삼성(1983~1988)-MBC/LG(1990~1993)
황병일 외야수 1983년 1차 지명 건국대-삼성(1983~1985)-빙그레(1986~1990)
김성래 내야수 1984년 1차 지명 연세대-삼성(1984~1996)-쌍방울(1997~1999)-SK(2000)
진동한 투수 1984년 1차 지명 고려대-삼성(1983~1989)-쌍방울(1990~1992)
강정길 내야수 1985년 1차 지명 영남대-빙그레/한화(1985~1995)
성준 투수 1986년 1차 지명 한양대-삼성(1986~1998)-롯데(1999)
류중일 내야수 1987년 1차 지명 한양대-삼성(1987~1999)
문병권 투수 1988년 2차 1라운드 연세대-MBC/LG(1988~1993)
최창호 투수 1987년 2차 3라운드[17] 청보/태평양/현대(1986~1998)-LG(1998~2002)
이영재 포수 1991년 1차 지명 동국대-삼성(1991~1994)
김현욱 투수 1993년 2차 3라운드 한양대-삼성(1993~1995)-쌍방울(1995~1998)-삼성(1999~2005)
이상훈 투수 1990년 연고지명 삼성(1990~1999)-두산(1999~2003)-롯데(2004)
최재호 투수 1996년 2차 2라운드 계명대-삼성(1996~2001)
이정훈 투수 1997년 2차 10라운드 전주고-해태(1997~1998)
강동우 외야수 1998년 1차 지명 단국대-삼성(1998~2005)-두산(2006~2007)-KIA(2008)-한화(2009~2013)
이승엽 내야수 1995년 연고지명 삼성(1995~2003)-치바롯데(2004~2005)-요미우리(2006~2010)-오릭스(2011)-삼성(2012~2017)
김일엽 투수 1998년 고졸우선지명
2007년 신고선수 입단
단국대-PHI(2002~2003)-롯데(2007~2012)-한화(2013)
배영수 투수 2000년 1차 지명 삼성(2000~2014)-한화(2015~2018)-두산(2019~)
김강민 외야수 2001년 2차 2라운드 SK(2001~)
이병규 외야수 2006년 신고선수 입단 한양대-LG(2006~2017)-롯데(2018~)
백상원 내야수 2010년 4라운드 단국대-삼성(2010~2018)
이상훈 외야수 2010년 4라운드 성균관대-한화(2010~2012)-삼성(2013~2017)-kt(2017)
정병곤 내야수 2011년 9라운드 단국대-LG(2011~2012)-삼성(2013~2018)-두산(2019~)
박지훈 투수 2012년 1라운드 단국대-KIA(2012~)
손형준 외야수 2012년 10라운드 연세대-삼성(2012~2016)
김상수 내야수 2009년 1차 지명 삼성(2009~)
이상민 투수 2013년 7라운드 동의대-NC(2013)-넥센/키움(2014~)
이성민 투수 2013년 우선지명 영남대-NC(2013~2014)-kt(2015)-롯데(2015~2017)
김상훈 투수 2010년 2차 4라운드 두산(2010~2015)-넥센(2016~2018)
김종화 투수 2010년 신고선수 입단 삼성(2010~2011)
이지찬 내야수 2014년 2차 8라운드 경성대-kt(2014~2018)
김윤동 투수[18] 2012년 4라운드 KIA(2012~)
임기영 투수 2012년 2라운드 한화(2012~2014)-KIA(2015~)
김명신 투수 2017년 2차 2라운드 경성대-두산(2017~)
박세웅 투수 2014년 전국단위 1차 지명[19] kt(2014~2015)-롯데(2015~)
최경모 내야수 2019년 2차 5라운드 홍익대-SK(2019~)
허웅 투수 2015년 2차 2라운드 SK(2015~)
문성주 외야수 2018년 2차 10라운드 강릉영동대-LG(2018~)
박세진 투수 2016년 전국단위 1차지명 kt(2016~)
최충연 투수 2016년 1차 지명 삼성(2016~)
곽경문 내야수 2017년 2차 8라운드 삼성(2017~)
김태우 투수 2018년 2차 2라운드 삼성(2018~)
배지환 내야수 201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ATL(2018) PIT(2018~)
배현호 포수 2018년 2차 4라운드 넥센/키움(2018~)
배창현 투수 2018년 2차 5라운드 두산(2018~)
신효승 투수 2018년 2차 6라운드 넥센/키움(2018~)
이희재 투수 2018년 2차 9라운드 SK(2018~)
원태인 투수 2019년 1차지명 삼성(2019~)


[1] 인문계 고교의 이미지를 유지한다는 교내 방침 때문에 1959년 해체.[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부산광역시경남고등학교도 경고라고 불리운다.[4] 4강에서 신생팀이던 대구상업에게 7-4로 패배[5] 9이닝 15탈삼진, 6사사구, 2실책, 0피안타, 0실점, 2:0 승리.[6] 9이닝, 15삼진 7사사구 2실책 0피안타 0실점. 4:0 승리.[7] 봉황대기가 창설되기 전이었다.[8] 준우승팀은 서울의 신생팀인 대광고로, 대광고에는 작은 체구 때문에 경북고 진학이 실패해 경북고에 앙심을 품었던 김재박이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결승전에서 김재박의 에러로 주자가 출루해 1대0으로 경북고가 우승했다.[9] 참고로 류중일은 1982년 7월 17일에 열린 잠실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잠실 야구장 첫번째 홈런을 쏘아 올린 인물이다.[10] 당시 대구고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박석민이다. 박석민을 포함해 대구지역 중학교 3학년 유망주들에게 야구 장학금을 안기며 영입했고, 그 결실로 대구고는 2003년 대통령배에서 경주고를 꺾고 대회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11] 2016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12] 2016년 kt wiz 전국단위 1차지명[13] 2017년 삼성라이온즈 2차8R지명[14] 2018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계약, 구단 측 문제로 해지 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계약[15]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16] 플레잉 코치였다.[17] 1986년 신고선수 입단.[18] 입단은 외야수로 했으나, 이후 투수로 전향.[19] 신생팀 혜택으로 연고 상관 없이 전국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