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1:09:13

진흥고등학교 야구부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라 A
파일:FzeX4gI.png 광주제일고등학교 파일:ImVr0SY.png 전주고등학교 파일:9kpR6gN.jpg 진흥고등학교 파일:qs8cedn.jpg 화순고등학교
파일:O2s1mjq.jpg 효천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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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고등학교 야구부
(Jinheung High School)
창단 1973년
소속 리그 전라권
감독 오철희[1]
연고구단 KIA 타이거즈
우승 기록[2] 3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2001, 12) - 1회(1985)
청룡기 - 2회(2001, 06) 1회(1996)
황금사자기 - 3회(1981, 85, 86) -
봉황대기1회(2000) 2회(1977, 86)
협회장기 - - -
2000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진흥고등학교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200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진흥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201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진흥고등학교 공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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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혁2. 출신 선수

1. 연혁

전국적인 고교야구 붐이 일기 시작하던 1973년에 창단했다. 우승의 기회는 비교적 빨리 찾아와 1977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충암고와 만났는데, 당시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팀의 대결은 충암고의 승리로 돌아갔고, 진흥고의 첫 우승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그 후 1981년 황금사자기에서 훗날 가을까치로 불리는 김정수의 호투를 발판삼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그 해 상대는 성준류중일이 버티던 최강 경북고였고, 결국 다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1985년과 1986년, 이 번에는 뒷 날에는 김기태를 제치고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은 것으로 유명해진 오희주[3]를 앞세워 결승에 도전했지만, 두 해 동안 치뤄진 세 차례의 전국대회 결승에서 모조리 패하면서 창단 후 30년간 5번의 준우승에 그치면서 콩라인에 가입하게 된다. 1990년대 해태는 이대진, 임창용, 김상진 같은 진흥고 출신 투수들을 받아들이면서 투수력의 새 피를 수혈했지만, 정작 이들의 고교 시절에는 팀을 정상권으로 이끌기에는 전력이 많이 모자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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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유니폼이 왠지 어딘가홈 유니폼을 닮은 것 같다면 기분 탓.[4]

진흥고의 콩라인 탈퇴를 이끈 선수는 김진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2000년 봉황대기에서 순천효천고를 꺾고 팀을 첫 정상에 올려 놓으면서 이름을 알린 김진우는 1년이 지난 후에 더욱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일약 초고교급 선수로 등극하였다. 2001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성남서고를 제압하고 우승을 이끌었고, 바로 이어진 청룡기에서는 피로 누적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덕수정산고[5] 에게 패배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주권에서도 항상 넘버 3로 밀리던 진흥고의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충분했다.[6]2000~01년 진흥고 재학생이 회상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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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일
그리고 2006년 또 하나의 초고교급 선수인 정영일을 앞세워 청룡기 정상에 도전했지만, 무식한 혹사[7][8]를 견딘 정영일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팀은 경남고의 신본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패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정영일은 그 뒤 부상으로 신음하기에 이르렀다. 정영일의 시대 이후 한동안 고전하던 진흥고는 2012년 고교 2학년이던 하영민을 앞세워 깜짝 우승에 성공하며, 통산 3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광주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 3회(1995,1996,2006), 준우승 1회(2005)를 기록했다. 대구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은 없고, 준우승 1회(1992)를 기록했다. 부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 1회(2008)[9], 준우승 2회(1999,2005)를 기록했다.

2. 출신 선수[10]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정수 투수 1986년 1차 지명 연세대-해태(1986~1999)-SK(2000)-한화(2001~2003)-SK(2003)
김인호 내야수,외야수 1989년 2차 1라운드 성균관대-롯데(1989)-태평양/현대(1990~2001)
나광남 외야수 1989년 2차 4라운드 단국대-삼성(1989~1991)
송유석 투수 1985년 연습생 입단 해태(1985~1996)-LG(1997~1999)-한화(2000~2001)
고형욱 투수 1994년 신고선수 입단 인하대-쌍방울(1994~1999)
이대진 투수 1993년 고졸연고자유계약 해태/KIA(1993~2011)-LG(2011~2012)
임창용 투수 1995년 고졸연고자유계약 해태(1995~1998)-삼성(1998~2007)-야쿠르트(2008~2012)-CHC(2013)-
삼성(2014~2015)-KIA(2016~2018)
김상진 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해태(1996~1999)
강명구 내야수 2003년 2차 1라운드 탐라대-삼성(2003~2014)
김진우 투수 2002년 1차 지명 KIA(2002~2007)-서울 해치(2010)[11]-KIA(2011~2018)-질롱 코리아(2018)
손주인 내야수 2002년 2차 3라운드 삼성(2002~2012)-LG(2012~2017)-삼성(2018~)
전준호 투수 2005년 2차 7라운드 SK(2005~2006)-경찰(2008~2009)-삼성(2010)-NC(2012)
문광은 투수 2010년 1라운드 동의대-SK(2010~2018)-LG(2018~)
양의지 포수 2006년 2차 8라운드 두산(2006~2018)-NC(2019~)
나성용 내야수 2011년 3라운드 연세대-한화(2011)-LG(2012~2015)-삼성(2016~2017)
정영일 투수 2007년 1차 지명
200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LAA)
2014년 2차 5라운드
LAA(2007~2011)-고양 원더스(2011)-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즈(2013)-상무(2013~2015)-
SK(2016~)
강하승 내야수 2012년 신고선수 입단 동국대-고양 원더스(2012)-KIA(2013)
나성범 외야수 2012년 2라운드 연세대-NC(2012~)
박상현 내야수 2009년 2차 2라운드 SK(2009~2015)
정형식 외야수 2009년 2차 2라운드 삼성(2009~2014)
김건태 투수 2010년 1라운드 넥센(2010~2017)-NC(2018~)
임기준 투수 2010년 2라운드 KIA(2010~)
김도현 외야수 2011년 7라운드 넥센(2011)-SK(2012~2017)-두산(2018~)
양승철 투수 2019년 2차 4라운드 원광대-KIA(2019~)
김성욱 외야수 2012년 3라운드 NC(2012~)
박창빈 외야수 2017년 2차 8라운드 동국대-두산(2017)
윤대영 내야수 2013년 4라운드 NC(2013~2015)-LG(2016~2018)
박진두 내야수 2014년 2차 8라운드 KIA(2014~)
하영민 투수 2014년 2차 1라운드 넥센/키움(2014~)
김기연 포수 2016년 2차 4라운드 LG(2016~)
정윤환 투수 2017년 2차 9라운드 KIA(2017~2018)
오동욱 투수 2019년 2차 6라운드 한화(2019~)
임준형 투수 2019년 2차 8라운드 LG(2019~)

[1] 고교 졸업 당시 해태의 1차 지명이 유력시되었으나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던 타자. 그러나 미국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단한 뒤에 국내 복귀를 여러 차례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2013년부터 광주화정초등학교 코치로 있다가 2018년 윤현필 감독이 새로 창단한 나주영산고 감독으로 옮기면서 새로 진흥고 감독을 맡았다.[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우완투수로 한양대에 진학했다. 천하의 김응룡감독과 첫 대면에서 반짝이 옷에 파마머리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김응룡 감독이 스카우트 팀장에게 "유명한 가수신가?" 물었고 속으로 "이야, 해태에 적응하기 어렵겠다" 싶다고 한다. 2년 있다가 LG 트윈스로 이적했다.#[4] '00년까지는 모자와 유니폼 줄무늬가 남색이었으나 '01년부터 흑색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5] 덕수와의 결승전 전날인 성남고와의 준결승에서 김진우가 분전하느라 힘이 빠졌다. 덕수에는 3학년 에이스 투수 류제국, 신입생 톱타자 외야수 이용규, 거포 최진행 등이 있었다.[6] 당시 진흥고 라인업은 투수 김진우(해태 입단), 포수 이원희(대불대 진학), 1루 이상오(중앙대 진학), 2루 조용원(한양대 진학), 3루 김경선(고려대 진학), 유격 손주인(삼성 입단), 외야 최길환(한양대 진학)-최근호(중앙대 진학)-양기성(영남대 진학) 등 3학년생 주축이었으며, 양기성 자리에서 대신 2학년 단신 좌타자 김재천(SK 입단)이 활약했다.[7] 청룡기에서의 등판 기록이다. 2006. 5. 30. 32강전 성남서고 8과3분의2 121개 투구→2006. 6. 2. 16강전 대전고 8이닝 122개 투구→2006. 6. 4. 8강전 충암고 9와3분의2이닝 159개 투구→2006. 6. 6. 4강전 덕수정보고 8이닝 117개 투구→2006. 6. 7. 결승전 경남고 16회(기록상 15회)222개 투구. 경남고등학교는 16회까지 이상화이재곤이 나눠 던졌다.[8] 당시 감독인 박철우가 비난을 많이 받았다.[9] 여담으로 지역라이벌인 광주일고와 광주동성고는 화랑대기를 단 한 차례도 차지하지 못했다.[10] 나무위키 등록된 선수 한정. 졸업 연도 순.[11] 과거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 참가했던 팀. 이름에 서울이 들어간건 재일교포 및 한국인들로 구성된 야구팀이었기 때문이다. 간사이 독립리그가 자금난, 구성원간의 갈등 등으로 해체된 후 서울 해치도 해체되었다.